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시리즈 5강. 개종14년, 아직도 옛사람을 버리지 못했던 바울 (갈2:1-14) 2021년5월30일 말씀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아멘
우리가 바울시리즈를 공부하면서 바나바와 관계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바울과 바나바와의 관계를 조금 더 심도 있게 한번 다듬어 보려고 그럽니다. 우리가 항상 이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지난시간에도 말했지만 어떤 각도로 이분들을 우리가 보고 있느냐면 예정 적 주권적 시각에서 보고 있습니다. 알미니안적 사고가 아니고 자유의지적인 인간의 책임적인 시각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미 다 예정하셨고 주권적으로 주관하신다는 차원에서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바나바를 지난시간에 봤습니다. 바나바가 예수님을 통해서 바울에 관한 모습을 보았다 또는 들었다고 우리가 전제로 하고 또 바나바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라는 것도 바나바가 이미 다 보았다 알고 있었다는 전제로 오늘말씀을 계속하려고 그럽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나바 이분은 로마제국전체가 복음화가 되어야 된다는 큰 그림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았느냐면 복음이 유대인들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유대인들을 통해서 이방으로 복음이 흘려가면서 로마제국에 있는 많은 족속들이 복음화가 될 것이라는 큰 그림을 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가 본 것은 우선 본토에 유대인들과 또 디아스포라유대인들이 복음화가 되어야 되고 또한 이분들만 복음화가 된 것이 아니고 로마제국으로 퍼져나가야 되는데 그래서 이분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이 각 족속들이 복음화가 되는 이 그림을 바나바가 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가 볼 때는 예루살렘에 사도그룹들이 사명이 있는 겁니다. 사도그룹들의 사명은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예루살렘교회가 핍박을 받게끔 디자인하시고 예루살렘교회를 흩트려버리신 겁니다. 그래서 전 터키지방까지 교인들을 흩트려놓으시고 거기서 디아스포라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그리고는 디아스포라유대인들 우리 같으면 이민교회들입니다 이분들이 그 주변에 있는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렇게 디자인된 것을 바나바가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입장에서는 열두 사도들과 또 예루살렘교인들은 상당히 중요한 분들이다 이런 사명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한계가 있다면 뭐냐면 이방사회로 뚫고 들어가는데 약했던 겁니다. 이방족속들에게 들어가서 할 만 한 분을 예수님께서 바울이라는 사람을 임명하셨습니다. 그것도 이분이 알았습니다. 제가 볼 때는 예수님이 바나바에게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메섹에서 바울이 개종할 때 아나니아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가 분명 바나바에게도 다시 확인시켜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입장에서 보면 바울도 필요한 분이고 또 사도들도 필요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입장에서는 이 두 그룹들을 잘 엮어야 되는 하나로 묶는 일들을 해야 되는 사명을 가졌던 분입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도 봤지만 이 두 그룹이 바울 팀들과 사도들 팀들이 서로가 환경의 차이 때문에 별로 좋은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것들 때문에 그런 공부들을 지난시간에 하면서 다른 이 두 그룹을 하나로 묶어야 되는 사역이 바나바의 사역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로마제국이 제대로 복음화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나바가 볼 때는 자기사역이 상당히 중요한 사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도구기 때문에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이미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주권적으로 예정된 분이기 때문에 이분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아주 성품을 그런 성품으로 만드신 겁니다. 바나바가 이 일을 감당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사도행전11장24절에 이분의 성품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성품이 좋은 분으로 화평케 하는 분으로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본래이름이 요셉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열두 제자들이 이분이 하도 화평케 하는 일을 잘 하니까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바나바로 이 말은 격려해주는 사람 화평케 해주는 사람 이런 의미입니다
바나바라는 뜻이 이름까지 이렇게 바꾸어 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는 자기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가졌던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가 이런 사명자인데 바나바를 제가 볼 때 거룩한 고민이 무엇이냐면 로마제국복음화를 위해서 이 두 팀이 하나가 되어야 되는데 두 팀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부분이 이분의 고민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서로가 불편한 관계니까 바나바가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앞장서서 로마제국복음화를 해볼까? 이 사람들은 도저히 관계가 안 좋으니까 아예 내가 해볼까? 이런 마음도 가졌을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게 이분의 고민입니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니까 자기는 이런 자질을 가진 사람이 아닌 것을 스스로가 알았습니다.
바나바가 자기 자신을 보니까 이게 자기 자신의 고민입니다
뭐냐면 자기는 성품이 진취적인 성품이 아닙니다. 로마제국을 복음화를 하려면 타 문화권에 들어가서 전투정신이 있어야 되는데 성품상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돌다리도 이렇게 두들겨 가면서 건너는 성품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성품을 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개척정신이 없는 사람인 것을 자기스스로가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앞장서가지고 깃발 들고서 야! 나따라와라 하는 그런 성품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어떻게 할 때 편하냐면 남이 해놓은 걸 따라가면서 정돈시켜주면서 뒤에서 다듬어주는 일에 특별히 자기사명감을 가지고 성취감을 가지는 이런 스타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는 뒤에서 도와주는 분이지 격려해주고 뒤에서 교통정리해주는 분이지 앞장서가지고 달려가는 그래서 나를 따라와라 하는 그런 사람은 자기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바나바 같은 사람이 있고 바울과 같은 사람이 있고 베드로 같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에게 하나님이 주어진 본성을 우리가 극복 할 수 없습니다. 그걸 인정해주어야 됩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자기가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분은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는 성품을 바울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고 베드로 팀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바울에 대해서 메시지를 바나바가 받았거든요.
저사람 이제 로마제국을 향해서 뛸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의 입장에서는 바울을 예루살렘 팀들과 잘 만나가지고 서로 좋은 관계를 맺어가지고 하나가 되어 가지고 이 일을 하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성령님이 바나바에게 주셨던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바나바가 바울이 다메섹에서 개종한 그때 이분이 이미 가졌습니다. 바울이 개종하고서 3년 동안 아라비아로 내려갔잖아요.
바울이 내려갔을 때 그때부터 제가 볼 때 바나바가 바울을 위해서 아마 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저사람 이제 주님이 만지세요. 바울이 3년 동안 외롭게 있을 때 뒤에서 계속 중보기도로 도와주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바울이 사명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지금은 주님이 아주 외로운 사람으로 디자인하셔서 훈련시키는 것도 다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3년이 끝나가지고 다메섹으로 돌아온 소식을 예루살렘에서 들은 겁니다. 바울이 지금 다메섹으로 다시 올라갔구나. 그럴 때 아나니아에게 아마 연락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나니아야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라
내가 적어도 베드로와 야고보를 소개시켜주어야겠다 이분들을 서로 화해를 시켜주어야겠다 왜냐면 불편한 관계였거든요 바나바가 볼 때도 그렇고 열두 제자들이 볼 때도 사울이라는 저 사람은 자기네교회를 흩트려놓은 분입니다
예루살렘교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이 불편한 관계를 잘 해소시켜주시는 일을 바나바의 마음에 주셔가지고 바나바가 바울 당신이 3년 동안 고생했는데 다메섹에 있지 말고 예루살렘으로 내려와라 내가 관계개선 해줄게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내려 왔습니다. 내려와 가지고 관계개선을 완전히는 못했지만 일단락 오해는 조금 풀게끔 해드린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렇게 볼 때 베드로도 찜찜했고 야고보도 찜찜했을 겁니다.
사울을 옛날 생각하면 한바탕 내가 해줄 텐데 라는 생각하면서 서먹서먹하게 만남이 끝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가 봐도 관계를 이 정도 밖에 자기가 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 이상 발전시킬 수 없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왜냐면 아직 하나님의 정해진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그래가지고 언제 다시 만나느냐면 이분들이 예루살렘에서 만난 것이 주후38년입니다 그리고는 이때부터 10년 가까이 바울은 바울대로 훈련받고 베드로 팀들은 베드로 팀대로 훈련 받다가 10년 가까이 되었을 때 서로 다시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0년이 훈련기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면 사도들은 10년 동안 38년부터 49년까지 49년은 예루살렘 총회하는 때입니다 이때까지 서로가 떨어져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선 우리가 10년 동안 열두 사도들 베드로 팀들이 어떤 훈련을 받았을까요. 베드로 팀들은 주후32년에 스데반집사가 순교 당했고 33년에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졌습니다. 이때부터 이분들의 제자들이 약2만 명이 교인이었다고 우리가 보고 있는데 어디로 흩어졌습니까? 유대지방과 사마리아지방과 시리아지방과 오늘날 레바논지방과 그리고는 터키의 길리기아, 실루기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터키지역 전역으로 쫘악 흩어져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흩어진 게 주후33년입니다 바울이 개종한 게 35년입니다
그러니까 바울 개종 전에 이미 다 흩어졌습니다. 흩어졌을 때 이때부터 열두제자들은 흩어진 교인들을 따라다니면서 소위 방문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가가지고 자기네의 이민교회를 디아스포라교회를 개척하다보니까 우리나라교포들도 마찬가지지만 교회 개척을 하면 목회자도 필요하고 그 안에 조직이 필요하고 이러다보니까 서로 지방색이 다르고 배경이 다른 사람들끼리 흩어져서 외지에 왔으니까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야기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열이 있었고 미움이 있고 또 교인들이 세속화되어서 헌신 자들이 많지 않았고 교인들 간에 서로가 고소하는 사건도 있었고 교인들 안에서 서로 성적으로 타락한 사건도 있었고 고린도교회에 보면 그런 게 보입니다. 대부분이 영적으로 유아들이었고 선데이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정문제가 많았던 교인들도 많았고 또는 야고보가 보면 소득의 격차도 있었고 그 안에서 돈 말 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분이 가난했고 거기다가 신학이슈들도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신학이슈들 기독론과 삼위일체론과 부활론과 이런 것들 가지고 서로가 다투고 그러니까 디아스포라교회가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나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교회에 방문 오셔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십시오 하니까 열두 제자들이 그 당시는 비행기도 기차도 없으니까 말 타고 걸어서 이 먼 길을 다니면서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이런 사역들을 해왔던 기간입니다 그러니까 열두 제자들에게는 상당히 고생스러운 기간입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이민교회 바깥에서도 왜냐면 예수 믿는다는 그것 때문에 바벨론 종교를 믿었던 분들 그 안에 유대인 그룹들이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디아스포라들을 엄청난 핍박을 했습니다. 인종차별도 하고 사회적으로 불이익도 매기고 종교차별을 하고 그것 때문에 재정적 불이익도 주고 예수님 때문에 아이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이런 모든 일들을 교회 안에서도 문제가 있었지만 교회 밖에서도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이 이분들 방문 다니면서 교통 정리해 주느라고 바빴습니다. 그러니까 10년 동안 열두 제자 그룹들도 상당한 스트레스 속에서 목회를 하였던 기간입니다 그러니까 속으로는 항상 사울이란 저놈이 우리를 이렇게 흩트려 놓아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먼 길을 오가면서 고생을 하고 우리교인들을 저렇게 고생시킨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 원망을 하겠습니까? 바울을 원망하는 겁니다.
저놈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고생을 한다. 이분들이 바울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바나바는 알고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이런 감정을 가졌던 기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한번 만났지만 방문목회라는 것은 상당히 힘든 목회입니다 특징을 보면 방문목회라는 것은 목회자 입장에서 보면 자기 고정 멤버가 없는 겁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본부라고 있지만 아주 소수만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본부교회가 헌금도 잘 안 겉치고 가끔가다가 홍수나 기근이 오면 헌금이 없어가지고 이민교회들이 헌금을 해가지고 도와주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도와주는 그러니까 열두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자존심이 엄청 상하는 겁니다, 자기네가 보태주어야 되는데 거꾸로 보탬을 받고 디아스포라교회에 의지를 해야 되는 이런 상황에 있었던 분들입니다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기간입니다 방문목회를 하면서 그뿐 아니라 방문 목회를 하면 목회자들의 가정문제들이 있는 겁니다. 항상 떠돌이 여행자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냥 집에 두고는 일 년 열두 달 그의 나그네 생활을 하는 이런 특성을 가졌던 기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동안은 바나바 소개로 예루살렘에서 만난 게 주후38년입니다
이때부터 10년을 계산하면 49년에 예루살렘총회에서 다시 만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만난 후에 자기고향다소로 갔습니다.
그 후 언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느냐면 예루살렘총회 때 만났으니까
그게 49년입니다 약10년 후에 다시 만나는 겁니다. 그런데 그 10년 전후로 그 기간 동안에 열두제자들이 받아왔던 스트레스들과 훈련을 제가 지금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10년 동안 바울이 받아왔던 훈련이 무엇인가 우리 간단하게 봅시다. 우리가 지금 이런 공부를 하는 것은 이게 웬만한 사람은 우리설교를 못 알아듣습니다. 연도가 나오고 뭐가 나오고 역사적인 배경이 없으면 이걸 못 알아듣습니다. 사역자들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인들은 알아듣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38년에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고는 자기고향 다소로 갔습니다. 다소에서 엄청나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영적으로 어린아이 단계라 그랬습니다. 영적 유아기는 개종한 35년에서 38년까지 기간을 영적유아기라 그러고 다소에 도착해서 3층천을 구경한 41년까지를 영적어린아이기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소에 도착한 것이 영적어린아이기로 진입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38년에 영적어린아이기로 진입해가지고 41년에 3층천 올라간 그때까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41년에 3층천을 구경한 겁니다. 그때부터 소위 안디옥교회사역자로 불려간 것이 45년 이 기간을 영적으로 사춘기로 본 겁니다.
그래가지고 안디옥교회에 도착해서부터 영적청년기로 들어가는 겁니다.
청년기는 군대에 가는 나이입니다 전투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때부터 이분이 풀타임 사역자가 되어가지고 그때부터 영적전투 로마제국복음화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서 안디옥교회에 도착한 것으로 볼 때 바울이 41년에 3층천을 구경하고 영적사춘기가 끝날 45년에 바나바가 찾아와가지고 바울을 안디옥교회로 초청받아서 안디옥교회에 부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1년 동안 부사역자를 하다가 46년에서 48년에 1차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군인으로써 로마제국복음화에 영적전투를 시작한 겁니다.
1차 선교여행을 끝나고는 예루살렘총회에 참석했습니다. 예루살렘총회에서 10년 만에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와 야고보도 10년 동안 훈련 받았고 바울도 10년 동안 훈련을 받은 후에 예루살렘총회에서 다시 만난 겁니다. 예루살렘총회에서 결정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가르치는 바울신학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바울이 이때부터 신이 났던 겁니다. 이제는 예루살렘총회에서 내가 가르치는 내 신학을 인정해주니까 선교지에 다니면서 자기가 가르칠 때도 아주 자유스러웠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날개를 단 겁니다.
날개를 이분들이 달아 준 겁니다 인간적으로 어떻게 보면 괘심한 놈인데 그래도 주 안에서 날개를 달아주자. 그래가지고 날개를 달아 주었는데 제가 볼 때는 바나바가 뒤에서 역할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바나바가 베드로선생님 야고보 선생님 그러지 말고 날개를 달아 줍시다. 이제부터 날개를 달아주고는 당신들과 바울 팀과 하나가 되어서 로마제국복음화를 같이 합시다
이런 마음으로 날개를 달아 주고는 바울이 바나바와 같이 안디옥교회로 올라 온 겁니다. 안디옥교회에 와가지고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바울신학을 토대로 해가지고 49년에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게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서를 썼는데 오늘은 간단하게 갈라디아서를 보면 바울이 아직도 성품이 변하지 않은 모습이 거기에서 보입니다. 10년을 훈련을 받았는데도 그리고 열두제자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안아주었는데도 바울선생님이 아직도 옛날 성품그대로 있는 것을 갈라디아서에서 보여 줍니다 제가 오늘 결론적인 말씀이면서 또 본론의 말씀입니다 간단하게 보면 바울이 옛 성품이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49년이면 바울이 개종해서 몇 년이 되었습니까?
개종해서 14년이 되었는데도 예 성품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옛 성품이 뭐냐면 이분이 열두제자들 특히 베드로나 야고보를 볼 때 우습게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엘리트의식 때문에 아직도 엘리트의식이 그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마음 속 깊이 사도들을 깔보는 게 있었습니다. 사도들을 무시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또 뭐가 있느냐면 쓴 뿌리가 있는 게 자기가 개종을 했을 때 한 번도 축하메시지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마음에 섭섭함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개종을 했을 때 쌍수를 들고 축하한다는 이런 메시지를 하지도 않았던 것에 대한 왜냐면 바울입장에서는 나는 이제부터 유대종교를 포기하고 유대종교를 믿던 동역 자들과는 원수가 되었으니 이제 기독교에 들어 왔는데 너희들이 나를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느냐 그것 때문에 나 홀로였다는 바울에게 아픔이 있는 겁니다.
섭섭함이 있고 그러니까 예루살렘방문 때도 홀대받은 것에 대한 기억이 있고 바나바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걸 게 있고 거기다가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잠깐 보겠지만 바나바를 보는 시각이 제가 놀랍습니다. 바울이 바나바를 보는 시각을 보면 바나바가 그렇게 수고를 했는데 그렇게 자기를 아껴주고 자기를 여기까지 인도했는데 바나바에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전혀 감사표시도 없고 바나바의 도움을 당연시하는 이런 부분이 거기에 보이면서 바나바를 알기를 우습게 아는 이런 모습이 갈라디아서에 보면 보입니다.
이분이 자기 신학이 정돈이 되고 이러니까 교만 끼가 들어갔던 것이 보입니다. 이게 바울의 모습입니다 갈라디아서2장1절부터10절에 그 모습이 먼저 보입니다. 나중에 꼭 보시길 바랍니다. 갈라디아교회에다가 편지를 쓰면서 누구에게 편지 썼느냐면 자기가1차 여행 때 개척한 갈라디아교인들에게 편지를 쓴 겁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교인들에게 뭐라고 말하느냐면 내가 예루살렘총회에 갔었단다. 이런 말을 합니다. 갔을 때 거기에 야고보와 게바(베드로)와 요한이란 분들도 계셨는데 너희들이 이 사람들을 기둥같이 여기지 그러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단어입니다 너희들이 이 사람들을 기둥같이 여기지 갈라디아교인들아 그러니까 빗대는 표현입니다 나는 그 사람들을 기둥같이 여기지 않는단다. 이런 말을 써놓았습니다. 그래놓고 뭐라고 그러냐면 이 사람들은 복음의 대상이 고작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정도란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전 로마제국을 상대로 하는 이방선교사란다 예수님이 그렇게 임명했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비교를 어떻게 하느냐면 갈라디아교인들아 나는 너희들이기둥같이 여기는 이 어른들보다 내가 한수 위란다 이런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더 큰 사역자란다는 교만한 마음이 거기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인 것을 우 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성품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엘리트의식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이 떠나지를 않는 겁니다.
갈라디아서2장1절에서10절에 보면 그게 나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교인들에게 두 번째로 이야기하는 게 예루살렘총회가 끝난 다음에 안디옥교회로 올라왔잖아 그런데 조금 있다가 베드로와 바나바와 다른 팀들과 같이 안디옥으로 올라 왔단다. 그리고는 만나고 교제를 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 내가 보니까 이 사람들이 아주 기똥찬 행동을 하더라. 무슨 기똥찬 행동을 하느냐면 베드로와 바나바와 이런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를 했단다. 특히 베드로가 이방들과 식사를 하는데 야고보가 자기 제자들을 데리고 음식을 먹는 베드로가까이 오니까 베드로가 놀래가지고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하면 안 되게 되어 있는데 하면서 일어나가지고 같이 안 먹은 체 하면서 뒤로 물려나는 모습을 바울자신이 봤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자네들끼리 서로 눈치 보면서 그때 바울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갈라디아교인들에게 내가 그때 베드로에게 내가 꾸중을 하고 책망을 하고 면박을 했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베드로보다 훨씬 더 센 자라는 것을 은근히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냐면 갈라디아서2장14절에 그랬습니다. 베드로에게 이런 말 했단다 하면서 인용을 했습니다.
베드로 당신은 유대인으로써 유대인처럼 살지 아니하고 이방인들의 방식으로 살면서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도록 강요하느냐 이렇게 바울이 말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베드로보다 더 영적으로 센 선생님이이라는 것을 은근히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바울과 베드로를 성인이라고 그러는데 아직 성인이 아닙니다. 이걸 딱 보면 놀라운 게 이렇게 베드로가 바울에게 꾸중을 받은 겁니다.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서에 보면 바울이 그다음에 사도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바나바까지 질타를 했습니다. 성서에 보면 바나바도 간접적으로 꾸중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요즘 말로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성품그대로 나오는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제가 이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누가 더 훌륭합니까? 이 모습에서는 내가 볼 때는 사도들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아 바나바가 나 같으면 바울과 싸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베드로나 야고보나 바나바는 무반응이었습니다. 반응이 있었다는 성서에 기록이 없습니다. 대들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들었으면 관계가 더 깨어져버리는 겁니다. 영원히 같이 일 못할 수도 있습니다. 대들어가지고 이런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야! 버릇없는 이놈아 누구에게 이런 짓을 하느냐 네가 누구냐 이놈아 은혜도 모르고 우리가 너를 얼마나 도와주었느냐 이놈아 네 신학도 인정해주고 바나바가 너를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느냐 그런데 이런 말을 안했다는 겁니다. 이분들이 이런 말을 안 했으니까 누가 더 훌륭합니까? 제가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바나바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 당시 그 상황 속에서 바나바가 그 상황을 보면서 이랬을 겁니다.
나는 분명히 예수님께 베드로 팀들은 로마제국복음화를 위해서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를 전문적으로 사역해야 되고 그다음에 바울 팀들은 이방인들을 전문적으로 사역을 해야 되는데 이렇게 관계가 서먹서먹해졌으니 어떻게 하지 바나바입장에서는 상당한 딜레마가 있었을 겁니다. 이게 점점 힘들어지는구나. 연합이 쉽지가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서를 이렇게 자세히 보면 49년 이 사건이후부터 예수님도 손을 드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손을 드신 것을 어떻게 아느냐면 그 후부터 바나바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후부터 바울은 홀로서는 연습을 시키십니다. 바울 너는 독불장군으로 혼자 뛰어라 예수님이 너는 안 되겠다.
그래서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뭐냐면 예루살렘 팀들과 너는 같이 일 못하겠다. 그리고 바나바하고도 일 못하겠다. 왜냐면 바나바도 성품이 좋은 사람이지만 이제는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어떻게 제자들 앞에서 바나바 욕을 하느냐 너의 은인인데 바나바도 사람인데 분명히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바울은 독불장군으로 2차 선교여행 3차 선교여행 앞으로 4차 까지 독불장군이었습니다. 이분들의 도움이 연합이 없었습니다.
독불장군으로 일하면서 항상 동역 자들을 붙여주었습니다. 바울과 같이 일할 수 있는 성품이 좋은 사람들을 바울이 강한 분이기 때문에 강한 사람을 붙여놓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강한 바울에게 디모데 같은 아들 누가와 같은 사람 실라 디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다 착하고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루디아, 에바브로, 에바브로디도, 두기고, 빌레몬, 오네시보로 이런 분들 다 착한 분들입니다 바울에게 충성하는 이런 분들만 바울에게 붙여 줘가지고 로마제국복음화에 기여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가 직접 바울과 동역했다는 소리가 그 후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도 손을 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나바를 어떻게 했느냐면 바나바는 바나바대로 이제는 실망가운데서 바울 저 사람은 안 되겠구나. 나는 예루살렘 팀들과 교제하면서 나는 내 일을 해야겠다,
그래서 이분은 자기고향 구보로에 주로 가서 복음화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성서에는 안 나오지만 기록에 보면 주후61년에 바나바가 살라미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습들을 우리가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게 있습니다. 첫 번째는 뭐냐면 연합사역이 쉽지 않구나. 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이런 주님이 선택한 예정한 사람들이지만 인간의 본성 때문에 연합사역이 쉽지가 않구나.
특히 바나바와 같은 착한 사람이 중간에서 그렇게 노력을 해도 이게 연합사역이 잘 안되는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 번째로 무엇을 깨닫느냐면 아하! 사람은 그릇의 사이즈가 다르구나.
그릇의 모양도 다르구나. 사람은 은혜의 분량도 다르구나. 은사의 분량도 다르구나. 믿음의 분량도 다르구나.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성화속도가 느리고 어떤 분은 성화를 이 단계까지 하고 주님나라에 가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은 빠른 속도로 성화하는 사람도 있고 이게 다 다르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또 깨닫는 것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아무리 거룩한 분이라도 그러니까 이걸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세요. 사람은 목회자가 되었다고 그래서 변하는 게 아닙니다. 목사라고 그래서 신학박사라고 그래서 저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아닙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그럽니다.
그러니까 기대하지 마세요. 목사들에게 선교사들에게 장로들에게 권사들에게 기대하지 마세요. 타이틀만 달라진 거지 그 속을 들여다보면 똑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인정할 때는 모든 사람을 내가 소화하고 안아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럽니다. 저 목사님 설교 잘 한다. 저 사람은 인격이 괜찮겠지 하는데 아닙니다. 들여다보면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전도 잘 한다.
아닙니다. 성경 잘 가르친다. 아닙니다. 다 그놈이 그놈입니다 이걸 아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사람을 그렇게 보셔야 됩니다.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연습을 하셔야 됩니다. 있는 그대로 황 목사님 저 사람 우리 목사님이고 연세도 어느 정도 되었고 말씀도 재미있게 잘하시니까 우리와 다르겠지 아닙니다. 나도 여러분들과 똑같습니다. 다를 것 별로 없습니다.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기도 많이 한다. 저 사람은 어쩌고저쩌고 그걸 믿지 마세요. 저 사람은 기도하는사람이야 저 사람은 귀신 쫓아내는 능력이 있네.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더 자랑하고 그것 때문에 사람이 더 못되게 놉니다. 그기에 속임을 당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했습니다. 보이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조심하라는 겁니다.
왜냐면 자기 속사람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니까 이게 변질되어 버립니다. 사탄이 그런 사람에게 들어가서 데리고 놉니다.
천국 구경했다 지옥 구경했다 할 수 있지만 그걸 자랑하고 혼자만 끼고 있어야지 주변 사람에게 조용히 이야기만 하는 거지 그것을 온 사방팔방에 이야기하고 내가 오늘도 예수님말씀 들었다. 뭐라고 그러시더라. 내가 물어보니까 무슨 말씀하시더라. 그걸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 수천 명이 물어보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유튜브에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변질 되어 버립니다. 악령이 들어가 가지고 데리고 놉니다. 이런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사람은 그런 경험을 했다고 그래서 변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 바울을 보세요. 바울이 언제 변했습니까? 바울이 주후55년에 고린도 전 후서를 썼습니다. 그리고는 로마서를 57년에 썼습니다. 로마서를 쓰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7장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 속에 죄의 법도 있고 성령의 법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7장까지가 제가 볼 때는 고린도 전서 후서를 썼을 때 55년과 똑같았습니다.
로마서를 쓴 것이 57년이지만 로마서8장을 쓰는 57년부터가 이분이 영적아들이 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8장에서 영적아들수준에 올라왔을 때 바울이 변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57년에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개종해서 몇 년 후입니까? 22년 동안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변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연륜을 봐야 합니다.
내가 모태신앙도 아닌데 어쩌다가 예수님이 나에게 오셔가지고 내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천국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람들 저는 안 믿습니다. 연륜이 필요한 겁니다. 제가 그런 연륜을 가진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성령님이 나에게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제가 만약에 나이가 40대50대60대라고 그러면 이런 말 하면 건방집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보니까 40대50대60대까지도 제가 봐도 건방집니다. 여러분들은 건방지면 안 됩니다
아는 체하고 괜히 까불고 이러지 마세요. 내가 이제 다 알았다 하면서 큰소리치지 마세요. 앞으로 한참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깨달은 것을 바울을 통해서 깨닫는 게 무엇입니까? 연합사역이 잘 안되는구나.
이것이 각자의 사이즈가 다르구나. 분량이 다르구나. 사람은 근방 변하지 않구나. 직분 자가 되면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신학자가 되고 하면 더 힘들어집니다. 교만이 들어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장로라고 그래서 목사라고 그래서 선교사라고 그래서 전도사라고 그래서 그냥 변했다고 가정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리한 눈으로 그 사람을 보면서 있는 그대로 앉아주는 연습을 하시라는 겁니다.
절대로 비평하거나 그러지 마시고 또 은사체험을 했다고 그래서 그냥 그대로 믿지 마시고 은사체험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그기에 양신이 역사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악령과 성령이 동시에 역사하기 때문에 정말 조심하셔야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보셔야 되는 겁니다. 오늘 주제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개종한지 14년이 되었는데도 바울이 왜 옛 모습그대로나 그러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서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을 제가 이렇게 복습을 여러분들과 같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성서적인 가르침을 항상 묵상하시면서 주변사람들을 볼 때나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 안 드는 사람들을 볼 때나 또는 어떤 분을 보면 저분은 어느 수준이구나. 저분은 바나바 같은 사람이구나. 저분은 바울 같은 사란이구나. 저분은 베드로스타일이구나 이렇게 보면서 사람들을 내가 읽는 겁니다. 읽고는 그걸 가지고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있는 그대로 존경해주고 사랑해주고 그런 지혜 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겁니다. 자기 잘났다고 떠들고 남을 비평하고 조금 안다고 나서고 이런 사람들을 보면 제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까불지 마!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씨익 웃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다려 주는 겁니다. 지금 저분이 저렇구나. 하고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에게 계속해서 은혜 베풀어 주셔서 바울의 훌륭한 바울의 삶의 통해서 우리 피조물들은 이런 문제가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성령님 우리에게 기름 부어주시고 우리에게 안수해주셔서 더욱 지혜 자가 되어 이 모든 사물을 보고 또 지금 돌아가는 이 세계의 모든 이 상황들을 보는 그러한 지혜 자들 주변 환경을 보는 지혜 자들이 되도록 은혜위에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이 은혜를 주실 때는 우리는 이제는 남을 비평하거나 이러지 않고 항상 사물을 보고 다른 것을 봐도 나에게 불이익한 것을 봐도 내 속에 뭐가 있느냐면 평강이 있게 되는 겁니다. 평강 그래서 오늘 제가 평강을 주제로 해서 우리가 찬양을 하고 있는 겁니다. 주안에서 이런 걸 깊이 깨달은 사람은 항상 평강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장중에서 이렇게 하시는구나. 그런 평강을 우리 모두가 기지도록 성령님이여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MNhJm2hw70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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