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6장17장18장 강해

6강, 마태복음17장1절-8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변명섭 2020. 7. 24. 06:00

 

마태복음16장17장18장 강해 6강,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마17:1-8)    2002년 말씀
오늘말씀은 마태복음17장1절에서8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아멘, 
마태복음16장17장18장 강해 중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이 무엇이었냐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본인의3년 공생애 사역동안에 중간 정도 되었을 때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나는 하나님의아들이다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시작하는 그 장면이 16장부터입니다
그러면서 지난시간에 제가 말씀드렸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베드로가 말하는 것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아들이십니다 이렇게 말하도록 성부하나님이 베드로의 입을 열어가지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우리가 기억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베드로가 고백한 후부터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제 예루살렘에 가서 사람들에게 고통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3일 만에 살아나야 되겠다는 이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주여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탄아 물려가라 이 말씀 기억나지 않습니까, 이게16장의 말씀인데 오늘17장으로 넘어가면서 이런 사건이 있는지6일 후에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사랑하는 세 사람을 산기도로 데리고 올라간 겁니다, 그 산이 어떤 분들은 드보 산이라고 그러는데 어느 산이지 분명히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가톨릭에서는 저 산이다 개신교에서는 저 산이다 그럽니다, 문제는 산으로 제자 셋을 데리고 올라가서 기도를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산을 우리가 변화 산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변화라는 것은 그냥 변화 받았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모습이 완전히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화된 모습인데 열두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다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특별히 세 사람에게 본인이 하나님임을 알려주는 장면입니다, 하필이면 왜 세 사람입니까,
열둘이라는 열두제자도 그렇고 셋 사람이라는 셋도 다 의미가 있는 겁니다,
열두제자 많은 사람들 주에서 예수님께서 열두 명을 이렇게 골랐습니다, 
왜냐면 열두 명을 골라가지고 나중에 가롯유다가 쫓겨났지만 그 후에 다시 맛디아를 불려다가 열두 명을 만들었지 않습니까, 
열두 명이라는 열두 숫자는 뭐냐면 예수님이 가장 제자훈련을 시킬 수 있는 최대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최적의 숫자입니다 열두 명이 제자훈련에 오늘날 사업하는 사람들도 그럽니다, 경영하는 분들도 세미나를 하려면 열두 명에게 하면 가장 좋은 세미나가 된다는 겁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열두 명을 앉아놓고 같이 이야기를 하면 제가A라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그 사람이 제 말을 듣고는B나C가 그기에 대해서 반응을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아홉 명이 다 듣습니다, 듣고는 서로 말을 주고받고 하는 관계성이 열두 명 안에서 관계성을 보면서 가장 좋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말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슨 말을 하면 오히려 반응을 보이고 또 자기네들끼리 서로 의견주고 받고 이런 모든 것이 배우는 과정인 겁니다, 열두 명이 서로가 이 안에서 서로 배우는 과정이 가장 효과 있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열한 명이 되면 효과가 조금 떨어진다는 겁니다, 열세명이 되면 더 떨어지고 그래서 열두 명이 아주 최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가지고 열두 명을 데리고서 자기가 누구인 것을 계속 알려주는 겁니다, 알려주는데 열두 명이 있으면 그 중에 리드 급이 꼭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거기서 최고리드를 베드로를 삼으신 겁니다, 그다음에 베드로의 오른팔 왼팔이 야고보와 요한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분을 모시고 변화 산에 올라간 겁니다, 
올라가서 같이 기도하는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모습이 달라지는 겁니다,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는 이런 장면이 갑자기 벌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옆에 보니까 웬 얼굴이 낯익은 두 분이 서있는 겁니다, 
그분들을 보니까 자기네가 섬기던 구약 때의 유명인사 두 분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는 겁니다, 유명인사 두 분이 오늘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말했지만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따라온 이 예수님이 죽으셔가지고3일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구약의 어른 두 분이 예수님을 증거 해주는 겁니다, 이 두 분이 나타나기 전에는 예수님과 같이 기도하는데 졸고 있었다, 그랬습니다, 졸고 있는데 갑자기 유명인사 두 분이 나타나니까
잠이 깨어가지고 보니까 이분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의 말을 듣고는 6일전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할 때 베드로가 그러지 마십시오, 
했는데 6일 후에 산에 올라와서 갑자기 구약의 유명 인사들이 나타나서 또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당황하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베드로가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니까 예수님께 하시는 말씀이 예수님 여기가 이렇게 좋군요, 여기가 천국이 군요, 
구약의 유명 인사들도 타나나고 예수님 얼굴도 해 같이 빛나고 보니까 거기가 완전히 천국 화된 겁니다, 평화가 있고 미움이 없어지고 완전히 멋있는 상황이니까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주여 우리 여기다가 초막 셋을 지어서 여기 있자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짓자는 겁니다, 누가복음에는 뭐라고 했냐면 베드로가 이렇게 말해놓고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고 말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성질 급한 사람을 그렇게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예수님을 또 성부하나님이 제자들 앞에서 누구라는 것을 또 알려주는 겁니다, 지금 성경의 초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아들이다 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자들에게 이것을 깨달으라고 제자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두려워하여 엎드리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애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여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하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예수님만 그기에 계시더라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세분들에게 이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하나님의아들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왜 하필이면 구약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을까요,
왜냐면 제3자가 말해줄 때 도 신빙성이 있는 겁니다, 
직접 예수님은 내가 누구다, 라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제3자가 특히 자기네가 존경하는 권위 있는 제3자가 이 사람이 누구다, 
라고 말할 때 설득력이 더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이분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조금씩. 조금씩 마음속에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이런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우리들도 제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면 믿는 분도 있지만 못 믿는 분도 많습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지만 제3자인 저 같은 사람이 자꾸 말을 해주면 그걸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 스스로가 아니고 제3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공관복음서에 보면 계속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접근방법입니다, 애냐면 받는 분들이 받을만한 그릇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받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유치원생에게 이야기하려니까 제3자가 그 유치원생이 알아듣는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입니다 오늘은 이 방법을 우리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본인이 하나님의아들이라는 것을 제일 먼저 제자들을 차출하기 전에 이미 한 사람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면 세례요한입니다 이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 하는 사람이거든요 언제 어떻게 세례요한에게 말씀하였냐면 예수님이 일부로 세례요한 앞에 가가지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30살 잡수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갑자기 홀연히 하늘에서 비둘기같이 성령님이 내려오는 것을 세례요한이 눈으로 본 겁니다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내려오는 것을 비둘기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비둘기가 내려오는 식으로 성령님이 내려오는 겁니다,
이렇게 내려오는 것을 세례요한이 보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이렇게 세례요한 귀에 들리는 겁니다, 
그때 세례요한이 아! 이분이 특별한 분이구나 하나님의아들이구나 이렇게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어느 무덤가를 걸어가고 있는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아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위하여 무덤가를 지나가는데 귀신들린 자 둘이 지나가다가 예수님을 보더니 하나님의아들이시군요 하면서 고백을 하는 겁니다, 왜냐면 귀신이 들렸다는 것은 안에 귀신의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영과 귀신의영끼리 서로가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귀신의영인 악령이 예수님의 성령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는 당신이 하나님의아들이군요 당신과 우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 무섭다면서 덜덜 떨면서 당신이 쫓으면 우리는 쫓겨납니다, 그래서 쫓겨서 어디로 갔느냐면 돼지 속으로 들어간 겁니다, 귀신들도 30살 먹은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아들이시군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수님도 지난시간에 말씀대로 내가 누군지 아느냐 요나의 표적밖에 너희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가3일 만에 살아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아들입니다 라고 베드로가 고백하게 하시고 그러다가 지금 이 시간에 변화 산에서 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 기뻐하는 자다 이렇게 하시면서 성부하나님이 성령하나님이 예수님이 자기아들이심을 증거 하는 겁니다, 우리가 보통 삼위하나님하면 한분이신데 이것은 어느 종교에도 없는 하나의 특수한 경우입니다 한 하나님이신데 위가 세 분이다 그러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 그런데 이 세 위가 한분이신데 크기도 같고 높이도 같고 양도 같고 질도 같고 다 같습니다, 그런데 기능이 세분이 다릅니다,
성부하나님은 계획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계획하신 것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실행하시는 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계획하신 것을 실행하시는데 힘을 부어주는 하나님이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세분이 한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기능이 서로 다른 겁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요구되는 모습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모습을 이렇게 보시면 성부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인간에게 성자하나님을 내려 보내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성부하나님이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가서 전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자하나님이 인간이 되셔가지고 오셔가지고 성부하나님의 뜻을 전하려고 오신 겁니다, 그런데 성자하나님은 성령하나님의 힘이 필요로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묘한 관계입니다 
하늘에 올라가면 한번 여쭈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성자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나는 나를 스스로 증거 못한다는 겁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내가 말하기 싫다는 겁니다, 
왜냐면 내가 누구라는 것을 성부하나님이나 성령하나님이 제3자가 내가 누구라는 것을 너희들에게 증거 해줄 거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삼위하나님이 공동사역을 하십니다, 
이렇게 공동사역에 대한 중요성이 있습니다, 스스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꼭 공동사역을 하십니다, 그래서 삼위께서 상호증거를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성부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증거 합니다,
피조물들에게 어떻게 말하느냐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예수님도 하시는 말씀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요한복음8정18절에 아버지가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부가 나를 증거 하신다는 겁니다, 항상 제3자가 나를 들려서 올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올리지 않으십니다, 이걸 우리가 꼭 배워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성부하나님을 증거 하십니다, 어떻게 증거 하느냐면 성부하나님이 내가 성부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십니다, 
꼭 우리피조물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면 요한복음1장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피조물은 성부하나님을 엄청나게 크시고 밝은 영광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휘황찬란하기 때문에 우리피조물들이 성부하나님을 보려면 너희들이 성부하나님을 볼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은 너희들 눈 보일 수 있도록 축소되어서 내려온 성자하나님인 나를 볼 때 성부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거나 똑같다는 겁니다, 
왜냐면 빌립이 그랬거든요 구약에서 말하는 성부하나님이 계신데 그 구약의 하나님을 조금 보여주십시오, 당신이 성자하나님이라면 그러니까 너희들 성부하나님을 볼 길이 없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령하나님은 어떻게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아버지께로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진리의 성령을 너희들에게 보내달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성자하나님이 성부하나님 계획하시는 하나님에게 이 피조물들에게 성령하나님을 보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직접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꼭 이분은 꼭 위계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1장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다시 말하면 성령하나님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겁니다, 제가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성부하나님은 누구를 증거 합니까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성자하님은 누구를 증거 합니까 성부하나님을 증거 합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은 누구를 증거 합니까 예수님을 또 증거 하는 겁니다, 서로 증거 하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제는 나의 자녀가 되었으니 성령을 받아서 너희들은 나를 증거 하라는 겁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우리가 변화를 받아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는 도구로써 사용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증거하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하나님의아들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증거하고 성령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일에 우리에게 맡기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을 증거하기위해서는 예수님의 성품으로 성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화된 만큼 예수를 증거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된 만큼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증거 한만큼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주님께 인정받고 상급도 크고 계급도 높아지고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증거 한만큼 다시 말하면 성화된 만큼 내가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해야 됩니다, 이게 신기한 겁니다, 
삼위하나님의 증거 하시는 일을 보면 이분들은 서로가 서로를 증거 하느냐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으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성부하나님이 스스로가 내가 성부다 성자다 자랑하지 않으십니다, 꼭 제3자가 자랑하도록 3자가 칭찬하도록 하십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들이 구제할 때나 기도할 때나 금식할 때 스스로 나팔 불지 말고 남이 나팔을 불도록 하라는 겁니다, 남이 나팔 불도록 그래서 은밀히 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이 우리가 선을 행하여도 은밀히 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으로 닮아 가면 닮아갈수록 스스로 나팔을 안  붑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항상 서로가 서로를 동반사역을 잘하는 사람으로 됩니다, 외톨이가 아닙니다, 혼자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조직 안에서도 항상 연합을 애쓰고 서로서로가 존경하도록 하고 서로서로가 동반의식을 가지게 하고 나 혼자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보시면 스스로를 나팔 불지 않았습니다, 항상 제3자가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 것을 말하도록 간접방법을 쓰셨습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개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에 가야바 대제사장 앞에서 묶임을 당하여 있을 때 대제사장이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의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해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서계시다가 내가 말했다 이렇게 말하시는 겁니다, 지금 내가 말한 것이 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분이 간접적으로 표현하시는 겁니다, 3년 다 지나가고 조금 있으면 십자가사건을 목전에 두고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시고 간접적으로 표현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참람하도다 어떻게 구약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너가 하나님이라고 우리에게 말하느냐 그래도 가만히 계십니다, 그전에도 요한복음4장7절에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여인을 만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다가 이 사마리아여인이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그러니까 사마리아여인이 예수님보고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까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오시면 할 말을 당신이 지금 하시는 군요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네가 말하는 그 사람이 나다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표현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도록 해놓고 그다음에 그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도 이런 식으로 서로가 간접적 표현을 하게 하는 겁니다, 서로 힘을 주시고 내 자랑을 내가 하지 않습니다, 
오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이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서 우리가 삶을 그렇게 살 때 우리에게는 엄청난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오늘날은 이기주의사회이기 때문에 다 나를 위해서 삽니다,
본인이 본인을 자랑하고 나와 이해관계가 상반되면 섭섭하고 우리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자기중심입니다 부부관계도 보면 부인이 남편을 존경하는 것 보다는 부인이 자녀들 앞에서 남편의 부족한 부분만 자꾸 긁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생활입니다 우리부인들이여 그렇게 하지 마시고 남편의 부족함을 보지 마시고 남편을 칭찬하세요, 
특히 자녀들 앞에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그렇게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애들아 너네 아빠 참으로 멋있다 아빠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엄마가 자녀들 앞에서 증거를 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역사를 하십니다, 남편이 부족함이 있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부인이 자꾸 말해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아이들 앞에서 그러는 겁니다, 
우리아빠 참으로 고맙지 너희들 키우느라고 평생 고생 했단다, 
저 힌 머리 조금 봐라 저 주름살 조금 봐라 너희들도 직장생활해보지만 얼마나 힘드니 너희아빠는 평생 그렇게 했단다, 너희들 먹여 살리느라고 이렇게 자꾸 엄마가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것도 남편이 보는데서 자녀들이 있는데서 여자가 이게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스타일입니다, 
간접으로 표현해주는 겁니다, 아빠가 내가 너희들 때문에 평생 이러고 살았다 그러면 자녀들이 우리아빠 자기자랑 자기가 다 하네 그러는 겁니다, 
이게 의미가 없어집니다, 의미가 그렇게 하지 마시고 간접표현을  엄마가 그러는 겁니다, 너희아빠 성질도 급하고 말 표현도 잘못하고 어떤 때는 무식한 것 같지만 너네아빠만한 사람 없단다, 나 다시 결혼한다고 하면 너네아빠하고 할 거야 이러면서 아빠를 높여주는 겁니다, 
그러면 아빠 속에 마음의 평강이 옵니다, 내가 조금 모자라지만 내처와 자녀들에게 존경을 받는구나, 그럴 때 그 속에서 성령님의 선한 부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게 성령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서로서로를 증거 해주고 위로해주고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들에게 존경을 받기를 원합니다, 
격려받기를 원합니다, 특히 아이들 보는데서 너희엄마 최고다 너희 엄마 나 같은 남자를 오늘까지 이렇게 뒷바라지 하는 너희엄마 정말 고맙다,
너네엄마 된장찌개 맛은 어느 식당보다 더 잘한다, 
나는 너희엄마가 그것만 하면 너무나 고마워 내가 이렇게 바쁘게 바깥으로 돌아다니지만 너희들을 이렇게 잘 키운 것은 내가 아니야 너희엄마야 김치찌개도 발하고 너희엄마야 자꾸 아이들 앞에서 엄마를 칭찬해주는 겁니다, 
너네엄마 최고다 너네아빠 최고다 그래야 됩니다, 
너희들 좋은 점들은 이제 보니까 아빠 닮았구나, 하면서 아버지의 좋은 점을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가정생활에서 이렇게 꼭 합니다, 
식사하다가도 된장찌개를 제가 좋아하기 때문에 생선하고 된장찌개만 있으면 하루 세 끼를 그걸 먹는 겁니다, 그래서 된장찌개를 하면 조금 짠데도 제가 짠 음식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짠데도 뭐라고 하느냐면 오늘 된장찌개 어느 식당 것보다도 더 맛있네 너네엄마가 아주 맛있게 끓었다  
그러면 엄마가 좋아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렇게 짜냐 라고 한 미디하면 그것은 다 끝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압니다,
아빠가 그렇게 하는 것을 아니까 가정에 다툼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내가 뭘 잘못한 것을 자녀들이나 부인에게 알리려고 그럴 때 우리가 식사할 때 기도합니다, 기도할 때기도 속에서 항상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아버지 아빠가 목사인데도 제가 싫은 소리를 해서 우리아이들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저를 용서해주세요 저는 자녀들 앞에서 그럽니다, 그래서 우리아이들이 아빠가 그런 걸로 해서 상처받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이 벌써 압니다, 
어떤 때 눈을 뜨고 아멘하고 보면 눈물이 글썽해있습니다, 
이게 상처가 치유 받는 겁니다, 왜냐면 내가 스스로 낮아져야 됩니다, 
자녀들 앞에서 높아지려고 하면 점점 더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져서 그런 식으로 낮아지는 연습을 해서 자기가 낮아지는 것을 볼 때 재미있거든요 내가 낮아지면 오히려 높아지는 겁니다,
이게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높이지 않으십니다, 
시부모님이나 장인장모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방법을 쓰세요,
장모님보고 장모님 어쩌면 그렇게 장모님 좋은 점만 따님이 닮았습니까,
저런 딸을 키워주어서 고마워요 장모님 자꾸 하는 겁니다, 자꾸 
저도 우리장모님에게 제가 자꾸 합니다, 제가 처음에 결혼해가지고는 장모님의 단점이 자꾸 제 눈에 보여서 보니까 처갓집식구들의 싫은 점이 그기에 다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 초에 제가 처에게 어쩌면 못된 성품이 너에게도 있느냐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자기친정이야기하면 펄떡 뛰는 겁니다, 
그러면서 거꾸로 반격을 하는 겁니다, 우리형제에 대해서 우리부모에 대해서 반격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았습니다, 
이러면 안 되겠구나, 서로 칭찬해주어야 되겠구나, 일체 양가에 부정적인 이야기는 안해야 되겠구나, 만약에 했을 때는 미안하다 당신을 키워준 부모 정말 고맙다, 오늘 가서 부모님에게 맛있는 것 해드리자 그래서 제가 모시고는 저녁도 대접하고 자주 그럽니다, 고마운 마음 때문에 이 딸을 이렇게 키워주어서 내 생활을 이렇게 변화시켜주었는데 고맙습니다, 
일부로 장인장모님 앞에서 저는 그럽니다, 그러면 좋아하시는 겁니다, 
서로격려해주는 것 교인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주자에게 수고한다고 예배 끝나고 한번 껴안아주고 지휘자에게도 수고 많이 하신다면서 껴안아주고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도 새 신자를 담당하는 전도사님에게도 음향 담당하는 집사님들에게도 수고합니다, 고맙습니다, 그것을 계속해주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해주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그게 우리 몸에 베여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성령 충만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성령 충만하다고 그래서 할례루야 아멘 하고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안 좋으면 그러면 그게 성령 충만한 게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삶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됩니다, 
성령 충만은 인격이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항상 서로 격려해주고 왜냐면 여러분 중에 격려가 필요하지 않는 사람이 누굽니까, 저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예배 끝나고 목사님 오늘 목사님이 더 젊어 보이네요, 
그러면 저도 힘이 생깁니다, 목사님 오늘 말씀에 제가 힘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힘이 생깁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 설교말씀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내 귀에 들어오면 아주 가라앉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들 힘을 서로가 서로에게 주어야 됩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그게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서로가 삼위하나님이 서로가 그렇게 하신다는 겁니다, 서로가 힘을 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유교문화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남존여비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힘 있고 계급이 높은 사람은 밑에 사람이 어떻게 느끼던 말든 막 말해버리는 무례한 그러한 문화 속에서 우리가 자라났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상처받고 힘 빠지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러한 마귀문화 속에서 우리가 자라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그분자체가 만을 배려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면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형제자매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을 잊지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UQmdiGKKJI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