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유업으로 받자 (벧전3:8-12)2016년9월19일 말씀
오늘 말씀은 베드로전서3장8절부터12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 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아멘.
여기 보면 한국번역이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악 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원문에는 악 행하는 자들을 대하지 않으시리라 로 원문은 되어 있는데 한국말 번역은 대하시느니라. 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성경에 이렇게 반대로 번역된 부분이 열군데 가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참고로 하시고 우리가 은혜만 받으면 됩니다. 한국말로 오! 신실한 주라는 말은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런 소리입니다 변하지 않으신 하나님 나는 변하더라도 우리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제가 선교 지를 갈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게 하나 있는데 우리가 사역하는 선교 지들을 특별히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그기에 있는 우리형제자매들 특히 사역자들 예컨대 미얀마만 해도 사역자들이 열 명 가까이 있는데 이분들이 열심히 나름대로 하지만 다들 보면 관계성에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서로 불편하고 서로가 어딘지 불편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갈 때마다 그기에 책임자를 앉혀놓고 그분들의 불편함을 해소시키는 일에 온 정력을 제가 바치다가 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도 선교사 열 명 정도가 있는데 가보면 가는 곳마다 그렇습니다.
백인들 사회도 똑같습니다. 제 주변에 많은 주 안에서 형제자매들 만나면서 같이 이야기해보면 옛날에 신앙생활 잘하든 분들도 교회에 잘 안 나옵니다.
그럽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다가 보면 왜 안 나옵니까?
교회가면 골치 아픕니다. 은혜 받으러 갔는데 알고 보면 그 안에 깊이 들어가 보세요. 골치 아픕니다. 서로 싸움하고 목사 부목사 전도사 장로들 서로 싸움하고 그 안이 아귀다툼이라는 겁니다. 이런 것이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각 세계 교회에 다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마다 당면한 가장 힘든 문제입니다 이것이 지금 오늘날20세기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세기 교회에도 그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나 베드로나 바나바의 모든 편지들을 보면 교회를 향한 편지들이 다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가졌는데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윤리적으로 볼 때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의 그러한 모습이 없다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계속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같이 살 동료들인데 그것도 영원히 같이 살 동료들인데 얼굴에 보면 수심이 있고 불편한 관계가 있고 교회에 할 수 없이 온 것이지 내가 어쩌다가 교회에 와서 이 교회에 다니는데 저 교회에 다니는데 나갈 수도 없고 들어올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다니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들어와서 나갈 준비하고 어느 교회 가보니까 또 나갈 준비해야 되고 이게 가면 또 똑같고 심하기도 하고 덜 심하기도 하고 이런 딜레마 속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말에 대해서 동의하십니까? 이것이 우리딜레마입니다
베드로가 자기가 개척하고 자기제자들을 통해서 사역하는 지금의 터키지방에 자기 제자들을 향해서 편지를 쓴 것이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입니다
이걸 언제 썼느냐면 이분이 약60세 전후 되었을 때 썼는데 본인이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죽기3년 전에 쓰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영적으로 보면 가장 성숙해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이분에게 주신 메시지인데 이분이 뭐였냐면 자기제자들이 만들어 놓은 교회들을 보면 서로가 다 싸움하고 열심을 내는 사람들일수록 더 싸움을 잘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쓰신 것이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입니다 성격에는 부슨 전서가 있고 무슨 후서가 있는 교회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편지해서 안 되기 때문에 또 이어서 한 번 더 쓰는 겁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내용으로 해서 또 한 번 말하고 또 말하고 할 때는 그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왜냐면 말을 안 듣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심각하게 생각안하니까 고린도전서후서 고린도교회가 엄청나게 문제가 많았거든요 교회가 천국이 아닙니다. 문제투성이가 있는 데가 교회입니다
베드로가 말씀하시면서 너희들은 구원받은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베드로전서1장1절2절에 너희들은 미리 예정되었고 나의 자녀가 되기로 이미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문제가 많으냐? 오늘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나누려고 그럽니다. 그 문제 중에서 오늘 읽은 베드로전서3장8절부터12절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전체의 하나의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경말씀을 같이 상고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나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한국말 번역에는 바지막이라고 그랬는데 이것이 원어에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종합적으로 말하노니 이런 말입니다 내가 그동안 1장부터 2장3장 주욱 말했는데 이것을 다시 한 번 짧게 종합적으로 말하면 그런 소리입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이런 거다 하면서 말씀하시는데 8절을 보세요.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라 그랬습니다.
마음을 같이하라 다시 말하면 그 교회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 항상 거꾸로 보셔야 합니다.
그것도 명령형으로 써놓았습니다. 베드로만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편지를 보시면 사도바울의 편지는 항상 이 문제를 제일 먼저 다룹니다. 에베소서를 봐도 에베소서1장에서3장까지는 교리적인 이슈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4장부터 그러므로 그래놓고는 그때부터 제일 먼저 이렇게 살라, 이렇게 살라 가르쳐주는데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하나 되어라 이걸 베일 먼저 말합니다. 왜냐면 에베소교회도 항상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다.
로마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도1장에서8장 또는9장에서11장까지 교리적인 측면을 이야기하고는 12장1절에 소위 실제로 어떻게 살아야 된다면서 그러므로 하면서 너희들은 하나 되어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 되는 일에 하나님이 제일 관심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보면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나가 되어라 할 때 하나 되어 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의미냐면 모든 게 다 같은데 다르니까 다 똑같이 만들어라 그런 말이 아닙니다 원어를 보면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하모니를 가져라 한국말로 조화를 이루라 이런 말입니다 이 말이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조화를 이룬다는 말이 뭐냐면 서로가 다 다르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다 다르게 만들어놓았다는 겁니다. 다른데 서로가 키 높이를 잘 조정하면서 조화를 하모니를 이루라는 겁니다. 이게 조화의 개념입니다 조화의 개념을 다른 말로 하면 화평케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인이100이면 백 명이 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그것을 잘 조화시키라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조화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인데 조화를 좋아하시기 전에 창조를 어떻게 하였냐면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자연을 보세요.
산도 높이가 다 다릅니다. 강도 보세요. 모습이 다 다릅니다. 나무를 보세요.
다 다릅니다 꽃을 보세요. 다 다릅니다. 색깔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다 국화처럼 생겼으면 뭐가 재미있겠습니까? 국화는 가을에 피잖아요.
봄에 피는 어떤 꽃은 15일만 피고 없어지는 것도 있고 어떤 꽃은 멸 개월 가기도 하고 모양이 다르고 깔라가 다르고 여기서 하나님이 기쁨을 찾으시고 하나님이 창조의 보람을 느끼시는 겁니다. 사람도 보세요.
하나같이 다 한국 사람같이 만들어 놓지 않았잖아요. 갗은 한국 사람도 전라도 사람이 다르고 경상도 사람이 다르고 함경도 사람이 다르고 평안도 사람이 다르고 강원도 사람이 다릅니다. 생긴 게 비슷한데 성품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다양한 문화를 통해서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같은 어머니뱃속에서 나온 열 명의 자녀들을 보세요. 그 열명의 자녀가 생긴 게 전부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기고 성품이 같고 공부도 다 잘하고 이러면 부모가 재미있겠습니까? 열 명이 어떤 놈은 외할아버지 닮았고 어떤 놈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시어머니 닮았고 어떤 놈은 누구 닮고 누구 닮고 들여다보니까 내 몸에서 나왔는데 다 다른 겁니다. 어떤 놈은 공부 잘해서1등2등만 하는데 어떤 놈은 매일 꼴지만 하고 숙제도 안하고 선생님이 매일 오라 가라 하고 이러면서 자녀가 다 다른 가운데서 부모가 인생을 배우는 겁니다. 하나님이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른 가운데서 조화를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다른 가운데서 하모니를 잘 이룬 사람 우리교회도 다 다른데서 온 사람들입니다 나이도 다르고 성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교육수준도 다르고 신악적인 칼라도 다르고 다 다른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르지만 내 식으로 하기를 원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합당한 이론이 있으면 그 이론에 다 들어오기를 원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로써 꼭 내 식으로 해라 그러니까 강제로 군대식으로 이걸 제가 안 하잖아요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잘 조화시키는가? 조화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 보다 조화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우리는 조화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다음 주에 끝나야 된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참으면서 이웃을 이해하면서 나하고 다른 사람이라는 걸 항상 이해하면서 같이 사는 과정을 주님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8절을 다시 보세요.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먼저 어떻게 했느냐면 동정하라 그다음에 사랑하라 불쌍히 여겨라 겸손 하라 이렇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아가페사랑으로 무조건 사랑해주라는 겁니다. 조건 없이 이해해주고 자분은 나하고 다르구나. 저분은 지금 어떤, 어떤 어려움이 있기에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내가 이해해주고 나도 옛날에 그런 어려움이 있었을 때 나도 그렇게 반응했구나. 나를 이렇게 들여다보고 항상 상대방을 생각해주는 겁니다. 그게 성숙한 사람이고 그게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역사, 역사 아멘, 할렐루야 이렇게 나가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관계성을 잘 맺는 겁니다. 항상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아! 저 사람 불쌍하다 그런 표현이 아닙니다.
kind heart 친절이라는 것은 항상 이웃을 생각하는 것이 친절입니다
내 중심이 되면 친절이 안 나옵니다. 항상 내가 이렇게 하면 저분이 좋아하겠구나. 이렇게 하면 저분이 시험을 받겠구나.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자녀들 간에도 똑 같습니다, 항상 그 마음을 이웃을 배려하는 생각으로 우리가 사는 것이 친절입니다 내 중심으로 살면 그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항상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이웃을 배려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예수님이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나보다 믿음이 없고 나보다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라도 그분을 나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건들면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에게 섭섭해 하십니다 제 말귀 알아듣겠습니까? 다 사람들을 존경하고 저분을 주님이 사랑하시는구나. 그래서 주님이 저분을 향해서 죽으셨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함부로 건들면 안 되겠구나 내 식으로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는 분이 kind heart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런 속에서 겸손이 없고 kind heart가 없고 내 주관이 강하고 동정하지 못하고 하는 사람은 조화를 깨뜨립니다. 조화를 깨니까 그 속에 마귀가 들어가 가지고 그냥 조화를 깨뜨립니다. 마귀의 이름이 뭡니까? 디아블로스(Diablos)입니다. 파괴자입니다
미귀이름자체가 파괴자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려고 하는 놈이 마귀입니다 관계성의 창조질서를 여기서는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조화 속에서 잘 이루어나갈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데 그 조화를 깨려고 하는 놈이 마귀입니다 오케스트라를 한번 보세요. 콘트라베이스부터 시작해서 바이올린까지 현악기가 여러 음색이 다른 것이 있습니다. 트럼펫 트럼본 그다음에 큰 북이 있고 현악기 타악기 관현악기 다 있잖아요.
지휘자가 지휘할 때 트럼펫 소리가 크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간 동안 불면 안 되잖아요 지휘자가 트럼펫 너는 한 시간 동안에 1분만 연주하라 그러면 하루 종일 서 있다가 마지막에 붕응 하고는 끝냅니다.
그래야지만 유명한 아름다운 베토벤 넘버 파이브가 나오는 겁니다.
소리가 크다고 자기혼자서 하면 이게 아름다운 베토벤 넘버 파이브가 안 나옵니다 죽을 때도 죽고 살 때는 살고 지휘자가 시키는 대로 할 때 하모니가 되어 가지고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는 겁니다. 하모니 이게 우리가 창조질서를 봐도 알고 모든 사회구조를 봐도 압니다. 이걸 잘하는 사람이 복을 유업으로 받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복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돈 잘 벌고 건강하고 자녀 축복받고 이것을 복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제일 하층 복입니다 왜냐면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80년90년이면 끝납니다.
이런 복은 아주 유치원적인 복입니다 주님을 무슨 복을 준다는 겁니까?
영원세계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서 많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서 하나님이 너를 존 귀히 높이겠다는 겁니다. 너 계급을 높이겠다는 겁니다. 천국은 계급사회입니다
거기서 지도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거기 가보세요 다들 계급을 달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목사로써 나에게 보내주신 사람들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몇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이분들에게 계급을 높여주는 일에 제가 도움을 주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목회자의 시명은 딴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 돈 많이 벌라고 제가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 건강해서 이 세상에서 북 치고 장구치고 잘 살라고 있는 것이 목사의 사명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언젠가는 장례식에서 야! 이 사람 계급이 높겠구나?
그걸 가지고 내가 자랑을 하고 싶어서 그렸습니다. 그게 제 심정입니다
계급이 높아지려면 관계성을 잘해야 합니다. 하모니를 잘해야 합니다.
하모니를 잘하는 사람 이 사람을 보면 베드로가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성령님이 베드로에게 그러는 겁니다. 시편37편27절 말씀을 봐라 그러시는 겁니다. 이분이 그것을 그대로인용하시는 겁니다. 베드로전서3장10절 말씀에 이렇게 복 있는 사람은 복을 유업으로 받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날 보기를 원하는 자다 생명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라는 겁니다.
좋은 날이 뭔지 아세요?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상급이 주고 그때 가서 모든 세상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하나님이 상급을 주는 날이 좋은 날입니다 좋은 날을 바라보며 이 삶을 사는 사람이 저는 그것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내 눈 수준으로 뜨면 골치 아픈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걱정거리가 많고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만 따라가다 보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눈을 35도45도 각도로 올리면 좋은 날의 그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 모습을 보면서 좋은 날을 봐라보면서 주여! 제가 하모니 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계급이 올라가는 일에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면서 좋은 날을 봐라보면서 여러분들과 같이 신앙 생활하는 겁니다.
그런데 좋은 날을 봐라보는 사람이 안 되고 복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하느냐면 마귀가 공격하는 부분이 그기에 나옵니다. 혀를 조심하라는 겁니다. 그놈의 혀와 입술이 너의 복을 빼앗아 가느니라. 혀와 입술이 조화를 깨느니라. 그러는 겁니다. 혀와 입술이
여러분들이 진짜 복 있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이게 제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냥 대언해주는 것뿐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농담을 합니까? 제가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말을 지어서 합니까? 성경 속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해석해드리는 것뿐입니다
10절을 보세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한 말이란 게 딴 게 아닙니다. 조화를 깨는 말들은 다 악한 말들입니다 화평을 깨는 말들은 악한 말들입니다 왜냐면 마귀의 말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원칙을 안 다면 아! 저 사람이 화평을 깨는구나.
그러면 성령님이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마귀가 저 사람을 통해서 말하는 겁니다. 말을 들었을 때 마음에 평강이 있어야 됩니다. 누구의 말을 들었을 때 부정적인 말을 하는 그것은 성령님의 말이 아닙니다 모든 사물을 다 긍정적으로 보고 그저 이해주면서 말하는 것이 성령님의 말하는 겁니다.
아세요? 각자 각자에게 제가 부정적인 말을 해보세요. 제가 화살을 맞습니다. 제가 며칠 동안 잠을 못잡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면 화평 하는 자가 되어야 되는데 분명히11절에 보면 화평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쓰여 있습니다.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가지고 강하게 할 때는 동사를 두 개를 집어넣습니다.
여기 보면 간단한 문장인데 화평을 구하고 그다음에 화평을 따르라 그랬습니다. 영어로 화평을 식킹(seek)하라 찾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주님 앞에서 화평을 내가 달라고 찾아야 됩니다.
내가 화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도록 막 찾아야 됩니다. 그리고 동기부여가 되어야 됩니다. 그냥 적당히 해서 화평 하는 이게 아닙니다.
화평하도록 seeking하라는 겁니다. 왜냐면 마귀가 화평 하지 못하도록 계속 찾아다니면서 방해하기 때문에 내가 뒤집어가지고 그걸 발로 차버리고 내가 seeking를 해야 됩니다. 찾아야 됩니다. 차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다음에 좇는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막 추구하는 겁니다.
화평을 위해서 찾고 추구하는 정적인 신앙생활이 아니고 역동적인 신앙생활이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화평을 찾고 추구하고 왜냐면 나는 저 나라에 가면 내가 나중에 죽을 때 영안실에서 사람들이 저 사람은 화평을 찾고 추구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화평을 나누어주다가 갔구나. 분명히 저분은 높은 곳에 있겠구나. 그것을 제3자라도 다 알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저 사람은 잘 죽었다 아이고 저 사람 죽으니까 교회가 평안해 이런 말 들으면 큰일 납니다 잣대를 우리가 근방 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화라는 화평케 한다는 말은 획일적으로 하나로 만든 게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많은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겁니다.
조화라는 말을 할 때 그 속에 뭐가 숨어있는지 아세요? 이 속에는 희생이 들어 있습니다. 희생 내가 희생해야 됩니다. 내 성품이 나의모습이 내 아집이 희생해야 됩니다. 아픔이 있어야 됩니다. 그걸 때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는 겁니다. 아픔이 있어야 됩니다. 양보가 따라와야 됩니다.
이해라는 단어가 따라옵니다. 겸손이 따라옵니다. 상대방을 존경한다는 마음이 따라옵니다. 이런 기본정신이 조화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나만 생각하고 우리문화가 그렇습니다. 문화자체가 남을 생각하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열매 맺는 크리스천이 우리민족에게 많지 않는 겁니다. 저는 일본에 갈 때마다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본주위적인 교만만 꺾인다면 예수님만 만난 사람들은 참으로 훌륭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그분들의 성품 속에서 성경에서 요구하는 성품들이 일본사람에게 상당히 많습니다. 남을 이해해주고 남을 배려하고 친절한 마음이 있고 일본사람들은 교회에 모이면 싸움하지 않습니다.
일본교인들이 30명만 모이면 세계 선교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명모인 교회보다 더 많이 합니다. 저분이 똑 튀어나오고 저분이 저런 부분이 있는데 내가 과거에 저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 나를 비쳐주는군요. 거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을 볼 때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니까 저분을 통해서 나에게 거울로 보여주는군요. 무료거울입니다 무료비디오입니다 그래서 주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아하! 저 사람 나를 하나님이 가르쳐주려고 저 사람이 저런 약점을 보이는군요. 주님 저 사람을 통해서 제가 봤으니까 저 사람 저런 실수 안하게 해주세요. 저 사람 주님! 새롭게 만들어주세요 기도해주고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그분을 위해서 감싸주는 마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야 이게 조화가 되잖아요. 주변에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보고는 내 모습이 저런 모습이구나. 한번 각도를 약간 바꾸어서 보세요.
그러면 저 모습이 나에게도 있고 내 주변에 우리가족들에게도 다 있구나.
그러면서 그분이 어떤 실수를 하면 주님이 마음이 아프겠구나.
실수하면 자기가 압니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압니다.
아파하는 그 모습을 내가 생각하면서 그 마음속에 내가 들어 가주는 겁니다.
저 사람이 오늘 잠을 조금 설치겠구나. 주님 그 마음위로해주시고 이 경험을 통해서 저분이 새롭게 발전되고 조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그릇이 되게 해주세요. 같이 기도해주고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밉거나 이런 마음이 안 들도록 나도 본래 성질이 더러운 사람인데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자꾸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겁니다. 마귀의 전략은 다양성을 깨어가지고 어쩌자는 겁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 명령이 있습니다. 교회사명은 나가서 이방민족에게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기에 지도자들을 계속해서 도와주고 물질로 기도로 신학적으로 순서적으로 도와주어서 자라나게 해서 그분들로 하여금 또 전진해서 계속해서 나가게 하는 이 일이 교회사명입니다 우리교회사명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모든 선교지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선교지를 우리가 지배하는 곳이 아니고 섬기는 곳입니다
그분들을 저희들이 물질로 몸으로 정성으로 기도로 지금 하고 있잖아요.
문제는 우리가 복을 받아야 되는데 복을 받는 일에 가장 장애요인이 혀라고 그랬습니다. 혀. 그런데 이 혀는 야고보가 말씀하시기를 길들이기 힘들다고 그랬습니다. 사람을 봐라 야고보의 제자들이 문제가 있을 때 너희들이 앞에서는 거룩하지만 한 입에서 찬송도 나오고 저주도 나온다는 겁니다.
한입에서 단물도 나오고 쓴물도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애들아 무화과나무 속에서 감람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포도나무에서 무화과열매가 나오느냐 이와 같이 한입에서 둘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무슨 문제 때문에 그러냐면 내 속 깊이 있는 하트에서 마음에 독소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마음 깊은 곳에 독소들은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축족된 겁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쓴 뿌리가 그러지 않습니까? 어릴 때 받은 상처들 살면서 받은 상처들 쓴 뿌리가 독극물인데 이놈이 우리 속 깊이 들어있는 겁니다. 쓴 뿌리의 원천이 뭐냐면 사탄의 마인드입니다 사탄의 마인드가 뭐냐면 질투심입니다
루시퍼가 타락해서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난 후에 질투가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의 모든 자연 법칙을 파괴하기 시작하는 게 질투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다가 쫓겨났기 때문에 그레서 질투심이 우리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 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것이 점점 발전됩니다. 그래서 질투심이 사탄의 질투심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극물로 어디가든지 파괴하는데 뭘 파괴하느냐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조화를 파괴하는 겁니다. 조화를 하지 못하도록 해서 질투심이 화평을 파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조직체나 가면 대개 혀를 잘못 쓰는 사람들을 보면 속에 깔려 있는 게 질투심입니다 누가 잘 되는 것 꼴 보기 싫고 누가 나보다 똑똑하면 보기 싫고 하여튼 내가 앞장서야 되고 내가 인정받아야 되고 안 그러면 다 보기 싫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으로 입에서 그게 나오는 겁니다. 이게 꼭 교회만이 아닙니다. 부부관계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고 안 믿고 관계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질투심이 적은 사람들은 어디 사람들에게 가든지 칭찬을 받고 그리고 화평하게하고 어느 조직체에 가나 사람 좋다고 그럽니다. 이것은 예수 믿고 안 믿고 관계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질투심을 그대로 다 가지고 독극물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은혜로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모든 성경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편지들 베드로의 편지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문제를 안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조화를 하십시오. 조화를 하십시오. 조화를 하십시오. 백번 이야기해야 이것은 여러분들은 귀에서 듣고 제 설교가 정보로서 끝납니다.
제 설교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더 해가 됩니다.
왜냐면 알기 때문에 더 아는 체하고 지적으로 머리만 커져가지고 안 됩니다
제가 문제해결점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까? 이 속에 있는 더러운 질투심을 뽑아내어야 합니다.
뽑아내는 방법론이 있습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어떻게 뽑아내어야 하느냐면 젊은 사람들은 그게 약합니다. 아직 많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저 같이 나이가 많고 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은 50이 넘어가면 그게 잘 빠지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그냥 계속해서 쌓여있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질투심이 많으니까 경쟁심이 있고 욕심이 있고 얼굴에 그게 나타납니다.
독기가 나타나고 평강이 없고 좋을 때는 좋지만 나쁠 때는 나쁘고 이게 다 얼굴에 나타납니다. 나이 먹을수록 이걸 어떻게 제거해야 되느냐면 첫째 조건이 있습니다. 내 속에 이러한 문제가 있구나. 이 독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게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것만 인정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주여 나는 아주 못된 성품이 있습니다.
내가 누가 잘되는 것 보면 못 견딥니다 그리고 나는 입만 열면 남을 건들리는 그러한 일을 하고 항상 선한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성격이 나에게 있습니다. 그것 가지고 계속해서 주님 앞에 뱉어내어야 합니다.
자꾸 인정해야 합니다. 이게 뭡니까? 겸손입니다 이것 다른 말로 하면 복 있는 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이게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이것만 매일 뱉어내어 보세요. 주여! 내가 이게 왜 이렇습니까?
제가 아주 못된 놈입니다 계속해서 그걸 뱉어내는 겁니다.
이걸 뱉어내지 않고 딴 걸부터 기도하면 하나님이 안 들으십니다.
그러니까 이게 겸손입니다 자꾸 나의 지저분한 것을 성령님이 가르쳐줍니다.
내 속에 질투심이 많습니다. 내 욕심이 많습니다. 주님 내가 다른 사람 마음을 항상 아프게 합니다. 내 식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그 안에 있는 걸 자꾸 끄집어내어주십니다. 어떤 때는 한 시간씩 그 말만하고 나면 후련해집니다. 이게 왜 그렇습니까? 그러면 나가기도 하지만 이 안에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는 마귀성품들이 이 안에서 슬슬 놓아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흔들리면서 부서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계속해서 그걸 고백하면 그리고 어디가든지 친구사이나 뭘 할 때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사람에게 침 뱉는 경우가 있습니까? 뭘 좀 실 수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말 하는 사람 미워요 안 미워요 안 밉습니다. 뭐든지 미안해요 아엠쏘리
그게 겸손한 사람입니다 벌써 그런 걸 깨달은 다음에 그렇지 않는 사람을 보면 아주 원자재 같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자재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안 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단단해지고 자기 아집이 강해가지고 사람들 옆에 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무섭습니다.
이렇게 인정한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다음에 애통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팔복에서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박을 것임이요 애통이 뭡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주님 이것을 뽑아야지만 제가 나중에 주님 앞에 가서 상급도 받고 주님이 기뻐하는 그러한 일들을 많이 영원한 세계에 가서 할 텐데 내가 이것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됩니다
주님 나에게 제가 이걸 조화를 못하기 때문에 나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 많고 나 때문에 예수님의 몸인 이 교회가 복잡해지고 주여 나 때문입니다
나 때문입니다 애통해야 합니다. 그러면 뿌리가 흔들리면서 뽑아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딴 사람을 볼 것 없습니다. 나를 바라보세요. 그러면 기도가 깊어 지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내 눈에 보이기시작하고 보좌가 저기 보이고 보좌에서 나와 대화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러면서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나에게 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오늘 같이 말씀을 가지고 주님과 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이제부터 우리교회는 한 가지 숙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본문말씀을 일주일 동안 외우시고 그다음에 묵상하세요. 제가 다음 주에 꼭 여쭐 겁니다.
이걸 숙제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말씀을 계속외우시고 그 다음에 묵상하세요. 묵상은 이 말씀을 되새김을 하는 겁니다. 되새김하면 그때부터 주여 제가 조화의 사람이 되게 주여 저를 도와주세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러면 내가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서서히 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서서히 한꺼번에 안 됩니다 조금씩. 조금씩 성령의 열매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이게 장기전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화평케 하는 자로 가서 어디로 가든지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 보면 가서 안기고 싶고 나의 모든 속을 다 털어놓고 싶고 이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까 지상에 있는 동안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주님 옆에 올라가서는 말할 것도 없이 높아지고 이게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마지막12절을 보세요. 복 있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1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화평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의인이라는 것은 화평을 쫓는 사람입니다 주의 눈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향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화평을 쫓는 특수계급에 한다는 겁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 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뭡니까?
주님과 대화를 할 때 화평케 하는 자는 항상 모든 것에 조화를 잘 이루고 이런 관계를 잘 맺는 주님의 성품으로써 성화되는 사람은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귀를 가지고 잘 들으시고 내가 이렇게 말만하면 나를 쳐다보고 웃으시고 사랑과 존경의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이런 것 없이 그냥 주여! 주여! 기도하고 이래가지고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제가 하나님말씀으로 이렇게 잔소리처럼 했지만 잔소리로 듣지 마시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선 내가 더 성숙해지고 내 자신을 위한 설교로 항상 생각하고 그러면서 나와 같이 동역하는 여러분들도 주님이 주신 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날로, 날로 이렇게 영적으로 성장되는 영적으로 성장된다는 말은 한마디로 말하면 주 안에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서 인격자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1T75bDpxq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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