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 목사님 칼럼

2023년2월4일

변명섭 2023. 2. 6. 23:01

우리가 이번 주에 "너희도 온전 하라"(마5:48)라는 주제로 공부했습니다. 은혜 시리즈 #5입니다. 이 말씀이 헬라어 원어로 이러합니다. "esesthe humeis teleioi"(you should be perfect, 명령형)입니다. 명령형이니 반드시 온전해야(헬. teleioi, 영. perfect) 합니다. 제자들이 실천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당히 부담스러운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내리신 때가, 예수님이 아직 공식적으로 제자들을 선정(마10:2-4)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예수님 공생애 초기에 하신 명령입니다. 분명 이들이 실천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아마도 이들이 이 말씀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4에서, 태생적으로 우리가 삼위 하나님처럼 온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공부했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인격인 14가지 사랑의 은사들(고전13:4-7)을 닮을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부분적으로나마, 희미하게나마, 불 온전하게나마, 어린아이 수준으로나마, 닮아가도록 노력하다가 낙원으로 갑니다(고전13:8-12). 낙원에 가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삼위하나님이 상기 14가지의 모습으로, 서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이 사랑을 배워, 이분들을 따라서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낙원이 바로 사랑으로 가득 찬 행복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없는데, 왜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라고 '역설적 도그마'를 명령하셨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가난케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마5:3)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태생적으로 결코 스스로 온전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온전해지려고 아무리 해보아라. 안 된다. 네 노력과 실력으로는 안 된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무능함을 깨닫게 된다. 나약함을 깨닫게 된다. 불가능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마음을 가난하게(겸손하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마5:3), 이 명령을 내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마음이 가난하게(겸손하게) 되면, 자연 따라오는 고백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애통하며(마5:4), 두(2) 손들고 예수님 앞에 무릎 꿇게 됩니다. "도와주세요.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입니다. 겸손한 자들에게 성령님이, 이런 고백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없으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나약한 피조물임을 고백케 하며 무릎 꿇게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은혜 베푸시는 분이심을 깨닫도록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 여호와(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모세 율법'을 주셨습니다. '모세 율법'을 주신 이유가,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 없이는, 스스로 온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함입니다(롬3:20). 이 '모세 율법' 속에 예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눅24:27,44; 요5:39).

여호와 하나님(예수님)이 모세에게 10계명을 주셨습니다(출20:3-17). 이것이 '모세 율법'의 핵심입니다. '수직계명과 수평계명'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 '수직계명'이 첫째이며 큰 계명이고, '수평계명'이 둘째 계명이라 하셨습니다(마22:37-39). 예수님이 유대교 배경을 가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세 율법'을 없애는 자가 아니고, 오히려 완전케 하려 왔다"고 하셨습니다(마5:17).

이어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이 '모세 율법'의 절대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계명 중에 아주 하찮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계명을 지키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다. 너희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5:19-20). 이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모세 율법'이 절대로 필요하며, 이것을 철저히 100% 지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 요건이 '모세 율법' 100% 지키는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시대, 유대교 배경을 가졌던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써 왔습니다. 야고보(예수님의 육적 동생)도 이런 분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성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어느 하나를 범하면, 전체를 범하는 사람이 된다."(주후49, 약2:10). 이는 구약에서 요구하는 율법을 지켜 구원받을 자가 한 사람도 없다라는 암시적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이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이유가 그는 '모세 율법' 지킴과 구원이 연계되어 있다고 믿는, '행위 구원'을 강조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행위 구원 강조 가르침'이 이러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주후49, 약2:17). 그가 야고보서를 집필할 때만해도, '모세 율법' 지킴과 구원을 같은 무게로 여겼던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구원론 신학이 초대교회를 혼돈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야고보의 이 신학사상이 '예루살렘총회' 때에 바뀐 것 같습니다(주후49, 행15:13-29). 그가 야고보서를 이 총회 직전(주후49)에 집필했는데, '예루살렘총회'에서, 이 행위 구원 사상을 포기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예루살렘총회 이후, 야고보를 포함한 사도들의 구원론이 이러했습니다. 바울이 피력했습니다.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주후49, 갈2:16). 그 후 그가 로마서를 집필할 때 이를 재확인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육체가 없다"(주후57, 롬3:20). 그 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이 사실을 재 강조했습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주후60-62, 엡2:8-9). 기독교의 구원이 '행위 구원'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는, 하나님 앞에 한낱 더러운 걸레쪼가리 같기 때문입니다(주전700, 사64:6). 이 사상이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부들의 '율법과 은혜' 사상이었고, '구원론'이었습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우리가 '모세 율법'을 온전히 지키기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모세 율법'은 우리가 온전히 지킬 수 없다. 불가능하다. 이것을 지킴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절대 구원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죄인임을 더욱 깨닫게 된다(롬3:20).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모세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perfect)해질 수 없다. 이는 우리가 100% '모세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모세의 율법'이 평생 해결 받지 못하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한편 산상수훈을 받을 당시, 유대교 출신인 제자들이, 이 '모세의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아이로니(irony)하게도, 예수님께서 이보다 더 무거운 짐이 되는 가르침을 산상수훈에서 하셨습니다. 이미 메고 있는 무거운 짐 위에, 더 큰 짐을 올려 놓으셨습니다. 설상가상입니다. 청천벽력같은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이 분명 이들에게, 수용할 수 없는 무척 부담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이것이 분명 '비이성적,' '비상식적', '비논리적', '비인격적', '비인간적'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모세 율법'도 엄청 무거운 짐인데, 이 분의 이 가르침이 '모세 율법'보다 수 백배 더 무거운 짐이었기 때문입니다. 감당하기 불가능한 '큰 산'을 어깨에 메게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모세 율법'은 아주 가벼운 '하위 율법'입니다. 지금 '산상수훈'에서 가르치는 이 율법은 '모세 율법'보다 더 무거운 '상위 율법'입니다.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엄청 무거운 큰 짐입니다. 그러면 이 '상위 율법'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예수님이 네(4) 가지의 사례로 말씀하십니다. (1) '살인 율법'(마5:21-26), (2) '간음 율법'(마5:27-30), (3) '이혼 율법'(마5:31-32), (4) '맹세 율법'(마5:33-37)입니다. 먼저 (1) '살인 율법' 에 대해 살펴봅시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 율법'에서 살인하지 말아라(출20:13), 그러면 심판 받는다(마5:21)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내가 지금 너희에게 가르치는 이 '상위 율법'은 이것보다 훨씬 까다롭단다. 내가 말해 줄께, 너희가 형제에게 분노만해도 살인이며, 형제를 라가(아람어로 바보)라 해도 살인이란다. 살인자를 모두 지옥 불에 던진단다"(마5:21-26). 이것이 '상위 율법'의 살인 개념이란다."

너희가 알다시피, '모세 율법' 하에서는 살인자가 그리 많지 않았으며, 살인했다고 해서, 살인자 모두를 죽이는 것(출21:23-25; 레24:20)도 아니란다. 도피성에 들어가 죽음을 모면할 수 있단다(민35:1-34; 신4:41-49,19:1-13). 그런데 '상위 율법'에서는 아니란다. 이웃을 무시하거나, 자존심에 상처 되는 말만 하여도 살인이란다. 이렇게만 하여도 이들이 살인자이므로, 모두 지옥가게 된단다. 모든 사람이 다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단다. 피할 사람 아무도 없단다."

두(2) 번째로 '간음 율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 율법'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 않았느냐?(출20:4). 그런데 이제 내가 너희에게 새로 업그레이드된 '간음 율법'을 주겠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든지 이미 마음으로 간음죄를 지은 것이란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 눈을 뽑아내어 버려야 한단다.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더 낫단다.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 손을 잘라 내버려야 한단다. 온몸이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더 낫단다"(마5:27-30). 이 말씀대로라면, 전 세계 기독교인 모두가, 낙원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눈과 손이 없는 신체 불구자여야만 합니다. 아니면 지옥행입니다.

세(3) 번째로 '이혼 율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 율법'에서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이혼증서를 주고 아내를 내어버릴 수 있단다(신24:1-4). 그러나 '상위 율법'으로는 불가능하단다. 아내가 음행한 연고 외에, 남편이 자기 아내를 버리면, 간음죄로 지옥행이란다. 이혼당한 여자와 혼인도 간음죄로 지옥행이란다."(마5:31-32). 만약 상기 (1) '살인 율법'과 (2) '간음 율법'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잘 지켜, 지옥을 피할 수 있더라도, 이 (3) '이혼 율법'에서 걸리게 되면 지옥행이란다."

네(4) 번째로 '맹세 율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 율법'에서 거짓 맹세하지 말라 했지 않았느냐?(레19:12). 그런데 '상위 율법'에서 맹세 행위는 하나님께 하는 행위란다. 그러므로 맹세 자체를 하지 말아라. 아니면 지옥 간단다."(마5:33-37). 만약 네가 아주 의로워서, 상기 (1), (2)과 (3)을 온전히 지켜 지옥행을 면할지라도, (4)번 '맹세 율법'에서 걸리면 지옥행이란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상기의 네(4) 사례의 '상위 율법'을 주셨나요?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우리의 능력과 선행으로 '상위 율법'은 물론, 그 '하위 율법인 모세 율법'(유치원 수준 율법)까지도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포함한, 모든 인류는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칼빈이 말하는 '인간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입니다. 인간 스스로 구원 불가능입니다.

당시 제자들이 분명, 이 숨겨진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들이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겔2:5,7,3:11) 일방적으로 이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마5:48)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나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된 인간인데 말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스스로 이렇게 온전한 존재로 될 수 있나요? 분명 이 명령이 '역설적 도그마'입니다. 왜 이런 불가능한 명령을 제자들에게 하셨을까요?

이 명령이야말로, 이미 '모세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던 이들에게, 가중시켜주는 '큰 짐'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모세 율법' 위에 이 '역설적 도그마 명령'의 큰 짐도 가중하여 메고 다녔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마11:28-30).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이 이 가중된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그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the Truth)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the Truth)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shall make you free)"(요8:31-32). 이 진리가 누구인지요? 예수님 자신입니다(요14:6). '모세 율법'과 '상위 율법'의 엄청 무거운 짐(율법의 저주)을 진 제자들을 자유케(짐에서 해방케)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떻게 자유케(짐에서 해방케) 하셨나요? 그가 이 '율법의 저주'(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저주)를, 대신 뒤집어쓰셨습니다. 어디에서 이 저주를 뒤집어쓰셨나요? 십자가에서입니다. 저주를 뒤집어쓰는 유일한 도구가 십자가뿐이기 때문입니다(신21:23). 그가 예정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저주를 십자가상에서 뒤집어쓰실 때, 하나님 아버지께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why have you forsaken Me?, 시22:1; 마27:46)입니다. 언제 이 '버린 사건'이 디자인 되었나요? 헬라어 '버렸다'는 동사가 'engkatelites`(부정과거형, aorist, 단순 과거 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창세전에 이미 디자인되었음이 확인됩니다(고전2:7; 롬16:25-26).

예수님이 창세전에 이 '율법의 저주'를 뒤집어쓰시기로 디자인된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분을 '대속 자'로(redeemer) 부르는 것입니다(갈3:13). 우리에게 보답할 수 없는 보배로운 '큰 은혜'를 베푸신 분이십니다. 이분이 창조목적학교 교장이십니다. 우리는 학생입니다. 우리에게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필요성을 교육시켜 주시기 위해, 창세전 이 '율법의 저주' 프로그램을 디자인하셨던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모세 율법'과 '상위 율법'을 주시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고 명령까지 하셨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세 율법'과 '상위 율법'과 함께, 이 불가능한 '역설적 도그마 명령'(마5:48)까지 내리셨습니까? 그러면 우리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저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아, 너희는 예수님의 은혜가 절대로 필요한 존재란다. 너희는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필요성을 교육받는 학생이란다. 너희는 교장 선생님의 은혜로 이 학교에 등록되어, 나그네와 순례자(히11:13; 벧전2:11)로 열심히 교육받고, 때(kairos)가 되면(전3:1), 본향으로(히11:16) 귀환하는 천국 시민들(엡2:19;빌3:20)이란다."

그러면 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불가능한 '역설적 도그마 명령'을 내리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고 질문한다면, 우리의 대답이 무엇일까요? 저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우리들이 천국에 가서도, 이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영원토록 잊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잊지 말아라. 학생 때를 생각해라. 이 예수님이, 너희를 포함한 만물들로부터, 영원히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받으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라(계4:11,5:13). 너희들이 예수님의 창조목적 파트너임도 잊어서는 안 된단다(창1:28). 너희들은 장차 천국에서, 만물들에게 모본을 보여주며 이들을 섬기며, 지휘하는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단다. 이 지도자 직분을 너희들이 '예수님의 은혜'로 받은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단다. 이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맡겨진 직분을 충실히 다하는 자가 되거라. 이런 자가 '우수학생'이란다. 이런 '우수학생'이 되라고 불가능한 '역설적 도그마 명령'을 너희들에게 내렸단다." 황 용 현 목사

'황용현 목사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년2월18일  (1) 2023.02.20
2023년2월11일  (0) 2023.02.11
2023년1월28일  (0) 2023.01.28
2023년1월21일  (1) 2023.01.23
2023년1월14일  (0) 2023.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