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4장5장 강해 6강. 요한계시록에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무엇인가?(계1:10; 4:21)
오늘 요한계시록은 본래는 제가6장을 시작하려 그랬는데 6장은 정말로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런 모든 사회현상들이 그냥 예언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이 6장부터 시작입니다 그것은 다음 주 아니면 그 다음 주부터 제가 시작하려고 그럽니다. 성령임께서 이렇게 이끄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말씀을 이렇게 제가 산고하다가 계시록에서 나타나는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한번 같이 나누려고 그럽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나는 성령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왜냐면 나중에 여러분들이 알게 되겠지만 요한계시록은 삼위하나님 중에서 예수님과 성령님의 대한 스토리가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보겠지만 1장에서 요한에게 말씀하실 때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인사말을 해라 할 때 요한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성령님과 다시 말합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을 지어다 그랬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성서전체에서는 그런 식으로 특히 바울의 편지에서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편지에 보면 항상 어떻게 인사가 나옵니까?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 지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은혜와 평강이 아버지로부터 파덜 앤드 선 지저스(Father and Son Jesus)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 지어다 바울이 이렇게 항상 본인의 편지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은혜가 어디서 나오는 줄 아느냐 은혜는 성부하나님과 그리고 성자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겁니다. 은혜가 이렇게 했는데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지금 조금 다르게 말하는 겁니다. 어떻게 말하느냐면 성부님은 빼시고 성자와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은혜가 아시아 일곱 교회에 그 은혜와 평강으로 넘쳐나기를 바란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무슨 뜻인지 알죠? 신약교회입니다
신약교회를 지칭합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지난시간에 요한계시록하면 그기에 아주 주절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키 워드(key word)가 1장19절입니다. 1장19절이 요한계시록의 키(key)성구입니다 주 성구인데 우리가 알다시피 네가 본 것, 과거형입니다 그것이 1장이야기입니다
이것도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다음에 현재 있는 일들 그게 2장과3장이라 그랬습니다. 현재형으로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일어날 일들 그것은 4장 부터시작해서22장까지 주욱 앞으로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이걸 적어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주욱 적었습니다. 우리가 이 공부는 많이 했습니다.
이후에 일어날 일들 해서 4장부터22장에 이렇게 나오는데 이 말씀을 적어면서 요한계시록1장10절을 보면 모슨 일이 일어나느냐면 요한이 9절이 밧모 섬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0절을 보면 나는 주의 날에 성령께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일반 우리한국성경에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본래 원어는 뭐냐면 인 더 스피릿(in the spirit)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어성경이나 원어를 보면 수동형입니다 히 워즈 인 더 스피릿(he wars in the spirit)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요한이 성령님에 의해서 인도를 받았다 또는 성령님에 충만을 받았다 이런 의미입니다 이걸 한국말로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질문이 그러면 요한이 그 전에는 감동을 받지 않았나요? 받았습니다. 요한은 아주 특별한 분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관계에 있어서 육신적으로 이종사촌으로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이 가장 사랑했던 제자입니다 베드로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요한도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그런데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주후68년에서70년 기간에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에 초점을 강하게 둔 복음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자기의 육신적인 이종사촌이지만 예수님이100%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기록하시고는 그다음에 이분이 주후85년에 요한1서2서3서를 기록했습니다. 그기에 모든 이야기들이 뭐냐면 그 당시에 예수님의 신성을 의심하는 기독교인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기독교인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요한복음을 쓸 때가 언제 입니까? 68년에서70년이니까 약25년 후에 교회모습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모든 자들은 다 적그리스도들이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요한에게 요한1서2장18절에 보면 2천년교회시대에 이런 적그리스도들이 많이 나올 것을 예언케 했습니다. 요한1서2장18절에 그러니까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특별한 전문가였습니다.
이런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이분에게 핍박이 왔습니다.
95년에 그래서 이분이 밧모 섬에 유배를 간 겁니다. 거기서 고생을 하면서 이분이 거기서도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초점이 분명했던 겁니다.
그래서 기독론이 강했던 분입니다 기독교역사 속에서 요한만큼 기독론이 강했던 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독론이 굉장히 강했던 분인데 이분에게 오늘 보니까 성령님으로 가득 차게 된 겁니다. 기독론이 강하면 성령님으로 가득하는 것은 자연현상이지만 특별히 지금 보니까 성령님의 이끌리심이 특별히 있는 겁니다. 성령님의 이끌리심이 있으면서 이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시는 게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알파와 오메가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성령님의 이끄심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4장에서5장 공부를 우리가 그동안 여러 번 했는데 4장을 시작하면서 이분이3층천 보좌로 올라갈 때도 뭐냐면 성령님에 이끌리어 그랬습니다.
똑같이 성령에 감동받아 아까 우리가 읽은 것과 똑같이 이분이 3층천 보좌로 올라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기독론이 강했던 분인데 기독론이 강한 분에게는 항상 성령님의 이끄심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이끄심이 그런데 우리가 보면 첫 번째가 성령님에 대해서 계시록과 관계되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4장에서 우리가 알다시피 올라가서 보니까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아서 보좌에 올라가보니까 보좌에 누가 그기에 있습니까? 보좌에 앉으신 분을 보니까 그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을 요한이 본 겁니다. 그러니까 성부하나님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면 피조물이 성부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겁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분명 보좌에 두 하나님이 앉아 계신 겁니다.
성부하나님과 그분의 보좌에 앉아 계시고 또 성자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데 성부하나님의 보좌는 막연히 빛으로 이렇게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성부하나님은 우리피조물이 볼 수 없다. 라고 알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성경어디에 나옵니까? 그러면 우리가 항상 외웠습니다. 어디입니까? 요한복음1장18절 요한복음6장46절에 성부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렇지만 성부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신 겁니다. 그다음에 성자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성자하나님을 딱 본 겁니다. 그런데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성자하나님의 보좌는 성부하나님의 보좌 어느 쪽일까요? 오른 쪽인 겁니다. 분명히 오른 쪽이라고 말한 게 성서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성부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겁니다. 성부하나님의 보좌 오른 쪽에 골로새서3장1절에 보면 바울이 그랬습니다. 성자하나님이 성부하나님보좌 오른 쪽에 계시다 또 히브리서12장2절에 그러면 지난 시간에도 잠깐 했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합시다.
이분이 보좌에 앉으셔서 무엇을 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왜냐면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예수님께 다 드렸습니다. 왜냐면 이분이 이기셨기 때문에 기억나시죠? 이기셨기 때문에 죽으셨다가 저주받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이분은 보좌에 앉아서 뭘 하느냐면 모든 피조물들을 감찰하십니다. 통치하십니다. 또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그래서 영광 받으시는 모습을 계시록4장과5장에서 우리가 봤습니다. 계시록4장과5장에서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는 모습을 4장에서는 보좌에 앉아서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고 5장에서는 어린양예수님이 영광 받으시는 장면을우리가 다 구경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질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하나님 두 분이 보좌에 앉아 계신데 성령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그래서 성서에서 지난시간에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두 보좌 앞에 딱 서 계신 겁니다. 성령하나님이 계시록1장4절과4장5절에 성령하나님의 위치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머릿속에 한번 그려 보세요
두 보좌가 계시고 그다음에 보좌 앞에 누가 계십니까? 성령하나님이 계신 겁니다. 그러면 왜 성령하나님은 보좌가 없으신가? 이게 우리질문 중에 하나입니다 왜 성령하나님은 보좌가 없으신가? 그냥 단순히 두 분의 보좌 앞에 서 계신가? 이렇게 질문을 한번 던져 보세요. 다시 말합니다.
성령님이 왜 보좌가 없으신가? 그러면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성부님이나 성자님보다 계급이 낮으신 분입니까?
왜 보좌가 없습니까?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성령님은 제가 시간이 되면 다음 주에도 성령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할까 말까 지금 기도 중에 있습니다. 오늘 어느 정도 깊이 하느냐에 따라서 제가 결정하려고 그럽니다. 성서에는 성령님을 예수님과 또 성부하님과 관계해서 설명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을 예수님의 영이라고 바울이 사도행전16장7절에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영이라고 또는 바울이 예수그리스도의 영이라 이런 표현도 했습니다. 빌립보서1장19절에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랬습니다.
로마서8장9절에 또는 아들의 영이다 그랬습니다. 성령님을 갈라디아서4장6절에 바울이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성령님을 그리고 바울이 성령님을 아버지의 영이다 그랬습니다. 로마서8장11절에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성령님이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조금 해결을 보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하는데 아버지의 영이 성령님이시고 성자의 영도 성령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서로가 맞물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삼위일체론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은 위치도 한 위치고 계급도 같은 계급이고 권위도 한 권위고 영어로 콘티티(quantity)가 무엇입니까? 양입니다
콜리티(quality)가 무엇입니까? 질입니다. 다 같다는 겁니다.
세분의 위인데 위가 다르게 있지만 포지션과 파워가 다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성령하나님은 보좌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 성령하나님은 성부와 성자하나님의 하나의 부속 영이 아닌가?
이렇게 봐 왔던 일이 기독교역사에서 지금까지 와 있습니다.
특히 초대교회400년 동안은 성령님과 관계를 교회 안에서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이걸 해결을 못했습니다. 성령님에 관한 부분을 특히 삼위일체를 그래서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니케아공의회 325년입니다 기독교인대표들이 다 모여가지고 그때 아리안주의를 배격하면서 기독론 예수님이100%하나님이라는 것을 결정한 것이 니케아공의회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약했던 부분이 예수님이100%사람이신 부분은 약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인 부분은 강했지만 그러니까 이게 아직도 니케아공의회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티노플공의회를 한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381년에 콘스탄티노플공의회에서 갑바도기아 지방에 세분의 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삼위일체론을 디자인 했습니다.
그러니까 근400년 후에 삼위일체론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리고는 성령 론에 대한 아직도 해결이 잘 안 되어가지고 에베소에서 431년에 에베소에서 성령 론에 관한 부분을 서로가 연구하고 서로가 토의하고 결정하는 겁니다. 성령 론이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명하는 이런 내용들이 결정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가400년 후에 더디어 삼위하나님에 관한 이러한 개념들이 정상화되면서 이것을 451년에 칼케톤 공의회에서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결정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삼위일체론을 최종적으로 만들어 내고 그다음에 예수님의100%신성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또 예수님이100%인간이셨다는 것도 만들어 내고 그리고 성령님도 성부와 성자와 같은 동격인 동질인 동향의 보좌는 없지만 그런 분이라는 것을 결정을 한 것이 칼케톤 공의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크리스천들은 이걸 꼭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451년에 예루살렘교회가 개척이 된 것이 주후30년입니다
그러니까451빼기30하면 약400년 후에 삼위일체론이 기독론이 정립된 겁니다. 한참 걸려서 그만큼 힘들게 결정된 것이고 그때부터 소위 기독교인이라면 이 결정을 따르는 분들을 지칭하고 이 결정에서 위배되는 어떤 가르침을 할 때는 다 이단으로 정죄를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단의 정죄가 칼케톤 공의회에서 결정한 것에 잣대가 되어 가지고 결정된 겁니다.
그런데 그때부터시작해서 교회가 소위 조직화되고 교단이 생겨나고 덩치가 커지고 이렇게 하면서 기독론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강했지만 나머지 성부에 관한 이야기도 조금 약했고 성령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더 약해졌습니다. 그래가지고 중세시대 때는 성령에 관한 가르침이 그의 전무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1517년에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때에도 그 후에 우리개신교가 많이 복음을 전했는데 개신교들도 기독론은 강했지만 성부론도 약했고 성령 론은 아주 약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순절 때 주후30년입니다 오순절 때 성령 충만해가지고 방언도하고 예언도하고 또는 병도 고치고 이런 일들이 초대교회에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실제로 아주 소수만 빼놓고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소수만 그런 걸 하는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반적인 교회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1901년에 갑자기 오순절 때 경험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미국의 켄서스 주 토피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캘리포니아 아주사 거리의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영국의 웨일즈에서도 일어나고 우리나라원산에서도 일어나고 평양에서 일어나고 이래가지고 세계적으로 성령운동들이 일어나기 시작해가지고 성령 운동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일들이 일어나니까?
방언하고 예언하면 맞는 것도 있고 틀리는 것도 있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이런 일들이 지금부터100년 전입니다 1900년 이때부터 여기저기서 막 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동안 성령님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 보다 별로 강조를 안했던 기독교인그룹들이 도전을 받게 된 겁니다. 도전받게 되어가지고 갈등들이 거기서 오게 된 겁니다.
그래서1900년 전 후로 해서 새로운 교단이 일어난 것이 오순절교단인 겁니다. 그러니까 오순절교단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아주 강한 교단입니다
그동안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이런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나다 보니까 항상 성령님이 보이는 이런 은사가 나타나고 이런 자들을 은사 자들이라고 그럽니다. 이런 것들이 나타나다 보니까 이분들이 상대적으로 뭐가 약하느냐면 기독론이나 삼위일체론 이쪽이 약해지는 겁니다. 이게 인간의 하나의 약한 부분입니다 한쪽을 강하게 하다보니까 은사 주의하는 분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하다 보니까 그게 진짜 성령님이 하시기도 하고 악령도 따라서 같이하는 혼돈의 시대가 20세기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운동을 하는 분들 중에서 제가 볼 때는 양신이 역사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니까 성령운동은 이렇게 막 보이는 가시적인 은사 쪽으로 가다보면 그이 대부분이 잘못되는 걸로 이미 이렇게 증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피조물들은 이런 가시적인 것을 하면 사람들이 홀려가지고 많이 모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좋아하고 그러니까 교회도 커지고 사역도 커지고 헌금도 많이 들어오고 또 목회자도 유명해지고 능력이 생기고 이래서 여러 가지로 하다가 보면 자기도 모르게 변질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유명해지면 세상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주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되면 변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악령이 끼어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는 이런 것을 다 우리 눈으로 보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삼위하나님의 대해서 철저하게 공부해야 되고 삼위하나님이 이런 균형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는 균형신학을 고수해야 됩니다. 잘 균형 잡아서 그리고 삼위하나님의 아주 역동적관계성을 우리가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오늘은 요한계시록에 보면 요한이 기독론이 강했던 요한인데 이분에게 예수님께서 성령의 중요성을 계속 가르치십니다. 성령의 중요성을 요한이 이것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중요성을 우리가 볼 터인데 성령의 중요성에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속에 숨겨져 있는 성령의 중요성을 우리가 꼭 봐야 됩니다.
요한이 성령의 강동으로 성령 안에 있을 때 우리 아까 봤지만 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하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하는데 신기한 게 있습니다. 일곱 교회에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교회에 편지할 때 각 교회마다 첫마디로 하는 말이 예수님이 본인의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 기억나십니까? 정체성을 우리가 다 공부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2장1절, 서머나교회는2장8절, 버가모교회는2장12절, 두아디라교회는2장18절, 사데교회는3장1절, 빌라델비아교회는3장7절, 라오디아교회는3장14절입니다. 그럴 때 보면 예수님의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누가 이야기했습니까? 예수님이 요한에게 이야기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말하는 걸 적어라 그래가지고 요한이 적은 겁니다.
성령 충만한 요한이 예수님이 지금 요한 옆에 계시잖아요. 밧모 섬에서 예수님이 요한 옆에 계신데 하시는 말씀이 적어라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 앞에다가 내 정체성을 내가 말해줄 테니까 적어라 그래서 적은 겁니다. 그런데 편지가 끝날 때마다 우리를 혼돈케 하는 말이 나옵니다.
끝날 때마다 에베소교회 같으면 2장7절입니다. 뭐라고 하느냐면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지어다. 그러는 겁니다.
이게 우리를 혼돈케 하는 겁니다. 분명히 요한이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이 말씀 하신 것을 쫘악 적은 겁니다. 각 교회다가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러느냐면 본인이 말씀하셔놓고는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지어다 이 말씀을 각 교회에 끝날 때마다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지어다 서머나교회는2장11절, 버가모교회는2장7절, 두아디라교회는 2장29절, 사데교회는3장6절, 빌라델비아교회는3장13절, 라오디아교회는3장22절에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를 해야 되느냐 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나는 누구다 자기의정체성을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주욱 이런, 이런 일을 칭찬도 하고 꾸중도 하고 이렇게 주욱 하셨잖아요. 하셔놓고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 지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게 애들아! 요한아! 내가 지금 말했지만 성령님이 내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내가 지금 말했지만 성령님이 내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예수님의 영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영이 그러니까 예수님 속에 계신 성령님이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딱 계시면 항상 예수님과 같이 계시는 분이 성령님이라고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이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삼위하나님에서 이걸 배웠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삼위하나님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고 가정을 하면 위원회를 가지고 있을 때 어떤 결정을 하실 때 그기에 이사회라 그러면 성부하나님을 이사회 의장으로 우리가 생각했습니다. 의장이시지만 결정한 것을 땅땅 치시고는 공포하시는 분도 공식적으로 그게 성부하나님이 하십니다. 공포하시는 분도 그렇다고 해서 이분이 제일 높으신 분은 아닌 겁니다. 공포를 하셔서 결정한 것을 수행하는 하나님이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이라고 우리가 다 배웠습니다. 수행하시는 하나님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수행하시려면 어느 하나님이 필요 하느냐면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로 한 겁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고 예수님은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수행하는 일을 할 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누구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성령님의 도움이 항상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창세기1장1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누굽니까? 원어로 엘로힘(Ellohim)입니다 엘로힘(Ellohim)이라는 말은 복수입니다 엘로(Elloh)가 단수고 im이 붙으면 복수입니다 그래서 삼위하나님입니다 삼위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부하나님은 어떻게 창조자가 되십니까?
성부하나님은 창조를 결정하시고 계획하시고 공포하신 분으로 보면 되는 겁니다. 그런 기능을 가지신 하나님이 성부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자하나님은 실제로 창조를 손으로 말씀으로 하신 분이십니다.
성자하나님은 성서에 보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은 어떻게 하느냐면 성령하나님은 예수님이 창조하실 때 이분이 도우셔야 됩니다. 창조를 도우셔야 됩니다. 그래서 돕는 창조주하나님인 겁니다. 성령하나님이 그래서 욥기3장4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나(욥)를 지었고 전능하신 분의 호흡이 네게 생명을 주셨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만드신 분은 누굽니까? 성자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인간을 그렇지만 성령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도 창조주라는 겁니다. 또 시편104편30절에도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주의 영을 보내시고 그들이 창조되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을 보내셔서 창조에 가담케 하셨다는 겁니다.
실제로 창조하신 분은 누굽니까?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단독으로 창조하시는 일이나 모든 일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삼위하나님의 시스템에서 성부하나님혼자 못하시는 겁니다.
모든 걸 결정하셔서 삼위가 기능적으로 서로가 협조하면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크리스천들도 삼위하나님의 시스템과 같습니다. 우리크리스천들도 내가 아무리 성서에 대해서 잘 알고 세상교육도 많이 받고 다 잘하지만 성령님의 충만 하심으로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크리스천들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누구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14장16절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보고 이 말씀은 앞으로 오순절다락방사건을 생각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여쭈어서 성령을 너희들에게 주십사 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여쭈어서 나를 통해서 성령을 너희들에게 가게 하겠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우리가 묵상해보면 아하! 성령님을 우리가 받으려면 삼이하나님의 시스템이 제일 성령님을 보내겠다고 결정을 하신 분이 누구라는 겁니까? 성부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부하나님이 성령님보고 가십시오. 아무개한데 가십시오.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때 꼭 누가 중간에 계셔야 되는 겁니까? 예수님이 꼭 계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오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성령님! 저에게 오십시오. 이렇게 해야 되는 겁니다. 이게 삼위하나님의 시스템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설교를 합니다. 설교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뱉어내는 겁니다. 제가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이 없이도 설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도 세상적인 지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지적으로 공부해가지고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설교를 하거나 우리가 가르치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군중들에게 없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이 변화시키는 깨닫게 하시는 그 역사하심이 없는 겁니다. 지적으로 이해는 하는 겁니다.
그게 소위 오늘날 신학자들 목회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왜냐면 성령님에 의지해가지고 성령님이 지금 말씀전하는 저를 성령님이 지배를 하셔가지고 말씀을 전하게 해야 되거든요 그러려면 성령님의 지배를 내가 받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님께 내가 무릎을 꿇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독론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에 대한 모든 정체성을 다 알고 있고 그 예수님이 누구시고 이분의 능력에 대해서 다 안 다음에 이분에게 대화할 때 예수님이 벌써 아십니다. 전지하시기 때문에 황 목사 너는 설교를 하려면 네가 아는 것만 가지고 안 돼 너는 내가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성령님의 강한 능력이 너에게 가주어야 돼 그러면 내 입에서 양날달린 검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황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고는 깨달음 이 오고 또 어두움이 쫓겨나고 혼돈이 정돈이 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끔 되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끔 성령님이 이끄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 없이 예배만 드렸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없는 예배는 또 성경공부는 그냥 지적인 엑스사이스(연습, exercise)만 하고 지적인 엑스사이스(연습, exercise)를 하다가 보니까 이분이 공부는 많이 했지만 헌신하지를 않는 겁니다. 변화가 없는 겁니다. 변화가 없는 사람은 아하!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는구나.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이렇게 중요한 겁니다.
제가 오늘은 더 복잡하게 말하면 더 복잡해지니까 다음 주에 성령님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정도 수준으로 제가 하겠습니다.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바울은 항상 크리스천들에게 인사를 할 때 바울의 인사가 뭐냐면 은혜와 평강으로 가득 찰지어다. 라는 겁니다. 항상 기독교인들에게 당신들은 은혜와 평강으로 가득 찰지어다. 이게 바울의 인사입니다 항상 기독교인들에게 그게 편지 끝내고는 결론에는 똑같은 이 말을 또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뭐가 꽉 차 있느냐면 그분 머릿속에는 교인들이여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당신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돼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지만 평강이 따라 온단다 그러니까 이 은혜를 받도록 나는 간구한다.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 잡다한 이야기들을 쓴 겁니다. 이분이 이 모든 긴 이야기들을 다 쓴 다음에 결론이 뭐냐면 애들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 그러는 겁니다.
이걸 다 알아야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말할 때 은혜를 이야기할 때 꼭 삼위하나님 중에서 두 하나님만 이야기했습니다. 뭐냐면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으라. 그랬습니다. 바울은 항상 편지마다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성부와 성자가 베푸는 그 은혜를 받으라는 겁니다.
그러면 평강이 올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요한은 요한복음1장에 보면 이분은 바울이 말했던 것과 다르게 말합니다. 은혜와 평강을 받으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면 이분은 그럽니다. 예수님과 다시 말하면 성자와 성령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으라는 겁니다. 그러면 까다로운 사람들은 이게 왜 말이 다르냐는 겁니다. 삼위일체의 오묘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왜 성서에 말이 다르냐는 겁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성서는 이렇게 보면 아하! 이 은혜의 소스가 어디라는 겁니까? 성부와 성자와 그다음에 성령님의 삼위로부터 은혜가 흘려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한 계시록은 요한이 성령님의 그 포인트를 강하게 때리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성령에 관한 것이 굉장히 강하게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삼위에서 그렇기 때문에 특히 우리는 오늘날 요한계시록은 4장부터 시작해서 무슨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일어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4장부터22장까지는 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성령님의 이야기를 강조합니다.
이 말은 뭐냐면 예수님과 성령님 기독론과 성령 론입니다
이것을 계시록에서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지막 때 사는 우리는 똑같이 어디에 강해야 됩니까? 기독론과 성령 론에 강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다음시간에는 성령 론을 더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피조물들이 가끔 아버지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어떻게 기독교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지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과거 수천 년 동안 최소한 2천년 동안 혼돈 속에 있어 왔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이시여 이 부분을 우리에게 도와주셔서 정리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금 이 시간은 우리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끊임없이 가르쳐주심과 깨닫게 하심과 순종케 하심과 보호케 하심이 우리에게 항상 있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요한계시록에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무엇인가?(계1:10; 4:21)
1. 계시록의 주제인 1장19절에 담긴 내용을 다시 복습하고 성부 성자 성령의 역동적 관계성을 나누어 봅시다.
2. 왜 성령님의 보자가 없으십니까? 기독교2천년 역사에서 성령님에 대한 오해와 문제점들이 무엇입니까?
3. 우리는 이 성령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4. 요한계시록1장9절에서18절을 읽고 이 말씀 안에서 요한과 예수님의 역동적인 성령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발견해 봅시다.
5. 아시아 일곱 교회에서 발견되는 성령님과 예수님과 요한과 역동적 사역내용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르침이 무엇인지 상의해 봅시다.
6. 계시록4장5장 속에서 보여주시는 성령님의 사역내용을 살펴봅시다.
7. 요한계시록은 바울서신과 달리 예수님과 성령님이 모든 사역에서 동역자로 사역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어디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까?
8. 계시록은 종말 성도를 위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긴밀한 관계를 배우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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