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6장 강해 17강. 왜 무 천년주의를 디자인 하셨는가?(계20:1-7)
주님의 때가 되어서 온라인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그 동안 저희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지 못했던 해외에 있는 우리 동역 자들도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 멀리 일본에서 또LA에서 필라델비아에서 뉴욕에서 토론토에서 인도에서 베트남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우리 한국어를 하는 동역 자들이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됨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해외에 있는 동역 자들 주님의 이름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계시록을 이렇게 공부하면서 우리가 웹사이트나 그동안 여러분들이 공부한 모든 계시록공부들을 비교해볼 때 제가 말하는 계시록의 내용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다는 반응들이 가끔 오는 것을 제가 듣게 됩니다.
이게 신학대학원수준이 아닙니까? 그런 말을 듣게 됩니다.
왜냐면 계시록은 신학자들이 볼 때도 가장 어려운 성경말씀이고 이것을 해석하는데 엄청난 어려움들을 지금까지도 경험하는 말씀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때문에 많은 다툼들이 있고 해석상 다른 점 때문에 오해들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말씀을 전하는 분들은 계시록을 잘 다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면 자기 자신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계시록은 이렇게 복잡하기 때문에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같은 신학자들이고 목회자들인데 학설들 꽤 많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학설들이 있습니까? 네 가지 학설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오늘날에 와서 네 학설이 같이 공존하는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크리스천이라 그래서 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아닌 것을 계속해서 우리가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신학적인 것을 가지고 하나하나 풀어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신 자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을 가지는 말씀입니다.
심지어는 사역자들이라고 해도 부담가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냐면 이런 부분을 이렇게 자세하게 접해보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해서는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는 체로 계속해야 됩니다. 그분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그래서 제가 여기서 중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알아듣는 분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 말씀의 초점이 어디에 가 있느냐면 알아듣는 분들 또 알기를 소원하는 분들에게 이런 분들을 향해서 계속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계시록이 힘든가? 하면 다니엘이 힘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이 주전600년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서12장4절에 다니엘아 이 예언의 말씀들 특히 종말 때 예언의 말씀들은 마지막 때까지 봉해놓으라 이것을 그냥 덮어버려라 마지막 때가 되면 이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때가 언젠지를 모르고 있어왔는데 많은 신학자들이 과거2천년 동안 이 부분을 해석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다니엘서12장4절에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500년 전에 소위 유명한 종교개혁이 일어났잖아요. 그때부터 소위 실력 있는 신학자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전에도 나왔지만 유명한 칼빈도 성경주석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딴 건 다 썼는데 요한계시록만은 쓰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한계시록은 숨겨진 책이기 때문에 마지막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분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 요한계시록주석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냐면 약20세기 들어와서부터입니다.
그래서 20세기 들어와서부터 학자들이요한계시록을 쓰기 시작하는데 네 가지 사람들의 견해를 가지고서 요한계시록을 쓰기 시작하는 겁니다.
네 가지의 견해가 무엇입니까? 역사적전천년주의, 무 천년주의, 세대주의, 후 천년주의 견해로 쓰기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는 역사적전천년주의를 기초로 해서 요한계시록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게 요한계시록은 어떠한 특정 교리만이 요한계시록해석에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역사적전천년주의가 소화하기가 쉽기 때문에 내가 그냥 받아드린 것뿐이지 그 방법만이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그 방법만이다 라고 믿지를 않습니다. 그 말은 뭐냐면 무 천년주의 안에도 상당한 하나님의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될 것들이 많습니다. 그다음에 세대주의 안에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그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후 천년주의는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 종교다원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종말론인데 거기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배울 것들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네 가지 종말론을 다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 사상을 융합신학사상이다 그러는 겁니다.
융합신학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시간에 무 천년주의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지난시간에 설교제목이 무 천년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한 단계 발전해가지고 왜 하나님이 무 천년주의를 디자인하였냐. 입니다. 무 천년주의가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사건이고 가르침이 그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왜냐면 무 천년주의는 중세(500년)에 들어와서부터 지금까지 소위 주류교단들이 따라왔던 종말론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 천년주의를 우리가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기에 장점이 뭐고 그기에 단점이 뭐고 그러면 오늘날 몇 가지 종말론이 공존한다고 그랬습니까? 네 가지 종말론이 공존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왜 우리예수님이 오늘날 네 가지학설들을 공존시키고 있느냐 입니다. 왜 이것을 디자인하셨나. 입니다. 이걸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묵상 중에 최소한 일곱 가지 깨달으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제가 들었습니다. 이 네 가지를 왜 내가 디자인했는지 너희들 이것을 깨달으라고 일곱 가지를 주님이 저에게 말씀해주시는 겁니다. 첫 번째는 삼위하나님이 얼마나크시고 위대하시고 큰 그릇이 되시고 또 다양하심을 깨달으라는 이 부분을 우리가 항상 묵상해야 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우리인간은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은 피조물이며 한계성을 가지고 있고 지식의 한계성입니다 이성의 한계성입니다 논리의 한계성입니다
또 나약하고 적은 그릇임을 깨달으라는 겁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위해서 네 가지학설을 이렇게 주신 겁니다. 그 어려운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달라가지고 서로 싸움질해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디자인 속에서는 세 번째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피조물이면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주었냐면 분량을 다르게 주셨습니다. 어떤 분량이냐면 은혜의 분량을 다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은사의 분량도 다 다릅니다. 그다음에 믿음의 분량도 다르게 주셨습니다. 이것을 바울이 로마서12장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라. 그렇기 때문에 같은 요한계시록을 봐도 다 보는 시각을 달리 볼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놓은 겁니다. 이게 창조주의 창조의 원리 중에 하나입니다
네 번째로는 내가 아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둔해가지고 거기에서 상당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자기가 아는 것 외에 딴 것은 다 틀렸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입니다 네 학설 중에서 예수밖에 학설이 무엇입니까? 후 천년주의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세 학설들은 그기에 장단점들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것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는 것 여러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이것만이라고 주장하면 제가 주님에게 미안한 겁니다. 다섯 번째로 예수님 안에서 다른 학설에게도 정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전천년주의, 무 천년주의, 세대주의 안에 정답들이 다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겁니다.
여섯 번째로는 이 세 학설 안에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들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겁니다.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고 다른 학설을 말하는 사람들도 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겁니다. 후 천년주의 안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일부가 있지만 비 자녀들도 많습니다. 특히 세 학설 안에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이라는 겁니다. 일곱 번째는 뭐냐면 궁극적으로 세 가지학설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뭘 하느냐면 하늘에 올라가서 삼위하나님께 특히 어린양예수님께 경배 드리고 찬양 드리고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주시고 구원해주심에 감사드리는 일들을 세 그룹들이 모여서 같이 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우리가 계시록4장과5장을 보면 그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음에 공부하겠지만 계시록7장9절부터 보면 모든 족속이 모든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든 방언을 가진 사라들이 머든 인류가 모든 국가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삼위하나님께 특히 어린양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찬양 드리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들림 바는 사람들도 올라가서 이런 모습으로 하는 것을 계시록7장9절에서부터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이 세 학설들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다 보여서 이렇게 할 것을 미리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서로 사랑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주 안에서 한 형제자매들입니다 한 가족입니다 한 천국시민들입니다 영원히 함께 공존할 존재들입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원히 창조목적파트너 일을 같이 해야 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인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내가 아주 편하게 생각하는 학설하나가 항상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역서적전천년주의가 우리에게는 그 중에 내가 소화하기가 편하다고 보는 것뿐이지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보지는 않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큰 시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 제가 중요한 말씀을 시작하려고 그럽니다.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항상 질문을 던져야 됩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설교의 목적입니다
질문이 뭐냐면 왜 초대교회(주후30년부터500년까지)기간에만 역사적전천년주의를 디자인하셨나? 입니다. 이때는 무 천년주의도 없었고 후 천년주의도 없었고 세대주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역사적인 배경을 알기 때문에 소화가 됩니다. 그런데 교회 나온다고 그래서 이걸 다 소화 못하는 겁니다. 역사적인배경을 모르면 그래서 제가 미리미리 다 가르쳐드렸습니다.
우리가 기초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다시 질문을 합니다. 왜 초대교회기간에 네 가지학설 중에 하나만 허락하셨냐? 입니다. 하나가 역사적전천년주의 이게 우리 질문입니다 이게 절대로 우연이 아닌 겁니다. 왜냐면 초대교회기간에는 인구가 적었습니다. 예수님당시에 전세계인구가 1억 명이었습니다.
주후200년에는 1억9천만 명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약2억입니다
그러면서 인구가 늘어나지 않고 600년에 가서야 2억 명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첫500년 기간은 세계인구가 1억 명에서 시작했다가 2억까지 간 겁니다. 그러니까 인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사람들도 단순한 사고를 가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상도 단순했고 성경을 봐도 단순하게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순사회입니다 학문도 단순했고 사회구조도 단순했고 문화구조도 단순했고 정치구조도 단순했고 단순한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대 500년 기간에는 복잡한 요한계시록을 단순화시켜주어야 됩니다.
또 나머지성경말씀도 단순화시켜주는데 가장 적절한 종말론사상이 역사적전천년주의입니다 역사적전천년주의를 우리가 공부를 계속해오고 있지만 성서를 주로 문자적으로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성서에 있는 말씀 그 자체그대로 보는 겁니다. 그리고 단순한 역사의식을 가지고서 보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공부해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화하려면 문자적으로 성서를 봐야 됩니다. 문자적으로 성경을 보는 기간이 초대교회500년 기간입니다. 그러다가 중세에 들어와 가지고 인구가 늘어나는 겁니다.
천년이 되었을 때 세계인구가 약3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 일어난 1500년이 되었을 때는 약5억 가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회가 더 복잡해졌습니다. 교육시스템도 복잡해지고 사상구조도 복잡해지고 학문도 문화구조도 정치구조도 이렇게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머리가 이성화되고 사람들의 머리가 논리화되고 철학 화되고 이렇게 되면서 예수님께서는 그기에 걸맞게 종말론도 그기에 걸맞게 옷을 입혀주기 시작하시는 겁니다. 왜냐면 이 종말론은 그 안이 복잡한 겁니다. 숫자들도 나오고 사인들도 나오고 상징들도 나오고 이런 것을 문자적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무리수가 있는 겁니다. 이런 복잡한 머리구조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철학을 공부한신학자들을 주로 동원해가지고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보느냐면 상징화해서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것이 문자적이 아니다 이것을 상징화 한다. 또는 은유 화한다. 또는 영성화해서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여러 가지모습들을 그러면서 이것이 뭐냐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1세기 때 요한이 표시한 것은 요한에게 성령님이 희랍신화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또는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그림으로 그려주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왜냐면 그 당시 1세기 때 크리스천들은 이런데 익숙해있었기 때문에 희랍신화나 로마신화에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이해시켜주기위해서 그 신화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의 표현들을 이렇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시대에 우리는 이 모든 구약에 나오는 특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이 표현들을 철학적 사상으로 재해석해야 되고 상징적 희랍신화에서 나오는 또는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상징적인 이런 것들을 예컨대 666이니 여러 가지이야기들을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지만 이분들은666을 누구로 보느냐면 무 천년주의에서는 1세기 때 기독교크리스천들을 핍박을 했던 네로 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를 누구로 보느냐면 우리가 두 짐승 중에서 적그리스도를 로마제국으로 보는 겁니다.
첫 번째 짐승을 로마제국으로 보고 두 번째 짐승을 네로 왕으로 보는 겁니다. 1세기 때 있었던 일들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하고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이런 부분을 제가 기회가 되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무 천년주의가 해석방법을 도입해가지고 그때부터시작해서 로마가톨릭교회, 정교회 그리고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도 개혁자들도 다 이 사상을 가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무 천년주의가 성서를 해석하니까 무 천년주의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그러니까 기독교계에 공헌한 것들이 꽤 많습니다. 첫 번째 뭐냐면 무 천년주의를 통해서 성서를 입체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단순하게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단순은 직선과 높이 정도로 보지만 입체적은 가로 세로 높이까지 다보는 또 길이까지 다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많이 넓혀 주는 겁니다. 무 천년주의가 이걸 공헌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입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이나 정교회나 개혁교단들 이분들의 공헌을 많이 했습니다. 성서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만들어준 겁니다. 이렇게 공헌을 했는데 항상 공헌이 있으면 문제점까지도 만드는 게 우리인간의 역사입니다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디자인하셨습니다. 소위 성서를 이렇게 눈을 더 크게 업그레이드시켜서 보여주기 시작하다보니까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깔보는 겁니다.
이런 엘리트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외골수가 되고 그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같은 크리스천인데도 적대시하면서 나중에는 이단시해버리는 이런 교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왜냐면 로마가톨릭과 정교회와 개신교의 대부분의 기독교의 주류그룹들이 다 이런 생각을 하는 데 여기저기 일부의 사람들이 그게 아니라고 그때부터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을 아주 깔봤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었고 두 번째 문제가 뭐냐면 신학을 아카데미 화시켜버린 겁니다. 예컨대 세상학문과 같이 만들어가지고 철학 화시키고 이성화시키고 또는 관념화라 그럴까요. 구체화가 안 되고 논리화 이성화 관념화시켜버린 신학을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아카데미 화라고 제가 만들어 봤습니다. 세 번째로 문제점들이 뭐냐면 명목상크리스천들을 양산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분들의 신학이 뭐냐면 모든 성도는 다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모두 다 들림 받아 신부가 되고 저 세상에 가서도 전부 왕들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크리스천들을 구분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썬데이 크리스천들이 많이 나오는 겁니다. 열심히 안 해도 그냥 예수님만 믿으면 교회만 다니면 등록만하면 그냥 낙원에 천국에 간다는 그 사상 그러니까 형식적 크리스천들을 많이 만들어놓고 또는 베이비크리스천들을 많이 만들어 내었습니다. 무 천년주의를 통해서 그리고 무 천년주의는 모든 사람이 다 낙원에 간다고 그러니까 그 당시에 하나님이 예정된 사람은 다 구원받는다고 믿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슈가 뭐냐면 선교적인 사명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다 구원받는데 그러니까 교회가 역동성을 잊어버린 겁니다.
교회가 아주 정적인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그냥 안주하는 교회 그러다보니까 교회가 부패해지고 정치화되어버리고 이렇게 되어 버린 겁니다. 그리고는 이분들은 사상이 역사적전천년주의도 마찬가지지만 사상이 유대인들과 관계에서 반유대사상입니다 역사적전천년주의도 반유대사상입니다 첫500년 동안은 그다음에 무 천년주의도 반유대사상입니다.
유대인들을 싫어했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그렇기 때문에 무 천년주의문제점이 뭐냐면 예수님의 재림사상이 약했습니다. 왜 약했습니까. 천년왕국을 길게 봤기 때문에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를 우리가 날짜를 잡으면 안 된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혼돈스러운 게 뭐냐면 예수님이 내일 당장오실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도 말하면서 그렇지만 그 시와 그 날은 모른다. 그러면서 거기다가 토씨를 다는 게 예수님이 앞으로 천년 후에 만년 후에 오실수도 있다
그러면서 우리지난사간에 배웠습니다. 천년을 이분들은 긴 기간으로 봤습니다. 그것을 뭐라고 봤느냐면 하나님의 나라라고 그랬습니다.
또 이 세상으로 본 겁니다. 그리고 교회시대라고 본겁니다 또 종말시대라 그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예수님의 초림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이 오늘도 올수 있고 천년 후에도 만년 후에도 올수 있고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혼돈스러운 겁니다.
어떻게 보면 철학적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인들이 볼 때 당장 오신다는 말은 맞는 말인데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선교사명이 없는 겁니다. 재림에 대한 긴박성이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무 천년주의를 가르치는 교단이 꽤 많습니다. 장로교합동측이 절반정도고 통합측은 대부분약4분지3정도는 그렇게 말합니다. 감리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침례교도 꽤 되고 심지어는 순복음도 꽤 있고 그래서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직접 간접으로 이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역사적전천년주의를 이야기하면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겁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 그런데 언제 오실지 몰라 그래서 우리나라에 어떤 분들 세대주의 사람들 중에 일부가 날짜를 이야기했잖아요. 날짜를 이야기하면 무 천년주의사람들은 열을 받습니다. 그래가지고 그냥 이단 화시켜버립니다.
왜냐면 이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예전에 다미선교회라고 이분들이 날짜이야기하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무 천년주의를 믿는 한국교회에서는 이단이구나.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우리나라한국교회가 종말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다 이단으로 취급해버렸습니다. 그래서 1990년부터 2020년 약30년 동안 우리나라가 종말론에 대해서 말을 못하게끔 막아버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 세대에 이슈인데 이 부분을 못하게끔 막아버려서 이런 이야기를 설교로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많지가 않습니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는데 지금 우리나라만 그럽니다. 미국은 종말론이야기 설교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어떤 측면에서 성령님이 저에게 다그치시는 겁니다. 너 이 사람들을 깨워라 우리가 사명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AMI디지털선교사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깨워야 되는 사명이 있는 겁니다. 한국교회를 그러려면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역사적으로 배워야 됩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그래서 지금 배우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고는 그게 아주 전환점입니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무 천년주의자들 중에서 무 천년주의의 약점들을 보고는 이게 아닌데 하다가 이 안에서 이분들 중에 성령님이 새로운 업그레이드된 역사적전천년주의를 등장케 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업그레이드된 역사적전천년주의는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된 겁니까? 지난천년 동안 누구의 도움입니까?
무 천년주의의 도움을 받아서 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인간은 경험을 해야 되는 겁니다. 천년동안 무 천년주의의 장점을 잘 보고 또 거기에서 나오는 파생된 문제점들도 다 보여주시고 그리고 종교개혁을 통해서 새로운 업그레이드된 시각을 만들어주시는 겁니다. 그것이 새로 나타난 역사적전천년주의인 겁니다. 역사적전천년주의 사람들은 무 천년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을 시켜주는 겁니다. 무슨 보완이냐면 기독교크리스천들이 다 똑같지가 않다 크리스천은 하늘나라는 계급사회다 베이비크리스천들아 깨어라
너희들 이렇게 살면 안 된다. 명목상크리스천들아 정신 차려라 왜냐면 이제는 저세상에 올라가면 상급이 있는데 저 세상은 계층사회라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분들이 강조하는 것은 너희들 이제는 복음을 들고 나가야된다
그냥 이렇게 앉아있지 말고 그래서 선교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게 1800년부터입니다 그래서 영국에 침례교사람들부터 시작해서 근대개신교선교운동이 1800년부터 일어났습니다. 그게 윌리엄 캐리라고 침례교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인도로가 가지고 인도에 힌두어로 성경 만들고 선교운동이 그때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겁니다. 그게 다 역사적전천년주의자들에 의해서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선교운동이 일어나면서 그 뒤를 따라서 선교사들이 영국 미국 캐나다에서 나가는데 이 사람들이 다 역사적전천년주의자들인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 1900년에 언더우드니 아펜젤러니 감리교 침례교 다른 교단의 선교사들이 무 천년주의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역사적전천년주의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어떤 사상을 가졌냐면 세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세대주의는 다시 공부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초창기에 크리스천들은 다 세대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에 지금도 가정교회에 가면 다 세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도도 마찬가지고 인도네시아 아시아에 있는 모든 나라들 다 세대주의적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세대주의 사람들은 선교에 급박성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세대주의는 역사적전천년주의가 가지고 있는 약점들이 있었습니다. 그 약점들을 보완한 것이 세대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전천년주의와 세대주의는 같은 전 천년주의자들입니다 세대주의는 나중에 하고 역사적전천년주의가 이렇게 업그레이드 되어가지고 선교사들을 많이 내어보낸 겁니다. 그러면서 무 천년주의와 생각이 다르니까 다툼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이때부터 무 천년주의와 역사적전천년주의가 공존하면서 같이 가게끔 하면서 무 천년주의사람들을 많이 눈을 뜨게 만들어주는 특히 선교 열을 만들어주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무 천년주의를 초창기에 가지고 있었던 두 그룹이 있는 겁니다. 한 그룹이 소위 개혁주의사람들인 겁니다. 개혁주의라는 것이 뭐냐면 칼빈주의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칼빈주의의 칼빈에 의해서 칼빈의 사상을 받은 사람들이 개혁교단이라고 있고 그다음에 장로교가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개혁교단과 장로교단을 개혁주의교단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한국은 장로교가 많기 때문에 개혁주의교단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도 장로교가 많으니까 개혁주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다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기독교 인구를 보면 개혁주의는 소수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장로교회지만 자기네만 정통교단이고 나머지는 다 이단이냐?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개혁주의사람들이 지금 와서 눈 뜨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개혁주의는 최고다, 최고다 하니까 사람들의 머리구조가 그렇게 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지금도 꽤 많습니다. 같이 종교개혁을 했지만 비 칼빈 주의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예컨대 침례교 성공회 루터교 회중교회 감리교 이런 분들은 개혁주의라고 안 그럽니다. 이 사람들은 각자가 다 가지고 있는 자기네 신학이 있습니다.
감리교는 웨슬리안주의(Wesleyanism)라 그럽니다.
개혁주의(reformism)하고 다릅니다. 루터교는 루터주의(lutheranism)라 그럽니다. 성공회는 또 성공회주의(Anglicanism)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개혁주의는 그 중에 하나지 신학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분들 중에서 지금 장로교 안에서나 개혁주의 안에서나 비 개혁주의 교단들 안에서 소수들이 뭐가 나왔느냐면 역사적전천년주의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특히 침례교단 안에서 그래서 침례교가 세계에서 제일 큰 교단입니다 침례교가 개신교 중에서 선교사들을 많이 내보내는 겁니다. 오늘날도 미국에 남 침례교는 세계에서 선교사를 제일 많이 내보내고 선교에 가장 앞장서서 달리는 교단이 미국에 남 침례교입니다 침례교가 선교에 앞장서는 팀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님의 뜻에 의해서 장로교가 들어온 것뿐이지 침례교의 파워는 장로교와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전천년주의자들이 종교개혁이후에 어떤 사상에 있었냐면 반유대주의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혁교단도 마찬가지고 비 개혁교단들도 전부 유대인들에 대한 반유대주의사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사탄의 자녀들이다 그분들 회개해야지만 된다. 특별한 존재들이 아니다 이 사상들이 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전천년주의 안에서 때가 되니까 너희들 친 유대주의로 바꿀 때가 되었다는 가르침들이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친유대주의 그래서 역사적전천년주의 안에서 팀들이 나와 가지고 뭘 만들었냐면 친유대주의 전 천년주의를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친유대주의적으로 재해석을 하는 겁니다. 그것이 세대주의인 겁니다. 그게1900년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실제로는1850년이지만 세대주의 성경(스코필드바이블)이 1909년에 만들어 졌습니다. 이 팀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엄청나게 강조하며 그다음에 유대인들의 복음화에 아주 앞장서는 그룹들인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약천년 동안 지금까지 많은 유대인들이 복음화가 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발전이 되어 오는 과정 속에서 무 천년주의로 다시 돌아가서 무 천년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에 하나가 뭐냐면 무 천년주의사람들이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왜 예정론을 이렇게 강조하느냐 다시 말하면 왜 소수의 사람들만 선택받았다고 주장하느냐 그래서 이것은 아니라고 보는 팀들이 무 천년주의 안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뭐냐면 후 천년주의를 만든 겁니다. 소위 진보사상을 가진 사람들 이분들은 세계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소위 유니버셜니즘(universalism)이라고 만인구원론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후 천년주의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낙원화가 되었을 때 예수님이 오신다. 안 그러면 이 세상이 끝난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낙원 화시키는 거다. 그러니까 저세상이 있는 게 아니고 이 세상이 낙원화가 되어야 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후 천년주의입니다 그러니까 이 후 천년주의는 어디서 파생된 겁니까? 무 천년주의에서 나온 겁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친 유대사상을 어느 정도 가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왜냐면 모든 인류는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보기 때문에 강하게 반유대사상을 가지지 않았던 겁니다.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이런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는 몇 가지의 종말론사상을 가지고 우리가 살고 있습니까?
제가 자꾸 강조합니다. 역사적전천년주의, 무 천년주의, 후 천년주의, 세대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네 그룹이 요한계시록을 보는 해석방법이 다 다른 겁니다. 이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엄청난 혼돈을 가져다주는 겁니다.
주일날교회에 설교하는 목사님들이 이 네 그룹 중에 어디에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게 다르고 이 말이 뭐냐면 혼돈스러운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다 다른 겁니다. 코로나19를 보는 시각도 다른 겁니다.
우리나라에 현 정권을 보는 시각도 다른 겁니다. 북한을 보는 시각도 다른 겁니다. 같은 크리스천들인데 교회를 보는 시각도 다른 겁니다.
크리스천들을 보는 시각도 다른 겁니다. 재림에 대한 시각도 다른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강조합니다. 기독교계는 비빔밥이라는 겁니다.
이 비빔밥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이 네 가지의 비빔밥 속에 나도 끼어 있는데 왜 하나님이 우리 예수님이 이 교계를 이렇게 예수님의 재림 전에 비빔밥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런데 이 비빔밥 중에 첫 세 가지의 종말론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비빔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빔밥과 후 천년주의는 비빔밥 속에 들어 있지만 다른 재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재료는 우리가 뽑아내고 나머지 세 재료를 가지고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있는 장점들 단점들을 잘 융합하는 하모니이즈(harmonize)하는 이런 시각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또 가지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다른 세 가지를 만들었을까? 왜 네 가지를 만들었을까? 하면 뭘 하기 위해서입니까?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인 겁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그리고 다른 은사와 믿음과 은혜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예수 안에서 다른 시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서로가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집어던지고 하면서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라 하나가 되어라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최소한 저의 사명입니다 이 혼돈된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하는 이런 과정 속에서 예수님의 재림 전에 누가 이걸 막아가지고 이것을 누가 연합하여 각자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교리 안에 있으면서 장단점을 서로가 알면서 그것을 잘 융합시켜라 다시 말하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는 겁니다. 다투지 말고 그게 우리교회의 사명인 겁니다.
이것을 제가 전 세계에 뿌리려고 그럽니다. 이 혼돈된 기독교계를 예수님 재림 전에는 예수님이 하시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조그만 그룹이지만 우리는 기도원의300용사들입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디지털선교사로써 사명을 해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 재림 전에 한 코너에서 왜냐면 예수님께서 성만찬하실 때 기도하신 게 있습니다. 요한복음17장에 제자들을 앉혀놓고 성만찬을 가르친 다음에 아버지와 저와 성령님이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
열두제자들이 하나 되는데 힘든 겁니다. 그래서 각자가 퍼져가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론을 가르치고 교단을 만들고 그랬습니다. 열두제자들도 자기중심이 되어 버린 겁니다. 똑같이 우리도 지금 그 열매들이 지금 나와 있는데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신 게 AMI그룹들아 너희들이 예수님이 재림하기 전에 이 복잡하게 흩어져있는 이것들을 잘 정돈해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면서 하나 되는 일에 힘쓰라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시대분별을 알아야 되고 깨어나야 되고 그런 사람들은 끝까지 견딜 수 있고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24장14절에 이런 가운데 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리니 거제서야 끝이 오리라 우리는 이것을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전 천년설이라는 우리가 소화하기 어느 정도 쉬운 학설을 기초로 해서 요한계시록을 앞으로도 강의를 할 텐데 무 천년설도 그기에 혼합시키고 세대주의도 혼합시키고 배합시켜가지고 비교하면서 공부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융합적인 생각으로 머리구조를 바꾸어 우리가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만드는 일에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지금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되라고 이 혼돈시대에 지금 코로나 때문에 세상에 모든 여러 가지 진보와 비 진보와 크리스천들과 비 크리스천들과 혼합되어 있는 혼돈시대에 비빔밥시대에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셔서 지혜를 주셔서 주여 우리가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되고 예수 안에서 크리스천들이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되는 그러한 일들을 하도록 저희들을 사용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이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학 때문에 남을 정죄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이 일을 위해서 많은 주님의 자녀들이 혼돈을 느끼고 어려움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주님의 자녀들 위해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넘쳐나게 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쳐나게 하시고 성령님의 능력주심이 이분들을 주 안에서 화평케 하는 일을 하는 우리AMI가족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할 찌어다 아멘.
※ 왜 무 천년주의를 디자인 하셨는가?(계20:1-7)
1. 지난시간에 무 천년주의의 몇 가지 특징들을 공부했는데 다시 복습해 봅시다.
2. 오늘날 교회 안에 종말론 네 학설들이 공존하는데 왜 예수님께서 이것을 디자인하시고 허락하셨습니까? 7가지의 “깨달아라”는 무엇입니까?
3. “융합신학”이란 무엇입니까? 왜 오늘날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합니까?
4. 왜 초대교회 시대에만 역사적전천년주의를 디자인하시어 허락하셨습니까?
5. 왜 중세교회시대에 들어와서 무 천년주의를 디자인하시고 허락하셨습니까?
6. 근대/현대 교회시대에 들어와서 네 가지 종말론 학설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처 오늘날까지 공존하게 하셨습니까?
7. 요한계시록주석이 언제부터 나오게 되었습니까? 왜 늦게 나오게 되었습니까?
8. 우리는 어떤 접근방법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해야 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aTy45L88o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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