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10강, 하나님의 대 구원계획(2) 창3:21-24
하나님의 대 구원계획을 계속해서 지금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실은 지난 아홉 개의 강의는 지금부터 강의를 하기위한 준비단계의 강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부터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강의가 계속될 텐데 첫째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피를 흘려야 하느냐 입니다,
이렇게 누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는 대로 창세기3장15절에 여자의 후손으로 와서 피를 흘리신다고 간접적으로 지시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본인도 마찬가지고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큰 이슈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이 시간에 풀어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첫째 아담이 죽었다고 그랬습니다, 2장17절에 반드시 죽으리라 이때 죽는다는 개념이 육이 죽는다는 개념과 혼이 죽는다는 개념과 그다음에 영이 죽는다는 이세개념이 다 포함된 의미에서의 죽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담은 영원히 살 수 있었는데 930세에 죽게 되고 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성품이 마귀의 성품으로 변해 갔다는 부분 영도 그 길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죽는다는 개념이 산다는 개념의 반대말입니다 산다는 것은 우리생명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피라고 그랬잖아요, 산다는 개념은 피가 흐른다는 소리입니다 우리 육적인 개념을 먼저 생각해봅시다, 피가 흐르는 것을 산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죽는다는 것은 피 흐르는 것이 멈추어 버리면 죽는다,
그러잖아요, 왜 그럴까요, 피 속에 뭐가 있을까요 피가 영양소를 운반하고 또 산소도 운반하고 또 피가 병균을 죽이는 역할도 하고 이런 모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역할을 피가 하잖아요, 특히 산소 운반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죽는다 할 때 육만 죽으니까 육의 피만 생각하는데 피라는 개념이 우리가 육으로 보이는 육의 피 그런 피의 생명적인 요소가 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혼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에도 있고 피라는 것이 그래서 우리 생명의 원천이 피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우리 피의 개념을 피가 생명의 원천이다,
라는 것을 레위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17장11절에 동물의 피를 이야기하시면서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피에 관한 이야기가 쫘악 나옵니다,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동물의 피 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을 속죄하게 하려면 피가 다시 말하면 죽는 피를 뽑아내고 산피를 집어넣어주는 병원에서 수혈하는 식으로 그렇게 했을 때 살아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살아나려면 죽은피를 뽑아내고 산피를 집어넣어주면 살아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사는 길은 다른 걸 주어서 되는 게 아니고 피를 갈아 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만큼 피가 생명을 말한다는 이 개념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육이 살아나려면 육의 피 가 있습니다,
육적인 것은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에 육의 피구나라고 근방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혼이라는 것은 나의 정신입니다 지식과 의지와 감정부분입니다
혼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그 안에 보이지 않는 혼의 피 가 있어서 그렇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혼의 피니까 우리가 정신이 눈에 안보이듯이 분명히 혼이 약동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혼의 피라고 생각을 해봅시다,
혼의 피 그리고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영도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누구의 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피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의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 만약에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럴 때 죽는다는 말이 뭐냐면 너와 나와 관계가 깨진다, 없어진다는 그런 말입니다 관계가 없어진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부모님이 떠났다 그러면 나와의 관계가 끊어진 겁니다, 그 순간에 그래서 성서에서는 죽는다는 말은 관계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는 것은 이분이 육적인 관계도 끊어지고 혼적인 관계도 끊어지고 영적인 관계도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어졌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너는 이제 우리 식구가 아니다 그런 소리입니다 그리고는 너는 우리식구가 아니고 너는 누구 말을 들었느냐 사탄의 말을 들었으니까 너는 지금부터 사탄의 식구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사탄의 식구다 그러면 누구 피를 가졌다는 겁니까,
이제 사탄의 피를 가진 겁니다, 그래서 색깔을 우리가 빨강 피가 아니고 검정피를 가졌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검정피를 가진 존재입니다,
본래는 빨강 피였는데 우리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그러면 창세기3장15절의 말씀은 뭘까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육의 피도 오리지널을 바꾸어주고 그다음에 혼의 피도 하나님의 피로 다시 바꾸어주고 그다음에 영의 피도 바꾸어주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대 구원 작전입니다 구원계획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피를 바꾸어 주는 겁니다,
그래서 육의 피를 하나님의 피로 서로 받으면 육도 영원히 살게 되고 혼의 피를 가지면 다시 하나님의 성품으로 내가 변해버리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영의 피로 예수님의 피를 닮아 가면 이제는 영원히 사는 영적인 측면에서 영적인 자녀가 되고 그래서 피를 바꾼다는 그런 개념으로 우리가 생각을 해봅시다, 그런데 이 개념은 이해되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겁니다 창세기3장15절에 왜 피를 우리에게 주시려면 하나님이 3층천 꼭대기에서 저 말리에서 자기 피를 위에서 소나기 내리시듯이 뿌리면서 받아먹으라, 그러면 입을 벌리고 받아먹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왜 안하시고 하나님이 십자가라는 하나의 방법을 통해서 거기서 피를 흘리시기를 기도하였을까요, 그것도 하나님이시고 창주주시고 아들이신 예수가 성육신해가지고 왜 그런 방법을 쓰셨을까요,
그것도 질문입니다 그 방법을 결정하시고는 4천년이라는 시간을 하나님본인이 보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을 제가 깨달은 것들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분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하나님이 화가 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화가 나셨다는 것은 거룩한 화입니다 “하나님의 화”입니다 하나님이 화가 나셨는데 나쁜 의미에서의 화가 아닙니다, 자녀를 부모가 기대를 했는데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부모의 거룩한 화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화를 누가 풀어야 됩니다, 피조물이 풀어줄 수 있습니까 이것이 의문입니다 피조물이 별짓을 다해서 화를 푸십시오, 푸십시오, 하여도 하나님이 이렇게 보실 때는 하나님마음이 차지가 않는 겁니다,
왜냐면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내가 지금 화가 났는데 파리새끼가 와서 화 풀라고 자기네 말로 나에게 말하는 겁니다, 자기네끼리 말로 나에게 화 푸세요, 화 푸세요, 하면서 파리 열 마리가 와서 막 말하는 겁니다, 그게 되겠습니까,
인격적으로 우선 맞지가 않는데 돼지가 떼거리로 와서 화 푸세요,
하면 화가 풀리겠습니까, 안되잖아요, 그러듯이 하나님과 차원이 다른 인간이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화 푸십시오, 화 푸십시오,
할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64장에 인간이 제아무리 선한행동을 하고 하나님 앞에 내가 옳다, 하나님 이게 기가 막힙니다,
이런 식으로 화 푸십시오, 하면서 인간이 선한 행동으로 거룩한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 별난 짓을 다하고 하여도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이사야에게 그러는 겁니다, 걸레조각 같다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의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걸레조각 같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이 아무리 선한행동을 해도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차지가 않는다는 겁니다, 이사야64장6절입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기본적인 이런 구절은 암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특히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이런 것을 물어볼 때 어머니 아버지로써 대답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데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이게 해결이 안 되면 주님 앞에 오지를 못합니다,
이런 부분을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예수 믿어라 교회 다녀라100번 해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논리적으로는 안 되지만 하려고 노력을 지금 하는 겁니다, 피조물이 도저히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화를 풀어줄 수 없다는 겁니다,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왜냐면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와 피조물을 엄청난 가치기준의 차원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 수준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하였는데 왜 안 받아줍니까 그것은 우리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수준에서 우리가 이야기해야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수준으로 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피조물이 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하나님의 화를 풀지 못한다면 누가 풀어야 됩니까, 이게 질문입니다
이 문제는 인간이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스스로가 풀어야 되는 문제입니다 인간은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다고 하지만 우리수준 가지고는 하나님의 수준에 차지를 않는 겁니다, 우리는 한다고 하지만 그러니까 창세기3장15절에 하나님의 대 구원계획을 삼위하나님께서 만났던 것 같습니다,
삼위하나님이 아담이 이렇게 실수를 하니까 아마 삼위하나님이 만났습니다,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지만 세분이 모든 권력이고 파워고 모든 것이 다 똑같으신 분이신데 기능상 다른 겁니다,
기능상 성부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분이시고 성자하나님은 그 계획을 수행하시는 분이시고 성령하나님은 그 계획을 수행하시도록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라 지난번에 정리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회의할 때 의사봉을 가지고 회의를 주제하시는 분은 성부하나님이십니다 아마 세분이 모여서 민주주의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삼위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뭘 결정하였느냐면 우리가 화를 푸는 길은 다른 길이 없다 우리가 풀어야 된다고 결정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풀어야 되느냐면 우리가 위에서 피를 쫘악 내려서 피조물에게 다시 줄까 그랬는데 아마 회의하셔가지고 그렇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피조물들을 위하여 피를 나누어주어도 고맙게 생각할 놈이 한 놈도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 마음을 모를 거야, 우리가 이렇게 이것 때문에 화가 나 있는데 저 피조물들이 우리의 이 마음을 알 길이 없다는 겁니다,
나중에 데려다가 같이 살 텐데 저놈들이 고마운 걸 조금도 표시 안 할 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또 루시퍼처럼 딴 짓할 줄 모르고 그러니까 다른 길이 없다 저놈들이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자비를 우리의 용서를 이해하도록 이해도 저놈들의 수준으로 이해하도록 하나님의 수준으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수준으로 이해하도록 우리가 인간들 사회 속에 직접 내려가는 길 밖에 없다 아마 그렇게 결정해서 성부하나님이 의사봉을 딱 딱 딱 때렸던 것 같습니다, 그게 창세기3장15절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계획하신 것을 시행하신 분은 누굽니까,
피조물과 관계를 맺은 분은 성자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성자하나님은 이 세상으로 내려 보내시도록 결정을 하신 겁니다,
내려 보내시는 목적이 뭡니까 내려오셔서 인간들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시고 화를 본인이 다 뒤집어쓰시고 그리고는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피를 나누어주기 위해서 실제로 피 흘리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그 피가 하나님의 피다 너희들의 죄를 알고서 하나님의 생명을 주기위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보여주는 장면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장면 같습니다,
제 느낌에 그래서 우리가 아!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오셨는데 이분이 나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이 피를 흘리시고 그 피가 나에게 다시 오면 내가 그 피를 네게 다시 주십시오, 하여 그 피가 나에게 다시 들어와 가지고 네게 그냥 피를 바꾸게 되는 겁니다, 사탄의 피가 없어지고 하나님의 피가 나에게 들어오는 하나님이 그런 계획을 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피조물로써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이런 부분입니다 이걸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만 하여튼 이 정도로 우선 쉽게 이해하세요,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3장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은 굉장히 쉬운 말인데 알고 보면 예수님이 겉으로만 이야기하셨고 그것을 자세하게 말하려면 피를 흘려 썼고 그 흘리신 피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면 그 피가 너희들에게 들어가서 너희들이 새롭게 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 안 하셨잖아요,
그렇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피 흘림이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피를 흘려서 피를 흘렸다는 것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다 안으셨다는 겁니다, 안으시고 이제는 예수님이 죄인이 된 겁니다, 나를 위해서 죄인이 되어가지고 죄인은 피를 흘려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나 때문에 죄인이 되어가지고 피를 흘렸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하나님의 피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이 피를 흘렸다고 바울이 계속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피가 하나님이 피를 공중에서 흘려서 가지고 공중에서 흘리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하시고 우리 눈에 보이는데서 피를 흘리시고는 우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피를 흘려셨군요 하나님 그 말만 하면 그냥 내 속에 있는 검정(까맣)피가 다 없어지고 예수님이 피로 싸악 대체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되니까 하나님이 그때부터 인간 역사 속에서 4천년 역사 속에서 이것이 이해 되도록 하나님이 차건. 차건이 우리 피조물들에게 연습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통 자상한 분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보세요, 아드님이신 예수하나님께서 성자하나님께서 본인이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이렇게 할 것을 이분이 구약에서 여호와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오셔가지고 피조물들에게 자꾸 말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양을 잡아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본인이 할 것을 계속해서 내려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을 보면 예수님대단하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인간을 만들어 놓으신 피조물을 있으나 없으나한 존재들로 만들어가지고 다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양을 잡어라 염소를 잡어라 각을 떠라 이렇게 안하면 혼내준다 염소도 아주 흠이 없고 수컷으로 1년 된 놈만 잡어라 1년 된 흠이 없는 수컷 이게 예수님입니다 1년 된 염소는 예수님으로 30살이 동물의1년짜리입니다, 그다음에 이분이 여자로 안 나오시고 남자로 나오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꼭 수컷이라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아주 정확하게 하십니다, 나중에 우리가 기회가 되면 보겠지만 기가 막히게 하십니다,
그렇게 자상하게 우리에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그러겠습니까, 오래 참으시면서 그냥 말도 못하면서 우리가 이런 시각으로 깨닫고 구약성경을 읽으면 주님께 미안해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가다가 너무하십니다, 그냥 쉽게 하시면 될 텐데 너무나도 마음이 넓으시고 자상하시고 너무나도 오래 참으시고 너무 크십니다,
하면서 이것이 감동이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신구약성경 전체를 보는 눈이 떠지면 어떠한 사건을 보면 너무나 크십니다, 이게 안 보일 때는 너무 컨지 모릅니다, 이 사건이 눈에 보이면 성경을 미안해서 못 볼 지경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우리피조물들을 사랑하시는지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게 우리가 예수님처럼 커지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이렇게 보는 것도 우리의 시각을 넓히는 겁니다,
시각을 넓혀서 예수님의 마음이 되면 웬만한 자질구레한 것들이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겁니다, 그것도 복입니다 눈을 시각을 넓히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보시면 처음에 아담에게 구원계획으로 너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가렸지만 창세기3장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기 보면 누가 가죽옷을 만들었습니까,
여호와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서 주었습니다, 지금 이 양반들이 무슨 치마를 입고 있습니까, 3장7절에 보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입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죽옷 치마를 만들어서 입혔습니다,
그러면 가죽옷은 뭡니까, 예수님이 무화과 나뭇잎 치마를 입고 있는 걸 보고는 예수님이 동물을 죽여서 본인이 본인스스로를 보여주는 겁니다,
동물을 죽여서 햇볕에 말려서 피를 다 흘리게 한 다음에 그리고는 치마를 만들어서 입혀주는 겁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게 어떤 장면입니까,
저는 이게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애기를 낳아가지고 애기가 똥오줌을 못가라니까 기저귀를 채워주는 것 같습니다, 그 애기는 모릅니다,
그래서 영적유아기 때를 보여주는 겁니다,
구원론에서4천년 역사에 가장 초창기에 저게 뭔지 알거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걸 입고 다녔잖아요,
그런데 가죽옷을 입어면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어떻게 됩니까,
가죽옷을 입으면 에덴동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죄가 커버가 되었기 때문에 22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랬습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성부와 성령하나님처럼 이제 죄가 커버가 되었으니까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이게 왜냐면 예수의 보혈로 커버가 되니까 선악과가 필요가 없는 겁니다,
선악을 아는 그리스도로 커버가 되었기 때문에23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제 이분들을 에덴동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죄가 커버가 되었기 때문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못 들어오게 지켰다는 겁니다, 그룹천사들과 화영 검으로 이걸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셔서 피를 흘리실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는 그걸 강제적으로 하시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뭡니까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걸 부여주고 싶고 용서의 하나님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걸 피조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가죽옷을 입혀서 그냥 들어와라 이렇게는 안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가치를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는4천년이라는 기간을 가야된다는 겁니다, 근본이신 하나님은 보통 크신 분이 아닙니다,
여기 까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가죽옷을 구원론 NO1이라고 해서 제가 지은 이놈들인데 가죽옷의 어린양 이렇게 제가 이름을 지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시고는 구원론 NO2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4장을 보면 1절에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이걸 우리가 피와 관계없는 사람들은 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느냐 그럴 때 첫 새끼를 받쳤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이 내용이 달라지는 겁니다, 여기서는 왜 그럴까요, 왜 아벨의 제사를 받았습니까,
피의제사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피의제사” “아벨의 어린 양” 이렇게 제목을 붙여놓고 보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냐면 왜 그러면 아벨은 양치는 자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양을 바칠 수 있지 않습니까,
가인을 농사짓는 자이기 때문에 양이 없으니까 자기가 지은 것을 바쳤는데 뭐가 나쁩니까, 이렇게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을 때 항상 신약에 가면 대답이 있습니다,
히브리서11장4절에 대답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여기 보면 아벨의 제사가 더 나은 제사라는 겁니다,
여기에 중요한 이슈가 있습니다, 믿음으로입니다,
그러면 왜 믿음으로 그랬습니까, 믿음이라는 말은 왜냐면 분명히 누가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고서 믿고서 했다는 겁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그냥 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말 잊지 마세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무슨 말을 했길 레 믿었다는 겁니까,
분명히 아담이 아들들에게 치마입고서 아들들에게 치마 입게 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이것 예수님이 오셔가지고 나에게 치마를 입게 하였으니 너희들도 치마를 입으라 하였으니 자식들이 다 입고 다닐 겁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드리는데 너희들도 꼭 동물을 잡아서 피 흘리고 이렇게 각을 떤 다음에 그 가죽으로 또 치마를 만들어라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아벨을 그렇게 했는데 형 되는 가인은 약식으로 그렇게 안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다른 것은 양보하시는데 창세기3장15절의 구원계획에 위배되는 것에 양보가 없습니다,
성서에서 보면 이게 우리 몸의 등뼈로 한줄기로 흘려가는 겁니다,
여기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이 부분을 가르쳐주는데 거기서 조금이라도 다르면 가차 없이 하나님이 화를 내시고 그러십니다,
동물을 가지고 제사를 지낼 때도 나중에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데로 하라는 겁니다, 거기에 보면 다 그리스도의 예수의 모습이 다 있습니다,
거기서 예외가 있으면 혼을 냅니다, 그래서 구약은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보혈을 흘리신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가 구약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구원론 NO2를 아벨의 어린 양이라고 해봤습니다,
그러면 아벨의 어린양이나 가죽옷의 어린양이나 이게 언제 행하였습니까,
주전 약4천년 때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하면서 주욱 가시다가 주전3천년 노아 때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약 천년 후 사건입니다, 천년 후 사건인데 방주를 짓도록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로 홍수는 언제 일어났습니까, 주전 약2500년입니다
다시 말하면500년500년씩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에500년 후에 에녹이 태어났고 실은622년이지만 에녹다음500년 후3000년에 노아 때였고 노아다음 약500년이 홍수고 홍수에서500년 후가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 후500년이 모세고 모세에서500년이 다윗이고 다윗에서500년이 다니엘 다니엘에서500년 후가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주전2500년이 노아의 홍수 때 보면 방주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방주의 어린양입니다 창세기6장14절에 보면 방주에 관한 정확한 모양이 나옵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그랬습니다,
여기 보면 우선 방주가 예수님이라고 그럽니다,
우리가 구원의 방주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물은 뭡니까, 물은 세상 죄 또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모면하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됩니까, 예수님께 들어가야 됩니다,
예수님께 들어가야 되는데 그런데 방주안팎에다가 역청을 발라라고 그랬습니다, 역청이라는 게 우리가 아는 아스팔트입니다 역청을 안팎에다가 발라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역청이 뭐냐면 예수님의 피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안팎에 안 바르면 물이 새는 겁니다,
그러니까 심판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방주가 온전한 구원의 방주가 되려면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안팎을 칠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칠하다, 라는 동사가 영어로 커버(Cover)시킨다 이게 히브리말로 카파르(Kaphar)라는 말이 있습니다, 카파르(Kaphar)라는 말이 뭐냐면 제사장들이 가운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갈 때 소의 피를 온 몸에 발랐습니다,
왜냐면 제사장의 죄를 커버시키는 겁니다, 안 그러면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재 하여 계신데 들어가면 자기 죄를 커버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즉사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장옷을 출애굽기28장에서 만들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가운을 입잖아요, 가운이 이렇게 미니스커트가 아니잖아요, 길고 모자 쓰고 소의 피를 바르는 겁니다, 자기 죄를 커버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때 쓰는 단어가 카파르(Kaphar)라는 단어입니다 덮어버린다는 겁니다,
피로써 안에 죄가 있지만 그 죄를 피로써 덮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볼 때 그 죄를 간과해주는 이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방주의 사건도 하나님의 역청으로써 안팎을 예수의 피로써 덮어 버리니까 심판의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상징적으로 노아 때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상징적으로 처음부터 다시 복습하겠습니다,
NO1이 가죽옷의 어린양 창세기3장21절 NO2는 아벨의 어린양 창세기4장이야기고 NO3 노아의 방주의 어린양 창세기6장14절 이렇게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 자녀가 이방나라에 가서4백 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다가 다시 나올 거다, 라는 그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5백년을 앞을 내다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5백년 후 모세를 내다보고 하신 겁니다,
다음시간에 여기에 대해서 자세하게 하겠지만 이렇게 한 다음에 아브라함이라는 분이 어디출신입니까 갈대아 우르출신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아라랏 산에 노아의 방주가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페르시아 만으로 물이 흘려내려 오는 강이 티그리스 강입니다 그리고 티그리스하류에서부터 이스라엘북쪽으로 가는 강이 유브라데 강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면 유브라데 강 하류 우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유명한 도시가 바벨론이라는 도시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르에서60세에 하나님의 불리 움을 받아가지고 하란으로 가서15년 있었습니다, 왜냐면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기다린 겁니다, 제가 창조론강의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게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버지가 죽은 후에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내려와서 제일 처음 도착한 도시가 세겜이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이스라엘지도를 보면 꼭대기에 갈릴리 호수고 그 밑에 사해입니다
사해꼭대기에서26km 서쪽으로 가면 예루살렘입니다 아브라함이 세겜에 도착하여 있다가 또 벧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벧엘에 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10km올라가면 벧엘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밑으로40km내려오면 헤브론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 벧엘에서 헤브론으로 내려와서 롯을 사해 바로 밑에 있는 도시 소돔과 고모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헤브론에서 롯을 보내고는 조금 있다가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갔는데 브엘세바입니다
이분이 브엘세바에 있을 때 이삭을 낳았는데 하나님이 이삭을 바쳐라 는 겁니다, 그게 창세기21장 말씀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구원계획N04가 이삭을 바치는 장면입니다 이걸 통해서 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삭을 바치라니까 브엘세바에서 이미 이삭이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들을 데리고3일 길을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서 바쳐 라니까 옆에 있는 염소한마리가 예비 되어 있어서 그걸로 대체된 겁니다,
그 염소도 예수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그렇게 할 것을 브엘세바에 있을 때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3장16절에서 이삭을 예수님이라고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모리아 산에서 죽으실 것을 위치까지 정확하게 아브라함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셔가지고 죽으셨다가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정확하게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YtOKwZfxg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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