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와 복 시리즈 7강. 삼위하나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창1:1)
저주와 복 시리즈 일곱 번째 말씀입니다. 삼위하나님의 전체성은 무엇인가?
본문은 창세기1장1절에 하나님이 엘로힘(Elohim)하나님이 삼위하나님이심을 엘로힘(Elohim)이라는 이름 속에서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여러 성서구절에서 우리들 이라는 말씀을 다 공부했습니다.
또 우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28장19절에서도 삼위하나님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이름과 아들의 이름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이렇게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삼위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지금 일곱 번째로 상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부터 오늘 일곱 번째 까지는 삼위하나님이 창세전에 계셨다는 주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우리가 지금 삼위하나님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지난 여섯 번 동안 어떤 부분에서 삼위하나님을 조명했는가?
특히 시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창세전에 계셨던 삼위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조명했느냐 첫 번째는 저주받으시고 복 주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부활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때 창세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이미 예정하셨다는 말씀과 같이 이분이 십자가에 달리신다는 것은 저주를 받으시는 거다
신명기21장23절에 모세가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저주의 반대말은 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을 받을 거라는 주제로 말씀을 했습니다.
두 번째 시리즈는 창세전십자가를 예정하신 천국신비에 대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창세전에 십자가를 예정하셨는데 바울이 표현하기를 이것은 천국의 신비라는 주제로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세 번째는 창세전에 예수님만 아니고 삼위하나님이 존재하셨다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네 번째로는 창세전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삼위로 존재하고 계셨다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이런 삼위하나님에 대한 신학적인학문이 삼위일체론이라 그러는데 삼위일체론이 창세전에 공격을 받아서 누룩이 들어갈 거다 다시 말하면 왜 창세전에 삼위일체론에 누룩을 넣도록 예정하셨나? 라는 제목으로 장시간 이야기했습니다. 기억들 나십니까?
이렇게 리뷰하니까 도움이 됩니까? 여러분들이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리뷰하셔야 됩니다. 여섯 번째로 창세전에 디자인하신 누룩에 교회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을 한번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여섯 개의 핵심주제는 무엇일까? 라고 우리가 물어본다면 창세전에 예수님을 통해서 장차 창조하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 세상으로 던져서 창조목적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핵심주제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저주를 받을 텐데 예수님이 내려가셔서 본인이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그 저주를 없애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복을 내리시겠다는 프로그램입니다 창세전에 이런 프로그램을 가지고 우리가 여섯 번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을 몇 가지 던져보면 도대체 이 세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보세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공부했습니까? 이 세상은 창조목적훈련학교다 이렇게 우리가 정의를 내려 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공부를 했느냐면 학교시스템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학교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 교장선생님이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이고 교감선생님은 사탄이고 그러면서 우리가 주욱 공부했습니다.
도대체 거기에 학생은 누구냐 학생이 누굽니까? 인간들이 많지만 모든 인간들이 아닙니다. 학생은 누굽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학생들입니다 잠깐 이 세상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는 때가 되면 학교를 졸업합니다. 졸업하는 것을 우리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에 세상에서 죽는 겁니다. 그러니까 학교가 짧은 학교입니다 7천년 이 세상이지만 우리가 다니는 우리학교는 아주 짧습니다. 길어야70-80년 90년100년 그래서 베드로가 우리보고 뭐라고 그랬느냐면 자신보고 또 자신의 제자보고 뭐라고 그랬냐면 베드로전서2장11절에 베드로가 이런 말을 썼습니다. 우리는 타국인이다
외국 사람들이다 그리고 순례자다 순례자라는 것은 잠깐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뚜렷해야 됩니다. 똑같이 우리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11장에 히브리기자도 똑같이 그랬습니다. 히브리서11장13절에 우리는 이 세상에 타국사람이고 외국 사람이고 잠깐 지나가는 순례자다 그랬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 되시는 야고보는 더 심한 표현을 썼습니다. 야고보서4장14절에 그랬습니다.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다 그랬습니다. 이 말만 들으면 이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단히 기분 나쁜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저도 항상 이 표현들을 가지고 항상 묵상을 합니다. 예수님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야고보도 그랬습니다. 저도 이 세상에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이 개념이 안 서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1세기 때도 그랬고 2세기 때도 그랬고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이 사상을 가졌던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그러면 나그네다 우리가 외국인이다 그러면 우리고향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면 내 본향은 도대체 어딘가? 라는 질문을 안 던질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히브리서에는 그랬습니다. 히브리서11장16절에 뭐라고 그랬냐면 우리고향은 저3층천 저 하늘이다 그랬습니다.
3층천을 성서에서는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합니다. 제가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하늘 중에 하늘이다 이런 표현을 합니다. 신명기10장14절에 또는 시편148편4절에 그랬습니다. 또는 보좌가 있는 곳이다 시편11편34절에 또는 여호와의 거룩한 하늘이다 시편20편6절에 이것을 3층천이다 그랬습니다.
성서에 보면 2층천도 있고 1층천도 있잖아요. 2층천을 성서에서는 뭐라고 표현하느냐면 창세기1장14절15절에서나 시편19편1절에서 보면 스카이(Sky) 공중이라고 2층천을 성서에서 표현할 때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또는 1층천을 어떻게 표현했느냐면 1층천은 대기권입니다 시편73편25절 또는 시편78편23절에서26절 이런데 보면 1층천을 표현한 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죽으면 무슨 층으로 갑니까? 3층천으로 간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하늘 중에 하늘로 여호와의 거룩한 하늘로 죽으면 거기로 가는데 그것을 바울은 또 어떻게 표현을 했습니까?
낙원이다 그랬습니다. 원어로는 파라데이소스(paravdeiso") 이렇게 헬라 말로 써놓았습니다. 그걸 영어권 사람들은 파라다이스(Paradise)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헬라어와 소련 말이 비슷하기 때문에 소련사람들도 파라다이스(Paradise)이렇게 말합니다. 파라다이스(Paradise)한국말로는 낙원이다 그랬습니다. 성경에는 낙원이라는 표현을 최소한 세 군데에서 했습니다.
이걸 우리가 다 기억하셔야 됩니다. 누가복음23장43절에서 이 말은 예수님이 옆에 있는 강도보고 너 오늘 나와 같이 오늘 어디에 있을 것이다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12장4절에 바울이 여기를 방문했습니다. 3층천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다음에 계시록2장7절에 낙원에 관한 이야기를 서머나 교회에 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귀환하는 낙원 또는 본향에서 우리가 올라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장차 우리가 올라갈 본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러면 거기에 올라가면 상급수여식을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올라가면 우리의 영적위치 영적등급에 따라서 천사들을 시켜서 예수님이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을 지정을 해주는데 그것을 히브리서11장6절에 표현을 했습니다.
히브리서11장은 믿음장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라는 단어는 로마서12장3절에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믿음이 있는데 사람마다분량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나의 위치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나의 위치가 히브리서11장에는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인가? 히브리서11장에서 말하는 믿음은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세상을 보는 세계관에다가 초점을 두고 믿음에 정의를 내렸습니다. 히브리서11장에서는 어떤 세계관을 가졌냐면 11장의 믿음의 소유자들은 첫째 이런 믿음을 가졌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은 내 고향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히브리서11장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상급이 높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어떤 믿음이냐면 나는 타국인이다 순례자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다 나는 창조목적을 배우기 위해서 던져진 학생이다
그리고는 졸업하면 이 세상을 떠난다. 어디로 떠나느냐 저세상 본향으로 간다. 이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이분들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라 그랬습니다.
여기 앉아계시는 분들 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눈을 뜨고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 모르는 사람과 똑같은 행동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복 있는 사람은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인데 히브리서11장6절에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상급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급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같은 이런 믿음이 있지만 분량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분량이 상당히 커야겠습니까? 적어야겠습니까?
우리가 이 믿음의 분량을 크게 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저주와 복 시리즈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분량이라는 말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믿음의 깊이 지금 이 세상 저세상을 보는 깊이 또는 넓이 또는 높이 또는 길이 이 네 가지를 항상 이야기합니다. 길이, 넓이, 깊이, 높이 이런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이것이 크면 클수록 믿음의 분량이 크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 다니면서 똑같이 이 시리즈를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 배웠잖아요. 이것을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믿음의 크기가 얼마나 클지는 스스로가 알게 됩니다.
스스로가 집에 가서 복습하시고 열심히 하시고 외우시고 하셔야지 그걸 안하면 자기도 모르게 언젠가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텐데 믿음의 크기가 적어니까 상급수여식을 하는데 가보니까 내 친구는 저 높은 데 있는데 나는 이 밑에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NO1부터NO6을 우리가 열심히 듣고 적고 공부하잖아요. 공부하고 메모리하고 그다음에 묵상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이것을 묵상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생각만 해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묵상입니다
그래서 묵상을 하다보면 삶에 적용이 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러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믿음의 크기가 점점 크지는 겁니다. 믿음의 크기가 커진다는 말은 뭐냐면 세계관이 날로, 날로 변화되는 겁니다. 세계관이 이 세상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의 믿음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지만 지금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은 내가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그것을 세계관의 변화가 올 때 쓰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는 저 세상으로 가야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이 믿음을 가지려면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우리가 섬기는 삼위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철저하게 알아야 되는 겁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보니까 삼위하나님이 창세전에도 존재하고 계셨다는 것을 그리고 이분이 창세전에 무슨 일 무슨 일을 예정하셨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삼위하나님을 우리가 알아야지만 나의 세계관이 정립이 되는 겁니다. 우리자녀들도 육신의 자녀들도 부모님이 누군가를 알아야지만 부모님을 제대로 섬기고 부모님과 제대로 된 서로 관계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부모님을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아버지에 대해서 알아야 되는 겁니다. 영적아버지에 대해서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철저하게 아셔야 됩니다. 아버지를 아시려면 우리기독교의 아버지는 삼위일체의 아버지십니다 아버지가 계시고 성자님도 계시고 성령님도 계시기 때문에 삼위일체론을 철저하게 알아야 되는 겁니다. 이걸 알면 알수록 나의 믿음의 크기가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는 겁니다.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이 부분이 굉장히 약한 겁니다.
자식이 자기 아버지 엄마가 누군지 모르고 그냥 같이 사는 겁니다.
밀양 박 씨인지 무슨 김 씨인지도 모르고 우리아빠가 몇 살인지도 모르고 우리아빠가 무슨 직장에 다니는지도 모르고 그냥 밥만 같이 먹고는 그걸로 끝납니다. 우리아빠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아빠 성격도 모르고 이게 예화가 됩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우리하나님의정체성이 무엇인가 대해서 공부를 하고 싶은 겁니다. 나의 세계관이 정립이 되려면 그래서 삼위하나님의정체성 또는 삼위하나님의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성적인 측면에서 한번 간단히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굉장히 깊은 학문이지만 제가 간단하게 그런데 간단하게 하다가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삼위하나님의 속성을 몇 가지는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곱 가지 속성으로 봤습니다. 첫 번째는 존재론적 속성입니다
우리가 이것은 여자의 후손 책에도 나오지만 제가 그기에 살을 조금 더 부쳤습니다. 존재론적 속성에서 첫 번째 이분은 삼위이신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는 자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계신 분이십니다 누가 지음을 받은 분이 아닙니다. 이분은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세 번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네 번째는 불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섯 번째는 상호내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헬라말로 페리코레시스(pericboresis)이 말이 뭐냐면 같이 공존하시면서 상호내주하시는 분으로 이렇게 존재론적 속성이 다섯 가지가 있고 두 번째 속성은 호칭 적 속성이라 제가 이렇게 만들어봤습니다. 명칭을 첫 번째는 성부하나님 두 번째는 성자하나님 세 번째는 성령하나님으로 호칭을 이렇게 이분들을 부릅니다. 세 번째로는 사역 론 적 속성입니다 첫 번째로 이분은 창조주하나님이시고 두 번째는 전지자하나님이시고 세 번째는 전능자하나님이시고 네 번째는 무소부재자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것들을 제가 불려드리면 노트정리 하시고는 매일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조금 있으면 제가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네 번째는 성품론적 속성입니다 삼위하나님의 성품론적 속성입니다
첫 번째는 사랑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할 때 요한1서4장16절은 꼭 기억해두세요 요한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세 번째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네 번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은혜로우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성품적 속성입니다 다섯 번째는 교제론적 속성이 있습니다.
삼위께서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중에 하나가 상호교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분이 그것을 코이노니아(Koinonia)라는 단어를 씁니다. 영어로는 펠로우십(fellowship) 상호섬기는 하나님입니다 삼위하나님이 서로가 섬기십니다. 디아코니아(diakonia)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런 속성을 가지고 계시고 여섯 번째의 속성은 뭐냐면 관계론적 속성입니다 삼위하나님께서 그 중에 첫 번째가 뭐냐면 상호동등하신 하나님입니다 높이도 같고 파워도 같고 질도 같고 계급도 같고 삼위하나님이 상호동등하십니다 두 번째로는 동등하시면서 상호협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 번째로는 상호존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네 번째로는 상호증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서로 증거를 해줍니다.
저분이 어떤 분이다 저분이 어떤 분이다 다섯 번째로는 상호 높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속성들을 이분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의 속성은 기능론적 속성입니다 첫 번째 상호 독립적 기능을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는 상호 전문적 기능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삼위하나님이 독립성을 가지고 전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걸 제가 예화를 들 테니까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이야기들이 전개되니까 잘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기능적으로 성부하나님의 기능이 있습니다. 삼위공동체 안에서 성부하나님의 기능이 뭐냐면 삼위공동체는 항상 삼위께서 서로가 논의하시는 회의하는 삼위하나님 중에서 성부하나님은 대표자역할을 하십니다.
동등하시면서도 대표자역할을 하시면서 어떤 결정이 나시면 이분이 결정된 것을 공표를 하시는 그래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이분을 지칭해서 아버지라 이렇게 아마 정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피조물들의 가족 공동체에서 대표성을 가진 분이 아버지 아닙니까? 우두머리라는 그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표면상은 우두머리지만 내용적으로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묘한 관계가 있는 겁니다. 결정권자 같지만 꼭 상호회의를 해서 동등한 권한을 가진 아들과 성령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분이 성부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성자하나님은 결정된 부분을 실제로 수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순종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는 피조물들을 직접 관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모든 역사를 운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현실 속에 들어와서 직접 우리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이 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하나님 그리고 성령하나님이 계신데 성령하나님은 이분의 기능은 능력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이다 예수하나님이 수행하는 일 순종하는 일 관리하는 일 운영하는 일을 할 때마다 예수하나님이 나중에 인간이 되셔가지고 모든 하나님의 신성을 비우셨을 때 특히 빌립보서2장7절에 보면 완전100%인간이 되었을 때 이분에게 능력을 부여해주시는 하나님이 누굽니까?
성령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하나님을 예수님이 또 무엇이라고 부르냐면 돕는 자 그래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요한복음14장16절에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는 말은 영어성경에는 헬퍼(helper)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또는 어떤 영어성경에는 이것을 카운슬러(Counselor) 또는 어떤 영어성경에는 컴퓨터(Comforter)위로해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성령하나님은 이런 기능들을 하는 겁니다. 돕는데 구체적으로 위로도 해주시고 또는 카운슬링도 해주시고 능력도 베풀어 주시고 그래서 예수님이 사도행전1장8절에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성령하나님을 받으면 하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하나님이 우리에게 강하게 임하시면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강하게 임하면 우리가 능력을 받아가지고 예수그리스도의정체성을 외치는 자가 된다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누군가를 외치는 자가 된다는 겁니다. 그냥 우리가 복음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예수님이 누군지를 외치는 자 예수가 누군지를 외치려면 예수님만 알아가지고 됩니까? 안 됩니까? 아닙니다. 삼위하나님을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속성들 중에 대표적인 속성들을 가지고 잠깐 우리가 복습을 해보려고 그럽니다. 그중에 뭐냐면 삼위하나님의 속성 중에 상호동등하신 속성 이 부분을 우리가 조금 공부하려고 그럽니다. 첫 번째 성부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성자하나님과 동등하다 같은 높이에 있다는 말씀을 직접 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특히 이 말을 잘 들으세요. 내가 성자하나님과 동등하다 같은 높이에 있다는 말씀을 직접 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성부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시고 성자하나님은 안 계신 걸로 또 성령하나님은 하늘에 그냥 계시는 성부하나님의 하나의 부속적인 역할을 하는 분으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의 신론은 성부하나님만 유일한 하나님으로 보는 신론이 유대교의 신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유대인들은 성부하나님에 초점을 맞추고 이 하나님이 유일한 신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들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항상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고 세례요한도 그런 사상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분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갑자기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는데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셔가지고 나에게 세례를 베풀어주세요. 라고 부탁하는 장면 우리 알잖아요. 그럴 때 하늘에서 성부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겁니다. 성부하나님이라고 아마 그 음성에서 말씀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그것을 알고 성부하나님이 나에게 지금 음성을 들려주는구나. 그래서 아주 거룩하게 두려운 마음으로 성부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뭐라고 그러느냐면 애야! 네가 지금 세례를 주는 30세 된 이 사람은 나의 아들이다 이런 말을 하시는 겁니다. 나의 아들이다 그러면 우리가 공부했지만 그 아들이 헬라말로 휴이오스((HUIOS)인데 그것이 대문자 H입니다
대문자 H가 들어가면 무슨 뜻이냐면 이꼬르(equal)라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보면 원어 그렇고 대문자로 써놓았습니다. 그리고 거기다가 더(The)를 붙여 놓았습니다. 이 말이 뭐냐면 네가 지금 세례를 주는 30세 된 이분이 나와 같은 수준의 하나님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거기서 깜짝 놀라는 겁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상호 동등한 것을 누가 증명을 합니까? 성부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지금 증명하는 겁니다. 이 30세 된 청년이 나와 동등한 분이다 마태복음3장7절에 그뿐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의 고백에서도 마태복음16장16절17절에 가이사랴 빌립보에 있을 때 예수님이 물어보잖아요. 애들아 도대체 너희들 저 사람들이 저 군중들이 나를 따라 다니잖느냐 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유대인들이 이렇게 물어보니까 갑자기 베드로가 입을 열고 말하는데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들이라는 게 휴이오스((HUIOS)이렇게 대문자로 써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도 그 말을 해놓고 깜짝 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17절 그다음 절에 베드로야 이 말은 네가 한 게 아니다 성부하나님이 너에게 네 입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성부하나님이 네 입을 통해서 말한 거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선부하나님을 진짜 하나님으로 믿고 있잖습니까? 유대인들이니까 그런데 성부하나님이 네 입을 통해서 말한 거라고 했지만 베드로가 이것을 100% 믿었습니까?
안 믿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이야기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목수출신이 어떻게 성부하나님과 같은 이꼬르(equal)레벨인가 이것을 믿기 힘든 겁니다.
그러니까 이 고백이 있은 후에 그다음 마태복음17장에서 변화산사건 입니다. 변화산사건 때 예수님의 제자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서 변화 산으로 올라가서 낙원을 구경시켜준 겁니다. 거기서 성부하나님의 음성이 또 들려오는 겁니다. 이 세 사람에게 이 사람이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마태복음17장5절에 그래서 세 번을 이분들이 유대인들이 특히 제자 급 사람들이 들었는데도 이분들이 이걸 소화를 못했습니다. 소화 못 한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미 도망가 버린 겁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몇 번을 성부하나님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최소한 세 번 그리고는 예수님본인이 직접 인간이었던 예수님이 100%인간이었던 예수님이 100%인간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빌립보서2장7절과 451년에 칼케톤공의회서 예수님이 100%사람인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뭐라고 그러냐면 야! 유대인들아 나와 성부하나님과는 하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기가 막히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깜짝 놀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0장30절에 그때 하나라는 단어 헨(Hen)것도 대문자로 써놓았습니다. 하나라는 의미가 대문자로 썼을 때는
이꼬르(equal)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라는 단어가 서문자로 썼을 때는 헤이스(heis)이것은 갈라디아서3장28절에 이 단어를 썼습니다.
하나다 한국말로는 똑같습니다. 하나다 그런데 원어는 다릅니다.
갈라디아서3장28절에 그랬습니다. 바울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다는 뜻입니다
그때 하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아버지와 하나는 이것은 다른 하나입니다
질이 같고 양이 같고 볼륨이 같고 모든 생각까지도 같은 여기 지금 유대인 헬라인 종 자유인들 남자 여자 모든 게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자녀지만 다릅니다. 다른 하나입니다 다른 것 안에서 하나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유대인들에게 헨(Hen)이라는 단어를 쓰시면서 너 네가 지금 하늘같이 생각하는 성부하나님과 나와는 100% 이꼬르(equal)이다 이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깜짝 놀라는 겁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28장19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부활하시고는 지상사명을 내릴 때 이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성부하나님이름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의 이름과 내 이름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겁니다. 이꼬르(equal)입니다. 파더 앤드 선 앤드 홀리 스피릿(father and sun and Holy Spirit)을 예수님이 이꼬르(equal)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 성부하나님중심적인 사고를 가졌던 유대인들의 생각을 바꾸어주는 겁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동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로 동등하신 하나님에다가 그다음에 어떤 하나님이냐면 그 말씀을 드리려고 오늘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뭐냐면 이 삼위하나님은 서로 동등하신데도 같은 능력과 같은 파워와 같은 위치에 계시면서 서로 존경하십니다. 이분들은 서로 존경하시고 서로교제하시고 서로 섬기시고 그리고 서로 협동하시고 또 서로 높이시고 서로 격려하시고 이러십니다.
기가 막힌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5장31절에 내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내 스스로 말하면 내가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또 요한복음7장18절에 그랬습니다.
만약에 내 스스로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내 영광만을 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하나님이 이렇게 항상 보시면 서로가 서로를 이렇게 높여주고 섬기고 격려해주고 존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 성부께서 성자는 지금100%인간된 예수님입니다 이분을 존경하시고 높이시고 이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아까도 봤지만 어떻게 합니까? 이분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 말 자체가 너희들 보기에는 사람이지만 나와 이꼬르(equal)이다
라는 성부하나님의 겸손함 이분이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또 성자하나님께서 성부하나님을 항상 상당히 높이십니다.
이분을 섬기시고 격려하시고 존경하시는 모습 예수그리스도가100%사람이 되신 이분이 첫 번째 보세요. 100%인간이 되신 예수님이 성부하나님을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이 섬기는 성부하나님을 내가 높인 단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요한복음3장16절에 하나님이 그러니까 성부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나를 이 세상에 보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을 그대로 보면 아하! 성부하나님이 그분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내가 그냥 그분 말 듣고 내려가라 그래서 내려 왔다는 본인을 굉장히 낮추시는 단어입니다 그런 표현입니다 겸손하십니다. 요한복음10장29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러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자기 손에서도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해야 되는데 그런 말씀을 안 하시는 겁니다. 본인이 만유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왜냐면 만유를 만드시고 다스리는 분이 본인이십니다. 그래서 만유의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겸손하게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요한복음5장2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전도할 때 쓰는 말입니다 나를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을 이르지 않는다. 나를 보내신 자가 누굽니까?
성부하나님을 높이시는 겁니다. 실은 우리가 아버지를 믿지만 그 아버지를 통해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상당히 성부하나님을 이렇게 높이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마태복음28장18절에 그럽니다. 성부께서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이렇게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면 예수님이 더 낮으신 분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겸손하신 겁니다. 그리고 요한복음5장27절에도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6장38절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왔다 다 이렇게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또 요한복음6장37절에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는 다 나에게 와서 구원을 받을 거다.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 마태복음6장9절에는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랬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이렇게 아버지께 기도하라 이렇게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우리예수님이 겸손하십니까? 안 겸손하십니까?
이것을 우리가 끊임없이 묵상을 해야 됩니다. 지금 듣고만 있고 노트정리해서 노트를 저쪽에다 던져놓지 마시고 예수님을 묵상하시라고 오늘 삼위하나님의 기가 막힌 이 모든 성품들을 묵상하시라고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존경하고 높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한복음14장16절17절에 보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을 아버지를 통해서 내려오게 할 텐데 너희들에게 줄 텐데 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높이시는 말씀이 진리의 영이다 이 성령님은 그리고 바울을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 성령님은 아버지의 영이라는 겁니다. 로마서8장11절에 그리고 또 이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 할 때는 엘로힘(Elohim)입니다. 로마서8장9절에 그뿐 아니라 이 성령님은 아들의 영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영이라는 겁니다.
베드로전서1장11절에 그러니까 성령님을 높이시는 겁니다.
이 성령님은 지금 여기서 보면 성부하나님의 영도 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영도 되시고 그러면서 이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고 이 성령님을 이렇게 높이시면서 사도행전1장8절에 그랬습니다. 이 성령님이 구원자신 겁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님이 너희에게 권능을 주어가지고 능력자가 되시고 증거자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는 성령님 그러니까 우리는 이 성령을 받으라. 다시 말하면 이 성령님도 여러분들도 유대인들도 제자들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성령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하나다 같은 이꼬르(equal)레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를 줄 때도 아버지이름과 아들이름과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이꼬르(equal)로 성령세례를 주어라 그렇기 때문에 삼위하나님이 서로가 이렇게 높이시는 하나님이심을 존경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서로격려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교제하시면서 협조하시는 섬기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이걸 묵상하셔야 됩니다. 저는 이걸 묵상 많이 합니다. 왜 이분들이 이런 모습의 분들일까? 그러면 하나님은 엘로힘(Elohim)의 삼위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는 겁니다. 그 자체가 요한1서4장16절에 사랑이시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표현을 우리가 재해석을 하면 우리가 존경할 때 우리 같은 주 안에서 저 사람을 내가 존경합니다.
내가 학벌이 더 있고 더 안다고 해서 좋은 집안이라고 그래서 존경하지 않으면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닮지 않는 사람으로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은 삼위하나님처럼 같은 이웃이라는 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을 포함하는 게 아닙니다. 꼭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항상 배려해주고 존경해주고 높이고 섬기고 격려해주고 이런 부분이 몸에 베여있는 사람 이게 몸에 베여있어야 됩니다. 이게 몸이 베여있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러려면 항상 우리가 이렇게 하는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은 뭐가 있느냐면 요한1서3장9절에 보면 요한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지고 있느냐면 우리의 영속에 내 영 속에 내영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내 하트보다 더 밑에 내 마음보다 밑에 있는 나의 영 로마서8장16절 고린도전서2장11절 또는 고린도전서5장5절 디모데전서4장12절 이사야서12장3절에는 구원의 우물이라고 그랬습니다.
이게 나의 영입니다 제일 깊은 곳에 있는 겁니다. 제일 깊은 곳에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내려와서 만났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요한1서3장9절에 하나님의 영을 하나님의 씨를 받았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걸 원어로 보면 기가 막힌 단어를 써놓았습니다 제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스페르마(spevrma)남자의 정자 하나님의 스페르마(spevrma)를 받은 우리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유전자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삼위하나님의 유전자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은 삼위하나님의 성품을 가져야 됩니까? 안 가져야 됩니까?
우리가 삼위하나님의 성품을 가져야 됩니다. 이게 몸에 베여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런데 이게 안 되잖아요 과거2천년 기독교역사에서 보면 안 됐습니다. 그런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모인 공동체 안에서 삼위하나님의 공동체에서 보여주는 이분들의 삶 속에서 보여주는 삶의 모습을 우리가 배워가지고 그것을 몸에 배도록 해야 됩니다. 이게 자연적으로 몸에 배어야 됩니다. 항상 협동하는 마음이 있고 존경하고 높여주고 격려해주고 삼위하나님의 기능은 달랐습니다.
기능이 다르면서도 이렇게 서로 격려해주고 배려해주고 높이시고 하는 모습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같은 하나님의 자녀지만 기능이 다 다릅니다.
배경이 다 다르고 성품도 다르고 이렇게 다른 가운데 잘 하모니를 하는 다양 속에서의 하모니 조화 이것을 잘 하는 사람 다양한데 조화를 잘 하는 사람 밸런스를 잘 맞추면서 바울이 30세에 개종을 했잖아요. 바울이 개종하기 전에는 아주 엘리트의식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었고 성품이 아주 교만했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고 그러고 율법에 강했고 고등교육을 받았고 기득권자였고 그러니까 이분의 세계관은 이분의 인생관은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런 삶을 살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 30세로 주후35년입니다 이때부터 이분이 교만 끼를 없애려고 하는데 없어집니까?
이게 시간이 걸립니다. 바울이 10년을 훈련 받고 40세가 되어서 선교사로 주후46년에서48년에 1차 여행 2차 여행이 50년에서52년에 교회개척도 많이 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웬만한 유명한 교회들 그때 다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다 해보았는데도 이 교만 끼가 이분에게서 없어지지가 않는 겁니다. 이분이 주후55년입니다 다시 말하면 3차 여행 때입니다 3차 여행이 53년에서57년입니다 중간에 유명한 고린도전서 후서를 기록할 때 이분이 고린도전서를 쓰실 때 후서를 같이 55년에 쓰셨는데 이 때 이분이 벌써 고린도교회 소위 고린도교회는 교만 끼가 많은 사람들이 구성원들이 많은 교회가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복음을 열심히 전했고 예수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전해주고 선교까지 하라고 그렇게 가르쳐주었는데도 이 교회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그 안에 엘리트들이 있었고 그 안에 파벌이 네 개나 있었고 그 안에 영적유아들이 있어서 시기와 다툼이 많았고 교인들끼리 음행하는 사람들 법정 고소하는 사람들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들 은사가 있어서 예언하고 방언하고 하지만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았고 부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 이 교회가 복잡했던 겁니다. 복잡할 때 성령님이 바울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바울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모여 있지 너도 이걸 이해해야 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이 안에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있단다.
그러면서 고린도전서12장에서 설명해주는 겁니다. 교회와 그 안에 지체에 대한 학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지체 론이라고 제가 말을 만들어 봤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아 교회라는 게 뭐냐 교회라는 것은 엑클레시아(ekklesia)라는 말은 엑(ek)이라는 말은 나갔다 클레시아(klesia)라는 말은 불리 움이라는 받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불려가지고 이 세상에서 나온 사람들을 엑클레시아(ekklesia)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 사람들이 몇 사람이 모여 있으면 그게 교회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나온 사람들끼리 만나는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할 때 교회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이걸 가르쳐주는 겁니다. 바울아 이 교회 지금 이 고린도교회를 봐라 고린도전서12장12절부터31절에 뭐냐면 고린도교회를 봐라 이 고린도교회는 교회전체가 이게 예수님의 몸이라는 겁니다. 고린도전서12장12절 27절에 또 나중에 에베소서1장23절에 이 몸인데 이 몸 위에 머리가 있는데 머리도 예수님이시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교회에 머리가 되시면서 몸 전체가 다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몸에 여러 지체들이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손가락도 있고 손도 있고 눈도 있고 안에 내장들이 다 있고 발톱도 있고 손톱도 있고 지체들이 다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지체들이 있는데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이 교회 안에 소위 보이는 지체들이 있었습니다.
능력이 있는 지체들이 다시 말하면 그 교회 안에 목사들이 있었고 교사들이 있었고 예언자들이 있었고 복음 잘 전하는 전도자들이 있었고 또 병 고치는 자들이 있었고 교회 안에 나타나는 이런 지체들이 그 안에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 서로 간에 자기네들이 잘 났다고 떠들고 있는 장면이 이제 설명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 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 발톱 밑에 전혀 안 보는 지체들도 우리 몸에 있습니다. 그래서 분량이 다른 지체들이 있다는 겁니다. 보이는 지체 안 보이는 지체 강하게 보이는 지체 약하게 보이는 지체 아름답게 보이는 지체 귀하게 보이는 지체 덜 아름답게 보이는 지체 천히 보이는 지체 이런 지체들이 쫘악 있는데 예수님의 관심사는 뭐냐면 이 지체 중에 하나라도 어딘가 아프면 그대로 온 몸 주인인 예수님이 아프신 다는 겁니다. 예수님만이 아니고 다른 지체들도 아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관심사는 뭐냐면 어느 조그만 지체가 아프면 가서 만져주라는 겁니다. 그래서 또 한 지체는 한지체대로 열심히 하여 커집니다. 예를 들어서 왼쪽 발만 커집니다. 그러면 오른 쪽 발은 어떻게 됩니까?
또 한 쪽 귀만 잘 들리고 그러면 바울이 설명했습니다. 눈아 네가 잘났다고 온 몸 전체가 눈이면 어떻게 되느냐 이런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똑같이 문제는 뭐냐면 이 지체를 성숙한 사람들은 아까 말한 리드 급들은 보이는 지체를 가진 사람들은 뭘 해야 되느냐면 이 온 몸을 잘 고르게 잘 만들어서 이 몸이 서로 알맞게 결합이 되어 가지고 고르게 해주면서 분열이 없게 해주면서 온 지체가 함께 잘 자라도록 해주면 예수님이 편해지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편해지게 하려면 지도자급 되는 사람들이 이 조그만 지체에 대해서 약해보이는 지체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세워주고 관심 두고 하는 것이 삼위하나님의 모습과 똑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여기서 많이 배우시는 겁니다. 자기도 리드인데 자기는 교만끼가 많은 엘리트그룹인데 자기도 여기서 회개하고 나도 이걸 통해서 고린도교회를 통해서 바울이 배우는 겁니다. 지금 바울도 온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이 사람도 배우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배우는 겁니다. 이러다가 에베소서를 주후60년에 썼을 때 5년 후입니다 에베소서4장1절부터16절에 보면 에베소교회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리드들이 잘난체하고는 보이지 않는 데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던 부분들을 쭈욱 보여주었습니다. 과거2천년 교회사를 들여다보면 어느 민족이나 어느 교회나 이 문제가 다 있었습니다. 이게 교회마다 주 이슈입니다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가 이 교회 안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나타날 뿐이고 나머지 분들은 이게 여러 가지로 갈등을 가지는 그러니까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몸이 불편하신 겁니다. 이것이 문제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회마다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이것 때문에 성경말씀을 더 공부하고 특별새벽기도회도 하고 우리교회문제를 해결하려고 산상수련회도 해보고 세미나도 해보고 부흥회도 해보고 금식기도회도 해보고 영적각성도 해보고 단합대회도 해보고 친교회도 해보고 별난 것 다 해봤는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이게 됩니까? 안 되는 겁니다. 안 되는 걸 다 경험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이게 안 되는 겁니다. 이걸 하다가 더 문제가 생겨서 싸움을 더 합니다. 이게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겁니다.
안 되기 때문에 왜 이게 문제가 안 됩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내 속에 사탄의 성품들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지만 질투심이 내 속에 있고 이기심 분리하는 마음 미움 교만
원수 맺는 것, 용서 못 하는 것 분리시키는 것, 파괴하는 것, 깎아내리는 마음 경쟁하는 마음 열등감 이런 성품들이 그대로 다 속에 깔려 있습니다.
저도 있고 여러분들도 있고 다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서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됩니까?
이게 죽을 때까지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결 받는 방법 중에 하나가 가장 파워풀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삼위하나님의정체성을 항상 듣고 읽고 노트에 적고 공부하고 암기하고 묵상하고 그러면 자연적으로 내 몸에 베여가지고 이것이 이렇게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우리가 예수님과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의 역동적인 관계를 항상 묵상해야 됩니다. 이것이 가장 파워풀한 무기입니다 우리하나님이 이랬구나.
하나님의 성품이 이렇구나. 이분들은 서로가 기능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서로교제하시며 서로 협동하시며 존경하시며 높이시며 섬기시며 격려하시며 조화를 이루시면서 서로배려하고 용납해주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에게 오셔가지고 이것을 우리에게 또 가르쳐주시는구나.
그러니까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딴 생각하지 마세요.
간단하게 생각하세요. 삼위하나님의 이 관계성 교제하는 이 모습을 우리가 닮아가는 겁니다. 이걸 닮아가려면 이것이 몸에 배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열심히 들어야 됩니다. 이분들이 누군가? 듣고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적어야 됩니다. 지금 적고 계십니다. 그다음에 공부해야 됩니다.
이해를 해야 되는 겁니다. 이 부분을 수월하게 공부하는 겁니다. 이해해서 잘못하면 교만끼가 들어가면 더 못 된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다음에 어떤 단계로 가야 합니까? 외우야 되는 겁니다.
외우는 것은 반복해야 되는 겁니다. 자꾸 외우면서 이것을 묵상해야 되는 겁니다. 자꾸 묵상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시편에서 그랬습니다. 계속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묵상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묵상을 하다보면 스스로가 회개하게 됩니다.
묵상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묵상한 다음에 교만끼가 꺾어지려면 회개가 따라주어야 됩니다. 회개하면서 나의 성품이 변하려면 삼위하나님의정체성을 이 부분을 묵상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회개가 나옵니까? 삼위하나님의 관계적인 성품을 묵상하고, 묵상하고 할 때 성령님이 내가 회개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말로만 회개해서 안 됩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나를 이렇게 회개하도록 이끄십니다. 이렇게 되면 조금이라도 회개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의 주님의 사람으로 변해서 알게 되잖아요. 알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도 모르게 영성이 커집니다.
세계관이 자기도 모르게 더 커집니다. 성품의 변화가 오면서 세계관의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점점 달라지는 겁니다.
예수님의 닮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일까요? 삼위하나님의 관계적인 역동적인 모든 관계성을 항상 묵상하는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오늘은 삼위하나님께서 서로기능은 다르지만 또 동등한 모든 권한을 가지시고 동등한 위치에 계시고 동등한 모든 특권들을 갖고 계시지만 서로가 서로를 높여주시고 존경하시고 섬기시고 조화를 이루시고 배려하시고 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조금이나마 섭력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 이런 모습이 되라고 도전을 하셨지만 제자들도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야 어느 정도 예수님의 모습을 닮았던 것처럼 바울도 마찬가지로 우리도 한참 연습을 해야 되고 또 우리가 계속해서 회개함으로 이러한 모습으로 날로, 날로 발전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성령님 도와주시옵소서. 날로, 날로 영성이 커지는 그러한 우리 예수님의 자녀들이 되고 제자가 되고 전도자가 되고 우리가 남은 자가 되어서 생명을 나누는 이러한 일에 온전히 100% 온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온전히 주님을 섬기는 이러한 복 된 자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령님 저희들을 도와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런 모습이 없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다면 나중에 예수님이 네가 누군지 모르겠다. 이런 말씀을 하실까봐 심히 두렵습니다. 예수님 저희들 도와주셔서 이런 모든 예민한 부분들을 잘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의 삶이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강권적으로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때 가능함을 고백하며 성령님이여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라는 고백을 항상 하는 겸손한 우리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모든 저희들의 간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금 이 시간은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도록 인도해주심에 감사드리며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르쳐주실 것을 믿고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삼위하나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창1:1)
1. 지난 여섯 번의 저주와 복 시리즈를 간닪;l 복습해 봅시다. 그 핵심주제가 무엇입니까?
2. 이 세상7천년은 무엇이며 이곳에 사는 크리스천은 누구이며(벧전2:11; 히11:13; 약4:14) 이들의 본향(눅23:43; 고후12:4;n 히11:16; 계2:7)은 어디입니까?
3. 본향에 가면 그곳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믿음의 분량이란 무엇이며 이 믿음의 분량을 크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무엇 공부해야 합니까?
4. 삼위하나님의 일곱 가지 속성을 열거해 봅시다.
5. 삼위하나님의 독특한 기능을 열거해 봅시다.
6. 삼위하나님의 동등하심을 설명해 봅시다.(마13:17,16:16-17, 17:5; 요10:30; 갈3:28; 마28:19)
7. 삼위하나님의 상호 교제하시고 섬기시도 협동하시며 존경하시며 높이시며 격려하시는 모습을 열거해봅시다.(요5:31, 7:18; 마3:17, 16:16-17, 17:5; 요3:15, 5:24,27, 6:37-38, 44-45, 10:29: 마6:9, 28:18; 요14:16-17; 롬8:9, 11; 행1:8; 벧전1:11)
8. 하나님의 자녀란 그의 영이 어떤 상태인 사람입니까?(요일3:9)
9. 고린도전서12:12-31과 에베소서 4:1-16절에서 가르치는 교회와 그 지체 론에 대해 논의해 봅시다.
10. 우리가 교회와 그 지체 론에 합당한 열매 맺는 자가 되려면 어떤 은혜와 믿음과 행동이 필요합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CYVzus1tn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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