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3장 강해

로마서12장19절-21절, 예수님의 신부 세계관자

변명섭 2021. 2. 5. 18:11

요한계시록강해 57강, 예수님의 신부 세계관자 (롬12:19-21)

지난시간에 제가 깨어있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직전 이 시대에 깨어있는 자들은 들림을 받고 혼인잔치에 참여를 하는 자들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이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가 라는 말씀을 드리는 가운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조건들이 들림을 받아서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가?

그러면서 말씀을 드린 게 뭐냐면 이 세상에서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는4가지 산고들을 보는 특별한 시각을 가진 자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 4가지 산고들이 일어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산고가 무엇입니까, 자연 현상적 산고입니다 지진. 기근. 전염병 이런 모든 자연 현상적 산고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지난시간에 이야기했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 군사적 산고들입니다 이게 뭐냐면 여기저기서 민족과 민족이 전쟁이 일어나고 서로미워하고 정치도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하는 이런 때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세 번째 산고는 사회적. 문화적. 가정적 산고라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다 이기주의가 되고 사랑이 없고 가정이 파탄되고 불의가 심하고 불법이 심하고 부패하고 법이 있어도 법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하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전 세계가 지금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혼율도 높고

네 번째 산고가 종교적 복음적 선교 적 산고라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예를 들면 종교다원주의가 일어날 것이고 그러니까 모든 종교는 다 같다는 그래서 예수님도 그리스도 중에 한 분이시다 불교의 부처도 그리스도고 유교의 공자도 그리스도시고 마호메트도 그리스도시고 예수님도 그리스도시고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인데 마태복음24장23절에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이럴 때가 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4가지 산고들이 일어날 때 이런 산고를 보는 시각이 사람마다 다른 겁니다,

세상 사람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 있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이 시각을 보고서 세상이 이렇구나,

또는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진보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이4가지시각을 어떻게 보느냐면 우리가 노력해서 이것을 변화시키자 라는 시각입니다 인간이 노력을 해서 이것을 변화시키자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을 조금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자는 시각이 예수 믿는 진보주의적인 사람들 또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산고에 대한 시각입니다 그런데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은 아하! 이 산고는 반듯이 있어야 되는 산고다 그리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이것은 막을 길이 없다고 보는 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자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면 복음주의사람들인데 이런 복음주의사람들 중에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아하!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구나? 이걸 보니까 깨어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깨어있는 사람들이 그래서 이분들은 어떻게 볼까요,

깨어있다는 것을 어떻게 우리가 설명했냐면 첫째는 시대의 분별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4가지의 산고들이 모든 인류에게 다 적용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자입니다 그 인류들을 뒤덮고 있고 이것을 인정하고 깨닫는 자들입니다 세 번째는 뭐냐면 소수만 깨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알려주는 산고라고 믿고 그래서 그 소수만 깨어있는 겁니다, 다수는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진보주의기독교인들도 이 산고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더 좋은 사회로 만들려고 그러니까 세계관이 다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번째로 복음주의적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핍박을 받게 되어 있는 겁니다,

미움을 받고 배척을 받고 왕따 당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 또는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는 이것만 믿고 있는 게 아니고 이제는 마지막 추수 일에 열심을 내는 자입니다 지난시간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시간에는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부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산고들을 보는 복음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산고들이 이렇게 있는데 이 산고들을 소수지만 복음주의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부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 모든 잡다한 문제들을 복음주의적으로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재림의 사인이구나,

그러니까 깨어있어야지 깨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 추수 일에 내가 참여해야지 여기 까지 가는 사람이 들림 받는 신부의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두 번째 신부의 자격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차원이 다릅니다,

어떤 차원이냐면 이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분석하는 시각입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고 있잖아요, 이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분석하는 겁니다,

보는 시각입니다 어떤 시각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내가 들림을 받겠구나, 못 받겠구나, 입니다,

이런 시각을 받는 자들은 소수입니다 들림 받는 시각을 가진 자들은 소수입니다 그러면 성서에서는 이 소수를 남은 자들이라 그러잖아요, 남은 자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은 뭐냐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시각을 가집니다,

다시 말하면 우상을 섬기지 않는 시각을 가지면서 우상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이 있고 우상을 섬기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있구나, 라는 분별력을 가지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런 시각을 가지는 자로 만드셔야 되는 겁니다, 만드는데 어떻게 만드느냐를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분석하는 시각입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자로 만드는데

첫 번째 조건이 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어떤 교육을 시키느냐면 성서에 보면 믿음의 시련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마태복음5장12절 야고보서1장2절 베드로전서1장8절에 이런 사람들이 다 시험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정체성에 대한 시험입니다 예수님의정체성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겁니다,

이 시험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어려움당하는 것을 믿음의 시련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교육목표가 무엇인가 왜 이런 식으로 교육을 시키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시각을 바꾸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주기 위해서 시련을 주는 겁니다,

시련을 주어가지고 눈의 각도를 바꾸도록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훈련을 시키는가,

이 게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시각을 바꾸도록 만들어 주는데 어떤 내용을 가지고 훈련을 시키느냐 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첫 번째로 은혜의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은혜의 분량이 다르다 같은 교회에 다니지만 같은 민족이지만 은혜의 분량이 각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시키는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세 번째는 은사의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래서 인정시키는 겁니다,

네 번째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쓴 뿌리를 다 가지고 있다 아픔이 있다는 겁니다,

쓴 뿌리를 다 가지고 있다 사탄의 성품들을 다 가지고 있다 이것을 인정시키는 겁니다,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지만 다섯 번째로 뭘 인정시키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는 인격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인정케 하는 겁니다, 이것이 교육의 내용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깨닫고 로마서12장3절에서6절에 기록했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깨닫고 로마 교인들에게 가르쳐준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교육을 시키면 어떤 열매들이 나타날까 이것도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로마서12장19절에서21절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 훈련을 시키면 어떤 열매들이 나타나느냐면 시각의 변화를 주는 열매들입니다 바울도 이것을 경험한 겁니다,

로마서12장19절에서21절에 보면 변화가 3가지로 나타나는 겁니다,

믿음의 시련을 교육받는 사람은 특히 들림 받기로 주님의 예정된 사람은 시각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 번째는 인간관계에서의 시각의 변화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인들과 관계에서의 시각의 변화입니다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시각의 변화가 있는데 어떤 시각의 변화가 있느냐면 내 중심 인간관계에서 타인 중심 인간관계로 변화는 겁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안아주고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주라는 겁니다,

절대로 비평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그 사람이 나에게 악을 끼쳤는데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는 겁니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 라는 겁니다, 인간관계의 변화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들림 받는 사람은 벌써 인간관계에서 변화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안아주고 남을 비평하거나 미워하거나 그러지 않고 조금 모자란 사람은 모자란 대로 안아주고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대로 안아주고 그냥 중간 정도인 사람은 있는 그대로 안아주고 우리가 그러니까 얼마나 편합니까,

우리가 같은 기독교인들인데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다양하기 때문에 내 수준은 내 기준으로해가지고 사람을 정죄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화가 나가지고 자기가 잠을 못잡니다,

두 번째의 변화가 들림 받는 사람은 성령님께서 어떻게 인도하느냐면 재물관의 변화를 물질이 내 것이 아니라는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주십니다, 물질에서 자유를 느낍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물질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자유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선교에 교회에 뭐가 있을 때 그냥 물질을 주님에게 바치는 겁니다,

누가 바쳐라 말을 안 해도 벌써 물질에서 자유를 얻는 겁니다, 그렇게 주님을 위해서 돈을 쓰다보면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고 재물관이 달라지는 겁니다, 대개 어떤 분들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는 되도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재물이 있을수록 안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첫 번째 변화가 무엇입니까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두 번째는 재물관의 변화입니다 들림 받는 사람은 다릅니다,

세 번째는 믿음관의 변화입니다,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로마서12장19절에서21절에 바울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변화냐면 원수 갚는 것을 자신이 하지 않고 예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원수 갚는 것을 나를 섭섭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이것을 내가 갚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이 아시잖아요,

예수님이 보셨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처리하신다는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이 들림 받는 사람입니다

로마서12장19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겨라 그랬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이 믿음입니다,

같은 크리스천들인데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소수인 겁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것은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지금 내 옆에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나와 동행하신다,

지금 이 사건을 예수님이 보고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같은 기독교인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들림 받는 사람은 로마서12장20절21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 숯불을 그 머리위에 쌓아 놓으리라는 이 믿음 세 가지의 변화 ①인간관계의 변화 ②재물의 변화

③믿음관의 변화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들림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로마서12장1절에 이런 사람의 삶의 모습이 영적예배를 드리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영적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런 삶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영적예배라고 그러면 그냥 성령 충만해서 할렐루야 아멘 이런 것도 영적예배 중에 하나지만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영적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그것은 시작입니다,

우리가 박수치고 할렐루야하고 기도하고 하는 모든 것은 이런 영적예배 자가 되기 위한 사람이 변화되기 위한 하나의 준비단계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배를 드렸는데 사람이 변화지 않으면 이것은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영적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그다음에 12장2절에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거라는 겁니다, 산 제물이라는 말은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겁니다,

이 말은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내 자존심을 죽여야 되고 내 모든 물질도 죽여야 되고 나의 모든 인격도 내가 죽여야 되는 아픔이 있습니다, 산제사입니다 산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들림 받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2절에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면 마음이 새롭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시각이 변한다는 겁니다, 주변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는 시각이 변하는 겁니다,

어떻게 변하느냐면 아하! 저 사람이 지금 저런 형태 저런 모습의 사람이구나,

저렇게 사람이 화도 잘 내고 거짓말도 하고 내가 볼 때 믿었는데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그럴 때 그 사람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면 아하! 하나님의 은혜의 분량이 나하고 다르구나, 이렇게 보는 겁니다,

아하! 저 사람이 믿음의 분량이 다르구나, 저 사람이 은사의 분량이 다르구나, 저 사람이 쓴 뿌리의 분량이 다르구나,

저 사람이 인격과 성품이 아직도 모금 모자라구나, 이렇게 보고는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겁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겁니다, 그게 들림 받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저 사람 왜 저래 나에게 거짓말 했어 저 사람 나를 속였어 저 사람 나에게 해를 끼쳤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 이러면서 같이 싸우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들림 못 받는 겁니다, 처음에 은혜의 분량이 다르구나,

믿음의 분량이 다르구나, 은사의 분량이 다르구나, 쓴 뿌리의 분량이 다르구나, 인격과 성품의 분량이 다르구나,

그래서 분량이라는 단어를 바울이 씁니다, 이렇게 하면 갑자기 세상을 보는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제가 목회를 이렇게 하면서 또 선교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이 말씀이 제가 깨달은 것들입니다

그러면서 말씀 속에서 이것을 확신을 받는 겁니다, 목회를 하면서 선교를 하면서 내 삶의 아주 중요한 시대를 40대50대60대70대 그러니까40년 가까이 목회를 하면서 별난 사람들을 다 접촉하고 만나서 사역도 같이 하고 교회생활도 같이 하면서 느끼는 겁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은혜의 분량이 다르고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은사의 분량이 다르고 쓴 뿌리의 분량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그러면서 그냥 안아주면 되겠구나, 이걸 고치려고 별 설교를 다해보고 별 카운슬링을 다 해보았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이게 설교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깨달았습니다, 선교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프리카부터 동남아 등지에 돌아다니면서 이 문제가 다 있으니까, 제가 선교지에 나가면 가르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목회를 해야 됩니다,

자기네들끼리 싸움하고는 속상한 이야기 나에게 하고 누구 욕을 하고 사역자들끼리 서로 싸움질하는데 어떤 때는 가슴이 철렁철렁하는 겁니다, 이놈이 이놈하고 싸우면 이사역이 깨어지는데 서로비난하고 제가 주안에서 거룩한 스트레스를 항상 달고 사는 겁니다, 그러면서 보면 이 안에서도 소수의 괜찮은 사람이 항상 있는 겁니다,

어느 민족이나 가면 그기에 이런 것을 다 안아주는 소화하는 이런 부분에 영적산제사를 드리는 아주 괜찮은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소수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부족하지만 이 선교사역을 지금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제가 섬기는 제자들에게 네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제 삶 속에서 보여주어야 되거든요,

이것은 보여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다 안아주는 그런 것을 보고는 이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겁니다, 그러면 저도 해놓고는 놀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모든 사람을 안아주는 어떤 측면에서 지도자가 안아주어야 됩니까,

내가 섬기는 나를 따르는 주님의 백성들이 은혜의 분량이 각자가 다른 사람이구나,

믿음의 분량이 다른 사람이구나, 또 은사의 분량이 다른 사람이구나, 또 쓴 뿌리들이 다 있구나,

성격과 성품이 다 다르구나, 지도자는 이렇게 다른 것을 그대로 안아주고 잘 조화를 시켜주는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이것을 잘 조화를 시켜주고 교통정리를 잘 하는 사람일수록 그릇이 커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지도자 가슴속에 들어와서 안기고 싶어 하는 겁니다, 지도자가 그렇지 않으면 그 지도자에게 가시가 있어가지고 가까이 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가시가 있으면 툭툭 쏘니까 그러니까 편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두 가지부분에서 시각의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4가지 부분의 산고를 보는 시각이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 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방법으로 보면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을 진보주의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안 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뭐냐면 우리가 노력을 해서 이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시각으로 보면 피곤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듯이 아픔이 오게 되어있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뭘 해야 됩니까, 아하!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구나,

나는 뭘 해야 하지 추수 일에 내가 전력을 다 해야지 이런 사람은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데 이런 걸 다 가지고도 한마디로 정리하면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남편 되는 예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런 두 가지의 시각을 가져도 자기만 사랑하고 이기주의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걸 우리가 반듯이 짚고 넘어가야 됩니다,

이게 수직계명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을 우상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도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앗수르 바벨론에 침략을 받은 겁니다,

훈련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첫째 되고 가장 큰 계명이 이 계명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만 사랑하는데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목사님 우상이란 게 무엇입니까

저는 절간에 가서 절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빌지도 않는데 우상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우상의 정의는 예수님 외에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예수님 보다 더 의지하고 또 더 좋아하고 더 믿고 그 결과로 내 마음에 평강을 가지면 내 마음에 만족을 누리면 행복을 누리면 즐거워하면 보람을 느끼는 행위 이것을 우상을 섬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척 어려운 가르침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우상이 우리 삶속에서 무엇이냐면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마음에 평강이 있고 행복하며 그다음에 권력입니다 명예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5장5절 골로새서3장5절에 욕심이라 그랬습니다, 이 욕심이라는 것은 탐욕입니다 탐욕이라는 것은 지금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더 달라고 자꾸 떼를 쓰는 겁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주님이 주신 것에 만족을 못하는 사람이것을 우상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바울신학은 그러니까 항상 더 달라고 떼를 쓰면서 새벽 기도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게 우상을 찾아다니는 겁니다,

더 달라고 그러니까 평강이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섬기지만 항상 얼굴에 인상을 쓰고 욕심이 꽉차있고 더 가지려고 모든 것을 더 가지려고 하는 심지어는 예수님이 이렇게 한 겁니다,

누가복음14장26절에 예수님의 제자는 우상을 섬기면 안 되잖아요,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특수계급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애들아 너 보모가 너희에게는 우상이다 너 자녀들이 우상이다 너 형제자매들이 우상이다 심지어는 너 자신까지도 우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가 나 외에 너 자신까지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게 엄청난 어려움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제일 먼저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을 예수님께만 의지하는 겁니다,

모든 일들은 예수님이 전적으로 할 수 있다고 믿고 그분에게 다 의지하는 겁니다, 보이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가 창조목적 창조목적이라고 많이 외치잖아요, 예수님께만 의지하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시면 된다, 내 자녀들도 예수님이 다 붙잡고 계십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저는 자녀들 걱정 안하는 겁니다, 손자손녀들 주님께 다 맡겨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그러니까 자녀들 걱정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겁니다,

믿음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를 보는 겁니다,

4가지의 산고들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시각으로 다 보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덜 사랑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다 내 노력으로 내 실력으로 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노력을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님이 노력하도록 인도하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성령님 이 문제를 성령님이 인도하십시오, 저는 못합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이 제일 예뻐하십니다, 주님 저는 못합니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주님이 하세요,

그렇게 해서 어떤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고맙습니다, 예수님이 하셨기 때문에 저는 못하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겁니다, 똑똑한 사라들은 생각만 바꾸면 엄청난 큰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사랑 안에서 그렇기 때문에 목사들이 예수님사랑 한다 하면서 잘못 이용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목회자세미나에서 항상 목사들에게 지도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을 이용해가지고 내 비전을 이루어달라고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몇 배로 성장시켜주세요 저는 세계선교에 꿈이 있습니다,

예수님 이걸 이루어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뭐라고 그럽니까,

너 꿈 이루려고 그러고 너가 더 유명한 목사가 되기 위해서 하는 거라는 주님이 그 속을 아는 겁니다,

어떻게 아느냐면 그분의 인격을 보면 아는 겁니다, 라이프스타일. 성품. 쓴 뿌리를 보면 딱 아는 겁니다,

우리들도 그런 분별력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목사님들에게는 쓰레기 같은 교인들을 많이 줍니다,

그래가지고 숫자는 엄청나게 많고 매주 헌금이 많이 들어오는 겁니다,

십일조 감사헌금 많이 들어오니까 교회를 짓고 버스가지고 교인들 데리고 오고 완전히 비즈니스처럼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게 복입니까 복이 아닙니까, 그게 복이 아닌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사역을 크게 하는 그게 저주의 사인인 겁니다,

우리나라가60년대70년대80년대 그때에 교회들이 커졌잖아요, 지금 큰 교회들의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그 지도자들이 몰락하는 그게 저주의 사인입니다 그러니까 많이 가지려고 그러지 마세요,

주시면 받고 열매가 무엇인지 모변 알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가 커졌다고 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고 유명해졌다고 해서도 아니고 이 사람이 겸손한가, 경쟁심이 있는가, 다툼이 있는가, 분리의 영이 있는가, 남을 정죄하는 영이 있는가, 남을 비판하는 영이 있는가,

또는 커지면 유명해지면 근심. 걱정. 자기고집. 불안. 스트레스 이런 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겁니다,

왜냐면 우상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것을 이렇게 깨닫고 주님 저는 수직적으로 커지지 않게 해주시고 수평적으로 주님 원하시면 넓혀주십시오, 그래서 우리교회는 이 수준이면 딱 맞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일꾼들을 주님을 잘 사랑하는 자들로 만들어서 주님이 도와주셔서 그러니까 저의 사명은 뭐냐면 목회자로써 여러분들을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잘 가이드해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에 이4가지 산고를 보는 시각을 가이드해주시고 또 하나님의 자녀들의 다양성을 가르쳐주시고 그 다양성 속에서 어떻게 이것을 잘 조화를 이루는가를 제가 보여주어야 되고 목회자로써 가르쳐주어야 될 의무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는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보여준 후에 여러분들도 나를 따라 오세요 그래놓고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마지막 추수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지막 추수에 가담할 수 있도록 제가 잘 가이드 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들림 받는 신부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신부가 되는데 전제조건이 하나가 있는 겁니다,

제가 깨달은 건데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가 따라와야 되는 겁니다, 이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은혜 받은 자에게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따라와야 되는 겁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이성과 논리와 경험을 내려놓고 자기의 아집과 고집을 내려놓고 겸손해지면서 나는 내 의지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백케 하는 겁니다, 저는 제 삶속에서 이것을 경험하면서 사랑하는 성도님들도 이런 사람들이 되도록 제가 본을 보여야 되고 또 가르쳐야 되고 또 격려해주어야 되고 발향을 제시해주어야 되고 이런 일을 해야 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신부의 혼인잔치에 기쁨으로 파티를 한번 합시다, 아멘,

 

※“예수님의 신부 세계관자”(계19:7-10)

1, “깨어있는 자”란 어떤 크리스천입니까?

2, “예수님의 신부 세계관자”의 특색은 무엇입니까?

3, “남은 자 신학”이란 무엇입니까?

4, 예수님신부 만들기 교육과목이 무엇입니까?

5, 예수님신부 만들기 교육내용이 무엇입니까?

6, 예수님신부 만들기 교육열매가 세 분야에서 나타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롬12:9-21)

7, 이 세 분야에서 변화 닫은 자를 바울이 어떤 자라고 불렀습니까?(롬12:1)

8, 어떻게 하면 이런 자가 될 수 있다고 바울이 말하였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