엘로힘 시리즈

13강. 로마서5장20절, 왜 애굽화된 광야의 크리스천들을 디자인하셨나?

변명섭 2021. 3. 29. 18:12

13강. 왜 애굽화된 광야의 크리스천들을 디자인하셨나? (롬5:20)  2021년3월28일 말씀
지난시간에는 왜 400년 노예의 삶을 또 왜 40년 광야의 삶을 디자인 하셨나? 이런 제목을 가지고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디자인하셨다는 말은 이분이 창세전에 예정하신 것이라고 우리가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디자인을 누구에게 말씀하였냐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전1500년에 창세기15장13절에서16절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문스러운 게 아브라함에게는 4년의 광야의 삶을 살다는 것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보면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그 사건이 일어났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느냐면 40년 광야의 삶 이것은 출애굽해서 광야에 들어가서 살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정탐꾼12명에 의해서 가나안을 탐사하게 한 후에 열 분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그 내용 때문에 여호와께서 예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너희들이 40일 동안 정탐을 했는데 그것을 하루를 1년으로 삼아서 40년을 너희들이 이 광야에서 살다가 다 죽고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갈렘과 여호수아는 예외다 이 말씀을 민수기13장33절1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난시간에 왜 400년 긴 시간을 이렇게 노예화로 디자인하셨나? 할 때 우리의 대답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완전히 구원받기 되기 전에 애굽 화되어야 된다고 하나님이 디자인 하셨기 때문에 완전히 애굽 화되는 것 그래서 이 디자인을 하나님께서 하시고는 출애굽을 시켰는데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출애굽을 시켰는데 이 사람들이 출애굽을 해서 가야할 곳이 어디냐면 가나안입니다 왜냐면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광야로 가도록 말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 대한 말씀을 일체 하지 않으셨는데 실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나안으로 갈려고 하니까 모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모세야 가나안으로 가다가는 이분들은 영적으로 근방 태어난 유아들이기 때문에 강한 적인 팔레스타인을 만나면 다시 애굽으로 귀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으로 직접 못 간다. 대신 너희들은 홍해를 지나서 광야로 들어가야 된다. 이렇게 방향전환을 시키신 겁니다. 출애굽기13장17절18절에 신기하게도 구원받은 이분들은 고린도후서5장17절에 바울이 말하듯이 너희들은 옛 것들이었는데 애굽의 시민들이었는데 그것이 없어지고 이제는 천국시민 새것으로 된 자들이라고 하신 것처럼 새것으로 된 자들인데 천국시민들인데 방향전환을 시켜가지고 가나안으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40년 광야생활을 하게 하신 겁니다. 왜냐면 이분들이 애굽의 모든 문화를 완전히 탈피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은 광야에서 살다가 애굽 문화를 가진 채 그대로 광야에서 죽어서 천국으로 가게 되는 사람들인 겁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그래서 우리가 지난시간에 영적유아들 거기서 조금 발전되면 영적어린이들 거기서 더 발전되면 영적사춘기들 이 세 그룹은 전투력이 없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복음화를 하는 세계선교를 하는 그룹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이분들은 이 세상에서 애굽 스타일로 살다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영적전투력을 가지지 않고 전도나 선교나 복음을 나누지 않고 그냥 애굽 스타일로 살다가 그냥 하늘나라로 가시는 분들로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이렇게 그림자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이 말씀을 그대로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서5장4절에서6절에 보면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이 말씀을 그대로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광야의 크리스천들을 다시 한 번 간단하게 우리가 보면 이분들은 새로 태어난 천국백성이지만 예수 화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애굽 화된 크리스천들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화되지 않는 그러니까 애굽에 모든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성화되지 않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분들은 소위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제가 항상 강조했듯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삼위하나님의 정체성을 항상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의정체성을 항상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것을 안 한다는 겁니다. 천국시민은 천국시민이지만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고 또 신명기31장13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다시 말하면 가나안에 들어가는 자들은 뭘 배우느냐면 여호와를 경외하게 될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지금 광야출신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아무리 말해도 이분들은 그것을 관심 있게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십계명의 돌 판을 주었는데도 이분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신명기31장13절입니다.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크게 갈라지는 게 뭐냐면 광야크리스천과 가나안크리스천들의 차이점이 뭐냐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가지고 두 그룹이 나누어진다는 겁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창조목적에 순응하는 자인가 아닌가. 입니다. 여기서 갈라진다는 겁니다. 다시 제가 말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이 뭐라는 것을 다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의 크리스천들을 우리가 현대말로 뭐라고 부르느냐면 선데이 크리스천들이라고 부릅니다. 선데이 크리스천들 또는 명목상크리스천들 이런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다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낙원에 갑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60%-80%정도가 기독교공동체에 있어 왔습니다.
그동안 신약교회사를 보면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분들이 낙원에서 나중에 왜 우리를 이렇게 세상에 있었을 때 무엇을 섬기도록 하셨습니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일반 시민계급으로 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 낙원에서 질문을 한다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어떤 잣대를 대고 대답할 것이라 그랬습니까? 공의의 하나님이 애들아 너희들은 내가 그렇게 우상섬기지 말라고 말했는데 애굽의 떼를 벗어라, 벗어라 했는데도 너희들 벗지 않았잖느냐 그렇기 때문에 너 네들을 그 떼를 벗은 사람들과 똑같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너희들과 똑같이 대하면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일반시민계층에 머물면서 내가 원하는 일들을 같이 해라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실 걸로 알고 있고 이분들도 마찬가지로 아하! 우리가 정말 잘못했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저분들보다(영적으로 청년, 아들, 아버지크리스천들입니다)  천국에서 낮은 계층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광야기독교인들의 특색들을 우리가 잠깐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애굽 화가 탈피가 안 되었던 분들로 우리가 보고 있잖아요.
그래서 적어도 세 분야에서 특색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분야는 뭐냐면 문화적 분야에서 이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애굽 풍습을 따르는 분들입니다 이 세상 풍습을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애굽 전통을 따르고 좋아하고 하는 분들입니다 또 애굽의 생활방식을 따르고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또 애굽 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이고 선호하는 분들입니다 이렇게 문화적 분야에서 애굽 화된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들이지만 두 번째 특색은 종교적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애굽 화된 분들입니다 크리스천들이지만 이분들은 우리가 이분들의 모습을 봤지만 애굽 우상인 금송아지 아피스(Apis)를 여호와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으로 보고 섬기는 우를 범한 사람들입니다
또 종교적으로 그 당시에 아피스(Apis)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바벨론우상들이 많았습니다. 바벨로종교관을 가졌던 분들입니다 바벨론종교관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종교관 중에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신화관입니다
여기에 자세한 것은 제가 여자의 후손 책에 자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스신화 관 또는 로마신화 관들입니다 바알, 세미라미스, 담무스 오늘날도 바알에 여러 가지 이름들을 우리가 많이 사용합니다. 세미리미스 이름들도 우리가 많이 사용합니다. 또는 담무스 이름도 우리가 많이 사용합니다.
오늘날 산업계에서도 상품이름들도 보면 다 이분들의 바벨론종교 신들의 이름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크리스천들도 아주자기도 모르게 이 이름들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도 마찬가지지만 신약교회시대에 들어와서도 각 나라마다 그 나라에 바벨론종교 화된 문화의 습성과 기독교문화의 습성을 혼합해서 사용했던 분들이 이분들입니다 성직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광야생활을 이렇게 보면 아론도 성직자였는데 이 사람도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70명의 소위 지도자들도 장로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런 모습들입니다 애굽의 습관을 따랐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역사에서도 교회 안에 추기경들 높은 분들 감독들 또 개신교에 들어와서도 높은 분들 많잖아요. 이런 분들이라고 그래서 이런 높은 포지션을 가졌고 가운을 입었다고 해서 저분들이 광야의 기독교인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열매를 보고서 광야인지 가나안인지를 여러분들이 구별하는 구별력을 가지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의 역사를 반드시 공부를 해야 됩니다 역사 속에서 이 성서 말씀과 어떻게 이것이 그대로 역사 속에서 재현되었는지 그리고는 오늘날 이것이 어떻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을 또 공부해야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것이 갈 것인지를 그래서 우리가 다 공부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가 10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에 전 세계에서 놀랄 만큼 기독교가 번성해지고 세계에 놀라운 일들 선교사들을 많이 내어보내고 했지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아직도 대부분의 소위 하나님의 자녀들이 애굽 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애굽 문화에서 또는 애굽의 종교적 분야에서 우리도 크리스천들이지만 조상제사를 드리는 분들도 계시고 이사 갈 때 날짜 보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있고 풍수지리에 영향을 받아서 묘 자리 집 자리 기타 등등 그런 걸 아직도 선호하는 분들도 있고 또 가끔가다가 점쟁이도 찾아가는 분들도 있고 그러니까 이것을 벗을 길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가나안 팀들은 이것을 은혜로 벗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큰 차이가 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그룹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우리 성도님들은 다 여기에 속하기를 바라면서 제가 이 단에 서 있습니다. 아멘. 세 번째 분야가 뭐냐면 첫 번째 분야는 문화적 분야에서 특색이 있고 두 번째는 종교적 분야에서의 특색이 있는 겁니다. 
광야의 성도들의 특색이 세 번째 분야는 성품분야에서의 특색이 있는 겁니다.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품분야에서 광야에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아직도 마귀사탄의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가나안 화되지 못하는 겁니다. 사탄의 성품이 목사님 무엇입니까? 
그러면 이 부분을 잘 짚고 넘어갑시다 사탄의 성품은 질투심입니다
 왜 질투심이냐면 우리가 알다시피 루시퍼가 하나님의 사랑과 모든 많은 피조물들의 존경을 받아 오다가 타락하면서 그 특권을 빼앗긴 겁니다. 
루시퍼가 그러면서 누가 이렇게 보니까 자기 대신에 다른 피조물들이 다른 천사들이 자기가 받아왔던 것을 받는 모습을 보고는 질투를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질투심이 야기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탄의 성품은 질투심이다 
이것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질투라는 내용을 가지고 조금 자세히 설명하여 드리려고 그럽니다. 이 질투심이 사탄에게 어떻게 발효가 되었냐면 첫 번째 질투심이 사탄에게 수직계명을 파괴하는 일을 시작한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수직계명을 하지 못하도록 파괴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사탄이라 그러는 겁니다. 또는 데블(devil)이라 그러는 겁니다. 마귀라는 이름이 데블(devil) 디아볼로스(Diabolos)이 뜻은 파괴자라는 뜻입니다 마귀 사탄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귀라는 이름이 파괴자인데 뭘 파괴했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수직계명을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파괴하는 일을 이놈이 질투심 때문에 한 겁니다. 두 번째 데블(devil)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다 공부했지만 분리자라는 뜻입니다 디아볼로스(Diabolos)라는 이름이 분리자라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관계를 분리시키는 이 일을 하는 자입니다 분리시키는 일을 그다음에 세 번째로 수평계명을 파괴시키는 겁니다. 수평계명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자녀들을 분리시키는 일입니다 이런 것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중요한 질문이 하나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르칠 때 이 질문을 꼭 잊지 말아주세요 그런데 성서에 보면 십계명을 주실 때 출애굽기20장5절에 또 신명기4장2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뭐라고 말씀하였냐면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딜레마가 있는 겁니다.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그랬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우리가 찾아내어야 됩니다. 우리가 그냥 액면그대로 보면 여호와하나님이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본인이 말씀하시는데 내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성경구절을 자세히 보면 출애굽기20장5절에 뭐라고 말씀하였냐면 지금 십계명을 주시면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하는 것은 창조목적을 안 지키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십계명은 구원받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광야의 크리스천들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삼사 대까지 내가 그들의 죄악을 자손들에게 미치게 하겠다는 겁니다. 삼사 대까지 그러니까 한번 광야의 크리스천이 되어 가지고 아주 심하게 창조목적을 어기면 삼사 대까지 후손들에게 그것이 계속 흘려나간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그 후손들이 광야의 크리스천에 머물게끔 하겠다는 겁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대신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이 계명은 십계명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겁니다. 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자비를 베푸시겠다는 겁니다. 출애굽기20장6절에 그리고는 40년 광야생활이 끝나고는 모세가 죽기 전에 신명기4장24절에서 또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무슨 말씀을 하느냐면  모세야 주 너희하나님은 소멸하시게 하는 분이라는 겁니다. 소멸케 하시는 분이다 이게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소멸케 한다는 것은 태운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곧 소멸케 하는 뜻이 뭔지 아느냐 그러면서 곧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바로 전 절인 4장23절에 모세야 내 자녀들이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금지했던 새긴 우상의 모양들 그런 모습들 이런 것들을 달고 다니면 이런 걸 만들면 나는 질투의 하나님인데 소멸케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이 뜻이 뭐냐면 창조목적을 위배하는 자는 소멸케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때면 설명하겠지만 금송아지사건 때문에 3천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소멸시켜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심하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우상을 섬기면 우상을 섬긴다는 말이 뭐냐면 우리 크리스천들이 자기영광을 찾고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가도록 특히 크리스천지도자들 중에서 예수님을 이용해가지고 자기가 더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더 유명해지고 자기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존경받고 그렇게 되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 겁니다.
왜 네가 내대신에 내 백성들을 가지고 네가 영광을 받느냐 이놈아! 그렇기 때문에 네가 그럴 때는 질투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게 거룩한 질투입니다
질투가 일어나서 소멸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소멸시키는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나는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동시에 같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창조목적에 위배하면 소멸하겠다는 하나님이지만 또 조금 덜 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자비를 베풀겠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탄은 질투하는 사탄인데 이 사탄은 뭐냐면 파괴시키고 분리시키는 일만하는 자비가 없는 질투입니다 파괴를 가지고 오는 질투입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질투는 더 잘되라고 더 복 받으라고 주시는 질투인 겁니다. 
여기서 차이가 나는 겁니다. 성품 적 분야에서 사탄의 성품이 탈 애굽 화되지 못했던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이분들이 과거에 애굽에 있었을 때 애굽은 이 세상이고 애굽 왕은 사탄으로 우리가 상징화하잖아요. 애굽 사람들이라 함은 지금 물리적으로 아프리카에 있는 애굽 나라가 아니고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사탄의 사람들 애굽 사람들이 가졌던 사탄의 성품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나열해드리겠습니다
질투심 때문에 나타나는 파생되는 성품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화된다는 것은 질투심만 없어지면 우리는 성화에 가까워지는 겁니다.
질투심만 없으면 그러면 목사님은 질투심이 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제가 오늘도 아침에 묵상하면서 아직도 나에게 애굽 성품인 질투심이 남아있구나 라는 것을 제가 주님 앞에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다들 있습니다. 이걸 고백하셔야 됩니다. 질투심 때문에 우리에게 여기 되는 부산물들이 뭐냐면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성품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평계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성품들입니다 이것들이 질투심에서 야기되는데 예를 들면 미움입니다. 원수 맺기입니다. 용서 못해주는 겁니다. 또 화내기입니다. 우리 다 화를 냅니다. 우리가 화를 내지만 마귀가 와서 틈타지 못하게 밤을 넘기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으로 계셨을 때 화를 내셨습니다.
그렇지만 밤을 넘기면 안 됩니다 그다음에 질투심이 인간관계를 깨는 것이 이간질입니다 질투심 때문에 누가 잘되는 걸 보면 이간질하는 겁니다. 
또 분열을 주장하는 겁니다. 또 잘되는 사람들을 보면 깎아내리는 겁니다. 
또는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겁니다. 또는 거짓말하는 겁니다. 또는 속이기입니다. 또는 이것을 넘어뜨리기입니다. 또는 말 만들기입니다. 또는 허세부리기입니다 허세를 부리면 주변사람들이 질투심을 가지게 됩니다. 
허풍떨기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주변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입니다
자랑하는 것들 교만한 것들 또는 자만한 것들 또는 고집부리는 것들 어떤 사람은 고집이 센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아집부리는 것들 또는 욕심 부리는 것들 이런 것들 모두가 다 자기도 모르게 주변하나님의 자녀들을 마음 아프게 해주고 상처를 주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애굽에 살았을 때 다 해온 것들인데 이것이 지금 광야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광야기독교인들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광야기독교인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교회는 시끄러운 겁니다. 교회직분과 관계없이 이런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데 높은 직분에 있을수록 이런 것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 교회가 문제가 생기고 그 교회는 이런 것들이 가득 찬 사람들로 그 교회가 구성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기독교역사에서 보면 그대로 나타납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변한다는 것은 광야크리스천들은 영적유아 때는 그대로 가지고 있고 조금 발전해서 영적어린이가 될 때는 약간 변했고 그다음에 영적사춘기가 되어도 약간 변한 것뿐이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성서를 보면 1세기 때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 요한이 섬겼던 교회들 베드로가 섬겼던 교회들 이분들이 섬겼던 모든 교회들과 이분들의 제자들이 다 이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약성서의 내용이 그의 다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1세기 때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 히브리사람들 중에서도 엄청나게 이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이 광야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히브리서를 써신 바울 또는 바나바라고도 그럽니다. 이 사란들이 기독교인들이 되었지만 이 문제가 심각하니까 이분들보고 하시는 말씀이 히브리서12장14절15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애들아 너희들이 쓴 뿌리가 너무나 많구나.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탄의 성품을 한마디로 쓴 뿌리라고 이렇게 히브리기자가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기자가 뭐라고 그러느냐면 유대인크리스천들아 너희들이 쓴 뿌리가 아직도 많기 때문에 세 가지 문제점들이 있단다. 그러는 겁니다.
첫 번째 문제가 뭐냐면 너희들이 이 쓴 뿌리가 많기 때문에 마음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너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를 못한다.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를 팔복에서도 그랬습니다. 마음이 순수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그러니까 영성이 깨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쓴 뿌리들이 있으면 이렇게 말씀하시고 두 번째로 히브리기자가 뭐라고 그러느냐면 이것 때문에 너희들은 구원받은 너희들이지만 너희들 스스로가 항상 마음에 갈등이 있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뭐냐면 왜 너희들이 갈등을 가지느냐면 같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네가 괴롭힘을 준단다. 너 때문에 그분들이 불편해하고 괴로워한단다. 이 세 가지부분을 지적하는 겁니다. 이 쓴 뿌리가 다시 제가 반복하면 너희들은 이 쓴 뿌리가 너희들의 영의 눈을 어둡게 해서 하나님에 은혜를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다. 두 번째는 너희들 스스로가 항상 괴로워한단다. 그리고 너만이 아니고 너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괴로워한단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광야의 기독교인들이 그런데 이런 광야의 기독교인들이 숫자가10%정도 된다면 교회가 얼마든지 시끄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숫자가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제가 항상 강조합니다.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겁니다. 선교지에 가도 선교사들끼리 같은 복음을 전하려 왔는데도 같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전하려 왔는데 선교사들끼리 서로 협조도 안하고 서로 미워하고 깎아내리고 이런 모습 우리가 다 알잖아요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기독교인들을 보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옆에 있는 교회와 협조합니까? 같은 예수님을 섬기는데 안 합니다 서로 자기교회성장만하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게 왜 그렇습니까? 애굽 화된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제가 나쁘다 좋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을 애굽 화 기독교인들로 디자인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 화된 크리스천들의 쓴 뿌리들 때문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삶의 질이 좋지가 않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삶의 질이 좋지가 않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어떤 때는 삶의 질이 더 나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부문에서냐면 쓴 뿌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신경질이 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입만 열면 원망으로 꽉 찬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스트레스로 항상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근심걱정으로 차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좌절감으로 차있고 열등감으로 차있고 어떤 사람들은 신경과민증으로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것 때문에 감사도 없고 항상 불안하고 그리고는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자족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항상 감사가 안 되는 겁니다. 항상 더 가지려고 그러고 끊임없이 불만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자족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과거에 나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잊지 않고 계속 읊퍼대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무슨 일이 생깁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암도 걸리고 당뇨도 생기고 고혈압도 생기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호르몬에 이상 증세가 있고 각종성인병을 달고 다니게 되어 있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러는데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알게 되면 예수님이 진리이신데 진리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겁니다. 요한복음8장32절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가나안에 들어간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성도들은 이런 게 없나요. 저는 그분들도 분명히 쓴 뿌리들이 있을 겁니다.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좀 정돈된 분들이다 조금 예수 안에서 진리 안에서 이런 부분에서 자유를 이미 찾은 분들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차이가 나는 게 이렇게 두 종류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음을 지금 우리가 보게 되는데 우리 질문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이 뭐냐면 이것은 우리누구나 다가지고 있는 질문들입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애굽에서 구원시켰으면 왜 즉시로 성화시키지 않으셨나요. 왜 이분들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한대로 즉시로 가나안에 보내면 될 터인데 왜 40년 광야에 보냈습니까? 다시 말하면 성화시키지 않으셨습니까? 애굽의 떼를 그길로 구원 즉시 씻어주셨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왜 애굽의 떼를 가지고 살게 하셨나요.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질문은 왜 이런 크리스천들의 숫자가 훨씬 많습니까?
이것도 우리의 질문인 겁니다. 그러면 지난시간에 봤지만 저쪽 천국사회가 우리의 답입니다 천국사회가 피라밋 사회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라밋 사회의 구조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렇게 자리매김을 해주려면 구원시켜 놓고 하나님이 이런 디자인을 하셔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또 질문이 무엇입니까? 왜 이런 디자인으로 하십니까? 왜 그러면 우리의 대답은 뭐냐면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바울도 이런 것에 대해서 질문하니까 대답을 했습니다. 뭐냐면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시면서 이 하나님의 주권을 예레미야에게도 말씀하시고 바울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질문을 향해서 첫 번째 예레미야18장1절에서10절에 그리고 바울에게는 로마서9장21절에서23절에 나중에 바울에게 디모데후서2장20절21절에 무슨 주권을 말씀하느냐면 예레미야야 바울아 토기장이 알지 그러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토기장이가 흙을 가지고 귀히 쓰는 그릇도 만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천하게 쓰는 그릇도 만들고 자비의 그릇도 만들고 진노의 그릇도 만든단다. 그리고 계속해서 디모데후서2장20절21절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뭐냐면 토기장이가 또는 하나님이 금 그릇도 만들고 은그릇도 만들고 나무그릇도 만들고 진흙그릇도 만들고 귀한 그릇도 만들고 천한 그릇도 만든단다. 
그러니까 피조물이 왜 이런 걸 가지고 나한데 덤비느냐 이런 디자인에 의해서 광야의 기독교인들이 천국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이런 모든 디자인 속에서 사탄의 성품들을 다 가지고 천국으로 올라갔습니다.
지금부터 결론의 말씀인데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천국에 올라가서 이분들이 보니까 숫자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끼리도 세 단계의 그룹이 있는 것을 스스로가 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저쪽에 보니까 정말 믿음생활 잘 했던 분들이 저쪽 동네에 있는데 숫자는 우리처럼 많지가 않는 겁니다. 자기네들처럼 이런 걸 올라가서 쫘악 본 겁니다. 이분들이 볼 때 자기네들이 부끄러운 겁니다. 못된 행동을 다하면서 애굽 사람들처럼 살다가 왔구나. 삼위하나님의 십계명 돌 판에 있는 말씀 하나도 순종하지 않고 왔구나.
그리고 애굽을 더 좋아하다가 왔구나. 천국에 온다는 소원도 없었는데 눈감다보니까 여기 와 있구나. 그런데 여기가 엄청난 곳이구나. 이러면서 놀래는 겁니다. 이분들이 그러면서 후회하는 겁니다. 우리가 제대로 살다가 왔으면 저분들처럼 될 텐데 하면서 후회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구나. 그러다가 여기에 왔구나. 우리가 애굽 사람들처럼 살다가 여기에 왔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도 없다가 여기에 왔구나. 우리는 믿음이 없어서 순종도 못하다가 여기에 왔구나.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지도 못했는데 여기에 왔구나. 우리가 창조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러다가 여기에 왔구나. 그러면서 예수님 죄송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곳으로 데리고 오셨습니까. 이렇게 이분들이 질문 할 것으로 성령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그분들이 그러면서 예수님 우리가 당연히 낮은 계층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가 예수님 앞에 그럴 것으로 저는 느낍니다. 예수님 저희들은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저분들과 우리는 비교가 안 됩니다 스스로 밑으로 내려오실 것 같습니다.
훌륭한 저분들을 우리가 잘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중요한 겁니다. 이분들이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 늦었지만 지금부터 우리가 여기서 창조목적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저분들처럼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게요. 지금부터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최선을 다할게요. 도와주세요. 하고 이분들이 저분들보다도 도 앞장서서 더 예수님 앞에 더 잘할게요. 하면서 하실 것 같습니다
저분들은 좋은 자리에 갔으니까 이제는 그냥 당연히 받았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이분들은 오 마이 갓 어떻게 이 은혜를 갚을까요. 우리가 바보처럼 행동했었는데 그러시면서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주시는 게 로마서5장20절인 겁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다시 말하면 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는 겁니다. 이분들이 저쪽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엄청나게 더 받을 행동을 그때 가서 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계시록5장에 보면 만만천천이 예수님 앞에 구원의 감사에 찬송을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만만이 제가 볼 때는 대부분이 이 그룹들 같습니다.
이 그룹들이 숫자가 엄청나게 많으니까 이 그룹들이 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예수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럴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찬송을 부를 텐데 오늘 우리가 아까 부른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니 이 찬송을 부르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분들이 옛날에는 이곳에 있을 때는 그냥 멜로디가 좋아서 부른 겁니다. 별로 감각 없이 그냥 구원에 대한 감사 없이 그냥 익숙한 멜로디니까 어떨 때는 내 감성을 조금 건드리니까 이렇게 불렸는데 이제 저 위에 올라가서 이 찬송을 부를 때는 기가 막힌 감동을 가지고서 예수님이 들으시기에 합당하게 부르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번 재현해 보겠습니다.  찬송가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부르겠습니다. 
(1)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
    내게 자유 주시려고 주가 고난 당했네
<후렴>
    크신 사랑 찬양하리 나의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 죽임당한 나의 주 찬양하리 예전에는 서먹서먹하게 그냥 불렸는데 저 위에 올라가서 이분들이 이 찬송을 엄청나게 감격스럽게 부를 것이 우리 눈에 쫘악 보이는 겁니다.  저분들은 팔 장끼고 구경할 것 같습니다
(2) 내가 구원 받은 증거 기뻐 전파하리라
    내 죄 모두 담당하신 주의 사랑 크셔라
<후렴>
    크신 사랑 찬양하리 나의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 죽임당한 나의 주 찬양하리 이분들이 거기에서 이 찬송을 부르면서 주님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가 정말 빚진 자들이네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이 과분한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저분들은 당연히 존귀함을 받아야 됩니다. 라고 계속해서 하시면서 저 분들 존귀하게 대접받고 우리가 저분들을 잘 섬기겠습니다. 우리가 저 형님들 잘 섬기겠습니다. 그러실 것이 제 눈에 보이고 제 귀에 들립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또 형님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정말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여기에 와보니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분들이 이 찬송을 하면서 또 찬송을 하나 할 것 같습니다. 그 찬송이 뭐냐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송을 이분들이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광야의 기독교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랑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사랑해주되 그 안에 영적유아 기독교인들을 그 다음단계로 올려주는 일 어린이로 영적 어린이기독교인들을 영적사춘기로 올려주고 사춘기 기독교인들 중에서 이쪽으로 형님그룹으로 올라오도록 도와주는 일을 우리가 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 그래서 형님그룹에 들어오도록 도와주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많은 분들에게 제자훈련을 시키잖아요. 이분들이 분명히 올라가서 그럴 겁니다. 아하! 형님 고마웠습니다.
내가 아직도 이쪽 동네에 있지만 나를 위해서 이렇게 수고 많이 하셨는데 고마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하면서 분명히 말씀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지금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이 감동 있는 찬송을 분명히 부를 겁니다.
우리 한번 그들이 하는 그 모습에 동참해가지고 한번 이 찬송을 불려 봅시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속죄하신 구세주 찬송을 다시 한 번 부르겠습니다. 이분들의 장면을 생각하시면서 (1)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
           내게 자유 주시려고 주가 고난 당했네
      <후렴>
          크신 사랑 찬양하리 나의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 죽임당한 나의 주 찬양하리

      (2) 내가 구원 받은 증거 기뻐 전파하리라
          내 죄 모두 담당하신 주의 사랑 크셔라
     <후렴>
          크신 사랑 찬양하리 나의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 죽임당한 나의 주 찬양하리
이분들이 이 세상에 있을 때는 근성으로 이 찬송을 불렸는데 이제는 진짜로 부르는 장면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1)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
          내게 자유 주시려고 주가 고난 당했네
      <후렴>
          크신 사랑 찬양하리 나의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 죽임당한 나의 주 찬양하리
우리의 가족들 중 우리의 친척들 중 우리 사랑하는 친구들 중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근성으로, 근성으로 지금 신앙 생활하지만 언젠가는 저 위에 올라가서 이 찬송을 부를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해주세요, 사랑해주세요 우리 때문에 저분들이 저렇게 광야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깨달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1)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
         내게 자유 주시려고 주가 고난 당했네
     <후렴>
         크신 사랑 찬양하리 나의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 죽임당한 나의 주 찬양하리
     
     (2) 내가 구원 받은 증거 기뻐 전파하리라
         내 죄 모두 담당하신 주의 사랑 크셔라
    <후렴>
         크신 사랑 찬양하리 나의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 죽임당한 나의 주 찬양하리
  
     (3) 승리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
         죄와 죽음 지옥 권세 주가 모두 이겼네
     <후렴>
        크신 사랑 찬양하리 나의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 죽임 당한 나의 주 찬양하리

    (4) 고마우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를 인도하셨네
       
    <후렴> 
       크신 사랑 찬양하리 나의 죄 사하려고
       십자가에 죽임 당한 나의 주 찬양하리 


※ 왜 애굽화된 광야의 크리스천들을 디자인하셨나? (롬5:20)
1. 지난시간 설교 왜 400년 노예의 삶과 40년 광야의 삶을 디자인 하셨나?를 다시 간략히 복습해 봅시다.
2. 왜 애굽에서 출생한 광야의 이스라엘인들을 가나안에 들어가 못하게 하셨습니까? (수5:4-6)
3. 신명기31장13절에 기록된 말씀의 의미를 나누어 봅시다.
4. 광야의 이스라엘인들의 문화적 특색과 종교적 특색을 이야기해보고, 그 속에 숨겨진 영적 가르침에 대해 논의해 봅시다.
5. 광야의 이스라엘인들의 성품적 특색을 나누어 봅시다.
6. 이 들의 성품적 특색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도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7. 이것을 히브리서12:14-15에서 무엇이라 부릅니까? 이것 때문에 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8. 이것 때문에 이들의 삶의 질이 어떠했습니까? 우리의 삶의 질은 어떻습니까?
9. 왜 구원시킨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 즉시 선화시키시지 않으셨습니까?
10. 왜 광야의 크리스천들을 완전 성화시키시지 않은 패로 낙원으로 데리고 가셨습니까?(롬5장20절)
11. 우리는 주변의 광야의 크리스천을 향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M9mB0WagqV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