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및 부활절시리즈

2017년 부활절. 고린도전서15장12절-19절, 예수님의 부활의 당위성과 우리의 소망

변명섭 2025. 4. 9. 12:47

사순절 및 부활절시리즈 
2017년 부활절. 예수님의 부활의 당위성과 우리의 소망(고전15:12-19)
                                           2017년4월16일 말씀
오늘말씀은 고린도전서15장12절부터19절까지 말씀입니다
오늘설교는 조금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노트정리를 잘 하셔서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와 세상 돌라가는 모든 것들과 어떻게 연관되는 지를 우리가 자세히 정돈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바울이 지금 어떤 상태에서 편지를 쓰느냐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2년 가까이 정성 드려서 말씀을 가르치고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고 그랬는데도 이 교회 안에서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에 대해서 확실한 믿음이 없고 또는 그 부활을 부인하는 분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현상이 전 세계기독교에 과거2천년 역사 속에서 항상 있어왔던 것이고 특히 예수님 재림이 가까이 온 이때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
이런 부분이 더 심해질 것을 예언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예언이기 때문에 은혜가 임함을 해택 받지 못하는 분에게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오늘 자세히 보기를 원합니다. 
복 받은 고린도교회가 그 안에 많은 지식인들이 부활을 부인하는 그 유명한 바울을 통해서 그렇게 성경공부 했는데도 그것도 일주일도 아니고2년 가까이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았는데도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이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한번 봅시다. 1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지금 고린도전서를 주후 몇 년에 썼습니까? 55년입니다
항상 년도를 생각하세요. 예수님이 몇 년에 부활하셨습니까?
주후30년입니다 주후30년에 부활하시고 많은 부활의 증거자들이 부활을 외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25년이 지나간 이 상황 속에서 많은 부활을 증거 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25년을 지나면서 그 사이에 복음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부인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겁니다. 그기에 대해서 바울이 말씀드리는 겁니다. 13절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기가 막힌 말씀을 하십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바울과 바울의 동역 자들이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 뭐라는 겁니까? 이분들이 뭘 전파했다는 겁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육적인 부활을 전파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믿음으로 믿는 행위가 이분들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고 이것을 전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딴 소리하는 사람에게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 굉장히 많습니다. 15절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부활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거짓예언자들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잠자는 자도 망하였다는 이 단어가 중요한 단어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유명한 바울의 고백의 말씀입니다 오늘제가 본문말씀으로 채택을 했습니다.
과거2천년 동안에 기독교의 양대 절기가 있어 왔습니다. 
그 양대 절기가 첫 번째가 성탄절입니다 두 번째 절기는 부활절입니다
성탄절의 본질은 뭡니까? 예수님의 삼위일체 되신 분 그분이100%신성이시다 그분이100%인성이시다 이것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부분이 성탄절의 본질입니다 부활절의 본질은 뭐냐면 구원론 성화론 또 선교론 천국 론까지 부활절과 연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절기를 철저하게 조명하면 기독교를 전체를 섭력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 두 절기는 상당히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역사를 보면 2천년 동안 이 양대 절기를 카타콤시대가 끝나고313년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의해서 인정받으면서 제도화로 들어가면서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이 양대 절기가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습관화되어 버렸고 관습화되어 버렸고 또는 관례화되어 버렸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하는 거라는 이분들의 본질 부활절은 부활절의 본질에 망각하면서 어디에 치중하느냐면 자기가 속해있는 교단의 전통 또는 규범 또는 교단역사 또는 교단지도자들의 가르침 또는 예배형식 이런 쪽으로 서서히 변질되게 되면서 본질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비 본질들을 본질 화시키기 시작하면서 본질들이 희석되고 또는 혼합되고 변질되고 이렇게 함으로써 본질이 희미하게 되어 버려가지고 혼돈스럽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것이 과거2천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부분들입니다 그래서 분별력이 상실되면서 교회지도자들 부터시작해서 예컨대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신부나 또는 사제들이나 또는 정교회 감독들 이 교단의 신학자들 또는 종교개혁이후에 개신교의 모든 감독들 목사들 선교사들 전도사들 이런 모든 사람들이 본질과 비 본질에서 혼돈을 가져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변질된 성서 관 변질된 신학관들 교회 관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영적시각장애를 가지게 된 겁니다. 문제는 뭐냐면 자신들이 영적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자각증세를 잊어버린 이것이 큰 문제점들입니다 그리고는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자기네가 알고 있는 기본들이 본질로 생각하는 착각 속에서 이분들이 자기네가 소경이면서 교인들을 다 소경으로 만들기 때문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경우가 되어 버린 겁니다.
이런 상황이 기독교역사 속에서 항상 있어 왔고 그 안에 본질에 충실해야 된다고 외쳤던 소수의 사람들이 항상 그 안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그루터기다 이렇게도 표현하고 또는 남은자다 이렇게도 표현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또는 제자들이다 또는 헌신 자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남은 자들이 그루터기들이 항상 다수의 시각장애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미움을 받고 나중에는 살해까지 당하는 순교까지 당하는 일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에 보면 그것이 오늘날도 다른 모습이지만 오늘날도 엄청나게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우리예수님이 만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왜 이것을 그대로 허락하셨을까? 왜 이런 모습을 멈추지 않으셨을까? 이게 우리 질문입니다
왜 기독교의 역사를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느냐 여기에 대한 답을 우리가 찾아야 됩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왜 신실하게 예수님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소수고 핍박받고 미움 받고 소외되고 그렇지 않는 가짜들이 더 판을 치는 이 세대 왜 예수님이 이렇게 만드셨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제가 나중에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시각장애자들을 우리가 한번 세 가지 부류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부류가 뭐냐면 완전시각장애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분들인가 전혀 앞뒤를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암흑 속에서 빛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들이 있습니다. 
이런 시각장애자들이 첫째 그룹이고 두 번째 시각장애자들은 부분시각장애자들입니다 이분들은 희미하게 눈이 뜨여서 명암은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뒤는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명암만 보이고 또 어떤 분들은 근거리가 희미하게 어떤 물체로 보이기도 하고 그런 분들을 부분시각장애자들로 한번 분류해보았습니다 세 번째는 시각장애자는 아니지만 비정상시각을 가진 분들입니다 예컨대 근시안 또는 원시안 난시안 그런데 색명도 있습니다.
또 야 명증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백내장증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는 착시현상을 가지고 있는 육체적인 시각장애자들의 이 원칙이 영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2천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이런 시각장애자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특히 지도자급들이 완전시각장애자들이 많았고 부분시각장애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분들이 이렇게 시각장애자들인데 이분들이 자기가 시각장애자라는 자각증세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은 겁니다. 지도자들인데 자각증세가 없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가톨릭이나 개신교에 소위 매스컴을 타는 유명한지도자들이 나와서 말하는 것이 뭐냐면 모든 종교는 다 같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알라도 다 그리스도시고 부처도 그리스도시고 우리예수도 그리스도시고 이런 말을 매스컴에 나와서 할 때 모든 사람들이 다 박수치는 겁니다.
제가 그걸 보면서 당신이 누구냐? 그러면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됩니까?  
시각장애자들인데 이분은 어떤 시각장애자들입니까? 완전시각장애자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런 사람들보고 박수치고 유명하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성스럽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어떤 시각장애자들입니까? 완전도 있지만 부분도 있지만 근시안 원시안 백내장 가진 사람들도 기독교인들 중에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 보고 박수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끔 가다가 가장 존경스러운 성직자가 누굽니까? 
그러면 이런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뭡니까?
여기 명단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뭘 말해줍니까?
대중이 다 시각장애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7장1절부터5절까지 외식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터인데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눈이 감겨서 안 보이는 겁니다. 
눈이 밝히 떠있는 티만 있는 사람들을 비평하고 무시하고 얕잡고 우습게 여기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말씀을 잘 소화해야 됩니다. 이게 왜 이랬냐? 고민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넓은 문으로 가는 사망으로 이끄는 그러한 지도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짓선지자들이라고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마태복음7장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양의 옷을 입었지만 노략하는 이리들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당시에 예수님과 부활과 관계해서 이런 짓들을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예수님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도 그 부활을 왜곡시켜가지고 부활이 예수님의 육적부활이 아니라고 왜곡시켰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학설이냐면 예수님의 무덤이 빈 무덤이 되어야만 됩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셨다면 그런데 빈 무덤이 이게 예수님이 부활해서 빈 무덤이 아니고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도둑질해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와 마리아와 여자 분들이 가서 보니까 예수님이 안 계셨다는 학설로 도난설이라고 알고 계세요. 도난 설은 마태복음28장11절에서15절에 도난 설을 기록해놓았습니다. 뭐냐면 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로마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었다고 그랬습니다. 돈을 줘가지고 애들아 너희들이 예루살렘에 다니면서 총독에게 우리가 잘 지켰는데 예수님의 시체를 예수님의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도난설이 15절에 널리 퍼졌다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5년 후 고린도교회 사람들도 이 소문을 듣고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 제가 여쭈어 보겠습니다.
왜 예수님의 시체를 도난당했다고 까지 억지주장을 하면서 거짓말을 왜 했을까요? 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를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왜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그러느냐면 첫째 뭐냐면 예수님의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예수님자신의 대한정체성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구세주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이 세 번이나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죽을 터인데 죽었다가3일 만에 부활한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장21절 17장22절 20장19절로 최소한 세 번 그 외에 구약에서도 많은 예표들이 나오지만 직접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세 번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대제사장들 이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저분이 스스로3일 있다가 부활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이 사람들이 두려움이 있습니다.
혹시 저분이 부활하면 자기네가 그동안 배척했던 것 예수님의 정체성을 부인한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겁니다. 자기네가 예수님을 핍박했던 정당성이 무너져버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네체면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나시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난 설을 만들어가지고 이렇게 퍼뜨리는 겁니다.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하나님백성들이지만 자기이해관계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사람을 얼마나 어렵게 만드는지 아세요?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경험을 합니다. 여러분들 평신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이 이런 모습을 직시하고 계신데 왜 이런 나쁜 놈들을 잡아다가 당장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지 그런 말을 하는 놈들 입어 비틀어버리지 예수님이 안하시는 겁니다. 
이게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 후에 기독교역사를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몇 가지 학설들이 있어 왔습니다. 지금 이 도난 설은1세기 때 학설인데 2세기 때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소위 진보주의신학자들이 종교다원주의신학자들이 이성주의신학자들이 이런 신학자들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읊프되는 학설들이 있습니다, 뭐냐면 졸도설이라는 겁니다. 멀쩡하게 생긴 똑똑한 신학자라는 분들이 이런 학설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어디가 감겨서 그렇습니까? 졸도설이 뭐냐면 들으면 그런직 합니다. 그런데 이런 걸 들으면 여기 홀긴 하는 사람들이 있느냐면 그걸 들으면 열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그것 듣고는 열 받는 사람이 소수지만 있습니다. 졸도설이 뭐냐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는데 하도 힘들어가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게 아니고 졸도하셨다는 겁니다. 졸도하셔가지고 죽은 것으로 생각해서 로마 군인들이 무덤에 갖다가 눕혔는데 졸도하신 분이 깨어나 가지고 자기발로 나갔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제자들을 만나가지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신신학자들이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많지만 서양나라에 가면 굉장히 많습니다.
세 번째 학설은 뭐냐면 다른 무덤 방문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가 있는 무덤으로 갔는데 이분들이 너무나 흥분해가지고 마음이 아프고 해서 막 달려갔는데 어떤 빈 무덤에 도착했다는 겁니다.
너무나 마음이 조급해서 가보니까 빈 무덤이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죽은 시체는 그대로 있었는데 이게 무슨 학설입니까?
다른 무덤 방문설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괜찮지만 요즘 와서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학설하나가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로마가톨릭이나 정교회나 개신교의 대부분주류교단 중에서 자유신학을 추구하는 이 사람들은 WCC사람들 대부분 다 뭘 이야기하느냐면 영 부활 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예수님이1세기 때 실제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이분의 사상이 부활했다고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분의 가르침 이분의 산상수훈내용들 이분의 숭고한 정신들 이분의 숭고한 가르침 모든 것이 이분의 라이프스타일 이런 것들이 부활해가지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서 기독교가 영적부활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지금까지 이렇게 왔다고 보는 겁니다. 실제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대부분의 오늘날 세계교회들이 부활절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아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부활절찬송도 똑같이 부릅니다.
그런데 앉아있으면 웬만한 사람들은 이게 혼돈스러워서 모릅니다. 
그냥 부활인줄 압니다. 그렇지만 이분들의 사상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분의 정신이 부활한 겁니다. 로마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우리나라에 진보사상을 가진 개신교들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이라는 단어만 가지고 들으면 구별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오늘은 구체적으로 부활과 관계되는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런 소위 거지같은 학설들을 피조물들이 만들어가지고 창조주하나님이 창세전에 이렇게 하실 것을 다 예비하시고 이것을 구약전반에서 미리 예표로 보여주시고 본인이 이 사실을 확인하시고 그 확인에 맞추어서 본인이 실제로 다 하셨는데 피조물들이 건방지게 자기네 머리로 훈련하면서 창조주가 이렇게 하시기로 결단하시고 우리에게 창조목적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계획하신 이것을 머리 굴려가면서 이렇게 이것을 부인하는 일들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무례한 짓들을 하는데 소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회이름으로 교단이름으로 이런 무례한 짓들을 하는데도 예수님이 가만히 놓아두는 겁니다.
과거2천년 동안 그러면 왜 가만히 놓아두십니까? 공의 하나님이신데 정의의 하나님이신데 혼쭐을 내어주지 아닌 겁니다. 이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혼쭐을 받는 2천년 이런 시대에 지금은 더 심한 겁니다.
왜 이렇게 될까? 그걸 여러분들이 곰곰이 묵상하고 생각해보세요. 
왜 이렇게 할까? 그런데 그 안에 밑에 깔려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변으로 흘려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진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핍박 속에서 왜 그럴까요? 진리를 외치는 사람은 항상 소수고 핍박 속에 있게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그래야지만 이분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진리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인간 피조물의 한계성입니다 피조물이 우리가아무리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알고 내가 인정하고 하지만 저나 여러분들이 그저 계란이나 얻어먹고 부활절예배 드리고 이러면서 이게 간단하게 생각하는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다가 한 대 맞아야지만 정신 차리는 겁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을 주장하다가 뺨을 맞도록 허락하는 겁니다. 그래야 아하! 이게 소중하구나? 예수님이 사랑의 표시를 이렇게 하시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눈치 보면서 예수님부활을 잘 이야기안하고 부활절 예배드리고 왔다는 이 정도 수준 우리자녀들에게 이 수준으로 가르쳐주면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활절에 대한 메시지도 가족들에게 철저하게 잘 가르쳐주셔야 되는 겁니다. 핍박을 각오하시고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핍박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더 부활의 소중함을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구나. 
이분의 부활의 감사함을 우리가 계속 느껴야 되고 그러면서 아하! 부활의 사건을 내 가족들에게 내 주변사람들에게 내 민족에게 우리디아스포라들에게 NK에게 전해야 되겠구나. 는 뜨거운 가슴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까지 가주어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메시지를 이런 식으로 로마제국을 향해서 전했습니다. 전하다가 핍박받고 나중에 순교까지 당한 겁니다. 예수님이 빤히 아시면서 이 방법으로 해야만 된다는 겁니다. 
로마제국복음화를 위하려면 예수님의 생명 살리는 원칙이 뭐냐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지만 로마제국복음화가 되는 겁니다. 
생명이 살아나는 일은 누가 죽어야 되는 겁니다. 희생해야 되는 겁니다.
핍박받아야 되는 겁니다, 우리하나님이 우리에게 핍박을 주실 때는 이런 철저한 계획 속에서 하시는 겁니다. 본인이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지만 창조주지만 내가 생명주기위해서 한 알의 밀이 되었잖아 너희들도 따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대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는 자들은 미움 받게 되어 있고 외롭게 되어 있고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반대로 이것을 부인하는 소위 기독교인들 변질시키는 기독교인들은 주님께서 이 사람들이 더 기독교교계 안에서 득세하고 권력가지고 이 사람들이 더 재력도 있고 명예도 있고 영향력도 있고 세상에 가질 것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 메시지는 죽은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는 교단의 이름으로 교리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전하는 사람들을 소멸시키고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일들을 예수님께서 허락하시고 과거 기독교계 속에서 일어나고 오늘날도 전 세계에 다 있습니다.
제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어느 나라나 가면 이 그룹이 있는 겁니다. 우리의 사명은 뭡니까? 핍박받는 진리를 외치면서 핍박받는 그룹들을 껴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생명을 넣어주고 격려해주는 그 일이 우리의 선교미션인 겁니다. 초대교회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정체성과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다가 핍박받은 겁니다. 여러분들 사도행전을 들여다보세요.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과 그분의 부활을 외쳤다 그랬습니다.
재림전의 징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이것을 외치는 겁니다.
2천년 교회사를 들여다보면 항상 두 세력이 있었습니다. 두 세력이 공존해 있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같은 교회 안에 두 세력이 공존해 있는 겁니다. 예컨대 시각장애자세력과 정상 시각 자 세력 두 세력이 공존해 있는 겁니다. 시각장애자세력을 보면 다수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고 영향력이 있고 명예가 있고 재력이 있고 그러면서 정상 시각 자 세력을 핍박하는 그런 모델입니다 신기하게 정상 시각 자 세력들은 소외되고 소수고 왕따 당하고 미움 당하고 순교까지 당하는 이 모델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모델입니다 그래야지만 정상 시각 자들이 더 정상 시각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고 이분들을 통해서 한 일의 밀이 되어가지고 복음화 하는 일에 이분들이사용 받을 수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생명 살리는 원칙입니다
우리피조물들은 이런 것을 다 가지고 평안하고 이러면 절대로 생명 살리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이게 우리피조물의 약한 점입니다 우리가 피조물이기 때문에 이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우리한국교회도 두 세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해외 나가서 한국선교사를 봐도 같은 선교사들인데도 두  세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가도 중국에 가도 중국현지목사들을 봐도 두 그룹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도 유럽에 가도 미국에 가도 항상 이 두 세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원칙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세력이 있구나. 이걸 보는 영적시각을 가지고 두 세력을 딱 보는 겁니다. 종말 때가 되면 예수님이 이두 세력이 더욱 강해지며 특히 시각장애자세력이 더 강해지면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눈 감기게 만들어 놓거나 혼돈스럽게 만들어 놓거나 심하게 변질시키는 일들을 할 거라는 겁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가지고 이런 짓을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가르침이 탐욕이 온 천지에 범람하는 겁니다.
그 안에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허우적거리고 구명보트가 필요하고 구 명자켓이 필요하고 구명밧줄이 필요하다고 이런 상황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요즘 와서는 더 심한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갈급해하는 겁니다.
진리가 뭔가? 교회가면 우리목사님이 설교하는 게 무슨 가르침인지 모르겠는 겁니다. 혼돈스럽고 그런데 교인들은 많이 모이는 겁니다.
오늘 부활절 날에도 할렐루야 예수님 부활하셨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는데 모르는 겁니다. 같이 앉아서 할렐루야 하면서 떠들기만 하지 그러니까 우리사명이 뭡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철저하게 직시하고 우리는 지금 구명보트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 구명자켓을 입고서 지금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 구명밧줄을 쥐고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도와주어야 됩니다. 이게 우리사명입니다 내 민족만이 아니고 우리는 디아스포라들에게도 NK에게도 이게 우리사명인 겁니다. 오늘 바울이 하신 말씀을 보면 고린도전서15장1절부터 쫘악 보면 부활을 믿지 않고 바울의 부활의 가르침을 반대했던 분들에게 바울이 대답했던 장면이 1절부터 나옵니다.
바울이 첫째 뭐라고 대답하느냐면15장1절부터4절까지 특히3절과4절에 첫째 바울이 대답하는 게 뭐냐면 애들아 이 부활사건은 이미 구약에서 다 예표로 우리에게 보여준 사건이라는 겁니다. 역사성이 있는 역사적인 시간이고 예언적인 사건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장사지냈다고 구약에서 성경 가르친 대로 성경에서3일 만에 살아났다는 성경구절을 쫘악 말씀했습니다.
시편22편 시편53편에 장사지낸바 되는 겁니다. 출애굽기12장 유월절사건도 다 장사지낸 겁니다, 그러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났다고 구약에 나옵니다. 요나서를 보면 요나서1장17절에 예수님이 내가요나의 표적을 너희들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다 마태복음12장39절 16장4절에 예수님이 내가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는 것이 구약에서 이것을 미리 예표로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바울이 지금 이야기하는 겁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아! 이미 구약에서 이것을 다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뭐냐면 신약에서 봐라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셔가지고 약600여명에게 다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그게15장5절부터8절입니다. 또는 사도행전1장3절에 그랬습니다.
600여명에게 부활한 예수님자신을 보여주었다고 바울이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사건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역사적사건을 보여주었는데도 이걸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시각장애자들이라는 겁니다.
시각장애자들은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 아느냐면서 굉장히 무서운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합니다. 15장14절에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은 헛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는 겁니다. 헛된 믿음이니까 구원이 없는 겁니다.
두 번째는 죽은 후에 부활 받지 못하는 자들이 된다는 겁니다. 
15장14절에서19절에 그다음에 죽은 후에 음부로 들어가는 자들이고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그랬습니다. 15장18절에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은 그다음에 이 믿음 없이 신앙 생활하는 크리스천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 들고 다니는데 성경에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아무리 딴 걸 믿어도 예수님부활을 믿지 못하면 이런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엄청난 많은 크리스천들이 여기에 속해있는 겁니다. 가끔가다가 웹 사이트에 들어가서 천국구경하고 온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진짜 천국 가는 사람들은 소수라는 겁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어떤 분은70-80%의 기독교인들이 지옥에 내려가 있는 것을 봤다는 겁니다. 천사들이 말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정말 이 말은 저도 듣기가 거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요한처럼 가만히 묵상하다 보면 정말 우리가 정신 차려야 됩니다. 그러니까 부활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어딜 간다는 겁니까? 지옥행입니다 음부에 내려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뒤집어서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우리는 낙원으로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확하게 부활을 믿음으로써 낙원 간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 확신이 희미하게 있는 분들이 꽤 됩니다.
부활을 믿으면서도 오늘 우리가 부활을 믿는 자는 내가 죽으면 낙원 간다는  
정확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이 확신이 있어야지만 나의 삶의 방향이 뚜렷해집니다. 삶의 방향이 뚜렷해지지 않는 사람은 이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그다음에 삶의 목적이 뚜렷해지는 겁니다. 
게다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겁니다. 저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나그네 세상이라는 그 사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내 본향은 낙원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가지게 됩니다. 이걸 가지게 되는 것만 아니고 우리는 이 사상을 항상 묵상하는 사람은 항상 그 비전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듯이 비전화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비전화해서 사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게 딴 게 아닙니다. 
히브리서11장 믿음입니다. 이것을 본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겁니다.
나는 여기서 숨을 거두면 즉시로 어디로 간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정상적인 시각 자들이기 때문에 가치관이 다릅니다.
미래관이 다릅니다. 세계관이 다른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믿음의 소유자라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믿음이 있느냐 할 때 이 믿음입니다. 마지막 때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원치 않아도 능력이 나타납니다.
내가 입을 열면 강한 메시지 악의 세력이 쫓겨나가는 메시지가 내입을 통해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믿음을 가져야지만 이 믿음을 내 민족과 내 가족과 디아스포라와 NK와 우리형제자매들에게 이 믿음을 전수시키는 일을 이 믿음을 가져야지만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한다고 하지만 내가 이 믿음 없이 선교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공염불입니다. 나의 사고가 바꾸어야 되고 나의 비전이 바뀌어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예수님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그랬고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황경이 어렵든 어렵지 않던 성령님의 평강이 나를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으면 우리 육이 어떻게 됩니까? 뼈와 살은 흙으로 변해버리는 겁니다. 마가복음12장30절에 보면 우리 혼이 네 층이 있습니다.
우리 혼과 영은 로마서8장16절과 마태복음5장3절과 고린도전서2장11절에 내 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혼과 내 영이 함께 연합해서 홀연히 변형되어 가지고 어디로 올라갑니까? 낙원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누가복음23장43절과 계시록2장7절에 강도보고도 너 오늘 나와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랬습니다. 죽으면 우리 몸이 어떻게 됩니까?
몸 하면 살과 뼈 그다음에 내 혼과 영이 어디로 갑니까? 변화되어서 낙원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있던 쓴 뿌리들이 다 없어지고 변화된 모습으로 낙원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변형되어 낙원에 있는 이 모습을 바울이 오늘 고린도전서15장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성령님이 바울에게 썩지 않는 몸이다 그랬습니다. 변형되어 낙원에 올라간 몸을 고린도전서15장42절에 또는 영광의 몸이다 그랬습니다. 15장43절에
강한 몸이다 그랬습니다. 15장43절에 또는 신령한 몸이다 그랬습니다. 
15장44절에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바울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이런 몸이 낙원에 올라가면 영광이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가 영광체로 있는데 영광의 밝기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의 행위에 따라서 거기로 올라가면 영광체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랬습니다. 해의 영광을 가지고 있는 분도 있고 달의 영광  별의 영광 그러면서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도 있고 땅에 속한자의 영광도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낙원에 올라간 사람들 중에서도 하늘에 속한 영광 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면 땅에 흙냄새만 맡다가 올라가서 영광은 영광인데 땅에 속한 영광으로 영광이 다르다는 겁니다. 15장40절에서47절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낙원은 무슨 사회입니까? 계층사회입니다 마태복음5장19절 마태복음18장1절 마태복음23장11절12절 디모데후서2장20절21절이 계층사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린도전서15장18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바울이 낙원에 올라간 성도들을 뭐라고 부렸냐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게 상당히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 공부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서 무의식적으로 잠잔다는 학설을 가르치는 교단이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는 겁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했잖느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입니다 똑같이 예수님도 이런 표현을 한 겁니다. 나인성과부의 아들을 누가복음7장14절에 일어나라 그다음에 회당 장 야이로의 딸에게도 죽은 것이 아니고 잠잔다. 그랬습니다. 누가복음8장52절에 또 나사로를 이야기할 때도 요한복음11장11절에서14절에 보면 죽었다 그래놓고 예수님이 잠잔다. 
이렇게 헷갈리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서를 보면 이걸 잘 분석하지 않으면 헷갈립니다. 이것 때문에 이단들이 많이 나오는 겁니다. 
한쪽만 보기 때문에 헷갈리는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면 그래서 성서를 보면 잠잔다는 단어가 여섯 가지로 분류되어 나옵니다.
잠잔다는 단어가 우리가 이것을 잘 소화해야 됩니다. 첫 번째 잠잔다는 개념이 성서에 육신적으로 잠자는 개념으로 우리가 피곤하면 육신이 잠자잖아요.
이런 의미에서 육신적 잠잔다는 단어를 쓴 곳이 성서에 여러 군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적으로 잠자는 것도 제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육신적 잠자는 행위의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잠을 재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잠을 재우 놓고는 그다음에 꿈속에서 또는 비전속에서 그 뜻을 가르쳐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을 재웠다 그랬습니다. 예컨대 창세기2장21절에 아담을 잠을 재워놓고 갈비뼈를 뽑아서 여자를 만드는 창세기15장12절에 아브라함도 깊은 잠을 재웠습니다.
그래가지고 400년 노예생활에 대한 예언을 하신 겁니다. 세 번째 야곱도 창세기28장16절에 보면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확인시켜 주기위해서 꿈에 사닥다리를 보여주면서 야곱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삼손도 잠을 자게해서 들릴라에게 삭발을 당했습니다. 사사기16장19절에 사울도 깊이 잠들어가지고 죽임을 당할 수 있는 기회까지 갔는데 다윗이 죽이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무엘상26장12절에 여섯 번째로 다니엘도 깊은 잠에 들어갔을 때 예언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서8장18절과10장9절에 또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잠을 자게 해놓고는 가브엘천사가 나타나가지고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가르쳐준 겁니다. 마태복음1장24절에 예수님도 광풍을 잠잠케 하시기위해서 배에서 예수님도 주무셨습니다. 예수님도 어떤 목적을 이루시기위해서 하나님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자연을 정복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누가복음8장23절에 겟세마네동산에서도 베드로와 요한이 잠드는 모습 마태복음26장41절에 열 번째로 재미있는 것은 예수께서 여호와께서 꾸짓으니까? 병고와 말들이 다 깊이 잠들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편76편6절에 이렇게 육신의 잠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떤 뜻을 이룰 때 잠자게 하시는 이런 모습을 우리가 봤습니다. 이럴 때 잠자는 단어가 성서에 나옵니다. 제가 잠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또 두 번째로 육신을 잠자게 하기위해서 두 번째 뜻은 뭐냐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푹 쉬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편127편2절에 또는 지혜 자에게 잠을 주는데 달콤한 잠을 주신다. 그랬습니다. 잠언3장24절에 주님이 사랑하는 자는 잠을 달콤하게 잘 자게하십니다 그런데 세 번째 잠의 부분이 잠을 못 자게 사람이 성서에 보면 나옵니다. 악인 은 악행을 한 후에 마음이 괴로워서 잠을 자지 못한다고 성서에 나옵니다. 잠언4장16절에 그 한 예로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는 괴로워가지고 잠을 못자는 이야기 다니엘서2장1절에 이렇게 잠과 관계해서 육신적인 잠과 관계해서 이런 분류가 있습니다.
제가 성서를 주욱 보면서 나름대로 한번 분류를 해봤습니다.
제가 여섯 가지 분류를 말씀했습니다. 첫 번째는 육신적인 분류입니다
두 번째는 혼적 인격적 측면에서 잠자는 이야기가 성서에 나옵니다.
에베소서5장3절에서14절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교인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빛의 자녀들아 너희들 빛의 열매를 맺었으면 착한 사람이 되고 나쁜 짓 하지 말라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잠자는 자들아 깨어나라 그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인격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이런 사람들 보고 바울은 잠자는 자들아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인격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자들을 죽은 자들이라 그러고 잠에서 깨어나라 그런데 잠자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죽었는데 완전히 죽은 게 아니고 잠자고 있기 때문에 깨어날 수 있는 확률이 있잖아요. 변할 수 있는 확률이 그런 의미에서 인격적인 측면에서 잠자는 이야기를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세 번째는 영적측면에서 잠자는 이야기를 들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들림 받는 사람이 되려면 깨어 있어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항상 종말 때 기독교인들아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그러니까 이런 영적측면이 마태복음24장42절에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보고 하는 게 아니고 준비하지 않는 다섯 처녀를 보고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마태복음25장13절에서 말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자고 있다는 겁니다. 네 번째로 잠잔다는 개념을 인간이 영이 빠져가지고 낙원에 올라가지 않았지만 영이 빠진 상태 그분들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영을 회복시키지만 어떻게 됩니까? 회생됩니다. 회생을 경험하게 하기위해서 잠깐 영을 빼버리는 상태를 이야기할 때 잠잔다고 예수님이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나인 성 과부아들과 회당 장 야이로의 딸 나사로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잠잔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개 아니고 잠잔다.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다섯 번째로 잠잔다. 할 때 민족적 차원에서 잠자는 이야기를 할 때 예수님이 잠잔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사람들이 눈을 감겨가지고 예수님을 모르는 상태 이 상태를 깊이 잠든 상태라 그랬습니다. 이사야서29장10절에 예수님을 당분간 보지 못하는 상태를 민족적인 상태에서 예수님의 의도 속에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신명기32장15절에서21절에 모세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다윗에게도 시편6편9절에서10절에 시편69편23절 이사야에게도 이사야44장18절 이것을 바울에게도 로마서11장8절에 유대인들이 이런 의미에서 잠잔다. 그랬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 죽어서 낙원에 간 자를 잠잔다고 지칭을 했습니다.
바울신학에서 영적측면에서 낙원에 가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잠잔다는 표현을 바울이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냥 잠자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 잠잔다. 그랬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3장18절에 보면 안식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1장30절에 잠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장18절 또는 데살로니가전서4장14절에 안식에 들어간다는 히브리서3장18절 예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13장26절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교하는 장면에서 바울이 그랬습니다. 다윗이 죽어서 잠들었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 표현을 바울이 했으면 우리가 보는 겁니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면 다윗이 저기서 잠자고 있구나? 
낙원에 올라갔다는 개념인데 바울의 개념은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잠자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15장51절에서52절에 예수님이 공중 재림 시에 나팔소리와 함께 잠자던 자들이 순식간에 다 홀연히 다 변하여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살아있는 우리도 변화하여서 예수님을 이렇게 만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들여다보면 예수님이 공중에 나타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소위 무덤이 열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개념입니다 무덤이 열려서 예수님과 공중에서 같이 만난다는 이런 개념입니다 그러면 이게 논리에 맞지 않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덤 속에 있지 않고 어디에 있습니까? 다 낙원에 있는데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이런 말씀을 그대로 보니까 안식교가 나오고 여호와증인도 이런 말씀을 딱 잡아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4장16절에서17절에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장면을 바울이 이야기한 게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먼저 했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는 주후49년에 하신 겁니다.
고린도전서는 주후55년입니다 그러니까6년 차이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모습을 보면 바울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이 말을 우리가 공중 재림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순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랬습니다. 이 말은 잠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면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먼저 무덤을 열고 일어나고 이런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학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예수 안에서 죽은 기독교인들이 무덤 속에 있었구나? 그런데 우리가 보면 구약의 많은 유명인사들 또 신약의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낙원에 올라가서 있는 모습을 다 봤잖아요. 변화 산 사건에서도 이미 봤잖아요. 낙원에 올라가 있는 것을 모세와 엘리야와 이런 사람들이 그러면 구약의 유명 인사들도 무덤에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 동네에 있다는 겁니까? 우리문제점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강도에게 네가 낙원에 있겠다. 누가복음23장43절에 그랬습니다. 이 말씀을 논리적으로 보면 우리가 땅에서 무덤이 열려서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은 7년 후에 뭘 합니까? 공중혼인잔치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부후보생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때 유명인사들 신약 때 유명 인사들이 죽어서 땅에 묻혀서 조용히 안식 속에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분들이 낙원에 안 가고 있다가 만약에 예수님이 공중에 나타나실 때 무덤이 열려서 거기서 만났다면 이게 맞는 말입니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바울은 잠잔다는 개념을 어떤 측면에서 표현했느냐면 잠잔다는 개념은 안식에 들어간다는 개념으로 바울이 표현한 겁니다.
안식에 들어간다는 개념은 히브리서3장18절에도 그 개념의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낙원에 들어간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잠잔다는 말을 낙원에 올라가서 안식을 한다. 이렇게 우선 이해하세요.
논리적으로 많은 선교사들이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덤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자에게 먹힌 사람들 순교당해서 나중에 무덤이 없는 사람들 또는 배가 파손되어서 물고기 밥이 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무덤이 없는데 어떻게 해당됩니까?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진짜 혼인잔치에 들어가야 될 사람들입니다 혼인잔치에 들어가야 될 사람들은 신부들입니다 
모든 과거 구약의 유명인사들 신약의 유명 인사들이 혼인잔치를 아직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혼인을 못한 사람들입니다 약혼단계까지 갔지만 정혼이 안된 정혼식을 어디서 하느냐면 7년 환란 끝나고 정혼식을 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소수로 로얄페미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면 예수님의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소리가 내려 올 때 낙원에 있던 로얄 급들을 데리고 내려오셨다 이렇게 보면 되는 겁니다.
로얄페미리들을 데리고 내려오신 게 첫 번째로 내려오신 겁니다.
잠자고 있든 안식에 들어갔든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오셨고 결혼식을 하려고 거기에 분명히 아브라함도 에녹도 성경에 있는 유명인사들 다 내려오셨을 겁니다. 신약 모든 유명인사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떤 분들이냐면 살아있는 소위 신부 감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아있을 때 예수님이 내려오신다면 로얄페미리 급들이 휴거를 당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사는 것이 신앙생활하기엔 힘들지만 이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는 특권이 있는 겁니다. 우리는 장례식을 경험하지 않는 그룹들인 겁니다.
왜 이런 특권을 주었냐면 마지막 때 추수 꾼으로써 사명이 크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런 특권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표로 구약에서 들림 받은 장례식을 하지 않았든 두 분이 누굽니까?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예수님도 죽음을 경험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대열에 들어올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를 잡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좋은 특권에 대한 감동이 필요합니다.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가 있어야 되고 이 세상은 점점 더 우리를 핍박해올 것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적인 진리가 변질되어서 그 변질된 것을 향해서 외칠 때 핍박을 당해야 하는 마태복음24장 예수님말씀입니다
핍박을 당해야 하는 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대가 이런 세대라는 것을 핍박을 당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소망을 부어주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겁니다. 내 이웃과 내 민족과 디아스포라와 NK에 우리사명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명에 충실한 자와 충실하지 않는 자가 쫘악 갈라지는 겁니다. 여기에 집중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안에서 잠잔다는 표현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아하! 이분들이 낙원에 올라간 분들이구나? 
이렇게 보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들림을 받아서 쫘악 올라갔습니다.
곧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 들림을 받고 올라간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알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들림 받고 올라간 후에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요한계시록에 보면 적어도 열두 가지 사건들이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첫 번째 7년 환란이 시작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3차 세계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것이 계시록8장부터18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7년 환란 속에 둘로 나눕니다. 첫째 일곱 나팔을 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전3년 반입니다 계시록8장에서15장까지입니다 
둘째는 일곱 대접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게 후3년 반입니다
계시록16장에서18장까지입니다 그래서7년 환란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7년 환란이 끝나면 공중혼인잔치장면을 보여주십니다.
계시록19장1절에서부터10절까지 세 번째로 공중혼인잔치가 끝난 후에 예수님이 지상재림하시는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계시록19장11절에서21절에 예수님의 지상 재림입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이 지상 재림을 하시면서 사탄우두머리를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가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계시록20장1절에서3절에 다섯 번째로 천년왕국시대가 나타나는 겁니다. 천년왕국시대는 사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탄은 없지만 사탄의 똘만이들은 있습니다.
천년왕국 이때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천년왕국시대가 시작되는데 계시록20장1절에서6절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여섯 번째로 천년왕국시대가 시작이 되면서 들림 받지 못했던 사람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인데도 들림 받지 못했든 그룹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들림 받지 않고 7년 환란 동안 유대인 복음화를 위해서 일하다가 순교당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다음에 이방인 중에서도 순교자반열에 들어간 사람들은 들림 받지 않고7년 환란 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합니다. 
이 사람들이 7년 환란이 끝나면서 천년왕국이 시작하면서 부활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해가지고 공중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과 만납니다.
그러면 몇 그룹이 만납니까? 네(4)그룹입니다 첫 번째 그룹이 잠자든 사람들 중에서 로얄그룹이 예수님과 같이 내려오고 두 번째 그룹은 휴거 받은 그룹 세 번째 그룹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순교 당했다가 부활하신 사람들 그다음에 7년 환란 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당한 이방인순교자그룹 계시록20장4절에 나옵니다. 그래가지고 이 네(4)그룹이 예수님을 모시고 천년왕국 동안에 왕 노릇하는 이야기가 쫘악 나옵니다. 그다음에 천년왕국이 그의 끝날 때 쯤 되어서 일곱 번째로 사탄을 다시 출옥을 시킵니다.
계시록20장7절에 그래서 이놈이 또 까불면서 못된 짓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여덟 번째로 이놈의 똘만이 역할을 하는 마곡이라고 오늘날 소련입니다 소련과 관계되는 나라들을 유혹을 해가지고 4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마지막추수 작업으로 하나님의 예정된 자녀들이 추수되는 그 장면이 계시록20장7절에서9절입니다.
그다음에 아홉 번째로 사탄과 마귀와 귀신을 다 몰아가지고 유황불에 집어넣는 장면으로 그러니까 아담창조 전에 마귀와 사탄이 타락해가지고 유황불에 집어넣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집어넣는 겁니다. 계시록20장10절에 이때 지옥이 아니고 유황불입니다. 지옥은 땅 밑에 있지만 유황불은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우주2층천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학설은 해(sun)가 불 못이 되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해의 우상이 누굽니까? 니므롯입니다 그러니까 태양이 불 못이 되지 않을까? 그다음에 열 번째로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을 유황불에 보낸 다음에 백 보좌심판을 하시는 겁니다. 계시록20장11절에서12절에 지옥에 들어가 있던 땅 밑에 처음3천km는 그냥 흙이지만 나머지4천km는 유황불인 겁니다.
그래서 여기가 음부라 그러고 지옥이라 그러는 겁니다. 
여기에 있다가 심판 받으로 이 사람들을 다 부활시켜서 심판대 앞에 세우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5장29절에 심판을 위한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지옥이나 음부나 무저갱 같은 단어들입니다
여기에 있다가 심판받기 위해서 열한 번째로 부활시켜서 계시록20장12절에서15절에 보면 음부에서 나와서 심판받고는 나중에 어디로 가느냐면 불 못으로 던져진다고 그랬습니다. 불 못을 태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쪽으로 던져진다는 겁니다. 불 못을 영어로 레이크 오브 파이어(lake of fire)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불이 있는 호수, 불 못으로 던져진다는 겁니다.
이것이 계시록20장13절에서15절입니다. 그리고 열두 번째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전개된다는 겁니다. 계시록21장22장에 제가 이런 걸 드리는 이유는 마지막 때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시나리오를 파노라마처럼 봐야 됩니다. 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은 오늘날 진짜 복 있는 사람은 정상 시각 자들은 공중재림장면을 지금부터 우리가 봐야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순서를 봐야 됩니다. 그뿐 아니라 지상에서는 7년 환란이 일어나면서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열두 단계의 사건들을 그림으로 봐야 되는 겁니다.
그걸 보시라고 제가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하는 겁니다.
이게 복 있는 사람인 겁니다. 그러니까 매일매일 공중재림사건을 미리 보고서 기다리는 사람이 순서를 보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열두 가지 사건을 그림으로 보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이게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멀티시각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전천후시각자들입니다 
영적오각이 발달된 사람들입니다 영적시각, 영적청각, 영적후각, 영적촉각, 영적미각이 발달된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보면서 오각을 보는 지혜 자가 되는 겁니다. 지혜 자가 되려면 멀티시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보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걸 계속해서 보다보면 영적지식 자가되고 영적명철 자가되고 영적지혜 자가되는 겁니다.
이걸 보면서 나의 영적깊이가 점점 더 깊어지고 넓이가 점점 넓어지고 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길이가 점점 길어집니다. 그러니까 내가 영적으로 커지는 겁니다. 이렇게 커지도록 내가 이것을 묵상하고 항상 비전을 보면서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겁니다. 가이드해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분별력이 생기는 겁니다. 지금 바깥에서는 폭풍이 일어나고 파도가 치고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불법이 성하고 나쁜 짓하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더 판을 치고 의인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덮어버릴 수도 없는 겁니다. 주변은 점점 이렇게 되게끔 진리가 오염되고 진리가 왜곡되고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이2천 년 전에 예언하셨습니다. 
바울에게도 가르쳐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안타까워서2천 년 전에 내가 재림 전에는 이런,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천지만물을 컨트롤하시는 엄청난 분이 우리피조물들에게 특히 하나님이 마지막 때 쓰시려고 하는 피조물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셨는데 우리가 그 세대에 살고 있는데도 관심이 없고 이런 폭풍들 파도들 부조리들 불법들이 성해지는데 내가 열나가지고 이러는데 열 낼 필요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이 열 내지 말라고 미리 다 가르쳐주었잖아요.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너희들은 천국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되리니 그때서야 끝이 오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면 우리할일은 뭡니까?
우리할일은 우리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깨우는 일입니다
그분들을 격려시키는 일입니다 여기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는 자가 이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안 하면 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세요. 제가 결론적으로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날 부활절에 보면 우리가 지금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예수님이 하시면서 우리에게 모델로 보여주셨습니다. 
죽음, 부할, 승천 이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을 붙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 모델” 제가 만든 말입니다
이 모델을 딱 보면 예수님이40일 동안 제자훈련을 시켰습니다.
제자훈련을 두 가지 측면에서 시켰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의정체성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자심의 삼위일체 기독론 본인의 구원자 되심 부활하심 자신의정체성을 쫘악 가르쳐주었습니다. 40일 동안에
두 번째 예수님이 지상사명을 던졌습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내정체성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되어라 이스라엘전체가 아니고 전 로마제국을 다니면서 예수님의정체성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어라 이걸 지상사명이라고 그럽니다.
40일 동안 지상사명을 몇 번을 하신지 아십니까? 다섯 번입니다
40일 동안 순서대로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마가복음16장15절에 부활하시고 첫 주에(5-6일) 두 번째 요한복음20장21절에 세 번째가 유명한 마태복음28장19절에 네 번째가 누가복음24장47절에 마지막 다섯 번째가 유명한 사도행전1장8절에 이 말씀 끝내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어디로 갔다는 겁니까? 낙원으로 가셨습니다. 
안식에 들어갔다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들림 받으신 겁니다. 이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모델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이 모델을 그대로 우리가 따르는 겁니다. 어떻게 따르는지 보세요. 바울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과 연합된 자라고 로마서6장1절에서11절에서 말합니다. 
어떻게 연합이 되었냐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나도 십자가에 달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세상과 관계를 끊고는 죽었다는 겁니다.
예수님과 연합이 이런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갈라디아서2장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하는 개념인 겁니다.
예수님이 무덤으로 내려오신 겁니다. 우리도 똑같이 예수님과 같이 무덤으로 내려온 겁니다. 무덤에 내려온 게 뭐냐면 나의 옛 사람을 다 묻어버린 겁니다. 옛 성품을 다 묻어버리고 이제는 옛 사람이 없어진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부활할 때 나도 부활했다고 믿는 바울신학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제 예수님 때문에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5장17절에 또는 나는 새 성품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에베소서4장24절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천국시민이 된 겁니다.
빌립보서3장20절에 그러니까 신분이 변한사건 이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예수님의 부활 이 두 사건을 내 삶에 적용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이렇게 했는데도 이대로 살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못은 같이 박혔는데도 삶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변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는40일이란 기간이 있었습니다. 
40일은 우리의 광야의 삶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인생의 삶을 40일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면 제자들은 그대로40일 동안 예수님의정체성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이40일 동안 자기정체성을 열심히 가르쳤잖아요. 우리들은 예수님의정체성을40일 동안 열심히 배워야 되는 겁니다. 
묵상하고 적용하고 삼위하나님, 기독론, 예수님의100%신성, 100%인성, 구원론, 성결론, 선교론, 부활론, 천국 론, 재림 론을 우리가 지금도 이걸 공부하고 있잖아요. 이걸 끊임없이 우리는 배워야 되는 겁니다. 
우리의 삶이 제자훈련입니다 그다음에 배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뭘 받아드렸습니까?
지상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똑같이 지상사명을 받았으니 예수님의정체성을 증거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딴 걸 증거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정체성을 증거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정체성보다도 예수님을 이용해가지고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 살까? 행복할까? 내 문제해결 받을까? 이렇게 하니 이것은 영적어린아이수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 해야 되는데 내 민족에게 증거 해야 됩니다. 또 디아스포라들에게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NK에게 하잖아요. 제자들이 유대인들에게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문화권을 뛰어 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다가 어떤 사람들은 때가 되어서 죽어서 장례식 끝나면 그분들은 어디로 갑니까? 낙원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영원한 안식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고 있는데 예수님이 만약에 오시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처럼 들림 받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모델이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는 적용이 안 되지만 최소한 우리에게는 이것이 적용되어야 되는 겁니다. 부활절, 부활절이 그냥 막연한 부활절이 아닌 겁니다. 제가 여쭈어보겠습니다 이 세대에 복 있는 자가 누굴까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모델에 참여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참여하겠다고 아멘, 아멘해도 이게 내 뜻대로 안 되는 겁니다. 이게 우리딜레마입니다. 지금 여러분들도 하겠다고 저를 쳐다보고 있는데 이게 뜻대로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참여하는 이게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내 의지로 됩니까? 아닙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내 노력으로 아닙니다. 뭐가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은혜 그냥 은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항상 편지에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항상 본인의 위치를 이야기합니다.
은혜로 사도가 된 나 바울은 그러니까 우리의 간구는 뭡니까?
이 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은혜를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은혜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나타나느냐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과 예수님의 이 모든 모델을 묵상하고 묵상할 때마다 이것을 가지고 찬양을 드리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내가 자꾸 반복할 때마다 내 속에 감동이 있고 눈물이 있고 그러면서 감사가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낮은 수준에 있겠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수준이 점점 발전되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가 감격이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그것을 묵상하면 이것이 있는 겁니다. 제 기도제목은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부활절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됩니다. 부활절 예배드리고 왔다 
애들아! 우리 집에 가자 그게 무슨 감격이 있습니까?
부활절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도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그런 아버지어머니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감격을 보여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연습해야 합니다. 자꾸 연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성만찬 하잖아요. 성만찬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만찬을 하면서 우리가 감격을 가지고서 주님! 제가 이 감격이 없습니다.
저에게 이 감격을 주세요. 감사가 없습니다. 주님 저는 이 세상에 나그네로 온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제가 예수님의 파노라마를 나에게 보여주셨듯이 저는 이 파노라마를 따라서 가고 있는데 떡을 떼고 잔을 마실 때마다 내가 이 파노라마가 더 구체화되게 해주시고 더욱 더 주님의 뜻 안에서 내가 비전이 커지게 주님 도와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오늘 성만찬을 대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에게 이 모델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모델과 40일 사역모델 속에 제가 깊이 들어가도록 이 모델을 항상 묵상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그 후에 열두 가지 일어날 사건들을 한 눈으로 파노라마처럼 보는 그러한 복된 자들 되도록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 자가 되시고 능력자가 되게끔 은혜 베풀어주시옵소서. 오늘 특별히 성만찬을 우리가 대하면서 이러한 사람이 되도록 주님 특별히 기름 부어주시고 성만찬순간에 성령님의 강한 임재하심과 기름 부으심이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금 이 시간은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련님의 끊임없이 가르쳐주심과 깨닫게 하심과 순종케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항상 있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부활의 당위성과 우리의 소망(고전15:12-19)
1. 기독교의 양대 절기는 성탄절과 부활절입니다 지난2천년 기독교역사에서     이 두 절기가 제도 속에서 하나의 종교행사로 관습 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까?
2. 우리는 지금 영적지도자의 영적시각장애자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영적시각장애자를 3가지고 분류할 수 있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3. 이 영적시각장애자들이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과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부     인하는 억지주장을 해오고 있는데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이들이 왜 이런 억지주장들을 해오고 있으며 이들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을 하도록 예수님께서 방치 하셨거나 또는 허락하셨습니까? 
4. 오늘날 세계 기독교계에 두 세력이 공존하고 있는데 이 두 세력이 무엇이     며 이것이 어떻게 특징지어지며 우리가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5. 고린도전서15:1-19절 내용 속에 담겨진 바울의 부활신학에 대해 논의해     봅시다. 
6. 성도가 죽으며 어떻게 변형되며 어디로 가게 됩니까?
   그곳에서 영광이 동일합니까?
7. 성서에 잠자는 자들을 여섯 가지로 표현했는데 이것을 분류하고 그 내용     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논의해봅시다
8. 데살로니가전서4:16-17절과고린도전서15:51-52절을 비교분석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