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17강, 예루살렘교회 태동배경(1)(막16:15)
오늘은 마태복음의 마지막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나가서 모든 족속들 열방들에게 내가 누군지를 가서 전해라 이런 말씀을 마태복음에서만 마지막으로 한 것이 아니고 각 복음서마다 이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요한복음. 마가복음에 이렇게 마지막에 부활하시고는 40일 동안 다섯 번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섯 번 하셨는데 다섯 번 하신 내용은 간단하게 성경말씀을 참고로 드리겠습니다,
첫째 40일 기간 동안에 처음10일 정도 되었을 때 하신 말씀이 마가복음16장15절입니다, 그리고 15일 정도 되었을 때 누가복음24장47절입니다,
두 번째로 너희들은 나가서 판타 타 에뜨네(Panta ta Ethne)에게 이방인들에게 그런 말입니다, 복음을 전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요한복음20장21절입니다, 약20일 정도 되었을 때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약30일 정도 되었을 때 북쪽지방 갈릴리에 가가지고 제자들이 허탄한 마음으로 다시 고기잡이하고 있는 제자들을 만나서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28장19절에서2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이 말씀을 약40일 후반부에 가서 이 말씀을 하시고는 예수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내려 오셔가지고 40일째 되는 날에 예수님이 그 유명한 사도행전1장8절의 말씀을 하시고는 그 길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1장8절은 마지막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이 배경은 우선 이렇게 보시고 하나님께서 지금 사도행전으로 주님의 복음의 말씀이 넘어가는 단계입니다, 사도행전으로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나가서 전해라 그래놓고는 우리가 알다시피 며칠 있다가 오순절사건이 일어났습니까, 승천하시고 10일 후에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부활한 날부터 50일 되는 날이 오순절입니다, 이 말은 구약에서는 초실 절이라 그러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한 날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이 날부터 50일 째 되는 날을 오순절이라 그럽니다,
이것은 모세 때부터 이렇게 절기를 주어가지고 지키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로 생각하면 1500년 전부터 초실 절을 지켜왔고 그다음에 50일 있다가 오순절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사람들이 1년에 한번 씩 이런 절기를 지키니까 이스라엘사람들이 1500년 동안 이 절기를 매년마다 지켜왔습니다,
예수님도 이 초실 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오순절을 지키기 10일 전에 사도행전1장8절의 말씀을 하시고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면서 너희들 내가 어느 날인지는 말하지 않지만 이제 너희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터이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열심히 그 성령받기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기다리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10일 후에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냥 열심히 믿음으로 기다려라 이게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시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10일 동안 기다릴 것을 미리 알았으면 많은 사람이 기다릴 텐데 실은 120명이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몇 사람에게 사도행전1장2절에서부터8절의 말씀을 이야기했습니까,
우선 이 말씀을 한번 봅시다, 2절에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하나님나라의 일은 지상명령을 다섯 번 말씀하셨습니다,
지상명령은 가장 중요한 예수님께서 유언적인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 지상명령을 내리시기 위해서 지난4000년 동안 준비하셨던 겁니다,
지상명령을 내리시기 위해서 그러면 몇 명에게 이 지상명령을 내려설까요,
고린도전서15장에 보면 몇 명이라는 게 정확하게 나옵니다,
고린도전서15장3절부터8절의 말씀을 보면 분명하게 나옵니다,
여기 보면 고린도교회의 몇몇 사람들이 부활이 없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분명히 바울선생님이 고린도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고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고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다 이렇게 했는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에 뒤에서 수군수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부활이 실은 없다면서 바울선생님이 말을 만들어서 한다고 이런 식으로 말들이 많으니까 교회가 조금 시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문제를 15장에서 설명해드리는 겁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3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러면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바울이 말하는 성경이 뭡니까,
바울이 말하는 성경은 구약성경입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어디서 말했기에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하느냐면 4절에 분명히 그랬습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다 그러면 분명히 바울말씀에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났다는 겁니다, 구약에 그 말이 있다는 겁니다,
그 예언이 있다는 겁니다, 그 예언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왜냐면 구약을 믿는 유대인디아스포라들 지금 고린도에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들에게는 구약에 있다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고린도교회는 헬라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안에도 이민 간 유대인 중에서 복음을 받아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도 그 교회 안에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 중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하는 겁니다, 성경에 분명히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난다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성경어디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첫째 구약의 십자가사건 부활사건이 어디에 있습니까,
창세기22장에 아브라함 때 이삭을 바치는 장면입니다,
두 번째는 요나의 사건입니다, 마테복음12장40절과 16장4절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똑같이 이삭의 사건도 브엘세바에서 아들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3일 동안 걸어서 모리아 산에 갔습니다,
거기서 염소를 대체하여 이삭이 살아난 사건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예표로 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건이 구약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다윗을 통해서 다윗도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래서 유명인사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그리고 중간에 유명인사 요나를 통해서 구약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에게 어떤 부분에서 가르쳐주었습니까,
그러면 시편16편에 다윗이 하루는 기도하고 있는데 다윗이 십자가사건을 본 겁니다, 그런데 십자가사건을 보는데 자기모습 같이 생긴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본인인줄 알았습니다,
그래가지고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는데 자기 자신 다윗이 섞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봤습니다, 그 모습을 다윗이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시편16편입니다, 그래서 시편16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특히 부활사건에 관여되는 아주 유명한 시편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죽으심에 관한 시편은 22편입니다, 예수님의 고통당하는 모습을 다윗이 봤습니다,
시편22편도 유명합니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과 관계되는 시편은 시편16편입니다, 나중에 사도행전2장에서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가지고 설교하는 장면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많은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가 사람들 앞에서 모슨 말씀을 인용하느냐면 시편16편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이 16편에 나오는 다윗의 섞지 않는 몸이 다윗이 아니고 예수님이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베드로의 설교 장면입니다,
그래서 특히 시편16편8절부터11절까지가 중요한 절입니다,
그래서 우리 상징적인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신약에 와서 이 상징이 현실화 되었다는 것을 베드로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시편16장8절에 내가 하는 것은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 내가가 나중에 예수님입니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내가가 다윗이지만 지금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누구 오른쪽에 있다는 겁니까,
하나님 오른쪽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겁니다,
그것을 다윗이 환상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모습이 자기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9절에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분이 이렇게 하면서 그 육체가 음부에 버리지 않고 섞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0절에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3일 동안 이분이 음부를 방문했습니다,
이분이 환상을 다 본 겁니다,
음부에 내려가는 걸 봤는데 거기다 보리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다윗이 스스로가 음부에 내려갔습니다,
자기 모습을 보니까 그래서 거기서 내가 음부에서 죽는구나, 끝나는구나,
버림을 당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거기서 살아나는 부활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면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본인이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본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자기가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베드로를 통해가지고 성령님이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사도행전2장에서 베드로설교에서 이 말씀이 다윗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이렇게 다윗에게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성령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느냐 라고 고린도교회에다가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봐라 최소한 성경 세 곳에 아브라함에게 요나에게 다윗에게 이러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말씀하셨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나오는 말씀을 가지고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성서적으로 이렇게 증명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런 증명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한 후에 현실 속으로 다시 들어오는 겁니다, 바울이 부활을 증거 하기 위해서 현실 속에 들어와서 하시는 말씀이 신약에 와서 부활을 40일 동안 본 사람이 몇 사람인줄 아느냐 그러시는 겁니다, 그 사람의 명단이 쫘악 나오는 겁니다, 그게 고린도전서15장5절에서8절까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때가 언제냐면 주후55년경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주후30년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는 55년에 이 편지를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25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에베소에서 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고린도교회교인들이여 지금 이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 아느냐
그러면 5절에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러니까 실제로 본 사람이 우리가 전부 합해서 600명가량이라고 추측하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6절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랬습니다,
그러면 보세요, 25년 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지금도 500면 중에 대다수가 살아있다는 겁니다,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왜 하시느냐면 지금 이 사람들이 어디에 살아있습니까, 이 사람들대부분이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하시는 말씀이 고린도교회교인들이여 내가 지금 에베소에 있지만 당신들이 부활가지고 자꾸 말하면 내가 예루살렘에다가 연락해서 부활을 경험했던 분들을 배를 빌려서 배에 태워서 너희들에게 한번 데려갈까 이런 소리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너희들 앞에서 그분들과 부흥회 한번하게 할까,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의 상징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 거리도 아니고 그냥 전설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고 실제로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25년이 지난 오늘날도 부활에 대해서 목격한 사람들이 300명이상이 있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제자들도 그 당시에 다 살아계셨거든요, 대부분들이 그러니까 내가 그분들에게 부탁해서 배를 하나 빌려서 너희들에게 내가 가서 만나게 해줄게 이런 사도바울의 심정을 여기다가 토로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자유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육체적인 부활을 그것은 성서 속에서 내용을 영의 눈이 어두워가지고 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부활내용을 여러분들 마음 송에 가지고서 그리고 사도행전1장3절을 다시 봅시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저희에게는 약600명가량 됩니다,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 내사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을 이제까지 주욱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말씀을 공부할 때 한 절을 보고 거기에 쓰 있는 내용을 역사적인 측면에서 또 성서적인 측면에서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눈에 보이면 성서를 읽을 때 입체적으로 성서가 보이니까 아주 영성이 살아나게 되고 영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그리고 영적통찰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성경 공부하는 목적이 그것입니다,
그냥 지식만 집어넣은 것이 아니고 이런 걸 내가 이렇게 배우면서 성령님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이게 이렇게 되는 걸 알겠지 그러면서 본인이 성서를 읽으면서 영감이 생기고 통찰력이 들어오고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성서공부를 하는 겁니다, 보통 웬만한 분들은 20년.30년.40년을 하나님말씀을 공부했기 때문에 다 아는 이야기에 다시 듣는 경우가 많겠지만 다시 듣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영성도 키우는 그런 부분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하시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사도행전1장4절에 가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한번 봅시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어디에 모였습니까,
예루살렘에 이게 어느 날입니까, 40일 되는 날입니다 40일 되는 날에 저희에게 분부하시는 겁니다, 어떤 분은 어디에 모였을까, 그럴 때 아마 감람산에 계셨을 거다 그러는 겁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성전 동쪽에 있는 언덕입니다, 아마 그 언덕에 모여 있지 않나 이렇게 보는 분도 계십니다,
다시 4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이게 무엇입니까,
성경을 이렇게 예리한 눈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막연히 보지 마시고 도대체 예수님이 뭘 말씀하셨기에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게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복음14장16절입니다,
보혜사성령님을 너희들에게 보내 주겠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여기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셨다 그랬습니다, 왜냐면 아버지께서 성부하나님을 통해가지고 예수님께 전달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금 보혜사성령님을 내가 너희들에게 보내 주겠다고 하신 그날이 무슨 날입니까,
예수님이 마지막성만찬하는 그날입니다 성만찬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것들을 메모리하시고 또 이것을 입체적으로 성경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입체적으로 봐야지만 말씀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만찬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요한복음14장16절입니다, 보혜사성령을 보내주겠다는 겁니다,
제가 인간론에서 보혜사성령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말씀을 제가 다시 하지 않고 이날이 성만찬하는 날이니까 무슨 요일입니까, 이날이 목요일입니다 우리식으로 보면 목요일입니다,
그런데 유대 식으로 보면 목요일 저녁이기 때문에 금요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저녁6시가 되면 새날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하셨기 때문에 금요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식으로 보면 목요일 밤입니다,
이날에 뭐라고 그랬냐면 내가 너희들에게 언젠가는 보혜사성령님을 보내 주겠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하신 것이 언제 이루어지는 겁니까,
며칠 후에 이루어지는지 한번 봅시다, 금요일 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부활하시고 그리고는 40일 되는 날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한 43일 전에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언제 보혜사성령님을 주겠다는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10일 후에 보혜사성령님이 내려 오셨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그러면 정확하게 53일 후에 내려 오셨습니다,
이날이 오순절입니다, 이날에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성서는 역사를 모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옛날에 성서공부를 할 때 이런 식으로 안하고 평면으로만 하고 입체로는 우리가 배우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역사는 입체입니다 시간과 공간 모든 사건들이 연합된 입체로 된 겁니다, 그냥 평면적으로 보니까 영성이 낮아집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제멋대로 이해하고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5절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유명한 사도행전1장8절 말씀 우리가 다 알고 있잖습니까, 이 말씀을 우리가 다 아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첫째 왜 하나님이 성령세례를 주려고 그럽니까,
이 말은 뭐냐면 지상명령의 요건입니다 지상명령을 수행하려면 첫째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경험으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세례는 여러 가지 형태로 옵니다, 어떤 때는 물같이 오기도하고 어떤 때는 비둘기같이 오기도하고 어떤 때는 물같이 오기도하고 어떤 때는 바람같이 오기도하고 이런 식으로 성령의 만지심이 경험됩니다,
그래서 방언도 터지고 또는 눈물도 나오고 또는 회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이와 동시에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성령의 30가지 은사들이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성령세례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이걸 꼭 받아야 되는 겁니다, 성령세례를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랬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권능이 나타나는 겁니다,
권능은 파워라 그래서 헬라어로 두나미스라는 말입니다,
두나미스라는 말은 영어로 다이나마이트(dynamite),
다이나마이트(dynamite)는 조그만 폭탄이지만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폭발력을 다이나마이트(dynamite)를 내가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사람이 성령세례를 받으면 내가 다이나마이트(dynamite)가 되어가지고 그냥 퍼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세례를 받는 목적이 뭡니까,
내가 은사 받고 성령세례 받아서 기쁨을 느끼고 그냥 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내가 다이나마이트(dynamite)가 되는 겁니다,
지역적인 안배를 말씀하셨습니다,
다이나마이트(dynamite)가 되면 제일 먼저 지역으로 예루살렘으로 다이나마이트(dynamite)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은 내 민족입니다 내 고장입니다, 내 민족에게 먼저 다이나마이트(dynamite)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두 번째로 내 민족만이 아니고 그다음에 예루살렘에서 약간 넘어서 온 유대입니다, 그다음에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사람들과 앗수르 사람들과 피를 섞인 혼혈민족입니다, 사마리아사람은 우리주변에 있는 그의 문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우리주변국들입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는 목적은 이 순서대로 하는데 그런데 원어를 보면 예루살렘 엔드 온 유대 엔드 사마리아 엔드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면 예루살렘을 다 복음화 한 다음에 유대로 가서 다 복음화 한 다음에 사마리아로 가라는 이런 엔드가 아닙니다, 엔드는 동시 다발적인 엔드입니다,
예루살렘을 복음화하고 그길로 유대도 복음화 시키고 그길로 사마리아도 복음화 시키고 그길로 땅 끝까지 나가는 동시다발적인 앤드입니다,
그러니까 순서대로 이것 다한 다음에 다시 말하면 한국이 복음화 다 된 다음에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이나 북한으로 가라 이게 아닙니다,
그런 앤드가 아닙니다, 동시에 한국에 복음이 떨어지면 그길로 일부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 하고 일부는 유대를 위해서 사마리아를 위해서 나가라는 겁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런 부분에서 이것을 못했습니다,
이런 명령을 받았는데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부분에서 순종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디옥교회는 이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중에 천천히 보겠지만 이 말씀을 이렇게 보면서 나가서 전할 때 나를(예수를)전하는 증인이 되라는 겁니다,
그래서 증인이라는 말씀은 원어에는 순교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그냥 편하게 전하는 것이 아니고 순교를 각오하고 순교자가 된다는 겁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전하려면 그러니까 순교자는 하늘나라에 가면 제일 높은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높은 계급에 있는 분이 순교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적으로도 순교하는 것도 있지만 순교는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증인이다 하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희생입니다, 희생의 삶을 살아갈 때 증인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육적인 희생도 우리가 해야 됩니다,
금전적인 희생도 해야 되고 시간적인 희생도 해야 되고 그다음에 나에게 주신 모든 달란트를 가지고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희생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희생 없이는 예수의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희생하시면서 너희들 나를 따라와라 하셨으니까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대는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요건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증인대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항상 내가 손해보고 저 사람이 살아나는 것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입니다, 그냥 우리가 전도한다 하는 것도 선교한다 하는 것도 항상 희생을 요구를 합니다, 반대로 희생 없이 예수의 증인이 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보실 때는 증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 싫어하느냐면 개인주의자들 이기주의자들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내가 희생함으로써 저분이 잘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개인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주님이 안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겁니다, 목회자들도 똑같습니다,
목회자들이 자기의 어떤 욕심을 가지고서 자기의 어떤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달려가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사람일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내가 매일 점검해야 됩니다,
그것을 나와 같이 일하는 우리 스텝들이 압니다,
저분이 그런 사람이구나, 그러면 저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또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지인들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희생하면서 저분들이 나 때문에 잘되기를 바라면서 하는 그런 선교사들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럴 때 파워가 나오는 겁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파워가 이런 부분에서 사도행전1장8절 말씀 하나만 가지고도 그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깊은 마인드가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하라고 몇 사람에게 이야기했습니까,
600명에게 이야기했는데 이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 사람이 120명입니다,
15절에 보면 120명이 순종했습니다,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말한 베드로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120명과 600명과의 차이점입니다, 몇 퍼센트입니까, 약20%정도 됩니다,
이 20%라는 숫자가 상당히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난 사건을 실제로 몸으로 보여주고 그리고는 사람들이 이분이 대단한 분이라고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저분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죽으셨다가 살아났구나,
이것을 믿고서 따라다니는 사람이 몇 사람입니까,
600명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분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도 어느 순간에 기독교인이 되었냐면 예수님이 죽으시고 피 흘리는 그 순간부터 이분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피 흘린 사건이전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법적으로 등록이 된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피사건 때문에 이제 정식으로 등록된 사람입니다, 정식으로 천국생명책에 기록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약600명이었습니다,
600명이었는데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희생을 각오하고 순교자가 되겠다고 순종한 사람들은 20%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이 20%의 비율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2천년동안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이 명령에 순종했던 사람들은 많아야 20%입니다,
크리스천 중에서 그래서 어느 교회나 교인은 많지만 20%정도의 사람이 이 마인드를 가지고서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한다면 그 교회는 건전한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나 보면 오늘날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약5%정도 많아야10%선에서 그냥 왔다 갔다 합니다,
제 욕심은 우리교회가20%선을 넘어서 적어도80%가 이 대열에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그런 소망이 있고 그렇게 되어야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부분에서는 조금 약하지만 이 선교부분만은 우리가 누구보다도 더 앞장서야 되겠다는 거룩한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라는 것을 만방에 알려주기 위해서 또 주님 앞에 인정받기 위해서 우리교회교인들 약80%는 이 지상명령에 그냥 관심이 많고 지상명령을 위해서 시간으로 희생하고 물질로 희생하고 기도로 희생하고 달란트로 희생하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그리고 저의 소망이고 나의 비전이고 그렇게 될 때까지 저는 최선을 다해서 이 일에 전진하려고 그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SH79BVMOB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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