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3강, 율법과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롬7:7-12) 2014년12월14일 말씀
오늘 말씀은 로마서7장7절부터12절까지입니다,
상당히 어려운 말입니다 로마서는 가면서. 가면서 어려워지는데 8장을 넘어가면 그 어려움이 약간 수그려졌다가 9장부터 또 어려워집니다,
로마서는 어려운 말씀인데 때가 되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7절부터 읽겠습니다,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아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라고 하실 분들이 대부부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잘 조명하여 주셔서 이 말씀을 우리가 깨닫고 소화하고 이 말씀이 우리를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시간에 제가 로마서7장4절 말씀을 주제로 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는 자 됩시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신부후보생들인데 그런데 진짜 신부로서 열매 맺는 자들은 적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공중혼인잔치에 신부로 참석하는 자들은 적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22장14절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이런 말씀을 예수님이 하신 걸 우리가 인용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매 맺는 사람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 열매 맺는 사람들이다 라는 말씀을 지난 시간에 우리가 같이 나누었습니다, 로마서7장7절부터 그냥 읽으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지만 자세히 보면 뭐냐면 이때부터 변화가 있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느냐면 7장6절까지는 수직계명에 관한 이야기를 주욱 했습니다, 원죄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직계명은 원죄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기위한 계명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7장7절부터 바울이 같은 율법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 율법은 뭐냐면 수평계명에 관한 율법을 말씀을 하십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원죄를 해결 받은 사람들은 이제부터는 성화로 들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성화 그러니까 예수님을 닮아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화문제를 지금부터 다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7절 시작에 그랬습니다, 율법이 죄냐 그럴 때 이 율법은 수평계명에 관한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수평계명이 뭐냐 그러니까 죄는 원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수평계명하고 원죄는 사망과 관계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말하는 수평계명은 원죄와 관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율법이 죄라는 단어로서 율법을 표현하였는데 이제부터는 아닙니다,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으로 말미암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니 알지 못하였으니 이런 말씀이 본문에 보면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지금7절부터 무슨 생각을 하느냐면 여기 시제를 보면 과거형으로 다 되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렇지 않다가 갑자기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이제부터 자기 스스로 자신의 과거 모습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시는 겁니다, 지금부터 그래서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이런 말로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이런 식으로 나오십니다,
다시 말하면 수평계명을 통해서 바울자신이 내가 성화되지 못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할 때 이 죄는 원죄가 아니고 바울 속에 들어있는 쓴 뿌리들 바울 속에 들어있는 사탄의 성품들 바울이 매일 범하는 잡음 죄들 바울도 우리와 똑같았습니다,
바울도 우리처럼 그런 문제에 대해서 이갈 수 있는 힘이 없었고 또 바울도 우리와 똑같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파워가 그분에게 들어와서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지 이분은 육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그 즉시 된 것이 아닙니다,
이분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쓴 뿌리들 이 죄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러운 성품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대로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종이 되기 시작한 겁니다, 바울도 법적인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윤리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다시 7절을 보면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수평계명을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다시 말하면 수평계명을 주신 목적을 내 속에 들어 있는 쓴 뿌리 내 속에 들어 있는 사탄의 성품들을 노출시킬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수평계명이 바울에게 깔려있는 잡음 죄들 쓴 뿌리들 사탄의 성품들이 노출되게 만드는 역할을 수평계명이 한다는 겁니다,
그리니까 이 계명이 바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그 죄가 수평계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평계명에서 나오는 쓴 뿌리들 이런 것이 율법이 다시 말하면 이 율법이 수평계명입니다, 율법을 탐내지 말라 하였으니 이 계명은 수평계명의 열 번째 계명입니다, 출애굽기20장17절에 이때부터 수평계명에 들어간다고 그럽니다, 탐내지 말라는 수평계명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깨닫지 못하고 내 속에 탐내지 말라는 말을 노출시킬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평계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수직계명하고 다른 겁니다, 수직계명은 원죄문제입니다,
8절에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기회라는 게 나의 쓴 뿌리입니다 나의 더러운 성품들 죄가 기회를 타서 수평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이 노출되었다는 겁니다, 옛말에는 그것을 모르고 살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는 율법이 없으면 법이 수평계명이 없으면 죄가 수평계명이 죽은 것이니라 다시 말하면 쓴 뿌리가 죽었다는 말은 쓴 뿌리가 죽은 것처럼 조용히 안에 숨어서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만약에 수평계명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9절에 보시면 과거형입니다, 전에 수평계명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전에는 언제 입니까 이분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수평계명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때는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쓴 뿌리도 모르고 있을 때는 이런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속에 자각증세가 없었을 때는 내가 마음이 가난하지 않았을 때는 이것 때문에 내가 애통하지 않았을 때는 내가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내가 살았더니 그랬습니다,
내가 는 바울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바울이 살았다는 겁니다,
어떻게 살았느냐면 바울 속에 쓴 뿌리가 살아나가지고 바울 속에 쓴 뿌리가 가득 차있었습니다, 이분의 삶 속에서 이웃이 조금이라도 잘 되는 걸 보면 눈뜨고 못 보는 겁니다, 바울이나 우리나 똑같습니다, 그분도 누가 잘되면 이간질 시켜서 또는 약점을 노출시켜서 깎아내려야 됩니다,
그런 더러운 마음 질투심이 바울에게도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노출시키는 역할을 누가 합니까, 수평계명이 해주는 겁니다, 바울이 얼마나 교만했습니까, 그분은 교만기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공부많이하고 최고학교 나왔고 최고가문에 그러니까 이분이 교만기가 깔려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 교만이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교만한 사람은 자기의가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낫다,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착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은 자기를 보지 않으니까 자기의 큰 들보가 자기 눈에 있는데도 티눈이 있는 사람을 비평하고 그런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못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은 외식합니다,
자기의 선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울에게도 깔려 있었던 겁니다, 우리에게도 깔려 있습니다,
내가 살았더니 그 말이 그런 말입니다, 이런 모습이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9절 후반 절에 그랬습니다, 계명이 이르매 수평계명이 나에게 이르니까 그것이 나를 깨닫게 해주면서 수평계명을 주신 목적을 깨닫게 되면서 이제는 죄가 살아난다고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속에 있는 쓴 뿌리가 노출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구나,
내 속에 질투심이 많구나, 내가 교만하구나, 이간질하는 성품이 있구나,
이것이 노출이 되면서 나는 죽었다 그랬습니다,
나는 죽은 자처럼 할 말이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분이 로마서를 쓸 때가 주후57년입니다 이분이 지금 이 고백을 하는 것은 과거 예수님 믿기 전에도 있지만 이분이 예수님을 만난 것이 주후35년입니다, 35년부터57년까지면 22년 동안 어떻게 했습니까,
처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처음 3년 동안은 아라비아에서 율법을 받은 시내 산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라비아에 가서 고독의 삶을 살면서 쓴 뿌리제거훈련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겁니다,
그 훈련을 주님이 시키신 겁니다, 너 교만했지 너 크리스천들 죽였지 너 잘난 체 하고 까불었지 너 한번 외롭게 살아봐라 3년을 그렇게 훈련시키고 그리고 7년을 자기고향에 보내서 외롭게 살게 만들었습니다,
10년을 이렇게 살게 하면서 친구들 다 떨어지게 만들고 유대인 제사장들 정부고관들 다 자기를 배척하게 만들고 이제는 옛 친구들이 옛 유대인친구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이런 상항들이 그리고 기독교계에 열두제자들이 베드로선생이나 야고보 선생이나 바울을 볼 때 별로 반갑지 않는 겁니다,
베드로나 야고보가 그 당시에 예수님의 마음만 있었으면 바울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했다는 소문을 들었으면 당장 아라비아로 달려갔을 겁니다,
아라비아에 3년 있을 때 달려가서 손을 붙잡고는 정말 감사하다 이제 교계에 들어왔으니까 내가 너하고 동역해줄게 이런 말을 했을 텐데 그런 것 안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바울이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베드로도 야고보도 쓴 뿌리가 많았습니다, 그분들도 죽을 때까지 성품의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바울을 생각만 하면 이빨을 가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예루살렘교회 개척해놓고 교인이 적어도 15000명-20000명 정도 되는데 바울이 예루살렘교회를 다 흩트려버리고 사랑하는 스데반 집사를 죽이고 우리교회 다 흩트려버린 장본인이 바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적이 예수 믿게 되었다고 보기 싫다는 이런 식의 사고를 가진 베드로와 야고보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바울에게 찾아가지 않는 겁니다, 바울이 다 느끼는 겁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러니까 바울이 완전히 홀로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속으로 옛날에도 쓴 뿌리가 조금 있었지만 쓴 뿌리가 또 생기는 겁니다, 이런 상항이 처음 10년 동안 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다음에 이분이 나머지12년도 그분의 편지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마음이 편치 못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22년 동안 쓴 뿌리로 갈등을 하면서 지금 로마서를 쓰는 겁니다, 로마서를 쓰시면서 그러시는 겁니다, 내 죄는 살아나는 겁니다, 수평계명을 생각할 때 마다 그걸 내가 묵상할 때마다 내 속에 있는 쓴 뿌리가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왜냐면 내 속에 아직도 이런 더러운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런 고백을 로마서7장에서 하는 겁니다,
10절에 보면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다시 말하면 나를 살려주는 그 수평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다시 말하면 다시 말하면 수평계명 때문에 내가 수평계명을 자꾸 묵상할 때마다 내가 죽겠다는 겁니다, 왜냐면 내 속에 아직도 더러운 성품들이 많은데 수평계명을 보면 그게 나를 노출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님 앞에서 죽은 자처럼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바울입니다 바울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11절에 죄가 기회를 타서 쓴 뿌리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수평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다시 말하면 내 속에 있는 쓴 뿌리 이놈들이 수평계명이 없을 때는 숨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더러운 성품들을 숨겨놓아서 너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 이러면서 나를 속인다는 겁니다, 속임을 당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계명이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랬는데 이분이 결론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12절 오늘 본문의 제목입니다 이로 보건대 다시 말하면 그래서 율법도 거룩하며 이때 율법은 수직계명입니다 계명도 거룩하며 수평계명입니다 의로우며 선하도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현재형으로 써놓았습니다, 수직계명이 거룩한 것은 압니다,
수직계명을 통해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겁니다 바울도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직계명을 통해서 내가 원죄를 깨닫게 되었고 수직계명을 통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와 바울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죄를 십자가에서 도말시켰다는 것도 수직계명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수직계명을 통해서 바울도 우리도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직계명을 통해서 우리가 법적으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다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수평계명입니다 수평계명도 이 세 가지를 우리에게 준다는 겁니다, 첫째 거룩하게 해주며 둘째는 의롭게 해주며 셋째로 선하게 해준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수평계명이 도와준다는 겁니다, 이 말은 수평계명을 통해서 내가 점점 더 나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면서 내가 겸손해지도록 만들어 주는 일을 수평계명이 해준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이 가난하게 되고 팔복에서 나오잖아요,
이 수평계명을 통해서 내가 마음이 가난하게 되고 애통한 사람이 되고 온유한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말씀에 배고파하는 사람 성령에 목말라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도록 수평계명이 나를 그렇게 이끌어준다는 겁니다,
그 결과로 내가 긍휼한마음을 가지게 되고 모든 사람을 내가 긍휼한 마음으로 보게 되고 내 마음이 더 순수해지고 그래서 영의 눈이 점점 더 떠지게 되고 그러면서 내가 수평계명을 더 순종하는 화평케 하는 수직계명과 수평계명을 더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핍박을 또 허락하게 하셔서 내가 점점 더 순수해지면서 상을 받게 되는 그러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수평계명에서 첫째 바울의 말씀이 나를 거룩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나를 의로워지도록 만듭니다, 의로워진다는 말은 예수님이 스스로가 말씀하실 때 본인이 나는 의롭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의로운 자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말입니다 수평계명을 우리가 많이 묵상하고 수평계명을 따라서 순종하다보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우리에게 필요한 계명입니다,
세 번째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수평계명은 우리를 선한 자로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서에서 선한 자 할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나는 선한목자다 요한복음10장11절에 나는 선한목자다 왜 선한목자인가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목자라는 겁니다, 삯 꾼 목자는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그런 사람에게 해당되는 단어가 선한 자입니다 바울도 이제는 점점 더 쓴 뿌리가 없어지면서 수평계명을 통해서 자기가 쓴 뿌리를 노출시키면서 선한목자까지 자기가 순교자가 될 때까지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그래서 우리 모두가 순교자의 반열에까지 가는 그러한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른 나라에 가면 이 말하면 다 아멘 하는데 우리나라는 안 합니다, 이게 제일 복 있는 자리인데 우리교회 식구들은 다 순교자가 되려고 합니다,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외는 있지만 그러면 우리에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두 계명이 있습니다, 수직계명과 수평계명입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수직계명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간단하게 한마디로 이 수직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너희 피조물인 너희들 우상 섬기지 말라 우상섬기는 자를 싫어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수직계명을 통해서 우리의 원죄를 노출시켜주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수직계명을 통해서 예수님의 필요성을 노출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수직계명을 통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원죄를 부셔버렸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거기에 연합되어 가지고 우리도 우리의 원죄가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함께 연합되어서 부셔졌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수직계명을 주신 겁니다,
그러면 수평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평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를 윤리적으로 주님 앞에 똑바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내 속에 숨겨진 쓴 뿌리를 노출시켜주기 위해서 수평계명을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윤리적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몽학선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끌어주는 겁니다, 많은 열매 맺도록 해주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혼인잔치에 우리가 참여하는 신부가 되도록 또 저 세상에 가서 높은 계급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도록 수평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같다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로마서를 주후57년에 썼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자기의 쓴 뿌리들이 많았다는 것을 편지 속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주후35년에 개종해서 주후45년에 안디옥교회에 전도사로 임명받았습니다, 이분이 40세 되었을 때 거기서 1년 사역하다가 1차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46년에서48년입니다 48년에 선교여행 갔다가 안디옥교회에 돌아와 보니까 잡다한 소식들이 자기에게 들리는 겁니다,
주변에서 그러는 겁니다, 2년 동안 수고했지만 갈라디아사람들 당신에게 복음을 들은 사람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반응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수고했지만 당신이 전한 복음이 다시 말하면 은혜와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에베소서2장7절8절 이 말씀을 당신이 전하고 왔는데 지금 예루살렘의 제자들도 그것도 중요하지만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된다,
라는 이야기를 그분들이 옛날에 배웠는데 바울이 와서 은혜와 믿음이야기 하니까 바울이 잘못되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선교지에 깔려있습니다,
그다음에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출신 기독교인들도 당신에 대해서 이빨을 갈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바울이 들은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루살렘에 내려가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올라 왔습니다, 속으로는 아주 괘씸한 겁니다,
이 사람들 옛날에는 몰랐지만 기독교계에 들어와 보니까 그 안이 좀 괜찮은 줄 알았더니 왜 이렇게 질투가 심한지 바울이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열두제자들도 예수님을 오래 따라 다녔지만 그 모양이야 나에 대한 질투가 아직도 꽉 차있고 나를 별로 탐탐하게 생각안하고 내가 그래도 기독교계에 들어 왔는데 이 사람들 한마디 격려도 안 해주고 바울이 그 감정을 어디에서 노출하느냐면 예루살렘총회가 끝난 다음에 갈라디아를 주후49년에 썼습니다, 갈라디아서2장에 보면 바울이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의 쓴 뿌리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갈라디아서2장19절20절입니다, 내가 이 감정을 스스로 다스려야 된다는 겁니다,
19절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때 율법은 수평계명입니다 수평계명으로 말미암아 죽었나니 구약의 율법은 누가 내 이빨을 뽑았으면 나 역시 상대방 이빨을 뽑아야 됩니다, 관계성에서 그래서 내가 과거에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안 하겠다는 겁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러니까 내가 욱하는 성품 이것들이 다 죽어버리고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 이제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 때문에 내가 참고 있다는 겁니다,
나중에 보면 바울이 죽기 전까지도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끝까지 싫어했습니다, 그것이 피조물인 겁니다, 우리도 이런 감정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를 2년 있다가 52년에 썼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2차 여행 때 개척하였습니다, 그 안에 유대인도 기독교인이 되었고 이방인도 기독교인이 되어서 이분들에게 기본적인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치고는 바울이 고린도에 내려와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소리가 선생님이 가르친 복음을 가지고 이유를 대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이 곧 온다는 사람도 있고 선생님의 복음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많이 이유를 됩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자존심이 상하는 겁니다,
바울이 이런 감정을 가지고 데살로니가전서를 쓰신 겁니다,
후서도 쓰시고 그러니까 성령님은 바울의 쓴 뿌리를 가지고 바울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도록 성령님이 가이드하시는 겁니다, 쓴 뿌리가 있는 사람 거룩하지 않는 사람을 그대로 사용하시면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성령님이 바울의 마음을 다스리는 겁니다, 그래서 1장에 너희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이 말부터 쓰도록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므로써 바울의 쓴 뿌리가 조금씩 해결을 받는 겁니다,
그러면서 데살로니가전서5장15절에서28절 내용을 우리가 즐기는 겁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바울자신이 조금씩. 조금씩 변화는 겁니다, 항상 선을 따르고 항상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성령님이 바울에게 너도 변하고 저 사람들도 변하게 하라는 겁니다, 앞으로 2000년 동안 기독교인들도 변하게 하라는 겁니다,
목사님들도 설교할 때 자기가 완벽해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설교하면서 자기 자신을 향해서 이야기할 때가 많은 겁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도 특히 예수님의 강림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예수님이 곧 오시는 게 아니다 너희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한단다,
너희들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이분이 자기도 기도가 필요한 겁니다, 자기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니까 그래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선을 행하면서 낙심치 말라 3장13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분이 선교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51년에 썼잖아요, 그러면서 계속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선교사라 그래서 온전하게 사는 게 아니잖아요,
바울도 온전하지 않으면서도 선교 일을 계속했습니다,
우리도 똑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분이 2차 선교여행이 50년부터52년입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다시 돌아와 가지고 53년에서55년에 3차 선교여행을 가는 겁니다, 3차 선교여행을 할 때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쓴 겁니다,
55년이니까 개종20년 후입니다 어느 정도 많이 성숙해 졌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이분을 보면 이분이 가지고 있는 쓴 뿌리들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편지 속에서 성령님은 그분의 모습 그대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고린도전서1장10절11절에 보면 파벌이 있는 겁니다,
바울파가 있고 아불로 파가 있고 게바 파가 있고 그리스도파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기에 대해서 너희들 싸움하지 말라 그러면서 속으로는 바울이 이런 마음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파가 있는 것은 좋지만 그 안에 내가 싫어하는 베드로파가 왜 있느냐 고린도교회는 내가 개척한 교회 아니냐 내가 개척한 교회에 내 제자들 안에 왜 내가 싫어하는 베드로파가 그기에 있느냐 그다음에 아불로 파가 왜 있느냐 아불로라는 사람은 복음도 조각 복음만 아는 사람인데 그래서 내 제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 사람을 제대로 복음을 가르친다고 그래서 내 제자가 그 사람에게 복음을 가르친 사람이야 그런데 어떻게 너 네들이 영적으로 보면 내 손자들이야 어떻게 너희들이 그 사람을 좋아하는 그룹이 많으냐 이러면서 질투심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장2장3장4장까지는 이불로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는 자기 자존심과 쓴 뿌리가 계속 깔려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20년이 되었는데도 그리고는 엄청난 일들을 많이 하고 교회개척도 많이 하고 그동안 편지 쓴 것만 해도 거룩한 편지 쓴 것만 해도 처음에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세 군데에 편지까지 쓴 분인데 이분의 감정이 거기에 주욱 나오는 겁니다, 특히 고린도전서9장 같은 경우에는 아주심한 감정이 거기에 있습니다, 교인들 중에서 바울을 험담을 합니다,
어떻게 험담을 하느냐면 우리가 준 헌금을 가지고 바울이 자기부인과 같이 여행을 마음대로 다닌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잖아요,
내가 너희들 돈 쓴 것도 없고 내가 너희들과 같이 있을 때도 내가 밤낮을 일을 하면서 내가 스스로 돈 벌어가지고 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희들 말이야 해도 너무한다, 내가 너 네들 돈 한 푼도 안 썼다, 하면서 말하는 게 고린도전서9장입니다 내가 그렇게 안한 이유가 내가 이렇게 해야지만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의 감정이 편지 속에서 노출이 되는 겁니다, 쓴 뿌리가 당연한 겁니다, 노출되면서 성령님께서 이분에게 고린도전서13장을 준 겁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말씀이 13장사랑장입니다 바울아 오래 참아라, 무례히 행치 말아라,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바울이 썼지만 이것은 바울자신을 향해서 쓴 겁니다,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렇게 쓴 겁니다, 고린도후서도 보면 똑같이 55년에 썼는데도 특별히 7장1절에 보면 내사랑하는 자들아 이렇게 말합니다, 속으로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게 여기 보면 온전해지라. 온전해지라 하면서 고린도후서를 쓰는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서 바울을 쓴 뿌리를 조금씩. 조금씩 제거해주면서 성숙시키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기 때문에 성만찬할 때 제자들의 모습을 쳐다보면서 애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는 겁니다, 새 계명은 수평계명인 겁니다, 수평계명을 줄 테니 서로 아가페사랑해라 우리가 아가페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제자들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하나님의 원칙을 알면 다시 말하면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쓴 뿌리를 조금씩. 조금씩 제거해가면서 죽을 때까지 이 문제를 안고 간다는 이것을 알 때는 내가 A라는 사람 B라는 사람에게 아가페사랑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안아 주는 겁니다,
저 사람 지금 어디가 부족하다 그럴 때 그것은 과정이구나,
그것을 깨달을 때는 안아 줄 수 있는 겁니다, 이 과정이 우리가 다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엄청난 지혜를 잡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남을 정죄할 수가 없는 겁니다, 저분이 지금 이 과정에 있구나, 어떤 분은 NO1믿음을 가지고 있구나, NO1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쓴 뿌리가 많다는 겁니다, 쓴 뿌리가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영의 눈이 어두워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놓아두라는 겁니다, 왜냐면 이런 사람이 많아야 되는 겁니다, 저쪽나라에 가면 이런 사람이 많아야 평민그룹이 많아야 되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NO 1사람들이 내 눈에 보일 때 쓴 뿌리가 많은 사람이 내 눈에 보일 때 이것은 당연하구나, 그러니까 아가페사랑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대로 안아주는 겁니다, 저런 사람이 많아야 되는 겁니다,
교회 안에도 문제 인물이 많아야 됩니다,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 많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제 있는 그대로 안아 주는 겁니다,
나중에 요한에게 요한이 주후30년에 새 계명을 이야기하는 것을 적었습니다, 요한복음13장34절35절에 예수님이 너희들이 아가페사랑을 하는 사람은 내 제자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보면 너희들이 예수님제자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원칙을 알고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것 이것은 보통지혜가 아닙니다, 보통 복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되었을 때 주변에서 모든 사람이 저 사람은 예수님의제자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요한이 요한1서 요한2서를 쓸 때가 언제냐면 주후94년입니다,
그러니까 64년 후입니다 95년에 계시록을 썼습니다, 계시록 쓰기 1-2년 전에 요한1서 요한2서를 썼는데 요한1서 4장19절20절에 보면 요한도 많은 경험을 한 분입니다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19절에 우리가 사랑함은 아가페사랑입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음이라 기가 막힌 말입니다 내가 먼저 아가페사랑 하는 것은 내가 아가페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내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서 받아주시고 지금도 계속해서 내 있는 모습 그대로 안아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우리가 수평계명을 먼저 하면 그래서 이분이 주는 넓은 시각을 우리에게 주면 그냥 수평계명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수직계명을 하고 시각이 하나님의 넓은 시각을 가지려면 내 속에 있는 쓴 뿌리가 없어져야 되는데 쓴 뿌리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없어지면서 시강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마다 쓴 뿌리가 다 있구나, 라는 시각입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구나, 사람마다 다 있구나,
그런데 NO1사람이 더 많으니까 성품이 더러운 사람이 더 많구나 60-70%의 기독교인 중에서 그다음에 NO 2사람들이 20-30%입니다 그다음에 진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많아야 10%전후구나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겁니다, 이것을 수직계명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겁니다,
수평계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을 이 지혜를 가진 사람은 아가페사랑을 누구에게나 다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소위 전천후크리스천이 되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 깨달으면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왜 저래 섭섭해 왜 이런 사랑이 없어 별난 소리 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가 깨달을 때는 이 사람이 어디에 불편하구나, 다시 말하면 이분이 지금 속에 뭔가 깔려 있는 게 많구나, 이걸ㄴ 것을 보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마지막으로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쓴 부리에 대한 가르침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거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쓴 뿌리의 성서적인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쓴 뿌리를 가지고 있는 정도나 또는 양 또는 질. 종류 또는 두께가 다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그래서 이것에 따라서 내 인격과 내 성품과 사람됨 됨이 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화의 정도는 쓴 뿌리의 정도에 비례하는 겁니다,
쓴 뿌리의 양. 질. 종류. 두께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지난시간에도 했지만 영적 여섯 단계가 있습니다, 유아단계 어린이단계 사춘기단계 청년단계 아들단계 아버지단계 이것이 어떻게 결정됩니까,
쓴 뿌리의 정도에 맞추어서 영적 성숙이 결정되는 겁니다,
똑같이 N01믿음을 소유한사람 NO2믿음을 소유한사람 NO3믿음을 소유한사람들도 쓴 뿌리 쓴 뿌리라는 것은 얼마만큼 예수님을 닮아 가느나 입니다, 나의 성품이 얼마만큼 예수님 화 되는가에 따라서 나의 층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3장에서 씨 뿌리는 비유 돌밭크리스천 가시떨기크리스천 옥토크리스천 이게 다 쓴 뿌리의 차이에 의해서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쓴 뿌리가 많은 사람은 마태복음5장8절에 영적으로 소경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지만 영의 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쓴 뿌리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은 중간정도 근시안적인 NO2크리스천들은 이 세상만 보는 겁니다, 영적으로 이 세상만 보는 사람들입니다 세속화 된 크리스천들은 쓴 뿌리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쓴 뿌리가 많이 제거되면 눈이 저쪽나라를 볼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볼 찌어다 그러니까 원시안적인 시각을 가지면서 근시안적인 시각도 가지면서 전천후 시각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내가 쓴 뿌리가 많이 제거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쓴 뿌리를 제거해야 되는데 그다음에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쓴 뿌리 때문에 울고불고 하는데도 이게 안 없어지고 성품이 그대로인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도 많잖아요, 이것은 쓴 뿌리를 어떤 사람은 제거를 예수님이 많이 도와주는데 어떤 사람은 안 도와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칼빈 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예정론 측면에서 NO1 으로 된 사람들 예정된 사람은 아무리 해도 그것이 잘 정돈이 안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한번 우리가 이해를 하는 겁니다, NO2로 예정된 사람은 어느 정도 하다가 그대로 놓아두다가 나중에 주님나라에 가게하시고 바울같이 NO3로 예정된 사람은 바울도 자기 어마니 태중에 있을 때부터 예정되었다고 그랬잖아요, NO3로 예정된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바울의 쓴 뿌리를 제거 시키면서 어떻게 합니까,
제일 먼저 용광로에 집어 넣는 겁니다, 자존심 깎이게 그래서 우리가 용광로에 집어넣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은 죽을 때까지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사람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은 대단히 못된 성품을 가진 사람 같습니다, 그러니까 용광로에서 빼놓으면 딴 짓하니까 주님은 계속 집어넣는 겁니다, 용광로 속에 들어갈 때마다 팔복의 단계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해지고 애통하게 되고 온유한 사람이 되고 말씀에 갈급하게 되고 나중에는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고 이렇게 가면서 주님께서 또 용광로 속에 집어넣고 또 용광로 속에 들어가고 바울이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내 성품이 변하게 하는 것도 주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이렇게 변하게 하시는구나, 내가 용광로 속에 있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복이구나,
야고보도 나중에 깨닫고는 너희들이 용광로 속에 드나들 때마다 너희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용광로 속에 대부분 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시죠, 기뻐하고 즐거워하세요, 왜냐면 그런 사람은 N03의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NO3로 예정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이 안 드십니까, 오늘 말씀 속에서 바울을 보면 바울이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했는데 이분이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주님이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화되라고 나를 닮아가라고 왜냐면 너가 나를 닮지 않으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로마제국을 복음화 시키려면 예수 화 되지 않으면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왜냐면 성령님이 역사를 안 하신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내가 사탄의 마음이 잔뜩 들어있으면 너 욕심대로 하다보면 성령님이 빠져버리고 악령이 나를 역사하게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그래서 목사라고 그래서 선교사라고 그래서 신학자라고 그래서 이게 다 성령님이 역사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이분의 성품이 어떤 가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성품을 보고서 이분은 성령님이 역사하시는구나,
성품이 좋지 않는 사람인데도 능력이 나타나면 그러면 주님께서 그랬잖아요, 내가 너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너에게 딴 놈이 와서 역사하는 것 같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해가면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 우리가 그것을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어야 되고 영적 통찰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특히 마지막 때는 혼돈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멘,
그러니까 우리는 궁극적으로 무엇입니까 바울도 그러면서 예수님을 닮아 갔습니다, 그래서 다음시간에도 계속하겠지만 바울이 그랬습니다,
다음시간에는 더 심각한 바울의 문제입니다 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 그랬습니다, 왜냐면 이때가 언제냐면 이분이 로마서를 쓰고 있을 때입니다 로마서를 쓰고 있을 때 그 당시에 이분이 뭐라고 그랬냐면 아직도 내 안에는 두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곤고한 자라는 겁니다, 얼마나 솔직한 고백입니까, 이것이 바울에게만 있습니까,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없습니까,
다 있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고백을 죽을 때까지 하면서 갔습니다,
이분이 나중에 디모데후서를 쓸 때 순교1년 전에 디모데에게 말할 때 디모데전서 후서에 보면 아무개를 조심해라 아무개 조심해라 그놈들 나쁜 놈들이야 그놈들 조심해라 아직까지 이분이 이런 쓴 뿌리가 있었던 겁니다,
그분들을 용서해주지 못하는 자기에게 기분 나쁘게 했다고 그래서 보면 주님 감사합니다, 바울을 통해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 주님 바울은 성자입니다 우리는 그 발바닥도 못가는 우리가 성자가 될 수 있습니까,
못됩니다, 있는 그대로 주님이 우리를 쓰시는데 그렇지만 최대한 성자가 되려고 노력을 해도 안 됩니다, 은혜가 따라와야 되는 겁니다,
그런 은혜 받은 사람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대단히 사랑하셨던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고 힘이 됩니다, 주님 지금 우리 모두가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주셨던 그 은혜를 받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 주님 한분 한분에게 안수하여 주셔서 바울에게 주셨던 그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날로. 날로 바울처럼 용광로에 놓지 마시고 저희들을 잘 성화시켜주는 그런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rmr-9F_f4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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