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시리즈

2강. 로마서12장1절-8절,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한가?

변명섭 2021. 8. 10. 20:58

하나님을 아는 시리즈 2강.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한가?(롬12:1-8)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아멘,

계속해서 남은 자 신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남은 자 신학은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는 상당히 어렵고 또 중요한 신학입니다. 특히 교회사2천년 역사 속에서 이 신학이 흘려 나왔고 특히 산고시대에 이 신학이 어떻게 흘려가고 있는지를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계속해서 남은 자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가 서로 나누려고 그럽니다. 제가 제목을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오늘 계속해서 남은 자 신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알고 보면 중요하면서 쉬운 이슈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이 복잡한 것을 쉽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제가 주님께 많이 간구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이 지금 대면 비 대면으로 이 메시지를 듣고 있는 분들에게 보고 있는 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 시대에 남은 자 신학에 관한 상당한 정말 중요한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간구하면서 또 성령님이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제가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지난시간에도 공부했지만 우리가 크리스천이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기본지식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 하면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전제로 깔아놓고 우리가 구약에 이스라엘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을 지난시간에 공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이스라엘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주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어떻게 아느냐면 구약에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 구약에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났었는가? 그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뭘 보여 주었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인들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분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두 하나님을 섬기는 분들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분들 이 세상 것들과 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과 동시에 같이 섬기는 분들을 가르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이다 이렇게 우리가 일단락 정의를 내려 봅니다. 이것을 요즘 말로 표현하면 배도행위를 한 거다 그러는 겁니다. 크리스천들이 배도행위를 하는 거라는 신학적인 단어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시간에도 봤지만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소수가 배도행위를 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소수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역사 속에서 이들을 여호와께서 예수님께서 이사야에게 또는 다른 선지자들에게 누구라고 불렸냐면 남은 자들이다 그랬습니다. 렘넌트(remnant)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난시간에도 질문했지만 남은 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족했기 때문에 그랬나? 구약 때의 사건 속에서 그러면 제 생각에는 그렇게 지식이 풍족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분들도 왜냐면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는 겁니다. 차이점이 뭐냐면 이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받았지만 이분들은 다른 대부분의 이스라엘사람들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그냥 귀로 듣고만 있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똑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이분들이 받은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이분들을 이끄셔가지고 이런 마음을 가지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은혜라는 겁니다. 이분들이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겁니다. 은혜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면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지식에 배고파하고 목 말라하고 갈증을 느끼는 겁니다. 이런 현상을 그분들의 마음속에 집어넣어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여호와께서 내가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이런 남은 자들이 발생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말씀을 하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이분들이 그의 망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멸망에 가까이 왔는데 남은 자들 때문에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 그러는 겁니다.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멸망 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이 소수의 남은 자들 때문에 멸망을 시키지 않으시겠다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사야서1장9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그림을 이렇게 묵상하면서 저는 그럽니다.
지금 이 스토리들이 하나님이 어떤 디자인이 있어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이게 계획된 시나리오라는 것을 내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구약의 역사를 보면 철저한 하나님의 시나리오라는 스케줄 안에서 이스라엘사람 역사가 진행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야기는 역사드라마입니다
특히 구약은 신약도 마찬가지지만 역사드라마라고 전제를 깔아놓고 우리잠깐 봅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역사가 드라마면 연극이면 그기에 주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주제가 뭘까? 이 세상이 창조목적학교구나 라는 주제를 깔아놓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창조목적학교구나 그래서 이것을 이분들에게 가르침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창조목적을 훈련시키시는구나. 이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주제가 이런데 부 주제를 본다면 뭐냐면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연습시키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교육시키는 겁니다. 이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하나님이 보면 학교의 교장선생님을 예수님으로 삼고 부 교장을 사탄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안에 두 종류의 배우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드라마의 배우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배우면서 그 학교의 학생배우들입니다
이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냐면 이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사람들 신약에 크리스천들 이 사람들은 배우로써 이 세상에 잠깐 던져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세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시편90편10절에 고작해야 70년에서80년 이 세상에 던져진 학생들입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다시 말해서 이 학교를 졸업하면 본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래서 본래는 천국시민들인데 바울이 그랬습니다. 빌립보서3장20절 에베소서3장19절에 우리는 본래 천국시민인데 잠깐 이 세상으로 어떻게 떨어졌느냐면 학생으로 떨어졌는데 그것을 나그네로 잠깐 내려왔다 그러는 겁니다. 나그네라는 것은 잠깐 방문하는 방문객이라는 겁니다. 또는 순례자로 공부하러 왔다는 겁니다. 베드로전서2장11절에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또는 히브리서11장13절에 그래서 우리는 잠깐 이 세상에 방문하려 내려온 방문객이고 나그네고 순례자며 우리는 학생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70년-80년 있다가 졸업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극 무대 속에 있고 또 하나님의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사탄의 자녀들이 또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그래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사탄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교사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전제를 깔아놓고 이 역사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목적에 불순종하도록 하는 겁니다. 구약의 스토리들을 보면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사람들의 스토리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분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가지고는 이분들이 사탄의 자녀들에 의해서 이분들이 훈련받는 이야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나그네로 잠깐 와 있는데 사탄의 자녀들의 삶의 모방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불순종하면서 그래서 사탄의 자녀들이 시키는 대로 그대로 다 따라하고 그분들의 삶의 스타일대로 살고 그래서 사탄의 자녀들이나 하나님의 자녀들이나 그ㅜ별이 안 되는 겁니다, 동화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정도까지 만들어 놓으시는 겁니다. 이게 창조목적학교의 교육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하나님의 역기능적 교육방법이다 이렇게 제가 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역기능적 교육방법이다
이것을 우리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독교의 파라독스(paradox)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면 이 세상에서 잘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래야 되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고 대부분이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까지 받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불순종할 때 사탄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겁니다.
지금 영화드라마입니다 사탄의 자녀들을 사용하셔가지고 하나님이 화를 내시면서 사탄의 자녀들에게 파워를 주시는 겁니다. 애들아 너희들 저 내 자녀들을 혼쭐을 내어라 노예로 시켜라 포로로 시켜라 이래가지고 혼쭐을 내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전지하신 하나님이 이것을 다 알고 미리 디자인 하신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다 허락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서 얼마기간동안 이런 핍박을 받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러다가 선지자들을 때가 되어서 보내시는 겁니다. 그러면 선지자들이 뭐라고 말하게 하느냐면 너희들 왜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지 아느냐 너희들이 왜 이렇게 이방민족들에게 노예가 되어 가지고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아느냐 하면서 너희들이 창조목적을 위배해서 그렇다고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던져주면 그렇게 회개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 안에 소수의 남은 자들을 준비시키십니다. 소수의 남은 자들을 이 사람들은 자기네가 잘나서가 아니고 특별한 은총을 받은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이런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뭐라고 말씀하느냐면 나를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나를 위해서 남겨둔 사람들이다 그러는 겁니다. 이남은 자들은 열왕기상19장18절 또는 로마서11장4절에 보면 나를 위해서 남겨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분들을 하나님이 남겨 두었기 때문에 이분들 때문에 대다수의 창조목적을 위배하는 배도하는 너희들아 내가 회복을 시켜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소수의 남은 자들이 회복을 시켜주는 일을 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을 만약에 소수의 남은 자들이 없었더라면 회복이 될 가능성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가 막힌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회복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약스토리를 보면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잠깐 회복이 되었다가 또 다시 범죄를 짓는 겁니다. 또 다시 그러다 보면 또 남은 자들을 통해서 회복시켜주고 혼쭐났다가 회복 받고 이런 이야기들이 신구약에 하나님의 자녀들이야기들입니다 신구약의 하나님자녀들의 이야기들입니다 남은 자들 주님께서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들이 꼭 해답을 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창조목적학교 이 세상7천년을 저는 창조목적학교라고 그럽니다. 이 학교 안에서 항상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배도하는 일을 하고 소수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셔서 배도하는 일을 안 하도록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러면 그 소수는 운이 좋아서입니까? 아닙니까? 은혜를 일방적으로 받은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에게 은혜를 주실 때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적 차원에서 주신 겁니다. 잘나서가 아니고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이슈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나누면서 항상 생각하셔야 됩니다. 이것은 일방적 하나님의 주권 때문에 다시 말하면 교장선생님의 주권 때문에 일방적으로 일부학생들을 우수학생으로 만든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성서에는 최소한 세 번에서 다섯 번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말씀을 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알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면 첫 번째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주권에 관해서 마태복음20장15절에 예수님이 이때 뭐라고 말씀하였냐면 애들아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한단다. 그러는 겁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에게 그러는 겁니다.
나는 은혜를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자비를 베풀 자에게 자비를 베푼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출애굽기33장19절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나중에 바울이 로마서9장15절에서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1500년 후에 바울에도 또 말씀하시는 겁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일방적으로 은혜 베풀고 자비 베풀 자에게 일방적으로 자비를 베푼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여기에 대해서 덤비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레미야에게 또 말씀하였습니다. 예레미야18장1절에서10절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은 나중에 바울이 그대로 인용합니다.
로마서9장21절23절에 예레미야와 바울에게 하신 말씀이 유명한 토기장이의 예를 드는 겁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내가 원해서 귀한 그릇도 만들고 천히 쓸 그릇도 만들고 안 그러면 자비의 그릇도 내가 만들고 진노의 그릇도 내가 만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여러분들이 잊지 말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자들을 남겨 놓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 틀에서입니다. 주권의 틀에서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세우신 겁니다.
이분들이 잘 나서가 아닌 겁니다. 그러면 이 주권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계셔서 왜냐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를 위하여 내가 남은 자들을 남겨두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씀 속에는 깊은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남은 자들을 내가 남겨 두었다는 겁니다.
주권적으로 그러면 무슨 하나님의 뜻이 계신가? 저는 볼 때 그러는 겁니다.
이 세상이 창조목적학교입니다 이 세상이 창조목적학교커리큘럼(curriculum)안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창조목적대로 지내지 않는 소위 우수학생이 아니고 말썽꾸러기 학생들이 있는데 이 말썽꾸러기 학생들 때문에 혼쭐을 내시는데 그럴 때마다 착한 학생들 일부를 만들어 가지고 착한 학생들을 통해서 그놈들 때문에 착한 학생들 때문에 내가 너희들 다 회복시켜줄게 라는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그러면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인 게 만약에 회복시켜주는 남은 자들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됩니까? 이 창조목적학교에서 전교생이 다 망하게 되는 겁니다. 전교생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교생이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듯이 남은 자들 회복자들을 남겨 두시고는 공의의 하나님이 그러는 겁니다. 남은 자들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이 빌미로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이남은 착한 학생들 때문에 내가 너희들을 다 살려 줄게 이런 개념인 하나님의 창조목적 교육스케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기독교의 파라독스(paradox)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의 파라독스(paradox) 라고 그럽니다

또는 역기능적 교육 방법입니다. 이사야에게도 말씀하신 1장 9절이 똑같습니다. 너희들이 나쁜 학생이었기 때문에 주전722년에 앗수르사건이 있었잖아 그럴 때마다 회복시켜주는 게 왜냐면 남은 자들 때문에 내가 회복시켜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세상 말로 하면 병 주고 약 주는 겁니다
훈련방법이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질문입니다. 남은 자 역할을 하는 이분들 회복자 역할을 하는 이분들이 그냥 회복자가 되려면 이분들이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있습니다.
그냥 회복자가 아닙니다. 회복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가지고 이분들의 덕목 이분들의 인격 성품 이런 것들을 예비해주시고 이분들을 변화시켜주십니다. 남은 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은혜로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남은 자에게 베푸시는 덕목들을 제가 이렇게 주욱 묵상해보니까 약 10가지 정도의 덕목을 주어서 변화시키는 것을 제가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항상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메시지는 상당히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첫 번째 덕목은 뭐냐면 남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이 따라와야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없이는 남은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덕목은 은혜를 받은 이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본 성품을 다시 말하면 천성 본성을 주십니다. 일방적으로 그러니까 이게 처음부터 어머니 태에서부터 이런 천성을 태어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세 번째는 천성 위에다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조금씩 조금씩 옷 입히십니다. 그 천성 위에다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네 번째는 그런 옷을 입은 분들에게 더욱더욱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 배고파하게 만듭니다. 식욕을 증진시켜 줍니다. 배고파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갈증을 나게 합니다. 갈증을 증진 시킵니다. 목마르게 만드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 카테고리에 다 들어오는 분들입니다. 우리AMI팀들은 제가 볼 때 다섯 번째로 보면 이렇게 해서 식욕 증진이 되고. 갈증이 해소되면 자기도 모르게 영적 분별력을 한꺼번에 다 안 주시고 서서히 주시는 겁니다. 시대적으로 여러모로 영적 분별력을 주시는 겁니다. 그다음에 계속해서 여섯 번째로 삶의 우선순위를 서서히 서서히 바뀌게 해주시는 겁니다. 한꺼번에 안 합니다. 한꺼번에 하면 교만해져서 안 됩니다. 일곱 번째는 이제는 우상을 서서히 집어던지는 사람으로 도와주십니다. 우상을 서서히 한꺼번에 안 합니다. 서서히 집어 던져주시는 그런 혜택을 받는 사람으로 도와주십니다. 여덟 번째는 그러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우선시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많이 성숙 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아홉 번째로 수직 계명에 최우선시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마태복음6장33절에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게 누가 시켜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로 수직 계명을 하는 사람은 자연적으로 수평계 명을 지키면서 지상 사명까지 이것을 내 민족과 타민족에게 넘겨주는 일을 하도록 주님께서 이렇게 이끄시는 겁니다. 이것이 회복자 다시 말하면 남은 자가 되려고 할 때 그런 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덕목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AMI 그룹들은 이런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말을 쉽게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이 그런 분들이 아니면 제가 이런 말하기가 힘이 듭니다.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소화를 못합니다. 그러면 제가 결론에 가까이 왔습니다. 오늘은 결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계를 한번 봅시다. 우리나라 기독교계를 한번 보면 크게 두 종류의 크리스천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다 포함되지만 조금 좁혀서 우리나라를 보면 두 종류의 기독교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일반기독교인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다수의 두 주인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덜 경외하는 기독교인들입니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한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종류는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소수의 남은 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열 가지의 덕목들을 보면서 그 덕목 안에서 이렇게 순서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아! 저분은 남은 자 반열에 들어 왔구나. 또는 들어오고 있구나. 또는 들어올 것이구나. 이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시끄럽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또 다툽니다. 큰 파도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있습니다.
오늘날만이 아니지만 요 근래에 와서 산고 시대기 때문에 더 복잡합니다.
신학이 복잡하고 이런 가운데 항상 하나님은 마지막 때 남은 자들을 한국교회에 준비시키는 겁니다. 이 남은 자들을 오늘날 준비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남은 자들 때문에 우리 한국교회를 붙잡고 계신 겁니다.
또 우리나라를 붙잡고 계신 겁니다. 아까 남은 자들의 덕목 중에 마지막 열 번째 덕목이 무엇입니까? 수직 계명 플러스 수평 계명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만방에 나누는 추수꾼 역할을 하는 분들이 마지막 덕목이라 그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 우리가 한국교회가 추수꾼 역할 다시 말하면 예수님에 재림의 메시지가 없고 나머지 일들을 가지고 서로가 다투고 서로가 신앙 언쟁하는 것은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의미가 없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은 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겁니다.
왜들 이렇게 서로 싸움하는 겁니까? 왜 서로 다투고 이러는 겁니까?
지금 재림메시지가 전해져야 되고 만방에 추수꾼 역할을 하는 자들을 세워야 되는 이 일에 우리가 집중을 해야 되는데 딴 데 집중을 하도록 이끄는 일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있습니다. 특히 핸드폰에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많은 메시지들이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거기에 빠져가지고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립니다. 여러분들 제가 지금부터 도전하는 게 있습니다. 뭘 도전하느냐면 우리가 남은 자가 되면 남은 자는 결코 교만해지면 안 되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열 가지 덕목을 가지고 있는 남은 자는 다수학생들이 말썽을 부리게 되어 있구나. 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다수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썽을 부리게끔 되어 있구나. 말썽꾸러기들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창조 목적학교의 디자인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깨달은 남은 자들은 이 사람들이 말썽을 부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마다 우리 남은 자들을 세우셔서 이렇게 말썽꾸러기들이지만 한국교회를 붙잡아 주시는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남은 자라고 가정한다면 그러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내가 남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지금 꾸중을 많이 받아야 되는 한국교회를 붙잡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나를 남은 자로 세우셨구나. 라고 우리가 가정을 할 때 그래서 내가 남은 자가 되었다고 가정을 할 때 이 남은 자는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냐면 아하! 이 말썽꾸러기들 때문에 내가 남은 자가 되었구나는 생각을 가지는 겁니다. 이 말썽꾸러기들이 없다면 남은 자가 필요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은 자는 어떤 사상을 가지느냐면 아하! 난 말썽꾸러기 하나님의 자녀들인 형제자매들에게 빚진 자구나 이분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또는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겁니다.
아하! 이분들이 이렇게 못되게 노니까 어리석게 노니까 나를 남은 자로 만들어 가지고 이분들을 섬기게 하시는구나. 다시 말하면 이것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절대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꾸짓지 않습니다. 없신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철부지들이 몰라서 그렇구나.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결여되어서 은혜가 주어지지 않아서 이렇게 못된 행동을 하는구나.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그러기 때문에 연민의 정을 가지고 이분들을 내가 돌봐주어야지 섬겨야지 또 이분들에게 내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세히 먹여 주어야지 이분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배고파하도록 식욕을 증진 시켜주어야지 목말라 하도록 갈증을 일으키는 일을 하도록 내가 도와주어야지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게 예수님이 남은 자들을 세운 목적이고 남은 자들에게 기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정한 예수님이 세우신 남은 자들이라면 항상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이 마음을 가진 자는 시각이 다릅니다.
이 마음을 가진 자는 어떤 시각을 가진 자느냐면 이 세상이 창조목적학교구나. 그리고 이 안에 구약스토리나 신약스토리를 보니까 이 안에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속 섞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나머지 자녀들은 착한 사람들이구나.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지금 착한 사람 그룹에 들어왔다고 가정했을 때는 이 사람이 착한 사람인 것을 남은 자라는 것을 어떻게 내가 아느냐면 내가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가를 점검하면 근 방 압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독수리 시각을 가지고 있는 자인가. 아닌가
독수리 시각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나라가 저세상 이 세상 저세상 이런 큰 그림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시간 세계인 이 세상 7천 년을 만드셨구나 하나님의 자녀들을 창조목적 훈련 시키기 위해서 이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보고는 7천 년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구나 이것이 어떤 교육시스템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기능교육 방법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육시키는구나. 이것을 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독수리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독수리시각을 가진 사람은 큰 숲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자는 기독교의 역사 7천 년을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2천년 신약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좁은 의미에서 한국교회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또 좁은 의미에서 보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금 돌아가고 있는 이런 것을 보면서 이것을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오늘날 남은 자의 틀에 들어온 사람은 시각이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독수리시각은 어떤 시각입니까? 전천후시각입니다. 숲을 보면서도 조그만 나무까지도 보는 시각입니다. 독수리는 와이드 앵글을 가진 시각입니다.
옆을 짜악 보는 와이드 앵글 그뿐입니까? 원거리를 보는 시각입니다
그뿐입니까? 준 거리를 보는 시각입니다. 그뿐입니까? 근거리도 보는 겁니다. 그뿐 입니까? 현미경 시각까지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독수리 시각을 가진 사람은 줌 렌즈가 와이드 앵글과 거리를 두는 앵글 다 가진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남은 자는 독수리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진정한 남은 자는 독수리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실 때가 주후 57년입니다. 이분이 언제 개종했습니까? 35년에 개종했습니다. 바울도 처음부터 독수리 시각을 가진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35년에 개종했을 때부터 로마서를 쓰는 57년까지 22년 동안은 독수리 시각을 만드는 하나의 과정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57년에 로마서11장을 쓰실 때 11장5절에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이 바울아 너는 남은 자다 그랬습니다. 엘리야처럼 7천 명을 남겨 둔 남은 자가 있듯이 너도 남은 자고 너 팀들이 남은 자들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직역를 해보면 개종해서 22년 후에 바울이 더디어 남은 자 반열에 들어 왔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때부터 바울이 세상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그래서 그다음 12장부터가 로마서를 쓰시면서 바울에게 주신 독수리 시각을 주신 겁니다. 남은 자 시각을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남은 자는 아무나 남은 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시각이 독수리 시각으로 된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떻게 독수리 시각이 되었는가? 지금부터 결론이지만 잘 들으세요. 결론이면서 굉장히 중요한 결론입니다. 바울에게 뭐라고 그러냐면 로마서13장1절에서7절에 보여주는 겁니다. 바울아! 로마제국을 한번 봐라는 겁니다. 네가 지금 핍박을 받고 있는 로마제국을 바울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로마제국에 네로 왕을 봐라 그게 우연히 생겨난 게 아니다 참새 시각을 가지면 로마제국 왕의 시스템이 사탄의 시스템이야 이것 없애버려야 돼 하고
반정부운동을 해야 될 텐데 독수리 시각을 주니까 아하 이게 큰 그림 속에서 로마제국이 지금 주님이 허락하셨구나. 라는 것을 바울이 본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유명한 13장1절에서7절에 그러는 겁니다.
모든 세상에 왕들 네로 왕을 비롯해서 모든 악한 왕들 좋은 왕들 대부분의 왕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악했잖아요. 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이다
큰 그림 속에서 그러니까 남은 자 시각을 가진 사람은 독수리 시각을 가진 사람은 7천년 이 세상이 창조 목적학교라는 시각을 가진 사람은 아하! 이게 하나님의 크신 디자인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이것을 본 겁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지만 이것을 못 보는 사람은 다수들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본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그분의 그 많은 편지 속에서 로마제국을 욕하거나 로마제국을 망 해야된다. 거나 이런 메시지를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못 하게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로마제국이 앞으로 400년을 더 가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큰 그림 속에서 476년에 로마제국이 망했잖아요. 그러니까 400년을 더 가야 되는데 그걸 없애려고 덤비면 하나님의 큰 뜻에서 어긋나는 겁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남은 자 속에 들어온 바울이 남은 자 속에 들어오니까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 대신에 그 왕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라 왜냐면 하나님이 임명한 왕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큰 창조목적학교 시스템 안에서 독수리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보는 겁니다.
독수리 시각을 가진 바울에게 깨닫게 하는 첫 번째는 로마제국을 보는 시각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는 시각을 어떻게 보게 하셨냐면 바울이 그래서 로마서12장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다루는 겁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은 로마서12장1절에서8절을 제가 오늘 본문으로 잡았는데 이게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는 시각이 바울이 남은 자가 되면서 변한 것을 깨달은 것을 써놓은 겁니다. 뭐냐면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로마크리스천들아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참새 시각으로 보지 말고 큰 그림으로 봐라 뭘 보느냐면 첫 번째로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분량이 다 다르단다. 그러는 겁니다. 은혜의 분량이 다르고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은사의 분량이 다르고 믿음의 분량이 다르단다.
같은 학생들이지만 성적이 다 다르단다. 그러기 때문에 그 다른 것을 그대로 보고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다른 것을 두 번째로 어떤 분량이 다르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중에서 분량이 다른 것중에 담는 그릇의 재료도 다르다는 겁니다. 분량을 담는 그릇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담는 그릇의 재료가 다르다는 겁니다.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금 그릇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있고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은그릇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있고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나무 그릇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있고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진흙 그릇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있다는 겁니다. 기가 막힌 깨달음을 바울에게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하나님의 지식을 담는 그릇의 모양도 다르다는 겁니다. 어떤 그릇은 삼각형 모양이고 어떤 그릇은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팔각형으로 모양이 다 다르단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똑같은 지식을 전했는데 모양대로 받는단다. 그러는 겁니다. 또 바울이 뭘 깨달았냐면 담는 그릇의 크기가 다르단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했는데도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쪽박 그릇이다.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밥공기 사이즈다.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접시 모양이다.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국그릇 사이즈다.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양재기 사이즈다.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대야 사이즈다. 어떤 하나님의 자녀는 도라무 통이야 다 다른 겁니다.
저는 이런 걸 깨닫고 여러분들을 보는 시각이 그러는 겁니다.
아하! 저 사람은 어떤 모습이구나 영적 통찰력과 지식과 명철과 지혜를 주시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남은 자 반열에 들어오는 사람은 이런 독수리 시각을 가지고 모든 사물을 보고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교회를 보고 그 안에 있는 공동체를 보고 크리스천 한분 한분을 보는 겁니다. 이 시각입니다. 이 시각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이 시각을 깨달았기 때문에 남은 자로써 로마서 12장에 1절과 2절을 말씀하신 겁니다.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은 그게 결론의 말씀입니다.
12장 13장 14장 15장까지의 말씀을 결론으로 말씀하신 것이 12장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독수리 시각으로 변모된 남은 자들은 바울이 그랬습니다. 이런 인격자가 되어야 되는데 이런 인격자가 되려면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은 마음을 새롭게 변화를 시켜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인격자가 되시고 이런 영성가로 변화시켜주시고 이런 시각자 독수리 시각자로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마음을 변화시켜 주어가지고 그러니까 이 메시지를 전하는 목적도 저나 여러분들이 마음이 변화가 되도록 성령님이 역사를 하시기 위해서 지금 이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변화된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모든 우선순위를 나의 모든 가치관을 물질관을 모든 것을 거룩한 산제사로 희생하는 겁니다.
이것을 기쁨으로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런 사람을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마땅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합당한 영적 예배드리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바울이 보고는 그러니까 바울이 깨달은 것이 엄청난 걸 깨달은 겁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 전 산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금 산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독수리 시각 자는 이 산고가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니까? 그것이 있어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전제로 깔아놓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적인 산고 사회적인 산고 문화적인 산고 정치적인 산고 경제적인 산고 우리가 다 공부했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산고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게 우리에게 보이잖아요.
특히 복음의 산고도 지금 우리 눈에 보이잖아요. 이런 산고들이 있는 가운데 산고의 주체를 하는 놈이 누굽니까? 두 짐승인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장에 말씀했잖아요. 두 짐승입니다. 첫 번째 짐승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교육적 적그리스도 두 번째 짐승이 종교적 적그리스도 우리가 다 알잖아요. 우리는 두 짐승들이 활보하는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법이 성하고 거짓이 성하고 소위 두 짐승 중에 나중에 기회 있을 때 말씀드리겠지만 공산주의자들도 두 짐승에 깔려 있는 한 그룹입니다. 이 모든 사회가 공산화되어 가고 있고 이게 다 하나님의 예언된 산고 중에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전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산고 속에 있을 때 예수님이 감람산 설교에서 뭐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까? 산고 속에 있을 때 남은 자 반열에 있는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깨어난 사람들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뭘 하느냐면 산고를 향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산고를 없애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산고는 있다고 외치는 일은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더럽다. 불법이 강하다. 불법이 심하다. 이 세상은 나쁜 놈들로 꽉 차 있다. 이것을 외치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외치는 거기서만 머물려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외치는데 이것을 없애버리자 이러면 예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겁니다. 제 말 이해하십니까?
없앨 수 없습니다. 더 심해집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오늘날 인본주의적 알미니안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없애야 된다고 그러는 겁니다. 없앨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자인 하신 산고입니다. 더 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 더 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독수리 시각을 가진 남은 자들은 이 산고가 있다. 앞으로 더 심해질 거다. 그러니까 깨어나라 이것을 외치는 자들 사회가 불법이 심하고 악하고 나쁜 놈들이 많고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외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외치는 것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외치는 것은 외치는 목적이 다르고 방향이 다릅니다. 그런데 똑같이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외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산고 시대다 이런 게 반듯이 있단다.
깨어나자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서 우리는 추수 꾼이 되자 우리는 외치는 목적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 없이 이 산고를 없애자 이것 있으면 안 된다. 이것은 예수님의 뜻과 정반대로 가는 겁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을 혼돈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혼돈 속에 이것은 아닌 겁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인간책임을 논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없애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장로교 출신들이 칼빈주의자들인데도 여기에 많이 동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혼돈 속에 있는 겁니다. 지금 장로교든 무슨 교든 칼빈주의든 알미니안 주의든 이게 비빔밥 사회입니다.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인간적인 차원 속에다가 초점을 맞추고는 없애기를 외치는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기에서 지금 속임을 당하고 잇는 겁니다. 없앤다고 소리 지른다고 없애 집니까?

안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을 때까지 왜 이것을 모릅니까?
앞으로 더 심하게 될 텐데 그러니까 남은 자들은 외치는 자들이지만 외치는 목적이 다르고 방향이 다른 겁니다. 지금 이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외쳐야 됩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재림 시대가 왔다는 것을 외쳐야 되기 때문에 그렇지만 목적이 분명한 겁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깨어서 우리가 예수님을 더 열심히 섬기고 또 우리의 모든 시간과 물질과 나의 모든 달란트와 이것을 땅 끝까지 복음 전파하는 일에 사용하자 직접 가지 못하면 기도열심히 하자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독수리 시각을 가진 남은 자는 분명 시대의 분별력을 주시는데 시대의 분별력을 주시는데 이 세대가 7천 년 이 세상 속에서 어느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며 이 세대가 어떤 시대이며 이 시대 안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이 시대가 어떤 산고들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아는 사람이고 이것을 아는 것만이 아니고 이것을 외치는 사람들이고 그냥 막연히 외치는 것이 아니고 없애자고 외치는 것이 아니고 이럴 때 우리는 깨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된다고 외치는 사람이 누굽니까? 오늘날 남은 자들인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은 자들은 이런 걸 하면서 항상 겸손해야 되는 겁니다. 왜 겸손해야 됩니까?
내가 남은 자로 불리 움을 받은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고 이 세대에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배역하는 못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스라엘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분들 때문에 남은 자로 택함을 받은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분들 때문에 택함을 받았으니까 이분들을 우리가 섬겨야 되는 겁니다. 이분들을 살려주는 일을 해야 되는 겁니다.
이분들을 회복시켜주는 일이 남은 자들의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남은 자라면 남은 자 속에 들어오기를 우리는 소원하지만 우리가 남은 자라면 어떻게 하느냐 어떤 증세가 나타나느냐 이분들 지금 죽어가고 있는 혼돈 속에 있는 이 사람들을 잘 정돈시켜주고 살려주는 일 외에 플러스 방향을 정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무슨 방향입니까? 추수꾼 일에 열심히 해라. 예수님의 재림에 준비하라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오늘날 남은 자들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합니다. 제 메시지 결론이 무엇인지 아시겠죠
우리는 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계속해서 이미 임했지만 앞으로 더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특별한 계획 속에서 이 세상을 창조목적학교로 디자인하시고 이 학교 속에서 교육 방법을 역기능적 교육 방법을 디자인하시고 이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말씀 속에서 보여주셨던 것들처럼 여러 가지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소수의 남은 자들을 은혜로 세우셔서 그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며 그분들을 통해서 이 학교 시스템 안에서 학점이 열악한 분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살려주는 일을 하도록 주님이 이렇게 디자인하신 것 감사합니다. 주님 은혜를 베풀어서 저희들만이 아니고 지금 이 메시지를 듣고 보고 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우리 한국 땅에 많은 남은 자들을 세우셔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나팔수 역할을 잘하는 자들이 많이 나와서 주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삼위 하나님의 지혜 주심과 능력 주심이 시대 분별력을 주심이 이남은 자들 위에 항상 넘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한가?(롬12:1-8)
1. “남은 자”란 무슨 의미이며 역사적 배경은 어떻게 됩니까?
2. 어떻게 “남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3. 하나님의 이스라엘인들을 향한 역사드라마시나리오를 순서대로 열거해보고 그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나누어 봅시다.
4. 이 역사에서 “남은 자”의 역할은 어떠했습니까?
5. 왜 하나님이 “남은 자”들을 만드셨습니까?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주권”이란 무엇이며 그 관련성구들을 가지고 논의해 봅시다.
7.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남은 자”들을 남겨 두셨다(왕상19:18; 롬11;4)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에 숨겨진 뜻은 무엇입니까?
8. 왜 “남은 자”(회복자) 가 반드시 필요합니까?
9. “남은 자”(회복자)가 되기 위한 덕목들은 무엇입니까?
10. 내가 만약 “남은 자”라면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어떤 인격자, 어떤 영성 가, 어떤 시각 자, 어떤 분량 자가 되어야 합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VyiAXiV7n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