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 목사님 칼럼

2023년2월18일

변명섭 2023. 2. 20. 18:31

지난주 설교 주제가 "왜 네(4) 제자들에게만 산상수훈을 가르치셨나?"(마4:17-5:2)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12제자들에게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보면 이것이 아니고, 네(4)명에게만 집중적으로 하셨다는 사실이 발견됩니다. 이 네(4)명이 바로 요한의 아들들(요21:15)인 베드로와 안드레(마4:18)이며,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마4:21)입니다. 두 가정이 어업을 하는 가정이었습니다(마4:18-22; 눅5:1-11).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지만(눅2:1-7), 주로 북쪽 갈릴리지방 나사렛에서 30년 사셨습니다. 부친 요셉이 목수였으며(마13:55), 예수님도 목수였습니다(마6:3). 육신의 남동생들 네(4)명(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과 여동생들이 있었습니다(마13:55-56). 이들이 예수님과 피를 섞은 가족이 아닙니다. 단지 법적 가족일 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진짜 가족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진짜 가족(영적 가족)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하나님의 예정된 자녀들)이라고 하셨습니다(마12:46-50)".

예수님이 30년 동안 이 '법적 가족'과 함께 나사렛에서 평범한 삶을 사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렴풋이나마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았으나(마1:18-25; 눅2:8-40), 예수님이 12세 되었을 때에도, 이아들에 대한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자세히는 몰랐던 사실을 성경에서 보여줍니다(눅2:41-51). 오히려 이들이 이 아이에 대해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눅2:33). 그래도 모친은 항상 아들에 대한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눅2:19,51).

한편 예수님의 법적 형제들과 누이들이, 그를 단순히 함께 살고 있는 형님과 오빠로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평범한 목수로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이 예수님에 대해 가족들에게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이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주시지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들이 3년 공생기간, 예수님을 제자들과 함께 따르지도 않았으며, 또한 제자들과 달리, 이들이 예수님을 특별한 분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뒤늦게 예수님의 정체성을 깨닫고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짐작합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12제자들이, 예수님의 큰 남동생 야고보를, 예수님의 부활 후,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모셨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주후49, 행15:13-18). 이 큰 남동생이 야고보서를 집필했습니다(주후49). 그가 야고보서에서 자신의 육신의 형님, 예수님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주(여호와)이시며, 예수(구원자)이시며, 그리스도(구원자로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이시다. 나는 이분의 종(노예, slave, servant)이다"(약1:1). 자신과 30년 한집에서 살았지만, 이분이 인간이 아니고 구약에서 언급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분의 넷(4)째 동생 유다도, 자신의 서신(유다서, 주후80)에서 자신의 형인 야고보가 고백했던 고백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유1:1). 놀라운 고백입니다. 다른 분들이 아니고,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들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30년 나사렛에서 가족들과 지내며, 개인 삶(private life)을 사실 때, 자신의 정체성을 가족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이 30년 나사렛 개인 삶 기간이 바로, 앞으로 전개될 삼(3)년 공생애(public life/ministry)를 준비하는 chromos 기간(전3:1)이었습니다. 예수님 혼자만의 외로운 기간이었습니다. 대화 상대가 되지 않는 가족들과는 별로 대화하지 않고, 매일매일 아버지 하나님과의 대화로 보낸 기간이었습니다. 천사의 수종 받으시며, 성령님과 교제하셨던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kairos 때가 되었습니다(전3:1). 삼(3)년 공생애(public life/ministry) 시작 직전입니다. 두(2)가지 준비 사항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세례요한으로부터 물세례 받으심입니다. 그 목적이 바로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기 위함입니다(요1:31)". 유대교 출신 세례요한에게,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물세례 시 삼위하나님이 세례요한에게 나타나셨습니다(마4:16-17).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치 못했습니다. 그가 그 후 감옥에 들어갔습니다(마4:12). 그러나 그가 감옥에서도 아직 예수님의 정체성에 확실치 못하여,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케 했습니다. 예수님이 확인시켜주시고 이들을 돌려 보내셨습니다(마11:1-7).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명확히 확인 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kairos 되었습니다. 헤롯에 의해 참수 당하므로, 맡겨진 사명을 다했습니다(마14:10).

두 번째 준비 사항이 있었습니다. "40일 금식과 100% 인간 예수님의 정체성을 사탄에게 가르침입니다." '사탄 교육 목적' 입니다. 첫 번째가 '세례요한 교육 목적' 이었습니다. 이 '사탄 교육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남쪽 유대광야에서 40일 금식하셨습니다. 이 금식을 마치자 사탄(창조목적학교 교감)이 등장합니다. '사탄 교육'이 시작됩니다. 이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게 하십니다. 신성을 완전 비우시고(빌2:7), 100% 인간이 되신 예수님(교장, 인자. 요3:13)에게, 세(3)번 시험하게 합니다.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디자인 속에서 전개되는 사건입니다.

이때 100%인간이신 예수님이 사탄에게 가르치십니다. "내가 100% 인간이 되었지만, 내가 나의 '신적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너의 주'(the Lord, Master, Yahweh God, 마4:7)이다. 너는 나의 장중에 있는 존재다. 너는 나만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마4:10)."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때 이 사실을 알아들었던 사탄이, 30세 되신 인간 예수님이, 단순 나약한 인간 모습만으로 성육신하신 분이 아님을 깨닫고, 겁이 나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마4:11).

이렇게 하여 인간 예수님이, 자신과 사탄과의 관계를, 사탄에게 명확히 정립시켜 주셨습니다. 비록 신성을 비우시고, 100% 인간이 되신 예수님이시지만, 아직도 사탄이 자신의 장중에 있다는 사실(마28:18; 요3:35)을 주지시켜 주었습니다. 이렇게 3년 공생애 전, 상기의 중요한 두(2) 가르침을, '세례요한'과 '사탄'에게 하셨습니다. 이 교육 내용을 장차 선정될 제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3년 공생애 하시기 전, 반드시 가르쳐야만 하는 예비 교육 과목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세례요한이 투옥 당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마4:12). 예수님의 디자인대로 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사명이 거의 마칠 때가 되었음을 감지하셨습니다. 이제 자신의 공생애 시작의 때(kairos)임을 아셨습니다. 이를 위해 유대 광야를 떠나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이곳에서 배척을 받으셨습니다(눅4:16-30).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막6:4).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사9:1-7),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정착하셨습니다(마4:13-16). 이곳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센터'로 예정된 곳입니다.

이때부터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천국(교회시대)에 대해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마4:17). 유대인 회당에서 귀신들린 자 속의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이때 귀신이 말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the Holy One of God, 눅4:34)라고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귀신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성을 가르치게 하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이 도시와 근처 사방에 퍼지기 시작합니다(눅4:37). 디자인된 예수님의 뜻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편 세례요한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두(2) 제자에게, 예수님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요1:29,36)라고 했습니다. 이 두(2) 제자가 바로 '안드레'와 '요한'입니다. 이들이 심히 놀랐습니다. 드디어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를 만난 것입니다. 이에 안드레가 자신의 친형인 '시몬'에게 달려갔습니다.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형을 데리고 예수님에게 갔습니다(요1:42). 예수님이 저윽이 기뻐하셨으리라 봅니다.

신기하게도 '시몬'을 만나자 마자, 예수님이 시몬(히. Simon, 응답하셨다. 들으셨다의 의미)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게바'(히. Cephas, a stone, 돌)였습니다(요1:42). 아직 그가 제자로 불리 움 받기도 전입니다. 초면입니다. 후에 제자로 임명받고 한참 있다가,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이 '게바' 이름을, 다시 헬라어로 바꾸시어, 베드로(헬. Petros, a stone,돌, 마16:18)로 부르게 했습니다. 그가 장차 헬라어 권 로마제국 선교사가 될 것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또한 요한도 자신의 형 '야고보'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세례요한의 두(2) 제자인, 안드레가 자신의 형 베드로를, 요한이 자신의 형 야고보를 예수님께 소개 했습니다. 동생들의 소개입니다.

이들이(두 형제 팀들이, 4명)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후, 계속 자신들의 직업인 고기잡이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하루, 이들이 밤을 새며 고기잡이했는데 허탕이었습니다. 빈 배로 육지에 귀환하여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오셔서 '시몬'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두(2) 배 가득 채우게 하셨습니다. 드디어 '시몬 베드로'가 무릎 꿇습니다.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무릎 꿇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이제부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놀랍게도 이들이 즉시 순종했습니다. 부모님과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마4:18-25; 눅5:1-11). 네(4) 사람입니다.

아직 이들이 공식적으로 제자로 선택받기 훨씬 이전입니다. 12제자들을 공식적으로 제자로 임명하신 때는 그 훨씬 이후입니다(마10:2-4; 눅6:12-16). 이렇게 아직 공시적으로 제자로 임명받기 전입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데리고, 가버나움 서북쪽 '8복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산상수훈'을 이곳에서 가르치셨습니다(마5:1-2). 그 내용이 마태복음 5-7장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마8:1). 그리고 백부장의 하인을 치유하셨습니다(마8:5-13). 이어서 베드로의 장모님도 치유하셨습니다(마8:14-15). 베드로와 그 부인에게 큰 힘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제자로 임명받기 전입니다.

누가복음 6:20-45에도, 마태복음과 비슷한 '산상수훈'이 있습니다. 혹자는 이 두(2) 가르침이 같은 '산상수훈'이라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 시기가 다릅니다. 이것은 12제자를 선택하신 직후입니다(눅6:12-16). 평지에서 하셨습니다. '평지수훈'입니다(눅6:17). 언뜻 보기에는 '산상수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내용과 문장 구조와 형식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4명에게 하셨던 '산상수훈'을, 재구성하시어 알아듣기 쉽게 12명에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 어려운 '산상수훈'을 상기 네(4)명에게만 가르치셨나요? 이들이 아직 제자로 뽑히지도 않았으며, 이 높고 깊은 영적 가르침을 소화할 수 있는 영성도 갖추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저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이들이 장차 로마제국을 복음 화하는 핵심 지도자들입니다. '산상수훈'의 영성과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온전치는 못하지만(마5:48),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 최선을 다해 이런 영성과 인격을 가져야 하는 분들입니다.

분명 이들이 이 '산상수훈'을 온전히 100% 지키지 못하고 낙원에 갔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부분적으로, 어린아이 수준으로, 희미하게 지키다가, 낙원에 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낙원에서 삼위하나님의 멋있는 영성과 인격을 보면서, 이 '산상수훈'과 '아가페 사랑'(고전13:4-7)을 온전하게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고전13:9-12). 이들이 결코 '성인'(saints)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제자된 자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로마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들과 성공회가 이들을 '성인화' 시켰습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이용했습니다. '성인 숭배'와 '성인 중보자' 신학을 만들었습니다. 건물과 교회와 병원과 학교와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기독교 문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분명 이 네(4)분들이, 오늘날에도 낙원에서 예수님께 대단히 미안해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죽기 전, 하나님 자녀들에게 이런 짓 하지 말라고 유언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무척 후회와 죄의식을 가질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산상수훈' 조차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한 채, 낙원에 들어왔는데 말입니다. 교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이렇게 오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예수님의 은혜로, 제자로 뽑히어 순교자의 반열에까지 들어와, 지금 낙원에서 삼위하나님과 하나님 자녀들로부터 존귀함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며, 지금도 낙원에서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예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고 있을 것입니다(계4:11, 5:11-12).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상수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하나님 자녀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내 눈의 들보가 큽니다. 이웃의 티눈에 열을 낼 여유가 없습니다(마7:1-5). 지혜 자는 압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온전치 못하다 낙원에 간다는 사실을 아는 자입니다. 상기의 네(4)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네(4)분들의 심령이 가난(겸손)했습니다. 8복, 10대 덕목, 사랑 덕목을 온전히 지키지 못함에 항상 애통했습니다(마5:4). 이들이 이것을 부분적, 어린아이 수준, 희미하게 지키다(고전13:8-12) 낙원에 갔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분들처럼, '불온전' 모습 그대로 살다가 낙원에 갑니다. 우리 주변의 '불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심령이 가난(겸손)해야 하며, 애통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자에게 성령님이 이끄십니다. 주변의 '불온전한 하나님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안아주고, 품어주고,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세워주는 멋있는 자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런 이끄심을 받게 되면,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독수리 시각 자'로, '지혜로운 자'로, '정결한 신부'로 변모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따라옴을 발견하게 됩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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