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15강, 마태복음에 나타난 아브라함과의 계약(1)(마4:12-17)
오늘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우리가 흥미 있게 보면서 마태복음 속에 아브라함의계약이 어떻게 숨겨져 있나 한번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를 때가 주전1500년 때입니다, 모세를 불려서 이스라엘사람들을 출애굽 시킨 후 모세가 광야생활을 그의 끝나갈 때 이스라엘사람들이 모세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많이 들었지만 이분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고 이런 일들을 40년 동안 해왔습니다,
그것도 두 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이분들이 과연 스스로가 자기 의지를 발동해가지고 그렇게 우상을 섬기고 또 하나님을 섬기고 했는가,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깊이 예정론 적인 측면을 볼 때 이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렇게 했구나,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40년이라는 광야생활인데 이분들이 이스라엘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면서 나중에 40년이 그의 끝날 때 말씀한 것이 신명기32장15절에서21절까지 보시면 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여수룬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사람들을 말합니다, 왜냐면 사랑을 받는 자들인데도 너희들이 나를 경멸이 여겨서 반석을 막치고 그랬다는 겁니다, 반석은 예수님이라고 그랬습니다,
성경 어디에서 반석을 막치고 그랬다는 겁니다,
반석을 예수님이라고 그랬습니다, 성경어디에서 반석을 예수님이라고 했습니까, 고린도전서10장4절입니다, 지난시간에도 했지만 계속해서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린도전서10장4절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사람들을 따라 다녔던 분이 누구냐면 반석의 모습으로 오신분인데 예수님이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반석을 통해서 물을 계속주고 이렇게 했는데 나중에 모세가 너무나 심신이 지쳐서 하도 이스라엘사람들이 모세를 괴롭히니까 또 이것주세요, 저것주세요 특히 40년 마지막 때 물을 주세요,
그동안 많이 주었는데도 또 그러니까 불평을 많이 하니까 모세도 화가 나서 반석을 향해서 말만하면 물이 나오는데 반석을 두 번이나 때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때린 겁니다,
그래서 반석을 경홀히 여겼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되니까 모세는 여호수아와 차이점이 뭐냐면 모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사람들을 무찌르면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다시 말하면 영적전투를 하는 일에 모세는 참여를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일이 뭐냐면 사도행전에서 오순절다락방사건을 통해가지고 오순절다락방사건 때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다시 말하면 오순절에서 성령세례 받은 것이 요단강을 건너는 일입니다, 똑같습니다, 날짜도 같습니다,
그래서 요단강을 건넌 후에 다시 말하면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세계선교가 그때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가나안 땅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냐면 가나안 땅은 신약에 와서 보면 지구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부터 시작해서 1세기 때 지구본을 점령하는 겁니다,
지구본에 사탄의 세력들이 지배하는 겁니다,
지구본을 점령하는 일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일입니다,
이때부터시작해서 가나안 땅을 여호수아를 통해서 점령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모세는 같은 하나님의 종이지만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일을 못했습니다, 왜 못했습니까,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 신경이 다 빠져가지고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일에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긴 가야된다는 걸 알지만 일에 너무 바빠 가지고 교인들이 이것저것 달라 하니까 40년 동안 그 교인들 뒷바라지하다가 가나안 땅 점령하는 것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하나님은 이스라엘역사를 통해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광야에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분들은 세계선교에 참여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고 여호수아처럼 오순절다락방사건을 통해서 이제는 세계선교에 어두움의 세계를 하나하나 점령해나가는 일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지도자들도 다르다는 겁니다,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다 있다는 겁니다,
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기능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40년 광야 생활하는 사람들은 여호수아 때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 때 광야 생활이 아니고 가나안생활과 달랐습니다,
어떻게 다르냐면 광야40년 동안의 사람들은 큰 외적이 많지가 않았습니다,
왜냐면 크게 영적싸움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가 않았습니다,
고작하다 보면 아말렉하고 싸움하던 생각이 납니다,
출애굽기19잘에서 그럴 때 아말렉하고 싸움할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냥 모세의 손만 들어 주었어도 되었습니다,
모세가 손만 올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이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도자 한사람이 그저 똑바로 서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전투요원들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런데 가나안 땅을 가기 전에 요단강을 건너자말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근방 여리고성이 앞에 보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일을 어떻게 했습니까,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번씩 돌았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되는 날에 일곱 번을 돌았습니다,
돈다는 것은 뭐냐면 마귀의 세력을 이렇게 묽어놓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를 하면서 마귀의 세력을 묽어놓는 겁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되는 날에 어떻게 했느냐면 양각나팔을 제사장이 들고서 불었습니다,
일곱 번을 돈 다음에 그러니까 여리고성이 악의 세력이 무너졌습니다,
양각나팔이 뭐냐면 양의 뿔입니다,
양의 뿔은 예수님의 뿔입니다, 뿔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위엄 그분의 권위 그것을 뿔로 항상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권위가 뭡니까,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양각나팔을 부는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니까 어두움의 세력들이 그대로 무너지는 겁니다, 그것도 일곱 번을 돌고 일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 숫자입니다, 완전 숫자는 하나님이 되었다 할 때까지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악의 세력을 무너뜨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요단강을 건너는 사람은 건너자말자 자동적으로 악의 세력이 쫓겨나가는 것이 아니고 건너자말자 할례루야 하다가 그길로 두려움을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계선교를 하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십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을 먼저 주십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은 어떻게 무너집니까, 주님께 의지하고 내 힘으로 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께 의지할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꼭 무너뜨려놓으십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다음에 교만해집니다,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교만해지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옆에 아이 성에 갔는데 아이 성은 조그만 성입니다, 조그만 성인데 그 성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교만해지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교만이 굉장히 무섭습니다,
그래서 아이 성에 들어가 가지고 그길로 거기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왜 참패를 당했냐면 나중에 성령님이 가르쳐주는 겁니다,
너희들 참패를 당한 이유는 거기에 죄 성이 있었다는 겁니다, 무슨 죄 성이냐면 거기에 아감이라는 사람이 물질일부를 자기주머니에 집어넣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에 그 안에 있는 모든 전리품들은 하나님 앞에 받쳐라 그랬는데 그것을 지도자 여호수아가 점검을 못한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아간이 그랬다는 것을 알고는 나중에 예수님이 그러십니다, 여호와께서 예수님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아간과 그 가족들 다 죽이고 자녀들과 가축까지도 다 죽이라는 겁니다,
그 죄의 성분을 다 죽여 버려 라는 겁니다, 그때부터시작해서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스토리를 읽어보면 아주 잔인합니다,
왜냐면 죄의 성분은 너희들이 적을 포획하였으면 다 죽이는데 가축까지도 다 죽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굉장히 잔인한 스토리가 여호수아서입니다,
40년 광야생활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냥 좋은 게 좋고 웬만큼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오순절다락방사건을 끝내고 하나님의 세계선교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죄의 성분이 있을 때 그때그때 해결을 먼저 보라는 겁니다, 마귀의 세력을 통해서 내가 죄를 지었지만 죄를 그때그때 회개를 할 때 능력이 나온다는 겁니다,
죄의 부분은 항상 우리를 따라 다니니까 죄는 항상 짓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그때 회개하라는 겁니다,
그걸 오래 가지고 있지 말고 그러면 바로나와가지고 어두움의 세력들이 쫓겨 나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아미(Ami)의 우리 사역도 죄의 성분이 빨리빨리 끝내 버려야 됩니다, 예컨대 죄의 성분 중에 우리가 가장 당면하고 있는 하나님의 공동체의 죄의 성분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를 들어서 사역자들끼리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제일 먼저 그걸 부탁합니다, 너희들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일에 내가 헌신을 합니다, 항상 화평을 깨고 이간질하고 힘을 빼는 이런 일들은 엄청난 죄의 성분입니다,
이것을 먼저 깨어야 됩니다,
회개를 해야 됩니다, 미움이 있는 이런 것들 이것만 해결해도 웬만하면 우리를 전투에서 아름답게 사용하도록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이 부분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군사들은 하나라도 깨어져버리면 전쟁을 못합니다, 전쟁은 한마음으로 지도자 중심으로 해서 하나가 되어가지고 나갈 때 힘을 쓰는 거지 뭐든지 이렇게 하나로 집중할 때 힘이 되는 거지 산발적으로 나갈 때는 안 되는 겁니다, 마귀는 그래서 흩트려놓으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피스 메이커가 되는 겁니다, 화평하게 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주어야 됩니다, 전투하는 사람들은 화평케 하는 일. 한마음 되게 하는 일을 이렇게 해가지고 계속해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영토를 넓혀가다가 다시 말하면1세기. 2세기. 3세기 주욱 나갑니다,
지금 전 세계복음화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가 사사기 때 들어와 가지고 또 사사들을 통해서 사사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사들은 본래 복음을 알고 있었지만 사사들은 부르기 전에 이스라엘사람들이 별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유가 뭐냐면 여호수아라는 사람은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종인데 모세와 차이점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차이점이 뭐냐면 모세는 여호수아나 갈렙이나 밑에 사람을 제자들을 잘 키웠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죽은 후에 후임자인 여호수아를 하나님이 쓰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훈련을 하나님말씀을 잘 전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전투는 잘 했는데 자기 일만 하고 후속 지도자들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게 여호수아의 단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되었냐면 뒤에 따라오는 장로들이나 지도자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그래가지고 하루아침에 이스라엘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를 잊어버렸다 그랬습니다, 사사기1장2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사람들이 하나님을 여호와를 잊어버렸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때부터 시작하여 우상을 섬기니까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사람들을 침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참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분들이 회개를 시작하는 겁니다,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이 영적지도자 한사람을 데려 세우는 것이 사사입니다, 그래서 기드온 같은 사람입니다,
기드온을 통해가지고 적군들을 다시 한 번 무찌르는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영토를 또 넓힙니다, 그러다보면 또 나중에 가서 입다 등 여러 명의 사사들을 왜 세우느냐면 이분들이 여호와를 잊어버리니까 또 적군을 집어넣어가지고 어려움을 줍니다, 그러면 또 회개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서 회개하게 한 다음에 또 영토를 넓히고 그러면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똑같이 6세기에서16세기까지 보면 꼭 사사시대 같습니다,
영토를 넓혀야 되는데 교회가 부패해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마귀도 섬기고 그러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났잖아요, 16세기에 이와 같이 종교개혁도 일언만 것이 예를 들어서 사사시대가 끝나면서 사울시대가 되는 겁니다,
사울 왕이 복음을 전하지만 이분이 영토를 넓혔지만 이분이 자기 욕심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종이지만 이분은 자기 자만심이 많았고 또 자기이익에 항상 집중되어 있었고 또 이분은 기름 부으신 안수 받은 하나님의 종이지만 이분은 주위에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보면 견디지 못했고 경쟁심이 강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다윗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는 종이라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이 화살을 빗나가게 했던 겁니다, 다윗 같은 하나님의 종은 어떤 종입니까,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안수 받은 하나님의 종이신데 그리고는 하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이 이 사람을 어떻게 하시겠지 그리고는 용서해주고 자비를 베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파워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쓰고 이분은 절대로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다윗이 밧세바를 통해서 죄를 짓게 하는 그러한 은혜도 주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 낮아지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 낮아지니까 하나님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솔로몬을 후계자로 한 겁니다, 다윗의 아들이 2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제일먼저 낮아졌을 때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낮아지니까 하나님이 너무 예뻐하셔서 그 밧세바는 이방여자입니다, 밧세바 몸에서 나온 아들 솔로몬을 하나님이 미리 다 예정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 다윗 같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다 이렇게 예정하셨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 때 가나안 땅을 다 점령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누구의 표상이냐면 예수님의 표상입니다,
그러니까 세계가 다 복음화 되려면 다윗이 나타나야 됩니다,
다윗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세계를 복음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다윗인 예수님이 재림해 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한 후에 헤브론에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도성을 잡은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왕 노릇을 하셨잖아요,
예루살렘에 도성을 잡으시고 이분이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랬잖아요,
성전을 지어라 그래서 이분이 자기 때는 짓지 않고 누구 때 지었습니까,
솔로몬 때 지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이제 가까이 올 때 똑같이 예루살렘에서 전 세계복음화가 그의 다 끝나 가면 예루살렘성전이 다시 짓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럴 때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이 비밀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40년 광야생활하면서 이분들이 우리가 다시 신명기32장으로 갑니다,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였냐면 너희들 이렇게 불순종하기에 내가 너희들에게 눈을 감겨 놓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20절을 다시 보세요,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이것은 예수님이 내가 너희들에게 내 얼굴을 숨겨서 내가 누군지 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아닌 나도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이 말은 이분들이 우상을 섬겼다는 겁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우상을 섬겼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상을 섬겼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질섬기고 명예섬기고 자기 권력섬기고 자기 유명한 것 섬기고 이런데 관심이 더 많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러니까 우리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힘든 게 뭡니까,
집사투표 할 때 명예 때문에 권사 뽑을 때. 장로 뽑을 때 그것 때문에 싸움하고 그것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고 왜 그럽니까,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 명예에 더 관심이 많은 겁니다, 교회를 떠나서 우리나라도 사장이 많다고 그러잖아요, 길가에 가다가도 사장님 하면 전부 뒤를 돌아선다고 그러잖아요, 길가에 가다가도 사장님하면 전부 뒤를 돌아본다고 그러잖아요,
리런 타이틀을 좋아하는 민족이 우리민족인데 그것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21절에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다시 말하면 백성이 아닌 사람이 이방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우둔한 민족이라는 것은 이방사람이라는 겁니다, 지금 여호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유대인들아 너희들은 눈이 감기고 나를 보지 못하고 백성이 아니라고 하는 이방인들이 나를 보고서 좋아 하겠다는 겁니다,
이방인들이 그럴 때 너희들이 속이 아파질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속이 아파서 진노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똑같이 내가 이방인들에게 복을 줄 텐데 이방인들이 나를 섬기고 좋아하고 복을 받았다할 때 너희들이 속이 아파할 것이라는 겁니다, 거꾸로 이게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못하면 유대인들이 저렇게 잘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을 떠났다, 우리는 이렇게 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복음이 유대인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이 유대인의 전유물이 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생각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고 우리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 가는 것은 싫다는 유대인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네 전유물로 생각해서 그러니까 이분들이 목이 곧았습니다,
이방인들을 우습게 알고 그런데 하나님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이방인에게 많습니까, 안 그러면 유대인이 많습니까, 이방인에게 더 많잖아요,
이방인인구가 전 세계인구의99.8%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더 관심이 있는 겁니다,
유대인에게도 관심이 있지만 유대인에게 만은 관심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을 어떻게 쓰시려고 그랬냐면 나중에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위해서 또 나중에 유대인들도 사랑해주기위해서 유대인들을 하나의 배우처럼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여화배우처럼 그렇게 하나님이 부르셨던 겁니다, 무대에서 하나님의 뜻을 연극으로 보여주는 이스라엘역사를 통해서 그러한 영화배우로 연극배우로 하나님이 차출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모세가 주전1500년입니다,
아브라함이 주전2000년에 아브라함을 불렸다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려가지고 이제부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어가지고 아브라함아 내가 너 후손들에게 유대인들에게 복을 주지만 너희 후손들을 통해서 나중에는 단수로 너희자녀들을 통해서 네 씨를 통해서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그럴 때 지난번에 말씀드렸습니다,
판타 타 에뜨네 (Panta ta Ethne) 이방사람들이 복을 받으리라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을 전해주는 통로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누가 먼저 받습니까, 유대인들이 먼저 받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은 소수만 구약전체를 통해 봐도 그렇습니다,
소수만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방으로 복음이 넘어간 후에는 유대인들이 다 눈이 감겨졌다가 이방인의 숫자가 다 차면 로마서11장25절입니다, 이방인의 숫자가 다 차면 유대인들을 하나님이 다시 부르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전체그림입니다, 이런 걸 우리마음 속에 두시면서 마태복음을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보면 지난시간에 제가 잠깐 말씀드렸지만 마태복음은 누구를 위해서 쓴 복음이냐면 유대인을 위해서 쓰신 복음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누구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교과서가 마태복음입니다, 이방인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속에는 끊임없이. 끊임없이 하나님이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유대인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지난시간에 우리가 공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어떻게 보여 주느냐면 우선 예수님의 족보에 여자가 네 분이 나옵니다, 다말이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라합이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룻이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밧세바 우리아의 아내 이 네 분의 여자가 나오고 그다음에 제일 마지막에 마리아가 나옵니다, 한분. 한분 제가 간단 간단하게 제가 설명하여 드리겠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이 네 분이 누구라고 그럽니까, 이방인입니다,
다말은 가나안여자입니다, 예수님의 조상으로 배경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다말이라는 이름이 두 사람이 있는데 첫째는 다윗의 딸 다말이라는 딸이 있습니다, 지금 말하는 다말은 가나안여자인데 야곱의 네 번째 아들 유다가 그렇게 좋은 분이 아닙니다, 이걸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골라 쓰실 때 여러 가지로 보는 것 같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유다의 아들이 엘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이아들의 부인이 다말입니다,
그런데 엘이 죽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다말이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과부된 자기 며느리에게 셋째 아들 셀라를 너에게 줄 테니 너가 셋째아들 셀라에게 시집가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마음속에 셀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 다말이 어떻게 했느냐면 다말이 창녀행세를 했습니다,
다말이 창녀행세를 하면서 갑자기 옷도 가라 입고 행동도 그런 식으로 하면서 다말이 자기 시아버지를 꼬셨습니다, 유다를 꼬셔가지고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래가지고 아이 벤 것을 보고 시아버지가 너 다른 남자와 관계에서 아이를 가졌구나, 하면서 죽이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다말이 시아버지 내가 가진 아이는 당신 아이입니다,
그래서 다말이 아이를 낳았는데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큰아들이 누구냐면 베레스라는 아이입니다, 마태복음1장3절에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그랬습니다, 이 두 쌍둥이를 낳은 겁니다,
자기 시아버지와 관계에서 지금 예수님의 족보는 큰 아들 베레스를 통해서 나오는 겁니다, 다말이 가나안여자에다가 창녀의 행세도 하고 자기시아버지와 관계에서 낳은 아이 베레스가 예수님의 조상이고 뒤에 나오는 다윗의 조상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순수한 의미에서 유대인입니까 아닙니다,
이방 피가 섞여있습니다, 그것도 족보가 안 좋은 겁니다,
왜 성경에서 예수님의 계보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이런 걸 보여 줄까요,
복음은 유대인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을 봐라 예수님이 겉으로 보기에는 유대인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전부 이방피를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피를 가진 분이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창녀 같은 다말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특수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너희들에게 주는 것이지 행위로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계보를 통해서 다 보여주시는 겁니다, 계보를 통해서 어떤 특수그룹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5절에 라합이 나옵니다, 라합도 가나안여자입니다,
라함은 어떤 여자입니까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정탐꾼을 숨겨 준 여자입니다, 가나안여자로 기생출신입니다,
그리고 룻은 모압 여자입니다, 모압 여자로 남편이 죽은 과부입니다,
그다음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히위족입니다,
그사이에서 솔로몬이 나왔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앞에 조상 할머니들을 봐도 별로 안 좋은 그 피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 어머니도 유대인이 아닙니다,
자기어머니의 본래 남편은 솔로몬과 관계도 없고 밧세바는 남편을 죽인 살인자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이런 모든 부분에서 볼 때 족보에서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관심도 있지만 유대인전유물이 예수님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족보를 통해서도 볼 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족보에서 족보만가지고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여러 가지 형태로 하나님이 형태로 만들어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시구나,
이런 모든 것을 볼 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여기 나오는 유명 인사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은혜 하나님이 내가 너의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도 내가 무조건 안아주었다 그러니까 이것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계획입니다,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것을 인간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탄생과정 속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은혜의 하나님이시구나,
나는 율법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은혜의 하나님이지만 뭘 보여주느냐면 복음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의 일부가 먼저 복음을 받은 후에 이 복음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가느냐면 이방인에게 간다는 겁니다,
왜 이방인에게 가야 됩니까, 이 지구전체를 다 복음화 시키려면 복음을 계속해서 이방인에게 가야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 한국에 오기 전에 미국에 있었습니다, 미국사람들이 볼 때는 이방인이 누굽니까,
비 미국인들은 다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선교사를 내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가 그 복음을 가지고 우리만 가지고 있으면 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 민족만 복음화 시키면 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 민족 외 타민족이 이방인입니다,
거기로 가야되는 겁니다, 그분들이 받아가지고 또 이방인에게 가야 됩니다,
그러면서 복음이 이 지구를 뒤덮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교. 선교하는 게 그래서 선교하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사람이 복음이 자기만족에게만 갔다가 거기서 타민족에게 안가기 때문에 복음이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원하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는 타 민족에 비해서 복음이 엄청나게 퍼진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기독교서점이 제일 많고 기독교출판사가 제일 많고 기독교TV가 있고 기독교라디오 방송국이 있고 기독교신문사가 있고 이 좁은 땅에 하나님의 복음이 제일 많고 목사도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유학을 가는 신학생들로 엄청나게 많고 미국에 가도 한국 신학생들이 제일 많습니다, 미국의 웬만한 신학교에 가면 3분지1이 한국 신학생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신학교 같습니다,
이게 왜 그렇습니까, 한국 사람들아 이제 너희들끼리 찌지고 볽고 하지 말고 이제는 복음을 가지고 나가라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인이 조금 많아지면 자꾸 건물을 새로 지으려고 그러지 말고 그 돈을 밖으로 내 보내어야 됩니다,
그걸 안 하면 주님이 다음세대에 가서는 그 교회는 하나님께서 흩트려 버리십니다, 그것을 과거2000년 기독교역사를 보면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렇지 않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소수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는 소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그러한 사람들 그러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저희들이 이렇게 지금 주님을 섬기는 겁니다,
그것을 역사를 봤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어떤 때는 별로 인기도 없습니다,
또 그런 것 하는 데는 사람들이 별로 모이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눈에 보이고 해야 되는데 선교라는 것은 눈에 안보이게 여기 있는 것을 남에게 주기 때문에 이게 빛도 없습니다,
당장 이게 손에 만져지는 것도 아닙니다, 마태복음2장으로 들어가 보세요,
마태복음2장에 보면 제가 지난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이 복음을 누구에게 먼저 보여 주었습니까 이방동방박사에게 보여주신 겁니다,
동방박사가 지금 이라크에 쿠르드족이 있습니다,
이 쿠르드족이 이라크와 미국사이에서 미국편을 들고 있습니다,
이 쿠르드족이 성서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이 쿠르드족입니다,
쿠르드족 사람들 주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쓰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쓰고 계십니다, 이 쿠르드족은 아직도 독립이 안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쿠르드족은 터키와 이라크와 이란과 시리아와 주변족속에 의해서 계속핍박을 받아가면서 독립이 안 된 족속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라크 북쪽은 미국을 통해서 하나님이 독립을 시켜줄려고 하지만 독립이 안 될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초림 때도 쿠르드족을 사용해서 동방박사를 통해서 이렇게 하시듯이 하나님이 재림 때도 쿠르드족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쿠르드족이 지금 미국편에 있지만 미국에서도 쿠르드족에 대해서 상당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속에 반 이슬람사람들과 싸움하는 쿠르드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훈련시켜가지고 미국편에 서서 싸움하도록 하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하나님이 사용하는 그러한 족속입니다, 하나님이 똑같이 재림 때 쓰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4장으로 넘어가보세요 예수님이 4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이 시험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시고는 12절부터보시면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지도를 보면 북쪽이 갈릴리호수고 남쪽이 사해입니다
예루살렘은 사해 꼭대기지점에서 서쪽으로26km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았던 광야가 어디냐면 사해북단에 여리고 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여리고를 중심으로 해서 서쪽을 광야지방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지방에서 시험을 받으시고는 그리고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느냐면 갈릴리지방으로 가시는 겁니다,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갈릴리지방으로 가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셨다가 나사렛에 들렸다 그랬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지방에 있는 예수님의 고향입니다,
갈릴리지방에 가셨는데 거기서부터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보세요,
12절을 보면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가버나움은 갈릴리지방 제일 북단에 있는 도시입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이 도시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선교센터입니다,
본인의 고향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주욱 계셨습니다,
가버나움에 가시는 장면입니다,
왜 가셨냐면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기위해서 가신다는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700년입니다, 700년 전에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분이 여호와 예수님입니다, 본인이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고는 그대로 이루시는 겁니다, 그래서 14절에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있는 땅입니다, 스불론 과 납달리는 누굽니까 12지파 중에 2지파를 이야기합니다, 이 두 지파를 여호수아가 이 지방에 배치했잖아요, 그때 이분들이 배치 받은 곳이 이쪽지방입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갈릴리 이 지역이 이스라엘사람들이 살지만 이방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가 갈릴리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누구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겠다고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고는 예수님이 이방갈릴리지방으로 가시는 겁니다,
그래서3년 공생애 동안에 예수님이 이방갈릴리에 사셨던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뭐냐면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다음에 이방사람들과 가까이 살고 있는 유대인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제자들을 고르시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계획인 겁니다, 예수님의12제자 중에11분이 갈릴리출신입니다, 이11명은 이방사람들과 많이 접촉하잖아요,
이게 왜 그렇습니까, 이방선교를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우리도 지금 매일 같이 이방사람과 먹고 자고 하니까 그분들을 봐도 이상하지가 않잖아요, 똑같습니다, 제자들이 이방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방사람들과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방선교를 하라 하면 이방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은 예루살렘사람보다는 나은 겁니다,
그래서 갈릴리사람들을 고르신 겁니다, 15절을 보세요,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분들은 누굽니까 이스라엘사람들이 이방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들 그늘에 앉은 자들 이게 다 이방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지방으로 가시므로 해서 그늘에 앉은 사람들 흑암에 앉은 사람들이 빛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갈릴리 지방에 살고 있는 이방사람들이 우선 빛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그걸 누가 말했습니까,
예수님이 이사야에게700년 전에 말씀하신 겁니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무엇을 봐야 됩니까,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보아야 됩니다,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그 속에 그런 게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조그만 예입니다,
성경은 이방선교에 관한 이야기만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17절에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는 것은 누굴 이야기하는 겁니까, 목적은 갈릴리에 살고 있는 이방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소수의 유대인들을 상대로 해서 하는 겁니다, 왜냐면 유대인을 통해서 이방으로 가기 때문에 예수님은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 땅으로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전하려 이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은 선교사입니다,
우리가 그럽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이시고 나에게 평화를 주시고 예수님은 나에게 평화를 주시고 예수님은 나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런 것은 다 지엽적인 이야기입니다, 큰 대명제는 뭡니까, 선교하러 오신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먹으라, 내가 십자가에 피를 흘릴 테니 그 피를 받아먹으라, 그것을 전하려 오신 겁니다, 나머지 일들은 받아먹는 사람들이 삶을 사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 이런 것들은 지엽적으로 해결해주시는 분이지 큰 대명제를 해결하는 것은 피를 받아먹으라,
선교하라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칫하다보면 큰 것을 놓쳐버리고 작음 것을 가지고 비비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큰 것은 뭐냐면 그 피를 받아먹는 너희들은 이방에 가서 그 피를 나누어주라는 겁니다, 나누어주고 그 사람들을 키워서 또 나가게 해라 이것이 우리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이시고 아브라함과의 계약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4장23절부터 보세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주님이 지금 다니면서 병을 고치는 이유가 뭡니까,
병 고치는 사람의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병자들 앉은뱅이들 소경들을 고치잖아요, 영적인 의미로 이방사람들의 대표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는 이런 사람들은 다 유대인들이 보는 이방인들은 병자들이다 어린아이들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대인 앞에서 그런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자꾸 고쳐주는 겁니다, 선교적인 측면에서 고쳐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고쳐주면서 예수님이 하실 때마다 단편적으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 안에 복선이 깔려있습니다,
하실 때마다 육적인 의미가 깔려있고 혼적인 의미가 깔려져 있고 영적인 의미가 깔려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 부분에서 봐야 합니다,
성경을 볼 때 단적으로 보면 안 됩니다,
육적으로 보면 안 되고 육의 병만 고쳐주셨다 그렇게 보면 안 됩니다,
이 세 부분을 볼 줄 알아야합니다
25절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그랬습니다,
이게 결론입니다, 데가는 헬라어로 10이라는 소리입니다,
데가 폴리스 하면 도시가 10개라는 소리입니다, 데가볼리는 이방 땅입니다,
이방 땅에 도시가 열 개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데가 폴리스라 그럽니다,
갈릴리 건너편은 전부 이방 땅입니다,
이쪽에 가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초기에 복음을 이방사람에게 전했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소수만 따라다니고 5장6장7장은 우리가 알다시피 산상보훈입니다, 산상보훈은 유대인 제자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 훈련하는 교본이 5장6장7장입니다,
다음시간에 8장부터 제가 본격적으로 마태복음에 나타난 아브라함과 계약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그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zxOaTQzNRys
'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 > 창조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강,마가복음16장15절, 예루살렘교회 태동배경(1) (0) | 2019.10.03 |
---|---|
16강, 마태복음8장1절-12절, 마태복음에 나타난 아브라함과의 계약(2) (0) | 2019.10.03 |
14강, 에베소서3장1절-8절, 그리스도의 비밀 (0) | 2019.09.26 |
13강,로마서11장2절-7절, 유대인과 이방인의 신비로운 관계 (0) | 2019.09.26 |
12강, 아브라함과의 계약 (0) | 2019.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