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제7강, 대형화 된 예루살렘교회(행4:32-6:7) 2011년4월17일 말씀
오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4장32절에서6장7절까지입니다
분량이 조금 있는 내용인데 이게 한 다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공부해야 됩니다, 첫 번째 한 부분만 제가 읽겠습니다,
4장32절부터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5장1절에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5장 마지막42절에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6장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도에 복종하니라 아멘,
이게 오늘의 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간단하게 지난시간 강의를 제가 정리하여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성전에 기도하려 들어갔다가 앉은뱅이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그일 때문에 베드로가 두 번째 설교를 솔로몬행각에서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하여 가지고 이분이 그일 때문에 공회에 잡혀가게 되는 이야기 그래서 이분이 그 체포사건 때문에 공회에 들어가서 또 예수님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것이 3차 설교였습니다,
이렇게 한번 할 때마다 교회가 점점 교인들이 늘어났던 이야기들이 지난 시간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그게 계속해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교회의 교인의 숫자는 많은데도 마음도 하나가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32절을 보시면 이분들이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 대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한 것이 아니고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 믿는 무리가 그러면 무엇을 믿는다는 소리입니까 이분들이 이것을 우리가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믿는 무리냐 하면 예수님의정체성입니다 우리가 그동안에 베드로가 설교한 1차. 2차.3차 설교 내용이 다 예수님의정체성을 외쳤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믿는 것이 무엇이냐면 예수님의정체성을 믿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정체성을 믿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무리가 예수님의정체성을 믿는 무리가 한마음이고 한뜻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똑같이 믿고 있는 무리가 한마음이 되고 한뜻이 되어야 되는데 예수님의정체성을 중심으로 해서 인간이 중심이 아니고 그런데 제가 이렇게 사도행전을 보니까 한마음 한뜻이 그 당시의 예루살렘교회 모습이 일곱 가지 특성을 가지고 한마음입니다 그냥 막연한 한마음이 아니고 일곱 가지 특성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이들의 신앙노선이 하나였습니다, 복음주의 신앙노선이었습니다 예수님중심적인 신앙노선이었습니다 예수님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신앙노선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특성은 이분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으면서 예수님의 전도사역에서의 한마음이었습니다, 반대도 있었고 핍박도 있었고 심지어는 투옥까지 당하면서도 전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이 왜 투옥을 당했습니까,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분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 이 메시지 때문에 그렸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분들의 메시지가 분명한 겁니다, 세 번째는 이분들은 서로가 동반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베드로나 요한 같은 이 지도자가 투옥을 당하고 그 당시만 하여도 그 지역 예루살렘에서는 인기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문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 인물들인데 예수님을 모시고서 가지고 있는 똑같은 비전 때문에 이분들은 인기 없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자기네가 불이익을 당하면서 까지 따라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까 동반자 의식이 있었습니다, 저분들은 내가 손해 보더라도 나는 따라 다녀야 된다, 라는 이런 동반자의식이 있었습니다, 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예수님의 이익을 추구하였습니다, 다음에 네 번째는 동반자에다가 그냥 따라만 다니는 게 아니고 기도의 동역 자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출옥하여 가지고 나올 때도 베드로와 요한이 그곳을 방문한 겁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는 이분들이 하나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교인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이분들은 히브리 파 유대인이 복음화 되어야 된다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헬라파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복음화 되어야 된다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전을 향해서 유대인복음화 막연히 하는 게 아니고 주님께서는 히브리 파 유대인을 통해서 헬라파유대인이 복음화 되어야 된다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는 복음을 우월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종교보다는 우리복음이 기독교복음이 우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은 이 복음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로 이분들은 공동체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오늘 보시면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돈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들에게 물질도움을 주었고 그 당시에는 돈 있는 사람들이 자기 밭이나 집을 팔아서 이렇게 했던 겁니다, 거기에 대표적인 인사가 한분이 나타나오는데 바나바입니다 바나바에 관해서 누가가 4장36절37절에 바나바를 부각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나바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는 겁니다,
바나바가 자기 밭이 있으매 이것을 팔아서 이 돈을 제자들 발밑에 갖다놓았다는 겁니다, 도대체 바나바는 누구냐 우리가 이제까지 많이 배워왔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바라는 것은 히브리말로 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바나바는 예언자의 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바나바의 본래의 뜻은 예언자 그런데 누가는 이분을 무엇이라고 불렸냐면 헬라어로 파라크레세오스 한국말로 격려자라는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양반을 부를 때 이렇게 불려준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본래의 이름은 요셉인데 부르기를 바나바스라 불렸습니다, 이 사람은 구보로 출생입니다,
사이프러스 안디옥에서 보면 큰 섬입니다, 사이프러스가 고향인데 이분도 디아스포라출신입니다 왜냐하면 이분의 누이가 유명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이 마리아도 제 생각에는 디아스포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루살렘교회 최초의 교회가 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한 겁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 여자의 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많은 교인들은 어디서 모였냐면 성전 뜰에서 그리고 솔로몬행각에서 모이고 나머지는 집에 가서 가정교회를 한 겁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건물이 있었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가정교회입니다 중국도 가정교회가 발달되었던 것처럼 초대교회는 카타콤교회 200-300년 동안은 건물위주의 교회가 아니고 가정교회였습니다,
교회라는 단어가 사도행전에 나오는데 그것이 우리는 건물로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에베소교회, 예루살렘교회. 빌립보교회하면 건물이 아니고 에클레시아는 예수님을 믿는 모임입니다, 건물이 아닙니다,
나중에 교회가 애굽정교회 그리스정교회 그러다 보니까 교회가 건물로 대체되어버리는 겁니다, 마가의 어머니라는 말이 어디에 나오느냐면 사도행전12장12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이라는 말은 골로새서4장10절에 나옵니다, 이렇게 두 성경구절은 암기해두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바나바가 언제 크리스천이 되었을까 이게 의문입니다 열두제자와 같이 다녔습니까, 다닐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분이 디아스포라입니다 이분이 정확하게 크리스천이 된 것은 제 생각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직후 같습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동생인 야고보도 그때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형제들 또 예루살렘에 소수의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 예수님십자가을 대신 매고 갔던 구레네 시몬도 부활직후에 열두제자들과 같이 만났던 첫 그룹들 같습니다, 그래서 그 그룹들을 열두제자들까지 다 합해서 70인 그룹이라 부릅니다, 바나바가 그래서 70인 그룹 속에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나중에 자기고향 사이프러스에서 순교를 당했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분이 책을 썼다, 라고 그러는데 히브리서를 누가 썼느냐할 때 두 학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도바울이 썼다,
라고 보는 학설이 있고 또 한 학설은 바나바가 썼다,
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2세기 때 유명한학자 데뚜리안이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오늘날 리비아 카타르고지방에 있는 학자인데 주후160년에서230년입니다, 이 사람의 주장에 의하면 히브리서는 바나바가 썼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다음에 외경에 바나바복음서가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도 바나바가 썼다, 라고 합니다,
그만큼 바나바가 그 당시에 존경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나바에 대해서 두 부분에서 강조하는데 특히 이분의 성품에 대해서 강조를 합니다, 4장37절과11장24절에는 이분이 착한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착하면서도 성령 충만하다는 말과 믿음 충만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시각이 저세상시각으로 꽉 차있었다는 겁니다, 저세상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은 은밀한 의미에서 보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특히 물질부분에서 바나바가 처음에는 사도가 아니었지만 나중에 사도가 되는데 이분의 사역내용이 약12가지가 있습니다,
바나바의 사역내용12가지 1, 자신의 땅을 팔아서 헌납한 분입니다 사도행전4장37절, 그러니 믿음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2, 바울이 개종 후에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 때 열두제자들이 바울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나바가 앞장서서 바울을 열두제자들에게 소개한 분입니다 대단히 피스메이커입니다 사도행전9장27절, 사람을 살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3, 안디옥교회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을 때 그 교회가 은혜로 차있다는 소문을 듣고 열두제자들이 대표한사람 안디옥 교회에 보내야 하는데 그 대표가 바나바였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문제 있을 때나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 있을 때 제일먼저 누구를 보낼까 할 때 항상 제일먼저 떠오르는 분이 바나바였습니다, 어디가든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람들을 만나면 기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시도행전11장25절26절입니다,
4,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있으면서 이분이 그 자리에 머물려 버린 겁니다, 이분이 거기에서 예루살렘교회로 가지 않고 그 교회에 담임목사가 되면서 상령님의 음성을 들은 겁니다, 바로 옆에 다소에 가서 바울을 데리고 오너라 바울은 교회 전도사로 초청해서 데리고 오너라 사도행전11장25절26절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역사적인 장면에 이렇게 공식적으로 사역자가 되게 만든 분이 누구냐면 바나바입니다 5,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공동목회를 하면서 안디옥 교회 교인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칭호를 받게끔 했던 주축인물이 바나바입니다 사도행전11장25절26절 6, 안디옥 교회의 담임목사로써 공식 출발한 분입니다 사도행전13장1절 7, 예루살렘교회가 흉년이 들었을 때 바나바와 바울이 부조를 들고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사도행전11장30절 8, 안디옥 교회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는 바나바와 바울을 첫 선교사로 임명하고 파송한 겁니다, 사도행전13장2절 담임목사와 전도사가 교회를 떠나 선교사로 갔습니다, 9, 이분들이 함께 첫 선교여행을 나간 겁니다, 사도행전13장4절14장28절 10, 첫 여행 도중에 더디어 바나바가 사도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14장14절
11, 1차 선교여행이 끝난 후에 바울과 결별하였습니다,
사도행전15장39절 12, 구보로 사역을 중점적으로 하면서 그곳에서 전승에 의하면 순교를 당했다 이렇게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바나바의 땅 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나바가 판 밭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밭이냐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사람은 레위 족이기 때문에 레위 족은 본래 이스라엘 땅에서는 부동산을 유산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추측하기로는 이 바친 땅은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땅에 있었던 땅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레위 족은 이스라엘 안에서만 유산을 못 받지만 외국에서는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구보로에 있는 땅을 이분이 팔아가지고 바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고 또 아마도 바나바는 레위 족이지만 부인이 보모에게서 받은 땅을 팔아서 바치지 않았나, 라고 우리가 추측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나의 추측들입니다 또 한 가지 추측은 구약시대는 레위 족이 부동산을 가지지 못하였지만 신약에 와서는 그것이 해제되었기에 그때 예루살렘에 땅이 있지 않았나, 라고 보는 겁니다, 이런 추측을 참고로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면 합니다, 바나바가 땅을 팔아서 헌금한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목적은 이분의 이름 되로 격려자의 역할을 하기위해서 사도들에게 힘주고 그다음에 특히 가난한 교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이런 일들 때문에 가난한사람이 없었다고 그랬습니다,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특히 바나바는 헬라파유대인입니다 이분의 관심은 교포 출신유대인 중에 과부들이 많았는데 이분들이 매일 먹는 음식들 이분들을 생각하면서 이 물질을 바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좋은 일하고는 항상 숨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바나바는 아주 높이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산상수훈에서 마태복음6장2절에서4절을 보면 예수님이 예언하십니다, 종교인들 중에서 구제할 때 나팔을 부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래가지고 사람에게 영광 받기 위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고 예수님이 예언 하셨잖아요, 그런데 바나바는 그런 부분에서 외식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분을 착한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성령과 믿음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11장24절에 이분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팔을 불지를 않는 겁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선한일하고 꼭 나팔을 분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겁니다, 우리가 이걸 조심해야 되는 겁니다,
영광을 자기가 받는 겁니다, 목사 같은 사람들은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위험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실큰 주님의 일 하고는 나중에 주님이 너 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예수님이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되는 겁니다, 바나바의 좋은 점을 이렇게 이야기하시고는 5장에 들어가서 유명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사건을 그대로 연속해서 보여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왜 사도행전에서는 좋은 분과 그렇지 않는 분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 줍니까 우선 아니니아와 삽비라에 대해서 조금 봅시다,
아나니아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이름입니다,
성경에 보면 11명의 이름이 아나니아라고 나옵니다, 대개 좋은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나중에 보면 좋은 사람이 한분 있습니다,
바울을 도와주었던 분이 있습니다, 바울의 눈 뜨게 해준 아나니아와 이분은 다른 분입니다, 아나니아라는 뜻은 여호와는 은혜를 베푸는 자다 이런 뜻입니다 은혜로운 여호와 이런 뜻도 됩니다, 아주 좋은 이름이 아니니아입니다, 그러니까 성경11곳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부인 이름은 삽비라입니다, 삽비라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보석 중에 사파이어가 있습니다, 청옥이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은 다 좋은데 이분들의 문제점들이 뭐냐 하면 자기네가 인정받고 영광받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이 교회 안에서 돈 있는 사람들이 물건을 팔아서 주님에게 받치는 겁니다, 소문내면서 바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소문내는 사람들이 이분들인 것 같습니다 이분들이 죄 된 부분이 뭐냐 하면 부동산을 팔아서 헌금하겠다고 이미 사도들 앞에서와 교인들 앞에서 나팔을 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나팔 때문에 감동받고 저 부부가 대단하다 이런 소문이 났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나팔을 불었으면 특히 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서약을 하였으면 서약하는 그 순간에 그 부동산은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이 된 겁니다,
그래서5장4절에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땅을 팔기 전에 서약하였으면 자신의 땅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그 땅을 팔아서 돈을 가졌으면 그 돈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 돈은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5장4절에 그랬습니다, 서약하는 그 순간에 재산이 예수님의 재산으로 환원되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분은 서약을 해놓고는 두 부부가 밤에 잠이 안 왔던 모양입니다 아까운 마음이 자꾸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이미 사람들에게는 인정 다 받았습니다, 아까운 마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사탄이 들어와서 거짓말하도록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사건전에 마라아가 비싼 향유사건 요한복음12장1절에서8절 이야기입니다,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주님에게 바치니까 가룟유다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300데나리온이나 되는데 이걸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실은 가룟유다는 가난한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누구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까, 마리아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너 그렇게 하지 말아라, 이렇게 하듯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이런 마음을 준 겁니다 너 이제 영광 다 받았으니 너 이제 그것 일부는 떼어먹으라, 이렇게 마음을 준 모양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베드로가 그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할 때 예언하거나 베드로 식으로 할 때 보면 그냥 입에서 저절로 말이 나오는 겁니다, 알고 하는 게 아니고 성령님이 입을 통해서 말하게 하십니다, 저도 가끔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난 생각도 없는데 입을 통해서 말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 베드로경우도 이런 것 같습니다 너 성령님을 속였다 하나님의 소유를 너 가 훔쳤다는 겁니다, 이게 너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왜 이런 어리석은 행위를 하였을까요, 이게 질문입니다 왜 이런 행위를 하였을까요, 제가 묵상가운데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있습니다,
왜 그랬냐면 경쟁심리가 작용했다고 저는 생각이 됩니다,
경쟁심리가 바나바가 밭을 봉헌한 것을 보고 질투심을 가졌습니다,
안 그래도 바나바는 로얄 페미리(royal family)에 마가의 다락방 가족들이며 그러니까 제자들이 항상 그분들에게 관심을 주고 사랑해주고 인정해준 겁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고 사람들이 바나바를 다 좋아하고 칭찬받는 사람이라고 사도행전11장24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나중에 집사를 뽑을 때도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부가 생각할 때 저 바나바 저사람 언젠가는 사도가 될 거야, 이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우리 같으면 이 안에서 저 사람 출세할 거야, 지금은 사도가 아니지만 이런 게 이분들에게는 마음이 괴로운 겁니다,
질투심 때문에 부인이 우리도 재산 팔아서 교회에 헌금하자 그랬을 겁니다, 우리도 나중에 책임 있는 자리에 올라가려면 지금부터 계속 투자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걸 우리가 생각하면서 바나바 때문에 이 부부가 바나바처럼 존경받고 칭찬받고 하기를 원해서 아마 이런 짓을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 속에 아까운 마음이 들어간 겁니다, 그것은 누가 준 겁니까, 사탄이 집어넣은 겁니다,
이럴 때 부부가 동심일체지만 이럴 때 예를 들어서 부인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보 우리 이러면 안 되잖아 그러지를 안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이분들이 혼이 빠졌다 그랬습니다, 헬라어로 에프슈크란 이라 합니다, 한국말로는 혼이 빠졌다고 번역을 해놓았는데 그 번역이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에프슈크란이 뭐냐면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런 소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하나가 있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까 이분들이 구원과 관계있는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마음씨가 좋은 사람입니다 자기재산을 바치겠다고 한 사람들은 괜찮은 사람들인데 중간에 약간 욕심이 들어갔지 않았나,
그러니까 구원까지는 하나님이 무효화시키고 이런 것은 안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것은 보지 않고 그 부부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실은 나쁜 사람으로는 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조그만 생각을 바꾸면 좋은데 그러면서 예루살렘교회를 보면서 이런 대표적인 두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두 분사건 때문에 특히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때문에 5절11절에 보시면 온 교회와 그랬습니다, 그때 온 교회라는 단어를 사도행전에서 처음 쓴 것입니다, 온 교회와 이것을 듣는 사람들이 다 두려워했다 그럴 때 교회가 하는 것은 건물을 두려워했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온 공동체가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왜 교회 안에 이런 두려운 사건이 일어납니까, 왜 하나님이 이런 사건을 이렇게 예정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왜 이렇게 예정 하셨을까요, 할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베드로 같은 지도자들이 진정 예수님의 종 사도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영 권을 허락하신 겁니다,
그전에도 이분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었고 5장15절에 보면 사람들이 병 낫기 위해서 베드로의 그림자까지도 따라 다녀서 그분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병 낫는다고 믿었던 겁니다, 나중에 바울 때도 보면 바울의 손수건까지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를 보면 5장16절에 보면 귀신을 쫓아내는 일까지 하고 그랬습니다, 베드로를 지도자로 쓰시려고 주님께서는 따라다니는 무리들이 베드로를 업신여기지 못하게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사용 받는 주님의 종으로 하나님이 더 높여가지고 이분이 개인적으로 높임을 받을수록 겸손해지면서 예수님이 더욱 부각되도록 그러므로 목적이 무엇이냐면 5장14절에 보면 많은 개종자들이 나타나도록 교회가 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해서 한 마음이 되고 예수님중심으로 되었을 때 목적이 뭐냐면 베드로영광을 위해서 아니고 개종자들이 많이 나타나도록 그래서 베드로에게 이런 영 권을 주어 가지고 한마디도 베드로가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15장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말했지만 실은 그게 베드로가 한 말이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성부하나님이 그 아들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런 베드로의 말도 베드로가 직접 한말이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베드로를 이렇게 높이시는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가 3년 공생애기간동안에 얼마나 죽을 쓴 사람입니까 이 사람이 감정기복이 심하고 예수님을 배반도 하고 약속해놓고 불이행하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예수님부활하시고 40일 동안에는 이 사람이 약간 괜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시고 40일 끝날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21장15절부터 베드로야. 베드로야 너 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어볼 때 마다 이분이 필레오(친구 간 우정). 필레오. 필레오 하잖아요, 많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오순절사건 때 어느 정도 변화되어 가지고 인격이 이제 예수님 화 되는 그런 과정 속에서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분이 이런 모든 영적인 이런 부류를 느끼면서 이분이 전하는 메시지의 초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의정체성만 이야기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계속해서 순수해지는 겁니다, 이게 거기에서 차이가 나는 겁니다,
만약에 교인도 많아지고 이런 영 권이 생겼는데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자기영광을 찾으면 그때부터 변질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종교지도자들이 특히 기독교지도자들이 그러니까 이 사람은 예수님의 종으로써 사도로써 예수님의 정권대사로써 예수님과 계속해서 열람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이 사람이 이렇게 훈련을 계속시키는 겁니다,
감옥에도 자주로 집어넣고 사람들에게 인기 없게 만들고 핍박을 허락하시고 이러면서 주님만 붙잡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커졌잖아요,
5장17절에서35절을 보시면 교회가 커지고 교인이 점점 많아지니까 이 지도자들이 교만하여 질까봐 주님께서는 또 핍박을 허락하시는 겁니다,
사두개인들을 불려다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너희들 왜 예수님의 부활이야기를 자꾸 하느냐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부활했다고 하는데 제발 그런 말 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들이 그 소리를 자꾸 하기 때문에 우리 따라다니는 유대교인들이 자꾸 너희들에게 가니까 우리유대교인이 많이 줄어들었다 면서 제발 하지 말아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파워가 있으니까 베드로와 요한을 또 감옥에 집어넣는 겁니다, 그때 누가 감옥에 나타나느냐면 주의사자가 천사가 감옥에 나타나서 이분들을 꺼내어 줍니다,
그래가지고 천사가하는 말이 여기에 이렇게 있지 말고 예루살렘 뜰이나 솔로몬행각에 가서 또 예수님을 외치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새벽부터 열심히 외치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이 자기네들끼리 회의를 한 겁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불려다가 혼 좀 내어주자 그래가지고 베드로와 요한을 잡어로 가니까 없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그분들이 솔로몬행각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가 가지고 베드로야 너희들 어떻게 된 거야 하니까 베드로가 여보시오 하면서 또 설교를 시작하는 것이 베드로의 네 번째 설교입니다
5장29절에서32절입니다, 대상이 누굽니까 공회원들이고 제사장들이고 사두개인들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제사장들이 나중에 크리스천으로 개종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내용을 보면 똑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고 그분이 왕 중의 왕이고 그분이 구세주시고 우리는 그분이 이렇다는 것을 증인으로 나타내는 증인들이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메시지를 듣고는 성령님이 그 안에 있던 유대인들 중에 개종자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래서 33절에 보면 설교 후에 공회원들이 크게 놀라면서 주변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이 사람들이 무슨 결정을 하였느냐면 저 사람을 죽여야 되겠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장소에서 공회원들이 결정을 하였습니다,
저 사람을 죽이자 저렇게 놓아두면 우리교권이 무너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 유명한 인사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분이 가말리엘입니다 가말리엘은 공회원들 중에서 제일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이 가말리엘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성경에는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누구냐 하면 므낫세 지파의 두령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광야에 들어와서 일 년 지나고 출애굽한 사람들이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그게 민수기 시작입니다 민수기1장10절,2장20절을 보시면 므낫세 지파의 두령이름이 가말리엘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신약에 와서 지금 사도행전5장34절과 22장3절은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끝나고 이분이 예루살렘에 가서 있는데 로마군인들 천 부장 앞에서 너 가 도대체 누구냐 그러니까 내가 그 유명한 가말리엘 문화 생이다,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는 가말리엘 이름이 두 번 나옵니다, 5장34절이 지금 이 장면입니다 그다음에 22장3절에 가말리엘이 누구냐 하면 바리새파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교법사라고 그랬습니다,
법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모세오경 율법을 가르치는데 그분이 해석하면 그게 끝나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미쉬나(mishnah)라고 탈무드를 주석으로 한 책이 미쉬나입니다, 이 미쉬나 안에 보면 가말리엘의 해석이 이랬다, 이랬다 하면서 그 만큼 권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말리엘을 부를 때 랍비, 랍비라는 말은 특별히 쓰는 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는 그대로 입에서 나온 말이 예수님 당신은 랍비입니다 그랬습니다, 요한복음20장16절에 그러니까 특수한 선생님이라는 소리입니다 이 가말리엘이 그런 사람입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가말리엘이 나중에 주후70년에 죽었는데 죽기직전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것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가말리엘 이분이 아까 공회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설교 끝난 다음에 너 죽어야 된다, 그러니까 가말리엘이 나타나서 한마디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한마디가 명령형으로 했다고 그랬습니다,
너희들 조심해라 그러는 겁니다, 가말리엘이 공회원들에게 함부로 이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스스로 무너질 거랍니다, 그게 36절에 보면 그럽니다,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다 만약에 지금 베드로와 요한 그룹들이 드다 같은 그룹들이라면 가만히 놓아두어도 없어진다, 이분이 그러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또 예화를 드는 겁니다,
37절에 우리가 옛날에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라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지금 베드로 그룹들이 만약에 하나님께서 만들어낸 특별한 그룹이라면 너희들이 죽인다고 소리 질려도 저들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만약에 그런 다면 너희들이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심하라는 겁니다, 이게 바른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가말리엘이 한마디 하니까 꼼짝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이 너희들 제발 예수이야기하지 말라 그러면서 채찍질을 막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분들이 놓임을 받는 겁니다,
그리고는 42절에 이 사건 후에 뭐라고 그러냐면 이 후에 이분들이 공의회원들에게 놓임을 받고는 이분들이 교회에 오니까 교회가 점점 더 번성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성전에 메일 모이고 집에서 매일 예배드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치고 전도하고 매일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6장1절에 그랬습니다, 제자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6장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왕성하였다는 말은 많이 퍼졌다는 말입니다, 제자의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무리도 이렇게 복음에 복종했다는 겁니다, 개종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중요한 부분들을 이걸 놓고 해드리려고 그럽니다,
예루살렘교회가 6장에 들어가서부터 무슨 문제가 생기느냐면 교회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이 충만하고 기적이 일어나고 교인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하는데 예루살렘교회에 문제점이 야기되는 것은 6장에서 지적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뭐냐 하면 이 안에 파벌싸움이 있다는 겁니다, 어떤 그룹이냐면 헤라파유대인과 히브리 파 유대인들 사이에 다시 말하면 본토유대인들과 교포유대인들 사이에 왜냐하면 이미 헬라파유대인들은 말이 유대인이지 몇 백 년 동안 밖에서 살았기 때문에 유대인말을 잘 모르는 겁니다, 문화도 그렇고 그리스화가 된 사람들입니다,
생각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겉으로 보면 유대인이지만 그런데 이분들은 본토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유월절. 오순절 이런 절기를 따라서 왔다가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분이 되어서 생활토대도 좋지 않고 그 안에 많은 과부들이 있는데 그 과부들이 제대로 하루 식사를 세끼를 못 먹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본 아나나아와 삽비라도 그렇고 바나바도 그렇고 재산을 팔아서 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렇게 하였는데 열두제자들이 그런 돈을 받아다가 나누어주는 과정 속에서 이분들이 규모가 너무 커지니까 자기들도 컨트롤을 못하는 겁니다, 이제는 행정부분에서 자기네들이 컨트롤이 안 되는 겁니다, 너무나도 커지니까 그러다보니까 그 밑에 있는 분들이 그랬을 겁니다, 소위본토과부들에게 음식을 먼저 나누어주고 항상 교포과부들에게는 나누어주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안에서 교포과부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수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들을 차별한다,
하면서 이 교회가 시끄러워 진 겁니다 그러다가 열두제자가 이 소문을 듣고는 교회가 시끄러우니까 자기네끼리 모인 겁니다,
모여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지금 교회는 점점 커지는데 이 안이 썩어가는구나 그래서 열두제자들이 교포출신지도자들을 모아놓고 그러는 겁니다, 교통정리를 해야겠다, 그래서 하는 말이 음식을 나누어주는 일에 우리가 신경을 쓰다보니까 조직이 커지다보니까 이제 나누어주는 일들 비 영적인 일들은 우리가 안하고 우리가 하는 일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전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나머지 일들은 다 교포출신 집사들을 뽑아가지고 그분들이 하도록 해보자면서 절충안이 나옵니다, 그래서 교포출신 집사들의 자격은 6장3절에서5절에 보면 나옵니다, 형제들 중에서 그러니까 남자들입니다 그리고는 성령이 충만하여야 되고 또 지혜가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믿음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칭찬을 받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소위 말하면 안수집사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수집사가 되려면 첫째 성령 충만해야 되고 그다음에 지혜가 있어야 되고 우둔한사람은 안됩니다,
그다음에 믿음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칭찬받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소위 교포출신 일곱 명을 안수집사로 선택했습니다,
어떻게 교포 출신이란 걸 아느냐면 그분들의 이름을 보면 아는 겁니다,
다 헬라이름들입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르.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입니다, 다음 시간에 스데반과 빌립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할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보시면 사도들이 이들에게 기도하고 안수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소위 안수집사들이 된 것입니다 침례교는 이 말씀을 따라서 안수집사시스템입니다, 장로교는 장로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어떤 침례교는 장로가 없으니까 또 안수집사들이 사회에 나가서 나이가60이 넘어서도 너 아직까지 집사냐 네 친구들은 50이 안 되었는데도 장로인데 너 믿음이 없구나, 이런 식으로 해서 여러 가지로 우리나라의 상황 속에서는 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침례교회인데도 장로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이름을 호칭장로 그러니까 침례교는 모든 조직이 장로시스템이 아니거든요 호칭장로라는 이름으로 해서 100여명 이상이 그 교회에 나타났답니다,
우리나라에 그래서 침례교가 두 그룹이 있습니다,
안수집사시스템이 오리지널 침례교입니다,
우리나라에 그래서 장로교회를 도입한 침례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호칭으로 우리문화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참고로 하시고 성경에서 안수를 주는 예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구약 창세기48장13절에서20절입니다,
요셉이 자기 아들을 오른쪽으로 해서 에브라임을 안수하고 왼쪽으로 해서 므낫세를 안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복 내리기 위해서 안수는 첫째가 안수를 주는 사람을 통해서 복이 흘러 내려간다,
그러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레위기1장4절에 보면 흠 없는 소가 있는데 그 소의 머리에다가 안수하는 겁니다,
번제물로서 그러면 사람의 죄가 전가가 되는 겁니다,
그리로 그러니까 이쪽에서 저쪽으로 전가된다는 의미에서 안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 안수는 구약에서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사명을 주면서 안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민수기27장23절에서 사명을 줄 때 안수하는 세 가지의 경우가 구약에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병 낫게 하기위해서 안수합니다, 마가복음1장4절에는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우리가 안수하면 머리만 안수하는 줄 알고 있는데 머리만 안수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만지기만 하여도 여기서 예수님이 터치라 그랬습니다, 문둥병자를 만졌다, 한국말로는 안수했다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어는 터치했다, 라는 겁니다, 또 바울이 사도행전28장8절에 보면 메리데 섬에서 한 어른을 안수해서 병 낫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는 마가복음8장23절에는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신 그것도 이렇게 만지시는 겁니다, 눈을 이렇게 만지시는 이런 장면을 다 안수라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안수는 손을 머리위에 갖다 대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 안수 좀 해주세요, 하면서 머리 갖다 되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 게 아니고 이렇게 만져만 주어도 되는 겁니다,
두 번째 축복해주기 위해서 안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10장16절에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안고 무릎위에 앉혀놓고는 안수하시면서 축복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머리위에 갖다 댄 것이 아니고 이렇게 몸과 몸이 터치하면서 축복하시니라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사역자에게 사명을 주기 위해서 안수하였습니다,
오늘 사도행전6장6절에 보면 안수집사 일곱 명에게 안수하는 장면입니다
머리위에 했는지 어께위에 했는지 이렇게 만져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양나라에서는 꼭 머리위에만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안고도 하고 어께위에 만지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사도행전13장3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내 보낼 때 안수해서 내 보냈다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디모데전서5장22절에 장로들을 안수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거기도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명을 받는 순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마지막으로 성령받기 위해서 사도행전8장17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사마리아인들에게 안수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 받았다고 그랬습니다, 또 사도행전19장6절에는 바울이 에베소교인들에게 안수를 해서 성령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 바울이 디모데전서4장14절, 디모데후서1장6절에 보면 디모데에게 안수를 해가지고 디모데가 특별히 성령을 받아가지고 사명 자가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몇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결론적인 이야기인데요, 지금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렇게 점점 중형화 되고 대형화 되어 가는 과정을 이렇게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것이 문제가 생기니까 구조조정을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잠깐 보았습니다, 일곱 집사를 임명하여 가지고 조직을 구조조정을 하는 겁니다, 파워를 서로 나누어주고 또 여러 가지 관계되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를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지상사명인 사도행전1장8절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부터 시작해서 온 유다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해라 그랬지 않습니까, 이분들이 지금 어디까지 갔습니까,
예루살렘과 유다지방까지 간 기록은 지금 없습니다,
그분들은 주로 예루살렘 안에서 예루살렘에 방문 온 사람들만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분들이 똑같이 마태복음28장19절20절에 예수님의 말씀하신 지상사명을 보면 너희들은 그러므로 가서 그랬습니다,
가서인데 어디로 갑니까, 이방 판타타 에뜨네(모든 족속들)에게 가라는 겁니다, 가라 그랬는데 이분들은 아직까지 가지를 않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교인이 많이 늘어나는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렇게 하다보니까 이 교회는 커졌는데 인간의 한계성이 거기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안하면 이분들이 이렇게 하면서 열두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상이 뭐냐면 자민족중심사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사도행전1장8절이나 마태복음28장19절20절 말씀을 이분들이 잊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잊어버렸다고 말까지 합니다,
나중에 10장11절에 가면 나옵니다, 왜냐하면 그냥 교회가 커지니까 온 사람들 관리하기도 바쁜 겁니다, 그리고는 내 민족이 지금 중요하지 타민족에게 까지 간다는 것은 생각도 안하는 겁니다, 디아스포라도 자기민족인데도 벌써 이미 그분들에게도 이분들이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내 민족입니다, 고작해야 내 고향 사람들 내 동창들 내 주변사람들 내 가족 이렇게 나가는 겁니다,
그 밖으로는 나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인간의 본성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여기서 이렇게 보여주는 겁니다, 이게 이렇게. 이렇게 가다 보니까 교회가 중형화 되고 대형화 되면서 자기네들도 이제 어떻게 이것을 컨트롤하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거기다가 중형화 되고 대형화 되다 보니까 자연히 따라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헌금이 많이 들어오고 그리고 인기가 있어지고 유명하여지고 또 명성이 점점 커가면서 더 많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방법과 그대로 하다가 보면 그대로 세속화가 되어 버립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보면 세속화가 되어 버립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보지를 못하는 겁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왜냐하면 자기네 삶의 스타일이 그렇고 세상이 그렇기 때문에 구별력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예루살렘교회 모습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시고 있는 겁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그런데 이와 반대로 안디옥 교회를 보여 줍니다 하나의 모범으로 안디옥 교회를 보면 알다시피 안디옥 교회는 어떤 분은 안디옥 교회도 중형 대형교회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안디옥은 예루살렘하고 달라서 사람이 많지 않는 조그만 도시니까 어쨌든 안디옥 교회는 사람이 많이 모여도 이분들은 생각이 자기네 교회에 담임 목사님이나 교육전도사님을 선교사로 내보내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중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교회를 통해서 많은 교회들이 개척되었잖아요,
예루살렘교회를 통해서 많은 교회가 개척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데 우선 이것이 사람의 하나의 상정입니다 조금 커지면 특히 교회는 변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사람의 한계성입니다, 인디옥 교회도 점점 유명하여 지니까 주님께서 그 안디옥 교회도 없애버렸습니다, 누굴 통해서입니까,
이슬람을 통해서 없애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디옥 교회가 지금 찾으려고 해도 없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안디옥 교회가 지금 전 세계에 깔려 있는 겁니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의 교회 성장입니다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라오디아교회. 그리고 골로세교회 전부다 지금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교회들이 당시에 그러다가 주님이 다 흩트려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조직을 주님이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거든요 그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메시지가 다른 판타타 에뜨네(모든족속)에게 가면
그다음에 이교회 일은 끝나는 겁니다, 주님께서 닫아버리는 겁니다,
빌립보교회도 없어지고 데살로니가교회도 없어지고 고린도교회도 없어지고 지금 가보면 없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지금 이스탄불에 그 교회가 소위 그리스교회의 모태교회가 소위 인간중심의 파워를 만들기 위해서 콘스탄티노플교회를 크게 지었잖아요, 지금 관광객들이 거기에 가서 보잖아요, 그 교회는 지금 뭐가 되었습니까,
지금 이슬람성전이 되어 버린 겁니다, 로마교회도 보세요,
로마교회가 커져가지고 그 사람들은 소위 수평성장을 많이 시킨 사람들입니다 로마제국이 크니까, 그래서 로마교회를 주님이 그래도 사랑했던 것은 수평성장을 했던 교회입니다, 그래서 자기네의 지 교회를 많이 세워 놓았는데 수평성장을 하면서 세계로 자기네의 파워 속에 집어넣다가 보니까 그게 변질되어 버린 겁니다, 로마교회도 변질되니까 하나님이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겁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켜가지고 소위루터교가 나오고 성공회가 나오고 감리교가 나오고 장로교가 나오고 침례교가 나오고 이러면서 또 많은 개신교 교단들이 나오면서 시작은 멋있게 하였는데 또 똑같이 건물 짓고 파워를 늘리고 이러면서 많이 퍼졌지만 각 나라마다 이 교단들이 들어가 가지고 그 나라사람들이 또 예루살렘교회스타일의 교회를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오리지널 개신교의 그분들이 지금은 그 나라에 가보면 건물만 덩그러니 있지 1000명이 있어야할 곳에 할아버지 할머님만 2-30명 앉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복음도 색깔이 변화여 버렸고 그 당시에는 대단하게 잔치를 하던 교회가 그렇게 되어 버린 겁니다, 제가 미국생활 오래하면서 미국교회들보면 큰 건물들이 많습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고 2차 전쟁이 끝나 후에 소위 베이비부머들이라고 군인들이 시집장가 가가지고 아이를 낳은 것이 1960년대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그걸 준비하느라고 미국에서 대학도 다 크게 만들고 교회도 크게 만들고 모든 것이 규모가 엄청나게 크진 겁니다,
1970년대 까지 교회가 커지다가 80년대 들어오면서 교인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틈을 타서 한국 사람들이 그 교회를 임대하여 예배를 봅니다, 시간제 임대입니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가 덕을 많이 봤지만 요즘은 그런 교회에 들어가 보면 교회 안에 지하실에는 힌두교가 예배드리고 이쪽에는 한국교회가 예배드리고 저쪽에는 불교 이슬람교 등이 여기저기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기회가 있으면 임대를 주는 겁니다, 왜냐하면 건물유지가 안되니까 그것도 안 되면 아예 교회건물을 통째로 팔아버리는 겁니다,
파는데 타종교사람들이 사는 겁니다, 이슬람. 불교. 힌두교사람들이 사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그 종교들은 번성할 수 있지만 우리기독교는 너무 커지면 이게 세속화 되면서 언젠가는 주님께서 사랑하기 때문에 흩트려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를 흩트려버린 겁니다,
알다시피 예루살렘교회는 지금 예루살렘에 가보시면 예루살렘교회라는 자리가 없습니다,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유대교가 있고 그다음에 그리스정교회가 있고 알미니안 정교회가 있고 이슬람이 있습니다,
지금 4종교가 예루살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교회는 어느 정도 커졌다가 때가 되면 주님이 흩트려버리십니다, 나는 이걸 보면서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가 번성하는 나라가 우리나라거든요 전 세계 50개의 대형교회 중에 26개 대형교회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좋은 사인입니까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굉장히 좋은 사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지혜롭게 잘 활용하지 못하면 앞으로 2-30년 후에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후손 때 가서는 이곳이 다 관광객의 명소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겨울이 추운나라입니다 건물이 커지면 난방비만 얼마입니까 교인이 점점 줄어드는데 난방비 많이 지출하여야 되고 세금 많이 내어야 되고 운영비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는 그 교회를 미국식으로 한쪽. 한쪽 임대주고 이러다보면 미국과 영국처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20대들이 10대들이 이런 큰 교회를 맡을 자신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교회건물 크게 짓는 데는 헌금을 하면 안 됩니다,
소프트웨어에 헌금을 하셔야지 하드웨어에 헌금하는 게 아닙니다,
똑같이 우리가 이런 시스템을 그대로 선교지에 가지고 가서 선교지에 가서도 전부 보이는 건물에다가 투자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돈들을, 그다음에 보니까 이제는 건물은 있는데 그 안에 소프트웨어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프트웨어가 없는 이것, 기독교 2000년은 소프트웨어입니다,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발전한 거지 하드웨어를 통해서 발전한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가 제일 무서운 게 뭐냐면 소위 세속화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의 방법을 교회가 도입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편지 속에서 항상 이 문제를 다룹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 있는 교인들은 세상에 있다가 일주일에 한번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고방식이 세상사고방식으로 젖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집사도 있고. 안수집사도 있고, 장로도 있고, 권사도 있으니까 교회가 그런 사람들의 모임 속에서 그런 사람들이 결정을 하고 하니까 교회가 세속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게 교회가 가지고 있는 큰문제점입니다 왜 교회가 커지려고만 합니까,
커지려고 하는 것을 신학교에서는 교회성장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가지고 신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교회가 커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또 목사님들만 모아놓고 교회성장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그것이 여기저기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비즈니스맨들이 하는 전략이 있습니다, 또 비즈니스맨들의 세미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계가 똑같이 그것을 하는 겁니다, 특히 교회성장 또 이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을 보면 대개 미국사람인데 다 비즈니스를 전공으로 했던 사람들이 소위 MBA 출신들이 이런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교회성장을 만들어 낸 겁니다, 만들어서 하다 보니까 성장은 많이 되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내용을 보면 이게 세속화 되는 겁니다, 교회와 가게(비즈니스)를 보면 굉장히 상통되는 게 있습니다, 뭐냐면 모든 구조와 상품을 파는 것과 이런 것들을 보면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의 상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를 파는 겁니까,
우리는 예수를 파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상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팝니까, 자기네 상품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상품이 다 다르지만 목적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에게 팔아야 됩니다, 우리는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에게 예수를 팔아야 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똑 같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자기 물건을 팔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장사입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성장이라는 하나의 미명하에 세상의 모든 비즈니스의 스타일을 그기에 갖다놓고 도입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상점을 한번 생각하면서 구별하여 봅시다, 제일 기본적인 상점이 무엇입니까 구멍가게 구멍가게에서 한 단계 올라간 상점이 편의점입니다 편의점 에서 한 단계 올라가면 소형 슈퍼마겥입니다, 소형 슈퍼마겥에서 조금 올라가면 소위 전문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고기 파는 집. 생선 파는 집. 채소 파는 집. 전자제품 파는 집. 거기서 한 단계 올라가면 중형 슈퍼마겥입니다, 중형 슈퍼마겥이 대형 수퍼마겥을 이길 수 있습니까, 못 이깁니다,
대형 슈퍼마겥보다 더 센 게 백화점입니다 소위 쇼핑센터입니다,
쇼핑센터가 미국에서 2차 전쟁 후에 시작한 겁니다, 이 쇼핑센터가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지금 각 나라에 퍼지고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겁니다,
미국사람들이 교회를 생각할 때 이 시스템을 그대로 가지고 이걸 대입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미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가 성공한 교회가 무엇이냐면 쇼핑센터 교회를 만드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쇼핑센터에 몸이 익은 사람들이 교인들이 주차장에 주차시켜놓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니까 편한 겁니다, 교회도 쇼핑센터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편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교회에 사람들이 다 모이는 겁니다, 교회 안에 별게 다 있습니다, 제가 드리는 정보를 적어보세요 점포가 잘 되려면 10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위치가 좋아야 됩니다,
두 번째 가게 안에 인테리어가 좋아야 합니다, 세 번째 그 가게가 브랜드 네임이 있어야 됩니다, 상표. 인지도가 있어야 됩니다,
네 번째 서비스가 좋아야 됩니다, 다섯 번째 가격이 좋아야 합니다,
여섯 번째 품질이 좋아야 합니다, 일곱 번째 편리해야 되는 겁니다,
여덟 번째 속도가 있어야 됩니다, 계산이 빨리빨리 되어야 됩니다,
아홉 번째 주차장이 있어야 됩니다, 열 번째는 편의시설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어린이 놀이터 등 최소한 열 가지가 구비가 되어야지만 그 사업은 성공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에 우리가 익숙한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제3세계는 이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10년 동안 급속도로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없는 교회는 사람들이 안 갑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개척교회 목사님들이나 소형교회들은 이런 열 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어느 정도 교회가 되려면 적어도 교인이 300명이 되어야 된다고 믿는 겁니다, 그것이 교회성장 교회 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300명을 위하여 죽으라고 달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교인 300명만 되면 목사님 냉장고 걱정할 것 없고 목사님 자녀교육 걱정할 것 없고 자동차도 웬만한 대기업의 임원진 이상의 좋은 차타고 다닐 수 있고 목사님 생활하는데 아무 걱정할 것 없답니다,
300명이 되는 교회에 목사님이 되면 이미 출세한 성공한 목사라는 겁니다, 이것이 목사님들의 뇌리 속에 박혀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은 이런 목표지향적인 그러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런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도록 주위환경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교인1000명이나 2000명 3000명 된 목사님 보면 부러운 겁니다, 언제 나는 저렇게 되지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공한 교회목사님들은 우리가 어떻게 성공했다는 것을 가지고 세미나도 해줍니다, 신학교도 많고 목사가 많다 보니까 지금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중형이나 대형교회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형대형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많습니다, 중형대형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첫째는 프로그램을 다양화할 수가 있습니다, 충분한 자금이 있고 인적자원이 있고 건물이 있고 모든 부대시설이 있으니까 그것이 가능합니다, 전문적인 프로그램도 할 수가 있고 기독교문화행사도 잘 할 수가 있고 기독교음악을 전문가를 불려다가 성가대에 앉혀놓을 수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오케스트라를 돈 주고 일류사람을 앉혀놓을 수 있습니다, 해외선교도 아주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프로그램도 전문화 시킬 수 있는 겁니다,
목회자 훈련도 전문적으로 하고. 제직 자 훈련. 사역자훈련 모든 게 전문화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사회봉사도 전문화할 수가 있습니다,
고아원. 어린이 집. 북한 돕기. 노인복지 전문가를 불려다가 돈 많이 주고 또 돈도 마음대로 뿌리면서 건물까지다 두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교회 안에 이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편의시설도 만들어 놓고 커피숍도 있어서 커피도 저렴하게 마시고 골프연습장까지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일날 다른데 가지 말고 예배 끝나고 교회에서 골프도 치는 겁니다, 식당도 잘 되어 있고 결혼식도 다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편리합니까, 예배시간도 다양화 해가지고 일곱 시부터 예배가 시작되어서 저녁7시8시까지 계속 있는 겁니다,
또 장점들은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까 텔레비전방송국에 나오고 라디오 지상파 TV 인터넷 방송 위성방송 다 나올 수 있습니다 거기에 한 번씩 나가려면 돈을 어떤 분은 그럽니다,
2000만원 내야지만 한 달 동안 나온 답니다,
우리는 구멍가게도 아니고 전문점입니다 전문점이기 때문에 주일학교도 부실하고 중고등부도 부실하고 주일학교는 우리 옆 교회가 주일학교가 좋으니까 그리로 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어린이들이 많이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경쟁하는 게 아닙니다, 잘하는 쪽에다가 보내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합니다, 중대형교회가 이러다보니까 장점이 많은데 이게 사람이 하기 때문에 기독교2000년 역사 속에서 보면 사람이 하다 보니까 중대형화 되어 버리면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교회라는 기독교 이 단체는 커지고 많아지고 유명해지고 권력이 생기고 부유해지고 하면 이게 변질되는 겁니다, 아무리 잘하려고 그래도 사람이기 때문에 변질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쇼핑센터 사고방식을 가지고 교회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겁니다, 서구사회에서 우리에게 다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분들의 삶 속에서 쇼핑센터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교회공동체에 도움이 되지만 해도 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이 지역에 예를 들어서 쇼핑센터가 하나 들어온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주변 구멍가게들은 다 망합니다 또 전문점까지도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형쇼핑센터도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생기는 그룹들이 나오는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는 장사는 무엇입니까 아이템이 한 아이 템입니다 우리아이 템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한 아이 템 가지고 한쪽에서 싹 몰아가버리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다른 가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문 닫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교회 약80%가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지하실에서 하거나 아니면 상가에서 하는 교회는 임대료내고 목사님사례비도 내기도 힘든 교회가 우리나라에80%의 교회가 그렇다는 겁니다, 교회 안에 십일조도 잘 내고 재력이 있고 열심히 있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가 우리교회가 너무 적으니까 다 쇼핑센터교회로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비즈니스에서도 일어나지만 교회 안에서도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저는 그렸습니다, 큰 교회들이 부목사님을 시켜서 자꾸 잘라 주어서 교회를 조그맣게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는 목사님도 계시지만 그게 안 되는 겁니다,
우선 교인들이 안 가려고 그럽니다, 쇼핑센터 좋아하는 사람들이 구멍가게에 가라면 가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교회가 커지면 따라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파벌 화되기 시작하고 또 좋은 동네에 있는 교회들은 커지다 보면 귀족화 되어버리고 그것이 권력화 되어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교회가 우상화 되어버리고 우리교회. 우리교회 하면서 경쟁화 되고 교회가 가시적인 교회가 되어버리고 형식화되어버리고 조직화 되어버리고 전통화 되어버리고 경직되어버리고 기업화 되어버리고 성공위주 화되어버리고 재정관리에 문제가 생기고 인적관리에 문제가 생기고 자원관리에 문제가 생기고 그리고 이 사람들을 유지하려면 메시지가 복음의 핵심에서 조금 비켜나가야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앉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집. 자기 가정. 자기 사업 여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니까 이분들에게 맞는 설교를 해 주려면 기복주의적인 설교를 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세속주의적인 설교를 해주어야 되고 인기주의 인간주의적인 설교를 해주어야 되고 이렇게 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안 그러면 이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사님도 교인은 많이 왔지만 본인도 괴로운 겁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대형교회목사님이 은퇴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교인들 때문에 정말 바른 소리 못했다는 겁니다, 자기가 주님한데 내 죄를 회개한다 하면서 공식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조금 커지니까 이교회 브랜드가치를 자꾸 높여야 됩니다, 교인들도 거기에 대해서 자연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이런 교회 다닌다고 자랑합니다, 지금 이게 다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결론 중에 결론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전문화 가게로 남아야 됩니다, 예수님 파는 가게로 우리는 커질 수도 없고 커져서도 안 되고 예를 들어서 우리 교인이 300명만 된다면 부목사님에게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주님이 우리나라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런 소용돌이 안에서 주님이 종대형교회의 장점을 사용하시고 그 교회를 통해서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대형교회라 그래서 이분들은 좋지 않습니다, 비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그런 가운데서도 주님이 다 세우신 교회고 주님이 그렇게 다 성장시키신 교회이기 때문에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깨어서 중대형교회도 마찬가지로 깨어서 역사적인 눈을 뜨고서 우리가 이렇게 가다가는 언제 가는 서구의 중대형교회가 경험했던 것을 우리가 경험한다는 것을 직시하고는 방향전환이 필요한 겁니다, 방향전환이 그것이 절대로 쉽지가 않습니다,
방향전환을 해서 새롭게 옷 입은 교회가 역사상에는 없었습니다,
기독교2000년 역사 속에서 그렇지만 이것 때문에 고민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이 우리나라에 주신 은혜의 촛대가 옮겨가지 않도록 우리가 주님 앞에 간구하면서 이 세대를 직시하면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나라에 복음이 떨어져서 세계에 아주 괄목하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볼 수 없는 관심거리가 되는 교회성장을 우리에게 주셨을 때에는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썩은 밀알들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교회 역사를 보면 북한에 특히 평양 쪽에 교회들을 통해서 주님의 복음을 남한까지 이끌어 오게 하셨습니다, 평양에 있는 산정현 교회는 우리나라교회의 하나의 모체 같은 교회인데 주님이 그 교회 안에서 신실한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북한 사람들만이 아니고 남한 출신들도 거기 가서 훈련받고 그 후 때가 되니까 공산당을 통해서 그 교회를 다 흩트려놓았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보면 흩트려졌지만 이분들을 남쪽으로 내려 보내시고 또 그곳에서 순교자로써 남게 하시고 이 남쪽에 모든 교회가 이 만큼 커졌을 때에는 이 출신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남한의 이 큰 나무로 만드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산정현 교회는 없어졌지만 이렇게 큰 나무가 된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건물위주보다는 하드웨어 위주보다는 산정현 교회처럼 소프트웨어들이 많이 만들어져서 선교지에도 소프트웨어들이 많이 이곳저곳에 심어져서 우리 눈에는 안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많은 주님의 실실한 일꾼들이 이 소프트웨어를 미전도 족속까지 나누어주는 일에 주님이 사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그 동안에 많은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건물을 크게 지어주면 선교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건물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 소프트웨어를 집어넣어 주어야 되기에 우리도 이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들이 이런 부분에서 계속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라면서 영적인 감수성을 또 지혜를 주셔서 이 세대에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겸손히 무릎 꿇고서 주님의 음성에 답하는 자들이 되도록 우리 모두에게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Z5LqMXVsexY&list=PLPz9aN5emxOfGkkjER_gEkf6oGb5tJyRs&index=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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