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사도행전 강해

32강, 사도행전19장23절-41절, 에베소의 소요

변명섭 2019. 12. 12. 19:25

 

 사도행전 강해 제32강, 에베소에서의 소요 (행19:23-41)





사도행전 강해 제32강, 에베소에서의 소요 (행19:23-41)
오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19장23절부터41절입니다, 
23 그 때쯤 되어 이 도(길)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절에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사람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지난시간에 공부했던 내용을 간단하게 한번 정리 하겠습니다, 
바울이 3차 여행 때 주후55년에 에베소에 있을 때 일어난 사건인데 바울이 55년에 이일이 일어날 때 55년 말쯤 고린도후서를 쓰신 후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2년 계셨습니다,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 사역을 하고 그의 끝날 때 능력이 나타나서 그분의 능력 사역한 것은 지난시간에 우리가 다 공부하였습니다, 
능력사역이 있었고 고린도에서 글로애라는 사람이 에베소로 와서 고린도교회 문제점을 바울이 보고를 받아가지고 고린도전서를 에베소에서 썼습니다, 그게 55년입니다 그리고는 학설에 의하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쓰고는 잠깐 배타고 고린도에 갔다 온 모양입니다 편지를 쓴 후에 그 편지대로 잘 지내는지 못 지내는지 확인하기위해서 가신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그 말이 안 나옵니다, 에베소에서 와서 고린도교회는 편지한 장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두 번째 편지를 쓴 게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후서를 쓰고는 이렇게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면 오늘 본문 말씀이 일어나는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면 갑자기 에베소도시에서 소요가 일어났는데 소요가 일어난 직접적인 동기가 무엇이냐면 
23절에 보시면 바울이 전했던 메시지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 도(길)라 그랬습니다, 분명히 그 도(길)로 인하여 적지 않는 소요가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동료들 바울이 지금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그 도 때문에 바울과 바울 팀들을 공격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데메드리오라 그랬습니다, 24절에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성경에 보면 은장색이라 했습니다, 
은을 가지고 세공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업을 했는가 볼 때 아데미가 바벨론종교의 창시자 리므롯의 부인이 세미라미스입니다, 
세미라미스를 헬라사람들에게는 아데미라고 불렸습니다, 
로마사람들은 뭐라고 부르냐면 다이아나라고 부릅니다, 
이 아데미 신전 안에 은으로 만든 사당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은으로 만든 사당을 제조하는 제조업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은제조업을 하면서 자기 밑에 장인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장인들을 많이 두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은장색협회 회장 같습니다, 
그래서 은장색협회 회장이 바울 때문에 화가 난 겁니다, 
왜냐면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공부할 때 저 아데미 성전 안에 은장색들이 만든 모든 사당들은 다 마귀새끼들이다 사람이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 
라고 항상 바울이 그것을 주입 시킨 겁니다, 
그러니까 이 소문이 에베소 온 시내에 다 퍼진 겁니다, 
그러면서 진짜 하나님은 예수님이다 이렇게 말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가지고 은장색 업자가 사업이 잘 안 되는 겁니다, 특히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은 얼마나 정교하게 잘 지었는지 세계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것이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 신전입니다, 
그러니까 로마나 스페인사람까지도 여기에 순례 객으로 많이 왔을 겁니다, 그 순례 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가 바울 때문에 장사가 안 되니까 협회 회원들을 다 모아 가지고 그 보고를 하는 장면이 25절부터 27절까지입니다,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7절에 이유를 두 가지로 됩니다, 
첫째 우리 업이 수치스러워질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섬기는 위대한 여신 다이아나 여신도 이 신전도 위험에 소멸될까 걱정이다, 라는 겁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회의장을 빠져나가 시내중심가를 질주하면서 분노가 가득해가지고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28절에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여 위대 하도다 하면서 외치는 겁니다, 이런 장면이 오늘 본문 속에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29절을 보시면 이분들에게 바울의 두 제자가 자기네 눈에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 제자 이름이 가이오와 아리다스고라는 두 제자입니다 이 두 사람을 잡아가지고 야외극장으로 갑니다, 에베소에는 야외극장이 아주 유명합니다, 야외극장이 원형으로 되어있고 층계로 되어있는데 약25000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야외극장입니다 지금도 그 극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면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누구냐면 가이오라는 사람은 성경에 보면 두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이오는 마케도니아출신으로 두란노 서원에 공부하려온 바울의 제자입니다 29절에 그다음에 로마서16정23절에 보면 57년에 로마서를 썼을 때 이미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가이오를 로마에 선교사로 파송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가이오가 바울의 핵심제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잡힌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고린도출신 가이오가 한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장14절에 이 가이오는 바울이 뭐라고 그랬냐면 이 사람을 내가 세례를 준 사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가이오와 처음에 나온 가이오는 출신이 다릅니다, 한사람은 마케도니아 북쪽 출신이고 한사람은 고린도출신입니다 그다음사람 아리스다고 이 사람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오늘 말씀29절에 보면 이 사람도 마케도니아출신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특별히 데살로니가출신이라 그랬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수도입니다 이분이 가이오와 같이 잡혀가지고 있는 걸 보면 분명히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상당한 바울의 신복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당시에 바울의 신복 중에 신복들은 디모데. 누가. 실라 이런 분들이었는데 이런 분들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이 잡혔으니까 에베소사람들이 볼 때는 이 두 사람이 상당한 바울의 핵심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특히 아리스다고는 성경에 보면 이 사람이 에베소에서 이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계속해서 바울을 따라서 끝까지 갔던 모습이 보입니다, 
첫째 에베소에서 이분이 마케도니아지방으로 나중에 가고 아가야지방으로 내려올 때도 이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에 갔을 때도 아리스다고가 있었던 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래가지고 나중에 예루살렘까지 바울이 갔을 때도 같이 동행했고 그다음에 예루살렘에서 배를 타고 로마까지 갈 때도 같이 동행했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사도행전27장1절2절 로마까지 가서 로마에서 1차 투옥 당할 때도 아리스다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골로새서4장10절. 빌레몬서24절에 보면 나옵니다, 
바울이 옥중서신을 쓰실 때 아리스다고가 내 옆에 있었다고 쓰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리스다고라는 사람이 가이오보다 더 유명인사 같습니다, 
이렇게 지금 두 분이 체포되어가지고 어디로 갔냐면 야외극장으로 데리고 가서 극장 무대에 세워놓은 겁니다, 
그래가지고는 30절부터 나오는 이야긴데 모든 사람들이 이 두 분을 공격을 하니까 바울은 이군중속에는 없었지만 바울이 그 주변에 있었든 것 같습니다 바울과 바울의 제자들이 꽤 많았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공부한 사람만 하여도 80여명이며 그 후에 능력사역을 통해가지고 마술사들이나 제사장 일곱 아들이 개종하였잖아요, 
그러니까 바울의 제자들이 주변에 많아 가지고 이분들이 바울을 보호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울이 성질이 급해서 자기 제자가 지금 궁중 앞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바울이 나도 저기에 들어가겠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말리는 겁니다, 바울선생님 들어가지 마세요, 
거기 들어갔다간 떼죽음 당하십니다, 바울이 들어가려고 하는 소식을 31절에 보면 에베소도시의 관리들이 돈이 많고 영향력이 있는 이런 사람들이 바울보고 그러는 겁니다, 거기 절대로 극장으로 들어가지 마시오, 당신가면 큰일 납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냐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에베소사람들인데 그러니까 이 사람들도 분명 바울을 통해서 개종된 사람이구나,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 사람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군중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바깥에서 어떻게 되는 가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무대에 세워놓고는 군중들이 두 사람에게 비난을 쏟는 겁니다, 비난을 쏟는데 여기저기서 비난을 쏟는데 비난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들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어디에 초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라고 누가가 성경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제가 이것을 보면서 이 안에 왜 비난 소리가 중구난방이었을까 그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 군중 속에 두 종류의 군중이 있었던 겁니다, 
어떤 군중이냐면 첫째 군중은 에베소사람들이나 아시아지방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군중은 유대인들입니다 이 두 무리들이 바울과 바울의 가르침을 보는 시각이 다른 겁니다, 첫째 에베소사람들이나 아시아지방 사람들이 바울을 보는 시각은 바울을 비난하는 내용은 너희들 우리사업을 건들인 놈이다 그게 첫째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섬기는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위엄을 손상시킨 놈들이다 그러니까 우리 신을 신성모독 하는 놈들이다 우리사업을 건들고 우리 신을 신성모독 하는 놈들이니까 너희들 죽일 놈들이다 하고 덤벼드는 무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분들이 소리 지르는 게 위대한 아데미여, 위대한 아데미여 하면 소리 지르는 한 무리가 있고 또 한 무리는 유대인 무리들입니다 저놈들이 우리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자기네 하나님이라고 덤벼드는 그래서 신성모독한 놈들이라고 덤벼드는 그러니까 목소리가 다른 겁니다, 소리 지르는 무리들이 그래서 32절에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또 다른 사람들은 다른 말을 외치므로 모인 사람들이 혼란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우리가 모였는지 모르겠다는 이런 말을 32절에 하였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두 무리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다른 겁니다, 우리가 FTA나 광우병 때문에 데모할 때 보면 왜 나가는지 모르고 그냥 따라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랬습니다 무리들이 아마 이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소리 지르는 과정 속에서 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이 무리 속에서 갑자기 한사람을 무대 위로 올라가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올려 보낸 사람이 알렉산더라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이 알렉산더를 무대 위로 올려 보낸 겁니다, 
이 알렉산더는 도대체 누군가 이것도 우리가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알렉산더는 유대인입니다 이분은 바울에서 성경을 배우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다 들은 사람입니다, 입으로도 시인하고 그리고 크리스천공동체 안에서 같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뒤에 와서 항상 자기 동료 유대인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저놈이 전하는 예수 그건 가짜다 그것은 신성모독 하는 가르침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항상 알렉산더는 교회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기독교인 행세를 하면서 항상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 왔던 사람입니다 특히 바울에 대해서 바울이 순수복음을 전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 알렉산더였습니다, 내부에서 부정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퍼트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 알렉산더였습니다, 이게 주후56년 때 이었습니다, 
이럴 때 바울이 나중에 디모데전서를 쓰실 때가 주후64년입니다, 
디모데전서를 쓰시면서 디모데에게 알렉산더 그놈 나쁜 놈이라는 겁니다, 
디모데전서1장20절에 알렉산더 너 그놈 조심하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디모데후서4장14절에 디모데후서는 67년에 썼습니다, 
디모데후서를 쓰실 때 이사람 조심해라 
저사람 조심해라 하면서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의 말씀을 하실 때 알렉산더이야기를 또 하는 겁니다, 이 알렉산더가 구리 장색이었습니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네게 많은 해를 끼쳤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 그 양반 조심해라 그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유대인들이 좋아합니다, 이런 성품의 사람이 알렉산더입니다 지금 이 군중소요가 있었을 때 유대인들이 너 저놈들과 같이 놀았으니까 너 나가서 저놈들과 바울의 메시지가 엉터리다, 라고 이야기하라고 잡아다가 무대 위에 올려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알렉산더 같은 사람들은 기질이 기회주의자 같은 사람 같습니다, 알렉산더가 올라가서 33절에 보면 알렉산더가 손짓을 보이면서 군중들에게 변명하는 겁니다, 변명 내용이 이 사람들이 유대인의 하나님을 신성모독 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유대인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죽여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유대 법에 의하면 유대인의 구약의 하나님을 신성모독 하면 죽이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레위기24장16절에 알렉산더가 이 말을 하니까 군중들이 보고는 저 사람이 유대인이구나, 
이렇게 된 겁니다, 자기네 편 인줄 알았더니 유대인 놈들이 그 사람을 무대 위에 세워놓고는 유대적인 방언을 하게 하니까 사람들이 저 사람이 유대인이구나, 그러니까 사람들이 올라가서 알렉산더를 잡아서 끌어 내리는 겁니다, 끌어 내려놓고 이분들이 뭐라고 그러냐면 우리의 신인 여신 다이아나 그 사람은 위대하다 그 사람 위대하다, 라고 막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지금 이 두 무리들의 관심사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 무리들이 아우성을 치게 한 장본인이 누구입니까 데메드리오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 사람은 왜 만들었습니까, 지금 이 사건과 이렇게 까지 만들어 놓은 것은 자기 돈벌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 온 도시가 난리가 나니까 에베소시장이 이걸 그대로 놓아두었다가는 자기와 시의원들이 다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해서 시장이 그 시에 사무장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너 급히 야외극장에 가서 이 군중들을 무마시키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무장이 야외극장에 가서 유대인 무리들과 에베소시민들의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니까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사무장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뭐냐면 이분은 한편을 드는 것 보다 지금 소요를 진정시키는 것에 초점을 둔 겁니다 그래서 사무장이 연설을 하는 겁니다, 35절부터41절까지가 사무장이 연설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무장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겁니다, 
우리 바울 같은 사람들 하나님의 종들 또 밑에 있는 백여 명의 바울의 제자들도 다 망할 것 같았습니다 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항상 하나님의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거나 안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이 역사를 하십니다, 꼭 이기십니다, 
그래서 보시면 사무장의 연설을 한번 들어봅시다, 
35절에 에베소사람들이여 에베소의 성인 위대한 다이아나 여신과 주비트로 부터 떨어져 나온 신상의 숭배자가 우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가 누구냐 다시 말하면 우리는 그 여신과 리므롯의 후손들 우리가 이분들의 영적후손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부인 할 수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건 때문에 경솔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내가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보니까 하면서 37절에 거기에 대한 해결책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내가 보니까 지금 여기 앞에 나와 있는 두 사람 이 사람들을 내가 보니까 우리 아데미 또는 다이아나 성전에 물건을 훔친 자들도 아니고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여신을 그렇게 심하게 모독한 사람들도 아닌데 너희들 이분들을 왜 여기에 데리고 왔느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38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데메드리오야 너 같이 여기 서 있는 너희 장인들 말이야 내가 너 네들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겁니다, 만약에 이 사람들이 물건을 훔쳤거나 또는 우리가 섬기는 여신에게 직접적으로 모독한 일들이 있다면 이렇게 데모하지 말고 법정으로 이 사람을 데리고 가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그것도 해결이 안 되면 로마총독에게 데리고 가서 고소를 하라는 겁니다, 만약에 이런 이슈가 아니라면 너 네들 우리가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시장까지도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법정에 들어가서 총독 앞에서 우리 시장님과 나도 그렇고 그분에게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발 너희들 이렇게 엉뚱한 짓 하지 말라 이런 말씀을 지금 39절40절에 하는 겁니다, 그래놓고는 이분이 일방적으로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이 데모 무산시켜라 안 그러면 혼내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집회가 무산된 사건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이것이 19장의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에베소에서 이런 대형소요가 일어났는가, 
첫째 아데미 신전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데미 신전은 우상의 본 거지고 세계7대불가사의 중에 하나이고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그러다 보니까 종교관광사업이 번창하였던 겁니다, 이것 때문에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생겼기 때문에 또 직접적인 도화선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메시지 때문에 그런 겁니다, 우상에게 도전한 겁니다, 
이걸 하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대형소요가 왜 에베소에서 일어났느냐면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하다 보면 꼭 영적대결이 있을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예수님만 이야기하면 꼭 거기에 영적대결이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 이유 중에 또 하나가 왜 대형소요가 일어났을까 이것은 바울에게 주는 메시지 때문입니다 바울아 너 여기서 장기체류하지 말라, 왜 그러겠습니까,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이상 있으면서 자기 제자들도 많이 만들고 자기 세력이 어느 정도 많아졌잖아요, 그러다보면 사람이니까 다른데 가서 고생하는 것 보다 여기서 머물려 있겠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바울이 여기서 있지 못하게 하기위해서 주님께서 대형소요를 일으키게 하신 겁니다, 왜 바울이 여기에 있지 못하게 하십니까, 
사도행전9장15절에 아나니아에게 주신 바울의 사명이 있습니다, 
바울은 한군데 머물려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 가야 됩니까 스페인까지 가야 되는 사명이 있는 겁니다, 지금 여기서 머물려있으면 안 됩니다 
앞으로 바울이 로마까지 가야되고 스페인까지 가야되는 사명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인간인지라 여기에 머물려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왕 침을 한번 바울에게 놓아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 알다시피 바울이 1차 여행 때 구보로에 갔습니다, 
구보로에 가가지고 바울이 거기에서도 머물려있으면 안 된다고 어떻게 했습니까, 박수 엘리마를 통해가지고 바울에게 핍박을 가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기는 안 되겠다 하고는 바울이 배를 타고 터키로 건너가는 겁니다, 바울이 길리기아 안디옥에 가서 핍박을 받고 루스드라 더베에 가서 또 핍박을 받고 이래서 이분이 자꾸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해서 복음을 뜨려 떨리 게 한 다음에 또 가라고 핍박을 가하는 겁니다, 
그래서 계속 밀려가면서 바울이 핍박이라는 하나의 도구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2차 여행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차 여행 때도 바울이 마케도니아 비전을 보고는 빌립보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에 오래 머물지 말라고 그래서 감옥에서 나와서 루디아 집에 가서 예배드리고는 그다음에 또 떠난 겁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에 왔는데 데살로니가유대인들은 더 핍박이 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3주 정도 밖에 못 있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이분이 또 거기서 밀려가지고 베뢰아로 왔는데 거기는 복음이 잘 전해지고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라 별 핍박이 없이 잘 하였는데 데살로니가유대인들이 베뢰아 까지 따라와 가지고 또 바울을 밀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테네로 내려 간 겁니다, 
여기 와서 주님의 뜻은 고린도까지 가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밀리는 겁니다, 고린도에서도 1년6개월 있으면서 나중에 유대인들이 핍박이 심하였습니다, 그래가지고 바울이 고린도에서 다시 에베소로 가가지고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한자리에 오래 머물려있지 못하게 합니다, 지금 3차 여행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3차 여행 때 1차2차 여행 때 방문했던 도시를 거쳐서 에베소에 와서 두란노 서원을 2년 이상 하고 있었는데 제일 큰 소요가 거기서 일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할 수 없이 떠나야 되는 겁니다, 바울도 떠날 마음이 있었지만 바울이 이제는 떠나야 되겠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러면 또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항상 뒤에 핍박이 따라 왔습니다, 바울이 왜 그랬습니까, 왜 그 유명한 바울이 그렇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바울인데 왜 가는데 마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왜 핍박이 따라 왔습니까, 왜 한군데 있지도 못하게 하고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울이 기독교의 본질을 예수님의정체성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예수님만 이야기하니까 그런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 예수님을 미워하는 그룹들이 두 그룹이 있는 겁니다, 유대인그룹과 이방인그룹들이 바벨론종교를 믿는 그룹들이 그런데 바울이 그런 가운데서도 항상 기독교의 본질인 예수님만 전하는데 그분이 전하는 모습을 일곱 가지로 제가 한번 보았습니다, 뭐냐면 바울은 자기가 믿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 첫째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바울은 담대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사람들에게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는 돌려서 비유적으로 사견으로 표현을 안 하고 직설적으로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다섯 번째로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여섯 번째로 바울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일곱 번째로 그렇기 때문에 순교를 각오했던 겁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 예수님이 누구며 기독교의 본질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비 본질을 전했다면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야기는 약간하고 그다음에 잡다한 예수님과 관계되는 다른 이야기들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왜냐면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기위해서 비 본질을 전했다면 이런 핍박이 오지를 않습니다, 
유대사람들도 좋아하고 이방인들도 좋다 우리 잘 지내자 이런 식으로 전했다면 핍박이 없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타협적이고 사람을 인식하게 되고 사람에게 인정받게 되고 칭찬받고 또는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왜냐면 본질을 약간 피해서 전하게 되면 또는 본질과 비 본질을 비빔밥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들을 때 편하다 듣기 좋다 그러면 배척. 핍박. 순교당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에베소에서 전했던 바울의 주 내용이 뭡니까 첫째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14장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다시 The Way 말하면 길인데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은 영생으로 간다는 소리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나를 통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너희들 나를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타협점이 있는 게 아닙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타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적당히 말할 수도 없는 겁니다, 이것은 절대 진리이기 때문에 절대 진리에 대해서는 목숨까지도 갖다 바쳐야 되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딴 소리하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누가는 사도행전18장25절에 그분은 예수님의 도(길) 또는 하나님의 도(길)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신데 그분을 통해야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길 하나님을 향한 길은 예수님의 길이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 누가 또 예수님을 길이라고 그랬냐면 귀신이 그러는 겁니다, 
귀신이 영계를 알고 있는 귀신이 사도행전16장17절에 빌립보에서 점치는 여자를 통해서 귀신이 말하는 게 뭐냐면 예수님은 구원의 길이다 그러는 겁니다, 저분을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 라고 귀신이 말하는 겁니다, 
이때는 귀신이 나쁜 놈이지만 좋은 말을 했습니다, 
세 번째는 베드로의 신학은 항상 여기에 초점이 가 있었던 겁니다, 
베드로후서2장2절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받을 다른 이름과 길이 없다 는 겁니다, 베드로가 철저하게 예수님 중심이었습니다, 
네 번째로 바울신학도 똑 같았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더 정돈해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이 길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뭔지 아느냐 복음이라는 겁니다, 
가스펠이라는 뜻은 굿 뉴스라는 뜻입니다, 
복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 복음이 누구라는 겁니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로마서1장1절에서6절에 그러면서 로마서1장16절에는 바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구원받는 파워가 복음인데 그 복음은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 그러잖아요, 
다시 정리하자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고 두 번째는 귀신도 이렇게 말했고 세 번째는 베드로도 이렇게 말했고 네 번째는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길을 어떻게 해석했느냐면 유대신학에서는 이 길을 이단이다 그랬습니다, 
사도행전24장14절에 놀랍게도 바울도 개종 전에는 이 길을 이단으로 본 겁니다 개종 전에 그래서 유대인들이 크리스천들을 핍박을 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22장4절에 보면 바울이 개종 전에는 이 길을 이단으로 본 겁니다 여섯 번째로 기독교역사를 보면 이 길이 가르치는 많은 이단 사상들이 있었습니다, 이 길을 변형시켜가지고 우리가 공부했지만 1세기 때는 에비오니즘이라 그래가지고 또는 영지주의 도케티즘 4세기에 와서는 이 길을 변형시킨 게 아리우스입니다 아리아니즘 그럽니다, 
17세기에서 현재까지 또 연계되어서 나오는 게 몰몬니즘. 여호와의 증인. 문선명 통일교. 신천지 등 다수 모든 이단들은 이 길에 대해서 변형을 시킨 그룹들이기 때문에 이 길에 대해서 일곱 번째로 예수님이 이 길에 대해서 종말 때 나타날 예언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4장4절5절에 똑같이 마태복음24장23절에서28절에 계시록6장1절2절에 이것을 우리가 뭐라 부릅니까, 
종교다원주의라 그러는 겁니다, 이분들은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기독교안에서 어떻게 나오느냐면 이 길을 약간 변질시키는 겁니다, 
그리고는 또는 천천히 변질시키고 희석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혼돈하고 미혹을 당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기독론이 약해지는 겁니다, 교회성장이니 학교교육이니 카운슬링이니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느냐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느냐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 가정문제 해결하느냐 이런 쪽으로 가는 겁니다, 이렇게 희석시키는 겁니다, 교회존재목적이 그런 게 아닌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그게 아닌데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더 멋있게 사느냐 행복하게 사느냐 성공하느냐 이쪽으로만 자꾸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오면 행복하다 교회 오면 기분 좋다 할례루야. 할례루야 하는데 알고 보면 예수님에 대한 초점이 희미하여 지는 겁니다, 
찬양은 할례루야 예수님 하는데 예수님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타 종교 사람도 와서 같이 앉아있으면 아름답다 보기에 좋다 타 종교와 우리가 하나가 되니까 이런 식으로 되어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이 종말 때 되면 이런 사상이 엄청나게 커진다, 라고 예수님이 예언 하시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복음 The Way가 희미해지고 혼돈스럽게 되고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교인들이 크리스천들이 복음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지고 이제는 복음에 대해서 너 목숨 바쳐라하면 안하는 겁니다, 
이 복음에 너희들 시간 돈 헌신하라면 안 하는 겁니다, 
왜 그러면 과거 2000년 동안 또 지금까지 이 길만 믿는 크리스천들이 핍박을 받도록 허락  하였나, 이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겁니다, 왜 이런 사람은 많지 않나 이겁니다 왜 오늘날 교회는 이걸 외치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바울에게도 등 따뜻하고 편하게 바울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볼 때는 예수님이 볼 때는 바울을 엄청나게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왜 생고생을 시키나 이겁니다 그 이유의 대답은 히브리서11장입니다 히브리서11장에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믿음의 선조들이 다 나와 있습니다, 
그분들이 다 어려움을 당하면서 어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는 1세기 때 유대인크리스천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1세기 때 유대인들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서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하는 편지가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11장에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는 줄 아느냐 믿음의 정의를 11장에 말하였습니다, 첫째 너희들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이 세상은 내가 잠깐 너희들을 나그네로 살도록 만든 세상이다, 라는 그 믿음입니다, 
이 세상은 잠깐 나그네 세상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지금 7000년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시간 속에 집어넣어서 우리가 나그네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나중에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11장13절에 그리고는 11장16절에 너희들의 본향은 저쪽나라다 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또 그렇게 유대인크리스천들에게 가르친 겁니다, 
그리고는 11장6절에 마지막으로 너희들 이 세상에 살다가 이 길을 외치다가 저 세상에 가면 너희들은 많은 상급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상급을 기다리면서 사는 크리스천을 보고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랬습니다, 
그런 크리스천들 보고 그러니까 바울도 이 세상에서 살면서 자기 밑에 자기 부하들 많아지고 편해지면 이 믿음을 가지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바울도 그냥 남아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끝없이. 끝없이 채찍으로. 채찍으로 눈을 높이 뜨라 이게 너 세상이 아니다 너는 언젠가는 간다, 돈이 아무리 있고 권력이 있고 지금 편하게 살아도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게 우리들입니다 내 주변에 모든 친척들 내 자녀들 다 떠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걸 착각하고는 그걸 생각 안하는 겁니다, 우리는 잠깐 이 세상에 지금 사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보고 바울아 너도 잠깐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다 눈을 높이 뜨고 나를 쳐다보고 같이 가자 그런데 바울도 사람이니까 자꾸 눈을 밑으로 보잖아요, 그러니까 핍박을 자꾸 주는 겁니다, 핍박을 받을 때 마다 눈을 위로 보면서 히브리서11장을 보라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눈꺼풀을 높이 뜨니까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바울도 이 시각이 달라지니까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들 내가 지금 감옥 속에 드나들잖아 병신 같지 나 똑똑한 사람이야 그러는 겁니다, 
고린도후서를 보면 애들아 내가 가난하게 보이지 나 부자다 나 불쌍해 보이지 나 엄청나게 행복한 사람이야 소망 없는 자 같지 나 엄청난 소망을 가진 자다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실패한 사람 같지 나 성공한 사람이야 그러는 겁니다, 시각이 달라지면 그 시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핍박을 허락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복이라는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천년 이천년 삼천년 사는 것도 아니고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이 세상에 허락하신 시간에 절반이상을 살아 왔습니다, 이제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 이러한 상항 속에서 주님 저희들이 히브리서11장에 이 말씀을 잊지 않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시각을 항상 저 세상으로 향하도록 하시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적당히 사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을 우리가 주님이 주신 뜻 가운데 멋지게 살다가 최선을 다해서 살다가 주님이 부를 때 우리는 갈 수 있는 그러한 복된 자 되게 만들어 주셔서 그러기위해서는 우리에게 환경에 어려움을 주시는 것을 오늘 말씀 속에서 베웠습니다, 사랑하는 바울도 환경을 어렵게 한 이유가 이 목적이 있음을 우리가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것은 어려움이 아니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가난이 아니고 우리는 부자임을 알게 하시고 망한 것 같지만 승리자로 불쌍한 사람 같지만 행복한 사람이고 실패한사람 같지만 우리는 성공한 자임을 자부할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이 은혜를 계속 부어주시고 우리가 바울과 같은 삶을 살다가 낙원에  올라가서 바울을 만날 때 그 기쁨을 지금부터 가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DHJUjf5bL4&list=PLPz9aN5emxOfGkkjER_gEkf6oGb5tJyRs&index=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