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시리즈 4강. 왜 바울의 도우미로 바나바를 예비하셨나? (행4:36-37, 11:22-26) 2021년5월23일 말씀
우리가 계속해서 바울시리즈로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바울과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바나바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그럽니다.
우리가 이번시간에도 그렇지만 다음시간에도 계속해서 바나바에 대하여 공부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시고 도대체 바나바가 어떤 사람인가 왜 바울에게 이런 분을 붙여 주셨냐?
이런 부분을 우리가 한번 상고할 터인데 이 부분을 상고할 때 우리가 항상 공부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큰 두 줄기가 있음을 항상 배워왔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예정론 적 줄기와 또 인간의 자유의지가 중심 되는 인간책임론 적 접근방법 알미니안주의라고 그럽니다. 이 두 접근방법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론 적 차원에서 말씀을 공부하고 있고 이와 같이 오늘도 바나바의 스토리를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오늘 섭력해보려고 그럽니다.
우리가 바울을 이야기할 때 바울을 왜 부르셨냐? 이런 질문을 우리가 던집니다. 이분을 부르시기 전에 나중에 바울도 깨달았지만 예레미야서1장5절에 예레미야도 나중에 깨달았지만 예레미야 당시는 바벨론포로시대 때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는 바벨론포로사건을 내가 디자인해놓고 지금 디자인이 일어나고 있는 이때 너를 선지자로 내가 선택했는데 이것은 너 어머니 태에 형성되기 전에 이미 내가 너를 예정했단다.
그런 말씀을 예레미야서1장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바울도 깨닫고 아하! 내가 내 어머니의 태중에 형성되기 전에 내가 1세기 때 로마제국을 복음화 하는 사역자로 내가 이렇게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바울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갈라디아서1장1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바나바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나바도 우연히 나타난 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큰 디자인 속에서 바나바를 예정하시고 때가 되어서 바울을 만나게 하는 이런 큰 그림을 오늘 한번 같이 봤으면 하는 그런 소원으로 제가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숲을 보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큰 숲을 보면서 내 바로 앞에 있는 나무도 꽃도 이렇게 보는 원격으로 보면서 또 가까이 있는 것도 보는 이런 훈련을 이 시간에 하려고 합니다. 바울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바울을 사용해가지고 로마제국을 복음화 하는 일을 시키려고 이분을 이렇게 어머니 모태에 있기 전부터 미리 아시고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로마제국을 복음화 하는 일에 그런데 로마제국을 복음화 하는데서 바울이 할 역할이 있습니다. 바울이 무슨 역할을 하느냐면 이분은 로마제국에 있는 소위 이방인들 각 족속들을 그 당시 유대인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빼놓은 나머지 로마제국에 사는 모든 족속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정체성을 전하는 일을 맡은 분이 누구냐면 바울인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2장7절에 바울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나는 이렇게 할례 받지 않는 사람들을 복음화 하는 일에 사용 받는 사도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에 있는 열두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지도자들은 뭐하는 분들인가? 그분들은 바울과 사명이 달랐습니다. 이분들은 유대인 복음화와 로마제국에 흩어져있는 디아스포라유대인들을 복음화 시키는 일에 집중적으로 사용 받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서2장7절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선생이나 야고보나 이분들은 디아스포라와 유대인들을 상대로 복음화 하는 전문직을 가진 분들이고 바울은 나머지 세계족속들을 향해서 복음전하는 이런 전문직을 가진 분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건을 바울이 다메섹에서 개종할 때 아나니아에게 예수님이 저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 준 겁니다. 그러면서 아나니아에게 하시는 말씀이 저 사람은 이방인왕들과 또 유대민족들과 이방인들에게 나를 증거 할 나의 도구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문성이 어디에 있느냐면 이방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뭐냐면 사도행전1장8절과 마태복음28장19절입니다.
만민에게 할 때 판타타 에뜨네(Panta ta Ethne) 타민족들에게 비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문성을 가진 분이 바울로 그렇게 디자인된 분이십니다
이와 반대로 유대인들에게 디아스포라에게 복음을 전하는 분은 열두제자들과 그와 관계되는 예루살렘그룹들입니다 이런 큰 그림 속에서 바나바를 등장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 팀들과 베드로 팀들 사이에서 바나바를 등장시키는 겁니다. 오늘은 이런 초점을 가지고 우리가 바나바를 섭력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선 바나바는 바울과의 관계에서 보면 도우미로 상당히 큰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바울이 바나바에게 빚을 많이 진 자입니다
바울이 크리스천이 된 후에 제일 먼저 도움을 받은 분이 누구냐면 바나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바울에게 바나바는 어떤 분인가? 라고 질문을 던지면 제가 볼 때 일곱 가지 부분에서 정리가 될 수 있습니다
첫째 바나바는 바울에게 최고의 은인입니다 바울이 로마제국 복음화를 하는 일에 아주 은인역할을 한 분이 바나바입니다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볼 겁니다. 두 번째로 바나바는 아니니아에게 보여준 바울이 로마제국복음화에 큰 그릇이라는 것을 아나니아 환상에서 보여주었잖아요. 이 환상을 성취하는데 기초 석 역할을 한 분이 바나바입니다. 아나니아가 이 그림을 봤잖아요.
바울도 봤지만 로마제국복음화를 해야 되는데 로마제국복음화를 구체적으로 기초 석 역할을 해주었고 주춧돌 역할을 하신 분이 바나바입니다
세 번째는 바울이 3년 동안 아라비아에 있다가 다메섹에 올라갔다가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왔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를 소개시켜주신 분이 바나바입니다 네 번째는 뭐냐면 바울이 주후35년에 개종하고 10년 후인 주후45년에 바나바가 다소로 바울을 찾아가서 안디옥교회에 전도사로 임문시켜주신 분입니다 10년 동안 외롭게 고생하다가 교계 안으로 입문시켜주신 분이 바나바입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에 부사역자가 된 겁니다.
로마제국복음화에 바울을 사용하기 위해서 도우미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 도우미가 바나바라는 것을 제가 강조하는 겁니다. 항상 누구든지 여러분들 개인적으로도 저도 마찬가지고 항상 바나바 같은 사람을 꼭 붙여주십니다 혼자서는 못하게 하십니다. 혼자하면 교만해지고 또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나약성이 있고 한계성이 있기 때문에 혼자 못합니다.
항상 옆에 바나바 같은 도우미를 붙여주십니다. 바울도 지금 그런 모습으로 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다섯 번째는 바나바를 통해서 교회사에서 처음으로 바나바와 같이 이방선교사로 임명받습니다. 그게 1차 선교여행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ABA에서도 공부하고 사도행전에서도 많이 공부했지만 그다음에 여섯 번째로 바나바가 선교지에 가가지고 리드 십을 바울에게 넘겨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기도 모르게 이방선교지도자가 된 겁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 1차 선교여행이 끝나고는 다시 안디옥으로 귀환해가지고 있을 때 바울이 1차 선교여행 때 가르쳤던 바울신학에 대한 여러 가지 논쟁들이 있을 때 열두제자들도 그 논쟁 속에서 바울을 의심스러워했습니다.
바울신학에 대해서 그래서 주후49년에 예루살렘총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예루살렘총회를 하기 위해서 바울을 데리고 열두제자들 앞에 모시고 가서 바울신학이 제대로 된 성서신학이라는 것을 변명해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열두제자들이 바울신학을 수용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신학이 다시 말하면 율법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은혜로 구원 받는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신학이 정립된 것이 예루살렘총회인데 이것을 뒤에서 자리매김해준 분이 바나바인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까지만 봐도 바울에게는 바나바가 엄청나게 중요한 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바나바가 바울의 도우미역할을 하게 지시 했는가? 또는 디자인 했는가?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첫 대답이 뭐냐면 예수님이 다메섹에서 아나니아에게 환상으로 오셔서 말씀해준 겁니다.
사도행전9장15절에 이렇게 아나니아가 우선 예수님에게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하! 바울이 이런 분이구나라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추측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바나바에게도 분명 나타나셨을 거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바나바가 바울을 도울 수 있잖아요.
바울의 정체성을 알아야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추측하는 겁니다.
아하!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도 나타났는데 바나바에게도 분명 나타났을 거라고 보는 겁니다. 만약에 바나바에게 안 나타나셨다면 아나니아가 바나바에게 분명 자기가 본 환상을 알려주지 않았나. 라고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아나니아가 바나바에게 저사람 대단한 사람이다 저사람 유럽을 이방인들을 완전히 복음화 시킬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는 큰 그릇이라고 아나니아가 바나바에게 말하는 않았나. 라고 우리가 추측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는 예수님에게 직접 들었던 또는 아나니아를 통해서 들었던 바나바는 바울이라는 저 사람이 분명 대단한 큰 그릇이구나 로마제국을 복음화해야 되는 상당한 그릇이라는 것을 바나바가 알았다고 전제를 하는 겁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이분이 도우미역할을 했던 겁니다. 네가 도와주어라는 명령까지 받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가 바울을 열심히 돕지 않았나. 라고 우리가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또 질문이 있습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궁금증이 풀어지는 겁니다. 설교라는 게 궁금증을 푼 다음에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여기에 앉아 있잖아요.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면서 내가 이 세대에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말씀을 공부하는 겁니다.
그러면 질문을 던집니다. 왜 바울이 바나바의 도움이 필요했는가? 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왜 바울이 바나바의 도움이 필요했는가? 하나님의 주권적 디자인 속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렇게 도움이 필요하도록 디자인 한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 바울의 입장에서 도우미 바나바가 필요한가? 그러면 첫째가 뭐냐면 태생적으로 바울이라는 사람은 예루살렘에 있는 열두제자들과 당시 교계지도자들과 동역을 할 수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동역을 해야 되는데 왜냐면 열두제자들은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일을 하는 분들이고 바울은 나머지이방인들을 공략하는 동역 자들입니다 로마제국을 복음화하려면 이 두 팀이 동역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바울이 예루살렘 팀들과 동역할 수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게 문제인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동역을 못하느냐면 첫 번째 바울이란 사람이 예루살렘개척교회가 한참 성장할 때 스데반집사를 순교시킨 장본인입니다 사도행전7장58절에 그러니까 예루살렘교회를 어지럽혀 놓은 장본인입니다
두 번째로 예루살렘교인들 집집마다 다니면서 예수님을 못 믿게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8장1절에서 3절에 보면 예루살렘교인들을 다 흩트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약2만 명의 예루살렘교인들이 유대지방과 사마리아와 시리아지방과 터키전역으로 흩트려버린 장본인이 바울인 겁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팀들이 볼 때는 바울에 대한 감정이 엄청나게 나쁜 겁니다. 같이 동역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닌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예루살렘 팀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들이 있습니다. 뭐냐면 자민족중심적인 사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타민족과 관계하지 않는 유대민족우월사상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화적한계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예루살렘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사도행전1장8절 말씀을 알고는 있지만 순종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과 고작해야 주변 유대지방에만 왔다 갔다 하면서 복음을 전했지 사마리아까지도 가지 못하는 머리구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니까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들보고 중국에 가라면 갑니까? 일본가라고 그래도 안 가잖아요 여기서 강원도 가라고 그래도 안 가잖아요 그게 우리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두제자들 예루살렘 팀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강제로 땅 끝까지 흩트려버려야 되는 게 예수님의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제로 흩트려놓는데 누구를 사용하였냐면 바울을 사용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주님의 뜻은 모르고 그냥 자기가 한 것뿐입니다
이것 때문에 태생적으로 예루살렘 팀들과 바울과는 관계가 아주 나쁜 관계입니다 서로가 같이 일을 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뿐 아니고 또 어떤 관계냐면 바울은 금 수저출신입니다 가말리엘의 제자고 소위 인텔리인데 반대로 예루살렘 팀들은 흙 수저출신으로 문화적 교육적 사회적배경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디자인을 해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방민족을 섬기는 로마제국 안에서 전문가로 하나님이 디자인해놓으시고 예루살렘 팀들은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유대인들을 복음화 시키는 전문가그룹으로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그러니까 두 팀 다 전문성이 있는데 이것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겁니다. 왜냐면 이런 태생적 아픔을 서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로 만드는 일을 주님께서 언젠가는 누굴 통해서 하셔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사용하였냐면 바나바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예정 적으로 바나바라는 사람을 만들어 낸 겁니다. 그래서 바나바라는 사람은 예루살렘 팀들과 관계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래 바울과는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왜냐면 바나바도 예루살렘교회출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를 관계성을 좋게 하기위해서 중간역할로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바울과 좋은 관계가 되도록 하나님이 미리미리 예비하셨습니다. 기가 막히게 그래서 예비하신 것을 보시면 첫 번째 뭐냐면 환경적으로 예비하셨습니다.
오늘 공부하는 이 내용들을 우리삶 속에 그대로 적용하고 오늘날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이런 것을 다 적용하는 연습을 하셔야 됩니다.
첫 번째 뭘 예비하셨습니까? 환경적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공통문화 속에서 서로 살도록 예비하셨습니다. 그래야지만 하나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공통문화권에서 태어나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유대종교를 믿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인에서 베냐민지파입니다 빌립보서3장5절에 그랬습니다. 바나바는 어떤 지파냐면 사도행전4장36절에 레위지파입니다 제사장지파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더 센 분입니까? 레위지파가 더 센 분입니다 그러니까 바나바가 더 센 지파에 속해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분 다 유대종교를 열심히 믿었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공통문화권에 뭐가 있느냐면 두 분 다 유대인이지만 디아스포라출신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 디자인하셨습니다. 디아스포라로 동일지역에서 디아스포라 삶을 살게 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바나바는 구브로에서 태어나게 했습니다. 사도행전4장36절에 보면 구브로 출신이다 그랬습니다.
바울은 어디 출신이냐면 구브로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길리기아지방 다소라는 도시에서 태어나게 하고 거기서 자라났습니다. 사도행전22장3절에 보면 그렇기 때문에 같은 디아스포라지만 두 분이 공통점으로 동향사람들입니다.
저도 디아스포라출신 중에 하나지만 미주지역의 디아스포라하고 오세아니아지역에 디아스포라하고 유럽이나 일본이나 중국디아스포라하고는 다르잖아요. 같은 디아스포라이지만 같은 지역에 있으면 더 가까운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디자인하셨습니다. 세 번째 공통적으로 바나바와 바울을 디자인시킨 게 두 분 다 금 수저출신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등교육을 받고 부모님들도 다 디아스포라 중에서 금 수저출신들이고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면 바울에 대해서 우리가 다 알고 있지만 바나바를 보면 디아스포라지만 바울처럼 예루살렘에 와서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집안은 예루살렘에 부동산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분이 개종해가지고 부동산일부를 팔아가지고 헌금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4장37절에 그뿐 아니라 바나바의 누이가 누구냐면 마가의 어머니입니다 골로새서4장10절에 보면 마가의 외삼촌이 바나바였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마가도 금 수저집안으로 마가의 어머니는 유명한 마리아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마가의 다락방이라 그럽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큰 부동산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 마가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첫 예루살렘교회가 탄생이 된 겁니다. 오순절 때 120문도가 모여가지고 기도했던 장소가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예컨대 그럼 누구의 집입니까? 마가의 어머니 집으로 바나바의 누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도 금 수저출신이지만 바나바도 금 수저출신입니다
같은 디아스포라출신인 이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네 번째 공통점이 뭐냐면 예루살렘에 유학파들입니다 다섯 번째 공통점으로 나이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바울이 항상 그분을 높였던 것을 보면 바나바가 약간 연장자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과 바나바와 공통점을 보고 있습니다.
이래야지만 바울과 바나바와 관계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항상 같은 고향출신 같은 지방출신 같은 학교출신 그게 나쁘지 않습니다. 성서에서도 보면 우리인간은 그런 걸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인간은 그런 문화적인 한계성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환경적으로 보면 뭐가 있느냐면 공통종교인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러면 바나바가 언제 기독교인이 되었냐면 제가 볼 때는 오순절다락방에서 120문도 중에 한분이 바나바였을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는 오리지널기독교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교회가 주후30년에 개척되었잖아요.
바울은 5년 후인 주후 바울은 언제 개종했습니까? 5년 후 주후35년에 개종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게다가 바나바가 피스메이커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뭐냐면 예루살렘 팀들의 열두제자는 아니지만 바나바는 열두제자들을 뒤에서 도와주었던 분입니다. 부동산이 많기 때문에 열두제자들에게 자금을 데는 집안입니다 누이인 마리아가 다락방도 제공하고 그다음에 바나바가 땅을 팔아서 2만 명의 가정교회교인들을 뒤에서 헌금하는 이런 일들을 하기 때문에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이런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재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은 마리아와 바나바가 뒤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도록 하나님이 이렇게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는 예루살렘 팀들과 바울 팀과 가까이 만들려면 양쪽을 잘 아는 바나바 같은 사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중간에서 피스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똑같이 이런 원칙이 적용이 됩니다. 이뿐 아니라 두 번째로 예비 된 것이 인격과 성품 적 측면에서 바나바를 피스메이커로 사용 받느냐면 사도행전11장24절에 바나바는 어떤 사람이냐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뭐냐면 저사람 쓴 뿌리가 별로 없는 사람이야 또는 본성이 착한 사람이야 또는 본성이 깨끗한 사람이야 또는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가정환경 속에서 쓴 뿌리를 많이 가지지 않고 자라난 사람이야 이렇게 우리가 재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1장24절에 그랬습니다. 저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바탕이 마음이 깨끗하니까 성령 충만해지는 것은 쉬운 겁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선한 사람이다 성령 충만하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대인관계가 좋았던 사람입니다 사도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예루살렘교회교인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항상 화평케 하는 일을 했고 항상 긍정적인 이야기만 해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4장36절에 아주기가 막힌 말씀을 하였습니다.
누가가 뭐라고 표현했냐면 사도들이 다시 말하면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사도들이 바나바를 보고 뭐라고 그러느냐면 저사람 이름을 우리가 바꾸어주자 본래이름은 요셉이라는 이름입니다. 별명을 바나바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가 진짜 이름이 아닌 겁니다. 바나바다 그래놓고는 괄호를 쳐놓고 바나바가 위로의 아들 또는 격려해주는 아들 또는 화평케 하는 아들이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가 가면 싸움이 없어지고 화평케 되고 분위기가 좋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이 사람에게 이런 별명을 붙어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해결사인 겁니다. 결론적인 야기입니다 바나바를 왜 준비시켰습니까? 예비시켰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차원에서 또는 하나님의 예정적인 차원에서 로마제국을 복음화 하는 두 팀이 태생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인간들입니다 이걸 미리 인간이이기 때문에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한번 피해를 보거나 이러면 끝까지 용서 못하고 관계를 잘 가지지를 못하는 태생적인 인간의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을 전지하신예수님이 다 아시고 특히 로마제국을 복음화 해야 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다른 두 그룹을 최대한으로 하나로 묶어주는 일을 해야 됩니다. 로마제국을 복음화 시키려면 다른 전문성을 가지고서 그렇기 때문에 중간 피스메이커가 한분이 꼭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 피스메이커로 하나님이 바나바를 선택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하나님의 주권적 예비입니다. 우연이 아닌 겁니다. 제가 결론적인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도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항상 보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신앙노선이 다르고 교회가 지향하는 것이 다르고 종말론이 서로가 다르고 그래가지고 자기가 배운 것 자기가 좋아하는 종말론 외 다른 것은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분은 그런 것 배우지 말라 우리교회에서 하는 것만 배워라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인간의 약한 부분입니다
자기가 아는 것 외에는 그러니까 교단이 이렇게 많은 겁니다. 전 세계 교단이 약3만개 정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단을 보면서 인간은 이런 문화와 정치와 환경 속에 지배를 받은 피조물인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교단이 많고 교리가 많고 뭐가 많고 그래가지고 서로 다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나바를 보면서 뭘 우리가 보게 되느냐면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교단이 많고 교리가 달라도 예수님 안에서 지금 이 세대 우리는 뭘 해야 됩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외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지금 우리의 일은 뭐냐면 예수님의 재림을 외치는 겁니다. 왜냐면 바울시대는 로마제국복음화를 외쳤습니다. 오늘날 세계복음화를 하면서 재림 전에는 어느 정도 세계복음화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외치는 사람들은 종말론이 다르고 교리가 조금 다르더라도 후 천년주의자만 빼놓고 서로가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바나바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교회는 다른 모든 것들을 우리가 다 수용해주면서 소위 후 천년주의만 수용 안하면서 우리는 융합주의를 이야기하잖아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저 같이 융합사상을 가진 바나바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고 이런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엄청나게 많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국내에서는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있다가 해외 나가서 10년 정도 살다보면 융합사상을 다 가지게 됩니다. 왜냐면 아하! 우리가 우물 안에 개구리였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교인들은 우물 안에 개구리가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바나바사상을 항상 가지고서 예수님께서 이 세대에 바나바사람들을 많이 예비시키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시고 우리도 바나바 영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되기 때문에 오늘 제가 이 말씀을 이렇게 정돈해드리는 겁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바나바의 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을 섬기는 저는 항상 이런 사상을 여러분들에게 주입시키려고 애쓰는 것 아시죠.
그러니까 우리 그룹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릇이 크진 겁니다.
예레미야가 1장5절에 그 당시 바벨론사건 당시에 자기가 선교사로써 사역자로써 예언자로써 디자인 된 것이 어머니의 태중에 있기 전이었다. 그랬습니다. 이분이 그것을 여호와께서 예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가르쳐준 겁니다.
이분이 엄청나게 깨달은 겁니다. 참새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다가 큰 숲을 본 겁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에게 그러는 겁니다. 예레미야야 지금 너의 민족이 바벨론에 잡혀가지고 고생하고 있는데 이게 다 내 디자인이란다. 그러는 겁니다. 이 큰 그림을 보면서 그러면서 예레미야가 하시는 말씀이 예레미야10장23절 이 말씀을 우리 기독교인들이 좋아하는데 이 말씀은 큰 그림을 이해한 예레미야 같은 사람이 이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입니다 오! 주여 인생의 길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아니함을 내가 안다는 겁니다. 인생의 길은 그의 걸음을 인도하는 사람이 나에게 그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내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내가 내 자유의지를 가지고 걸음을 걸어가지만 뒤에서 그것을 인도하고 컨트롤하고 디자인하신 분이 여호와라는 겁니다. 인간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사건도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고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이분이 깨달은 겁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언16장9절에서 솔로몬도 부인을 700명 첩300명을 만들고는 나중에 이분이 이것 때문에 혼쭐났다가 나중에 깨달고는 잠언을 쓰실 때 그러는 겁니다.
사람의 마음에 자기의 길을 자기가 계획하나 예수님께서 그의 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가 계획하나 실제로 자유의지를 지배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디자인해가지고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솔로몬이 그 전에 처음지혜를 받았을 때는 제가 볼 때는 혼적인 지혜입니다 세상지혜를 받은 겁니다.
세상지혜를 받고 이러다 보니까 아주 유명해지고 나중에 이분이 스스로 부패해 져버린 겁니다. 그러다가 회개하고는 이분이 깨닫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았을 때는 잠언을 쓸 수 있었고 전도서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이럴 때 이분이 깨달은 겁니다. 아하! 하나님이 주시는 이 지혜를 받으니까 내 자유의지를 컨트롤하는 분이 뒤에 계시구나.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모든 것이 움직여나가지 내가 내 의지를 작동해서 하는 게 아니구나.
이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우리 크리스천들은 내 의지 속에서 그냥 사는 겁니다. 그렇지만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면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가 바울시리즈를 공부하잖아요. 바울도 로마서7장까지는 자기 자유의지에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오호라 나는 곤구한 사람이로구나. 그러다가 8장에 들어오면서 이제는 영적아들이 되는 겁니다.
그때부터 이분은 아하! 모든 것이 합해져서 선을 이루는구나. 그러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똑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걸 깨달으니까 이때까지는 네로 왕을 나쁘게 봤는데 알고 보니까 그 네로 왕도 세상의 모든 왕들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이 다 만들어 가지고 저 놈이 저렇게 나쁜 짓을 하게 하는구나 이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13장에 쓰신 겁니다. 그 후부터는 일체 이야기를 안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디모데에게 가르치고 디도에게 그걸 가르쳐주는 겁니다. 똑같이 우리도 이런 큰 그림을 보잖아요. 이 큰 그림을 볼 때마다 예레미야가 고백한 거나 솔로몬이 고백한 거나 이것을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런 걸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면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같은 게 아닙니다. 분량이 다릅니다. 항상 제가 강조합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분량이 다릅니다. 그걸 바울이 로마서12장에서 영적아들이 되었을 때 깨달은 게 바울입니다 12장에서 같은 하나님의 자녀지만 은혜가 다르고 은사가 다르고 믿음의 분량이 다르구나. 그릇의 종류와 사이즈가 다 다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우리는 큰 그림을 보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비하심을 보면서 숲을 보면서 그다음에 내가 조리개를 가지고서 현미경시각으로도 세상을 보고 내가 원하는 각도로 세상을 보면서 내가 이것을 소화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결론 중의 결론은 바나바를 하나님이 디자인하셨습니까? 안 하셨습니까? 디자인 하신 겁니다.
은혜로 왜 바나바를 디자인하셨나? 예루살렘 팀들이 해야 될 사명이 무엇이냐면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를 복음화 하는 일입니다 그분들이 로마제국에 퍼져있습니다 그다음에 바울 팀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을 복음화 하는 사역입니다 이 두 팀이 태생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미리 다 가르쳐주시고 그렇지만 이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을 해라 그러기 위해서는 중간에 바나바를 디자인하셔서 바나바를 세워가지고 이 일을 하시는 예수님의 큰 그림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계속해서 바울을 공부할 터인데 바울은 그릇측면에서 볼 때 바나바보다 훨씬 적은 그릇이었습니다.
그것은 다음시간과 그다음시간에 계속해서 볼 것입니다 바나바가 훨씬 큰 그릇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바울을 때를 따라서 바나바를 통해가지고 그릇을 넓히는 연습을 하는 모습을 우리가 또 보게 될 겁니다.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성령님! 도와주셔서 우리가 이런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주시고 큰 그림 속에서 로마 제국을 복음화 하는 큰 그림 속에서 바울 팀과 예루살렘팀에 여러 가지 그 속에 있는 역동적인 관계를 보는 시각을 우리에게 주시고 이것을 그대로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재림 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두 그룹이 있어서 어떤 때는 더 많은 그룹들이 서로가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그것을 비평하기 전에 그것을 소화를 못하는 분은 그대로 놓아두는 연습을 하고 소화를 할 만한 사람들에게는 잘 가이드해주는 바나바역할을 하는 그러한 우리가 되도록 지혜위에 지혜를 허락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 유명한 바울도 초창기에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안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안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릇이 큰 사람이 큰 바울로 만들기 위해서 바나바를 붙어준 겁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 부분을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삼위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바나바에게 주신 영성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왜 바울의 도우미로 바나바를 예비하셨나? (행4:36-37, 11:22-26)
1. 지난주 설교를 간단히 복습합시다. 왜 신령한 경험들을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까? 점검기준은 무엇입니까?
2. 바울에게 바나바는 어떤 분입니까?
3. 누가 어떻게 바나바가 바울의 도우미역할을 하도록 지시 하셨습니까?
4. 왜 바울은 바나바의 도움이 필요했습니까?
5. 화평케 하는 도우미시명자로 주님께서 바나바를 어떻게 예비하셨습니까?
환경적 예비와 인격, 성품적 예비로 설명해 봅시다.
6. 왜 바울의 도우미로 바나바를 예비하셨습니까?
7. 바울은 나님의 주권적 예비하심을 어떤 믿음으로 받아 드렸습니까?
(렘10:23; 잠16:7)
8. 바나바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wLbcvh1xu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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