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제10강, 외식하는 자(마6장1절-16절) 2006년6월28일 말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리고는 6장으로 들어와서 오늘 본문말씀 마태복음6장1절부터16절 까지 말씀을 간단하게 말씀을 드릴 텐데요 몇 절만 읽겠습니다,
마태복음6장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게 말씀인데 여기에 중요한 세 분야가 있습니다,
처음에 구제하는 일과, 두 번째 기도하는 일, 세 번째 금식하는 일,
이 세부분을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거든요 5장 마지막에 가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보면 너희는 온전 하라 그랬지 않습니까,
아버지기 온전하신 것처럼 온전 하라 하였는데 이 온전에는 예수님이 두 가지 부분에서 온전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구약수준의 온전함과 신약수준에서 온전함이 있습니다, 구약 수준에서의 온전함을 예수님이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너희들 살인하지 말아라 그랬잖아요,
구약 수준에서 살인이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마음은 살인을 그 수준보다 훨씬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뭡니까 이웃을 노하게 하거나 이웃에게 라가라고 당신 골이 비었네, 이런 말입니다 이웃을 기분 나쁘게 한 말 자체가 살인이다 그랬지 않습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간음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실제로 간음한 것만 아니고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이다 이렇게 말씀 하였지 않습니까,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율법이라는 것을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신학의 율법으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5장39절부터 보면 나옵니다, 거기 보면 일곱 가지를 제시해 주십니다, 뭐라고 하시냐면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1)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2)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3)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4)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5)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6)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7)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렇게 하는 것이 신약에 와서 온전한 크리스천이 되는 조건입니다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그랬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이 되면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되지만 아들 수준까지 갈려면 영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그래서 팔복에서 아들이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그랬습니까,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원어로는 휴이오스라 그래서 영적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사람입니다 아들수준이 지금 우리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아들수준이면 여기7가지 나오는 말 있죠, 이런 인간관계를 맺을 때 아들수준으로 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46절에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그러니까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뭐냐면 앞에 나오는7가지의 삶을 살면 상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상이 있다는 소리는 하늘나라가 계급사회 아닙니까, 하늘나라에서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크리스천이 되시려면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이러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러한 삶을 살려면 이게 가능합니까,
이게 쉽습니까, 안 쉽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예수님께서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 팔복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자는 그랬지 않습니까,
팔복의8가지 단계를 전에 설명했기 때문에 자세하게는 안 하지만 이8단계를 항상 묵상을 하시길 바랍니다, 대단히 복 있는 길로 가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오직 이 방법입니다 첫 단계가 뭐였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 이게 무슨 말입니까,
심령이 나의 하트가 가난하다는 겁니다, 없다는 겁니다,
뭐가 없느냐면 성령의9가지 열매와 고린도전서13장에 나오는 사랑의 모습들이 내속에 없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내가 항상 애통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애통 아닙니까,
그러면 마귀의 성품은 뭡니까 내속에 있는 질투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 이기주의. 등등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마음이 내속에 잔뜩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나에게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난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 까지 이것을 매일 고백하면서 사는 것이 크리스천들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고백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 내가 애통합니다, 이것, 이것, 이것들 때문에 내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래서 애통을 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어떤 사람이 됩니까,
온유한 자가 된다고 그랬습니다, 온유한 자는 배우기를 소원하는 사람입니다 가축이라 그랬습니다, 가축, 그러면 의에 주리고 목마름, 갈증과 배고픔 의는 예수그리스도 아닙니까, 그래서 고체음식에서 주리는 것은 하나님말씀이고 액체음식은 뭐라고 하였습니까,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 생수, 이것을 첫째부터 네 번째까지 계속하시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성장시키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되면 그다음 다섯 번째 타인과의 관계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저분이 뭘 실수했구나,
내가 과거에는 저랬는데 내 모습이 거기에 보이는 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는 이웃을 이해하여 주고 용서해주고 긍휼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앞의 네 가지 과정을 끊임없이, 끊임없이 하다보면 사람이 겸손해 지거든요 그러다 보면 이웃을 내가 긍휼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이게 보통 복된 마음이 아닙니다, 이것만 있어도 그 사람은 대단히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 긍휼이 있는 사람은 이웃에 대해서 정제하지 않습니다,
긍휼이 온 다음에 그 다음에 뭐가 옵니까, 마음이 퓨어하게 순수해 집니다, 다시 말하면 내속에 있는 더러운 마귀의 성품들 이것을 쓴 뿌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쓴 뿌리가 조금씩, 조금씩 없어지는 겁니다,
내속에 있는 모든 마귀의 성품들이 쓴 뿌리들이 자기도 모르게 없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그 다음에 나오는 게 화평케 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렇죠, 화평에서 가장 중요한 화평이 먼저 수직적인 화평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화평케 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수평적인 화평은 크리스천들 사이에서의 화평입니다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수직적인 화평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주님께서 왜냐하면 우리가 십계명에서 처음 네 계명이 수직적인 화평을 이야기하거든요 그것이 뭐냐면 우상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 원수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우상을 섬기는 것은 그래서 수직적인 화평에 대해서 주님이 강조 하는데 매일, 매일 수직적인 화평에 대해서 내가 삶을 살아야 되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뭐겠습니까 화평케 하는 일은,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그랬거든요 우선 계급이 올라가려면 매일, 매일 수직적인 화평을 강구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이 수직적인 화평이 뭐냐면 삼위의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바라보는 겁니다,
삼위의 하나님을 내가 처음에 바라보려면 전 단계를 해야 합니다 전 단계가 마음이 순수한자라 그랬습니다, 순수한자가 어떻게 된다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마음이, 이안에 쓴 뿌리가 적을수록 내 영안이 열리면서 예수님이 보이고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내가 느껴지고 말씀의 음성이 들려오고 그렸습니다, 이게 깨끗해야 되지만. 수순해야지만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기도하면 삼위의 하나님이 보이고. 시작하시고. 느끼기 시작하고 그렸습니다, 그러면서 삼위하나님이시여 삼위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고백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 분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겁니다,
삼위하나님 성부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죠,
이게 기도입니다 매일매일 기도하는 겁니다,
성부하나님, 성부하나님은 삼위하나님 중에서도 성자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그 사랑의 하나님이시죠, 그리고 성자하나님께서도 성자하나님은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 되시고 나의구속자가 되시고 나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시고 성자하나님을 매일 묵상하는 겁니다,
이렇게 제가 말씀 들이는 되로 창조주 되시는 성자하나님 그러면서 이 분을 내가 보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다음 구속주가 되시는 성자하나님 나의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성자하나님 이분과 내가 대화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의생명이 되시고 나의 진리가 되시고 길이 되시고 부활이 되시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만 아니고 관리하시고 지배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나의피난처가 되시고 나의요새가 되시고 나의 반석이 되시고 나의구세주가 되시고 나의친구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자꾸 고백하는 겁니다,
이게 우리가 이분과의 관계 속에서 매일 하는 겁니다,
예수님 내속에 아직도 더러운 것이 많은데 이것을 제거해 주세요,
그러면 예수님이 그 말씀을 들으시고는 성령님을 통해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심과 씻으심이 있습니다, 불태워 주심이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계속 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쓴 뿌리가 하나하나 자기도 모르게 제거되면서 나의 이 하트가 승화되는 겁니다,
이 하트가 이렇게 될 때 온전하게 된다, 그럽니다,
이렇게 될수록 예전에는 몰랐는데 예수님의 마음을 내가 가지니까 나를 송사하는 사람에게 속옷만 아니고 겉옷도 벗어줄 수 있고 오리 가자하는 사람에게 웃으면서 십리도갈 수 있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기도해줄 수 있는 마음도 있고 이게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나에게 그런 마음을 주셔가지고 하게끔 하는 겁니다,
6장에 들어가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쓴 뿌리를 제거하지 않는 사람이 기독교인들 중에 많은데 다시 말하면 팔복을 묵상하지 않은 사람이 기독교인들 중에서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 예수의 인격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인데 그런데 크리스천들이고 이런 사람들 중에서 목사도 많고. 전도사들도 많고. 장로님. 집사님들이 많다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소위 크리스천들인데 쓴 뿌리를 그대로 안고 있다는 겁니다,
속이 더러운데 겉으로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에 외식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외식을, 속이 더러울수록 외식하는 모습이 이것을 커버하는 모습이 더 교묘하게 한다는 겁니다, 더러울수록 왜냐하면 자리가 높을수록 왜 이분들이 외식을 할까요, 이게 더러우면 팔복에서 마음이 순결치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예수님이 안 보이거든요 성령님의 역사하심도 내가 느끼지 못하고 영적인 감수성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을 말로는 주님, 주님 그럽니다, 주님이라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이라는 소리입니다 내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신데 말로는 하지만 이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분에게 내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고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 외에 다른 곳에 기될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님, 주님 한다는 겁니다, 이런 크리스천들은 말로는 주님이라고 했지만 마음속에서 진실한 고백이 없는 그런 크리스천들 그러니까 예수를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고 실존적인 예수로 우리가 이해 못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유가 뭡니까 내속이 아직도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거든요,
그러니까 예배의 모습도 그렇고 우리의 모든 종교행위들이 요식행위가 되거나 또는 형식주의로 누가 봐도 그렇게 은혜 스럽지 않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모든 형식은 다 갖추어 있습니다,
모습은 다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된답니다, 이런 삶을 우리가 살다보면 기도교인 삶 자체가 의무감이 생기고. 책임감이 생기고 이게 부담스럽습니다, 이 죄의식 때문에 항상 부담스럽고 마음 속 깊은데서 나오는 감사나 감격이나 눈물이나 또는 기쁨이나 이런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순 아닙니까, 이 모순을 덮기 위해서 더욱더 형식화 하고 알맹이 없는 종교화 삶을 살게 되고 제도를 만들어서 제도 속에 내가 묽혀서 보이는 종교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약점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보이는 것에 예수는 안 보이지만 예수처럼 만들어 놓은 이 모든 제도나 종교행위를 보이는데 치중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혼돈 하는 겁니다, 그것을 주님은 외식하는 사람들이라 그럽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외식 중에서 나타나는 곳이 세 분야에서 외식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첫째가 구제하는 곳에서 두 번째는 기도하는 데서 세 번째는 금식하는 이러한 모습으로 외식을 한다는 겁니다,
지금 누가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지금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외식이란 말을 헬라어로는 휘포크리테스 영어도 똑 같습니다 이 휘포크리테스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본래는 웅변가. 연설가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변해가지고 배우라는 연극배우 있죠, 그런 말을 할 때 휘포크리테스라 그럽니다,
배우라는 것은 뭡니까 실제적인 사건에 자기가 있는 인물이 아니고 실제가 아닌데 가면을 쓰고 변장을 하고는 실제처럼 눈 속임수로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 주어서 속임을 당합니다, 그걸 잘하는 사람을 배우라고 그럽니다,
똑같이 외식한다는 말은 겉으로 보면 진짜 크리스천들처럼 진짜 복 있는 사람처럼 하지만 내용을 보면 이게 가짜고 속임수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부분에서 외식하는 자들이 앞으로 교회 안에는 많을 것이랍니다, 첫째 구제행위에서 잠깐 봅시다,
구제행위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외식하는 자들처럼 되지 말라라 그럽니다, 왜냐하면 이 외식하는 사람들은 구제행위를 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회당과 거리에 나가서 나팔을 불면서 내가 이런. 이런 했다고 나타낸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누가 영광받기위해서 입니까,
자기가, 내가, 영광받기위해서 내가 선한 일을 했다 내가 복 있는 자다 봐라 내가 하는 것을 봐라, 이렇게 겉으로 나타낸다는 겁니다,
이렇게 과시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저는 이미 자기상을 받았니라 그럽니다, 그런데 그 말 앞에다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진실로 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수님이 진짜다 너희 상을 이미 받았다 그러면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그건 진짜입니다, 이미 천국에서 내가 아무리 구제를 많이 하고 아무리 좋은 일 많이 하여도 우리 예수님이 볼 때는 너 가 이 세상에서 다 받았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불우아동 돕기나 고아나 독거노인 돕거나 수재민이나 지진피해자들 기타 등등 도울 때 세상 사람들은 나팔을 불어야 됩니다, 그래가지고 우리가 이런, 이런 일을 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해주고 그러면 또 자기네가 비즈니스와 뭘 하는데 도움이 되고 그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크리스천들아 너희들은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한다는 겁니다,
어떤 때는 크리스천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저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그대로 적용되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 기도의 말씀을 하시면서 기도하는데 두 가지 주님이 지적하시는 상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할 때 회당과 큰 거리에서서 기도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 한다는 겁니다, 특히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기도 많이 하는 교회로 소문나 있습니다,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는 사람들이 싸움도 제일 많이 합니다,
욕심이 제일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다툼이 제일 많고 경쟁심이 많고 보니까 이 팔복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외식하는 기도하는 모습이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도 볼 수도 있습니다,
다는 그렇지 않지만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없지 않아 있습니다,
두 번째 주님이 잘못된 기도를 뭐라고 하시냐면 말을 많이 하면서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한다는 겁니다, 이 외식하는 사람들은 질리게 기도하는 겁니다,
중언부언으로 길게 기도한다는 겁니다,
중언부언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의미 없는 반복된 기도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겁니다, 의미가 나에게는 있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 우리아이 학교 잘 들어가게 해주세요, 나에게 사업도 잘 되게 해 주시고 모든 게 잘되게 해주세요, 이게 나에게는 의미가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 의미입니다 그게 주님이 듣고 싶어 하는 기도가 아니랍니다, 성부하나님이 듣고 싶어 하는 기도가 아니랍니다,
그분의 입장에서 볼 때 의미가 없는 기도랍니다 그분 입장에서 볼 때 그다음에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네가 뭐가 필요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주세요, 저것주세요 하는 기도는 어린아이들이 기도하는 것이고 아들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것주세요 저것주세요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뭘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의미 있는 기도가 뭐냐면 하나님이 듣고 싶어 하는 기도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랬습니다,
이방인처럼 중언부언 하지 말라라 그랬거든요 이방인의 기도가 이런 스타일로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를 보세요,
불교에서 스님이 염불을 외우잖아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목탁을 치면서 계속 반복합니다, 그분들의 생각에는 계속 반복하면 부처께서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불교영향을 받아서 우리도 계속 반복하는 겁니다, 이 하트를 깊이 내려가지 않고 그냥 소리 지르고 반복하면 되는 줄 압니다, 우리도 통성으로 기도 합시다, 하면 주여 삼창 합시다,
하면서 주여 하면 소리 지르잖아요 그것도 좋습니다만 이렇게 가다보면 우리마음을 드리기 위해서 주여 삼창하지만 그 형식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내용이 없어져 버리고 형식화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리를 크게 지르고 주여 삼창을 하는데 악을 쓰면서 목이 쉬어야지만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을 우리가 좀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형식에 너무 치우쳐 버립니다,
예수님이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영의 눈을 떠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그분의 존재를 내가 인정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의 존재에 대해서 내 스스로가 겸손해지고 무릎을 꿇은 겁니다, 아-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죠,
이 세상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시죠 지금도 예수님이 온 우주를 관리하고 계시죠, 예수님은 역사의 주인이 되시죠,
지금 한국의 남북문제, 미국의 문제, 아프리카문제 등 모든 문제들을 예수님이 관장하시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죠, 그분과의 기도의 처음시작을 이렇게 합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죠 그러면서 큰 그림에서 밑으로 조금 내려오는 겁니다,
예수님은 내 삶에서 요새시죠, 반석이 되시지요,
나의피난처가 되시지요, 나에게 은혜를 주는 은혜의 주님이시죠,
또 다시 오시는 재림의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은 나의 삶에서 길이 되시죠, 진리가 되시죠, 나의 생명이 되시죠, 부활이 되시죠,
나의친구가 되시죠, 예수님과 대화를 한없이 많이 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자기를 고백할 때 듣고 싶어 하시겠습니까,
안 듣고 싶어 하시겠습니까 우리 입장을 바꿔놓고 우리 부모님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 대해서 엄마 아빠의 존재를 확인하시고 올리시면 그 엄마 아빠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안 좋겠습니까,
이것을 매일 확인하고 고백하고 하는 겁니다, 확인하고 고백하고 그다음 단계가 내가 예수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예수님을 더 경배하게 되고. 경외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존경하게 되고. 찬양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먼저 다 고백하고 그것을 내 마음속 깊이 고백하면 그때부터 내가 예수님에 대해서 의지하게 되고 존경하게 되고. 경외하게 되고. 경배하게 되고. 찬양하게 되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가 내가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위해서 주님 찬양합니다,
경배 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드리면서 이런 사람에게 주님이 미워하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너 정말 괜찮구나,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은혜를 베풀겠습니까,
안 베풀겠습니까, 베푸십니다, 그분의 은혜를 내가 받으면 그때부터 아까 말한 남에게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게 되고 용서하는 마음이 저절로 나오고 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 저절로 나오게 되고 이게 예수님의 마음이 자동적으로 내속에 들어와서 자동적으로 나가는 겁니다,
이것을 계속하다보면 마지막 단계 그다음 단계가 뭐냐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날 사랑하느냐 그랬잖아요, 그것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고 이 단계를 그쳤을 때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마음이 뭡니까, 우리 부부관계도 그렸습니다,
상대가 없으면 어딘가 텅 빈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내속에 없으면 나와 그분과 대화를 매일 하는데 이분이 옆에 없으면 왠지 허전합니다,
예수님을 그립게 되고. 동경하게 되고.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고. 이분과 매일 대화하면 나에게 기쁨이 있고. 만족이 있고 어딘가 모르게 흐뭇한 겁니다, 예수가 내 삶을 전부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의소망이고 나의 모든 믿음의 주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이 나는가 하면 예수님 내가 이 세상에서 목숨이 끓어지면 이제는 주님을 내가 만날 생각을 하면 기분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소원으로 오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보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의 지나가는 일들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나를 지배하지 못하는 겁니다, 내가 과연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안 그러면 나의 요구사항 나의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내가 필요한 것 채워주니까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필요한 것 빼앗아 버리면 어머나 합니다,
마지막으로 금식행위를 보시면 똑 같습니다 슬픈 기색내면서 금식한다고 그럽니다, 우리 모두 금식한다면서 모두에게 알립니다,
이것도 어느 정도는 좋지만 주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금식한다는 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자꾸 사람들에게 나타나니까 그러니까 숨어서 하라는 겁니다, 화장 예쁘게 하시고 왜냐하면 힘들게 금식해놓고 내가 나타나면 상급이 없는 겁니다, 헛 금식이 됩니다, 마이너스장사를 왜 합니까,
그렇게 하지 말아 라고 예수님이 그러시는데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바보들입니까 우리가 그 엄청난 형식과 제도 속에 묻혀가지고 거기에서노예가 되어가지고 진정한 예수를 바라보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너희들 상 받았다,
진실이란 말을 계속 쓰십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요한복음12장43절에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사람에게 영광 받으려고 하는 건지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려고 하는 건지 다 안다는 겁니다,
다 그렸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이나 기독교계 지도자들 그래서 주님이 마태복음23장에 일곱 가지 화있을 진저 지도자에게 이야기하면서 기독교계에 이런 스타일의 일곱 가지 기독교인들이 있는데 이런 스타일이라 합니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서기관들은 알다시피 신학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보수교단 목사님들입니다 장과 대적하는 겉을 깨끗하게 해야 된답니다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그 안을 깨끗하게 해야 된답니다 소경이었답니다, 왜 소경입니까 이분들이 왜 이렇게 합니까, 영안이 어두워져서 그렸습니다, 왜 영안이 어둡습니까, 이속이 더럽기 때문에 그렸다는 겁니다,
이속이 순수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본 것처럼 포장을 해 놓았습니다, 가운입고 십자가 달고 직분도 높고 학위도 있고 하는데 그런데 못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스타일입니다 영의 눈이 어두워지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면서 너희들은 육과 혼의 눈은 떠있으나 영의 눈이 어두우니까 육과혼의 눈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과시적인 것에 너희들이관심이 있어서 저 교회 저사람 성공 했구나 과시적으로 허세라고 그럴까요, 이런 과시욕에 차있고 그러다보니까 서로 다투고 싸움하고. 경쟁하고. 이런 일들을 한다는 겁니다,
저희들은 외형적인 경건주의. 과시적인 경건주의. 외식적인 경건주의. 종교적인 외식주의. 이런 일들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처음에 너희들은 외식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6장1절에 그러면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주의하라, 정말 조심하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놓고 기도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내고. 선교도 많이 하고. 포지션도 다 가져보고 다 했는데 외식하는 자가 되어서 외식을 했으면 너 가 칭찬받기위해서 너 비전을 이루기위해서 하였으면 너는 다 헛수고다 그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 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조심하라 그럽니다, 예수님이 조심하라 그랬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짜로 조심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주님나라에 가서 너 가 누구인지모르겠다 그러면 이게 뭡니까 마태복음5장.6장.7장에서 가르쳐 주었잖아요 이렇게 되면 안 되잖습니까,
우리는 똑같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순종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삶속에서 이것을 연습한 다음에 우리자녀들에게 이것을 전수시켜야 됩니다, 그게 진짜 복 있는 부모 아닙니까, 이걸 해줘야 합니다,
분명히 상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팔복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내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뽑아내야 됩니다,
뽑아내는 길은 팔복의 순서대로 묵상하고 그것을 삶속에 조금씩, 조금씩 대입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내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점점 없어지면서 나의 영의 눈이 밝으면서 영계가 보이기 시작하고 성령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고 모든 것에 영적인 사람이 되어 가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디까지 가느냐면 예수님만 바라보게 되고 예수님께 아까 기도하는 식으로 예수님께 의미 있는 기도만 하게 되고 그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가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쓸데없는 모든 외식적인 것들을 이게 우상들이거든요 이것들을 뽑아버리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우리가 가는 겁니다,
주님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겠습니다, 날 좀 도와주십시오, 성령님 내 마음을 지배해 주십시오, 주님을 만나서 그래서 예수님이 내속에 깊이 성령님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씻어주는 경험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황용현 목사] 산상수훈 시리즈 (10) 외식하는 자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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