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로마서 강해

33강, 로마서11장13절-24절,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

변명섭 2019. 11. 29. 12:23

로마서강해 33강,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롬11:13-24) 2015년4월19일 말씀
오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11장은 다음시간까지 하면 끝날 것 같습니다, 11장13절부터24절까지입니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번에 잘 숙지해야 될 것 같습니다, 13절부터 읽겠습니다,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아멘, 
이 말씀을 읽었지만 그렇게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로마서는 특히 그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 부분을 쉽게 설명을 해주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동안도 중요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9장10장11장 세 장에서 아주 핵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신경 써서 잘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시간에 제목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는가,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럴 때 결코 버릴 수 없느니라,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시간에 제가 융합신학에 대한 말씀을 잠깐 비추었습니다, 
그 말씀을 오늘 말씀 속에서 다시 나오니까 참고로 기억하셨다가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릴 겁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간적으로 볼 때 언제로 점프하느냐면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13절부터 새로운 시간으로 보는데 이 시기가 언제냐면 19세기에 유대인들이 눈을 뜨게 되는 그 시기로 점프하는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오늘 분문의 시작입니다 
이것을 점프되는 것을 보지 못할 때 성서적인 해석이 풀리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소위 대체신학을 하는 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성서를 풀지를 못합니다, 과거2000년 동안 대체신학이 주 신학이었잖아요 
대체신학이라는 것은 이스라엘민족은 저주받은 민족이다 그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라는 신학입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을 교회로 대체되었다,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과거 2000년 동안 가르쳐왔던 신학입니다 
바울도 이것을 주욱 가르쳐왔습니다, 대체신학을 하시는 신학자들이나 교회들이 자기네가 만든 것이 아니고 바울신학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갑자기 성령님이 바울에게 조명을 하시면서 언제로 점프를 하게 되느냐면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으로 나타날 때가 앞으로 있을 텐데 그때의 시대로 점프를 시키면서 거기에 대해서 그때 상황에 대한 예언을 하시는 것이 오늘 바울의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시간적으로 점프를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방인들에게 하시는 겁니다, 
이방인들이 너희들이 지금까지 대체신학을 주욱 해왔지 않느냐 그런데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그것은 성서적이고 내가 그렇게 주장해왔었단다 
그러면서 이제 20세기에 들어와서 갑자기 유대인들이 눈을 뜨는 사람들이 나타날 텐데 그러면서 대체신학이 맞지 않는 사건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대체신학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다시 말하면 19세기말 20세기에 한참 교회가 부흥하고 있을 때 그분들에게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여보세요, 당신들이 대체신학으로써 유대인들을 핍박해왔는데 이제 유대인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당신들이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시작인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지난1900년 동안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 한데서 핍박을 받고 교회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제일 많이 핍박했거든요, 
왜 이렇게 했는지 아느냐 왜 하나님이 이것을 허락했는지 아느냐 그러면서 15절에 저희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에 화목이 되기 때문에 그렸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이방인교인들아 왜 주님께서 이스라엘사람들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지 아느냐 그러면서 다섯 가지의 힘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눈이 감긴 것이 첫 번째로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성전이 주후70년에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에 성전을 지으려고 2000년을 고생했는데도 안 되는 겁니다, 
세 번째는 디아스포라가 전 세계에 퍼져가지고 나라 없는 민족으로 아픔을 경험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아느냐 바울이 지금 예언적인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오늘 분문의 대상이 20세기에 대체신학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교회를 놓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대상이 시간적으로 점프를 하는 겁니다, 바울에게 성령님이 이 부분을 예언을 시키는 겁니다, 
바울도 오늘 본문 전까지는 그분의 신학이 무엇이었습니까, 
반유대주의적인 신학이었습니다, 제가 성경구절을 지난번에 들렸지만 오늘도 또 들이겠습니다, 바울신학이 이랬습니다, 
첫째 로마서2장18절29절에 바울이 그랬습니다, 
표면적유대인이 육신의 할례 받은 자들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이면적 마음속에 있는 유대인과 마음으로 할례 받은 사람들이 유대인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사상이 무엇이었습니까, 
생물학적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 성경구절을 항상 외워두세요 그다음에 또 갈라디아서3장29절에도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겁니다,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곧 그리스도께 속하였나, 
안 속하였나가 유대인이나 아니나 육신의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빌립보서3장3절에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육체로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할례파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들이 할례파라는 겁니다, 생물학적유대인이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렇게 이분이 그 주장을 계속했기 때문에 이분의 신학이 그 주장을 했기 때문에 1세기 때. 2세기 때. 3세기 때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을 보는 시각이 다른 겁니다, 바울의 말씀을 토대로 해가지고 유대인들을 보니까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고 그다음에 보니까 지금도 1세기 때. 2세기 때. 3세기 때 로마 카톨릭이나 그리스정교회나 애굽 정교회나 에티오피아 정교회나 시리아정교회나 이 사람들이 3세기.4세기.5세기에 보니까 
유대인들이 밥맛이 없는 겁니다, 돈 좋아하고 예수님을 죽어도 안 믿고 그리고 성서를 보니까 바울도 유대인이지만 이 양반들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확하게 반유대사상이 일어나겠습니까, 안 일어나겠습니까,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반유대사상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바울도 유대인이지만 그때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1850년도에 친유대주의 사상이 움틀 거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다비이즘입니다 
존 다비가 친유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 그때입니다 그래가지고1909년에 스코필드라는 미국사람이 성서도 친 유대성서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20세기에 들어와서 친유대주의 사상이 기독교 안에 시작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1세기부터 20세기까지는 친유대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부가 반유대사상을 가진 기독교인들입니다 
모든 기독교 종파가 다 그러면 우리의 질문이 있는 겁니다, 
왜 이 사람들이 그렇습니까, 
그러면 바울이 이 사상을 가졌다는 겁니다, 
그럼 어디에서요 그러면 성경구절4개를 드렸습니다, 
이 4개를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친유대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분들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세요, 대체신학을 하는 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진 모든 교단들 신학자들 전부가 사탄의 새끼들이다, 라는 겁니다, 아닙니다, 사탄이 아닙니다, 
그분들을 보기를 아주 네로 왕의 시각으로 본 겁니다, 
과거2000년 동안 교회가 다 사탄의 새끼들입니까, 
그럼 자기만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숨어있는 뜻이 있는 겁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유대인이 썩은 밀알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12장24절에 유대인이 썩은 밀알이 되어야지만 전 세계인구의 유대인이 0.2%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서냐면 99.8%의 이방인을 위해서 이분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걸 얼마동안 했습니까, 약2000년 가까이 그 밀알 역할을 한 겁니다, 
예수님도 이 밀알이 되셨습니다, 
전 인류를 위해서 똑같이 민족적으로도 민족적 밀알이 필요한 겁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살리는 원칙입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집안에서 다 예수 안 믿습니다, 
그런데 나 하나가 예수 믿는 겁니다, 그분이 그 가족을 복음화 시키기 위한 밀알로 그러면서 핍박을 엄청나게 받은 겁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보면 망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기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울도 마찬가지였고 베드로도 마찬가지였고 여러분들도 주변에 친구들 사이에서 교회 나가는 친구들도 있지만 여러분들에게 그 사람들이 너 왜 이상하게 예수 믿니 그러면 아하 내가 한 알의 밀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셔도 되겠죠,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너는 그냥 적당히 믿지 그러면 주님의 은혜로 밀알이 되게 하는 사람은 그렸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갑자기 바울신학이 변화되는 모습이 본문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바울이 주욱 반유대적인 이러한 사상을 가르치다가 로마서11장 여기에서 무엇이라고 그러냐면 이분이 갑자기 친 유대신학을 또 들고 일어나는 겁니다, 바울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무엇입니까 
왜 갑자기 친 유대신학을 바울에게 발표하게 합니까, 
이 말은 뭐냐면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어느 정도 차가고 있으니까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은 99.8%의 이방인복음화가 하나님의 관심거리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한 알의 밀이 되어서 썩게 하는 것이 민족적으로 유대인들인 겁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방인의 기독교인의 숫자가 갑자기 많아지는 겁니다, 인구증가가 많이 생기면서 그 당시만 해도 세계인구가 20억 정도 되었거든요, 그러다가 100년 후에 70억이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인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방인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인구를 많이 늘려놓았는데 갑자기 인구가 많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 20세기 초반부터입니다 그러면서 성령운동이 20세기 초반부터 일어나면서 19세기 말부터 여기저기에서 선교사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1885년에 언더우드 아펜젤러등 선교사들이 온 겁니다, 일본에도 중국에도 동남아시아 남미 중미 아프리카에 그 당시에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선교사들이 엄청나게 나갔습니다, 젊은 분들이 그러면서 이방인의 숫자를 많이 늘리는 역사들이 이러나는 겁니다, 
그때에 그러는 가운데 이방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준비가 다 되니까 그때 유대인들이 눈뜨는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눈을 뜨려면 신학적인 배경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 신학적인 배경을 존 다비라는 아일랜드사람입니다 변호사출신으로 1850년에 이 사람이 프로이스라엘이론을 정립해가지고 미국에 와서 미국사람들이 그걸 받아가지고 특히 스코필드라는 사람이 이것을 받아가지고 신학적으로 이것을 정립한 겁니다, 그때 스코필드가 바이블을 만든 겁니다, 
지금도 그쪽 계통사람들은 스코필드바이블 외에는 다른 바이블을 읽지 않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이 그룹이 많습니다, 
이렇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방인이 유대인을 보는 시각을 바꾸게 하는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에게 예언적인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을 보니까 우리가 이것을 그냥 직설적으로 보면 바울신학에 이게 문제가 있구나, 이때까지 반유대주의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 본문에 보면 친유대주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두 개의 깔려있는 이 역동적인 관계를 모르면 이게 해석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웬만한 신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슬슬 다 피해버리는 겁니다, 자세히 이야기가 안 되고 이게 맞지가 않는 겁니다, 오늘 이 부분을 저하고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그전에 전제조건들이 많이 깔려 있는 것을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제가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이야기가 안 됩니다 바울이 갑자기 친유대주의적인 사고로 그러는 겁니다, 
이방인들 너희들 말이야 유대인들이 눈이 감긴 것이 왜 감긴지 아느냐 2000년 가까이 왜냐면 지금 예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분들이 눈이 감기게 된 것은 너 네들 화목을 위한 거라는 겁니다, 
너희들 복 받으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눈을 뜰 텐데 눈을 뜰 때 유대인들을 환영해 주어라는 겁니다, 
그분들을 핍박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이방인의 숫자가 어느 정도 차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그분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환영해 주어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과거 유대인들을 핍박을 얼마나 했는지 아시지요, 기독교인들이 대체신학을 만들어가지고 과거2000년 동안 반유대주의로 해서 인종 차별하고 불이익을 주고 또 십자군사건 또 홀로코스트사건 이런 모든 반유대주의운동을 과거2000년 동안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이 섬기는 기독교인들을 아주 미워하는 겁니다, 
너 네 기독교인들 보기만 해도 밥맛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너 네들이 예수님이름으로 우리를 이렇게 2000년 동안 괄시하고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 네들이 전하는 예수를 안 믿는 다는 겁니다, 예수는 우리의 원수라는 겁니다, 이렇게 까지 생각이 되었으니까 교회를 보니까 바울이 지금 그러는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다음에 보니까 이렇게 이 사람들이 고생한 것은 누구를 보요하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이방인을 부요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방인들이 얼마나 부요해졌습니까, 
12절에 보면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과거2000년 동안 이방인교회들이 얼마나 풍성함이 되었습니까, 
로마가톨릭은 교인도 많아지고 정치적으로 파워가 생기고 이 유대인들이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이 과정 속에서 이방인들이 성공회 루터 교 개혁 교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할 것 없이 다 풍성하게 된 겁니다, 복음으로 풍성하게 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바울이 지금 말하는 것이 유대인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방인 기독교인들아 유대인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 다시 말하면 이때까지 반유대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신학을 가졌던 대체신학을 하는 이방인교회들아 너희들 생각을 이제는 바꾸어 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체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경구절 하나가 뭐냐면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12장2절3절입니다, 이게 뭡니까 
이 말씀을 가지고 두 신학이 대결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보시면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에서 너가 누구입니까 문자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나 아브라함후손을 대체신학에서 인정합니까, 
인정 안 하기 때문에 너는 누구냐 이겁니다, 과거2000년 동안 너는 이것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겁니다, 첫째는 교회다 그러면 건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클레시아 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모인 그룹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도 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모여 있는 그룹이 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영적 해석을 합니다, 또는 이것을 좁게 말해서 어떤 분들은 기독교인들 중에 엉터리 기독교인들을 생각하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엉터리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복이 됩니까, 
문제인물인데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 교회라는 하나의 틀을 가지고는 해석이 잘 안 되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2000년 동안 교회들이 얼마나 썩은 겁니까, 썩은 교회가 어떻게 복이 됩니까, 
이런 부분에서 이게 엉뚱한 사람들은 이게 말이 안 맞는 겁니다, 
그러면 이걸 조금 더 축소해서 너가 누구냐 아브라함대신에 기독교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수한 분들 안 그러면 NO3크리스천들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항상 성령 충만하고 저 세계를 바라보며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우리가 해석을 해 왔던 겁니다, 
계약신학에서는 예컨대 반유대주의신학 또는 대체신학에서는 이걸 이렇게 이해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이해를 조금 있으면 세대주의라는 말이 친유대주의 말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저는 친유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세대주의는 아닙니다, 세대주의 사상이 친유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지 지금 소위 개혁주의 언약신학이라고 그러고 또는 대체신학이라고 그러고 언약주의를 가진 사람들 중에 대체신학을 포기하고 프로이스라엘신학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많아 졌습니다, 그렇게 많다고 해서 당신 세대주의자구나 그러면 몰라서 그런 겁니다, 개혁주의신학인데 언약주의 신학인데 프로이스라엘신학에 가미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가 바울신학의 양면성입니다 
지금 바울신학이 이렇게 두 가지 양면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바울이 이런 신학으로 변화될 것을 예언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뭐냐면 그동안 대체신학을 했던 사람들이 때가 되면 너희들이 대체신학을 다시 조명할 때가 온다는 겁니다, 
어느 때 이방인의 때가 차가고 있으면서 그래서 시각을 바꾸면서 이스라엘을 보는 시각이 이제는 달라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를 드는 겁니다, 
오늘 본문16절에서24절을 예를 드는 겁니다, 왜 달라져야 되느냐 이스라엘에 대한 시각이 다시 말하면 왜 프로이스라엘이 되어야 되는가, 입니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뭐냐면 첫째 16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가루와 떡 덩이의 비유를 더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러는 겁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제사를 드릴 때 처음 익은 곡식가루를 거룩하게 해가지고서 제사를 드린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나머지 가루들을 가지고 떡을 만든다는 겁니다, 
첫 가루가 중요하게 그것이 거룩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뭐냐면 유대인들이 첫 가루들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떡은 누구냐면 이방인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첫 가루가 거룩하기 때문에 따라서 떡도 거룩해진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선택받고 하나님자녀이기 때문에 너희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 때문에 너희들도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모세에게 주셨던 말씀을 인용 시키시는 겁니다, 보세요, 
첫 곡식 가루와 떡이 무엇입니까, 곡식 가루를 만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떡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떡은 무엇입니까, 
떡은 하나님의 말씀인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6장48절에 생명의 떡 요한복음6장51절에 산 떡 또는 예수님의 살 6장52절에 이것이 참 양식이다 
자기의 살 그러면서 그것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에게서 나오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예화를 더는 겁니다, 
5병2어 사건입니다, 오병이어 오병은 빵 다섯 개를 모세오경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는 두 마리의 생선은 구약과 신약입니다 
이것이 첫 곡식 가루입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이 이것을 5000명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태복음14장17절에서21절에 5000명의 유대인에게 나누어 준 겁니다, 그래가지고 부스러기들은 이방인들입니다 
부스러기를 열두 바구니를 만들었습니다, 열두 바구니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상징하는 겁니다, 열두 제자들이 부스러기를 누구에게 준 겁니까, 
이방인에게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먹던 빵의 부스러기를 먹는 사람들입니다
7병2어 사건도 똑같습니다, 마태복음15장32절에서39절입니다, 
7병은 일곱 교회입니다, 2어는 신구약입니다 첫 곡식 가루입니다 
그런데 4000명에게 먹였는데 부스러기가 일곱 광주리입니다 
일곱 광주리는 일곱 교회입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입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라는 것은 교회 전체를 대표적으로 하는 그래서 그것이 부스러기니까 이방인으로 간 겁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어디서 부터시작이 되었다는 겁니까, 유대인에게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유대인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족속이기 때문에 이방인들 너희들도 거룩해졌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지금 이 예화를 들면서 뭐라고 합니까, 
대체신학 하는 사람에게 너희들이 유대인들을 저주받은 민족이라고 말하고 지금 까지 2000년을 고생 시켰는데 그것은 너희들을 보요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거지 유대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너희들을 위해서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바꾸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다음에 대단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오늘 제목이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성서에 보면 참 감람나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원 감람나무라는 말로도 합니다, 또 좋은 감람나무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라고 쓴 게 있습니다, 
시편52편8절에 또는 아름다운 감람나무 호세아서14장6절에 또는 복 받는 감람나무 학개서2장19절에 이 모든 감람나무를 지금 누구를 이야기하느냐면 유대인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감람나무 하나가 들 감람나무라 그럽니다, 또는 오늘 본문에 돌 감람나무라 그럽니다, 
로마서11장17절에 들 감람나무는 들에서 광야에서 제멋대로 자라는 들 감람나무 이사야서41장19절에 그래서 이 들 감람나무를 돌 감람나무라 하면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방인들을 이렇게 지칭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들 감람나무 또는 돌 감람나무입니다 
여러분 감람나무가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토양은 영양소입니다 
토양에는 먼저 물이 있어야 됩니다, 물은 성서에서는 뭡니까, 
물이 생수입니다 요한복음4장10절에도 생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7장38절39절에 보면 생수가 성령님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수를 성령님을 뭐라고 그랬냐면 포도주라 하면서 내 피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생수는 무슨 역할을 합니까, 생수는 예수님의 피니까 우리 죄를 사하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토양 속에 있는 겁니다, 
또 토양 속에 영양소가 있는 겁니다, 
영양소 탄소화물 미네랄 비타민 등 이 영양소는 뭡니까 말씀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 땅 속에 토양 속에 생명체의 원천인 삼위하나님이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토양 속에다가 집어넣어준 겁니다, 
그리고는 뿌리가 있는 겁니다, 뿌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이분들이 물과 영양소를 빨아먹는 중요한 말씀을 이분들이 받은 겁니다, 
이분들이 성령 받고 그래가지고 나무가 자라나서 가지들이 뻗어 나갑니다, 나무가 자라고 가지가 뻗어나가는 나무는 어떤 나무입니까, 
참 감람나무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스토리가 유대인들 스토리입니다 
참 감람나무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17절에 보니까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참 감람나무의 가지가 꺾임을 받았다는 겁니다, 
누구에 의해서 꺾임을 받았다는 겁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특히 삼위하나님인 예수님께서 꺾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20절에 왜 꺾어졌냐면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그러면 누구를 믿지 않아서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꺾임을 받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영접 안했고 배척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셨고 그래서 눈이 감겼기 때문에 꺾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꺾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꺾어 놓은 겁니다, 그런데 보니까 신기한 게 17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또 한 가지가 얼마가 꺾이었는데 다 꺾인 게 아니고 얼마가 꺾어졌다는 겁니다, 지금 17절은 시대적으로 1900년도 20세기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처음 1세기 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 얼마가 꺾어졌는데 다시 말하면 20세기에 들어와서 유대인 중에서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예수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다시 보면 가지 얼마가 꺾어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게 이방인들입니다 이방인들이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었다 그들 중에는 유대인들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참 감람나무에 두 가지가 하나는 잘려지고 하나는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대로 있는 것은 메시아닉 쥬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는 꺾어졌는데 꺾어진 그 자리에 돌 감람나무가 거기에 접붙임을 당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참 감람나무에 달려있는 가지가 두 가지가 있는 겁니다, 원 가지가 있고 접붙임을 당한 돌 감람나무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 붙어있는 겁니다, 
만약에 참 감람나무가지들이 꺾어지지 않고 제대로 있으면 그러면 돌 감람나무가 갈 곳이 없는 겁니다, 돌 감람나무가 영양소를 빨아먹을 예수님의 복음을 받을 길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뒤집어서 말하면 유대인들이 눈이 감겨서 꺾임을 당한 것은 그게 이방인의 복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은 이방인을 위해서 유대인 전부가 다 복음을 받으면 됩니까, 안 됩니다, 왜냐면 유대인 대부분이 다 꺾어져 있어야 됩니다, 
복음을 받지 말아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이방인이 거기에 접붙임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이방인들이 지금 접붙임을 되어서 바울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접붙임이 되어가지고 참 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아먹는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진액이 영양소입니다 
물, 성령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진액을 이방인들이 접붙임이 되어서 얻어먹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진액이라는 것은 헬라어로 포이테토스라고 포이테는 기름지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진액을 먹었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예수님 안에 들어있는 말씀과 성령 안에 들어있는 기름진 음식을 이방인들이 곁다리 붙어서 나누어 먹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서로 함께 이 진액을 나누어가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이 돌 감람나무가 여기에 함께 붙어 가지고 아주 살찌게 되었다는 겁니다, 돌 감람나무가 지금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지가 무성해 진 겁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 성공회 정교회 개신교가 무성해 졌습니다, 무성해지는 이런 때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1885년에 복음이 들어와 가지고 지금 무성해 진 겁니다, 
이런 가운데 때가 되었으니까 이런 상항 속에서 친유대주의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친유대주의 사람들에 의해서 유대인들을 고토로 다시 귀환시키는 운동이 일어나고 갑자기 전 세계가 유대인 선호사상이 여기저기서 움틀 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거기에 대한 반대세력이 또 엄청 많았던 겁니다, 로마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개신교들이 유대인들이 이렇게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2차 전쟁 때 홀로코스트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친 유대와 반유대사상이 충돌하는 겁니다, 
대체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이 충돌하는 겁니다, 
지금도 충돌하는 때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18절에 이방인 기독교인들아 너희들이 유대인의 뿌리에서 나오는 진액을 먹으면서 살고 있는 너희들아 자랑하지 말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크진 것에 대해서 자랑하지 말라는 겁니다, 
너희들의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너네 실력으로 보전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 가지를 보전하고 있는 뿌리가 누군지 아느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인데 유대인이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제 유대인들을 사랑해 주어라는 겁니다, 
너희들을 부요케 한자들이다 이러면서 우리가 딱 보면 바울신학의 양면성이 보이는 겁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만 딱 보면 바울이 친유대주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분의 모든 편지들을 보면 반유대주의적인 편지들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반유대주의적인 편지를 가지고서 그동안 2000년 동안 교회들이 바울사상을 가지고 있다가 바울이 로마서11장 이 부분을 쓰면서 성령님이 시간을 점프시켜 가지고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찰 때쯤 되면 이제는 친 유대주의로 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도 바꾸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갑자기 바꾼 사상을 오늘 본문에다가 쓰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면서 예화를 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첫 가루이야기 두 번째는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이야기를 지금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보시면 이럴 때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 유대인들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하나님의 계획아래서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겁니다, 
갑자기 유대인들이 특히 2차 전쟁이후에 유대인들이 눈을 뜨면서 두 가지 기독교인그룹들이 나오는 겁니다, 
아하 이분들이 눈을 뜨니까 우리가 도와주어야 되겠다, 
이분들을 우리가 보호해 주어야 되겠다는 그룹이 있고 한 그룹은 뭐냐면 저 사람들은 사탄의 자녀들이다 저 사람들이 하는 것들 다 엉터리들이다 보니까 문제가 프로이스라엘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스라엘을 도와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소위 세대주의 사람들인 겁니다, 
그런데 세대주의 사람들의 신학을 보면 그분들의 구원론을 보면 일곱 세대로 나누어가지고 구원론을 말하는 겁니다, 세대주의 사람들이 예언과 방언과 이런 것을 질색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 또 있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여러 가지 신학이 그 안에 깔려 있는데 과거2000년 전통신학 하는 사람들과 성경을 보는 시각이 다른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프로이스라엘에 관해서 세대주의 아닌 사람도 예전에 개혁주의 사람들도 반유대주의 대체신학을 가진 사람 중에서 많이 이쪽으로 넘어 오고 있는 겁니다, 
친유대사상으로 이것이 왜 넘어와야 될까요, 넘어와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교계가 전부다 넘어오면 또 안 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두 세력이 긴장감을 가지고서 같이 살아야 되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동안 2000년 동안 대체신학을 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하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 대체신학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이하 이것이 아니구나, 
이쪽으로 넘어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체신학으로 했다고 그래서 또 나쁜 건 아닙니다, 왜냐면 대체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모든 이런 것을 영적으로 보는 분들이거든요, 아브라함과의 계약도 영적으로 보고 영적인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다음 문자적으로 보는 것도 있습니다, 
이쪽의 친 이스라엘사람들은 그러니까 친이스라엘사람들은 아브라함의 계약이 창세기12장2절4절의 계약을 볼 때 너는 할 때 아브라함은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는 겁니다, 
아브라함 할 때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유대인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너희들은 복 받게 하면 복 받고 너희들을 저주하면 저주받는다고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는 겁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전부 같은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전 유대인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약주의도 있어야 되고 대체신학도 필요하고 친유대주의 신학도 필요 하는데 세대주의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그럽니다, 
이제는 융합신학이 필요하구나, 
이것은 제가 만든 신학입니다 융합, 하나님은 자기의 뜻이 있잖아요, 
하나님의 큰 뜻은 인간들에게 창조의 목적을 가르쳐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겁니다, 가르쳐주는 계획을 수용하시기위해서 두 민족을 분류해놓고 0.2%되는 유대인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머지99.8%의 이방인들을 이런 큰 그림 속에서 이 그림을 그려준 겁니다, 
그래가지고 나중에 목적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자녀들이 창조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 굵고 창조의 목적에 순응하도록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큰 그림입니다, 
이 큰 그림 속에서 지금 대체신학이 있고 비 대체신학이 있고 이렇게 하는 거지 우리가 큰 그림 속에서 두 민족을 만들어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하다가 때가 되니까 이제는 이걸 정돈하시면서 이 두 그룹을 하나님이 쓰시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유대인 중에 눈 뜨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144000명이 된다고 그랬거든요 요한계시록7장1절에서8절에 보면 그런데 9절부터 보면 공중혼인 잔치하는 장면을 예수님이 요한에게 보여주시거든요 그러니까 
공중 혼인잔치 전에 유대인의 144000명이 있을 것을 다시 말하면 메시아닉 쥬가 있을 것을 요한에게 보여 주었다고 봅니다, 
이것도 대체신학 하는 사람들은 144000명을 뭘 로 보느냐면 전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하나의 심벌로 보는 겁니다, 그렇게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친유대주의 사람들은 아니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유대인이144000명을 이야기한다고 보는 겁니다,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개를 그대로 다 수용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유대인 메시아닉 쥬가 점점점 많아지잖아요, 
많아지니까 이 말은 이방인의 숫자가 점점점 차가고 있다는 하나의 표시로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교회는 이런 세대에 살고 있으면서 우리의 사명은 이방인의 숫자를 채우는데 한 바퀴를 돌리고 또 한쪽은 메시아닉 쥬를 만들어내는 바퀴가 있습니다, 이 두 바퀴를 돌리는데 같은 크기의 바퀴인데 이방인의 바퀴를 돌리는데 더 무거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쪽 바퀴를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데 유대인 바퀴는 이방인의 바퀴가 돌아가면 자동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놓아두면 안 되는 겁니다, 돌릴 수 있으면 돌아가게끔 하면 이방인의 바퀴가 더 빨리 돌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때 살고 있는 겁니다, 
때가되면 우리들이 유대인들을 돕는 때가 곧 올 것 같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우리바울그분에게 2000년 전에 엄청난 비전을 주시고 이분으로 하여금 유대인으로써 이방인추수를 위해서 이방인선호사상을 가지게 하시고 이분이 이방인바퀴를 돌리는 그 일에 앞장서서 했던 이방인사역자로써 주님이 불렸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게 상당한 핍박을 받아가면서 유대인의 소수를 제자로 만들어서 유대인바퀴를 돌리다가 주님께서 갑자기 오늘 본문에서 메시아닉 쥬가 나타날 이때쯤 이방인의 숫자가 어느 정도 찰 때 반유대사상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친유대주의 사상을 가지게 하는 메시지를 오늘 저희들을 통해서 지금 공부하게 했습니다, 
바울이 알고 보니까 두 신학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저희들이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고 이 두 개를 잘 밸런스를 맞추어 가면서 주님의 뜻을 찾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이 지혜를 허락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yLBc5TacHL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