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마11:28-30) 2016년9월21일 말씀
제가 많은 사람들을 카운슬링을 하다보면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질문이냐면 목사님!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해보니까 할 때마다 더욱 내 마음이 더 무거워지고 피곤하고 죄의식이 더 많아지고 그렇게 됩니다.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이 없지 않아 있고 또 그분들만이 아니고 제자신도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예 모르고 살았으면 훨씬 나을 텐데 하나님을 알고 천국의 비밀을 알고 이 세상에서 제대로 주님을 모시고 잘 살고 싶은데 본의 아니게도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할 그러한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낙담도 하고 아니면 아예 포기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고 그럴 때가 여러분들은 없습니까?
신앙생활에 재미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괜히 짐만 죄고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안 나올 수도 없고 아예 예수님을 포기할 수도 없고 제가 카운슬링한 분은 그럽니다. 담배도 끊어야 되는데 담배도 끊지도 못하고 술도 실은 옛날 예수 믿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고 어떤 경우는 더 마실 경우도 있고 또 사업하는 사람들은 그럽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집사직분을 가졌지만 세금도 더 떼어먹고 어떤 분은 그것 때문에 돈이 덜 벌어지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또 주일성수도 잘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날씨가 좋으면 교회 안 나오고 아이들과 차타고 멀리가기도 하고 그다음에 기도하라 하시면 밥 먹을 때 잠깐 하고 성경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주일날 와서 잠깐 말씀 듣고 가고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겁니다. 왜냐면 요구사항은 많은데 하나같이 여기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고 많은 경우에 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그랬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라는 말이 영어로 weary 무슨 말이냐면 주님을 섬기는데 지쳐버린 겁니다.
사방에서 오는 무거운 짐들이 나를 꽉 눌려서 죄의식 때문에 그래서 내가 앉아있는 겁니다. 나와서 사회 보는데도 별로 마음에 감동이 오는 것도 없고 목사님 설교도 들을 때 어떤 때는 좋지만 어떤 때는 잔소리 같고 어떤 때는 듣기도 싫고 오락가락하는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다들 그럴 겁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가지고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예컨대 예수 믿는 게 별로 재미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예수 믿고 재미있다고 간증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걸 보면 질투도 나고 어떤 때는 속상하고 이런 삶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이러다가 주님에게 가는 겁니다. 이런 삶을 살다가 나이 들면서 가만히 혼자 생각해보는 겁니다. 내 자녀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어머니아버지가 나중에 장로도 되고 권사도 되고 이렇게 잘다가 우리어머니아버지가 가신 모습을 보면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자녀들도 그 라이프 그 삶을 따라서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자녀들은 알다시피 세상이 더 악하니까 우리가 옛날에 살든 우리가10대20대에 살든 그 당시와는 또 다르거든요. 우리자녀들이 엄청난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살터인데 하나미의 가르치심과 하나님의 말씀인 기독교의 기준은 그대로 있는데 세상은 더 어렵게 살도록 해놓았으니 우리자녀들이 예수 믿는 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걸 생각하면 아하! 우리자녀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청난 유혹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에 부모들의 신앙의 유산을 남겨 놓았으니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고 그냥 그러고 살 것을 생각하면 우리자녀들이 짐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모시고 목회하는 목사님은 어떨까요? 힘듭니다. 젊은 목사님들은 앞으로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를 인도할 목사님들은 상당히 힘들 겁니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이 그저 쉽게 설교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냥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이야기로 설교하는 게 좋고 그렇게 가르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만 기대하다보면 기독교가 또 본질이 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딜레마가 우리를 엄습해오고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살면서 왜 이렇게 무거운 짐들을 안고서 살게 되고 특히 신앙생활을 할까요?
목회자들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역을 하면서 과거에도 그랬지만 많은 목회자들에게 제가 말씀을 전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선교지에 나가면 이방사람들은 다 목회자입니다
그리고 많은 선교사님들도 제가 섬기는 기회가 많아서 선교사님들을 이렇게 보거나 목회자들을 보면 목회자들이 하나같이 이 무거운 짐들을 다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목회자사모님들에게 사모세미나를 할 때 사모님들이 다 우는 겁니다. 왜냐면 목회자사모 된다는 게 쉬운 게 아니고 목회자가 된다는 게 쉬운 게 아니고 보인 스스로가 무거운 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짐들을 가진 채로 나와서 설교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짐이 없는 사람이 나와서 말씀을 전해야 되는데 자기가 짐을 잔뜩 지고 있는데 이 짐 진 형제자매들에게 짐 풀어라 풀어라하면 자기도 풀지 못했는데 풀어라 풀어라하니 얼마나 힘듭니까? 생각을 해보세요?
목사님이 그런 딜레마가 있는데 그 목사님이 짐 알 풀었다고 씹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목사의 짐을 풀어주어야 할 분이 같이 짐 지고 있는 같은 동료들이 풀어주어야 됩니다. 그게 일반적인 모든 목회자들의 상태입니다
전 세계가 다 똑같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똑같습니다. 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프리카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이 왜 허락하실까요?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주시는 이유가 뭘까요? 죄 때문에 그렇다는 게 정확합니다.
죄 때문에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는 겁니다. 그러면 소위 죄라는 게 뭔가?
성서적으로 죄라는 게 뭔가? 제가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죄는 원어로 하말티아(Hamaltia)라고 말합니다. 하말티아(Hamaltia)라는 말은 뭐라고 그랬습니까? 화살을 쏠 때 과녁을 정확하게 보고 쏘아야 되는데 과녁을 벗어나는 것을 하말티아(Hamaltia)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목표로 정확하게 보고 쏘아야 되는데 우리 신앙생활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라고 보고 화살을 쏘아주어야 되는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나님의 정확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화살을 쏘는 것을 죄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의 마음이 뭐고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정확하게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걸 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매일 하나님의 측면에서 보면 죄를 계속해서 짓는 겁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책임은 하나님의 뜻이 정확하게 이것이라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목회자의 제1의 사명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을 오늘 제가 이해를 시키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인간이 하나님에게 불리 움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마귀와 사탄을 허락하셨습니다. 허락하셔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화살을 정확하게 과녁을 향해서 쏘지 못하도록 방해하도록 마귀와 사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 계획적으로 그래가지고 마귀가 이렇게 방해하도록 허락하셔가지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느냐면 너희들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그러는 겁니다. 이놈들이 방해를 하니까 방해하는 놈들이 분명히 있다 그게 내가 허락한 거다 그런데 방해하지 못하도록 너희들에게 내가 능력을 주었으니까 권리를 주었으니까 권능을 주었으니까 이놈들을 이렇게만 건들려 놓아라. 그러면 너희들이 정확하게 쏠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마귀를 허락하신 후에 우리에게 마귀를 어떻게 다룰 것까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까? 왜냐면 우리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기에 성령님이 계시지만 우리가 인간적인 육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이여기 안 계시니까 영의 눈을 뜨고 하나님이 가까이 있는 하나님을 만나라는 메시지를 이런 식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매일 나와 가까이 있게 하자 그러면 네가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와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마귀로 하여금 너를 자꾸 건들리게 하면 네가 괴로워지고 짐이 무거우니까 왜냐면 과녁을 정확하게 보고 쏘지를 못하니까 항상 삶이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어딘가 꺼림직 하고 무겁고 시원한 게 없는 겁니다. 마귀가 그렇게 방해를 계속하거든요. 그럴 때 빨리 하나님 앞에 나가서 마귀를 쫓아주세요 라고 자꾸 기도하라는 겁니다. 기도는 뭡니까? 하나님과 대화를 하라는 겁니다.
인격적인 대화를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은 그랬습니다.
내가 기도를 쉬는 이것이 죄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죄라는 겁니다.
신앙생활 할 때 기도생활 안 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옵니다. 기도해야 되는데 매일 기도안하니까 그래서 주님은 기도를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지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걸어가나 앉으나 주님과 대화하면 나의 마음이 주님 앞에 항상 열람하면서 기도하는 겁니다. 또 죄라는 것은 제가 말씀드리는 죄는 크게 보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그분에게 의지하고 모든 것을 다 의지하라는 겁니다.
가까이 와서 의지하고 그게 기도입니다 내 힘으로 하지 말고 의지하라 그것을 어떤 부분에서 믿음을 가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우리자녀와 아버지와 관계와 똑같습니다.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아버지를 경외하고 존경하고 찬양하고 이럴 때 아버지와 아들관계에서 아버지가 사랑을 줍니다. 그리고 과연 내 아들이구나 아들은 거기서 평강을 느낍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 하나님! 하나님은 창조주십니다
라고 인정을 자꾸 해야 합니다 이분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매일 기도 속에서 주님! 주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우리한국의 이번선거도 뭐가 어떻고, 어떻고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하나님의 장중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선거결과를 만드셨습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이민족을 주님의 뜻대로 움직여주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잘해서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철저하게 한국민족역사를 쥐고 계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찬양하고 감사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주십시오. 이렇게 주십시오. 해서 하나님이 해주시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주님! 이 민족이 가는 길을 주님의 장중에 두시고 주님의 뜻에서 주님의 의지 안에서 이 민족을 끌어가주세요 내가 이렇게 해주세요. 이렇게 해주세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다면 그냥 도랑 치면 가재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도록 자꾸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민족이 무슨 당, 무슨 당 나왔잖아요. 그것도 다 하나님이 만드신 앞으로도 어떻게 나갈지 모르잖아요.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겁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지금 대통령 아무개 어느 당 주님이 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시오. 그 뜻이 무엇인지 나에게 밝히 보여주십시오. 이게 주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우리민족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수직적인 관계를 잘 하지 않을 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짐이 있는 겁니다.
어딘가 모르게 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항상 매일매일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을 열람하는 일 그것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죄를 짓지 않는 겁니다. 그분이 하시는 모든 것을 다 인정하고 찬양하고 경외하고 그래서 우리가 찬양하는 겁니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죄 짓게 하는 게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거운 짐이 많습니다.
수평적인 관계는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관계입니다 그기에 엄청난 하나님의 요구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 첫째로 형제를 서로 사랑하라
관계 속에서 서로 은혜를 베풀어줘라. 서로 오래 참으라. 친절해라 무례히 행치 마라 자랑하지 마라 믿음으로 서로 행하라 외모로 사람을 보지 마라 욕심내지 마라 엄청난 요구사항들이 있습니다. 구약에만 율법이613개입니다.
이 모든 수평적인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대로 하지 않으니까 나에게 매일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이 무거운 짐을 알고도 행치 않는 그것도 죄라고 야고보서4장17절에 말씀했습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죄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지만 이런 무거운 짐을 다 많이 가지도록 하나님이 이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수직적인 죄도 어느 정도 허락하시고 수평적인 죄도 허락하셨습니다.
마귀를 풀어놓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허락하신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역설적입니다 그래서 우리주님이 그러는 겁니다. 애들아!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이런 수직적인 이런 모든 문제와 수평적인 모든 문제와 짐을 너희들에게 허락했다 그래서 우리주님이 오늘 말씀하시는 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여! 수고는 영어로 weary 지쳐버린 사람들이여!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너희들아! 내가 너희들을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 예수님이 멍에를 메고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시는 분 아닙니까? 그러듯이 나도 예수님처럼 멍에를 메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멍에를 메신 것은 우리에게 너희들도 하나님의 자녀지만 멍에를 메고 인생을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끊임없이, 끊임없이 무거운 짐을 메고 너희들은 나를 따라와야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수직적인 짐 수평적인 짐들을 계속 메고 나를 따라 오는데 너희들이 그 짐을 지고 따라오는데 그 짐을 나에게 던져버리라는 겁니다.
왜냐면 내가 지고 가는 짐은 세계80억의 모든 인구의 짐을 지고 간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나는 무겁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짐을 나에게 던져버리라는 겁니다. 이 말은 뭡니까? 내가 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짐이 있습니다. 짐을 허락했습니까? 안 허락했습니까? 짐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짐을 줄 때마다 그 짐을 나에게 던지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나에게 던지는 연습을 우리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왜냐면 그 짐을 던질 때 주님과 나와 가까워지는 겁니다. 내가 짐을 질 때 예수님이 진 짐을 내가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리고 그 짐을 던질 때 아! 주님 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내 노력과 내 재주로는 안 됩니다 내 학벌 내 돈 내 경험가지고는 안 됩니다 주님 내가 다 맡깁니다. 자녀들 때문에 진 짐들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물질문제 사업문제 사람들과의 관계성문제가 엄습해 오는데 견딜 수 없습니다. 주님 이걸 다 가져가세요. 이걸 맡기는 겁니다. 맡기는 연습을 하세요.
너희들 맡겨라 그럴 때 너희들 뭘 깨닫게 되는지 아느냐 내가 너희들의 짐을 받았을 때 너희들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다음에 짐이 가벼워지니까 믿음이 생긴다.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너희들이 인정하는 믿음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하! 저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그러면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내가 느끼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심을 내가 인정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짐들을 던져버리니까 내가 가벼워지고 자유를 느끼고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해주시는구나. 진리가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을 체험하라는 겁니다.
내가 자유를 받으니까 계속해서 진리인 예수그리스도에게 의지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이분의 은혜에 내가 더 감격하게 되고 이 은혜 때문에 내가 사는구나. 이 은혜를 매일 주님 앞에 고백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러는 겁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겁니다.
우리주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어떻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내가 너희들의 모든 죄를 다 덮어버리라 그랬습니다.
맡기면 이분이 내가 싹 덮어버리리라 그러니까 우리는 지난 과거에 지은 죄들을 무거운 짐들을 그냥 입으로만 고백하면 요한1서1장9절에 만일 너희들이 지은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것을 체험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죄를 짓게 만들어 놓아야 된다면서 실수하게 합니다.
그래놓고 실수 때문에 내가 부끄러워하고 실수 때문에 내가 겸손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실수를 주님이 받아주셔서 나를 높이시는 걸 보면서 아하! 이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구나 로마서4장7절에 그랬잖아요.
너의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도다. 실수한 후에 하나님이 그것을 카버해주는 그것을 받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더 겸손해지고 더 낮아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 찬양하게 되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주님은 입을 열고 우리가 주님 나의 죄를 기억하시고 이걸 좀 씻어주세요. 말만 하면 어떻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나는 너희들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겠다. 히브리서8장12절에 그랬습니다.
우리주님은 딴 것은 다 할 수 있는데 고백한 죄는 하나님이 다시 기억을 안 하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엄청난 복음의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 속 깊이 고백하면 되는 겁니다.
왜냐면 지금 이 순간까지 지은 죄를 고백해서 빨리 털어버려야 됩니다.
왜냐면 앞으로 지을 죄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앞으로 지을 죄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던져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그때그때마다 또 토해내고 또 토해내고 토해낼 때마다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더 체험하고 더 눈물 흘리고 더 감사하고 더 경외하고 더 의지하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체험하면서 주님 앞에 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기도안하고 주님의 용서를 체험안하고 사는 사람이 우둔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성화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성화가 뭡니까? 주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열람되어서 나의 부족함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주님 나를 다시 한 번 은혜 베풀어주세요.
주님의 마음속에 내 마음을 열람하는 그것이 성화입니다 그것이 매일매일 자라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성화된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나는 내 힘으로 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시는구나.
나는 주님의 은혜 때문에 지금까지 살고 있구나. 고백하는 사람이 성화된 사람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고 안아주고 왜냐면 주변사람들을 보니까 전부 죄 짓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그 죄 때문에 저분들이 어께가 무거워져서 피곤해있고 어께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자비를 베풀게 되고 도와주고 싶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하나님께 부탁하고 싶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게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이 지은 죄를 보고 눈감아주면서 그냥 너 나한데 말만하라고 기다리고 계시고 지금 죄 지었다고 해서 기도안하는 것도 죄입니다.
어머니아버지여! 어머니아버지가 기도생활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실 때 죄 짓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망치로 때립니까?
여러분들 가정에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빼앗아 갑니까?
그러지 않잖아요. 그냥 가만히 놓아두시고 계속해서 은혜만 베푸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내가 감격하고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마음이 가난하게 되는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을 경험한 자는 날로, 날로 수평적으로 내 이웃에 이런 걸 경험한 사람들이 그냥 깔려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경험을 나누어주고 힘주고 사랑해주고 용서해주고 그분이 자라나도록 만들어주는 겁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마라톤입니다
마라톤경주와 똑 같습니다 마라톤경주하면서 우리는 포기하면 안 됩니다
내가 어떤 실수를 했다고 그래서 내가 어떤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그래서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고 이걸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더욱더 높이시라고 그러시구나. 나를 더욱더 성숙되게 만드시려고 그러시구나. 그것은 간단합니다.
주님 앞에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은혜 베풀어주세요.
계속해서 주님 앞에 죄송합니다. 말만 계속하면서 주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주님은 그 말씀을 기다리십니다. 죄송합니다. 이 한마디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죄송한 그 말씀 때문에 나에게 하나님이 나의 죄를 기억도 안하신다는 그 말씀을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으면 나에게 평강이 옵니다
그래서 그 평강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평강 속에서 그분이 여기 계심을 내가 보게 되고 내 옆에 따라다니심을 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보혈이 항상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항상 채워주심을 보게 되고 그러면서도 또 실수를 합니다. 그러면 또 하나님께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길어지고 높아지고 양질의 관계성을 주님과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이 왔을 때 시험이 올 때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고 낙심하지 마시고 자기비하하지 마시고 아하! 하나님이 나를 오뚜기처럼 세우시려고 그러시구나.
이게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러면서 주님! 저는 오뚜기가 되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일어서세요. 일어서는 길은 간단합니다.
주님께 무릎 꿇고 그분과 대화하는 겁니다. 나에게 은혜 베풀어주세요.
그래서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는 게 그 소리입니다.
나 돈 많이 달라 건강 달라 사업 잘 되게 해 달라 이 기도는 그냥 지엽적인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지 마세요. 이런 기도는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기도입니다 관계만 잘 맞으면 나머지는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습니다.
그까짓 돈 그게 뭐가 대단합니까? 마귀이놈들은 우리가 돈만 생각나게 합니다. 이 세상은 그것만 생각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돈 때문에 모든 시간과 마음과 나의 관심이 다 그기에 있습니다. 오뚜기 삶을 살면서 오뚜기가 점점 더 큰 오뚜기가 되면서 주님을 만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것을 경험하고 하시는 말씀이 빌립보서4장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분은 이 경험을 하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바울도 오뚜기 삶을 살면서 주님을 섬기다가 나중에 주님이 부탁하신 일을 다 마치시고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험을 하시면서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래서 오늘 찬송408장보세요.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마음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 이분이 죄를 안지어서 평안합니까?
아니잖아요. 이분도 이 시를 쓰는 이 순간에는 죄가 다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청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 시를 쓴 몇 시간 후부터 또 죄를 짓는 그런 경험을 했지만 그다음에 가서 또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하면서 평강을 계속 누려온 사람입니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마음이 늘 평안합니다.
악한 죄가 나를 또 넘어뜨리지만 또 주님과의 관계를 재정립 하고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고 그러니까 또 내 마음에 평강이 오고 과거에 엊그제 평강과 지금 받은 평강과는 질이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어떤 게 더 셉니까? 어떤 평강이 더 괜찮습니까? 2절을 보세요. 내 맘에 솟는 영생수한 없이 흐르니 영생 수는 성령의 생수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나에게 항상 흐르니 목마름 다시없으며 늘 평안하도다. 우리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항상 나에게24시간 따라다니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경험을 안 해서 그렇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니까 그것을 내가 매일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되신 주의 사랑을 형언치 못 하네 이분은 이게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오뚜기처럼 나를 세워주심에 그 사람에 다시 한 번 감격하며 그 사랑 내 맘 여시고 나에게 새 소망주시고 어려운 가운데서 악한 죄 파도가 치고 있는 가운데서 소망이 있는 겁니다. 주 예수 온갖 고난을 왜 몸소 당했나. 주 함께 고난 받으면 면류관 얻겠네. 예수의 고난 우리를 위해서 모본으로 보여주신 고난 나도 주님의 이 십자가를 멍에를 내가 지고 같이 가야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 멍에를 안지면 딴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 왜냐면 교만해지고 이 세상에 눈이 가게 되고 하나님의 저 세상에 눈이 안 가게 되고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멍에를 주어가지고 십자가를 지고 나처럼 따라와야 된다는 겁니다. 고난을 당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너희 눈이 이 세상에 가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게 되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피조물들은 그러한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몸소 너희들을 위해서 너희들이 앞으로 이런 식으로 해야만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기 위해서 몸소 십자가의 어려운 짐을 지면서 너희들 이렇게 해라 너희 십자가를 지라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너희들은 나를 따라 온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해서 지신 것이고 그분이 이런 어려운 방법으로 하신 것은 너희들이 이 과정을 나처럼 겪어야 된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복 있는 자가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피조물들은 눈이 이 세상에만 가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편하고 잘 되고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되로 다 있으면 그 사람은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안 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지만 마음은 하나님 앞에 안 간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 세상이 좋으니까 너희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고 천국백성이기에 천국을 바라보며 살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편하게 안 해줄 것이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사랑의 메시지로 주시는 겁니다.
우리 이 찬송을 같이 하면서 오늘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찬송가408장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까요? 악한 죄 파도가 매일 나를 휩쓰는데 내가 지은 죄가 엄청나게 많은데 어떻게 내 마음이 평강해집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을 하나도 순종하지 않았는데 하나님말씀을 상고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고 나에게 마음을 불편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지도 않고 입만 열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내가 친절하지도 않았고 사랑을 베풀지도 않았고 내가 많이 가지고 있는 물질 중에 정말 주님 앞에 마음껏 사용하지도 않았고 주님이 부탁하신 전도도 하지 않았고 정말 입만 열면 주님 앞에 죄지은 것이 너무나 많은데 내 마음이 어떻게 평강이 옵니까? 평강을 가지려면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시면서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겁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주님 앞에 이걸 못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에게 믿음을 주셔서 내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제 마음으로는 못 합니다 제가 믿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눈이 너무나 집중되어 있어서 내 마음이 주님나라를 생각 못합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렇게 자꾸 주님과 대화를 하세요.
마음 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화를 하시면 우리주님이 어떻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내가 지은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다.
너 입만 벌리고 자꾸 나에게 고백만해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다 덮어주겠다
그분의 말씀 내가 기억도 하지 않을 터이니 내가 엊그제까지 지은 죄들을 주님이 기억도 하지 않으시는구나. 그 믿음이 올 때 나에게 평강이 오는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지을 죄들에게 대해서도 걱정하지마세요.
주님 과거에는 하루에 죄를 오십 개를 지었는데 내일은 내가 오십 개의 찌를 또 지을 텐데 어떻게 합니까? 이런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평안한 마음으로 주님 나는 피조물입니다 내가 오십 개를 또 지을 것을 내가 압니다.
그렇지만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내가 믿음을 가지고 이제는 오십 개에서 마흔아홉 개를 짓도록 나를 도와주세요. 주님이 도와주셔서 마흔아홉 개를 짓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아직도, 아직도 주님 앞에 부족한 사람입니다 또 좀 도와주세요. 마흔여덟 개로 내려갈 수 있도록 마흔다섯 개로 내려갈 수 있도록 주님 감사합니다. 주변에서 저 사람이 변해가는구나 이러면서 숫자를 줄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서른다섯 개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흔다섯 개로 올라가는 겁니다. 또 그러다가 마흔여덟 개로 올라가는 겁니다. 쉰다섯 개로 되는 겁니다. 과거보다 더 올라가는 겁니다.
그러면 또 가슴을 치는 겁니다. 주님 제가 왜 이렇습니까?
제 나름대로 서른다섯 개짜리인데 왜 쉰다섯 개가 되었습니까?
또 고통 하는 겁니다. 주님이 그걸 보고는 웃으십니다.
알겠지! 너 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는 주님이 도와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스물다섯 개짜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살 것 같습니다.
스물다섯 개짜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보니까 육십 다섯 개로 또 올라가는 겁니다. up and down, up and down 그러니까 이게 마라톤입니다 그래서 주님 제가 신앙생활을 할 때는 스물다섯 개가 되었는데 이제 육십 다섯 개가 되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럴 때마다 주님 저는 주변사람들에게 말할 능력도 없습니다.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겸손해지는 겁니다. 아하! 내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도 없구나. 이걸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많이 성화되어 스물다섯 개로 내려가는 겁니다. 옛날에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러니까 영안이 뜨여지고 영성이 깊어지고 이제는 스물다섯 개도 경험하고 육십 다섯 개도 경험하면서 영성이 깊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육십 다섯 개의 죄를 짓는 주변사람들을 보면 내가 안타까워해주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과거 같으면 택도 없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저 사람 얼마나 괴로울까?
저 사람 얼마나 바보스럽나. 그분을 위해서 정죄하는 게 아니고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아픔 속에서 경험하고 있겠지 하면서 위로해주고 안아주고 그 사람이 마흔다섯 개로 줄이도록 도와주고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삶입니다. 이런 사람을 살 때 평강이 나에게 들어오고 어떤 때는 평강이 나갔다가 다음에 평강이 들어 올 때는 평강이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고 더 높아지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 내가 다섯 개짜리로 발전되는 겁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주님 앞으로 가는 겁니다. 그럴 때 얼마나 주님 앞에 내가 성숙된 모습 그대로 하늘나라에 가서 나의 계급이 설정되는 겁니다.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가서 나의 계급이 설정되어서 영원한 세계 속에서 나의 포지션이 설정된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로 결정되니까 이 세상에서 얼마만큼 많이 겸손해지고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의 마음을 열람했느냐 그기에 달려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지만 항상 그래서 주님 앞에 와서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제가 사역을 누가 보면 크게 한다고 하지만 주님! 제가 주님 앞에서는 제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항상 그럽니다.
여기 앉아서 주님 제 목숨을 주님이 오늘 이 순간에 가져가시면 저희가 다 놓고 가야되는 존재입니다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이 사역을 제가 좀 더 오래할 수 있도록 80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세요. 제가 이렇게 주님 앞에 간구합니다. 지금 이 시간은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힘주심이 회개케 하심이 소망주심이 우리 모두에게 매일매일 증가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2xy6zwgX5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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