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 8강, 탄생소식 받은 첫 그룹 목동들 (눅2:8-20) 2016년5월1일 말씀
오늘은 누가복음강해 여덟 번째 말씀으로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받은 첫 번째 그룹들이 목동들이다 라는 이 사실을 우리가 같이 심도 있게 공부하려고 그럽니다, 오늘의 본문은 누가복음2장8절에서20절인데 이 본문말씀을 제가 설교하면서 나오기 때문에 읽지 않겠습니다, 지난시간에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 우리가 주욱 이야기했는데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에 쓰셨던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누구냐면 사가랴 엘리사벳 세례요한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 이런 분들은 예수님의 탄생 전에 쓰셨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지난시간에는 예수님이 탄생을 하셨는데 탄생하시고 그 후에 특별히 쓰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탄생을 하시고는 탄생소식을 접한 그룹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이 누구냐면 목자들입니다
목자들이 제일먼저 탄생소식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그룹이 누가복음에는 없는데 마태복음에 동방박사그룹들입니다 마태복음2장1절에서부터23절을 보면 동방박사그룹들입니다, 마태복음에만 동방박사이야기가 나옵니다,
세 번째 그룹은 개인으로 의롭고 경건했던 시므온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누가복음2장22절에서35절에 그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도 개인으로 그 유명한 여선지자 안나입니다,
누가복음2장36절에서39절입니다, 이렇게 네 그룹이 있는데 순서대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다음시간에도 계속해서 순서대로 말씀드리겠는데 누가는 마태복음을10년 전에 읽으면서 누가는 항상 답답한 게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알려주었던 그룹을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라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가 분명히 다른 분들도 계실 텐데 라고 성령님이 그에게 말씀하시니까 누가는 역사가로 성서집필가로 이분이 당시에 유대인크리스천들과 이방인크리스천들에게 더 자세한 예수님의 탄생과 관계되는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을 성령님이 누가에게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그 당시에 예수님의 탄생 때 살았던 분들을 인터뷰도 하시고 또 거기에 관련되는 문서도 조사해보고 또 구전으로 들은 분들과 인터뷰도 하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처음 알려준 분이 누구냐면 목자들이었다는 것을 누가가 알아낸 겁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오늘 본문에 목자들이 이렇게 소식을 받았다는 메시지를 쓰고 두 번째가 마태가 쓴 동방박사들이었다는 겁니다, 세 번째는 시므온 네 번째는 안나 엮다는 것을 누가가 보게 된 겁니다, 누가복음에 이분이 동방박사이야기 빼놓고 나머지 세분들의 이야기를 쫘악 쓰신 겁니다, 순서대로 쓰셨는데 오늘은 첫 번째 목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본문8절에 보면 그 지역에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과 같은 지역에 그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목자들이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는데 주의사자가 그러면 주의 사자가 누구겠습니까 가브리엘천사입니다 가브리엘천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가브리엘천사만 나타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영광이 가브리엘천사 주위를 비치니까 이분들이 이게 무엇인가 하면서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제일 기쁜 분들이 누구였냐면 유대인들입니다 왜냐면 초창기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부터시작해서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11절에 보면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겁니다, 구주라는 게 무엇입니까
구주라는 게 원어로 소테르(swthvr)라 그러는데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나타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누구냐면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겁니다,
이 말은 메시아라는 겁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 곧 주라 그랬습니다, 메시아시고 구세주시고 그리스도시고 메시아라는 말은 히브리말이고 그리스도는 헬라말로 똑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누구냐면 주라는 겁니다, 주는 헬라어로 꾸리오스(Kyrios)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Adonai)로 여호와를 지칭하는 겁니다, 구약에서 여호와가 누굽니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주님 그러면 꾸리오스(Kyrios)하면 이분이 구약에서 아도나이(Adonai)시고 야훼 여호와시구나 같은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애기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는데 그분이 너희들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분이 소테르(swthvr)고 그분이 그리스도고 그분이 메시아고 그분이 여호와라는 겁니다, 이 애기가 그렇기 때문에 12절에 너희들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게 될 거라는 겁니다,
우리지난시간에 왜 애기가 구유에 뉘어있느냐를 공부했습니다,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되리라
그러니까 구유에 뉘인 저 애기가 누구라는 것이 표적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러면 표적이 무엇입니까 구유에 뉘어있는 이 애기가 누구라는 겁니까,
이 애기가 그리스도고 이 애기가 메시아고 이 애기가 구약의 여호와다,
라는 표적이 구유에 뉘인 애기가 그 표적이라는 겁니다,
가브리엘천사의 가르침이 끝나자 말자 갑자기 큰 영화장면이 목자들 앞에 나타나는 겁니다, 목자들은 지금 이 세상1층천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목자들 앞에 비디오가 쪼악 나타나는 데 무슨 비디오냐면 수많은 천군들이라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큰 무리의 천사들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그랬습니다, 그 천사가 누굽니까 가브리엘천사입니다
가브리엘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 할 때 데오스(Theos)를 삼위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데오스(Theos)가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삼위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비디오 속에서 수많은 천사들과 가브리엘이 찬양을 하는데 누구를 찬양하느냐면 삼위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본 겁니다
그 찬양의 내용이14절에 유명한 우리가 성탄 때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랬습니다, 이 말이 기가 막힌 말입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을 찬양하는 겁니다, 우리는 쉽게 크리스마스 때 산타크로스노래와 같이 부릅니다, 그냥 부르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라틴말로 뭐라고 그러냐면 글로리아 앤 에센시스 데오(Gloria In Excelsis Deo)라 그럽니다, 다시 말하면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 말입니다
왜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겁니다,
구유에 뉘어있는 애기를 볼 때 그 속에 애기가 나타난 그 순간에 가브리엘천사가 이렇게 말이 끝나자 말자 비디오로 나타나는데 어떤 비디오냐면3층천에서 천사들이 춤을 추면서 지금1층천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3층천까지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삼위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장면이 화면으로 보이는 겁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이렇게 묵상하는 겁니다,
삼위하나님이 왜 이렇게 기뻐하실까 삼위하나님이 창세전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실 것을 예정했던 겁니다, 왜 예정하였냐면 장차 예정된 피조물들이 창조목적대로 살지 못할 것을 미리아시고 인간세계로 떨어뜨려가지고 이분들로 하여금 창조목적 훈련받은 그러한 계획을 짜시고 그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시켜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내려오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창조목적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창세전에 이미 다 계획하셔서 예수님을 보내기로 했는데 그래서 그 예수님이 지금 구유에 나타나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입장에서는 삼위하나님입장에서는 창세전에 우리가 계획해놓고 이제야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아기가 구유에 태어났구나, 그러니까 삼위하나님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기쁨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중에 평화로다 이 말은 땅에서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사탄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 두 가지 자녀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사건을 보고 기뻐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선택한 자녀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해서 보혈의 능력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새롭게 소생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뉘어있는 구유에 있는 애기를 보고 기쁨이 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들에게 뭐가 있느냐면 평화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수직적인 평화 하나님과 관계에서 수직적인 평화를 다시 맛보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수평적인 평화도 맛보게 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을 미리다보시고는 삼위하나님이 비디오로 목동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탄생사건은 엄청난 역사적사건입니다,
창세전에 예비하신 사건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큰 기쁨을 받는 순간인 겁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중보자로써 자녀들 간에 화평이 이루어지는 순간인 겁니다, 이 비디오장면을 보자마자 이 장면이 싹없어지는 순간에 천사들이 안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는 가브리엘천사도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자들끼리 그러는 겁니다, 15절에 보니까 우리가 베들레헴에 애기를 보러가자는 겁니다, 그래서16절에 열심히 달려가 보니까 마리아와 요셉이 구유에 누인 아기가 있는 것을 본 겁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요셉에게 자기네가 본 환상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주변사람들에게 우리가 왜 왔는지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놀랍게 여겼다 그랬습니다, 이게 상식 밖에 일로 생각된 겁니다, 이 애기가 어떻게 이런 분이냐 비이성적인 이야기거든요
믿지 못할 이야기니까 놀랍게 여겼다 그랬습니다,
어떻게 외지 사람들이 잠깐 인구조사하려 왔다가 구유에 아기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목수의 아들인 나사렛의 사람인 외지분이 왔는데 어떻게 그분들이 낳은 아기가 어떻게 그리스도시고 구원 주되시고 메시아 되시고 이분이 구약의 여호와 되시고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놀랍게 여겼는데 19절에 보면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는 마음에 깊이 새겼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깊이 생각하였다는 겁니다,
마리아는 소중이 여기면서 생각했다는 겁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마리와 요셉은 이미 이 아기가 누구라는 것을 메시지를 받았거든요
목동들은 이 사건이 끝나자마자 20절에 보면 이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이분들은 자기네 갈 곳으로 갔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목동들의 사역은 무엇입니까 여기까지의 사역인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보면 신기한 게 가브리엘은 가브리엘대로 사역이 있었습니다,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주는 일들입니다 그전에는 마리아에게 알려주고 천군들의 사역은 뭘까요 가브리엘천사와 목자들에게 가르쳐주는 메시지를 천군들은 재확인시켜주는 겁니다, 이 내용을 확인시켜주려고 천군들이 큰 파티를 하였습니다, 목자들의 사역은 뭘까요
마리아와 요셉에게 아기의정체성을 재확인시켜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확인시켜주고 또 재확인시켜주고 하는 과정들을 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분들의 사역의 종류는 달랐지만 초점은 하나였습니다, 초점은 뭐냐면 이 아기가 누구라는 것을 아기의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여기에 초점이 깔려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써 우리가 입을 열면 이 아기의정체성을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도행전1장8절에 그랬잖아요,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는 겁니다, 나의 증인이 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그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우리크리스천들입니다 예수님 외에 딴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상서는 신구약 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외에 딴 이야기하면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잘못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에 미쳐버려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시지를 전할 때마다 초점은 누구에게 가야 됩니까 예수님께 가야 됩니다, 초림의 예수님 재림의 예수님 우리와 함께한 예수님 그런데 지금부터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왜 하필이면 목동에게 처음 나타나셨나, 이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목동에게나, 이겁니다,
목동들에게 가브리엘이 메시지를 전해주고 목동들이 그것을 재확인하면서 이렇게. 이렇게 하였지만 그 수준보다도 더 깊은 영적의미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목동들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그 이유를 제가 최소한 네 가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이목동들은 목동들이 돌보고 있었던 양들 그 양은 어떤 양들이냐면 유월절제사드릴 때 예루살렘성전에서 유월절과 일곱 절기를 지키면서 제물로 바치기로 작정된 양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이라는 근교에서 목장이 있는데 그 목장에서 키우는 양들입니다 이 양들은 다른 지역의 양들과 다릅니다, 이 양들은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준비된 양들입니다
그러면 제물로 준비된 양은 누굽니까 구원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구원론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이양들 속에 이 목자들 속에 그래야 되기 때문에 제물양이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요한이 그랬습니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예수님보고 그랬습니다, 요한복음1장29절과36절에 그런데 예레미야11장19절 또는 이사야서53장7절 계시록5장2절에는 이 양이 어떤 양이냐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 어린양의정체성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게 베들레헴 근교에 있는 목자들이 제물 양 도살장으로 가야되는 순한 어린양을 키우는 일을 했던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은 이 어린양들을 정성 드려서 키워야 되는 겁니다, 다른 양들과 다릅니다, 다른 지역의 양들과 다릅니다,
왜 정성을 드려서 키워야 하느냐면 제물양의 유월절어린양의 조건이 있습니다, 출애굽기12장5절 레위기14장10절 레위기23장19절 민수기7장15절에 보면 어린양의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조건이 뭐냐면 이 어린양은 일 년 된 양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흠 없는 어린양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건강해야 합니다, 감기 걸리면 안 됩니다 피부병 있으면 안 됩니다, 다리 절어도 안 됩니다, 꼬리가 없어도 안 됩니다,
눈이 애꾸가 되어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흠 없는 어린 양입니다
베드로전서1장19절에 예수님보고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예수님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양의 조건이 일 년 되고 흠이 없고 그다음에 수컷이어야 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들이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양을 키우는 목자들이 얼마나 정성을 드리겠습니까,
이런 조건에 맞게끔 키워야 되니까 그러니까 제물 양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분들이 정성을 드리는 게 첫째 잘 먹여야 되는 겁니다,
잘 먹인다는 것은 다윗이 말한 게 있습니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잘 먹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시편23편2절에
그다음에 물을 잘 마시게끔 해야 되는 겁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이런 어린양이 되려면 막사를 위생적으로 잘 정리해야 됩니다,
병들지 않게 청소도 잘해야 되고 소독도 해야 되고 그래서 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네 번째는 양들이 이리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해주어야 됩니다,
요한복음10장11절에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랬습니다, 마태복음7장15절에
또 늑탈하고 해치게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이리라 그랬습니다,
요한복음10장11절에서12절에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24시간 교대근무를 해야 합니다, 1년365일 야간 근무도 해야 되는 겁니다, 이런 일들을 해왔던 목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정성 들려서 이런 일들을 해왔지만 자기네들이 키우고 있는 양들이 예수님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냥 목자장이 시키는 데로만 했던 분들입니다,
이분들에게 제물이 되는 자기네가 키우는 제물양의 실체가 되는 그 아기가 나타난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보여 위해서 이분들에게 나타나는 겁니다, 왜 목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났습니까, 라고 대답하면 첫 번째 대답이 제가 설명해드린 겁니다, 두 번째는 우리생각의 각도를 조금 바꾸어가지고 이 아기가 목자장이시고 목자였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상항설명을 해주는 겁니다, 이분들이 자기네가 목자입니다
그런데 진짜 목자는 누군지 아느냐 이 아기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아기가 또 목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베드로전서5장4절에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목자장이다 라는 겁니다,
목자들 중에서 제일 높은 목자 장 그러면서 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가 자신이 목자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0장11절과14절에 나는 선한목자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목자들에게 나타난 두 번째 이유는 그 아기가 목자장이고 목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유명한 시편23편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랬습니다, 여호와는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다윗이 예수님은 나의 목자시니 그랬습니다, 그럼 다윗은 누구라는 겁니까,
자기는 양이라는 겁니다, 나는 양이다 이런 개념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이 고백이 쉽게 나온 게 아닙니다, 이분이 지금 어떤 상황에서 이런 고백을 하느냐면 이분이 자기가 왕으로써 편안하고 왕권을 가지고 자기가 모든 것을 편안하게 누릴 때 이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분이 평소에 잘 될 때는 예수님이 목자장인 것을 목자인 것을 인식을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등 따뜻하고 모든 게 문제가 없었을 때는 내가 잘나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예수님이 목자시고 목자 장이신 것을 내가 인식을 안 합니다,
다윗이 언제 이것을 고백하였습니까, 다윗이 총체적인 좌절감과 모멸감과 스트레스 속에 있을 때 이렇게 되었을 때 이분이 용광로 속에 들어갔을 때 마음이 가난해지면서 애통하고 온유한 마음이 들어오고 그러면서 의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이 들어온 겁니다, 그러면 의의가 뭐냐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의미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무엇입니까,
수직계명 수평계명 그다음에 지상사명입니다 이것을 수행할 때 그런 사람이 순서대로 이것을 잘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사람입니다
창조목적에 잘 적응하는 사람입니다 수직계명으로 우상을 섬기지 않고 수평계명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그다음에 지상사명으로 전도와 선교를 하는 사람입니다 순서대로 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이고 창조목적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 보니까
좌절감과 스트레스와 모든 모멸감을 경험하면서 이분이 마음이 가난해지고 애통해지고 온유해지고 의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된 겁니다,
다윗이 창조목적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분이 겸손해지면서 자비로운 마음이 들어오고 마음이 순수해지면서 영의 눈이 떠지는 겁니다, 영의 눈이 떠지니까 이 고백을 하는 겁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구나 이 고백이 나오는 겁니다,
영의 눈이 떠지지 않으면 옆에 계시는 예수님이 안 보이니까 목자라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는 양입니다 나를 보호하시는 분이 저분이시구나,
나에게24시간 음식을 제공하시는 분이 저분이시구나,
이것을 깨달으면서 그게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눈이 떠졌을 때 시각의 변화 가오면서 여호와가 예수님이 절대자시구나
저분이 역사의 주인 되시는 분이시구나 이런 눈이 떠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저분이 주권자시구나 저분이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구나
내가 저분의 장중에 있구나, 이런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잠언3장5절에서6절에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의 이성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은 그분의 장중에 있구나, 라고 고백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데 다윗이 시편23편을 고백할 때는 이런 사람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겁니다,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면서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그러잖아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분이 그 전에는 푸른 초장에 눕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이 양입니다
다윗이 이것을 느끼지 못할 때는 양들은 문서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양들은 평소에 항상 두려움과 겁이 있어서 초장에 서있지 눕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목자가 자기를 완전히 보호해주면 저분이 나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시고 음식도 주고 이럴 때는 양이 초장에 앉는다는 겁니다,
그게 양의 특성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그동안에는 이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는 이 고백을 못한 겁니다, 자기 실력으로 산겁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을 통해서 영의 눈이 떠지면서 내가 푸른 초장에 눕는다,
그러니까 완전히 이분을 믿고 그리고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는구나,
그러면서 물가에서 평강을 누리는 이런 것을 고백하면서 내게 부족함이 없어지로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필요한 것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은 완전히 평강으로 들어가는 상태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게 없어 완전히 평강으로 휩싸이는 상태로 걱정 두려움도 없어지고 그냥 묵동만 훈련시키는 단계 그러면서 시편23편을 고백하는 겁니다, 두 번째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번째 이유가 예수님이 나의 목자장이 되시고 목자가 되신다, 라는 이유 때문에 목자들에게 제일먼저 나타나신 겁니다, 세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 이유는 목동들이 목동이나 목자나 같은 말입니다 이목동들이 어떤 상징을 주느냐면 우리교회를 목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크리스천들이 모여 있는 곳이 목장입니다 교회 안에 작은 목동들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큰 목동이신데 그 밑에 작은 목동들이 있는 겁니다, 작은 목동들이 누구냐면 우리목사님인 겁니다,
에베소서4장11절이나 베드로전서5장2절에 보면 양들을 먹이고 양들을 돌보고 양들을 보호해주는 사람들을 목자라 그러는 겁니다,
목사라는 뜻이 그것입니다 목사라는 뜻이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장로들이 이런 말도 있습니다, 장로들도 똑같습니다,
베드로도 나도 장로다 그랬습니다, 또는 선교사들 안수집사들 권사님들 전도사님들 이분들이 다 목동들입니다 양들을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양들에게 꼴을 먹이는 사람들입니다 양들을 보호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교회는 특히 그렇습니다, 이것은 목회 론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는 구원론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 론입니다 세 번째는 목회 론입니다
목장 교회는 예수님이 제일 높으신 목자장이시지만 그 밑에 작은 목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작은 목자들이 우리 다입니다, 꼭 목사님만이 아닙니다,
네 번째 이유는 뭐냐면 이 목장에는 양 무리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성도 론이라고 그럴 까요 교회 안에 성도들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아까 말했지만 양들은 웬만해서 눕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양의 특징이 있습니다, 양은 웬만해서 눕지 않고 그래서 교인들이 이 양들이 항상 불안하고 삶이 고달픈 겁니다, 그다음에 양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뭐냐면 양은 거꾸로 자빠지면 절대로 혼자 힘으로 못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 양들이 교인들이 한번 실족하거나 넘어지면 목사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나 집사님들이 가서 일으켜줘야지 자기 혼자 교회생활을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동들의 책임이 큰 겁니다, 이런 네 가지 이유를 항상 묵상하여야 합니다,
묵상하시려면 자꾸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셀 모임에서도 또 반복하고 그래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3년 공생애 동안에 목자론 그러니까 지금 네 가지의 론을 제가 말을 붙여서 목자 론이라 이렇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네 가지 목자 론입니다 이 네 가지 목자 론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3년 공생애 동안에 그기에 관계되는 성경구절이 요한복음10장1절에서18절에 예수님이 목자 론을 요한복음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분이 뭐냐면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양의 울타리다, 라는 겁니다,
1절에 그리고 나는 양들의 목자다 2절에 그리고 나는 양들의 울타리에 있는 문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와야지만 그분의 양이 된다는 겁니다, 7절과9절에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나는 선한 목자다
그랬습니다, 살려주는 목자라는 겁니다, 11절과14절에 또 마태복음7장15절에서도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에서 가짜 목사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짜목사들은 거짓선지자들이라 그러는데 가짜들인데도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와서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속에 있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목자의 예를 더는 겁니다, 교계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는 고기잡이를 떠난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요한복음21장15절부터17절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이 너 나를 사랑하느냐 할 때 그 사랑을 원어로 아가페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대답이 뭐냐면 필레오 사랑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두 번째로 물어보는 겁니다, 너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이분이 또 다시 필레오 사랑한다고 그랬자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마지막 세 번째로 너 나를 필레오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필레오 사랑합니다,
이런 대화입니다 그런데 15절에 보면 처음에 질문하는 겁니다,
너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필레오 사랑합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겁니다,
너 에 어린양을 먹이라 그러는 겁니다, 어린 양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어린 양 원어로 아르니온(ajrnivon)이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뭐냐면 작은 양 새끼 양들을 말하는 겁니다, 제일먼저 영적유아들 영적아이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영적유아들 영적아이들은 NO1기독교인들을 의미하는 겁니다,
영적어린아이들을 먹이라 그랬습니다, 보스코라는 단어가 먹인다는 단어입니다 이 어란 양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못 먹습니다,
우유나 죽이나 부드러운 것들을 먹이라는 겁니다,
우리 작은 목자들은 이걸 잘 해야 되는 겁니다, 부드러운 말씀으로 먹여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수준에만 있지 말고 두 번째 질문을 할 때 두 번째 질문을 할 때 거기다가 명령을 내리는 게16절에 내 양을 피라 그랬습니다,
이때는 내 어린 양이 아니고 내 양을 치라 그랬습니다, 단어가 다릅니다,
이때는 조금 자라난 영적사춘기들과 청년들입니다 NO2기독교인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양들을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게 잘 막아주고 양들의 막사를 따뜻하게 해주고 이리에서 보호시켜주고 오늘날 제일 큰 이리가 무엇입니까
중교다원주의입니다 종교다원주의에서 보호시켜주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낙원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주고 우리는 이 세상은 나그네다 저 세상이 우리고향이다 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일들 그게 내 양을 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세 번째 질문을 하니까 예수님의 대답이 뭐냐면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양은 세 번째 양입니다
세 번째의 영적아들들 NO3기독교인으로 히브리서11장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내 양을 먹이라는 것은 이분들은 이미 먹었습니다,
더 먹이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면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편23편의 고백하는 자들로 만들어라 이런 뜻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면서 이제는 어른 양들로 만들라는 겁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을 받아가지고 예수님이40일 있다가 승천하셨잖아요, 그때부터 예루살렘교회에 지도자로써 이 일들을 주욱 해왔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을 받은 게 주후30년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말씀이 잊어버리지 않고 항상 기억하시면서 사역을 주욱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분이 베드로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게 주후64년입니다 그러니까34년 후입니다 이 말씀을 받고34년 동안 이 말씀대로 주욱 지쳐오다가64년에 이분이65년에 순교 당했거든요,
64년에 순교당하기1년 전에 이분이 베드로 전 후서를 썼습니다,
그때 베드로전서를 써실 때 이분이 양 무리를 치는 이야기를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회에 장로들 자기 제자들이 권사들 집사들 선교사들 교회일꾼들에게 너희들이 양 무리를 치는 분들이 아니나 양 무리를 쳐야 되는데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이 조건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영광의 면류관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양 무리를 치는데 조건이 있다는 것을 이분이 깨달아가지고 순교1년 전에 이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 조건이 그 유명한 베드로전서5장1절에서4절입니다,
그 조건을 보면 일곱 가지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도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우리가 주님을 이렇게 열심히 섬기다가 저쪽에 올라가면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안 그러면 이 원칙대로 안하면 못 받는 겁니다,
첫째가 뭐냐면 하나님의 뜻을 쫒아서 자원함으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셀 모임하세요 이것 하세요, 저것 하세요,
라고 잔소리하는 것이 저도 싫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수직계명과 수평계명 지상사명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원하는 마음이 우선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이런 하트(heart)가 없습니다,
그걸 구분하셔야 됩니다, 해라해라 해서는 되는 게 아닙니다,
이런 하트(heart)가 없는 겁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성도들은 목자들이 이런 하트(heart)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누가 시키니까 누구 때문에 눈치보고 이런 사람은 벌써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주님눈치만 봐야 합니다, 세 번째는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거고 목사님에게 칭찬받을 거고 이렇게 하면 내가 교회에서 인정받고 자기과시가 되고 이런 모든 더러운 이익 이런 걸 가지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런 게 다 있습니다, 저도 마차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나를 체크해야 됩니다, 저는 설교하는 사람으로 설교 끝나면 목사님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소리를 하면 내가 기분 좋으면 제가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런 소리 제게 안 들리게 해주세요,
주님과 저와의 문제지 교인들과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 내 속에 그런 게 없게 해주세요, 이러면서 나를 다스려야 됩니다,
강단에 서는 사람은 더러운 이익을 위해서 제가 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주님 앞에 적나라하게 순수해져야 되거든요
왜냐면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위해서 네 번째 베드로가 하는 소리가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즐거운 뜻으로 하려면 그게 됩니까,
안 됩니다, 말씀 속에서 창조목적이 무엇이고 수직계명이 무엇이고 수평계명이 무엇이고 지상사명이 뭐라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것에 대한 필요성을 내가 알고 있어야만 그러니까 이것을 말씀에서 깨달아야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오고 즐거운 마음이 들어오고 거룩한 욕심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르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공부를 해야 됩니다, 말씀공부를 안하니까 정돈이 안 되니까 즐거운 마음이 안 생기는 겁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안 들어오고
다섯 번째는 양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고압적인 자세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섯 번째로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겁니다, 양을 끌고 오려면 본을 보여주어야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포지션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군림해서 하는 게 아니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을 항상 저 혼자서 묵상을 합니다,
혹시 우리 동료 양들이 저 때문에 실족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본을 보여주어야 되는 겁니다, 여러모로 일곱째로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하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이분이34년을 양 무리를 치면서 이분도 시행착오를 많이 하였겠지요, 이분도 보면 성품이 군림하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이분도 시행착오를 격어면서 많이 깨닫고는 나중에 주님나라에 가기1년 전에 주님이 너 이것을 정돈해라 이것은 우리에게 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너 이것을 정돈해라 그래서 정돈시켜준 겁니다, 이 정돈이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데 하루아침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약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베드로처럼 죽기1년 전이라도 이것이 정돈이 되어야 되잖아요, 언제 우리가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 말씀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사람들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다 작은 목자들입니다 목사님만 목자가 아닙니다, 다 목자들입니다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목동들 예수님의 초림 때 목동들에 대한 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신학해설들이 있습니다,
목동들에 대하여 제가 설명하는 이런 내용들은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이것은 어느 책에서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주석이나 이런데 보면 왜 목동들에게 제일 먼저 나타났을까 라고 하면서 한 줄로 써놓은 게 있습니다, 뭐냐면 그 당시에 목동들은 사회저변의 계층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소외계층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분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분들에게 나타났다 이렇게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동들만 소외계층입니까 성서에서는 목동들이 소외계층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성서에서 소외계층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고아와 과부들입니다
또 병든 자들 거지들 빈곤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입니다
목동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동들은 사회 하류계층에 있었기 때문에 야간에도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왜 목동에게 나타났는가,
네 가지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 목동들과 관계되어가지고 성탄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도 제가 이야기했지만 성탄절12월25일은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닙니다, 이 날은 바벨론종교의 창시자 니므롯의 출생일입니다 니므롯의 출생일이고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니라는 이유를 목동이야기를 들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뭐냐면 12월25일이라면 이스라엘도 겨울철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춥지는 않지만 추울 때입니다 추울 때 어떻게 목동들이 밤에 양을 지킬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기후에 의하면 적어도 밤에 근무를 하려면 10월초까지는 가능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12월25일에 밤에 목동들이 근무를 했으니까 그것은 아니다 야간 근무를 하려면 10월초 이전이나 그 후 따뜻할 때니까 예수님탄생이 10월이나 그 전이여야 된다,
라고 하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주욱 봤지만 목동들이 겨울이라고 근무를 안 합니까, 목동들은 이리떼 공격에서 지키려면 1년365일 밤에도 지켜주어야 되는 겁니다, 왜냐면 양의 자격조건에 흠이 없는 양으로 만들려면 그래서1세기 때 목동들은 예수님의 초림을 증거 하는 자들의 목동들이었습니다, 그리고 12제자들과1세기 때 사역자들은 예수님이 초림하신 것을 증거 해왔던 목동들이었습니다, 2천년 동안 그 목동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 목동들에 의해서 우리도 이렇게 목동그룹에 들어간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뭡니까,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는 목동들입니다 그러니까1세기 때 목동들이 했던 것이 뭐냐면 예수님의 구원론을 외쳤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예수님의 구원론에 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 그리스도 되심에 강해야 됩니다,
우리가 마지막시대에 목동이 되려면 그리고 목자 장 되시는 예수님 또 목자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이 사역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용광로경험을 많이 받아가지고 시편23편의 고백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용광로경험을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됩니다,
그것 없이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승리하게 하십니다,
어떤 용광로가 와도 이것을 경험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목장 안에서 작은 목동들인 우리는 우리보다도 더 작은 목동들이 또 많이 나타날 것을 우리가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아까 일곱 가지의 조건들 기억나시죠,
이런 일곱 가지의 조건들을 기억하면서 양 무리들을 우리가 잘 키우면서 양 무리들의 본이 되어가지고 저희들을 통해서 많은 양들이 살아나서 또 양들이 자라나가지고 이제 양 수준에서 벗어나서 목동들이 되는 수준까지 올려주는 일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일을 우리는 우리민족끼리만 하면 안 됩니다, 지상사명이 무엇입니까, 중국 사람들 중국에 소수민족들 북한의 우리형제자매들 일본 러시아 또 다른 나라 우리가 이번에 헌금한 것은 티벳 그러니까 어떤 때는 직접 가서 말씀도 전하고 어떤 때는 물질로 기도로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양들과 목동들이 자라나도록 하는 그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가르쳐주시려고 예수님이 자신의 탄생소식을 목자들에게 제일먼저 전해준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우리가 계속해서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목자들에게 나타났는가, 그러면 네 가지 목자 론을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세대에 목자들이다 그리고 잊지 말 것은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여러분들은 양들이 아닙니다, 여기에 아주 소수만 양이고 대부분은 다 목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은 목자들입니다 우리의 목자장이 누군지 아시죠,
그래서 우리가 다 목자들로 작은 불꽃이 목자의 불꽃을 가지고 선교지로 성령의 불 말씀의 불이 나가는데 귀한 도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오늘주신 말씀 저희들 삶 속에서 떠나가지 않도록 성령님의 함께 하심과 깨닫게 하심과 실천케 하심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지금 이 시간에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끊임없이 가르쳐주심과 깨닫게 하심과 순종케 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항상 있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9pGJcbs23Bk&list=PLJXDDlXMklsnk7HydjPg7D9aa274qu8iz&inde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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