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강, 로마서의 저술배경과 과정(롬1:17) 2014년3월9일 말씀
오늘부터 제가 로마서 말씀을 같이 나눌 텐데 오늘 말씀 제목을 제가 로마서 저술배경과 과정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같이 말씀을 나눌 텐데 초신 자들에게 이해가 조금 쉽지 않을 수도 있고 그동안 우리가 고린도전서공부도 했고 사도행전공부도 그동안에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어느 정도 정돈이 되어야지만 오늘 말씀이 이해가 쉬워집니다,
로마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째 로마서1장에서8장까지의 부분이 기독교에 아주 핵심 되는 구원론 교리를 다루는 장입니다 그리고는 9장에서부터 11장까지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과 두 족속들 관계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
거기에 대한 말씀이 9장10장11장에 있습니다,
그다음에 12장부터 마지막16장까지는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라는 측면에서 바울에게 주신 말씀을 바울이 기록한 겁니다, 그것이 나머지 12.13.14.15.16장입니다 그래서 세 부분으로 로마서는 구분되어 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9장10장11장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웹사이트나 다른 CD에 들어가면 거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때가 되면 더 보완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로마서 전체적인 부분을 섭력을 간단히 하고 그래서 오늘에는 로마서의 아주 첫 번째 부분인 로마서의 저술배경과 과정을 심도 있게 이야기한 겁니다, 이렇게 마음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로마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서는 성서중에 꽃 봉우리다 그럽니다,
꽃 봉우리 꽃 중에 아주 꽃 봉우리 어떤 분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로마서는 성서가 산맥으로 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서 창세기는 이정도 높은 산이고 그다음에 출애굽기는 이정도 높은 산이고 이렇게 해서 높이가 이렇게 있는데 로마서는 그중에 제일 높은 산봉우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쉽게 표현하면 에베레스트 산꼭대기다, 라고 보시면 됩니다,
로마서가 그만큼 히말라야 산 정상 성서중에서 이런 성서가 로마서다 이만큼 로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루터라는 사람은 1483년에서 1546년까지 살았던 루터는 우리가 알다시피 종교개혁을 한 분입니다,
이분이 로마서에 대해서 강해한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말을 써놓았습니다, 제가 이분의 말을 인용하여 드리겠습니다,
이분이 뭐라고 써놓았냐면 로마서는 신약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성서이며 가장 순수한 복음서다, 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이분은 크리스천은 로마서에 있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다 알아야하며 기억해야하며 매일 생명의 떡으로 삼아 먹어야한다,
라고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만큼 로마서의 중요성을 루터가 말했습니다,
칼빈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빈도 1509년에서 1564년까지 살았던 분인데 루터보다 약간 뒤에 태어난 분입니다 약20년 정도 차이가 있는 분인데 이분의 로마서 주석에 보면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만약우리가 로마서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면 성서에 가장 심오한 보물단지의 문을 연 것과 같다, 라고 표현을 칼빈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로마서의 중요성을 피력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유명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 교리를 정립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유명 인사들이 로마서를 통해서 예를 들면 첫 번째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이 어거스틴은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카톨릭의 교리를 만든 분입니다, 이분은 354년에 태어나서 430년에 주님나라에 간 분입니다,
이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은 본래 아주 방탕하였습니다,
북아프리카 히포(Hippo)라는 도시는 지금은 북아프리카 알제리라는 나라에 있는 도시입니다,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분인데 그러니까 얼굴이 조금 검은 분이십니다 이분이 그렇게 방탕하였는데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이분이 주님 앞에 나오기 시작해서 나중에 로마까지 갔다가 로마에서 이태리 밀란까지 갔다가 유명한 암브로시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밀란에 교부인데 이분의 설교에서 깨진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32살 때 이분이 말씀 속에서 깨져가지고 어느 정원에서 혼자서 묵상하고 있는데 성령의 음성이 이분에게 들려오는데 로마서13장13절에서14절의 말씀을 이분이 받은 겁니다, 그 말씀은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이 말씀에 완전히 뒤집어 진분이 이분입니다
어거스틴이 자기 참회록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참회록146페이지에서 153페이지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만큼 어거스틴도 로마서를 통해서 깨졌습니다,
우리 알다시피 마틴 루터도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분이 그래가지고 항상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크리스천은 크리스천인데 로마 카톨릭 종교개혁전일입니다,
육신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가지고 이분이 21살 때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길은 뭐냐면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사가 되려고 결정하고 그래서 이분이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가서 열심히 금식도하고 기도도 해보았지만 이 두려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점점 성경공부를 많이 해서 이분이 학위까지 받고 이분은 이제 유명한 비텐베르크 대학교입니다,
거기에서 나중에 종교개혁을 할 때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종교개혁이 이루어 졌거든요, 그 대학교에 신학교수 까지 된 사람인데 이 문제를 해결을 받지 못했던 겁니다, 그리고는 그런 가운데 시편을 주석으로 썼습니다,
시편을 1513년에서1515년에 종교개혁이 1517년입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2년 전에 시편주석이 끝났습니다, 시편주석을 썼지만 소위 아카데미 화 하게 학자는 되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죽음에 대한두려움 심판에 대한 두려움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이어서 로마서주석을 쓰기 시작하는 겁니다, 1515년부터1516년에 쓰다가 로마서1장17절에서 깨져버린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1장17절이 마틴 루터가 깨진 말씀입니다 뭐냐면 17절에 그랬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는 구약에서 하바국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하바국2장4절의 말씀을 인용하는 겁니다,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1장17절 말씀 다시 말하면 믿음이 있음은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히브리서11장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육신에 죽음에 대한두려움도 없어지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이분이 로마서1장17절을 통해서 이분이 완전히 새롭게 된 겁니다 그래가지고 용감하게 로마 가톨릭을 향해서 대항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면죄부를 팔아서 연옥에 갔다가 나중에 거기에서 이런. 이런 수고를 한 다음에 거기에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로마 가톨릭에 신앙에 대한 반발의식이 생겨나면서 잘못되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불씨를 일으켰던 로마서1장17절 말씀이 이분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약200년 동안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특히 신학자들에게 이 칼빈의 경험 어거스틴의 경험을 전수시켰습니다,
로마서에서 그래서 이제 루터도 루터교를 만들고 칼빈은 개혁교단을 만든 겁니다, 칼빈에 의해서 칼빈의 제자인 요한 낙스가 장로교단을 만든 겁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개혁자들의 신앙이 로마서1장17절 말씀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리고는 약200년 후에 유명한 요한 웨슬리가 나타난 겁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분입니다, 요한 웨슬리가 자기 동생 찰스 웨슬리하고 홀리클럽이라고 경건클럽이라는 클럽을 만들어 가지고 이분들은 경건운동을 아주 강하게 실천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 공부해야 되고 금식도 해야 되고 죄를 짓지 말아야 되고 구제행위도 해야 되고 아주 경건주의 운동 그래서 홀리 무버먼트(movement)를 이분들이 열심히 하였습니다,
소위 종교행위를 열심히 하는데 이분이 마음에 평화가 없는 겁니다,
이렇게 열심히 종교행위를 하는데도 죄의식이 있고 마음에 평화가 없고 이러다가 런던에 웨슬리에 관해서는 아주 유명한 올드 게이트 스트리트라는 런던에 있는 길 이름입니다, 거기에 교회가 하나 있는데 모라비안이라는 하나의 기독교 교단 중에 조그만 선교 많이 하는 교단인데 이 모라비안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장면을 보고는 거기에서 이분이 로마서1장17절 로마서에 관한 강해를 듣다가 깨져버린 겁니다,
그래가지고 구원은 선한행위 종교행위를 통해서 구원 되는 게 아니고 온니 크라이스트(only christ)예수님의 구원사건 외에는 구원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분이 온니 크라이스트(only christ)라는 거기에 완전히 빠져가지고 감리교단을 만든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제는 구원은 받았지만 성결하게 살아야 된다며 성결은 예수님 다음으로 놓고 그래서 성결운동을 예수님을 기초로 해서 시작한 겁니다,
그전에는 사람의 노력으로 성결한 다음에 예수님을 만날 것이다,
라고 그랬는데 예수님을 먼저 통해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나에게 성결하게 살 수 있도록 능력을 주는 것이지 사람의 노력이 먼저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깨달음을 가지게 된 겁니다,
제가 서론적으로 말씀하였지만 기독교의 유명 인사들이 그의 다 로마서를 통해서 주님의 메시지를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만큼 로마서가 우리에게 강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시작해서 로마서 말씀을 같이 이분들이 느꼈던 그런 수준은 안 되겠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까지 가면서 우리가 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공부할 내용 중에 첫째가 뭐냐면 로마서는 누가 썼느냐 그러면 우리가 근방 대답할 수 있는데 로마서1장1절에 보면 그 말씀이 그대로 나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하면서 로마서의 저자가 사도바울임을 분명히 1장1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신학자들은 그럽니다, 그렇게 써놓았지만 혹시 아닐 수도 있다 항상 그런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보면 사도바울의 편지들을 쫘악 보면 그분이 가지고 있는 신학의 테두리가 있고 뼈다귀가 있는데 로마서에서 이야기하는 바울의 신학에 뼈다귀가 그 안에 테두리를 보면 똑같습니다, 바울의 다른 편지들과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빼도 박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누가 썼다,
바울이 썼다, 라고 우리가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편지를 썼으면 누구에게 쓰느냐 수신자가 누구냐 이겁니다 수신자가 누구나 할 때는 여기에 보면 그 당시에 이분이 쓸 때가 언제냐면 주후57년입니다, 이때 이미 바울은 로마에 가지 않았지만 이분의 제자들30여명의 제자들은 두란노 서원 출신들입니다, 주후54년이나55년 되었을 때 이미 로마로 파송되어 가 있었던 겁니다,
그 제자들만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이미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소위 예루살렘교회 출신들이 이미 거기까지 가서 영적후예들이 제자들이 로마에 가서 아마 여기저기 가정교회들을 세웠음이 틀림없습니다,
바울과 바울의 제자들이 로마에 가기 전에 그러니까 지금 로마서가 57년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사건이 언제입니까,
주후30년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진 것이 31년에서33년 정도 되거든요 그 후부터 이분들이 퍼졌으니 어디까지 갔겠습니까,
터키와 그리스보다 로마까지 갔을 겁니다,
그래서 주후32년에 퍼졌다고 그러면 지금 이게57년이니까 57년 빼기32년 하면 약25년입니다, 한25년 동안 이미 기독교인들이 퍼지면서 분명히 로마에도 여기저기에도 조그만 중국가정교회처럼 가정교회들이 있었을 겁니다,
똑같이 우리가 보다시피 고린도교회 안에 벌써 네 파가 있었던 겁니다,
누구파입니까 바울 파 아볼로 파 그다음에 베드로 파 그다음에 예수님 파 그러듯이 이미 베드로의 영적제자들도 거기에 가 있었던 겁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도 그 안에 있었고 또 아볼로는 알다시피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통해서 성경공부를 많이 해서 그 쪽으로 간 사람인데 벌써 이미 자기 파를 하나 만들어 놓은 겁니다,
고린도교회에 아볼로 파 이런 것을 볼 때 고린도교회가 그렇지만 로마교회도 보면 그 안에 여러 영적 존재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편지를 쓸 때는 수신자들이 그러면 누구겠습니까,
수신자들이 바울의 제자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영적 줄기에서 만들어진 기도교인들도 다 대상이 되었을 겁니다,
이런 걸 염두에 두시고 그다음에 대상 중에 큰 대상이 뭐냐면 이방인들이 한 그룹이 있는 겁니다, 이방인들도 보시면 오늘날 로마라는 것은 뉴욕처럼 세계센터였기 때문에 시리아출신기독교인들도 거기가 있고 안디옥 교회 또는 터키출신기독교인들도 그쪽에 가 있고 마케도니아출신들도 가 있고 헬라출신들도 가 있고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 당시에 로마에 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지금 제가 말하는 시리아나 터키나 마케도니아나 이럴 때 보면 바울도 그렇지만 항상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 일부도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도 있었거든요 그런 사람들도 로마로 가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로마에는 두 그룹이 있는 겁니다,
각 나라 출신의 이방인기독교인들과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기독교인들도 있었던 겁니다, 로마에 두 그룹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이 모든 역동적인 부분을 생각하시면서 성령님이 글을 쓰게 한 겁니다, 다시 말하면 수신자들이 이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겁니다, 특히 크게 대변한다면 이방인기독교인들과 또 유대인기독교인들을 양쪽을 놓고서 쓰신 겁니다,
그런데 같은 기독교인들인데 이방인과 유대인의 기독교인을 보면 생각이 다른 겁니다, 생각이 왜 다르냐면 이방인기독교인들은 그 안에도 두 가지 기독교인들이 있는 겁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이냐면 율법을 강조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총회를 한 것 기억나시죠,
바울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도 바울에 대하여 반기를 드는 그룹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한 그룹은 뭐냐면 유대인기독교인들은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강한 겁니다, 유대인기독교인들은 어떻게 강하냐면 구약에 율법을 잘 지켜야만 된다, 아니면 아니다 바울이 가르치는 것이 잘못되었다,
라고 가르치는 소위 이런 유대인기도교인들이 더 많았던 겁니다,
이런 상항 속에서 바울이 로마서를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지금 쓰신 겁니다, 그러면서 이방인들 사회에서도 그렇고 또 로마에 있는 유대인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뭐냐면 유대인들아 너희들은 이 엄청난 복음을 왜 받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너희들 소수만 이 복음을 받지 나머지 유대인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데 그렇게 방해꾼으로써 유대인들이 그런 짓을 하는데 너희들 어떻게 된 거냐 그러면서 이분들 사이에서 이런 신학이 있는 겁니다,
소위 안티 세미티즘입니다, 반 유대주의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약 때는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이었지만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너희들은 저주받은 민족이다,
라고 보는 안티 세미티즘 기독교인들 특히 이방인들이 많은 겁니다,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에 안티 세미티즘들이 로마 카톨릭에 미리 들어갔고 주욱해서 정교회 희랍정교회 시리아정교회 애굽정교회 에티오피아정교회 나중에 개신교가 생기면서 칼빈도 안티 세미티즘 루터도 안티세미티즘 이 안티세미티즘이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은 저주받은 사람들이고 이런 사고를 가지고 신학 교리를 만든 것이 계약신학이라고 그럽니다,
커버넌트 디오로지(Covement theology)라 그럽니다,
계약신학의 가장 핵심 중에 하나가 이스라엘민족은 완전히 저주받은 민족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개종해서 예수님 앞에 오기 전에는 저주받은 민족이다 너희들에게는 특별한 은혜가 없다 이렇게 보는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히틀러 같은 사람도 나오고 그동안에 유대인들을 많이 공격해왔던 겁니다, 그러다가 19세기와가지고 계약신학에서 세대주의 신학이라고 이 사람들은 친 유대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했다 회개해야 된다,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들이고 구약 때도 마찬가지고 신약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가지고 이스라엘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더 어려움을 당한다, 이러면서 친 유대사상의 신학이 그때부터 시작이 된 겁니다, 이런 배경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냐면 로마교회에 보면 이 안에 친 유대주의적인 사람은 아주 소수고 대부분이 반 유대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냥 이분들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저주한 민족입니까, 안 그러면 유대인들은 왜 이런 모양입니까,
라고 질문을 하니까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이 로마서9장10장11장입니다 여기에 대한 질문의 보배스러운 진주가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겁니다, 수신자는 누구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로마에 있는 이방인크리스천들과 또 유대인크리스천들 그럼 저술 장소는 어디냐면 이것은 바울이 3차 여행을 53년에서 57년까지입니다 그런데 55년에 바울이 어디에 있었냐면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56년까지 두란노 서원을 개설해가지고 교육을 시킨 것이 약53년에서 55년까지 약2년 정도 집중적으로 두란노 서원에서 이분이 이렇게 사역을 하면서 이분이 어떤 일이 있었냐면 예루살렘교회가 기근을 만나가지고 아주 고생하는 소식을 들은 겁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그래서 이분이 예루살렘교회를 도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영적으로 빚을 진 교회가 예루살렘교회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분들은 바울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분들을 도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케도니아에 있는 빌립보교회 또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 여기에다가 이분들이 연락을 한 겁니다, 내가 들릴 테니 너희들 특별헌금을 조금해라 우리가 예루살렘교회에 빚진 자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분들에게 헌금을 해야 되겠다고 명령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분이 뭐라고 그랬냐면 내가 이제 들릴 테니 내가 가면 헌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 말을 하고는 마케도니아로 56년 후반기 정도에 떠난 것 같습니다, 빌립보교회에 들려서 헌금을 각출하고 데살로니가교회에 내려가서 헌금을 각출해서 집어넣고 그리고는 고린도교회에서 헌금을 다 각출하고 이분이 고린도에 계시는데 로마교회에 문제점들을 보고를 받은 겁니다, 고린도에 계실 때 그게 57년 봄 쯤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성서에 보면 사도행전20장3절에 보면 고린도에 3개월 계셨다 그랬습니다, 헌금을 각출하러 갈 때 3개월 계셨다 그랬는데 3개월 계실 때 뭘 하였냐면 이분이 고린도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들을 57년에 고린도 전 후서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썼는데 그 문제점들이 잘 이루어지는지 점검하려 내려 간 겁니다,
점검을 하는데 3개월 걸렸던 모양입니다,
점검하면서 이분이 거기에서 주님의 말씀을 많이 받는 가운데 3개월 동안에 로마교회 문제점들을 받고는 그때 로마서를 쓴 겁니다,
57년 봄에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쓰는데 로마서15장26절에 보면 내가 이들에게서 다시 말하면 마케도니아 분들 고린도 분들에게서 예루살렘에 가지고 갈 돈을 이미 받았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분이 고린도에 계시면서 이미 돈을 받았다는 말을 로마서 쓰시면서 하셨습니다, 그 말은 뭐냐면 로마서를 언제 쯤 썼느냐면 57년 봄쯤 다시 말하면 고린도를 떠나기 직전에 썼다, 라고 보는 겁니다,
왜냐면 이래가지고 이분이 여기서 떠나가지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로마서를 쓰시고는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직접 배타고 가지 않으시고 다시 마케도니아로 올라갔다가 다시 드로아로 들렸다가 드로아에서 에베소에 들리려고 하는데 에베소에 오면 큰 일 납니다,
당신을 죽이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선생님 그 밑에 있는 밀레도로 오십시오, 그래서 밀레도에 가서 에베소장로님들이 다 와서 밀레도에서 이분이 고별 설교하는 장면아시죠, 그래가지고 배를 타고 가이샤랴로 가가지고 가이샤랴에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게 3차 여행 마지막인 겁니다,
이때 우리가 볼 때 57년 가을쯤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이 그러면 제가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복잡합니다,
이걸 미리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3차 여행이 언제쯤 끝났습니까, 57년 어디에서 끝났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끝난 겁니다, 그게 57년 가을정도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 한번 55년에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 후서를 쓰던 이야기를 잠깐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성령님이 이분에게 고린도교회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성령님이 이분에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어디에서 가르쳐 줍니까 에베소에서 고린도 전 후서는 에베소에서 썼습니다, 그게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공부를 가르치고 그 중에 30여명을 골라서 로마에 이미 파송했을 때입니다 30여명의 이름이 로마서16장에 나옵니다, 그분들을 파송시킨 후 같습니다, 고린도교회 문제점들이 나오는데 우리 주욱 보면 고린도교회 문제점들이 뭐냐면 우선 분열이 있었던 겁니다, 아까 말한 대로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입니다,
바울생각은 고린도교회는 내가 1년 반 거기에 있었고 내가 정성을 드려놓았는데 이 안에 전부다 내 제자인줄 알았는데 보니까 그 안에 아볼로 제자도 있고 그리고 베드로 파도 있고 예수님 파는 할 수 없지만 이분이 마음이 자기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입니다, 성령님이 다 아시는 겁니다,
성령님이 바울의 자존심이 깎인 것을 사용하셔서 바울이 아볼로와 자기와의 관계 속에서 별로다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1장2장 3장4장입니다,
아볼로와 나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이런 교만스러운 말을 쓴 것이 고린도전서 처음4장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바울의 이런 심정을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교회가 5장에 보면 음행문제가 있었고 6장에 보면 세상법정에 가서 송사하는 일들도 있었고 그다음에 7장에 가서는 혼인문제 그 교회 안에 독신들도 있었고 부부관계 문제들도 있었고 과부문제 미혼자 또 헌신된 미혼자는 결혼 안 해도 된다고 이런 문제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거기에 주욱 나오면서 이분이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그 교회문제를 설명하는 겁니다, 8장에 가서는 그 교회안에 우상섬기는 우상제물을 먹는 분들 우리와 같이 조상제사 지내는 사람들도 그 안에 있었고 이런 것을 우리에게 다 계시해 주는 겁니다, 우리에게 바울을 통해서 왜냐면 2000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보면 이런 고린도교회모습이 여기 저기에 다 있습니다,
지금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9장에 가서는 이 교인들이 자기의 사도권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는 겁니다,
바울의 자존심을 건드는 겁니다, 사도 권 저 사람은 우리 헌금 가지고 자기마누라와 같이 여기저기에 우리 돈 쓰면서 다닌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분을 공격하는 거기에 대해서 변명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중에 거기에 대해서 또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0장11장12장에서 자기의 사도 권을 변명하는 이야기가 3장을 할애합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11장에 가서 그러는 겁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매도 많이 맞고 감옥에도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춥고 배고프고 내가 보통사람이 아니다 며 자기의 그런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12장에 가서는 애들아 내가 옛날에 14년 전에 내가 다시 말하면 다소에서 41년입니다 내가 3층 천 낙원에 갔다 온 사람이다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겁니다,
이게 일반적인 소위 하나님의 종들의 모습입니다,
유명한 목사님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다 있는 겁니다,
이런 걸 바울을 통해서 다 보여 주시는 겁니다,
바울의 약한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그렇지만 내가 교만하지 말라고 나에게 사탄의 사자를 주어가지고 내가 몸이 빌빌할 때 나에게 은혜가 더 강하고 너가 더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 이러면서 이분이 자기 자신의 사도 권을 변명하면서 또 자기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는 모습들입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나는 신학적으로 그래도 너희들 보다 낫다 그러면서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 모든 은사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최고 은사가 뭔지 아느냐 사랑이다, 라고 설명해주고 그것뿐 아니라 부활에 대해서도 체계 있게 이야기해주고 바울이 이런 갈등 속에서 주님께서 이분에게 많은 것을 이렇게 계시해주었습니다,
계시해주면서도 이분은 지금 55년이니까 딱 20년 후입니다
20년 동안 우리 속된 말로하면 아리랑고개를 많이 넘었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이 훈련을 많이 하시고는 어느 정도 성숙되었을 때 쓴 것이 고린도 전 후서입니다, 55년이니까 3차 여행 그의 끝날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현장에서도 경험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1차 여행 때 엄청난 고생을 하고 2차 여행 때도 그렇고 3차 여행 끝나니까 신학적으로 어느 정도 정립이 되려면 현장에서 경험을 많이 주님이 시키신 겁니다, 이러니까 이분이 이렇게 고린도 전 후서 같은 글을 쓸 수가 있게끔 주님이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분이 처음 글을 쓴 것이 1차 여행 끝나고 이분이 예루살렘총회에 내려가서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당신이 전하는 복음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며 갈라디아 쪽에 특히 그러니까 변명을 하고 그 안에서 절충안이 나오는 장면이 그러니까 바울이 1차 여행을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전했는데 거기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느낀 겁니다, 아 이게 쉽지가 않구나, 기존 기득권그룹들 열두제자들의 이분들의 텃세가 대단하구나,
하는 것을 어느 정도 느낀 겁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잠깐 엎드리는 장면인데 이분이 그러면서 예루살렘총회에 갔다 와서 갈라디아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 49년 똑같은 해에 갈라디아서를 쓴 겁니다,
갈라디아서를 쓰면서 이분이 하는 소리가 1장17절18절에 뭐냐면 나는 모태에서 이미 나를 예수님의 종으로 이미 선택받은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갈라디아서2장에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유명하다는 사람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심지어 바나바까지 별것 아니야 내가 더 세다 하면서 그런 식으로 쓴 것이 갈라디아서2장입니다,
그게 49년입니다, 1차 여행 끝나고 와서 목에 조금 힘주고 이분이 알고 보니까 베드로나 저양반보다 주님이 나를 더 쓰시는구나,
면서 교만의 교만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편지를 보면 그 어른들을 그냥 막 무시하는 식으로 말하는 게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들도 다 이런 게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런 걸 다 보여 주시는 겁니다,
특히 선교지에 다니면서 보면 이런 교만 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 걸 우리스스로도 점검하기를 바랍니다, 바울도 그랬으니까 그러다가 바울이 이제 3차 여행을 떠날 때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빌립보교회 개척하고 데살로니가교회 개척하고는 고린도에 와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자기가 개척한 데살로니가교회 사람들이 자기를 또 꼬투리를 잡는 겁니다,
그 안에 사람들이 그러니까 주님이 바울이 또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상처 입은 바울의 마음과 똑같이 그분들에게 너가 편지를 쓰라 그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51년52년에 데살로니가전서를 쓸 때 보면 갈라디아서 쓸 때보다 훨씬 겸손기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분을 주님이 이렇게 만드신 겁니다, 너희들 만나서 반갑다 너희들 내말 잘 들어서 고맙다, 이러면서 격려해주는 말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나의 면류관이다 하면서 아주 겸손기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바울이 그러면서 나중에 뭐냐면 너희들 나중에 종말에 관한 이슈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비난받고 있는데 그러면서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비추어 주는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쉬지 말고 기도해라 너희들 서로 용납하여 주어라 또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라 하면서 항상 감사해라 하면서 데살로니가전서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주욱 나오는 겁니다, 많이 겸손해졌습니다,
바울께서 그런데 그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종말에 관한 것을 가지고 계속 꼬투리를 잡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화가 나가지고 이분이 데살로니가 후서를 쓴 겁니다,
후서가 있다면 바울이 화가 났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바울의 심정을 가지고서 바울이 이렇게 주님을 섬기는데 로마서를 저술케 하는 동기와 배경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겁니다,
로마서는 고린도 전 후서를 쓰시고 2년 후에 다시 말하면 완전히 3차 여행을 마무리하는 현장구경 많이 하고 경험 많이 하고 현장에서 엄청난 핍박을 받아가면서 복음을 전했던 이분이 낮아진 상태에서 이제 주님이 어느 정도 바울이 이제는 그릇이 어느 정도 된 겁니다,
로마서를 쓸 만한 그릇이 어느 정도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그랬습니다, 로마서는 꽃 봉우리라 그랬습니다,
에베레스트 산봉우리다 그러니까 하나님나라의 신비를 깨달으려면 그릇이 되어야 되거든요 그릇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어느 정도 주님이 보실 때 그릇이 되었다 하니까 로마서를 이분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런데 로마서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로마교회 문제점들이었기 때문에 편지를 쓰게 된 겁니다, 30여명의 자기 제자들이 로마에 가서 이렇게 로마의 여러 가정교회들을 보니까 그 안에도 여러 파들이 있는 겁니다,
크리스천 안이 다양한 문화권 속에 있는 사람들인 겁니다,
예를 들어서 보니까 이태리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리스문화권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마케도니아출신들 또는 헬라출신들 또는 아가야지방 고린도지방남쪽 이런 자방출신들도 있고 또 터키문화권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아시아인들 본도인들 갈라디아인들 갑바도기아인들 길리기야인들 터키지방 이쪽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는 시리아문화권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안디옥 교회출신들 다마스크스 교회 또 이렇게 보니까 얼굴이 까만 아프리카문화권에 있는 사람들도 로마에 와 있는 겁니다,
예컨대 애굽사람들 에티오피아사람들 리비아사람들 이렇게 해서 섞어가지고 그 안에 여기저기에 가정교회들이 있는 겁니다,
로마 안에 거기다가 한 특출한 무리가 뭐냐면 유대인그룹들이 또 있는 겁니다, 유대인그룹들 이렇게 이스라엘문화권에 대부분이 디아스포라유대인들입니다 이 문화권들이 그래서 여기 보면 이방인문화권들을 통째로 하나로 바울은 이방인들이라 그러는 겁니다, 이방인들이라 그러면서 이쪽에는 유대인들 그래서 이제 이방인들이라는 말도 하고 영어로는 스텐저(stranger)이라고도 낯선 사람이라 하고 헬라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헬라 말을 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분은 그냥 헬라인들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크게 구별하면 헬라인들과 유대인들 이스라엘사람 이 두 그룹이 있는 겁니다, 이 두 그룹이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신학적인 이슈들이 서로가 다른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이방인들이 유대사람들을 보면 너희들 저주받은 민족이다 자꾸 공략도하고 이 사람들은 우리는 아니다 그러면 맞다 그러고 이런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신학적인 충돌이 로마교회 안에서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로마서9장10장11장을 쓴 겁니다, 이것이 성서적으로 어떻게 우리가 이해되어야 되나 유대인들에 대한 그다음에 공통적으로 당신들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에 대한 구속 론 이것을 좀 공부하자 그래서 1장부터8장을 심도 있게 가르쳐준 겁니다, 로마서에서 그리고는 당신들은 이런 삶을 살아라,
영적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라, 이것이 12장부터16장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바울이 쓴 로마서를 신학자들이 어떻게 보느냐면 신학총서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안에는 구원론도 들어있고 성결론도 들어있고 선교론도 들어있고 이스라엘 론도 들어있고 또 예배론도 들어있고 이안에 여러 신학의 모든 이슈들이 기독론이 들어있는데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왜 이제야 이 총서를 쓰게 하느냐 이게 중요한 우리의 질문입니다,
왜 근방 1차 여행 끝난 후에49년에 갈라디아서를 쓰기 전에 왜 이런 총서를 먼저 써주어야지만 신앙 생활할 수 있었는데 왜 총서를 이제야 쓰게 하였는가, 더 심하게 보면 바울이35년에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 왜 그때 총서를 주지 않았느냐 입니다, 그랬으면 교회가 복잡하지 않을 텐데 이게 우리질문이고 저도 질문하는 겁니다,
미리미리 총서를 주었으면 교회문제가 많이 해결되었을 텐데 왜 뒤늦게 주시느냐 입니다, 그런데 총서를 주시기 전에 소위 부분적인. 부분적인 신학이슈를 다루는 조그만 책자들은 만드셨습니다, 예를 들어서49년에 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는 율법 론과 은혜 론을 비교하면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는51년에 데살로니가 전 후서 이것은 그 안에 재림 론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는55년에 고린도 전후서는 소위 목회 론이 들어있고 사도 론이 들어있고 또는 우상숭배론 또는 은사론 부활론 등 총서 비슷하게 나갔지만 그 안에는 깊은 총서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로마서를 하나님이 쓰시게 하는 겁니다, 1.2.3차 선교 여행을 해서 현장에서 다 경험하게 하시고 또 현장에 다니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사람들에게 미움도 받아보고 감옥에도 들어갔다 나왔다 해보고 이분이55년에 고린도후서11장23절에서27절에 그분이55년까지 개종해서20년 동안 자기가 어떤 어려움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보면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자기가 고생한 이야기가 쫘악 나옵니다, 이러면서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이것이 다 보약이었다는 겁니다, 이분이 이렇게 소중한 로마서를 쓰기위해서는 로마서를 쓸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일을 준비시킨 겁니다,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어느 정도 준비가 다 되어서 로마서를 쓰니까 이 로마서가 기독교2000년 역사 속에서 신학교리 정립에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정교회 애굽 정교회 에티오피아정교회 시리아정교회 로마가톨릭교회 러시아정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다 이 교단들이 심지어는 세대주의들까지 이분들의 신학을 정돈하는데 주춧돌이 된 것이 로마서입니다 주님께서 또 우리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는 게 있습니다,
첫째 질문이 뭐냐면 아까 제가 말한 부분과 연계되는데 왜 개종 후22년이나 지난 후에 로마서를 쓰게 했을까 이게 첫째 질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 베드로나 요한이나 안드레 또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나 마가 이런 분들이 책을 썼지만 신학총서는 쓰지를 못했습니다, 이분들이 책을 썼지만 다 단편적인 신학이슈들만 서술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전 후서입니다 목회서신들입니다
요한은 예수님 기독론을 썼습니다, 요한복음 요한1.2.3서 또 요한계시록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요한은 그래도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마태 같은 사람은 마태복음 예수님의 왕 중의 왕이 되심을 마가는 고통 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누가 같은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지만 역사적인 시각을 주셔서 누가복음을 썼잖아요, 예수님의 탄생부터 예수님의 승천까지의 스토리 그러니까 주전4년에서 주후30년까지 역사를 그리고 이어서 사도행전을 주후30년에서 주후60년까지 로마에서 가택연금까지 그러니까 30년 스토리 30년 스토리를 누가가 썼습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그런데 이분들은 다 신학총서를 쓰지를 못했습니다,
왜냐면 신학총서를 받아서 쓸 만한 그릇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의 신비를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릇이 그래서 제가 한번 바울이 그릇 준비과정을 한번 상고 해보았습니다, 바울이 이런 그릇이 되도록 주님이 어떻게 준비 하셨는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그릇이 되도록 모태에서부터 택정한 겁니다, 이런 그릇이 되도록 바울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모태에서이미 택정한 겁니다, 갈라디아서1장15절에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문제는 모태에서부터 택정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두 번째로 보면 이런 택정을 받은 사람인데 주님께서 나중에 말씀했습니다, 우리 잘 아는 아나니아가 예수님에게 받은 메시지가 사도행전9장15절입니다, 이 사람 겁내지 말라 이 사람은 내가 이제 이방인들과 왕들과 유대인지도자들까지 가서 나의 정체성을 전하는 자다 이미 말했잖아요,
이미 예정을 받은 자입니다 사도행전9장15절에 이렇게 예정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모님부터 주님이 이 예정 속에서 주님이 준비시킨 겁니다,
부모님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도 되겠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부모님부터 어떻게 준비시켰는가, 부모님이 디아스포라가 되도록 한 겁니다, 길리기야 지방에 다소에서 거기가 교육도시입니다, 아주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 부모님을 소위 그쪽으로 가서 이민생활을 하게 한 겁니다,
교육도시 또는 다 문화권 속에 집어넣어서 다 문화권사람들에게 복음을 잔해야 되는 사람이기에 부모님부터 준비시킨 겁니다,
빌립보서3장5절에 보면 바울이 그랬습니다,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지파 중에 가장 특별한 지파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다시 말하면 엘리트그룹이다 그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음에 나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부모로부터 이런 배경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부모님부터 거기다가 이제 로마시민권자다 그러는 겁니다,
로마시민 권자는 어떤 사람이 로마시민 권자냐면 외국인이 로마시민이 되려면 그 당시에 로마시민이 되려면 로마제국의 그 넓은 제국의 시민 권자가 되는 것은 대단한 겁니다, 오늘날 미국시민 권자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겁니다, 로마시민권은 어떻게 로마시민이 되는가,
로마시민이 아닌 사람은 로마제국에 공헌한자가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겁니다, 사도행전22장28절에 돈을 가지고 살 수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군인출신이 이렇게 아버지가 이미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시민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 덕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이 덕도 주님이 다 준비한 겁니다, 왜냐하면 로마시민이 되어야지만 로마제국을 비자 없이 또는 누가 와서 뭐라고 그래도 큰소리치면서 다닐 수가 있었던 겁니다,
거기다가 이 부모님들은 소위 유대교종교의식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들 바울을 태어나서 8일 만에 할례를 시킨 겁니다,
그뿐 아니라 이 부모님들이 교육열이 강했습니다,
우리가 상상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최고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화 생으로 집어넣은 겁니다, 그래서 아주 엘리트교육을 시켰습니다,
사도행전22장3절에 보면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부모님들은 왜 아들에게 이렇게 했을까요, 이 부모님의 생각은 예수님이 나타나가지고 우리 아들 그렇게 훈련시켜라 그리고 우리아들 나의 종으로 만들겠다, 그랬습니까,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부모님들의 생각은 뭐냐면 우리 똑같은 저나 여러분들의 생각입니다 그 당시 부모님들은 우리도 이렇게 엘리트그룹이니 우리아들도 엘리트로 만들자 그래서 최고 공부를 시키고 최고공부를 시키려면 유대인이니까 구약 유대교 율법을 다 공부시키고 우리가족이 그것을 또 실천하고 그래가지고 가말리엘에게 우리가 보내가지고 그것도 미리 빽을 쓰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아마 과외공부 많이 시켰을 겁니다, 그래서 아마 돈 보따리 들고 가말리엘에게 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그래서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그래가지고 간 모양인데 아버지 생각은 우리아들이 당대에 최고 율법학자가 되었으면 가말리엘처럼 이런 꿈을 가졌을 겁니다,
안 그러면 거기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서 공의회 회원이 되었으면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그것이 아버지 어머니 꿈일 겁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대제사장까지 되었으면 이게 아마 이분의 꿈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분들이 그런 꿈을 가진 것을 보면서 씨익 웃었을 겁니다, 그래. 그래 너희 꿈이야 맞아 그렇지만 나는 다른 계획이 있어 그런데 다른 계획을 이야기하면 이 사람들이 놀라자빠지거든요, 안 됩니다,
우리 아이는 대제사장 시켜야지 여기 저기 다니면서 매 맞고 얻어맞고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가 그럴려고 그렇게 투자했습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사야서55장8절에서9절 말씀우리 잘 아는 말씀입니다,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걸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그런데 인정까지 하려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을 하는데 우리는 못하거든요 이와 마찬가지로 그런 나약한 부모님이지만 하나님이 그래도 인정해 준 겁니다,
인정해주고는 너 아들 그냥 열심히 공부시켜라 그래가지고 첫30년은 엄청난 세상 공부를 시킨 겁니다, 첫30년은 이분이 언제 태어났습니까,
주후5년에 태어나서 주후35년에 개종하였으니까 그래가지고 이분이 무슨 훈련을 받았습니까, 예수님 만나기 전에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고 다 문화권 훈련을 시켰습니다, 헬라문화 수용력과 감수성을 가지게 한 다음에 타문화 선교사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훈련을 시킨 겁니다, 또 언어훈련을 시킨 겁니다, 히브리어 자기 모국어 잘하게 하고 헬라어 잘하게 하고 라틴어까지도 그러니까 이런 훈련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이 글을 쓸 때 아주 훌륭한 헬라말로 서신을 쓸 수가 있었습니다,
헬라 말은 이게 아주 세미한 단어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아주 예리한 단어입니다, 우리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비밀을 담을 수 있는 언어가 헬라 말입니다, 그다음에 히브리말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이분에게 유대종교훈련을 강하게 시킨 겁니다, 종교의식 그러니까 이분을 유대종교를 공부할 때는 은혜는 아닙니다, 다 행위입니다 은혜무용론입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배우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율법 이스라엘의 역사 시편 예언서에 통달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이것을 통달했기 때문에 나중에 주님께서 신약에서 편지를 쓰실 때 쉽게 자기 편지 속에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는 겁니다,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는 겁니다, 이것이 이거다 너가 구약 공부했지 이것이 이 뜻이야 그래서 구약의 그 뜻을 다 인용하는 겁니다,
실력을 다 키워준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에게 뭘 시켰느냐면 엘리트고등교육을 시켰습니다, 가말리엘의문화생이 되어가지고 어떤 훈련이냐면 지식을 배양시키는 겁니다, 혼의 그릇을 넓히기 위해서 그리고는 이성의 눈을 배양시키는 겁니다, 거기다가 분석능력을 배양시키고 통찰력을 배양시키고 그래서 혼의 그릇을 높게 넓게 만들고 길게 만들고 깊게 만들고 그래서 혼의 그릇을 크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되니까 천국의 신비를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된 겁니다, 그 과정이 30년 걸렸습니다,
처음 30년이 되었을 때 예수님의 시각에서 보면 이제는 혼의 그릇이 되었구나. 이제는 나하고 만나자 그래가지고 다메섹에서 이제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만났는데 그때부터 주님이 또 훈련시키는 겁니다,
왜냐면 혼의 그릇이 커졌지만 그 속에 잡다한 쓴 뿌리들은 그대로 있는 겁니다, 옛 성품들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질투심 화내는 것 미워하는 마음 교만 하는 마음 또 엘리트공부를 했으니까 그 안에 갖고 있는 자기 자존심 못된 성품들이 그대로 그 안에 있는 겁니다, 그것을 훈련시켜야 되거든요 그것을 뽑아내어주어야 되거든요, 그것을 뽑아내는데 갈라디아서를 썼을 때만 해도 그런 부분이 안 뽑아진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갈라디아서를 썼을 때만 해도49년에 보니까 마음속에 베드로에 대한 미움도 있었고 질투심이 있었고 바나바에게 신세를 졌는데도 바나바를 우습게 알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알기를 뭐같이 알고 이 사람이 교만기가 있었던 겁니다, 그 표현이 갈라디아서에 보면 나옵니다,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실수하지 않게 하고 예수님 닮게 만들고 성령의 9가지 열매 맺게 하고 이 말은 뭐냐면 영성을 크게 하고 영성을 높게 하고 길게 하고 깊게 하고 그래야지만 천국의 신비를 나중에 로마서16장에 보면 이분이 천국의 미스터리를 자기가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천국의 미스터리 순수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님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 팔복에서 마음이 가난 해져야 되잖아요,
마음이 가난해지려면 용광로 속에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베드로도 용광로이야기 하잖아요, 이 바울도 용광로 속에다가 집어넣은 게 다메섹사건입니다, 그냥 조용히 와서 야! 나 누구다 너 나하고 같이 가자 이렇게 안 했습니다, 용광로 속에 팍 집어 넣은 겁니다, 완전히 시각장애자가 되어 버린 겁니다, 아니니아라는 이름도 없는 사람한데 무릎을 꿇고 가서 기도 받아야 되는 자존심 다 상하는 일들을 주님께서 시키시는 겁니다,
이분이 아나니아에게 가서 눈을 뜨면서 예수님을 보게 되면서 시각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아하 구약의 여호와하나님이 이분이시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아나니아에게 안수 받고 눈을 뜨자 말자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전했던 겁니다, 그러다가 그분들에게 핍박을 받아가지고 이분이 거기에서 어디로 갑니까, 아라비아로 내려가는 겁니다,
아라비아는 성서에서 보면 시내 산이 있는 곳입니다,
갈라디아서4장25절에 아라비아로 내려가서 시내 산이 모세가 율법을 받은 곳이고 엘리야가 내려갔던 곳이고 이분이 거기서 3년 동안 외롭게 고독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이렇게 거기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식은 예루살렘지도자들은 다 들었지만 한 사람도 방문해서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도 야고보도 요한도 속으로 자기네끼리 미팅하면서 뭐 어떻게 했다고 우리교회 다 흩트려놓은 나쁜 놈이라고 이분들이 바울에 대한 미움이 있고 원수라고 할까요, 우리교회를 흩트려놓은 그놈하며 욕을 하였을 겁니다, 바울은 속으로 저분들에게 미안한 겁니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개종까지 했는데 한사람이라도 와가지고 고생한다, 축하한다, 이런 말도 없습니다, 서로 관계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속으로 끓는 겁니다, 내가 기독교계에 들어왔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계의 왕초라는 저 사람들이 나를 꼬투리 잡으려는 소리가 자꾸 들려오고 그러니까 외로운 겁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친구 제사장들도 자기를 만나면 죽이려고 그러고 이제는 오도 갈데없는 완전히 코너에 몰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보니까 구약을 알기 때문에 여기에 모세가 옛날에 있었던 곳이다 그러면서 이분이 여기서 엘리야 생각하고 모세생각하면서 3년을 여기서 이분이 주님과 관계를 생각하면서 고독 겸손훈련을 3년을 시키신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분이 3년을 지나서 다시 다메섹에 올라가서 있는데 다메섹형제들이 그러지 마십시오, 빨리 예루살렘에 내려가서 거기 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들 만나서 인사하십시오, 내려가서 바나바의 소개로 야고보와 베드로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만나지도 않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난 후에 예루살렘에서 이분이 보름 동안 또 열심히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이 이 사람을 죽이려고 하니까 몇몇 형제들이 가이샤랴에 데리고 올라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고향다소로 올라갔습니다, 고향에 올라가서 외롭게 가족들도 이제 무시할거고 당신 어쩌다가 이제 폐인이 되어 왔느냐 그럴 겁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돈을 많이 드려가지고 고등 교육시키고 미국유학 보내고 박사학위까지 다 받았는데 폐인이 되어 여기 왔구나, 이놈아 이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가족들도 배척하고 주변에 친구들도 다 배척하고 이상한 이단에 들어가 가지고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며 그러면서 주님이 38년에 다소에 갔는데 41년에 3층 천 구경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사람을 위로해주는 겁니다, 이봐라 히브리서11장의 그 믿음을 가져라 이 세상은 잠깐 있는 나그네 세상이다 내가 너를 특별히 쓰려고 이렇게 준비했다 조금 있으면 3층천에 올라간다, 3층천을 다 구경시켜주고 그러면서 자꾸 머리를 들려고 하니까 내가 육체의 가시를 줄 테니 가지고 다녀라 그러면서 이분은 영성이 조금씩. 조금씩 훈련이 되는 것이7년 걸린 겁니다,
자기고향 다소에서7년 동안 영성훈련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우리 주님이 바나바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나바야 저분 불려다가 안디옥교회에 부목사로 삼으라, 그래서 알겠습니다, 하고는 찾아가서 데리고 와서 안디옥교회에서 1년 동안 같이 있는 장면 우리 다 아시죠, 그러니까 이분이 예수님을 만나고 3년 플러스7년 10년을 이분이 고독훈련을 받으면서 쓴 뿌리들을 어느 정도 많이 정돈 했을 때 이제 사역자가 되어가지고 나이 40세에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이분이 사역자가 되어가지고 1차 여행을 다닐 때 보시면 끊임없이 평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가서 예수그리스도이야기를 하면 유대인들이 너 죽여 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일들이 1차 여행 때 2차 여행 때 3차 여행 때 계속해서 있는 장면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3차 여행이 그의 끝날 때 쯤 되어서 이분이 개종 후 22년 동안 이 훈련을 받고는 이제 로마서를 쓰는 계기가 된 겁니다, 로마서를 쓸 때 쯤 되면 이분이 어느 정도그릇이 혼의 그릇은 커졌지만 그 속에 있는 쓴 뿌리들이 많이 제거 되었습니다,
로마서를 쓸 때 이 쓴 뿌리들이 제거 되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순수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영의 눈이 이렇게 뜨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영의 눈이 그러니까 팔복의 사람이 되는 장면입니다 팔복의 사람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핍박은 계속 있습니다,
여덟 번째도 핍박입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한 자가되고 그러면서 말씀에 주리고 목말라하고 긍휼한 사람이 되었고 마음이순수해지고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고 핍박을 계속 끊임없이 받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소금의 역할을 합니다, 이 세상에 빛의 역할을 하고 이런 일을 하면서 이분이 마태복음5장에 보면 누가 너에게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 뺨을 갖다 대고 속옷 달라면 겉옷주고 오리 가자면 십리가고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하여기도하고 바울이 이 수준까지 된 겁니다,
지금 로마서를 쓸 때쯤 되어서 이 수준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산상수훈에서 6장에 보면 누구에게 칭찬받으려고 하고 금식을 해도 그렇고 이런 수준이 아닌 겁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나와 주님과의 관계는 바울이 이 정도 되었을 때 주님이 로마서를 쓰게 한 겁니다, 로마서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한 겁니다,
이제 결론적인 말씀을 드릴 텐데 결론이 중요합니다,
바울을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서 57까지면 예수님만나서 22년을 주욱 훈련을 시켰는데 그 안에 또 30년 훈련시키고 그러니까 전체가 그분에게 30년 플러스 22년 하면 52세까지 훈련을 시키면서 보면 다 과정이 있었습니다,
과정 그래서 저는 이런 시각으로 한분 한분을 제가 봅니다,
여러분들을 제가 보면 저분은 어느 과정 속에서 이런 훈련을 받는구나, 저나 여러분들은 계속 주님이 저나 여러분들에게 뜻이 계신데 그 뜻을 이루시기위해서 훈련시키는 과정 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다 이 과정 속에 들어가 있는데 과정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바울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다 마라톤경기 하는 겁니다,
마라톤경기 마라톤선수입니다 바울이 이 개념을 가졌습니다, 마라톤을 달리는데 우리 삶이 마라톤을 달리는데 사람마다 속도가 다릅니다,
속도가 내 속도에 맞추어서 소리 지르면 안 됩니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릅니다, 두 번째 지금 마라톤경기 하는데 위치가 다릅니다,
이 사람은 지금 5km에 있고 저 사람은 10km에 있고 15km에 있고 위치가 다릅니다, 그다음에 단계가 다릅니다, 마라톤경기에서 거기다가 가는데 지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평지를 달리는 사람이 있고 언덕을 달리는 사람이 있고 내리막길을 달리는 사람이 있고 오르막길을 달리고 다 지형이 다릅니다, 그다음에 어떤 사람은 환경이 다른 겁니다,
마라톤경기에서 땡볕에 달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얼음길에 달리는 사람이 있고 보통 길에 달리는 사람이 있고 눈길을 달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시원한 길을 달리는 사람이 있고 비가 오는 빗길을 달리는 사람이 있고 구름 낀 길 가다보면 다 만나는 길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면 저분은 얼음판을 달리고 있구나, 조금 있으면 빗길을 만나겠구나, 조금 있으면 쉴 수 있는 길을 만날 수 있겠구나,
이것을 보는 시각을 우리는 가져야 됩니다, 이런 시각을 가질 때 모든 사람을 보고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내 어떤 시각 나의 어떤 기준에 의해서 저 사람을 정죄하고 저사람 왜 저래 저사람 성경공부를 10년을 했는데 왜 아직도 저모양이야 이런 사람도 가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가지고 그냥 찬물 끼얹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각이 이렇게 마라톤시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어떤 사람은 늦게 가는 사람 어떤 사람은 빨리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을 보는 시각의 유연성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늦게 가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엉덩이를 밀어주는 겁니다, 또 언덕위에 올라가서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을 밀어주고 안 그러면 손잡고 같이 가기도하고 그냥 메고 있는 배낭을 내가 같이 메어주기도 하고 이런 큰 시각을 가진 사람은 모든 사람을 내가 안아줄 수 있는 겁니다,
아! 저사람 지금 이 수준에 있구나, 이 수준에 있구나,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썼을 때만 하여도 이 시각이 없었습니다, 그 유명한 소위 말하는 유명한 분이 갈라디아서를 쓸 때만 하여도 바울이 이 시각을 가져서 쓴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바울에게 말한 겁니다, 너도 똑같은 놈이야 이놈아 그렇지만 내가 말하는 것 적어라 그래서 쓴 것뿐입니다, 바울이 자기가 잘나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쓴 게 아닙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유명한 5장22절에 성령의 열매는 하면서 주욱 나오잖아요, 바울이 그 성령의 열매를 맺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바울이 성령의 열매 중에 제 생각에는 별로 안 맺었습니다, 왜냐면 나머지 편지들 보면 안 맺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너 쓰라 똑같습니다, 우리 목사들도 이런 설교 저런 설교하잖아요, 설교할 때 성인 같지만 아닙니다, 주님이 그 사람 입을 통해서 말하는 것뿐이지 그 사람도 보면 똑 같습니다, 어떤 때 보면 말하는 것 반대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그 목사님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님이 자꾸 말해라 말해 하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우리는 단편적인 저 목사가 저걸 보면 별로 아닌데 말은 잘해 이렇게 보는 것은 시각을 마라톤 같은 큰 시각을 보지 않아서 그렸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이렇게 보면 갈라디아서를 유심히 보세요, 바울이 그럽니다, 갈라디아사람들 보고 3장3절에 너희들 어리석다 이놈들아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의 행위로나 그렇게 꾸짖는 겁니다, 우리가 볼 때 바울은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맺게 하느냐 아닙니다,
그 양반도 안 됩니다 똑같습니다, 바울이 그럽니다,
갈라디아서5장16절부터 나오는 말 우리 잘 아는 말입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자기도 그러면서 주님이 그 사람을 그냥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바울을 보면 자기도 그랬습니다,
왜 이러면서 이분은 자기가 해 놓고 자기가 이것을 또 고민하는 겁니다,
이러다가. 이러다가 로마서를 쓸 때쯤 되니까 어느 정도 조금 자리 매김을 한 겁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됐다 아까 제가 잠깐 말했지만 갈라디아서 쓰고는49년51년에 데살로니가 전 후서 쓸 때 보면 많이 감정이 이렇게 부드러워진 것을 우리가 편지 속에서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은 바울도 인생의 과정 속에서 어머니 태에 있을 때 이미 예정 되었지만 이런 환경을 다 가지고 훈련을 시킨 다음에 주님이 오래 기다리시고 기다리시다가 이제는 로마서를 쓸 때쯤 되니까 이제는 어느 정도 로마서에서 주실 하늘의 비밀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니까 이분이 이제는 이것을 받도록 하셨구나,
이 메시지를 나는 받은 겁니다, 여러분들도 나도 이제 끊임없이 지금 마라톤경주 하는 사람처럼 이 과정 속에서 있는 겁니다,
바울은 그릇이 어느 정도 다 깨끗하게 준비되니까 이 성경을 받으니까 루터나 칼빈이나 어거스틴이나 웨슬리 같은 사람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해서 이분들로 하여금 교단을 만들고 교리를 정립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훈련을 받아 왔는데 또 우리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게 바울이 잘나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할 때 뭡니까, 아! 이분은 은혜를 받았구나, 하나님이 이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런 부모님을 만나게 하시고 이런 교육받게 하시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구나, 그래서 이분이 이렇게 변화를 받아서 소위 히브리서11장의 믿음까지 가는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게 나그네 세상이고 우리고향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으면 저 세상이 나그네 세상이 아니고 저 세상이 우리 본 교향이다 그리고 저위에 올라가면 우리는 저 세상에서 상급 받고 저 세계는 계층사회구나 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믿음 이게 히브리서11장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바울처럼 이렇게 훈련을 받은 사람인데도 바울처럼 세 번째 믿음인 히브리서11장 믿음까지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또 꽤 많은 겁니다, 훈련을 이렇게 받았는데 두 번째 믿음에 속해 있는 겁니다,
이 세상 좋고 이렇게 훈련받아도 이 세상만 눈에 보이고 이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잘되고 이 세상에서 편하게 오래 사는 이 생각만 하는 겁니다, 저 세상 생각은 전혀 안하고 이런 사람들도 꽤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여야 됩니까,
그럴 때 이렇게 밖에 소화가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지를 않으셨구나, 그렇다면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 사람은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열심히 성경공부하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데도 성품이 아직도 변화지 않는 아직도 그대로 이 세상성품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말로는 그러는데 안 변화는 겁니다,
미운사람 있고 누가 보면 그냥 한 마디로 쏘아 붙이고 그 사람 조금 부족한 것 보면 뭐라. 뭐라 떠들고 다니고 이렇게 소란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데도 그러면 이런 사람은 언제 바울처럼 될까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안 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하! 이분은 은혜가 없구나, 라고 생각을 혼자서 하고는 은혜가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그 사람을 안아 주어야지 왜냐면 은혜 없는 사람을 은혜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격려해주고 그 사람이 누굴 꼬투리 잡고 그래도 알았어. 알았어. 그래놓고 말지 그것 가지고 싸움하고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그대로 인정해주는 겁니다,
격려해주고 사용해주고 그 사람이 변할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그것은 주님이 하시는 겁니다, 내가 고치려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저도 해보았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냥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안아주는 겁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이곳에 계신 예수님 저희들이 오늘 사도바울에 대한 그분의 삶을 조명하여 보았습니다, 바울에게 은혜를 베푸셨기에 이런 바울의 모습이 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 저희들에게 바울에게 주셨던 이 은혜를 주셔서 날로. 날로 마라톤선수가 발전되고 마지막 종착역에 갈 수 있는 힘을 받듯이 주님 저희들에게 이 마라톤선수의 이 시각을 주시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 속에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에 사람들을 정죄하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과정 속에 있는 사람을 끌어주고 밀어주고 하는 이러한 시각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도 이 시각을 뒤 늦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은혜로 이 시각을 그분에게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 시각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NI8ieo-Qn_Q
'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 > 로마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6강, 복음과 성만찬 (0) | 2019.10.03 |
---|---|
5강, 로마서1장3절,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 (0) | 2019.10.03 |
4강, 로마서1장1절-7절, 복음이란 무엇이며 왜 주셨는가, (0) | 2019.09.22 |
3강, 예수그리스도의 사도 바울 (0) | 2019.09.22 |
2강,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 (0) | 2019.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