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패러독스(paradox)시리즈(역설의 진리)
6강. 왜 유대인과 아랍인은 원수처럼 싸우는가?(창16:1~3,16)2011년12월16일 말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기독교패러독스 여섯 번째 시간인데 왜 유대인과 아랍인은 원수처럼 싸우는가? 여기에 대한 말씀을 우리가 같이 보겠습니다. 창세기16장1절에서3절의 말씀입니다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16절 말씀입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오늘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큰 비밀이 있는데 비밀을 우리가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하면 지금부터4000년 전 분인데 하나님이 이분을 특별히 부르셔가지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셨냐면 이분을 하나님께서 귀한 그릇으로 쓰시는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귀한 그릇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귀한 그릇이냐면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그릇으로 쓰시고 그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예수님의 재림에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그릇으로 쓰는 그러한 요긴한 우리인류의 대표적인 그러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이분을 이렇게 부르셨는데 이분의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상당히 많았던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부르시면서 창세기16장 말씀을 보면 이분의 약점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이분에게 약점을 주면서까지 왜 쓰실까? 또는 왜 하나님이 이분으로 하여금 이러한 실수를 하게할까? 여러 가지 우리가 의문도 있고 이것 때문에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말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앞으로 쓰시는데 많은 인류 중에서 특별히 택해가지고 이 사람을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으로 쓰시는데 하나님이 사람을 이렇게 부를 때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면 우리가 피조물이기 때문에 조금 높여놓으면 이분이 교만해집니다. 교만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인간 냄새를 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이 정립이 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데는데 속 깊이 되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분을 낮추시는 하나의 과정 속에서 이런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분명히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75세 였습니다.
65세에 자기고향을 떠나가지고 10년 동안 하란에 계시다가 75세에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하나님이 이분에게 약속하신 것이 너에게 아들을 주겠다.
그랬는데 그리고 나중에17장에 가면 너 이름도 바꾸라 그래서 너는 만민의 아버지다 사라도 이름이 사래였는데 사라로 바꾸고 만민의 어머니로 엄청난 약속의 말씀으로 계급을 높여주는 말씀을 이분에게 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이런 속에서 만민의 아버지라는 그러한 높은 계급을 주기 전에 이미 이 사람에게 코를 낮추시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분이 75세에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85세까지 10년 동안 아이를 준다. 준다.
하면서 주지를 않으니까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10년을 기다리다가 하나님이 그 부인 사라에게 허락하신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라야 남편에게 너 여종을 주어라 그래서 아기를 가지게 해라 그래서 사라가 실은 남편에게 당신 이 여자를 통해서 아기를 가지십시오. 그래서 부인의 말을 들었다 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 속에서 보면 우리는 아주 지엽적으로 보면 어떻게 남자가 그걸 수가 있느냐 어떻게 사라가 만민의 어머니가 그럴 수가 있느냐 이렇게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깔려 있는 것을 우리가 봐야 합니다. 깔려 있는 게 뭐냐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기회를 허락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면 불순종입니다 왜냐면 이삭이라는 아들을 나중에 낳게 할 터인데 그래서 이분이 그랬습니다. 나중에 만민의 아버지가 되고 네 자녀를 통해서 복을 줄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그러지 마시고 지금 있는 아이나 쓰십시오. 그러니까 그 아이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과정. 과정 속에서 이분이 갈등을 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그런데 하나님이 벌써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이스마엘의 성품을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들 나귀같이 많은 사람과 싸움을 하겠고 성품도 거칠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일부로 계획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누구를 하나님이 훈련시키려고 이런 계획을 하세요?
아브라함의 처인 사라의 자녀들 유대인들을 하나님께서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럽니다. 왜냐면 유대인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고 특별히 아브라함의 자녀들 중에서 이삭과 야곱과 야곱의12자녀들을 하나님이 상당히 높였습니다. 너희들은 특별한 족속이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교만해 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분들에게 특별한 복을 주신다고 자꾸 약속하시고 나머지 형제들은 다 형편없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자꾸 말씀하시니까 이분들이 교만해지겠습니까? 교만하지 않겠습니까?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약간 높여놓으면 인간은 교만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을 깊이 섬기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피조물의 약점을 아십니다. 그래서 여기 서 있는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직자라는 우리가 더 심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더 아름답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러세요? 성직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자기 포지션을 가지고 이 포지션을 남용할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런 사람이었고 사라의 자손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 다시 말하면 지금 아랍사람들입니다 하갈의 자녀들과 나중에 그두라의 자녀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이분들을 통해가지고 지금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는 유대인들 또는 이스라엘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이 가다가 하나님께 조금 멀리하려고 그러면 아랍사람들을 통해가지고 아주 괴롭게 만듭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을 찾게 만듭니다. 가까이 오게 만듭니다. 40년 광야생활 전에 뭘 했습니까?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다가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해서 나중에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 여호수아도 싸움을 누구와 했느냐면 아랍사람들과 싸움을 하면서 가는데 특히 가나안 사람들은 아랍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나중에 사사시대를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땅을 점령하는 일을 안 하고 뭘 하느냐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꼭 아랍계통의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이스라엘사람들을 아주 괴롭힙니다. 그러면 회개를 하고 또 하나님께 가까이오고 그럴 때 사사기나 상경말씀을 보면 뭐냐면 내가 여호와인줄 너희들 알게 하기위해서 내가 이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다시 알게 되었다
여호와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여호와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렸다는 게 아니고 여호와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사람은 끊임없이 조금 편해지면 딴 짓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은 특별히 가까이 있는 사람을 통해가지고 우리를 훈련시킵니다. 거기에 대해서 동의하십니까? 진짜로 그렇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나중에 성전까지 지어놓고 다윗같이 훌륭한 그분도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낮아지는 훈련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높여놓으면 낮아지는 훈련을 꼭 시키십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랬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꼭 주시는 낮아지는 훈련을 하나님이 꼭 주시는 겁니다.
낮아져야지만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더 가까이 오시고 이스라엘사람들이 우상을 또 섬기니까 특히 솔로몬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 우상을 섬기니까 솔로몬이 얼마나 높아졌습니까? 그러니까 이분이 또 딴 짓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분인데 엄청나게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분인데 또 딴 짓하는 겁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분들의 후손들을 어떻게 해놓았습니까? 갈라놓았잖아요. 갈라놓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매를 맞고 그 안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내가 너와 함께 한다 그리고는 나중에 주전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바벨론은 이스마엘의 두 번째 아들인 게달의 후손들입니다 그 후손들을 통해서 70년 동안 혼내게 하시고 하나님이 혼내고는 다시 회복시켜주겠다는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을 훈련을 끊임없이 시키면서 이들을 자꾸 낮추시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의 민족의 표본이지만 우리개인에게도 하나님의 훈련원칙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우리개인을 훈련시킬 때도 이방사람들을 통해서 훈련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서 훈련시킵니다. 이스라엘역사를 보세요.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통해서 서로가 훈련받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은 다시 말하면 신약 때 크리스천들입니다 그 자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훈련을 서로 시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초림이 왔는데 초림이 올 때 마태복음1장1절부터17절에 보면 이방인들과 관계된 이름들이 족보에 보면 나오는데 하나님이17절에 보면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를 다시 요약을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그리스도의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라는 겁니다.
이걸 보면 14대14대도 중요하지만 이 안에 성서가 말하기를 보니까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는데 유대인들이 그기에 있지만 그 안에 아랍인들도 그기에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간 것이 아랍과의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이 매 맞는 역사의 사건이거든요 그것도 예수님의 초림과 엄청난 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초림을 이야기하는 큰 연극무대 속에서 주연급과 조연급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연급은 항상 주연을 악역을 하면서 주연을 건들리는 일만 하면서 왔습니다. 주연이 딴 데 가면 와서 또 건들고 또 건들고 이러면서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14대14대14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예수님의 초림을 보여주었던 겁니다.
철저한 계획 속에서 그러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여러분들 우리크리스천에게 항상 있는 겁니다. 어떤 크리스천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이런 아랍사람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그 사람을 이렇게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고 이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랍사람들은 조연배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다가 복음이 이스라엘사람들을 통해서 이방으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벌써1세기를 지나서 이방으로 넘어 갔습니다. 2세기3세기 쫘악 가다가 7세기600년 이후부터 기독교가 중동에 다 퍼지고 또 북아프리카에 퍼지고 그다음에 남부유럽에 다 퍼졌습니다.
퍼졌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브라함의 바톤을 소위 처음에 유대인들의 열두제자들 또는120문도 또는 예루살렘교회유대인들 안디옥교회유대인들을 통해서 바톤을 나중에 이방으로 넘깁니다. 그래서 이방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된 겁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녀들입니다 그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지금 구라파와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복음으로 손에 쥐고 있는데 이분들이 또 못되게 노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교만해지고 또는 교회가 커지니까 성직자들이 더 교만해지고 정치화되고 교리 화되고 복음 화되고 이론화되고 아주 기본적인 그리스도와 관계 속에서 괴리되는 그러한 일들이 600년 동안 일어났습니다. 이걸 아리아니즘(Arianism)이라고 그래가지고 예수는 없어지고 성부하나님만 이야기하고 지금 여호와증인의 모체가 되는 학설입니다 그런 것들이 쫘악 퍼졌습니다. 기독교가 변질되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또 손을 보셔야 되잖아요. 하나님이 손을 보시는데 이렇게 손을 보셨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 사람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벨론의 후손인 이스마엘의 둘째아들 게달의 후손입니다
그 사람을 태어나게 해서 그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데 예수님의 초림 전에도 바벨론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셨듯이 신약에 와서도 재림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똑같이 그 자녀들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한 사람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마호멭입니다 마호멭이 언제부터언제까지입니까? 570년에 태어나서632년에 죽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이슬람교를 만든 사람입니다 이슬람교가 소위 종교다원주의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보면 자기네 말로는 알라신을 믿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나의 선지자지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이미 그 지역에 그런 식으로 기독교가 변질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교도 변질 되어 버렸고 그런 속에서 마호멭도 그런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이분이 이슬람교를 만든 다음에 이슬람교가 갑자기100년 안에 기독교 국가들을 전부다 이슬람 화시켜버렸습니다. 중동이 완전히 이슬람 화되어 버리고 특히 터키는 뭡니까? 터키는 사도바울이 아시아 일곱 교회를 개척했던 에베소교회, 두아디라교회, 빌라델비아교회, 사데교회, 라오디게아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이렇게 일곱 교회가 다 이슬람화가 되고 그다음에 안디옥교회, 예루살렘교회, 애굽에 있는 애굽 콥틱교회라고 마가가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다음에 구레네 다시 말하면 리비아 북아프리카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전부다 이슬람 화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사도바울이 개척했던 교회와 그 후손들이 개척했던 교회가 600년 후에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렸습니다.
남부유럽 스페인은 특별히 무슬림이 완전히 장악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마호멭이 태어나서200년 안에 제가 말한 이 지역은 완전히 하나님이 그분들을 시용하셔가지고 망치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이 거기서 핍박을 받고 이제는 유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인들도 주후70년에 다 쫒겨 나갔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소위 영적인유대인들도 핍박을 하고 그 당시에 그 지역이 완전히 이슬람에 의해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했습니까? 가톨릭이 서구유럽을 점령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정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십자군운동이 일어났던 겁니다. 그게1100년에서1300년까지 200년 동안에 십자군운동은 구라파의 가톨릭들이 아랍사람들을 때려잡자 왜냐면 우리의 모든 영적인 선조들을 초대교회들을 저놈들이 다 자기네 것으로 만들었다 예루살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분들이200년 동안 일곱 번 중동나라를 대대적으로 침략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대부분 이슬람이 점령했던 기독교위 옛 교회들을 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일곱 번 점령해가지고 그래서200년 동안은 완전히 십자군에 의해서 기독교가 승리할 때입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이슬람사람들만 핍박을 한 게 아니고 유대인들까지 다 핍박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 지역에 퍼졌다가 엄청난 핍박을 십자군들에게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다시 새롭게 하고 이분들이 왜 그랬냐면 지금도 그렇지만 가톨릭은 유대인들을 보는 그분들의 종말론이 소위 무 천년주의 나 후 천년주의라고 그러는데 이분들은 뭐냐면 유대인들은 구약 때만 하나님이 쓰신 하나님의 사람들이지 신약에 와서 예수님을 죽였고 예수님을 배척했고 기독교를 배척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저주받은 민족으로 이스라엘사람들을 보는 것이 소위 무 천년주의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혼내주어야 된다. 기회만 있으면 그분들은 사회적으로도 분리시키고 그분들은 저주받은 민족으로 취급해야 된다고 보는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큰 루터교니 또는 성공회니 가톨릭이니 희랍정교회니 러시아정교회니 다 그런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안티 세미티즘(anti-Semitism)이라 합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을 될 수 있으면 다 없애버리려고 하고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아랍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랍과 기독교는 원수지만 이게 삼각관계입니다 이슬람과 유대인들과 사이가 안 좋고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과 사이가 안 좋고 기독교와 이슬람과 사이가 안 좋고 이런 관계입니다 이렇게 역사가 주욱 흘려 왔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것 때문에 히틀러라는 사람을 보세요.
그 사람은 루터교로 히틀러가 유대인들600만 명을 죽였잖아요.
그게 하나의 예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나 자기네끼리 숨어서 게토(ghetto)라 그래서 그기에 모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공부를 많아 시켜야 된다.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
이것이 이분들의 생존전략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악착같이 돈 많이 벌려고 그러고 우리나라 화교들이 와서 하는 식으로 차이나타운이 있는 식으로 전 세계에 어디를 가나 유대인지역이 있고 학교도 자기네들끼리 학교를 만들고 왜냐면 이방인들 학교에 가지 못합니다. 하도 핍박을 해서 제가 미국에 갔을 때만 해도 70년대까지 유대인들이 일반 공립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유대인들이 그럽니다. 자기가 저 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하도 눈초리가 이상해서 못 들어갔다는 미국에서 요 근래에 와서 유대인들이 활동을 하는 거지 이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들을 많이 당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하나님이 크리스천들을 통해서 훈련시키시고 또 이슬람을 통해서 유대인들을 훈련시켜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러는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유대인이 교만해질까봐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재림 때 쓰시려고 초림 때 쓰셨던 것처럼 그래서 유대인들이 지금 마음이 많이 가난해지고 마음이 많이 가난해진 그 안에서 이분들 중에서 하나님이 소수의 유대인들을 골라서 구약의 여호와가 예수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옛날에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도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말세가 되면 유대인들 중에 소수가 다시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소수가 나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소위 소수의 메시아닉 쥬들이 주님 앞에 올 텐데 그때가 되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온 줄 알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시기가 이미 오고 있는 겁니다.
100년 전부터 그런 일들이 일어나가지고 제가 지난시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레오폴드 콘이라는 헝가리사람으로 유대인랍비인데 이분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구약의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이분이 영국으로 가가지고 신학교를 다녀 목사님이 되셔가지고 미국으로 이민와가지고 뉴욕에서 유대인교회를 만들어가지고 유대인복음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서 그 가지가 뻗힌 게 전 세계에 25개의 유대인크리스천그룹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현재 약10만 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144000명이 되면 주님이 오실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144000명 이런 과정 속에서 이분들은 자기네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그룹 속에서 이분들을 완전히 그 집안에서 족보도 다 지워버립니다. 그러면서 이분들은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핍박이 계속해서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 예수님께 매달리고 예수님께 매달리고 이렵니다. 그래서 보시면 우리크리스천들 중에서 두 가지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을 외치고 이제 예수님의 재림을 외치는 것이 우리크리스천의 본분입니다 세계복음화가 그것입니다
세계복음화를 해서 교회를 많이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세계복음화를 해가지고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이시고 그 예수님이 지금 우리 눈앞에 와 있다 그것을 외치는 것이 선교의 목적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핍박이 오는데 어디서 오느냐면 자체 내 아랍에서 오는 겁니다.
우리 같으면 교회 안에서 오는 겁니다. 교회 안에서 핍박이 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핍박을 받아야지만 겸손해지는 겁니다.
약해져야지만 강해진다고 그랬습니다. 사도바울도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눈을 뜨고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을 딱 보면 그 사람은 뭘 아는 것 같고 뭐 같고 뭐 같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주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우리주님 앞에 매일 의지하는 사람으로 저 같은 사람이 문제가 있습니다. 교육을 조금 받고 박사학위도 받고 어쩌고저쩌고 저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 의지를 안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을 자꾸 나타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러지 않겠다고 자꾸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육을 많이 받고 신학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 같은데 어디까지 쓰고는 하나님께서 한번 혼을 내주고 나중에 다시 들어서 쓰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재림을 이야기할 때 그러는 겁니다. 에스겔에게 말하는 겁니다.
에스겔서38장에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끔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면 조금 있으면 3차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에스겔에게 말하기를 소련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온다고 지난번에도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련을 하나님이 아랍을 하나님이 쓰는 것처럼 소련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쓰시는 겁니다. 러시아정교회들을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소련을 쓰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소련도 크리스천나라입니다
지금도 소련이 많이 복음 화되고 있습니다. 소련을 쓰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소련을 쓰셔서 소련과 아랍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이스라엘과 서방을 공격을 할 텐데 아마도 중국도 소련 쪽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텐데 그때 유대인들이 회개를 하고 제가 보기에는 아랍사람들도 많이 회개를 할 것입니다
다들 아브라함의 자녀들이거든요 그러면서 중동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면서 세계전쟁이 일어날 때 분명히 에스겔에게 말하길 왜 그러느냐면 목적이 만민이 열방이 내가 여호와인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걸 통해서 그러니까 이게 세계선교를 위해서는 3차 전쟁이 꼭 일어나야 되는 겁니다.
그걸 통해서 만민이 그 중에서 이스라엘사람들과 아랍사람들이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들이 여호와가 예수님이구나? 알라신이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과 아랍인들과 관계가 그렇게 되어 있는데 앞으로 점점 그 관계가 더 악화될 겁니다. 우리는 그래서 아하! 하나님이 주님의 재림과 연계해서 이렇게 오는구나? 왜냐면 아람사람들이 유대인들을 더 괴롭힐 겁니다. 그 다음에 아랍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을 더 괴롭힐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꾸로 주님 아랍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나님을 하게끔 하시잖아요.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더 괴로움을 당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계획하셨습니다. 지금 아랍 안에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습니다. 지금 아랍사람들 중에서 순교당하는 사람들이 제가 얼마 전에 데이터를 보니까 1년에30만 명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서방나라들은 복음 때문에 순교자가 없잖아요.
지금 아프리카나 또는 중동지역과 심지어는 중국 안에 주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순교당하는 사람들이1년에30만 명입니다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게 1990년도부터 시작해서 해마다30만 명씩입니다
그러니까 핍박받아서 순교자의 숫자가 차야 된다고 그랬거든요.
계시록6장에 보면 그랬습니다. 그래서 순교자의 수가 차는데 순교자들이 지금 어디서 나오느냐면 아랍사람들 속에서 그다음에 유대인크리스천들 속에서 순교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높은 사람들입니다 고통을 받으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분들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중동사태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고 그렇지만 곧 조금 있으면 중동에 평화가 온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평화가 왔다가 그다음에 소련을 중심으로 아랍을 중심으로 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고 성경에 쓰 있습니다. 목적은 열방을 복음화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곳에서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우리는 이방복음화를 위해서 우리는 전력을 다해야 되는 겁니다. 이걸 다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놓기도 하고 높아놓으면 안 되겠다 하면 하나님이 낮추시고 또 조금 있다가 높이시고 그러다가 또 낮추시고 이러면서 주님만 바라보게 찬송했잖아요.
주님만 바라보면서 한걸음. 한걸음 나가면서 주님을 바라 볼 때 그냥 막연히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재림 전에는 이 복음이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되겠다는 그 비전을 가지고 그러면 주님이 나를 통해서도 그렇게 하시고 주변에 많은 주님의 자녀들을 통해서도 이것을 이루세요. 거기에 저를 요긴하게 사용하시고 내가 조금 높아지면 저를 낮추시고 그러면서 주님의 뜻을 향해서 내가 갈 수 있도록 저를 끌어주세요
우리주변에 모든 동료들을 끌어주세요 그러니까 주님이 요긴하게 쓰는 주님의 종들이 되게끔 주님 나를 붙잡아주세요. 또 여러분들은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또 우리 모든 신학생들 주님!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모든 것이 마지막 때 이방족속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주님이 사용하십시오.
제가 눈을 떠보면 아랍과 이스라엘문제들 세계정치문제들 경제문제들을 보면서 주님! 이게 보이는군요. 그러다 보면 지금 나 가까이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내가 거시적인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시적으로 사물을 보다가도 거시적으로도 보고 눈이 줌 렌즈로 보다가 현미경으로 보는 눈을 가지고 와이드앵글로도 보고 이렇게 계속 보면서 가는 겁니다.
우리가 뭘 잘못하면 조그만 일 하나가지고 거기에 마음이 빼앗겨가지고 큰 걸 보지 못하거나 넓은 걸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큰 것만 보면 안 됩니다 큰 것을 보면서 또 현미경으로 밑을 내려다 볼 줄 아셔야합니다. 이게 항상 소위 융통성을 가지고 그렇게 보는 눈을 가지시라고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안에서 넓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웬만한 사람은 탁 보고는 미시적으로 보니까 저사람 내가 용서해주어야 되겠다. 그냥 덮어버리는 겁니다. 크게 보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큰 그릇 속에서 움직이니까 그래서 주변에 모든 일들은 그런 눈으로 탁 보시면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리면서 주님이 나를 사용하시는데 누가 뭐라고 그러더라도 환경이 지금 이렇지만 이것은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나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뜻만을 바라보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바라보면서 그냥 한걸음, 한걸음 가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훈련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훈련이 어려울 때도 겁낼 것 없습니다.
이 훈련은 하나님이 때가 되면 다 거두어 가신다. 그리고 새로운 것으로 나를 높이시고 가다가 보면 또 훈련을 주실 것이다 그러면서 항상 준비하면서 가는 겁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항상 임하시면서 나의 영안이 이렇게 넓게 뜨고 깊게 뜨고 높게 뜨고 영안이 이렇게 뜨도록 그런 비전을 기도하면서 받으세요. 주님의 기름 부으심이 사모하면서 나의 영안이 넓어지게 소심해지지 않게 해주세요. 넓게 보는 주님의 안목을 주님께서 주소서 하고 그리고 그것을 비전으로 들여다보세요.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하나님! 유대인과 아랍인들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아브라함의 자녀들입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서로 싸움하는지 저희들이 거시적인 주님의 눈으로 볼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이러한 거시적인 안목을 허락해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이 법칙이 우리의 매일매일 삶 속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음을 저희들이 직시하고 어떠한 문제들을 볼 때 그 문제를 미시적으로 보는 또는 거시적으로 보는 또는 넓게 보는 깊게 보는 길게 보는 그러한 안목을 우리에게 주셔서 주님의 뜻을 밝히 보고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은혜위에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1WVp_DDSb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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