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론시리즈

6강. 요한1서1장9절, 왜 나쁜 크리스천이 많은가?

변명섭 2025. 2. 8. 07:44

6강, 왜 나쁜 크리스천이 많은가(요1서1:9) 2005년10월18일 말씀
요한일서1장 9절 말씀은 하나의 참고 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여러분들이 잘 아시기 때문에 제가 간단히 한번 읽기만 하겠습니다.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말씀을 기억 하면서 오늘 말씀을 같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제가 전도를 해보면 항상 저에게 질문해오는 그런 질문들이 있는데요. 그중에 대표적인 질문이 오늘 제목의 질문입니다 
왜 나쁜 크리스천들이 많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좀 똑똑하다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이분이 그래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알고 있는데 또는 자비의종교 또는 용서의 종교 그러한 종교 아닙니까. 
또 진리를 전하는 종교인데 또 화평 하는 종교인데 주위의 크리스천들을 보면 이런 부분이 안 보입니다 그럽니다. 그래서 목사님 설교말씀도 제가 이해되고 복음을 전하는 내용도 다 알고 있는데 이 부분이 나를 괴롭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데 마음을 제가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영접을 못 하겠다 그럽니다. 이런 부분을 좀 해결하여 주십시오. 여러분들도 아마 이런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 별로더라 더 심하더라. 
이런 말들을 들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어떤 분은 40된 여자분 인데 이분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좋은 복음인데 저는 우리 시어머니 때문에 도저히 예수를 못 믿겠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 시어머니가 교회에 아주 이름난 권사님이신데 교회에서는 열심히 하지만 집에 오면 마귀할멈입니다 라고 그럽니다.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고 그리스도의 화평이나 용서나 자비가 전혀 없는 그런 시어머니가 제 주변에 있는데 저는 교회에 나가고 싶어도 그분 때문에 나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해서 평생을 시어머니 때문에 고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거꾸로 내 마누라 때문에 교회 나가기 싫습니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인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집에 들어오면 남편을 잘 돌보지 않고 집안의 모든 형제자매들의 관계도 다 깨뜨리고 신앙생활은 열심인데 전혀 크리스천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런 남자들도 주변에 많습니다. 열심인 부인이 그런 부인들, 이런 남편들하고 대화하면서 복음을 전하려면 애를 먹습니다. 
이런 예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얼마 전에 왜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정체되고 줄어 더느냐 라는 이슈가지고 한분이 글을 썼는데 그 글을 읽어보니까 그럽니다. 우리 한국 크리스천들이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예를 들었는데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의 60%가 크리스천들이랍니다. 상당한 숫자입니다 열심히 하던 안하던 이것은 가톨릭까지 합한 숫자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믿지 못할 사람이 국회의원들이 가장 믿지 못할 그룹중의 하나라는 겁니다. 정치인들 그런데 그중에 60%가 크리스천들입니다 
게다가 이분들이 거짓말도 잘하고 오리발도 잘 내밀고 이래놓고 딴소리하고 권모술수도 아주강하고 이권다툼에지지 않고 그리고 패싸움 잘하고 거기다가 뇌물도잘 받고 선거도 부정으로 하고 정치자금도잘 걷어다가 유용하고 비자금 이중장부 기타 등등 어떤 분들은 감옥에 들락날락하고 국회의원 중에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일반적인 우리나라사람들이 기독교사람들을 볼 때 이렇게들 보고 있습니다. 옛날에 옷 로비사건도 유명한 권사님들 사건이 아닙니까. 거기에 어떤 장로님도 끼어있고 말이죠, 
이런 것들이 세상에 비칠 때 과연 우리 기독교인의 진리가 그분들에게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뿐입니까 근래에 세상신문에도 났지만 성공했다는 내분이 있어가지고 목사님 나가라 들어와라 또는 둘로 갈라지고 또 어느 교단에 들어갔는데 그 교단에서 나가라 들어와라 서로 싸움을 하고 그러면서 신문을 보면 왜들 저러느냐하면 다들 교회가 돈이 많아졌기 때문에 금전적인 이권문제 때문이다. 라는 기사들이 나옵니다. 
그것이 우리끼리는 괜찮은데 이런 것이 밖에 알려지고 일반세상신문에도 이런 기사가 나고 이런 것을 볼 때 그것이 도저히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찬물을 끼 얻는 그러한 사건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는 시내를 걸어가는데 봉고차보다 조금 더 큰 탑 차있죠. 그기에 프랭카드를 붙여서 그걸 읽어보니까 한국의 유명한 교회의 목사님 이름을 써 놓고는 아주 나쁜 말을 거기다가 잔뜩 써 놓았습니다. 그 목사님에 대해서 아주 나쁜 말 표현하기도 힘든 말들을 잔뜩 써 놓고는 서울 시내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목사님을 소위 사기꾼 모리배 하여튼 나쁜 말은 다 써서 붙여가지고 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교회에 속해있는 분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걸 달고 다니는 분이 누구냐고 하니까 자기교회 집사인데 유명한 분이랍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일반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눈이 이런 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한분은 왜 교회들이 교인쟁탈전을 합니까. 
그럽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개신교 교회들은 하나님이 몇 명입니까 예수님이 몇 명입니까 이렇게 물어봅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합니까. 
그랬더니 각자가 다 다른 예수를 믿는 것 같데요 서로가 예수를 믿는다고 이웃교회 하고도 서로 협조도 안하고 자기네 스타일로 자기네 예수 믿고 이쪽교회는 또 자기네 예수 믿고 예수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이 교회는 가지 말라 가라 서로 싸움하고 이러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생각이 된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는 것 잘 모르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분들의 눈으로 볼 때는 예수가 쾌 많은 것 같데요 
이것은 미국에 사는 한국 교포사회 이야기인데요. 어느 가게에 들어가서 잔도를 하는데 복음을 다 듣고는 이분 나이가 55세 되었는데 그분 말씀이 한국 있을 때 대학 강사 하던 지식인데 기독교 저도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쪽을 좀 보세요. 하여 봤더니 자기와 경쟁하는 가게가 하나 있었습니다. 저 사람 어느 교회 장로인데 도둑놈입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그랬더니 저 사람 물건을 사도 도둑질하는 장물을 사고 탈세하고 나쁜 짓을 다 한답니다 그러면서 욕을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본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그것 때문에 예수님 영접을 안 하겠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왜 교회 안에 예수 믿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들이 많은가 기분 좋습니까 별로 안 좋죠. 그러면서 그럽니다. 여보세요. 
당신이 기독교의 조그만 면만 보고 있는 거지 이 기독교를 한번 보세요. 
전 세계에 어려움이 있다 하면 기독교 국가들이 나가서 다 도와주지 않습니까. 선교사들이 가난한 나라에 가서 얼마나 도와주고 있습니까. 
지금 저기 병원도 기독교병원 아닙니까. 성 누가 병원이나 무슨 병원이니 학교들도 고아원이고 한번보세요 이 사회에 모든 어두운 곳에 가서 도와주는 분들이 다 기독교인들입니다 사회정의를 외치는 분들 민주화 심지어 굶는 사람들 무료급식도 무의탁자들 교도소에 가서 돕는 사람들 지역사회 제3세계 가난한 나라에 가서 선교하고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 보면 불교나 이슬람이나 이런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기독교의 밝은 부분을 조금 보세요. 그럽니다. 그러면 또 그 생각이 맞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밝은 부분도 있지만 어두운 부분이 항상 우리 복음을 믿는 크리스천 사회에서 항상 있어 왔거든요 이 문제를 오늘 다루려고 합니다. 
왜 이런 부분이 있는 가 소위 천국 백성인데도 세상 사람들보다도 같거나 못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입니다 그럼 이 이슈가 오늘날 20세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부터 시작해서 1세기 사도바울시대에도 항상 있어 왔고 그 후부터 시작해서 2000년 동안 교회 안에 항상 이 문제가 있어 왔습니다. 
사도바울도 여기저기에다 교회를 개척해 놓고 이 분이 복음을 다 줬는데 복음을 받아서 그 복음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정말 복음적으로 주님의 마음에 들지 삶에 적용하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1세기 때 크리스천들도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13개를 썼지 않습니까. 바울의 편지 주 제목이 뭔지 아세요. 너희들 제발 천국시민 같이 살아라. 
대부분의 약90%이상 교인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비자는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천국 시민권도 다 받았는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이분들의 삶은 아직도 옛날 이방에서 살던 그 모습 그대로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편지를 보시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나 에베소나 빌립보서나 골로새서나 데살로니가 전 후서나 고린도 전 후서 모든 그 분의 편지들을 보면 제발 그렇게 살지 말아 라. 라는 편지가 그런 편지들입니다 
이분이 항상 편지를 쓸 때 마다 그럽니다. 너 네들 예전에는 공중권세 잡는 자 이 세상 왕 또는 이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의 자녀들이였는데 너희들이 이제는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지 아느냐 그런데 왜 천국시민인데 천국의 비자까지 다 받아놓고 시민권 다 받아놓고 너희들이 왜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대로 따라 살고 그 사람들과 사고방식이고 뭐고 다 같으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위치만 달라졌지 그래서 그분들이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그 안에서는 아직도 윤리적으로 볼 때 밖 갓에서 옛날에 하던 스타일 그대로 가지고 들어와서 계속 서로 싸우고 서로 다투고 파당 짓고 분내고 하를 내고 이런 것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가서도 삶의 모습이 달라진 것이 없이 똑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편지거든요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5장 19절부터 주욱 보시면 우리 잘 아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은 육체의 일을 가지고 서로 서로 싸움하고 우상 숭배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당 짓고 분열하고 방탕하고 또 술까지 취하고 너희들 이러는데 이렇게 살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하나님나라가 계급사회거든요. 엄청난 많은 땅들이 이제 우주가 다 새롭게 될 텐데요 
그런데 지도자 그룹 속에 들어가 가지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가 책임 있는 임무를 가지고 지도자 그룹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분이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하늘나라에 존귀한 존재가 되려면 높은 존재가 되려면 설령의 열매를 맺어라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면서 로마교회다가도 이 말씀을 하시고 에베소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빌립보교회에 계속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 되로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아주 소수였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은 옛날모습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의 90%가까이 사람들이 그렇게 살거든요 그것이 1세기에서 2세기로 넘어가고 3세기로 넘어가고 나중에 4세기 5세기 6세기 때 로마가톨릭교회가 형성되면서 가톨릭교회도 보면 똑 같았습니다 그 안에 아주 소수만 바울이 요구하는 되로 살았고 그것이 주님이 요구하는 되로입니다. 
나머지는 다 세상방법으로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굉장히 심해 가지고 약1000년 동안 로마가톨릭이 그래가지고 도저히 이 안에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종교개혁을 해버린 것입니다 그 사람이 루터 아닙니까. 
지금부터 500년 전입니다 종교개혁을 하고 그 후에 장로교도 나오고 침례교도 나오고 루터교도 나오고 감리교도 나왔습니다, 이 분들도 개혁을 하고 나왔는데도 교회에 보면 또 대부분의 90%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지금 오늘날 그리고도 500년이 지나왔는데 우리도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주님이 원하는 식으로 사는 사람은 아주소수입니다 
바울이 말씀하신 원칙이 그분의 편지 속에 다 있거든요 이런 소수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예컨대 다수가 되지 말고 소수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왜냐하면 천국에 가서 소수가 되었을 때 이 소수들은 천국의 계급사회가 피라밋 형으로 되어 있다 그랬습니다. 소수는 높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적은 숫자들입니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많은 숫자들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계급사회의 원칙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소수에 들어가려면 뭐냐 에베소에서도 바울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너희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에베소서5장 17절의 말씀인데요. 
그러면서 18절에 물에 취해가지고 그냥 술이 너를 지배했잖아 그렇게 하지 말고 이제는 성령에 취해가지고 성령이 시키는 대로 성령 충만해라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겁니다. 성령에 취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면 방법이 19절에 매일 매일 시편의 말씀과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양하라는 겁니다. 성령이 취한다는 말씀은 성령에 취해서 하나님의 말씀 시편을 가지고서 또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으로 만들어서 찬양을 많이 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 이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크리스천이 되어가지고 우리마음속에 많은 더러운 것들이 그대로 여기 있거든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가지고 이안에 성령님이 와서 계시지만 옛날 모든 성품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내 모습이며 있는 그대로 하나님이 받아준 것이거든요 미워하는 마음. 용서 못 하는 마음. 방탕 하는 마음. 분내는 마음. 당 짓기 하는 마음. 시기질투 하는 것들이 이속에 꽉 차있는데 이것이 그대로 다 있는데요. 
이걸 그대로 있고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만 바뀌어 진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면 주님이 바울을 통해서 항상 말씀하시는 것이 내속에 있는 마음의 더러운 성품은 이런 것들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 제거하는 방법들은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고 대신 성령으로 취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보혜사 성령님이 이 마음속에 우리 속에 들어오거든요 성령님이 퓨뉴마 성령님 구원을 주시는 성령님은 이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밖 갓에 파라클레토스(paracletos, 보혜사성령님이)우리의 이 더러운 것들을 씻어주는 도와주는 그래서 보혜사라 합니다. 그 성령님이 항상 우리 옆을 운행하고 계시거든요 보혜사 파라클레토스(paracletos) 파라(para)라는 말은 우리 옆에 나란히 걸어간다는 말입니다 
클레토스(cletos)라는 말은 불리 움을 받는 자라는 말입니다 
내가 초청을 하면 이분이 나에게 오십니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씻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운마음들 질투하는 마음들 여러 가지 분내는 마음들 이런 마음들을 씻어주는 역할을 하는 다시 말하면 승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그 보혜사성령님으로 내가 항상 차 있어 라는 겁니다. 
그 성령님이 내속에 들어오면 내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문을 통해서 나갑니다. 그것을 승화라 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에베소서에서 말하기를 어떻게 하는 방법이 있느냐 우선 찬양을 통해서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그러니까 같이 하라는 겁니다. 찬양할 때 입으로만 하지 말고 우리 옆에 운행하고 계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초청해서 깊숙이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속에 있는 더러운 성품들이 조금씩. 조금씩 나가는 겁니다. 에베소서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이것이 없어져야만 그것이 들어옵니다. 한번에안 되거든요 천천히. 천천히 그래서 우리가 찬양을 많이 해야 되고 그래서 찬양사역이 굉장히 중요한 사역입니다 찬양할 때 이마음문 위에 있는 문과 밑에 있는 문을 다 열어야 됩니다. 열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위에 문은 열기 쉽지만 밑에 마음까지 다 열어서 하트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 그랬잖아요. 
너희들이 너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미쁘시다는 것은 믿음직하시고 변하지 아니하시고 그런 소리입니다 의로우시기 때문에 내속에 있는 이 더러운 것들을 쫓아내고 없애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 문을 열고 성령님이시여 내안에 이것이 더럽습니다. 
내가 오늘 이런. 이런 생각을 하고 내속이 더럽고 내속에 주님의 모습이 없습니다. 하고 자꾸 말을 하면 보혜사성령님이 나에게 오셔서 내속을 청소해 준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기도를 왜 합니까. 
이것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바울은 어떻게 표현했냐면 내가 기름 부으심을 받는다고 표현 했습니다 성령님이 기름 부으신다.  
그러지 않아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신다.
우리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서 꼭 그리스도의 보혈 보혈이 같이 나를 씻어 시는 역할을 하니까요 그 보혈을 내가 초청하는 겁니다. 
(아까 보혈 찬양 했잖아요 제가 보혈찬양하면서 주님이 제게 이런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보혈이 이곳에 오셔서 우리를 청소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신학적으로 바울은 어떻게 표현 하였냐면 내가 십자가에서 나의 정욕과 탐심을 다 못을 박는다. 라고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 이것을 못을 어떻게 박습니까. 다시 구체적으로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못을 박는다는 것은 아픔 아닙니까. 내 속에 있는 이 자존심들 성품들 다 주님께 이렇게 내놓고 성령님 나를 씻어주세요. 씻어주세요 
그래서 이것을 바울의 그 유명한 고백 갈라디아서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예수님도 자기 자존심을 다 털어내 버렸습니다. 
나도 못 박겠습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이 안에 있기를 나는 원한다. 이안에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라 우리 주님을 계시다는 것을 내가 믿고 이분이 이 안에 청소해준다는 그 믿음 안에서 내가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 하다 보면 나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겁니다. 조금씩. 조금씩 이런 사람이 크리스천 공동체 안에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러니까 옛 성품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 하다보면 저사람 말이야 교회 장로인데 권산데 심지어는 전도사 목사인데 하는 짓을 보면 어떤 때는 그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울타리 안에서 옷을 입고는 더 나쁜 짓을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직 그대로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유명한 대도 조세형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감옥에 들어갔다가 예수님 만나가지고 할례루야 하면서 모범수로 나와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간증도 하고 유명한 목사님과도 의형제도 맺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일본에 가서 또 도둑질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사건을 볼 때 왜 그럴까요. 그걸 보고는 똑똑한 세상 사람들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봐라 조 아무개 그 사람 봐라 그럽니다. 
왜 이분이 또 그럴까요. 예수님을 영접하여 천국 시민은 됐지만 승화가 안댄 겁니다. 이 속에 있는 옛날 성품 그대로 나간 것 같은데 안 나가고 때가 되니까 또 그것이 발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성장 안 되는 이유를 이런 이유를 들잖아요. 우리 한국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별로 존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외국에 나가면 야 너네보다 우리가 났다 랍니다 그러니까 기곡교인들이 복음전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이안에 있는 하트를 청소 안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깊은 씻으심으로 하트가 깨끗하지가 않아서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 타종교사람들 또는 종교를 안 가진 사람들 그럼 당신들 보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 말이요 아니지 일반적으로 보면 우리 크리스천 사람들이 훨씬 더 괜찮습니다. 우리가 선하게 살려고 최소한 노력은 하잖아요. 예수 인 믿는 사람들은 그런 노력도 안하는 비 양심가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다 나쁜가요. 아닙니다. 
알고 보면 훨씬 더 좋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보다도 그런데 왜 우리를 가지고 이럽니까. 우린 괜찮은 사람들인데 그래도 눈물을 짜고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인데 잘살려고 괜찮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룹들인데 그러면 우리 주님이 보실 때 우리를 상식적으로 이렇게 보는 겁니다. 저 사람들은 아예 나쁜 사람들이야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너희들 말이야 전도한다고 그러면서 기독교가 어쩌고 하면서 할렐루야 하는 너희들 그래도 우리보다 나아야 되지 않겠나. 너희들 하는 짓을 보면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데 그 기대치를 우리가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니까 싸잡아가지고 너희들 틀려먹었다는 겁니다. 
이게 지금 우리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는 겁니다. 
너 네들 조금이라도 하트가 청소가 되면 그걸 잘 유지를 하여야 되는데 유지하는 방법론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전신갑주가 뭡니까 방어무기들 아닙니까. 방어무기로 내 몸을 진리의 허리띠로 의의 흉패로 전도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 말씀의 검 그 다음에 서로 기도해주고 이렇게 7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몸을 잘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보호하라 이것이 영적 이야기입니다 말씀에 충만해야 되고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해서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되고 의의에 대해서 충분히 성경적으로 깨달아 있어야 되고 전도 열심히 해야 되고 믿음을 가져야 되고 구원에 대한 구속사에 대한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되고 말씀에 대해서 말씀에 검이 말씀에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거기다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이런 7가지 방법을 매일 우리가 지킬 때 이 하트를 지킬 수 있고 이 하트 청소가 조금씩. 조금씩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외부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저 사람들 조금씩 달라지는 구나 과거에 저랬는데 저 사람 괜찮아 저사람 이런 소리를 우리가 들어야 되잖아요. 
과거에는 저랬는데 이 사람이 다라졌어 얼굴형도 말하는 게 입이 다라졌어 이런 소리를 들어야 되잖아요. 우리 교회는 대부분이 이런 사람만 모여 있으니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이게 열매 맺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서 움직이는 전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명령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산제물이 뭐냐면 살아있는 동물을 잡는 겁니다.
아픔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 하트 속에 있는 이것을 안 하는 겁니다.
산 아픔이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못된 것을 하면 이 새끼 그냥 죽여 버려. 
옛날 같으면 이런 식으로 나갔잖습니까. 그런데 참아주고 이해하여주고 이리와라 안아주고 용서해주는 이런 마음 이게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을 영적 예배라 하였습니다. 그런 것을 할 때 십자가에 나를 못 박는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 합니까.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말씀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었을 때 그것이 가은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공부 열심히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이 세대 이 하트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 이것 가지고 그냥 살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이 안에 하트의 모습이 변해 버린 것입니다 이안에 이것이 뽑아져가지고 완전히 변화를 받아서 그러면 영안이 떠가지고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보인 것입니다 이안이 변해야 합니다. 
이안의 하트가 크리스천 인격자로서 예수님 모습으로 날로. 날로 조금씩 변해가는 그런데 우리 주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천국에 있는 백성들은 소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기 때문에 하도 마귀의 방해가 심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는 좁은 문으로 가는 사람은 생명으로 가는 길이랍니다 이 사람들은 소수일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하늘나라의 계급이 피라밋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계급에 있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러니까 소수 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우리교회 형제자매들이여 소수 속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나라에 가서 높은 계급에 있게 됩니다. 
우리가 다수를 따라 가면 안 됩니다. 그러면 뒤집어서 말하면 결론적인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교회에 대해서 앞으로 그런 말을 할까요. 안 할까요 
계속할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너희들 제대로 좀 해라 하여도 제대로 안 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대를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구원받고 비자 받고 천국시민으로 그냥 살다가 일반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 바울의 말씀이 너희들은 소수라는 것입니다 
소수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울의 편지들이고 성경말씀입니다 대다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소수이기 때문에 전신갑주를 입어야 되고 찬양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매일 느껴야 되고 그 보혈이 나에게 이렇게 흘려 내려가는 것을 매일 체험하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어떤 때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았다 나의 성품들을 못 박았다 내 자존심을 다 없애버렸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다른 형제자매들은 이런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나만은 그런 소리 듣지 말아야지 이 세상에 소금의 역할과 빛의 역할을 하는 빛과 소금이 아닙니다. 소금과 빛입니다 소금이 먼저 내가 먼저 죽어야 빛이 나타납니다. 영광스럽게 보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됩니다. 내 성품이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함부로 죽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과 그리스도의 보혈의 씻으심이 항상 나에게 있을 때 내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찬양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보혈이 다시 나에게로 와서 나의하트를 청소하는 경험을 이 시간에 했으면 합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보혈의 찬양을 들으면서) 보혈의 찬양을 같이 합시다 이 찬양을 하시면서 여러분들 나만이 아니고 비전을 보시면서 내 사랑하는 자녀들 하나하나 쳐다보시면서 우리자녀들 머리위에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고 보혈이 그기에 임하는 것을 이렇게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렇게 임합니다. 지금 그놈들이 어디에 있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자녀들을 우선 보시기 바랍니다. 또 남편들 부인들 부모님들을 보시길 바랍니다. 영의 눈을 뜨고서 보혈이 내려가는 것을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를 보시길 바랍니다. 중국 아시아 전체를 보시길 바랍니다. 
아프리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 보혈이 아프리카 대륙을 쫘악 흘려가는 것을 영의 눈으로 보시길 바랍니다.             

죄송합니다만 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굵고 앉으시면 성령님이 더 역사하시는데 성령님께서 좋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내 자신을 완전히 주님 앞에 복종시키는 하나의 행위거든요 그럴 때 내 마음 문이 열립니다. 내 밑에 있는 마음 문이 복종하는 연습을 하세요. 손을 올리시고 이게 다 복종하는 것입니다 주님 내 마음 열었습니다. 우리 주님 성령님 보혈이시여 예수의 보혈이 네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아 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Fk2Y5yRcz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