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와 복 시리즈

9강. 빌립보서2장1절-11절, 저주 받으심으로 높임 받으신 예수님

변명섭 2021. 12. 30. 20:43

저주와 복 시리즈 9강. 저주 받으심으로 높임 받으신 예수님

(빌2:1-11)

계속해서 저주와 복 시리즈를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은 저주 받으시므로 높임을 받으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빌립보서2장1절부터11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같이 우리가 나눌 터인데 그동안 시리즈 9강인데 7강, 8강을 통해서 삼위하나님의정체성을 우리가 공부했고 그리고는 예수님의정체성을 공부 했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삼위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해서 조금 더 심도 있게 우리가 공부를 하려고 그럽니다.

굉장히 중요한 공부기 때문에 잘 소화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삼위하나님의정체성이 일곱 가지가 있다고 공부했습니다.

일곱 가지 중에서도 우리가 강조했던 부분이 뭐냐면 삼위하나님은 첫 번째로 상호동등하신 분이시다 상호간에 질이나 량이나 계급이나 또는 권력이나 이런 부분에서 상호동등하신 삼위하나님이시라는 속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 속성이 뭐냐면 기능적으로 상호 독립적으로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독립적 기능을 가지신 분이신데 그런데 이것을 상호 서로가 인정해드리시고 또 존경해드리시고 높여드리십니다. 이게 두 번째 이분들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기능적으로 삼위하나님께서 서로가 전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전문성을 가진 것을 서로가 인정해주고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높여드리는 이러한 속성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닮아야 될 것들입니다 네 번째로 가지고 계신 속성이 뭐냐면 삼위하나님은 서로 섬기시는 속성이 있습니다. 서로 디아코니아(diakonia)라고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는데 서로 섬기시는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죽을 때까지 묵상해야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강한 임재하심을 여러분들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삼위하나님에 대해서 상호 섬기시는 속성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상호 협동하시는 서로 도와주는 이런 속성을 가지고 그다음에 서로 존경해드리고 서로 높여드리는 그리고 서로 증거 해주는 이분이 이런 분이라고 서로 증거 해주는 이런 속성들을 삼위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타종교의 하나님과 이런 부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항상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묵상하다보면 성령님이 나에게 강하게 임재하십니다

그러니까 삼위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삼위하나님이 서로가 동등하시고 서로가 높이도 같으시고 권력과 권리가 같으신데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높이시고 자기 자신을 들려내지 않는 이런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이 성숙해지면 삼위하나님의 모습으로 우리가 변모되는 겁니다. 우리가 성숙해진 사람은 관계성에서 삼위하나님은 공동체입니다

삼위하나님의 공동체에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이런 모습인 것을 우리가 묵상을 하면서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가 이런 모습으로 성화될 때 성숙될 때 이 공동체는 하나님을 닮은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다 이렇게 하나님이 부르게 됩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과 아버지와 관계, 어머니와 관계, 부부관계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항상 우리가 적용을 했을 때 그 가정에 행복이 있습니다. 이것을 크리스천관계성 성화다 이렇게 한번 제가 표현을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동등하지만 독립적 기능 전문적 기능 이런 것을 인정해주고 나와 기능적으로 다른 것을 인정해주고 서로 높여주고 섬겨주고 서로 위해주는 이런 아름다운관계 이게 우리가 섬기는 삼위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다양 속에서 조화를 잘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이 되고 우리도 다양 속에서 하모니(harmony)를 잘 이루는 사람이 그게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을 높이십니다.

다양 속에서 협동을 잘하는 하나님 다양 속에서 서로를 인정해주고 존경해주고 서로 섬기는 이런 모습 이것을 삼위하나님의 교제다

펠로십(fellowship), 코이노니아(Koinonia)다 이렇게 표현들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삼위하나님을 묵상을 할 때 이 모든 삼위하나님의 다양 속에서의 조화 이것을 항상 묵상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멋있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멋있는 삼위하나님이 창세전에 삼위께서 앉으셔가지고 회의를 하셨다. 라고 보시고는 이분들이 회의를 하면서 가장 관심사 주제가 무엇이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까? 회의를 하시면서 가장 관심사 주제가 제 생각에는 뭐였느냐면 창세전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삼위하나님이 엘로힘(Elohim)창조주라는 뜻입니다 엘로힘(Elohim)갓즈(Gods) one God in three persons 한분의 하나님이시지만 삼위로 계신 하나님께서 회의를 하시면서 가장 관심사가 뭐였냐면 앞으로 장차 삼위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창조할 하나님의 자녀들 다시 말하면 창세기1장26절에 우리의 형상을 닮았다고 그랬습니다. 장차 창조될 삼위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창조목적을 가르쳐주는데 이분들의 초대한 관심사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삼위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뭐냐면 과거도 아시고 현재도 아시고 미래도 다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어로는(omniscience God)이라 합니다.

성경구절은 시편147편5절입니다. 또 마태복음10장30절입니다. 또 로마서11장33절, 히브리서4장13절에 전지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삼위하나님이 회의를 하시면서 이미 다 아신 게 뭐냐면 앞으로 창조될 아담이 창조목적에 불순종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아담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목적에 불순종할 것을 아셨습니다. 이게 피조물의 한계성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이런 피조물의 한계성을 느끼느냐면 앞으로 삼위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주실 것이 뭐냐면 육적인 복을 줍니다. 섞지 않는 육으로 영원히 사는 육으로 육적인 복을 줄 것이고 혼적인 복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인격체의 복입니다 그다음에 영적인 복음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로써 영원히 사는 이런 육, 혼, 영의 복을 아담을 창조 하실 때 주실 터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복을 별로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겁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그걸 아셨습니다. 왜냐면 자기 노력 없이 대가없이 무료로 주었기 때문에 피조물의 한계성은 뭐냐면 자기 노력 없이 무료로 받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면 감사한 마음이 잠깐 있다가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주신 분에 대한 감사가 없거나 약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주신 분에 대한 그뿐 아니라 주신 분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무료선물을 주었는지를 모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주신 분의 목적에 부합된 삶을 살지 않게끔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을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신 겁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무지하게 되는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천지하신 하나님이 창세전에 미리 아셨습니다.

창조목적을 이분들이 이렇게 가볍게 여길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하나님이 창세전에 무엇을 계획하였냐면 우리가 장차 만들 피조물들을 향해서 창조목적을 한번 교육시키자 그 중요성을 교육시키자 라는 결정을 창세전에 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교육방법까지도 이분들이 이미 창세전에결정하셨습니다. 어떻게 결정하였냐면 장차 아담을 창조할 때 아담에게 육, 혼, 영의 복을 처음에 주자 그리고는 육, 혼, 영의 복을 빼앗아버리자 다시 말해서 빼앗아버리면 어떻게 되느냐면 육이 이 세상시간세계로 떨어져서 섞는 육이 되고 죽는 육이 되고 혼도 사탄의 성품 화되고 영도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 권을 상실케 되고 사탄의 자녀가 되는 그래서 이 복이 저주로 변질되는 이러한 계획을 짜셨습니다. 그래서 저주받은 아담과 그 후손들이 이 세상 시간 속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7천년 이 세상 속에 살도록 디자인 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다시피 7천년 이 세상을 창조목적훈련학교다 이렇게 디자인 하시고 학생이 누굴까요 학생은 하나님이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자녀들이 있지만 요한1서3장10절에 보면 두 종류의 자녀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탄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목적훈련학교는 학생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치면 본향인 저세상으로 귀환시키는 이 프로그램을 창세전에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소정의 공부를 마치고 저세상으로 다시 회복이 되면 창조목적의 중요성을 깨닫고 저 세상에서 어느 정도 창조목적에 부합된 삶을 살 수 있다고 디자인 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저주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학교과정을 마치고 본향인 저세상으로 자동적으로 못 갑니다

왜냐면 이 세상에서 저주를 받은 존재기 때문에 왜 못 가느냐면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인 저세상에 시민권을 따야 됩니다.

그리고 저세상으로 가는 시민권 또는 천국비자를 받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그 자녀로 예정 되었지만 천국시민권 천국비자를 이걸 받게끔 이 세상에서 디자인 한 겁니다.

그러면 천국시민권이 회복되려면 저주가 말살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육, 혼, 영의 저주가 말살 되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저주말살계획까지 디자인하신 겁니다. 창세전에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이것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주와 복 시리즈 2강에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창세전에 다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러면 저주말살계획이 도대체 무엇인가? 저주말살계획이 시리즈2강에 장차 성자하나님이 성육신하여 100% 인간이 되어서 시간세계인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저주를 대신 짊어지실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천국시민권을 회복시켜주는 디자인 이것이 창세전에 삼위하나님 회의에서 다 결정되신 겁니다. 그래서 삼위하나님 중에서 실제로 사람으로 시간 속으로 내려오시는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하나님이신 겁니다. 삼위 하나님 중에서 예수 하나님 그러니까 삼위하나님 중에서 예수하나님은 창조목적훈련을 위해서 실제로 행동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상당한 대가를 치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이분이야 말로 대단히 겸손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과 비교했을 때 이 두 하나님은 인간으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자하나님은 엄청난 희생을 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의 겸손의 특성을 잠깐 보면 삼위하나님 중에서 이분들 삼위는 서로가 동등하고 동격이시고 동위이신 이런 하나님이신데 회의에서 결정하실 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성자님이시여 내려가십시오. 그럴 때 이분이 복종을 했다고 오늘 본문에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복종했다는 말은 여기서 하나님은 엘로힘(Elohim)은 히브리말이고 헬라 말은 데오스(Theos) 하나님 하면 항상 삼위하나님을 생각하세요.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 예수님이 복종했다 그러면 누구에게 복종했다는 겁니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의 제안에 순종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두 분의 위를 성부와 성령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며 그분들의 섬겼던 본을 보여주셨던 분입니다

같은 위치에 계시면서 같은 높이를 가졌고 같은 파워를 가지신 분이신데 이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순종했던 원동력이 어디서 나올까? 제가 한번 곰곰이 묵상해봤습니다. 예수님이 순종했던 원동력이 내면적 동기가 어디서 나왔느냐면 우리 삼위하나님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창조목적을 교육을 시켜야 되는 절대성에 순종한 겁니다. 삼위하나님 서로가 토의 했잖아요. 그기에 당위성에 순종한 겁니다. 또는 그 필요성에 순종한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순종하실 때 보면 이 세상에 내려 와서도 항상 목적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표지향적인 분이십니다 왜냐면 창조목적을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되는데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직접 가르치는 일을 담당할 분이 본이라는 걸 아신 겁니다. 행동으로 보여줄 분이 본인이라는 것을 아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복종하셨다는 말에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같은 파워를 가지신 분이신데 같은 위치에 있는 분이신데 이 목적을 위해서 예수하나님이 복종하셨다

이런 모든 깊은 신학적인 깊이를 사도바울도 개종했을 때는 몰랐습니다.

대강짐작만 했지 이런 깊이를 몰랐는데 35년에 바울이 30세 되는 해에 개종하고 25년 후에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삼위하나님의 역동적관계성을 사도바울이 깨달았습니다. 언제냐면 주후60년에 빌립보서를 쓰실 때 아주 구체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그 전에도 어느 정도는 깨달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깨달은 것이 빌립보서2장 전체에서 이 깨달음을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빌립보교인들에게 성령님이 서신으로 글을 써라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쓰신 겁니다. 그래서 빌립보서2장을 우리가 잘 알지만 2장에서 빌립보교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면 빌립보교인들 서로가 열심히 예수님을 섬기지만 이런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가진 분들 또는 똑똑한 분들이 누구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있었고 또 카운슬링 하는 일도 있었고 또 누구를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그러한 모든 일들을 해왔는데 그걸 바울이 보니까 이 안에 뭐가 있느냐면 사람들의 동기가 불순한 겁니다.

어떤 측면에서 그러느냐면 내가 성경을 가르치고 내가 카운슬링 해주고 내가 이 사람을 격려해주고 하는 이런 모든 일들을 다 보니까 내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뭐냐면 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욕심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말로 허영이라는 말이 뭐냐면 빈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영광을 위하여 자기가 인정받으려고 그런 마음으로 선한 일들을 하는 것을 본 겁니다. 어떤 때는 자기 자랑하고 그러다 보니까 항상 그러면서 좋은 일들을 많이 하는데 그 속에 다툼이 있는 겁니다.

다툼은 왜 있느냐면 자기이해관계와 자기가 칭찬받는데 누가 건들면 서로 다툼이 있는 겁니다. 바울이 이런 모습을 빌립보교회 안에서 본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자기 영광을 위해서 나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거지 너희들아 너희들이 지금 선한 일들을 하고 가르치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AMI에서 누구에게 성경 가르치고 뭘 고 뭘 하고 하는 것은 다 내가 인정받고 내 만족을 위해서 할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그럴 때가 가끔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지금 ABA가르치고 또 해외 선교지에 나가지만 우리가 그런 과정들이 있습니다. 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 그런 마음을 가졌나? 안 가졌나? 를 어떻게 압니까? 다툼이 있으면 그 안에는 그게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실은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만족을 위해서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NO1크리스천이나 NO2크리스천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합니다. 그런데 NO3크리스천들은 이 과정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겁니다. 뭐냐면 내가 시간적으로 손해보고 또 금전적으로도 손해보고 이 일을 위해서 내가 밥도 사주고 비행기 값 내어서 가기도 하고 우리가 중국에 갈 때도 내 돈 들여서 가잖아요. 그러면서도 이걸 자랑하지 않고 이렇게 했다고 나팔 불고 다니지도 않고 숨어서 하는 겁니다.

왜냐면 이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이 살아나도록 하는 눈 뜨게 해주는 일,

여기에 소원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뭐냐면 빌립보서2장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인간이 되셔가지고 이런 고통을 당해셨는데 뒤에 깔려 있는 목적이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목적을 깨닫고 삼위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이러한 목적 때문에 삼위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면 우리예수님의 마음이 삼위하나님이 그 하나님의 자녀들을 더 예뻐서 해복을 주게 되어 있고 그러면 이분들이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이 행복을 느끼고는 더 삼위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러면 이 삼위하나님이 더 행복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들어 주고 그래서 영원히 사랑을 오가는 행복을 서로 나누는 이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저주를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사람들이 되도록 이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저주를 받으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신 게 아니고 누구 이익을 위해서했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익을 위해서 또 삼위하나님의 이익을 위해서 이렇게 희생을 하셨다는 것을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애들아! 너희들 지금 열심히 하지만 너희들이 지금 이런 것 저런 것 많이 열심히 하지만 속에 깔려 있는 것은 너 욕심 너 이익을 위해서 네가 인정받기 위해서 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너희들 그러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 이렇게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 많습니까? 안 많습니까? 이런 사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음을 품어라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신데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 이런 말을 썼는데 제가 이럴 때는 원어를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근본이라는 단어가 휘파르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사전 여기저기에 보면 근본은 그러니까 이 예수님은 30세 되신 인간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원어로 데오스(Theos) 그리고 히브리말로 엘로힘(Elohim) 그러니까 이게 삼위하나님입니다 한국말로 하나님하면 항상 삼위하나님입니다

삼위하나님의 본체라니까 예수님이 삼위 중에 한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삼위하나님 중에 한분이신 본체라는 겁니다.

본체라는 뜻이 모르페(morfhv)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분은 100% 하나님이시고 또 100% 사람이시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공의회에서 이것이 결정되었습니까? 451년에 칼케톤 공의회에서 이것이 결정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예수님이 빌립보교인들아 이분이 이런 분이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엘로힘(Elohim)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30세 되신 이분이 창조주하나님이시다 삼위하나님 중에 한위로 그 본체시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마다 번역을 묘하게 해놓았습니다

재가 볼 때 사탄이 여기를 공격한 것 같습니다 6절에 동등 됨으로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라는 말을 써놓았습니다. 또 킹 제임스를 봐도 동등하게 되는 것을 탈취 생각하지 않으시고 하면서 아주 예매한 말을 써놓았습니다. 이걸 제가 정돈을 해드리겠습니다 여기에 동등 됨을 탈취 당했다고 생각하지 아니하셨다 이게 정 해석입니다 탈취라는 단어가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보면 하르파그모스(harpagmo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어느 단어와 연계되어 있느냐면 우리가 휴거라는 단어를 씁니다.

휴거라는 말 자체는 없지만 우리가 끌려올라간다 잡아채다 강탈하다 이런 뜻이 휴거라고 한국말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휴거를 하르파조(Harpajo)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유명한 단어입니다 하르파조(Harpajo)하면 휴거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끌러서 갈취당해서 올라간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휴거 당한다는 말이 이 단어와 같은 어원인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잡혀가지고 갈취당해가지고 약탈당해가지고 없어진다는 말인데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창조주하나님이신데 100%하나님이신데 100%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지금 받은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이 100%하나님의 신성을 탈취 당했다고 생각하지 아니 하셨다는 그런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나 억울해 나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과 같았는데 내가 이 일 때문에 아예 그것을 빼앗겨버렸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금 힘없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이 되셔도 제일 낮은 계급에 목수의 가정에서 육신의 아버지도 목수였고 자기도 목수였고 그러면서 30년 동안 숨어서 그냥 삶을 창조주가 조그만 마을에서 그렇게 사셨는데 사람들이 볼 때나 또는 예수님 자신도 내가 이 신권을 내가 탈취 당했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이 지금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빌립보교인들에게 이분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7절에 그랬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다. 비우다가 헬라어로 케노오(kenovw)입니다 그런데 케노오(kenovw)앞에 쓰 있는 원어가 있습니다. 그 원어가 헤아우트(jeJautou)라는 원어로 헤아우트 케노우(jeJautou kenovw)이렇게 쓰 있습니다. 그래서 헤아우트(jeJautou)라는 말이 뭐냐면 그 자신이 스스로 신성을 비우셨다는 겁니다. 누가 비우라 그래서 비운 것이 아니고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신성을 비우셔가지고 종의 형체를 가졌다 똑같이 둘로스(Doulos)라는 종입니다 종의 형체(모르페, morpho)이게 본체라는 뜻입니다

이분이 인간이 되셔가지고 스스로 신성을 다 버리시고는 100% 인간이 되셨는데 인간 수준이 아니고 인간에서도 더 낮은 종의 본체가 되어가지고 완전히 사람이 되었는데 종의 본체가 되어 가지고 33년 사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보다 더 하층계급인 종의 본체(모르페,morpho)가 되어서 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나중에는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겁니다.

복종은 누구에게 복종했습니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께 죽기까지 죽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저주를 받으시기까지 신명기21장23절에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저주를 받음이라 그랬습니다. 이런 말씀을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예수님의정체성을 깨닫고는 말씀하시는 겁니다. 빌립보교인들아 우리 예수님의 마음을 너희들이 가져라 그러니까 이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이렇게 스스로를 비우셨단다. 똑같이 우리도 중국선교나 NK선교나 또 ABA에서 가르치거나 할 때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내가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 내 만족을 위해서 이런 마음을 가지면 이것은 NO1, NO2크리스천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우리가 보겠지만 저 나라에 올라가면 상급이 없습니다. 높은 계급에 올라앉지를 못합니다. 왜냐면 내 영광을 위해서 내 욕심을 위해서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사들, 신부들, 교계에서 소위 성직자라는 사람들을 여러분들이 볼줄 알아야 됩니다. 아하! 저사람 자기영광을 위해서 사는구나.

그걸 보는 시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저를 딱 보면서 우리목사님이 자기영광을 위해서 하는가? 아닌가를 점검을 하셔야 됩니다.

저는 주님! 내가 내 영광을 위해서 하지 않도록 저를 붙잡아 주세요 저를 붙잡아 주세요 저는 이 기도를 계속하면서 여러분들을 섬겨야 됩니다.

왜냐면 이게 지혜 있는 자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려면 왜냐면 예수님이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과 땅 밑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며 예수님을 그냥 경배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중에 저 나라에 올라가셨잖아요. 그때 피조물들이 예수님을 높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저 나라에 올라가서 높임 받으려면 예수님의 삶의 스타일을 그대로 닮아야 되는 겁니다. 그것을 우선 저부터 닮아야 되는 겁니다.

제가 이 원칙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닮아가려고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이게 은혜가 임해야 되는 겁니다. 이게 노력해서 안 됩니다. 노력해서 되면 더 교만해집니다. 스스로 이런 사람이 되도록 성령님이 이끄시고 스스로 이런 사람이 자연적으로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도 노력하신 게 아닙니다.

성령님이 도우셨습니다. 그러니까 빌립보서2장에 보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았던 분들의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의 마음을 내가 원치도 않았는데 이렇게 닮아간다고 자기 자신을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뭐냐면 너희들 디모데를 봐라 디모데도 자기유익을 위해서 하지 않는다. 자기 영광을 위해서 하지 않는다.

너희들을 위해서 한단다. 너희들이 살아나기 위해서 그러면서 너희들 교회에 담임목사였던 에바브로디도를 봐라 그분도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야 너희들을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이렇게 목숨까지 바치면서 너희들이 각출한 헌금을 들고 내가 감옥에 있는 로마까지 오다가 쓰려졌단다.

그러니까 에바브로디도도 디모데도 바울자신도 자기네가 노력해서 이런 사람이 된 게 아니고 이게 은혜가 임하니까 그 은혜가 원동력이 되어 가지고 이런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이 자기가 되었을 때도 이것은 내 실력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일을 가만히 보면 이게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잘못해서 실수해서 약점이 있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겁니까? 이것도 아닙니다. 우리 찬송가 중에 보면 이런 식으로 찬송가가 있는 게 많습니다. 이분이 무슨 죄가 있느냐 못 된 놈들이 왜 예수님을 죽였나?

이런 찬송가들은 잘못된 겁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 겁니다.

로마황제나 유대인지도자들이나 이런 분들이 강제로 예수님을 강압적으로 불공정하게 정치적인 어떤 이념 때문에 종교적인 이념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많은 자유 신학자들이나 이런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그 수준만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말하면 만약에 예수님이 운이 좋았더라면 십자가에 달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까지도 요즘 이단이라고 하는 문선명이나 또는 신천지 이런 친구들은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실패하셨다 그래서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서 문선명이 새로 나타났다 또는 이만희가 새로 나타났다는 그기에 속여가지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기에 왜 갑니까? 이런 걸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교인들을 훈련시키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그렇다면 교인들 훈련 안 시키는 것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은혜가 없어서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셔야만 하는가? 이렇게 거꾸로 질문을 해보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됩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하나님자녀들을 향한 저주 말살프로그램을 충족시켜드려야 하는 사명을 예수님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2장7절, 로마서16장25절26절, 디모데후서1장9절, 베드로전서1장19절20절 이게 다 창세전에 예수님의 십자가계획을 디자인하셨다는 성경구절들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신비(mysteries of christ)라 그랬습니다.

창세전에 예수님이 성자하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이 훈련을 시킨 후에 시민권을 회복시켜주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런 디자인을 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시므로 해택을 본 영향을 받은 몇 분들이 계십니다. 첫 번째로 누가 받았냐면 성부와 성령하나님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떤 영향을 받았냐면 이분들이 예수님 때문에 피조물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목적에 순응하게 되어서 만족하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분의 하나님이 예수님께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삼위하나님이 결정한 사항을 예수하나님이 복종해준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성부와 성령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고맙습니다. 하는 느낌을 영원히 가지면서 삼위하나님이 공전하신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영향을 받은 두 번째 분들이 있습니다.

두 번째 분들은 하나님자녀들입니다 하나님자녀들이 예수님의 저주 때문에 영향을 받고 해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자녀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창조목적훈련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사탄의 여러 가지의 공격을 받으면서 그러면서 이분들은 천국시민권까지 박탈당했는데 그 결과 본향을 귀향할 소망까지 상실했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다시 말하면 육, 혼, 영이 죽은 자로 있었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저주아래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런데 예수님의 저주로 인해서 이분들이 육, 혼, 영의 회복을 받는 해택을 입게 되고 천국시민권을 회복하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여권과 비자를 발권 받음으로 복된 자로 복귀되는 그러한 해택을 예수님의 저주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그러면 세 번째 해택을 받은 분이 누군가?

예수님 자신인 겁니다. 예수님 자신이 해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빌립보서2장9절부터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분이 이런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였다 그랬습니다.

그분들도 만족케 하셨으니까 그리고는 예수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였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 속에는 능력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 있는 자들이나 피조물들 전부가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과 피조물들이 성부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성령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하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했다는 겁니다. 엄청난 희생의 대가입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은 다음에 어떻게 했냐면 그들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보고 뭐라고 그랬냐면 나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My Lord 나의 주님이라고 신약에서는 나옵니다. 이 Lord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이 Lord가 처음으로 구약에서 시작할 때 예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야훼 창세기2장4절에 야훼 엘로힘(Yahweh Elohim)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주욱 공부했잖아요. 구약에서는 야훼 엘로힘(Yahweh Elohim)

야훼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계약하시는 분 그런 뜻입니다. covenant God

법적계약을 하시는 하나님 그런 뜻이 야훼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계약합니까? 인간으로 내려와서 피 흘려서 저주받으실 것을 약속하신 그러한 하나님이라는 뜻이 야훼입니다 그 야훼라는 이름을 구약 때는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끔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렇게 함부로 부르지 못하고 야훼라는 이름이 나오면 고개 속이고 절하다가 발음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구약에서 뭐라고 바꾸었습니까? 아도나이(Adonai) 이 말이 뭐냐면 영어로 전능자(almighty God)그런 뜻입니다. 이게 예수님입니다

야훼 올마이티 갓(Yahweh almighty God)야훼 아도나이(Yahweh Adonai)

그러다가 주전 약200년 때 이야기입니다 그럴 때 구약에서 나오는 아도나이 예훼(Adonai 로드(주, Lord))를 헬라어로 뭐라고 불렸습니까?

꾸리오스(Kurios)라고 이게 헬라어입니다. 꾸리오스(Kurios)가 뭐냐면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로드(주, Lord) 또는 마스터(Master)노예제도에서 노예 주인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항상 앞에 정관사 더(the)가 붙고 로드(주, Lord)에 대문자 L입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이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님을 뭐라고 부른 다는 겁니까? 야훼(Yahweh)할 때 그 뜻이 뭐냐면 구원자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을 시켜주기 위해서 피를 흘리신 자입니다 야훼(Yahweh)라는 뜻이 구원자를 피 흘린 것을 계약하신 자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조물들이 아하! 이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분이 나 때문에 나를 창조목적훈련 시키시려고 이렇게 피를 흘렸구나.

그래서 우리의 주인이시구나. 나의 삶에 주인이시구나. 이 피조물들이 성부하나님께도 안하고 성령하나님께도 안하고 누구에게 한다는 겁니까?

예수님께 이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저 세상에 올라가면 예수님께 우리가 이렇게 하면서 예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우리피조물들을 보면 예수님이 행복해지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행복하면 성부하나님도 행복하시고 왜냐면 이분들 사이는 질투가 없으신 분입니다 서로 존경하는 우리는 고작해야 예수하나님과 상대하면서 이분을 행복하게 해주면 자동적으로 성부하나님도 행복하시고 성령하나님도 행복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성부하나님을 무시하고 성령하나님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시면서 우리마음속 깊이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을 동시에 같이 보면서 예수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하고 그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저주사건 때문에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예수님께 엄청난 해택을 많이 주었습니다. 지금 구원 주라는 그러한 타이틀을 예수님께 드리시고 하늘과 땅의 통치자 권을 주셨습니다.

시편67편4절, 마태복음28장18절에 또는 하늘과 땅의 소유권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창세기14장19절 또는 22절에 그뿐 아니라 만물이 예수님의 발아래 있으면서 예수님이 만물의 머리되는 분으로 허락하셨습니다.

에베소서1장22절에 그리고는 만물이 예수님께 복종했습니다. 고린도전서15장27절에 그러니까 성부하나님께 성령하나님께 복종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께 복종했습니다. 예수님께 복종하면 복종하도록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그렇게 허락하신 겁니다. 그러면 예수하나님이 복종을 받으시면 그분이 행복하시면 나머지 두 하나님은 자연이 행복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님을 왕 중의 왕이다 만유의 주시다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을 디모데전서6장15절에 이뿐 아니라 7천년 창조목적훈련학교가 끝날 때 심판이 있을 텐데 심판의 심판주가 누굽니까? 최고심판주가 예수님인 겁니다. 성부하나님도 아니고 성령하나님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심판주인 겁니다. 요한복음5장27절에 예수님의 저주 때문에 해택 받은 세 분이 성부와 성령하나님 두 번째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 세 번째는 예수님 그러니까 알고 보면 이 예수님이 해택을 제일 많이 받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해택을 받으실 것을 미리 아셨습니까? 몰랐습니까? 이 결론의 말씀을 드리려고 제가 여기 까지 왔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가지고 이 저주를 받으실 때 만유의 주가 되시는 인간으로 오셔 가지고 저주를 받으실 때 과정을 보면 우리도 견디지 못하는 과정을 이분이 겪었잖아요. 수치를 당하시고 모욕을 당하시고 아픔을 당하시면서 이분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어디서 나올 까? 한번 우리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하나님이 창세전에 이걸 다 디자인하신 하나님이 실제로 인간이 되셔가지고 수치를 당하실 때 처음에는 잘 이기지 못해가지고 겟세마네동산에서 예수님이 갈등하면서기도하는 모습을 봤잖아요. 그러면서도 이분이 이것을 견딘 모습을 보면

히브리서12장2절에 이렇게 히브리기자가 표현을 했습니다.

뭐라고 그러느냐면 예수님이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 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오른 편에 앉으시니라

이 말씀이 소화가 됩니까? 예수님이 믿음의 창시자라는 겁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히브리서11장은 믿음장입니다 히브리서11장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7천년 이세상은 내가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 세상이다 이것을 항상 깨닫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창조목적훈련학교다

내 고향이 아니다 두 번째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 고향은 저 위다 저세상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뭐냐면 히브리서11장6절에 그랬습니다. 저세상에 올라가면 계층사회다 여기에서 어떻게 산 것 만큼 상급이 주어진다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100%인간이 되셔가지고 이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는 겁니다. 인간으로서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깐 이 목적을 가지고 온 나그네다 목적이 분명한 겁니다. 나는 때가 되면 저 위로 올라간다. 고향으로 간다. 그다음에 그기에 올라가서 예수님도 상급을 엄청나게 받는 겁니다. 이 예수님이 저기 올라가면 이제 엄청난 상급이 본인에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예수님께 이 권한을 이 상급을 다 드린 겁니다.

이 상급을 이것을 예수님이 쫘악 본 겁니다. 그러니까 자가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을 견디시고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도 인간으로 오셔서 예수님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이런 비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막연한 비전이 아닙니다. 저세상 시각 자 예수님이십니다. 이 세상 나그네 시각 자 예수님이십니다. 저세상 본향 시각 자 예수님이십니다. 저세상에 올라가면 상급과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 세상에 살았는가에 따라서 지급을 받는 그 시각을 가졌던 예수님이십니다.

본인도 사람으로 오셔가지고 여기에 대한 이 비전을 가졌던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즐거움을 위해서 이분이 견디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이 세상은 창조목적학교라는 시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각을 예수님이 가졌는데 바울도 예수님의 은혜로 이 시각을 가졌던 겁니다. 바울도 디모데도 이 시각을 가졌던 겁니다. 에바브로디도도 이 시각을 가졌던 겁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자 이 마음은 뭐냐면 예수님의 이 시각을 품자 이런 것입니다 이 시각을 품은 사람은 아까 우리 빌립보교인들 봤죠.

자기 영광을 위해서 우리 ABA공부에 참석하거나 가르치거나 선교지에 다니거나 이것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시각에 업그레이드되어 가지고 주님을 섬긴다는 겁니다. 우리교회 교인들 보면 그의 대부분이 이 시각 자로 주님이 만드셨습니다. 은혜로 그러니까 제가 목회자로서 세상에 이렇게 편하게 목회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한 사람도 불평하고 교회 안에서 서로 싸움하고 목회라는 게 교인들끼리 서로 싸움질하는 것을 말리는 게 목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저 몰래 하겠지만 그렇게 심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서는 서로 다툼이 있으면 안 됩니다

질투심이 있으면 안 됩니다. 질투심이 있으면 내 상급이 떨어집니다.

질투심이 있으면 바보입니다 실컷 주님의 일을 해놓고 나중에 올라가보면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으면 우리의 삶의 초점이 뚜렷해지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위해서 항상 예수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가 계속 묵상하는 겁니다.

왜 묵상하겠습니까?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걸 내가 묵상하지 않으면 나도 하루아침에 딴 사람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끊임없이 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겁니다. 목사님 은 괜찮을 겁니다. 웃기지 마세요. 나도 이걸 목상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이 모습을 묵상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저도 딴 사람이 됩니다. 자꾸 딴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제 주변에 사람들 중에서 질투심이 있고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안 보일 때는 제가 그럽니다. 아하! 묵상 안 해서 그렇구나. 주님 묵상 하도록 인도해주세요 묵상 안 해서 그렇구나.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저주받으심과 이분이 높임을 받으심을 믿음의 모델 되시는 예수님 우리가 이 예수님의 이 모델 속에 우리가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원히 자랑거리가 되는 겁니다. 이 모델을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으면 그리고 우리 주변에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하! 주님 우리공동체 안에는 모든 분들이 다 이 모델 속에 들어가도록 그래서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도 제가 이런 찬송들을 성령님이 주십니다. 아름다움 마음이 모인 공동체가 되도록 우리의 만남이 복 된 만남이 되도록 은총 받은 공동체가 되도록 우리의 입술에 모든 말과 나의 마음에 묵상이 다 주께 열람이 되도록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인생여정이 끝나면 주님께 가서 칭찬받을 일만 믿으며 고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분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우리 모두가 이런 복된 자들이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지금 이시간은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끊임없이 가르쳐주심이 순종케 하심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저주 받으심으로 높임 받으신 예수님(빌2:1-11)

1. 삼위하나님의 7가지 정체성 중 크리스천 성화에 도움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어떻게 우리의 성화에 도움이 됩니까?

2. 창세전 삼위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런데 무슨 문제가 이분들에게 있었습니까?

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위하나님이 무엇을 계획하셨습니까?

4. 저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본 고향으로 갈 수 있습니까? 아니라면 무슨 이유로?

5. 창세전 삼위하나님의 저주말살계획이 무엇입니까? 이 계획을 직접 행동화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이분의 겸손의 특성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습니까?

6. 빌립보서2:5-11에 나타난 예수님의정체성에 대해 논의합시다.

7. 왜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셔야 했습니까?

8. 예수님이 저주 받으심으로 세 부분에서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1)삼위하나님 (2) 하나님의 자녀들 (3)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9.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명령한 도전이 무엇입니까? (빌2:1-5)

10. 빌립보서2장 전체의 주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2장에 기록된 부요 인사 네 분이 누구입니까? 이들의 삶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천국에서 높임을 받는 이런 복된 자가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삶을 사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