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사도행전 강해

11강, 사도행전9장1절-31절, 사울의 개종

변명섭 2019. 12. 4. 10:53

 

사도행전 강해 제11강, 사울의 개종(행9:1-31) 2011년5월22일 말씀
사도행전9장입니다 9장1절에서31절까지입니다, 
다 읽지 않고 처음에 몇 절만 읽겠습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아멘, 
이제 사울이 기독교인이 되는 순간입니다 사울이 기독교인이 되자 말자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때 20 즉시로 회당에 가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셨다는 겁니다, 회당이라는 것은 어디입니까 
디아스포라유대인들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의정체성을 전했다는 겁니다,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여기 보면 20절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다음에 22절에 예수는 그리스도라 이 두 메시지입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는 이 두 메시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나가서 바울처럼 되려면 다른 이야기하시면 안 되고 예수님의정체성을 전하는 것입니다 지난시간에 빌립이 사마리아와 에티오피아선교를 한 이야기를 주욱 우리가 했습니다, 지난시간에도 그랬지만 예루살렘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다섯 단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말아주세요 
첫 단계가 예루살렘에 사는 히브리 파 유대인들 복음화 시키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소위 순수 유대인들입니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을 방문한 헬라파유대인들 복음화 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소위 하이브리드 피가 섞인 혼혈사람들을 복음화 하는 단계에 빌립을 사용하셔서 사마리아사람들을 복음화 하였고 에티오피아 팔라샤를 복음화 했던 이야기입니다 여기 까지 보았습니다, 여기 까지가 8장이 끝난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 단계로 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네 번째 단계는 헬라파유대인들을 기독교화 시켜서 훈련시켜서 파송시키는 일이 네 번째 단계입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열두제자들도 이제는 스스로 문화훈련을 받아서 그릇이 준비된 후에 이방으로 자기네들도 파송되어야 되는 것이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 8장을 끝나면서 9장에 들어왔는데 9장에서는 네 번째 단계로 가주어야 되는데 네 번째 단계 이야기가 없는 겁니다,
 9장에 가서는 지금 단막극으로 네 번째 단계로 가기 전에 어떤 장면이 있냐면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밖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9장은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거기에 중요한 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사울인 겁니다, 사울은 헬라파유대인입니다 그리고 비 예루살렘교인입니다, 이분은 예루살렘교회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하나님이 개종시키는 이야기가 9장이야기입니다, 
9장이야기는 대단히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많습니다, 오늘 이 부분을 심도 있게 같이 우리가 공부하려고 합니다, 
9장 이야기를 할 때 하나님이 사울이라는 사람을 쓰시려고 준비하시는 장면인데 왜냐하면 사울이 뭘 할 겁니까, 
사울이 앞으로 4단계. 5단계 일을 다 할 사람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가 아니고 밖에서 그래서 이 사람을 등장을 시키는 겁니다, 
이 사람이 등장을 하기 위해서 먼저 이 사람이 악한 역을 하는 장면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잖아요 하나님이 가끔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미 어머니 태속에서 이미 주님의 사역자로써 이미 불리 움을 받았는데 본인도 모르고 주변에서도 모르고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경우가 많습니다, 사울도 똑 같은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분이 아주 나쁜 행위를 하는 이야기가 주욱 나옵니다, 
이분이 그래서 이제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가지고 이스라엘 그 당시 예루살렘교회 흩어진 사람들 중에서 다메섹까지 올라간 겁니다, 
안디옥 까지도 올라갔는데  다메섹에 올라간 사람들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의정체성을 누구에게 이야기하느냐면 유대인들에게 안 그래도 예수님의정체성을 이야기하면 이분들이 열을 받잖아요, 그래서 본부에다가 보고를 했는데 사울도 그 당시에 이 보고를 받고는 열을 받고는 자기가 쫓아낸 사람들이 다메섹으로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데리고 오겠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다 아는 이야기들 아닙니까, 
이러다가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우리가 다 알기 때문에 자세히 말 안하겠습니다, 
그런데 빛을 받는 장면입니다 빛을 받는데 빛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1장에 보시면 빛은 예수님입니다 빛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분이 그런데 같이 있던 사람들은 빛이 비추는 것을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소리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주님이 예정한 사람에게 빛이 내려가는 것이지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빛을 받지도 못하는 겁니다, 이게 다 예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 이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소리는 들었지만 빛은 받지를 못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그러면서 이분보고 그러잖아요, 너 이제 장님이 되었는데 직 가라는데 직 가라면 우리 같으면 종로도시를 가로지르는 가운데 난 길인 모양입니다 그것을 직 가라 그럽니다, 그쪽을 가다보면 유다라는 사람의 집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집어넣은 겁니다, 사울을 데리고 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빛을 못 본 겁니다, 
같이 간 사람들이 그래서 사울이 장님이 되었으니까 데리고 간 겁니다, 
유다 집에 데리고 갔는데 거기 앉아 가지고 사울이 거기서 기도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3일을 기도하는데 그럴 때 그 도시에 소위 디아스포라크리스천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아나니아인 겁니다, 
이분은 제 생각에는 이분이 다메섹에 가정교회를 개척한 분 같습니다, 
이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너 유다 집에 가면 다소사람 사울이 있다 그 사람 안수해서 낫게 해라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아나니아가 안수해서 낫는 장면입니다 사울이 나중에 이런 모든 사건들을 이분이 3차 여행 끝나고는 예루살렘에 갔을 때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그러니까 그분들 앞에서 자기가 다메섹에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주욱 합니다, 
자기 변명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22장에도 나오고 26장에도 나옵니다, 그럴 때 26장14절에서18절에 이분이 다메섹사건을 유대인들에게 설명해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나타나신 목적이 무엇이냐면 내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나가서 그분들을 영적으로 눈을 뜨게 해주기 위해서 라는 겁니다, 그런 말을 합니다, 
눈을 뜨게 해주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전도시킨다는 말은 영의 눈이 감긴 사람에게 영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미 전도 받아서 영의 눈이 뜨여진 사람인데도 못 보는 겁니다, 우리가 크리스천들인데도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승화과정을 겪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승화과정을 우리 나중에 보겠지만 사울도 이 승화과정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여기 주욱 보시면 30세에 예수님을 만나서 개종을 하였는데 이분이 하나님이 아라비아로 보내가지고 3년을 승화과정을 거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또 7년을 고향다소에서 승화과정을 거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승화과정을 10년을 하도록 하여서 그리고는 40세 되었을 때 전도자로써 일을 하게 하였던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기만 해서 구원은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사용 받으려면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성품이 승화되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이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아나니아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사람은 내가 택한 그릇이다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뭘 하기 위해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향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그릇으로 택하였다는 겁니까, 그리고는 이 사람이 엄청난 핍박을 겪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었던 겁니다, 그래가지고 왜 핍박을 시켜야 되느냐면 이분이 본래가 엘리트출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은 겸손해져야 하기 때문에 핍박이 항상 따라와 주어야 되는 겁니다, 
겸손을 위해서 그리고는 주위 환경을 보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기 위해서 그러니까 계속해서 왕 침을 놓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해야지만 영적 전투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선교는 영적 전투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래서 이분에게 핍박을 가하는 겁니다, 그 핍박이라는 것은 사람들과 관계성 핍박만이 아닙니다, 
물질도 거두어가시고 건강도 어느 정도 거두어가시고 강도를 많이 당하시고 사람들에게 비난도 많이 받고 어디 설 자리가 없는 사람이 된 겁니다 주님만 바라보라고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우연히 하나님이 그냥 기분 좋아서 이렇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선택하시는 겁니다, 모태에서 조성을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레미야 같은 경우에는 예레미야1장5절에는 모태에 형성되기 전에 조성을 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 신비를 우리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지금 모태에서 조성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바울도 갈라디아서1장15절에서 스스로가 그렇게 고백하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자기에게 그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139편16절에 시편76편6절에서 예레미야도 모태에서 조성 전에 예레미야서1장5절에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사야서44장24절에 이사야도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49장1절에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들은 여러분들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여기까지 오도록 이렇게 열심히 성경 공부하는 이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분명히 주님의 뜻이 계시고 심지어는 모태에서 결정을 하신 것을 주님이 지금 이루시고 있다고 까지도 지금 우리가 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이 모태에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합니다, 이분이 3차 여행 끝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사도행전22장14절,15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자기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서 나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그래서 내가 만민에게 증인이 되기 위해서 나를 택하셨다 이런 말씀을 계속하시는 겁니다, 바울이 이런 선택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서 선택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뜻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한번 선택 받은 사람은 내가 좋으나 싫어나 주님이 환경을 그렇게 만들어서 이끌어 가십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교회에 부르신 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실까 기대를 하시면서 주님을 섬겨야 되겠습니다, 
그냥 지식을 얻기 위해서 그냥 단순한 마음으로 교회에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가다보면 이것이 아니었구나, 라고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사람에 대하여 잠깐 봅시다, 
아나니아라는 사람은 성경에 신구약을 통해서 11명이 나옵니다, 
그중에 오늘 다메섹교회를 개척한 아나니아 이 사람은 디아스포라크리스천입니다 이분이 보니까 영성이 넓어서 깊어서 길어서 제자들이 주변에 있었고 예언의 은사도 있었고 또 바울에게 손을 얹어서 바울의 눈을 뜨게 하는 이런 은사도 가졌던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울을 사용하실 때 아나니아가 바울을 사용하는 그룹 중에 한 사람으로 이용하셔가지고 바울을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바울이 아나니아에 의해서 크리스천이 되는 그 순간부터 이분의 생각이 성령님이 그때부터 이분의 마음을 감동시켜가지고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모임인 공회 자기네 회당으로 들어간 겁니다, 
예전에는 그 안에 들어가서 자기 동료들과 교제하는 장소였는데 이제는 그 안에 들어가서 동료들에게 예수님의정체성을 이야기 하려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이 변하여도 저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우리의 배반자가 되었구나, 자기가 제일 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예수를 이제는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그 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신성모독 아닙니까, 그다음에 예수님이 메시아다 그리스도시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우리도 똑 같습니다 우리도 어디에 있던지 입을 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라고 전해야 되는 겁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니까 뭐가 따라옵니까, 
핍박이 따라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다메섹에서 사울을 이제는 죽이려고 다메섹에 각 성문들을 우리 같으면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이런 성문들을 다 지키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망갈 수도 없는 겁니다, 
이 성에서 그러니까 성경에 보면 몇 사람이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가지고 성에서 내려 보냈다 그랬습니다, 그 몇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잖아요,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사울이 사면초가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은 꼭 옆에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돕는 자를 꼭 준비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라고 우리가 믿습니다만 꼭 돕는 자를 옆에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울이 이때 다메섹에서 죽게끔 되어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사울이 개종한 후부터 하나님의 계획은 나중에 보니까 33년을 이분을 쓰시려고 그러는 겁니다, 
이방인 복음을 위해서 그래서 실제로 33년에서 35년을 더하면 68년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을 계셨잖아요, 이분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33년을 하나님이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33년 동안 열심히 이방족속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정체성을 전하도록 계획하신 겁니다, 
이분이 다메섹에서 광주리를 타고 내려와서 어디로 갔습니까, 
성경에 보면 아라비아로 내려갔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말은 오늘 본문에는 없습니다, 이 말은 어디에 있느냐면 갈라디아서1장17절에 바울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자기의 과거 역사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갈라디아서1장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부분입니다 지금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내려 보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 아라비아가 어디냐 하면 다메섹 근방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 중에서 또 어떤 학자들은 아라비아 하니까 사우디아라비아 이쪽을 이야기한다, 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크게 보면 그렇습니다, 아라비아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내반도 이쪽지역을 아라비아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지금 여기서 말하는 아라비아는 뭐냐면 갈라디아서1장17절에 바울이 내려갔던 아라비아는 정확하게 어디라고 말하느냐면 그것이 갈라디아서4장25절입니다,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시내 산에 갔다는 학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먼 거리입니다, 시내 산에 갔다는 겁니다, 
이 시내 산은 거리상으로 보면 카이로는 애굽의 수도입니다 카이로에서수에즈운하까지가 132km입니다 수에즈운하에서 시내 산까지가206km입니다 
시내 산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카이로에서 340km정도입니다 시내 반도의 남쪽에 시내 산이 있습니다, 시내 산을 성경에서는 호렙 산이라고도 부르고 출애굽기3장1절과 신명기15장1절2절에 호렙 산에 불꽃이 있어서 모세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그때는 호렙 산이라고 불렸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렸습니다, 출애굽기24장13절에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랍어로는 게벨무사라 그럽니다, 
그리고 또한 창세기21장21절에는 그 지역을 바란 광야 그래서 바란 광야 하면 시내 산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시내 산이 바란 광야에 있지만 시내 산은 상당한 역사적인사건이 성경 안에 많습니다, 
시내 산이 하나님을 특별히 만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사건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여 드리겠습니다, 첫째 아브라함 때 주전2200년 때 하갈이 아브라함을 떠나가지고 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간 곳이 여기입니다 창세기21장21절에 보면 거기에서 이스마엘이 애굽 여자를 취하여 장가를 간 곳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주전1500년경에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곳이 이 시내 산입니다 출애굽기19장20절에서 20장26절까지 그리고 신명기5장1절에서32절입니다, 세 번째는 그리고 500년 후에 다윗시대에 다윗은 주전1000년입니다 다윗시대에 하나님이 훈련을 시키려고 사울이 다윗을 자꾸 죽이려고 하니까 다윗이 바란 광야로 내려갔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시내 산으로 내려갔다, 라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사무엘상25장1절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종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여기입니다 거기 가서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했던 곳입니다 네 번째로 똑같이 주전850년경에 엘리야도 목숨을 찾는 분들을 피해서 도망간 곳이 이곳입니다, 열왕기상 19장8절입니다, 
똑같이 신약에 들어와서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사울을 또는 바울을 하나님이 이분을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 생명을 보전시키기 위해서 시내 산으로 피신시킨 겁니다, 거기에 언제 갔습니까, 주후35년에 가서 3년 있었다,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1장17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3년 되는 주후38년에 여기서 생활을 마치고 바울을 다른 데로 옮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 바울이 시내 산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이 안에서 주님과 깊은 대화를 하였을 겁니다, 
승화연습을 그리고는 분명히 자기가 훈련받았던 구약의 내용들과 신약의 내용들이 어떻게 비교가 되는지 그것을 많이 훈련을 받았을 겁니다, 
예컨대 모세오경이 그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였구나, 
시편이 그렇고 선지서가 그렇고 이스라엘 역사가 다 예수님의 구원과 연계되는 스토리구나 이것은 하나의 그림자였구나, 실체는 예수님이구나, 
라는 모든 메시지를 3년 동안에 이분이 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기의 신학이 정립이 되는 겁니다, 
하늘의 신비를 조금씩 깨닫게 되고 영성이 높아지고 영안이 떠여지고 3년이라는 3이라는 숫자가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특별숫자입니다 이러면서 이분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면서 다메섹으로 다시 올라가는 겁니다, 
다메섹으로 가니까 갈라디아서1장17절에서19절 내용을 보면 다메섹에 있는데 다메섹에 있는 형제들이 말하기를 여기 계시지 마시고 당신 이제 기독교 교계에 들어왔으니까 예루살렘에 가가지고 사도들을 만나십시오, 
특히 게바를 만나십시오, 게바가 누구입니까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남동생 되는 야고보를 꼭 만나십시오, 이렇게 한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예루살렘으로 내려 간 겁니다, 
내려가니까 사도행전9장26절부터 주욱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도들이 사울에 대하여 부정적인태도를 보여 주는 겁니다, 
26절에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기를 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있는 겁니다, 왜냐면 사울이 예루살렘교회를 다 흩트린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울의 입장에서는 미안한 겁니다, 
자기가 몰랐을 때니까 그러니까 시내 산에서 3년 동안에 다 깨달은 겁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내가 이렇게 악역을 하나님이 하시게 하였구나, 그리고는 예루살렘교회가 왜 흩어져야 되는 것 까지도 다 이분이 깨달은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겁니다, 
만나서 사과 하려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내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고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나에게 메시지를 다 주셨습니다, 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제자들이 만나기를 꺼려하는 겁니다, 배척을 하고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 생각에는 당신은 우리를 얼마나 괴롭혔던 사람인지 아느냐 당신은 우리에게 원수다 괘심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당신 보면 이런 생각들을 분명히 했을 겁니다, 
제자들은 그 당시만 해도 영안이 어두워가지고 눈이 확 뜨이지 않으니까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아나니아를 통해서 하신 말씀도 다 들었는데도 아나니아를 통해서 보고를 다 받은 겁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큰 그릇이다 하는데도 열두제자들이 거기에 대한 감동이 없는 겁니다, 자기네 감정이 먼저 앞서는 겁니다, 
심지어는 이런 생각도 했을 것 같습니다 이사람 우리 한데 왜 왔지 혹시 유대인들의 첩자가 아닐까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교계에 들어오면 이런 현상들이 오늘날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도 다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그대로 그냥 도장 밖은 것처럼 있습니다, 
어떻게 심하게 말하면 이분이 이런 생각도 했을 겁니다, 열두제자 중에 몇 분은 저 양반이 사탄의 사도가 아닐까, 하도 피해를 많이 받았으니까 이런 생각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왜 사도바울을 배척했을까 이런 생각도 하는 겁니다, 앞으로 교계의 지도자가 될 것 같은데 저 양반이 우리의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 사도그룹에 저 사람의 배경을 보면 경력이 화려하다는 겁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고 엘리트출신이고 가말리엘의 제자고 공회원출신이고 이러다가 이 양반 우리가 받아 주었다가 나중에 크게 후회하겠구나, 이런 생각도 아마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마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에서 이분들과 사귀고 싶은데 허락을 하지 않는 겁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만 하여도 사울은 상당히 외로운 상항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아주딜레마에 처하게 된 겁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유대인 자기 동료들도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배신자라고 양쪽 스파이노릇 하는 놈이라고 그러니까 한 사람도 자기를 돕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왔는데 거기 지도자들도 자기를 용납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완전히 사면초가가 된 겁니다, 
우리 주님이 이런 상태를 보고 굉장히 기뻐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이제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사람의지하지 말아라, 조직의지하지 말아라, 나만 쳐다보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 만들려고 지금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이런 상항 속으로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래서 완전히 포기 상태에 있을 때 나는 이제 어떻게 할까 포기하는 상태인데 예루살렘을 떠날 수도 없는 겁니다, 길거리에 나갈 수도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울을 보기만 하면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숨어서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준비된 사람 한 사람을 보내는 겁니다, 그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를 준비하여가지고 하나님이 이 사람을 중매역할을 하도록 하나님이 바나바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최소한 열두제자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는 사울을 안아주어야 되거든요 그래야지만 앞으로 미 전도족속사역에 동역 자가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서로 만약에 금이 간다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 지도자들끼리 서로가 이해되도록 하기 위한 중간역할을 누가 하였냐면 하나님이 바나바를 사용하신 겁니다, 9장27절부터 내용을 주욱 보시면 뭐가 나오느냐면 바나바가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사울이 그렇지 않다, 라는 것을 사울이 완전히 우리 쪽으로 왔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그러면서 형님들 사울이 완전히 변해가지고 그 사람이 그냥 예수님 만난 것만이 아니고 완전히 변화되어가지고 회당에 들어가서 예수님정체성을 외치다가 거기서 죽을 고비까지 넘기는 그런 사람입니다 완전히 이 사람이 이쪽으로 넘어온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항상 여러분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피스메이커를 해주는 겁니다, 
바나바가 그러니까 한번 만나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갈라디아서1장을 주욱 보면 나머지제자들은 안 만난다고 그랬습니다, 꼭 핵심 두 리더 베드로와 야고보가 만났다 그랬습니다, 
나머지사람들은 아직도 만나기 싫어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 또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바나바가 이런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까,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거든요 그냥 적당히 우연히 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도 꼭 준비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으로써 무장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겁니다, 첫째 바나바는 로얄 패미리 출신입니다, 
그 당시에 예루살렘에 마가의 다락방 주인인 마리아의 오빠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도행전12장12절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교회 본부건물을 제공한 마리아와 형제간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행전4장37절에 보면 바나바가 땅을 팔아서 헌금했던 사람입니다 열두제자들에게 돈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베드로와 야고보 이분들은 바나바를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겁니다, 
이 관계를 거기다가 두 번째는 이분의 인격과 영성이 출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높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사도행전11장24절에 분명히 말합니다, 
바나바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이분은 사도행전4장36절에 이분의 본래 이름은 요셉인데 별명이 바나바라 그러는 겁니다, 왜냐하면 격려자라는 소리입니다 바나바라는 말이 주변 사람들을 항상 복 돋아 주는 그런 별명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영성이 있으니까, 지금 사울이 이런 어려움과 딜레마에 있는 것을 본 겁니다 그뿐 입니까, 이 사람이 아나니아가 사울에 대해서 예언한 소식도 다 듣고 이 사람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하고 영적 분별력을 이미 가졌던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나바는 사울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바나바도 구브로에서 태어난 사람이거든요 자기도 디아스포라출신이거든요 지금 예루살렘에 와 있지만 자기가 사울을 보니까 저 사람도 다소출신인데 디아스포라인 겁니다, 
디아스포라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뭐냐면 유대문화 속에도 발을 완전히 들여놓지도 못하고 헬라문화 속에도 발을 완전히 들여 놓지도 못하고 양 문화에 발을 반반씩 들여 놓은 사람들 한국말로는 경계인이다 이렇게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완전이 이쪽 문화와 저쪽 문화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울을 보니까 바울도 그런 사람인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동질성을 아마 느꼈던 것 같습니다, 
열두제자들은 이런 경험이 없는 겁니다, 한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서 여러 가지 교제를 하였을 겁니다, 
과거에 제가 잘못한 것 죄송합니다, 라고도 했겠고 여러 가지이야기를 하면서 오해가 풀렸을 겁니다, 그러는 가운데 성경에 보면 사도행전22장17절18절 또21절에 바울이 직접 하시는 내용을 보면 바울이 설교하는 장면인데 그때 다메섹사건을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그럴 때 뭐라고 그러냐면 내가 15일 동안 이렇게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지도자들과 이 두 분과 교제하면서 자기는 틈틈이 뭘 했느냐면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했다, 라고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은 겁니다, 뭐냐면 이 성전을 이 예루살렘을 떠나라 라는 명령이 떨어진 겁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너 가 나의 정체성을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하나님이 눈을 가려 놓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소수만 듣지 너 가 예루살렘 이 안에서 아무리 외쳐봐라 안 들을 거라는 겁니다, 이렇게 가려 놓았기 때문에 그리고는 너는 이방인에게 헬라 권으로 가서 나의 정체성을 전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메시지를 주는 겁니다, 바울에게 이것이 사도행전22장17절18절에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설명하는 겁니다, 자기가 그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고 이제 바울이 떠나게 됩니다, 15일 후에 떠나야 되는데 주변에 바울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방법이겠지만 열두 사도들이 그 당시에 어느 정도 자기 세력들도 있고 유대인 저쪽 지도자들 하고 교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에는 이 열두제자들이 바울을 방패막이 해주었다는 말이 한 구절도 없었습니다, 
사울이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방패막이 해주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그것도 의문입니다 아마도 속으로는 은근히 잡혀서 저 양반 죽었으면 좋겠다, 라고 까지 생각하였을 겁니다, 열두제자들이 그러니까 탈출을 돕지도 않았습니다, 탈출을 도왔던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30절에 그랬습니다, 9장29절30절 이야긴데 형제들이 나를 도왔다 그랬습니다, 
형제들이 열두제자들이 아니고 그 형제들이 도대체 누구냐면 모르는 겁니다, 분명히 평신도들일 겁니다, 평신도들이 항상 돕는 자를 하나님이 준비시키시는 겁니다, 거기에 천사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 몇 사람이 지금 사면초가에 있는 사울을 돕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가지고 이분들이 몰래 사울을 데리고 가이샤랴로 간 겁니다, 
거리상으로86km입니다 수원에서 인천까지 가는 거리로 주변에는 사울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가득 있는 그 상항 속에서 형제들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이 특별히 쓰실 종을 보호시키면서 거기까지 데리고 간 겁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딱 붙어 있고 주님이 뜻을 행하는 일을 하는 사역자라면 하나님이 꼭 필요할 때 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에게 붙여 주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이게 우연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아마 밤중일 겁니다, 조랑말 하나 빌려가지고 밤중에 가고 있는 장면이 주님의 눈에 보이는 겁니다, 가이샤랴에 도착하여 부둣가에 가가지고 이 사람을 고향 다소로 보내어야 되겠구나, 여기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이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은 고향밖에 없다 그래가지고 부둣가에 가서 선박들을 체크하는 겁니다, 다소로 가는 배가 어디 있는가, 
마침 주님이 한 화물선을 준비 시킨 겁니다, 거기다가 바울을 태운 겁니다, 그래가지고 화물선을 타고 바울이 다소에 도착한 겁니다, 
이 장면이 오늘 본문장면입니다  
그리고 도표를 보면서 이 도표는 우리가 외우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진정 성경을 사랑하는 크리스천이라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크리스천이라면 이 도표를 외워야 합니다, 20년. 30년. 40년을 교회 다니면서 아직도 이 도표를 외우지 않는 사람은 큰 죄를 짓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 같이 보시길 바랍니다, 주전4년 예수님탄생, 주후5년 바울출생, 주후30년 예수님33살 십자가사건. 부활사건. 승천사건 그리고 예루살렘교회가 개척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2년 있다가 주후32년에 예루살렘교회를 흩으시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흩트려가지고 똑같은 해 주후32년에 사마리아복음화가 빌립에 의해서 되고 그다음에 빌립에 의해서 에티오피아 팔라샤 복음화가 32년으로 보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33년 그 당시에 다메섹에 아나니아에 의해서 다메섹교회가 개척이 되고 그다음에 안디옥 교회가 개척이 되고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메고 갔던 구레네 시몬이 주축이 되어 가지고 이게 다 33년경이라고 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있다가 35년입니다 사울이 30세가 되는 그해에 다메섹사건을 경험하고 아라비아로 가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3년 있었으니까 38년에 아라비아에서 3년 후에 다시 다메섹으로 가게 되는 겁니다, 다메섹에 있다가 어디로 갑니까, 예루살렘에 갑니다, 
15일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다가 형제들에 의해서 가이샤랴로 갔다가 거기서 배를 타고 다소로 가는 겁니다, 다소에서 7년 동안 45년 까지입니다, 
7년 동안 성화훈련을 엄청나게 받는 겁니다, 
그 과정 속에서41년에 그러니까 다소의 도착이 38년에 도착하였는데 3년 후 41년에 이분이 3층천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이야기가 고린도후서12장2절부터6절까지 나옵니다, 그러면 왜 그것이 41년인가 어떻게 아느냐면 고린도후서를 섰을 때가 주후55년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때 말하기를 14년 전에 내가 3층천을 올라갔다고 말했습니다, 55년에서14년을 빼면41년입니다 그러면 41년이면 그분이 어디에 계셨냐면 다소에 계셨습니다, 이렇게 계산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30세에 되었지만 승화를 두 단계로 해서 처음 3년은 아라비아에서 그다음 7년은 다소 자기 고향에서 하나님이 10년을 승화시킨 겁니다, 완전히 승화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인격이 예수 화 된 겁니다, 
그러니까 사역자로 이제 부르기 시작했던 겁니다, 
바울의 면모를 우리가 한번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의 면모, 
이분은 어떤 사람인가 굉장히 많지만 제가 일곱 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 바울의 명칭을 한번 보겠습니다, 기독교역사에서는 바울을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분을 위대한 사도라고 또는 복음전도자. 선교사. 목회자. 교육가. 신학자. 또는 문필가로 부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바울의 타이틀이 있는데 이분의 이름은 두 이름이 있습니다, 
유대이름으로는 사울이라 그러고 소위 헬라이름으로는 바울이라 그럽니다, 바울은 헬라어입니다 어떤 분은 나중에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는데 그게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분은 유대 쪽 사람들을 만날 때는 이름을 유대 말인 사울이란 이름을 씁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에 목회할 때도 거기에 유대인들이 주변에 많아서 사울이란 이름을 섰습니다, 사도행전11장25절.30절, 12장25절. 13장2절 또는 9절 그런데 이 사람이 이제는 헬라도시를 선교를 시작할 때는 에베소. 아시아의 일곱 교회.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 거기 가서는 자기 이름을 바울이라는 이름을 섰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이름이기 때문에 13장13절부터 그렇게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모든 편지들은 헬라사람들을 향해서 쓴 것이거든요 헬라문화권 사람들에게 그래서 그때부터 이름을 바울이라는 헬라 이름을 사용한 겁니다, 유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분이 그렇기 때문에 상항 화를 너무 잘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육신화를 잘하는 겁니다, 이분이 자기사상을 고린도전서9장19절에서23절에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율법에 속해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이제 율법에서 자유 한자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의 종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율법의 종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는 겁니다, 유대인들 앞에서도 왜냐하면 아무쪼록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 불려오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자기는 율법의 사람이지만 율법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이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유대인들을 만났을 때는 유대인처럼 행동한단다, 그러는 겁니다, 
왜냐면 그 유대인들은 내가 한 사람이라도 얻기 위해서 그러면서 반대로 이런 말도 합니다, 나는 율법 없는 이방인들에게 가서는 이방인처럼 행동한단다, 그러는 겁니다, 왜냐면 그분들을 내가 얻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또 하는 말이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서는 똑같이 믿음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단다, 왜냐면 그분들을 내가 얻기 위해서 그런다는 겁니다, 
이 사람이 우리 동물 같으면 카멜레온입니다 왜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문화의 적응성이 특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을 그때. 그때 가서 바꾸는 겁니다, 
예수님도 본래 이름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인간에게 내려오셔서 이름을 백가지를 주셨잖아요, 자기가 누군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다양하게 방법을 사용하신 겁니다, 첫째가 바울의 명칭 두 번째가 바울의 이름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바울의 출생년도와 출생지에 대해서 이분은 우리가 알다시피 주후5년에 태어났고 예수님보다9살 정도 차이가 납니다, 
길리기아지방에 터키 동남부지방에 다소는 교육도시로 아주 정평이 있었던 곳입니다 여기에서 태어나신 겁니다, 그다음 네 번째는 이분의 가정 배경을 조금 살펴봅시다, 이분은 유대인 디아스포라가정 또는 부모님이 중산층가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항상 자랑하는 것이 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러시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다 그러시고 또 베냐민지파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거기다가 바리새지파라는 겁니다, 
거기다가 이분이 강조하는 것은 나는 우리부모님부터 받은 것이 있는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출생부터 로마시민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로 이분은 율법에는 아주 열심을 가졌다고 본인이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22장3절에서도 또 갈라디아서1장13절14절에서 또 빌립보서3장5절6절에 이 열심 때문에 자기는 크리스천들을 옥에 넘기는 일을 했고 오늘 본문 속에 나오지만 크리스천들에게 위협을 주고 살기가 등등했고 이런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여섯 번째로 이 사람은 종교적으로 상당히 교만했던 사람입니다 빌립보서3장5절에 나와 있습니다, 자기 교만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육신으로는 8일 만에 할례 받은 사람이고 이스라엘족속이고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 이게 그분들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교만한 소리입니다, 이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는데 내가 이런 것을 이제는 배설물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보시면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미워했고 크리스천들도 미워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9장4절에 보면 왜냐면 신성모독을 범하는 자들로 본 겁니다, 그다음에 제목을 바꾸어서 사도바울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인가는 성경앞뒤 다른 문서를 봐도 부모님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측하기를 부모님의 직업이 아마도 천막사업 천막기술자였다고 추측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이 그 대를 이었다, 
라고 보는 겁니다, 이런 것을 오늘날 같으면 건축 사업을 하였다, 
라고 보면 이해가 되겠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부모님들의 사회 계급이 아마 중상층 소위 이상이 되었으며 뼈대 있는 유대인 가정이 틀림없습니다, 
왜냐면 아들을 그렇게 잘 훈련시켰습니다, 이분의 부모님이 로마시민권을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시민권을 가진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는데 어떻게 되어서 로마시민권을 가지게 되었을까 분명히 로마시민권을 가지려면 로마제국에 공헌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공헌했을까 라고 보면 이렇게 우리가 추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 이 어른들이 로마 군인들의 군 막사를 지어 주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지 않았나, 군인들을 따라다니면서 막사도 지어주고 정부에 도움을 이런 식으로 주지 않았나 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될 곳이 부모님의 교육열입니다 이 부분을 제가 조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부모님들이 아들에게 당대에 꼭 배워야 되는 4개의 언어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하신 겁니다, 
이아들을 하나님이 다 이미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준비하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열심히 하도록 다 준비하신 겁니다, 
4개의 언어가 뭐냐면 첫째 언어는 아람어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히브리방언입니다 그 당시만 하여도 이스라엘 모든 땅에서는 일상 언어는 히브리방언을 쓰는 겁니다, 사투리입니다, 갈릴리지방 북쪽에 있는 그런 사투리라고 보는데 그러니까 일상 언어는 부모님들이 이민 간 사람들이지만 집에서는 아람어를 계속 썼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아람어를 유창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유대인들에게 설교하는 장면들이 나오거든요 22장,26장에 보면 설교할 때 마다 유대인상대로 하여 히브리방언으로 말했다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람어로 그러니까 이민 나간 가정의 아들인데 토종말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미국으로 이민 간 우리자녀들이 한국에 나와 가지고 한국말을 잘 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났는데도 이게 쉽지가 않거든요 그 부모님이 훌륭한 부모님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어떤 언어를 쓰느냐면 종교적인 언어는 히브리어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히브리어도 공부를 많이 한 겁니다, 
다소에 있으면서 회당에 나가서 항상 기도하고 그랬으니까, 
그리고 교육언어는 헬라어를 쓰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문서들은 거기다가 관공서에서 쓴 공식 언어는 라틴어입니다 이것은 로마 이태리 말입니다, 헬라어는 그리스말이고 그런데 라틴어로 공무원 되려면 해야 되고 정부의 고관이 되려면 다 해야 됩니다, 이 4가지 언어를 부모님이 다소에서 이아들에게 공부시킨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아람어 같은 경우에는 아주 유창하게 히브리방언을 했다고 그랬습니다, 사도행전21장40절, 22장1절2절에 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은 어릴 때부터 사울을 4가지 언어를 훈련시키면서 철저한 율법교육을 시켰던 아주 정통파 바리새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가말리엘에게 유학을 보내면서 제대로 본격적인 정통파 공부가 시작되었겠지만 이미 가정에서부터 이것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바울이 회상하면서 하시는 성경구절이 갈라디아서1장14절에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온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을 내었단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나이또래보다도 자기는 부모님들에게 이렇게 훈련을 철저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철저하게 부모님을 통해서도 훈련을 다 시키시고 준비를 시킨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제목은 바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어떻게 왔느냐면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이주 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아예 부모님이 바울의 유아시절에 예루살렘으로 이민 갔다, 역 이민입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어릴 때부터 가말리엘문화에서 엄한 교육율법교훈을 받았다 그러니까 이분은 태어나기는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예루살렘에서 성장을 했다고 보는 그런 학설입니다 저는 이 학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학설은 뭐냐면 최소한 유대인들은 열두 살이 되면 그때부터 성인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율법공부도 제대로 시키려면 열두 살이 넘어야 됩니다, 그래서 열두 살이 넘어서 언제인지 모르지만 중 고등학교까지는 고향 다소에서 공부하고 고등학교에 갔을 때 예루살렘으로 유학가지 않았나,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면 바울이 말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해 보면 아는 겁니다, 사도행전26장4절에 보시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변명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 하는 말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젊을 때 아마 사춘기 넘어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나, 이렇게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본인이 말했지만 그다음에 왜 유학설이 타당한가, 
첫째 본인이 사도행전26장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그러면 유아시절은 고향에서 보냈다, 라고 보는 겁니다, 
두 번째는 이분이 헬라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하는 걸 보니까 헬라문화권에서 자기고향에서 오래 생활한 것이 증거가 되는 겁니다, 
어릴 때는 예루살렘으로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언어를 쓰는 것을 보면 그다음에 세 번째는 이분이 다메섹사건이 일어난 후에 이분이 제일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이 다소였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을 하면 만약에 어릴 때 다소를 떠났으면 그런 생각 안했을 겁니다,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 안 하였을 것인데 거기서 어린 시절을 주욱 보냈기 때문에 자기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였던 곳이 다소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마 오랫동안 다소에서 지냈던 것이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이분은 아까 잠깐 비쳤지만 선교여행 할 때는 헬라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고향 다소에서 헬라어 훈련이 많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선교를 다니면서 구약의 용어들을 많이 인용을 하였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구약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꼭 용어를 인용할 때 어떤 구약 책을 사용했냐면 70인 역을 사용했습니다, 70인 역이 뭐냐면 유대 말인 구약을 헬라말로 바꾼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헬라어로 된 구약을 70인 역이라 그럽니다, 이분은 헬라어를 더 편하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항상 헬라어를 인용을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이분이 다소에서 그래도 오래 살았구나,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분은 항상 말할 때 나는 예루살렘출신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항상 나는 길리기아 지방 다소 출신입니다, 
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스스로가 그렇게 볼 때 이분은 본격적인 율법공부는 언제 했습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가말리엘 밑에 가서 했다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참고가 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배경을 우리가 알고서 성경을 이렇게 읽을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도 정확하게 할 수도 있고 그다음에 재미있는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 제목은 바울이 결혼 했는가 이제목입니다 첫째 바울이 결혼 했다는 성서적 증거들이 있습니다, 
이분이 산헤드린에 공의회 회원이기 때문에 결혼해야 됩니다, 
독신자는 회원이 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디모데전서3장2절에서 이분이 교회 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본인이 감독이거든요 세 번째로 고린도전서9장5절에서 하시는 말씀인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에게 당신 왜 와이프를 데리고 선교여행 다닙니까, 하면서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면 이분도 자기 와이프를 데리고 선교여행을 한 모양이구나 이렇게 추정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세 가지 부분을 보면 이분이 결혼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추축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이 독신임을 시사하는 부분이 성경에 있는 겁니다, 고린도전서7장8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러노니 나와 같이 그냥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그러는 겁니다, 이 말이 아주 애매모호한 말입니다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그냥 혼자 남아 있어라 문제가 있는 겁니다, 
바울이 만약에 결혼을 안 했다면 이분은 모세오경을 위반하는 사람입니다 창세기2장18절에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짓는다고 하나님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꼭 여자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모세오경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뿐 아니라 탈무드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전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결혼하지 않았으면 선생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런 걸 보면 바울이 결혼 한 것 같습니다 왜 결혼 한 것 같습니까 바리세인이 율법과 탈무드에 불순종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입니다 또 교회의 감독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고린도전서7장이나 에베소서5장에서 바울이 부부생활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였습니다, 자기가 경험하지 않고는 이것을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을 다 감안하면 바울이 분명 독신으로 있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없는 겁니다, 결혼하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왜 혼자 사는가 여기에 우리가 질문이 있는 겁니다, 이것을 추측을 하는 겁니다, 왜 혼자 사는가, 아마도 일찍 아내와 사별한 후에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는 겁니다, 부인이 일찍 죽고 다시 결혼하지 않는 겁니다, 
두 번째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상상을 하는 겁니다, 열성바리새파 집안 출신 아닙니까, 부모들 까지 그런데 집안에서 이변이 일어난 게 그 아들이 개종해 버린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집안에서 난리가 난 겁니다 부모와 자기 처까지도 안 되겠다 저사람 완전히 끝난 사람이구나, 
그래서 가족이 부인까지 합해서 바울을 배교자로 또는 가문의 수치로 또는 유대인의 원수로 하나님의 원수로 신성모독을 한 장본인으로 아마 취급했을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이게 다 가능성들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성경에 어디에 근거가 있느냐고 보니까 이 말씀이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것 같습니다, 직접적인 의미는 아니겠지만 빌립보서3장7절8절 말씀의 아래 위의 문맥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이 말씀이 자기의 배경이야기를 하다가 이 말씀이 나오거든요 보면 자기가 가족들에게 이렇게 예수님 때문에 버림받고 자기도 자기가족을 다 이렇게 배설물로 여기고 이게 그리스도 때문에 이런 일을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 집안에 가정불화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것도 제 의견은 아니고 하나의 가능성만을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여기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안 했기 때문에 그렸습니다, 그렇지만 누가 물어보면 이런 대답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결론적인 몇 마디를 제가 하겠습니다 왜 하나님이 예루살렘교회 출신이 아닌 헬라파유대인 출신인 사울을 개종 시켰을까 그 이야기가 왜 9장에 잔뜩 나옵니까, 그러면 대답은 한마디로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예정하셨다 어디서부터냐면 어머니의 태로부터 성경구절은 갈라디아서1장15절16절 또는 갈라디아서2장8절 또는 사도행전9장15절16절 이 모든 것은 이 사람을 이렇게 복음화 시켜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준비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또 질문이 하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예루살렘교회가 4단계 5단계 해야 된다고 그랬잖아요, 
왜 4단계 5단계를 열두 사도들을 사용해서 하지를 않았을 까요 왜 중간에 8장까지는 3단계 까지 하였으면 9장에는 4단계로 들어가야 되는데 왜 그 이야기는 없고 중간에 어떻게 다메섹사건이 나타납니까, 
이것도 의문 중에 의문입니다, 그 의문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여야 되느냐면 4단계 5단계는 열두제자들이 할 수 있는 그릇이 아직 안 된 상태인 겁니다, 이 열두제자들은 타문화 장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분들은 자신의 문화가 아직도 유대 적 문화. 유대적세계관. 유대적가치관, 종교관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자 문화 중심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문화 중심사상 유대문화선호사상 유대문화우월사상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문화경시사상도 가지고 배타적이었습니다, 이런 그릇을 늘 가진 사람들은 네 번째 다섯 번째를 할 수 있도록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고작해야 세 번째 단계까지는 갈 수 있었던 겁니다, 
그것도 쉽게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립안수집사를 사용해서 사마리아에 가게 했고 그 사건을 보여주고는 베드로와 요한이 가가지고 사마리아까지 가 주었는데 이분들은 거기에서 시리아로 올라가지 않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사건들 기억나시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볼 때 마태복음24장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말씀 또 지상사명의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하면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피조물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너무나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위적으로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타 문화권까지 가기 위해서 이 문화가 변한 게 바벨론사건 때문에 그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인간역사를 의도적으로 지배하시면서 인간역사에 아주 구체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무슨 간섭이냐 하면 문화의 벽을 깨뜨리고 언어의 장벽을 깨뜨리는 역사들을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첫째 정치적으로 제국주의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앗수르 제국으로 해서 지역과 여러 나라를 자기네가 통째로 가지는 겁니다, 바벨론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 강한 나라가 많은 나라를 지배하도록 하여 가지고 문화를 통일시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다 문화사회를 만드는 겁니다, 다른 문화였던 것을 그렇게 하여 가지고 서로가 민족이동을 하게하고 서로 혼혈도 시키고 이래가지고 문화의벽. 인종의벽 이런 것들을 무너뜨리는 일을 주욱 해 왔습니다, 
디아스포라도 그중에 한 예로 문화의벽을 깨지게 하기위하여 800년 동안 디아스포라를 준비하였던 겁니다, 오늘날은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이 복음이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가야 되는데 만약에 민족의벽. 문화의벽 이런 것들이 너무 높으면 갈수가 없으니까 하나님이 마지막 때 어떻게 하십니까, 
이 세상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벽을 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지금 F T A 합니다, 자유무역 이게 무엇입니까, 전부 벽을 내리는 겁니다, 관세를 철폐시키고 비자를 없애버리고 또 A P E C(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이니 N A T O니 여러 가지 많잖아요, 전부 지역그룹으로 만들어가지고 자기들끼리 비자 없애주고 관세 철폐시키고 이런 일들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제는 I T산업이 발달되어가지고 위성TV. 위성라디오. 케이블TV. 또는 이 메일. 웹 사이트. 트위터. 페이스 북. 스카이 라이프 이 모든 것을 통해가지고 이제는 국경도 없어지고 관세도 없어지고 전 세계가 하나로 가고 있는 게 왜 그럽니까, 
하나님은 이걸 통해서 세상의 나쁜 것도 빨리 퍼지지만 복음도 빨리 퍼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기구를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여야 된다는 겁니다, 그럼 결론 한 마디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사도행전9장은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이런 부분에서 지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간단하게 더 말씀드리면 이 사도바울을 보면 이 사람은 어머니 태에 있을 때부터 이미 선교 일을 해 왔습니다,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이 이 사람이 개종하는 30세까지 그냥 시간을 멍하니 보내신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가 막히게 이 사람을 준비시키면서 선교사 일을 비 그리스도인으로써 해왔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냐면 이분이 예루살렘교회가 이방선교 하도록 물리적으로 기여하였던 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분이 스데반을 순교하도록 한사람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므로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분을 통해가지고 예루살렘교회가 다 흩트려진 겁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지상사명을 순종하기위해서 이 비 그리스도인 사울을 사용해가지고 이 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로 만드는 겁니다, 
그 후부터 시작해서 빌립이 또 이렇게 사마리아와 팔라샤를 전도하였지 않습니까, 사울 때문에 사울의 핍박과 흩어짐 때문에 다메섹 교회도 개척되고 안디옥 교회도 개척되고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부터 주님의 일을 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전부터 주님이 사도로 사용한 겁니다, 이런걸 보면 하나님의 계획이 귀가 찬 겁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나 여러분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데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여러분들을 주님이 다 택하시고 지금까지 잘 오게 하였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기대하여 보시길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아담의 원조사건을 통해서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그 예수님의 지상사명의 일꾼들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바울을 어떻게 준비하시고 훈련시키시고 쓰셨는지를 공부하였습니다, 공부하면서 우리의 삶이 바울처럼 하나님의 장중에서 준비되고 훈련되고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한분 한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되 사울에게 주셨던 이 은혜를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받도록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F_vnS-9S7VM&list=PLPz9aN5emxOfGkkjER_gEkf6oGb5tJyRs&index=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