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로마서 강해

4강, 로마서1장1절-7절, 복음이란 무엇이며 왜 주셨는가,

변명섭 2019. 9. 22. 15:50

 

로마서 4강, 복음이란 무엇이며 왜 주셨는가,(롬1:1-7) 2014년4월6일 말씀
오늘은 로마서강해 4번째 시간입니다 성경말씀은 로마서1장1절부터7절까지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복음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믿어서 순종케 하는데 사도바울의 사명은 이방인을 향해서 이 사건을 전하라는 그러한 택정을 받은 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6절에 너희도 그들 중에서 하는 말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인데 다가 아니고 그들 중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에 있는데 그 중에 소수인 너희도 사도의 사명을 받아서 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좁은 의미에서 소수 그분들을 말하는 겁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와 평강이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은혜와 평강이 표적을 따라 온다는 겁니다, 
이 중요한 1절부터7절에 말씀은 우리 기독교의 아주 핵심 되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부분을 제가 좀 자세히 설명을 해 드리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 지난시간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도이신 바울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사도라는 뜻은 보냄을 입은 자 이런 뜻입니다 또는 보내심을 입은 자. 받은 자 사도가 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택정함을 받아야 됩니다, 아무나 되는 게 아니고 그다음에 택정함을 받은 사람은 받은 사람은 꼭 때가되면 불리 움을 받는 겁니다, 불리 움을 받은 다음부터 이제 사도로서 준비훈련이 따라 온 겁니다, 
무슨 목적으로 사도로 이렇게 택정해서 부르심을 받을까요,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기 지금 보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냥 복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은 누군가요 하나님은 삼위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씁니다, 여기에서 그 아들에게 할 때는 삼위하나님을 지칭할 때 이렇게 씁니다, 
그렇지만 총괄적으로 삼위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이 단어에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복음이란 뜻이 뭐냐면 유앙겔리온 이게 헬라말로 복음이라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한국말로 복음 영어로는 가스펠(gospel)이라 그럽니다, 무슨 뜻이냐면 복된 소식 그래서 영어로 good news라 그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음을 헬라말로 유앙겔리온 데오 그랬습니다, 
데오라는 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굿 뉴스 복음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복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바울이 지금 우리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2절부터 하나님의 복음이 뭐냐면 이분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이때는 성부하나님을 특별히 지칭할 때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 아들에 관하여서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가지고 그 아들이 누굽니까 예수하나님께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원어로 프로에판겔로 단어를 썼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아버지가 아들에 관해서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이라 그랬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바울이 3절부터 설명을 했습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아들이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성육신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 아들이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인간이 되실 거랍니다 그게 3절에 그랬습니다, 4절에는 그 아들이 성육신 한 다음에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하실 구원자라는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약속했다는 겁니다, 4절에 그리고 똑같이 4절에 이분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미리 약속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4절에 그랬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그리고 이분이 예수그리스도시구나 라는 것을 사람들이 선포하게 될 것을 미리 예언 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선포한다는 겁니다, 
오늘 보면 선포한다는 겁니다, 이분이 이런 분이시구나, 라는 것을 선포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복음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뭐냐면 이 복음 이 사건을 이제 바울이 전할 터인데 믿고서 순종하는 자가 나온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고 이렇게 순종하는 자가 영생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딱 보시면 그냥 good news인데 그 안에 이 내용이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그 내용이 뭐냐면 복음 플러스 전하는 내용까지 다 복음으로 정의를 내리는 겁니다, 전하면 어떤 분들이 하나님이 선택한 분들이 그  복음을 받아가지고 믿고 순종까지 하는 그 모든 행위가 다 복음으로 포괄적으로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good news라는 겁니다, 
그냥 good news가 아니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good news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거꾸로 도대체 사도는 누구고 사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간단합니다, 사도는 뭐냐면 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미리 예정 받아서 불리 움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사도인 겁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도 이런 사도 다, 라는 겁니다, 
다시 거꾸로 말하면 사도의 사명은 이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역동적인 그 안에 성품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그냥 복음을 이해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내가 전파하지 않으면 내가 복음에 대해서 자투리로 알고 있고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아닌 겁니다, 전파하지 않으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사도들은 뭘 해야 됩니까,
우리는 처음에 무엇을 전파해야 됩니까, 
예수그리스도가 다윗의 혈통으로 성육신 하셨다, 라는 것을 전파해야 되는 겁니다, 그분이 대속의 죽음을 하셨다, 라는 것을 우리는 전파해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이 부활하셨다, 하는 것을 전파해야 되고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시고 예수님이시고 그리스도이신 것을 전파해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사람들아 당신들은 이 사실을 믿고 순종해야 된다, 
이것을 우리는 전파해야 되고 이게 사도의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이분들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개념이 이렇게 포괄적입니다 그냥 예수 믿으세요, 이게 아닌 겁니다, 우리는 중국에 가나 소련에 가나 일본에 가나 이 사실을 우리는 전해야 되는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도의 사명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이 사도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뭘 전하느냐면 기복신앙을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 믿으면 출세한다, 예수 믿으면 당신의 필요를 채워준다 
이것은 복음이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부흥회하고 이렇게 세미나하고 이렇게 설교하는 것은 예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겁니다, 너 네들 잘 살려고 내가 죽은 줄 아느냐 아닙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들 잘 살기 위해서 내가 죽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지금 말하기는 이 사건은 성경에 미리 약속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거꾸로 질문해보면 성경의 주제는 그러면 뭘까 성경의 주제는 이 예수님의 복음사건이 성경의 주제인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성부하나님이 그 아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성육신 시키셨던 이야기가 성경에 적혀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분이 성육신 하셔서 대속의 죽음을 하셨고 부활하셨고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받으셨다 
그러니까 이것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영생을 얻는다, 
라는 이 내용이 성경의 주제인 겁니다, 이 내용이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내용이 성경의 주제라고 본인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요한복음5장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너희들이 성경을 한번 서치라이트를 가지고 들여다봐라 전부 성경에 관한 이야기가 이때 성경은 구약성경입니다 
그 당시에는 신양성경이 없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모든 내용이 다 나의 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의 관한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복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복음이 정의를 제가 내렸습니다, 
제가 내린 게 아닙니다, 바울이 내린 복음의 정의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구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이야기가 예수님의 복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그런 시각으로 봐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도 이런 이야기를 두 번 하셨습니다, 
누가복음24장27절과 누가복음24장44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구체적으로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모세요경을 봐라 선지자들의 글들을 봐라 또 시편을 봐라 전부 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나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은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복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무엇이냐 제가 아까 주욱 설명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관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복음은 그냥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고 그냥 마지막에 무엇입니까 이것을 전하는 일까지 복음에 해당이 되는 겁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도바울이 순교1년 전에 디모데에게 자기의 영적아들에게 여기에 대해서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디모데후서3장15절에 이분이 유언의 말씀을 이렇게 했습니다, 
디모데야 내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지,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어떤 성경입니까 구약성경입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러는 겁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 이 말이 뭐냐면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이 성경 안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구약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복음이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구약에 신학적으로 말하면 기독론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기독론이 그러면 성경의 주제가 그렇다면 부제는 뭘까요 부제 성경의 부제는 우리 아까 디모데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이 디모데후서3장16절에 부제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것으로 하면서 어떤 목적으로 썼냐면 너희들을 교훈시키고 책망시키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 위해서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썼는데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성경의 부제입니다, 
성경의 부제는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된 삶을 사느냐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쓴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제와 부제가 구별하는 겁니다, 주제는 복음입니다 부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삶을 살아야하는가 이 두 개를 볼 때 어떤 것이 더 중요합니까, 주제가 중요한 겁니다, 주제를 철저하게 모르고 그것에 대한 깊은 묵상이 없으면 부제가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사탄은 어떻게 합니까, 부제에 관심을 더 두게 하는 겁니다, 
부제에 어떻게 살아야 그러다 보니까 복음에 약해지는 겁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부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부제에 관심이 더 많으면 앞뒤가 전도가 되는 겁니다, 
우선순위가 전도되면 부제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부제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책을 써도 책에 주제가 있고 뒤에 부록이 있습니다, 부록하고 책의 주제하고는 다릅니다, 그러면 부제에 더 우선순위를 두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우선 주제가 약해지는 겁니다, 복음이 약해지는 겁니다, 또 복음이 변질되는 겁니다, 
또 복음이 혼합되는 겁니다, 또 기독교가 어떤 종교로 변질되느냐면 윤리도덕 종교로 전략될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보는 시각을 어떻게 보이느냐면 예수님을 사회 구원자로 보는 겁니다, 
진보신학 하는 사람들은 사회복음자로 보는 겁니다,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평화주의자로 예수님을 보는 겁니다, 
심하면 종교다원주의자로 예수님을 보는 겁니다, 
예수님에 대한 시각에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겁니다, 주제와 부제가 거꾸로 되면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중요합니까, 
주제가 중요한 겁니다, 주제가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성서에 보면 이 구원자의 지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복음을 창세전에 예비하셨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복음은 창세전에 그러니까 바울도 이것을 깨달은 것이 이분이 주후35년에 개종했잖아요, 이것을 깨달은 것이 고린도전서를 쓸 때 깨달았습니다, 주후55년에 다시 말하면 35년에서 20년 후에 20년 동안 주님과 교제하시면서 이분이 낙원도 구경하시고 많은 영적훈련을 받은 후에 이 비밀을 한국말로 이것을 비밀이라고 그랬는데 영어로 미스터리(mystery)를 20년 동안 예수님과 교제하시면서 예수님이 그때 고린도전서를 쓰실 때 고린도전서2장7절에서 가르쳐 준 겁니다, 이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것을 구원의 지혜라 그랬습니다, 
이 구원의 지혜인 예수님의 이야기는 창세전에 이미 예비하셨다는 겁니다, 숨겨놓았다가 계시를 해주었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왜 이렇게 예수님의 복음 이야기를 이 예수님의 복음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삼위하나님 중에 제일 두 번째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이 인간으로 내려오셔 가지고 성육신 하셔서 누굴 통해서입니까,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내려오셔 가지고 이분이 죽으신다는 겁니다, 
피조물에게 죽으심을 당한 다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그리고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무엇을 믿느냐면 이분이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건을 통해서 이분들이 영원한 생명을 다시 회복 받는 이 사건 그것을 전하는 이 사건 이것을 복음이다, 라고 우리가 정의를 내립니다, 그런데 이 복음스토리가 창세전에 준비되었다는 겁니다, 
창세전에 이 복음스토리가 우리가 보통 생각하면 그럽니다, 
이 복음스토리는 언제 시작되었냐면 아담이 실수하므로 아담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내려 오셔가지고 죽으셨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비 성서적입니다 지금 성서에 보면 바울도 초기 20년은 아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20년을 끝나고 고린도전서를 쓰실 때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이것이 미스터리라는 겁니다, 
자기의 이성과 논리로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이 복음을 창세전에 준비하셨나, 이것이 이분에게는 미스터리인 겁니다, 우리에게도 미스터리인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창세전에 이것을 준비하셨나, 왜 이 사건을 창세전에 준비하셨나, 
이걸로 저도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에게 이 생각이 딱 떠올랐습니다, 아하! 우리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고 우리하나님은 삼위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고 이분이 조금 있으면 피조물을 창조하실 텐데 이 피조물이 앞으로 할 창조의 목적이 있는데 창조의 목적에 순응하는 것을 100% 못하는 것을 창조목적에 부합된 존재가100% 되지 못할 것을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셨습니다, 만약에 이걸 모르시고 창조하셨다면 우리가 지금 그분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한계가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이 아셨습니다, 이분이 뭘 알았냐면 왜 이렇게 못할 것을 알았냐면 이 피조물들이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피조물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수준으로 올려놓으면 안 됩니다, 
피조물을 다시 말하면 동질 동격으로 만들어 놓으면 피조물이 아닙니다, 
이 피조물이 어떻게 됩니까, 만약에 하나님과 똑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놓으면 똑같은 게런티(guarantee)똑같은 격으로 만들어 놓으면 피조물이 목에다가 힘주고 창조주에게 덤벼들고 창조주를 나중에 우습게 알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똑같이 만들어 놓으면 그러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피조물은 피조물로 다시 말하면 창조주보다 한 격을 낮추어 놓습니다, 한 차원을 낮추어 놓고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창조주입장에서 보면 본인들 보다 한 차원 낮은 존재로 만들다 보니까 이 태생적인 한계점이 있는 겁니다, 
피조물인데 태생적인 한계점이 있습니다, 
무슨 한계점이냐면 창조주의 마음에 100% 더는 존재는 되지 못하는 태생적인 문제입니다 피조물은 똑같이 아무리 사람이 성령 충만하고 거룩해도 창조주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그분을 행복해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아시고 피조물에게 뭘 주느냐면 앞으로 창조했을 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입니다 
피조물에게 그러면 피조물이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생명 나누는 의식주 다 무료로 줄 것입니다 
앞으로 이게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피조물이 직장 다닐 필요도 없고 장사할 필요도 없고 그냥 앉아서 있으면 다 먹을 것 주고 그다음에 병원 갈 필요도 없습니다, 
생로병사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피조물이 다 무료로 주니까 피조물이 만약에 이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입장에서 피조물을 보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모든 것을 다 무료로 받으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피조물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목적을 저하시키거나 또는 변질시키거나 하는 걱정이 있는 겁니다, 무료로 받아 놓으면 고마움을 잊어버리는 게 있습니다, 
이게 피조물의 한계점입니다 이 가치를 처음에는 조금 알다가도 나중에는 모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지금 우리 인간도 다 무료로 받아 놓으면 돈 많은 부모님이 자녀에게 모든 걸 무료로 주어보세요, 
부자가 3대 못 간다고 그럽니다, 돈의 가치를 모르는 겁니다, 
또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겁니다, 
물, 공기. 햇볕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가장 중요한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우리 인간이 사는 가장 중요한 선물인데 여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듯이 창조주가 전지하신 분이시니까, 
창조주가 피조물이 어떻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피조물을 하나님과 동격으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창조주께서 삼위하나님께 이 피조물의 한계점을 서로가 이렇게 나누면서 우리가 이 피조물들을 만들 터인데 이 피조물들을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에 드는 피조물을 만들 것인가 라고 아마 서로 대화를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삼위하나님이 이런 결정을 하셨을 겁니다, 
앞으로 우리 피조물들을 한번 우리가 훈련 좀 시키자 교육 좀 시키자 창조의 목적을 이 피조물들에게 가르쳐주자 이런 결정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목적을 가르쳐 주어가지고 최소한 그래도 창조의 목적에 부합되는 존재가 되도록 우리가 한번 훈련시키자 100%는 아니지만 이 훈련시키는 방법을 이분들이 만들어 낸 것이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뭐냐면 이 피조물들이 영원세계에서 의식주를 무료로 모든 것을 무료로 했던 이것을 우리가 한번 뽑아버리자 빼앗아 버리자 당분간 그래가지고 영생이나 낙원의 삶 의식주 이런 편안한 삶에서 우리가 불편하게 만들어 놓자 이것이 소위 시간세계로 던져버리자 그래서 영원세계에서 7천년 시간 속으로 던져진 겁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에 벌써 환경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영생도 상실케 하시고 창세기3장17절에 보면 이제는 나이를 먹게 하시고 창세기3장16절에 그리고 하와가 해산하는 고통을 경험케 하시고 그다음에 땅을 저주시켜버린 겁니다, 그래서 이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막 나게 하고 거기에서 이제는 노력해서 땀을 흘려야지만 먹을 수 있게끔 만들어 버린 겁니다, 창세기3장16절부터19절까지 그러면서 나중에 죽음까지 경험하게 하는 생로병사의 삶 속에다가 집어던져버린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러는 가운데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하는 말이 내가 여자의 후손으로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너 후손과 나와 싸움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 사건은 이제 우리 창세기3장15절 사건에서 시작될 것이 아니고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창세전에 이 사건이 시작이 되었던 겁니다, 창세전에 예수님의 성육신사건이 이 복음의 사건이 준비되었다는 것을 이제 성경구절 몇 개를 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2장7절입니다, 여기에도 이 사건이 미스터리가 창세전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때에 원어를 보면 프로톤아이오논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만세전에 미리 정한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것을 프리오리조 미리 예정해 놓았다 이 복음을 그런데 이 복음을 감추어 놓았다 그랬습니다, 아포크리토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니까 계시하셨다 이런 말씀을 로마서16장25절26절에 바울이 또 말했습니다, 이 말씀을 감추어 놓았다 그러면서 영원부터 똑같이 그러다가 나타내었다 계시해주었다 26절에 차내로우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차내로우라는 단어는 사전에는 명백하게 했다 드러내었다 나타내었다 이런 말로 표현 합니다, 그리고는 에베소서1장3절에서14절 또는 3장1절에서13절 그리고 베드로도 마찬가지로 베드로전서1장19절20절 또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1장9절에 보면 다 이런 말을 써놓았는데 베드로도 순교1년 전에 이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 전에는 이분도 이 말씀을 주님이 베드로에게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느 정도 영적으로 성숙되었을 때 하나님의 복음이 창세전에 준비되었다는 것을 그분들에게도 뒤 늦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복음을 전제로 해놓고 우리가 지금 던져야 되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질문 첫째가 뭐냐면 이 루시퍼가 타락했을 때 왜 루시퍼를 타락하도록 허락 하였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 루시퍼가 타락하려고 할 때 얼마든지 막을 수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 얼마든지 타락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왜 못 막습니까, 그러면 또 한 가지 전지하신 하나님이신데 이 타락을 그럼 미리 아셨냐 입니다, 이것도 우리의 질문입니다 모르셨다 하면 이것도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렇다면 또 질문이 있습니다, 타락했습니다, 그러면 그 타락한 그 나쁜 놈을 왜 지옥에다가 당장 집어넣지 않았나, 입니다, 
지옥에다가 당장 집어넣었으면 아담을 타락시킬 그러한 배경이 없는 겁니다, 아담이 타락할 수도 없는 겁니다, 왜 지옥에다가 당장 집어넣지 않았나, 
또 우리 질문이 이놈이 탈락했으면 그냥 그놈만 타락시키지 왜 천사의 3분지1을 데리고 가도록 허락하셨나, 입니다, 이것도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뿐인가요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이 타락한 루시퍼가 사탄인데 이놈에게 내가 권력을 주었는데 무슨 권력이냐면 이 세상임금의 타이틀을 주었다는 겁니다, 이 세상임금의 타이틀 요한복음12장31절에 그리고 이놈에게 이 세상신이라는 타이틀을 주었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4장4절에 이 놈 때문에 이 세상에 종교가 이렇게 많은 겁니다, 그다음에 공중권세 잡은 자로 타이틀을 주었다는 겁니다, 에베소서2장2절에 그래서 이 말씀을 주시기 7000년 전에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 이사야서14장16절에서17절에 뭐라고 그러느냐면 이사야야 이 나쁜 놈들이 어떻게 까부느냐면 땅을 진동하는 파워를 가지고서 까불더라, 열국을 흔드는 전 세계를 황무케 하는 그러한 파워를 행사할 거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놈들이 그러면서 이사야에게 이사야서54장16절에 여호와께서 예수님께서 내가 파괴자도 내가 창조했단다, 
평화 하는 자도 내가 만들어 내었지만 파괴자도 내가 창조한단다, 
그러시는 겁니다, 우리의 질문이 왜 이놈들을 이렇게 허락하셨나, 
파워를 주어놓고 지옥에 던져버리지 않으시고 그다음에 계속해서 우리의 질문이 또 있습니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아담의 영의 양식이 무엇이냐면 생명나무실과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저 영원세계에 들어가면 우리도 그 생명나무실과를 먹게 되어 있습니다, 계시록22장에 보시면 그게 영원한 삶을 사는 영원한 음식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을 지어놓으시고는 왜 생명나무실과만 만들어서 아담이 먹게 하시지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왜 만드셨나, 그것이 왜 그럴까 우리질문입니다 그다음에 사탄을 왜 지옥에 가두지 않으시고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게 하시지 왜 에덴동산 안에 집어넣어가지고 아담과 하와를 유혹케 하셨을까 왜 그대로 허락하셨나, 
이것도 질문입니다 전능자께서 그러면 전지하신분이니까 이것을 미리 아셨나, 이렇게 될 것을 이것도 우리의 질문입니다 또 하와가 유혹에 빠져서 하려고할 때 왜 하나님이 막지 않으셨나,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막을 수 있는데 똑같이 하와가 만약에 그렸다면 아담을 꼬실 때 왜 막지 않으셨는가, 
이것도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타락할 것을 미리 아셨나, 
계획하셨나, 이것도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리고는 이런 사건이 터진 후에 소위 원시복음이라고 창세기3장15절을 원시복음이라고 그럽니다, 
여자의 후손과 사탄의 후손과 싸움하는 사건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오실 것을 사탄에게 이야기하신 이 사건 그리고 하와에게 하신 말씀 창세기3장16절에 하와야 너는 이제 해산하는 고통을 경험할 것이다 
너가 애기를 낳을 때 굉장히 아프게 낳을 것이다 남편을 너는 사모해야 되고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이렇게 하와에게 말씀하기고 아담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담아 이제 너가 사는 땅을 내가 저주한다, 
너는 종신토록 땀 흘려서 수고해야지만 먹을 것을 얻게 된다, 
너가 사는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채식을 할 것이고 열매를 먹지 않고 그리고 너는 필경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영생을 빼앗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너 이제부터 지금까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서 입고 다녔는데 창세기3장7절에 그런데 이제부터는 동물을 잡아서 가죽치마를 입어야만 된단다, 
창세기3장31절에 왜 이 치마로 바꾸셨나, 이것도 우리의 질문입니다 
이 가죽옷을 입은 후에 변화사건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3장22절부터 여기 보시면 타락한 후에 가죽옷을 입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면 하나님이 딱 보니까 저 양반들이 지금 아담과 하와가 우리처럼 영의 눈이 열리는구나, 이것을 보신 겁니다, 
영의 눈이 열려가지고 선악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 나쁜 놈이 있구나, 여기에 성령님이 계시구나, 
예수님이 계시구나, 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겁니다, 
가죽옷을 입어니까 그래놓고는 삼위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놈들 보니까 지금 생명나무를 먹으려고 덤벼드는구나, 
가죽옷을 입으니까 그래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알고 그 실과를 먹으려고 한다,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제 네들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영원히 살면 안 된다 이것을 삼위하나님이 원치 안하시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분들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에덴동산에서 이 실과나무를 먹지 못하게 생명과실을 먹지 못하게 그 나무를 보호하는 화영 검으로 보호시키고 에덴동산을 그룹천사들로 보호시켜서 이 생명나무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에게 이 생명나무를 먹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지 왜 그걸 먹지 못하게 하십니까, 
이것은 최소한 제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 후부터 타락한 아담은 시간 속에 들어와서 4천년 있다가 예수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그리고는 그 예수님이 누구라는 것을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고는 사도바울에게 가르쳐 주시고는 이것을 전하라는 겁니다, 
그것이 4천년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는 2천년 끝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7천년 이라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계획하였냐면 창조의 목적을 훈련시키는 교육시키는 기간으로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 교육을 다 시킨 다음에 다시 영원세계로 다시 회복시켜주는 이 사건이 창세전에 예비 되셨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창세전에 예비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게 지금 중요합니다, 창조의 목적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피조물에게 피조물들이 창조의 목적을 가볍게 여길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세계 속에서 7천년이라는 시간 속으로 던진 것을 영원이라는 하나의 긴 시간을 생각할 때는 7천년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우리가 지금 그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가장 예뻐하실 겁니다, 
왜냐면 이것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이 엄청난 예수님이 시간 속으로 내려오는 사건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의 목적을 깨달아 가지고 그대로 사는 사람 100%는 못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을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고 그런 분은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영원세계에서 가장 높임을 주는 그러한 일들을 하십니다, 우리 크리스천삶이 그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장 사랑을 받는 행동을 하려면 창조의 목적에 최소한 부합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런데 이것도 노력이 아닙니다, 이것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가 있어야지만 이것도 가능합니다, 제가 보니까 이렇게 하는 사람은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바울 같은 그런 사람에게는 평강이 따라오는 겁니다, 
그래서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라, 이 창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사야서43장7절과21절에 쓰여 있습니다, 뭐냐면 우리 인간이 누굴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창조 되었습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다 보면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엄청난 행복을 약속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로봇처럼  그냥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그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엄청난 행복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시는 겁니다, 
피조물에게는 큰 혜택인 겁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드린다는 그러한 구체적인 대답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 영광 드린다는 것은 무엇이나 그래서 제가 여자의 후손 책 뒤쪽에 자세하게 설명하여 드렸습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께 영광 드린다는 것은 우리 피조물이 제일 먼저 삼위하나님의 정체성을 깨닫고 인정하고 묵상하고 경배하고 이게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첫째단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체성을 제가 세 가지로 한번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째는 존재적인 하나님의 정체성 존재적인 측면에서 이분은 삼위하나님이시다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누가 만들어 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한시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네 번째는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네 가지를 존재론적 속성이라고 제가 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것을 묵상하는 겁니다, 
고백하고 묵상하고 이것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속성은 사역적인 속성을 하나님의 정체성에서 사역적인 속성 중에서 하나는 이분은 창조주 되신다, 두 번째는 전능하시다 
세 번째는 전지하시다 그다음에 무소부재하시다 
이 네 가지를 우리가 계속 묵상하고 인정하고 세 번째로 상품적 속성 상품적으로 하나님은 누구신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다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다 
이 네 가지를 우리가 또 묵상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정체성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우리가 뭘 해야 됩니까, 나의 정체성을 항상 고백하고 그것도 제가 열두 가지로 해놓았는데 조금 길지만 간단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나는 원죄 때문에 피조물의 한계성 때문에 창조목적대로 살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겁니다, 
나는 창조목적대로 살지 못하는 존재다 
두 번째로 그러므로 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며 사는 존재다 세 번째는 그런데 나는 창조목적대로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네 번째로 그런데 내 속에 쓴 뿌리가 있어서 내가 이렇게 살지 못한다, 
이런 존재다 이 쓴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다섯 번째로 팔복의 삶을 살아야한다 성화의 삶을 살아야한다 여섯 번째로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 하는 존재다 일곱 번째 말씀의 검 영의 양식입니다 
말씀의 검 이것이 필요한 존재다 여덟 번째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되는 존재다 아홉 번째로 나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이게 나의 정체성입니다, 
열 번째로 나는 이 세상에서 언젠가는 나를 떠나서 낙원에 가는 존재 그 소망이 있는 존재다 이개 나의 정체성입니다, 
열한 번째는 천국에 가면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계층사회라는 것을 항상 믿고 있는 존재 열두 번째는 나의 사명이 내 족속과 또 타 민족에게 이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라고 전파해야 되는 존재라는 겁니다, 
내가 이런 나의 정체성이 있는 다음에 세 번째로 간단하게 우리는 어떤 존재냐면 예수님이 이런 분들에게 지상계명과 지상사명에 순종하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체성 나의정체성 그다음에 지상계명과 사명에 순종하는 그러한 나의사명 이것을 하는 분을 보고 하나님이 너희들이 나를 영화스럽게 하는구나, 이렇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본다는 겁니다, 
우리 지상계명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수직계명입니다 
수직계명은 창조주만 섬겨라 그리고 수평계명이 있습니다, 
지상사명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내 민족과 타 민족에게 전 하여라 하나님께 영광 드려야 된다는 것을 이것을 전해라 이것이 지상 사명인 겁니다, 
그럼 결론적으로 질문이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나요, 이렇게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복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사도는 무엇을 하는 분들인가 언제 이 복음을 준비하셨나, 우리가 이제 예수님하면 먼저 떠오려는 것이 뭘까요 
예수님하면 나에게 떠오려는 게 뭘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하면 먼저 떠오려는 게 이겁니다 아! 예수님이 나에게 창조목적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하셨네요, 이걸 먼저 우리가 떠올려야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창조목적을 가르치려고 이런 희생을 하셨네요, 
수고 엄청나게 하셨네요, 예수님이 피 범벅이 되셔가지고 피조물들에게 온갖 수욕을 당하시면서 창조목적을 우리 눈높이 교육으로 시키기 위해서 위에서 확성기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우리 피조물에게 내려 오셔가지고 눈높이 교육으로 우리에게 창조목적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그리고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들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뭐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수직계명이다 이 말은 뭡니까 창조주만 사랑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목적에 전념하라는 겁니다, 
여기에 전념하다보면 수평계명은 그냥 따라오고 또 지상사명도 그냥 자연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제일 중요한 게 수직계명입니다, 
창조목적에 내가 집중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만 떠오르는 게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겁니다, 
그러면 복음하면 떠오르는 것이 뭡니까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복음하면 구체적으로 아하!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님께 나에게 창조목적을 깨우치기 위해서 예수님이 계획하신 거구나 그러니까 복음 속에 하나님의 복음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요 이 복음 속에는 피조물의 존재가치가 창조목적에 순응하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삼위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이것을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특수한 하나님의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는 이것을 하는 그러한 은혜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크리스천 중에서 제가 볼 때는 한 10%정도 되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서는 남은 자들 헌신 자들 내가 사랑하는 자들 이러한 여러 가지 표현을 써놓았습니다, 
거기 보면 우리가 믿음의 세 단계가 있습니다, 
NO1. NO2. NO3 했잖아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창조목적에 관심도 없고 창조목적에 전혀 생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약60-70% 기독교인들은 그런 것 같습니다, 
성경도 읽지 않고 교회는 다니지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교회 다니는 겁니다, 나 크리스천이다 하고 이것도 못 고칩니다, 
그러다가 이 세상 끝나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혼자서 주님 왜 이럴까요, 전능하신 분이신데 전부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목적에 순응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왜 가만히 계세요 혼자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세미한 음성으로 나에게 주님이 깨닫게 하는 겁니다, 
아하! 저 동네가 계층사회구나 그러니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는 되었지만 창조목적대로 생각도 안하고 거기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대 부분이겠구나 하나님이 아마 그렇게 하신 것 같다, 라고 혼자 한번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위로를 받습니다, 또 NO2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열심히 성서공부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전도 선교하는데도 목적이 뭐냐면 내가 잘되는 겁니다, 우리가 그것을 기복신앙이라 그럽니다, 번영신학이라 그럽니다, 나 때문에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 자녀가 잘되는 거 내가 출세하고 내 소원이루기 위한 그 수준에서 끝나는 기독교인들이 또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열심히 하는데 그러니까 자기의 이해관계가 조금 틀어지면 교회 안에서 그냥 얼굴에 화가 나 있고 나 이교회 떠나래 그러고 나 알아주지도 않아  나에게는 도움이 안 돼, 
이러면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에게 관심이 있습니까, 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꽤 됩니다, 왜 이런 사람들을 주님이 많이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NO1사람들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이런 분들은 천국에 가면 중간계층에 있지 않나 하고 혼자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은 바울 같은 사람들 또 2천년 동안에 많은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소수의 사람들은 저쪽 세계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 보는 눈이 나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다 이 세상은 잠깐 있는 세상이다 시간 속에 잠깐 있는 세상이고 그러면서 나의 본 고향은 저 동네다, 라고 믿고 저 동네에 가면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을 믿는 사람들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의 사람은 소수인 겁니다, 이 사람들은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면 창조목적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영광보다도 창조주 되시는 그분에게 영광 드리는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들이나 목사들이나 또는 비숍들 또는 교계 안에 있는 높은 분들은 자칫하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영광을 위해서 자기 이름 날리기 위해서 자기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그러한 일들을 많이 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인 겁니다, 여러분들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게 안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저의 딜레마입니다 왜냐면 이 창조목적을 알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이름 날리지 말아야지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욕심 부리지 말아야지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이익을 위해서 주님을 섬겨야지 이것이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내가 이 비밀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도 그러는 겁니다, 자기가 이것을 깨닫고 보니까 이것은 하나님나라에 미스터리라는 겁니다, 본인이 그러는 겁니다, 
내 이상으로는 이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내 이상으로는 이것이 정리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본인이 나중에 영적으로 정리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이 신비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7천년 이라는 긴 시간을 우리에게 던져주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7천년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준비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을 보시면 그분의 교육기간이 우리를 향한 교육기간이 얼마나 깁니까, 광대하신 겁니다, 이분이 우리를 향한 훈련기간이 광대한 겁니다, 엄청나게 크신 분이 십니다, 이 거시적인 틀 안에서 장기적으로 그런 안목을 가지고서 하나님이 우리를 트레닝 시키는 프렌을 짜십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개미처럼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그러고 나의 입장에서 내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내가 이해하려고 그러고 이 하나님을 자기가 평가하고 이릅니다, 이 하나님이 크신 하나님이시니까 저놈의 개미가 뭐라고 떠들어도 웬만하면 발로 밟아 버리면 되는데 그래도 봐주는 겁니다, 
우리가 공부 좀 하고 좋은 학교 다니고 학위를 받고 까부는데 그 까부는 자체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는 가만히 놓아  두는 겁니다, 
내가 만난 너무나 크신 분이십니다 이 피조물들아 까불지 말라 이놈들아 그러다가 나중에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별난 약 다 쓰고 유명하다는 의사 와서 진찰한 다음에 아래층 영안실로 내려가는 겁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함부로 까불지 말아야 되는 겁니다, 이 창조주 앞에서는 주님께서 이런 시각을 가지신 분이신데 이분은 목표지향적인 분이십니다, 철저하게 자기가 목표를 설정해 놓고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창조주로써 적당히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도 이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분명히 목표를 가지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이 목표를 분명히 가르쳐주시고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닮은 자녀들은 최소한 이런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점점거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다음에 목표지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삶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도 이걸 가르쳐주는 겁니다, 
고린도전서13장사랑 장 있잖습니까, 사랑 장에서 하신 말씀 중에서 구체적으로 하는 말리 이겁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그러는 겁니다, 
이 오래 참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큰 천사 장으로부터 구원계획을 받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겁니다, 
그렇지만 목표가 있는 겁니다, 목적이 있는 겁니다, 
창조목적을 피조물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오래 참으시는 겁니다, 
이 피조물들이 별나게 까불어도 웬만하면 다 들어주는 겁니다, 
똑같이 우리가 이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면 이제 오래 참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바울에게 사랑은 모든 것을 다 참는다는 겁니다, 
어떤 상항에 와도 참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시각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큰 시각을 가지면 저 사람 지금 조금 잘못되는 구나 저 사람이 저렇구나, 
내가 큰 틀 안에서 내가 안아 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을 내가 견딜 수 있고 바랄 수 있고 믿을 수 있다는 겁니다, 조그만 나에게 불편하면 팍팍 거리고 하는 사람은 아직도 이 시각이 부족하다, 라고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연습을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성서 공부하는 목적이 이런 하나님의 시각까지 나를 이끌어 가는 여기 까지 가는 게 우리가 성서 공부하는 목적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인간적인 갈등도 일어나고 있고 물질적인 어려움도 있고 또 건강적인 어려움도 있고 가정에 어려움도 있고 직장에 어려움도 있고 이 어려움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어려움입니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는 우리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어려움들입니다, 문제는 이 허락하신 어려움을 내가 어떻게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하나님의 복음적인 차원에서도 큰 그림 속에서 이 어려움을 볼 때 그 어려움이 자기도 모르게 용해가 되는 겁니다, 시각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로마서8장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랬습니다, 이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수직계명을 지키는 자는 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돈 좋아하고 명예 좋아하고 자기가 최고고 자기가 우선인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 됩니다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합해서 어려울 때도 인간적인 갈등이 있을 때도 건강문제가 있을 때도 자녀문제가 있을 때도 그가 알고 보면 다 하나님께서 좋게 만들려고 나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하시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어떤 문제가 있어도 은혜가 있고 평강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의 편지는 항상 이것을 강조합니다, 
이분이 경험했기 때문에 오늘도 말씀 중에서 나오잖아요, 
예수님이 바울을 통해서 하는 말이 너희들아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 안에서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노라 한 마디만 한다면 이런 은혜 있는 사람은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전천후 조리개가 우리에게 있는 겁니다, 
전천후 조리개가 그래서 이런 문제를 보고는 시각을 바꾸는 겁니다, 
우리에게 사탄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시각을 가지지 않게끔 못하게끔 자꾸 요구를 합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시각을 약하게 만드는 겁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복음에 대한 시각이 약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시각이 약하기 때문에 영의 눈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눈이 감기거나 어떤 사람은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또는 어떤 사람은 난시 원시 또는 색맹 그래서 복음에 약한 겁니다, 
조리개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또는 복음을 변질시키면 다른 복음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을 저주합니다, 
요즘 와서는 종교다원주의적인 복음 복음을 변질시키거나 현혹시키거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종말 때 살고 있기 때문에 사탄은 우리에게 복음을 약하게 하거나 또 주객을 전도시키거나 또는 복음을 현혹시키거나 이런 일들을 크리스천 안에서 하게끔 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지만 주님께서 종말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수님이 예언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계획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계획 속에서 우리가 말려 들어가면 안 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에 강해져야 합니다, 
나만 강해지면 됩니까, 안 됩니다 내 민족에게 이것을 외쳐야 되고 타 민족에게 이것을 우리가 외쳐야 되는 사명이 있는 겁니다, 
바울이 그래서 이런 사람이 사도고 이것을 행하는 사람을 총괄적으로 복음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이곳에 계신 예수님 2천 년 전에 사도바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에 이분이 예수님을 만난 20년 후에 복음의 신비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희들도 이제야 복음의 신비함을 깨닫게 해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받은 이 복음 이것을 주변 우리 민족들에게 우리가 전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 바울에게 주셨던 그 은혜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은혜와 평강이 항상 넘쳐나는 우리가 되므로  우리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이 부모님들의 이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저들도 언젠가는 이 은혜를 받는 그 대열에 합류시켜 주시므로 저희들을 통해서 저희 가정을 도와서 삼위하나님께서 영광 홀로 받아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9K78n8NA4P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