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힘 시리즈

15강. 로마서7장22절-24절, 왜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고백해야 하는가?

변명섭 2021. 4. 12. 10:49

15강. “왜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고백해야 하는가? (롬7:22-24)       2021년4월11일 말씀
우리가 지난시간에는 쓴 뿌리가 어디서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가? 
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쓴 뿌리가 어떻게 생기게 되면 또 어디서부터 오며 또 어디에 자리 잡으며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는가? 왜 우리가 쓴 뿌리를 제가해야만 하는가? 이런 공부를 하면서 그러기위해서는 사람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공부했습니다. 사람에 속에 있는 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를 그려가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영과 마음속에 쓴 뿌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쓴 뿌리가 어디서 발생되었나. 그 기원이 뭘까 그러면 애굽이다 이 세상이다 이렇게 말씀드렸고 으뜸 데는 쓴 뿌리는 뭘까 그러면 질투심이다 이걸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이 질투심 때문에 약20가지의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성품들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우리가 공부했고 20가지의 파괴적인 성품이 10가지의 삶의 질을 파괴시키는 열매까지도 맺게 된다는 것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이 쓴 뿌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느냐 라고 할 때 가정환경이나 또는 주변 환경, 교육환경 기타 등등 이런 환경이 우리를 이런 쓴 뿌리로 만드는 일에 기여해왔다는 것도 우리가 공부했고 그런데 이런 쓴 뿌리를 가진 분이 구원을 받을 때 쓴 뿌리를 지닌 체 로 구원받는다는 것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떤 사람들이 받는가? 
아!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예정 적으로 예정된 사람이 때가 되어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 그러면 중요한 개념으로 하나님의 성령님이 내 속에 있는 내 영과 연합되었을 때 구원받는다는 것까지도 공부했습니다.
제가 지금 복습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걸 정리하셔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복습하는 겁니다. 한번 들어가지고 안 됩니다 
주변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논리적으로 내 입에서 나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적고 공부하셔야 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을 우리가 지난시간에 성서를 섭력하면서 속사람이라는 단어를 바울이 썼습니다.
로마서7장22절 에베소서3장16절에 이 두 구절은 항상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다음에 성서에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새 피조물이다 그랬습니다. 고린도후서5장17절에 또는 바울이 어떻게 불렸냐면 천국시민이다 그랬습니다. 에베소서2장19절과 빌립보서3장20절에 그리고는 바울과 요한이 하나님의 자녀다 요한복음1장12절에 바울은 에베소서2장8절9절에 바울은 또 에베소서2장19절에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단어도 썼습니다. 
지금부터 오늘 설교를 이어서 합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가르칠 때 지난시간에 한 것을 저처럼 꼭 복습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가르치세요. 아멘.
항상 학생입장에서 가르쳐야 됩니다. 나만 안다고 해서 내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저처럼 반복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질문을 던져보는 겁니다. 그러면 내 마음과 영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사탄의 영이 쫓겨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셔서 사탄의 영을 쫓아내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겁니다 그러면 그다음 중요한 개념이 왜 사탄의 영이 쫓김을 당했을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하실 겁니까? 그러면 성경에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요한일서4장4절에 요한이 성령님에 의해서 받은 메시지가 뭐냐면 내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세상영보다 다시 말하면 쓴 뿌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탄의 영보다 더 크시니라 그랬습니다. 원어를 보면 이게 비교급으로 되어 있습니다. 크다는 헬라 말로 메가쓰 우리가 메가톤급이다 그럽니다. 
메가쓰가 크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걸 비교급으로 쓸 때는 같은 단어지만 메이존으로 영어로 그레이트(great)라 그럽니다. 그래서 원어에는 메이존이라 써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사탄의 영보다 훨씬 크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메이존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까 그냥 그레이트(great)가 아니고 위대하시다는 뜻도 그기에 있습니다. 또는 아주 웅대하시다 또는 높으시다 또는 힘이 세다 또는 광대하다 이런 뜻이 그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대한신 파워풀(powerful)한 그레이트(great)한 성령님이 사탄을 쫓아낸 겁니다. 그래서 지금 성령님이 홀로 내영과 마음에 계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뭐라고 불렸습니까?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영과 마음에는 하나님의 영이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랬습니다. 고린도전서3장16절과 6장19절에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실 때 이 단어를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령님이 강하신 파워를 가지고 웅대하신 파워를 가지고 악령을 쫓아내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전이 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뭐냐면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성품 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모습으로 되어 있지 않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도 옛 모습 애굽 모습 그대로인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쓴 뿌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딜레마인 겁니다. 이것을 목사님은 어떻게 아세요. 그러면 출애굽이스라엘역사를 보면서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거울로 예표로 가르쳐주는 겁니다. 애굽에 나와서 구원받아서 광야에 들어갔지만 애굽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계셨던 이스라엘사람들을 보면 그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을 바울도 고린도전서10장에 보면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준 예표다 그림자다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제가 집중할 내용이 뭐냐면 구원과 성결과는 구별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그럽니다.
구원과 성결은 다른 차원인 것을 우리가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역사 속에서 봐도 알지만 그냥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로 우리의 선행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자의적인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그냥 일방적으로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시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하나님이 일방적인 은혜 베푸심입니다.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냐면 이스라엘역사 속에서 보면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 어린양의 보혈로 출애굽기12장5절입니다. 이것을 신약의 관념으로 보면 흠 없는 어린양예수님의 보혈로 베드로전서1장19절에 또는 바울은 유월절 어린양의 보혈로 고린도전서5장7절에 또는 요한은 계시록5장6절에 도살당하신 어린양보혈로 그랬습니다. 그러면 구원과 성결의 상관관계성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을 받자 말자 즉시로 쓴 뿌리가 제거되지 않았음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무엇을 깨닫게 되느냐면 애굽화 된 광야의 기독교교인들은 쓴 뿌리들을 다시 말하면 애굽 라이프스타일을 그의 제거 받지 않으면서 광야에서 살다가 낙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외가 여호수아와 갈렙은 특별히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조금 더 자세히 나중에 보겠지만 구원은 단번에 이루진 것인데 성결은 평생과제임을 우리가 배우게 됩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성경은 평생과제입니다
그런데 광야의 기독교인들(NO1,2,3) 가나안기독교인들(NO4,5,6) 이렇게 두 그룹으로 대별이 됩니다. 그런데 광야의 크리스천들은 성화를 그의 안하면서 이 세상에 살다가 그냥 낙원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이 그룹이 훨씬 숫자가 많다는 것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으로 향하는 기독교인들은 성화에 참여하는 그룹들인데 이 성화도 당장 되는 게 아니고 평생과제로 천천히 발전적으로 성화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성화이슈는 상당히 중요하면서도 우리가 깨달아야 될 이슈기 때문에 오늘은 이 부분을 조금 다루려고 그럽니다. 
다음시간에는 제가 더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그러면 성화란 무엇인가? 다른말로 표현하면 쓴 뿌리를 완전히100% 제거해서 하늘나라에 가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다들 쓴 뿌리를 어느 정도는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성화란 무엇인가? 그러면 쓴 뿌리를 제거하는 거다 
다시 말하면 내 속에 있는 사탄의 성품들을 제거하는 것이 성화다 그런데 이것은 단 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서서히 발전적으로 된다. 
그런데 이것도 은혜를 입어야지만 가능하다 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은혜가 따라와야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성화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빌립보서2장5절에 바울이 말씀하신 게 저는 항상 제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 닮기입니다. 
이게 성화입니다 그런데 우리가100%예수님을 닮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닮아라. 하시면서 빌립보서2장5절부터 주욱 11절까지 바울이 가르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 하느냐면 제가 깨달은 것은 에베소서2장8절9절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겁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로마서9장23절에서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예정과 선택을 인정함이 필요합니다.
로마서8장29절에서30절에 네 번째로 따라오는 게 뭐냐면 이런 사람에게는 성령님의 가르쳐주심과 인도하심과 이끄심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4장1절에 100% 사람이 되신 예수님도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았습니다. 다섯 번째로 베드로전서1장2절에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다섯 가지가 우리가 순서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닮기 위한 다섯 가지의 필요한 이것이 우리에게 즉시로 임하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평생과제로 우리가 얼마만큼 이 다섯 가지를 닮느냐에 따라서 내가 수용하느냐에 따라서 이 다섯 가지가 임하면서 쓴 뿌리들을 이렇게 제거시켜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평생과제로 어떤 분은 빠른 속도로 바울 같은 분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 은혜가 임했습니다.
어떤 분은 조금 임하다가 말아버리다가 주님나라에 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분은 늦은 속도지만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기 직전에는 아주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서 가시는 분도 계시고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제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런 시스템을 알아야지만 내 자신을 내가 매일점검하며 그리고 주변에 주 안에 우리형제자매들을 내가 점검할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성화단계 중에서 어느 수준에 와 있구나. 저 사람은 아직 성화단계에 들어있지 않구나. 저 사람은 겉으로 보기는 집사고 장로고 권사고 선교사고 목사지고 신학자지만 아직도 광야에 머물려있는 사람이구나. 
아니구나. 이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적통찰력과 분별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 시스템을 알아야지만 그래서 우리가 이런 공부를 하는 겁니다. 
나를 위해서 주변을 위해서 그다음에 내가 깨달은 것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그분들이 또 이런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도록 도와주기위해서입니다 그냥 우리가 지식을 쌓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이것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화라는 것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다시 말하면 애굽 스타일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옷을 입는 겁니다. 에베소서4장22절에 바울이 쓰는 용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화를 어떻게 말씀하였냐면 공생애를 시작하자말자 첫 설교로 성화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마태복음5장1절에서11절에 산상수훈에서 팔복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 있는 자는 복 있는 자는 그러는 겁니다.
복이 있다는 것은 성화의 삶을 사는 자는 이런 말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팔복을 예수님께서는 상당히 강조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도 성화과정 속에서 팔복공부를 다시 한 번 조명하려고 그럽니다. 그런데 광야에 크리스천들은 특성 중에 하나가 뭐냐면 팔복 같은 메시지를 들으면 부담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면 아하! 이분은 팔복수준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 분이구나 이렇게 우리가 짐작을 해보는 겁니다.
비평하는 게 아니고 왜냐면 부담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면서 광야크리스천들은 팔복 같은 것을 그냥 하나의 세상 적, 이성적, 감성 적 수준으로 그냥 받아주기만 하지 이 속에 들어있는 영적신비는 깨닫지를 못하는 겁니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나 심지어는 타종교사람들도 팔복 말씀을 가지고 별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철학자들은 이 신비를 모르면서 세상 적 논리와 이론과 이성적이해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광야기독교인들은 숫자가 많기 때문에 팔복 같은 이야기를 많이 인용을 하지만 그것을 영적수준에서 소화를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걸 가지고 설교하는 걸 들어보면 아하! 이분이 어느 수준이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분별할 수 있는 영적수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에 있는 광야 식으로 사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팔복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어떤 특색들이 있느냐면 첫 번째 특색이 자기 속에 있는 쓴 뿌리들과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들을 은근히 즐겨하면서 함께 삽니다. 두 번째로 속으로는 싫어하면서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미워한다는 말은 애통한다는 겁니다.
내속에 왜 이런 더러운 쓴 뿌리들이 있지 그러면서 애통하면서 증오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겁니다. 이게 특색입니다 
세 번째로 어떤 특색이 있느냐면 이런 쓴 뿌리들을 가지고 자신의 유익을 챙기는 일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면서 자기의 유익을 챙기는 일을 합니다. 네 번째로 이런 쓴 뿌리를 가지고 영의 눈이 어두워지니까 소위 기독교인들이지만 이런 걸 가지고 다른 사람의 티눈을 보고 자기의 들보는 보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남 비평을 잘하면서 자기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비평하는 상대방은 티눈밖에 없어서 훨씬 자기보다 성결한데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또 어떤 특색들 가지고 있느냐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쓴 뿌리인 사탄의 성품들을 제거해야 되는 필요성과 의욕이나 동기부여나 이런 것을 가지지 못하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자기 자신이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을 없애야 되겠다는 간절함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고 착각을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분들은 자기 속에 있는 쓴 뿌리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냥 같이 놀아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같은 광야기독교인데 단계가 영적유아단계, 영적어린아이단계, 영적사춘기단계가 있는데 영적유아레벨에서는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자기 쓴 뿌리를 모르는 겁니다. 
그다음에 영적어린아이단계도 잘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사춘기가 된 사람 중에서 다는 아니지만 일부는 아하! 내가 나쁜 성품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약간 아는 사람도 사춘기 중에 일부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보느냐면 아하! 이 사람들은 그다음에 레벨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라고 우리가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애굽에서 태어났지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은혜 받은 사람들이구나. 내가 볼 때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주후35년에 영접하고는 로마서를 쓴 게 57년입니다 이 말이 뭐냐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바울은 22년 동안 이분도 어느 수준의 영적유아단계를 경험하시고 어느 수준의 영적어린아이단계를 경험하시고 그리고 영적사춘기단계도 경험을 다 하시면서 22년을 보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단계를 졸업하는 것이 상당히 빨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로마서를 쓰실 때 로마서1장부터7장까지는 기독교의 핵심교리로써 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이 그 안에 다 담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중에 성서가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특히1장부터7장입니다 바울이 쓴 다른 성서는 종합적으로 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을 정리한 성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개종22년 후 로마서를 쓰시면서 이것을 성령님이 바울에게 정리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1장부터7장까지 정리시켜주시면서 이분이 7장 마지막에 엄청난 고백을 성령님이 바울에게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7장 마지막에 바울이 말씀하신 게 7장22절에서24절입니다. 내 속(영과 마음)에 두 가지의 법이 공존하고 있어서 갈등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으로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이 이 안에 있고 성령님이 가르쳐주시는 성령의 아홉 가지열매인 예수님의 성품이 내 마음에 있는데 육신으로는 죄의 법이 또 그 안(내 마음)에 있다는 겁니다. 이게 뭐냐면 내 마음에 쓴 뿌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서로 갈등을 가지면서 공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유명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로마서7장24절에서 하셨습니다. 
이 말은 뭐냐면 제가 볼 때는 이분은 은혜 받은 자로써 영적사춘기단계를 졸업하는 과정인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갈등을 가지면서 이제 로마서8장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8장은 여기서 자유를 얻는 그런 이야기가 그 유명한 로마서8장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 갈등을 내가 경험했다고 로마 교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말씀이 2천년 기독교크리스천들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이 경험을 하셨다는 겁니다.
이 갈등! 그러면서 이분이 여기서 고민하는 오호라! 이 고민이 예수님께서 팔복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 고민이 뭐냐면 복 있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자다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똑같이 바울이 고백하는 이것이 심령이(내 영이)가난한 자가 복 있는 자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이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저세상 ↴이 세상↱저세상을 한 눈에 보는 그러한 영성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이 창조목적학교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이 저희 것이다 그러면서 당장 가지는 게 아니고 이때부터 순서적으로 애통하게 된다는 겁니다. 오호라! 가 애통인 겁니다. 아하! 내 속에 두 법이 있구나.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것을 가지고 애통하면서 사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바울이 자기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애통을 할 때 하나님의 위로가 너희들에게 임할 거라는 겁니다. 
위로 자가 보혜사성령님입니다 애통할 때 보혜사성령님이 너희들에게 임할 텐데 그러면 이 쓴 뿌리들을 흔들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 쓴 뿌리들이 이때부터 흔들림을 받는다는 겁니다. 애통할 때 그러니까 오호라! 할 때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오호라!를 매일매일 하는 사람이 되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인 겁니다. 이 사람은 복된 사람인 겁니다. 은혜 받은 사람인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하! 내 속에 항상 두 법이 존재하구나. 그래서 오호라!를 바울처럼 경험하니까 바울이 이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바울을 로마서8장의 사람으로 진급을 시킨 겁니다. 
우리가 로마서8장 공부를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자세히 하게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호라!를 하는 사람은 사탄의 쓴 뿌리도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의 성품들도 그러니까 이 쓴 뿌리들이 감정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오호라! 할 때 쓴 뿌리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겁니다. 쓴 뿌리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쓴 뿌리들이 나갈 준비를 하는 겁니다. 
오호라! 할 때 바울이 이것을 경험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매일매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감동주심에 따라서 오호라! 오호라! 이 고백을 매일매일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때 나도 모르게 쓴 뿌리들이 슬슬 슬 나가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예수님의 재림의 산고(産苦)가 우리주변에 엄청나게 벌여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교계에서 복음의 산고 (産苦)들이 있고 지금 반정주시위하는 분들도 있고 여러 가지 산고(産苦)속에서 오호라! 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보는 시각이 뚜렷하고 세계관이 뚜렷하고 왜냐면 쓴 뿌리가 없어지면 영의 눈이 밝아지면서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밝아지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복음을 열심히 내 민족과 타민족에게 전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산고(産苦)들을 보고 흥분해가지고 우리는 이러면 안 된다 이래야 된다. 지금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떠들잖아요. 이것에 매몰되지 않는 겁니다. 왜냐면 산고(産苦)는 당연히 있어야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잖아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당연히 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예수님이 감람산 설교에서 그렇기 때문에 산고(産苦)는 당연히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저는 완전히 믿는 사람입니다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있어야만 된다고 그래서 이것을 없애려고 떠드는 게 아닙니다.
없앤다고 없어집니까? 안 없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오호라!를 경험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이 안에 잡것들이 많이 있다 보면 눈이 어두워져가지고 산고(産苦)들을 산고자체만 보고는 없애려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람들 그래가지고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거기에 집중하도록 그런데 주님께서 그걸 다 허락하신 겁니다. 왜냐면 산고가 있다는 것을 노출시키는 일을 하는 분들이 이분들입니다. 노출정도 하는 분들이지 노출시켰다 그래서 없애는 일은 그분들이 할 수도 없고 주님께서 없애지도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회를 변화시키자 악을 없애자고 하는 일들은 주님께서 허락하셔가지고 이분들이 하십니다. 여기에 매몰되어서 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주님께서 허락 하에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노출시키는 일도 해야 되지만 그것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메시지를 예수님의 재림의 메시지를 내 민족과 주변과 타민족에게 직접간접으로 나누는 일에 동참하는데 집중하는 사람들 마태복음24장14절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감람산설교에서 하셨잖아요. 이럴 때 예수님이 이런 산고(産苦)가 있을 때 밭을 봐라 농사짓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들림(휴거)받잖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이럴 때가 온단다. 이런 산고(産苦)가 어느 정도 끝날 때 여자가 맷돌을 갈다가 하나는 그대로 있고 하나는 들림 받는 단다. 
그러면서 때를 따라서 열심히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산고(産苦)에 매물 되지 말고 그래서 우리교회성도들은 산고(産苦)에 매물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셀 모임에서도 이런 산고가지고 열을 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교 지를 향해서 열심히 물질도 바치고 기도도 하고 정성을 바치고 하는 일을 우리가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오늘 찬송을 부를 텐데 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는 겁니다.
내 영혼이라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영과 혼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과 깊은 영입니다 여기서 맑은 가락소리를 듣게 되는 겁니다. 하늘곡조가 언제나 흘려 나와서 내 영혼을 고이 싸는 겁니다. 이 세상에 산고들을 보면서 성령님의 위로하심으로 평화, 평화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평화 이 사랑의 물결이 내 영혼을 덮으소서. 이런 산고 속에서 저는 예수님만 바라보면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내 마음이 잔잔한 겁니다. 그래서 잔잔한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잔잔한 사람이 이 시대에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인 겁니다. 그냥 앉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지혜 자와 복 있는 자가 되시기를 우리가 다음시간에는 더 구체적으로 이 부분을 다룰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지금 내 영혼에 그윽히 깊은데서 라는 찬양을 부르려고 합니다. 성령님이시여 우리 속에 깊이 이 찬양의 소리가 우리 영 깊이 들어와서 우리의 영을 맑게 만드시고 하늘곡조가 나의 영을 깨끗하게 만드시고 쓴 뿌리들을 조금씩, 조금씩 제거시켜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하며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성령님이 강하게 임하시기를 성령님이시여 우리 모두에게 성령님의 강한 임하심이 우리 깊은 영까지 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느끼면서 그러면 내 속에 있는 쓴 뿌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 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내려오는 성령을 받으세요)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2.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 자 그 아무도 없으리라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성령님이 내속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세요.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감사만 하면 쓴 뿌리들이 흔들립니다. 항상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해라 그랬습니다. 
어떤 상황에 있던지 감사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쓴 뿌리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성령님 계속해서 임해주십시오. 우리 입술에 감사가 넘치게 하시옵소서. 자족하는 영을 부어주십시오. 환경을 보지 않게 해주십시오. 

3.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남은 주의 큰 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 내 영혼이 편히 쉬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이렇게 하면 나도 모르게 나의성품이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변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4.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이 평화를 가진 사람은 입만 열면 감사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가 나오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평화를 누림이 입을 열면 감사만 나오는 복된 자들 되도록 불평과 불안과 걱정은 싹 없으지고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감사가 넘쳐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범사에 감사하는 지혜 자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뜻임을 깨닫는 그러한 한분, 한분 되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왜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를 고백해야 하는가?"(롬7:22-24)
1. 지난주 설교내용을 요약해서 리뷰해 봅시다.
2. 왜 바울이 크리스천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고전3:16, 6:19)이라 했습니까?
3. 요일 4:4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구원과 성결은 어떻게 다르며 구별됩니까?
5. 구원의 요건은 무엇입니까?
6. 구원과 성결의 상관관계와 필수요건은 무엇입니까?
7. 성결이란 무엇입니까?
8. 성서에서 가르치는 성결로 이르는 대표적 과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9. 두 단계의 성숙과정이 무엇입니까? 광야 크리스천 단계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10. 왜 광야 크리스천들에게 있는 쓴 뿌리들이 잘 뽑혀지지 않습니까?
11. 왜 바울이 롬 7:24의 고백을 기록했습니까?(롬 7:22-24)
12. 왜 광야 크리스천이 대다수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롬 5:20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왜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를 고백해야 하는가?"(롬7:22-24)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qDn-T38eN5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