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과 저세상 2강.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존재하셨다(행16:7) 2014년12월30일 말씀
저희들이 계속해서 창세전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존재하셨다. 라는 전제 속에서 말씀드립니다. 삼위하나님의 서열은 어떻게 됩니까? 라고 우리가 지난시간에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서열은 상하관계가 아닙니다. 라는 말씀을 드렸고 그것만이 아니고 성품도 같고 인격도 다 같고 동등한 100%같은 분들로 이렇게 개념을 잡으시고 그런데 예외조항이 하나가 있습니다. 삼위하나님의 예외조항이 삼위하나님이 기능적으로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다 했지만 성부하나님은 계획을 하시는 또는 삼위 가운데서 대표자격인 그러한 역할을 하십니다.
대표성을 가지시고 그리고 성자하나님은 삼위하나님이 어떤 결정을 하신 결정사항을 직접수행하시는 그러한 역할을 하시고 그리고 성령하나님은 수행하시는 예수님에게 힘을 부여해드리는 그러한 역할을 하십니다.
힘을 부여해드리는 역할을 성령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성령하나님에 대한 이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들을 제가 하나하나 불려드리겠습니다. 성령하나님을 예수님의 영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도행전16장7절에서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부릅니다.
로마서8장9절에서 또 베드로전서1장11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성령하나님을 지칭합니다. 또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지칭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로마서8장9절과 고린도전서3장16절에서 하나님의 영 이렇게도 지칭을 합니다. 또는 바울은 성령님을 아들의 영이다 이렇게도 또 표현을 합니다. 아들의 영 갈라디아서4장6절에 또는 주의 영이다 이사야서63장14절과 누가복음4장18절에서 주의 영 또는 아버지의 영이다 이렇게도 부릅니다.
마태복음16장17절에서 이 모든 다양한 표현들 중에 우리는 보통 성령이라 그러잖아요. 성령이라고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하는데 성령을 이사야서63장11절에서도 성령 그러고 또 누가복음11장13절에서도 요한복음7장39절에 그다음에 사도행전16장6절에서도 성령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삼위하나님의 성령님은 이렇게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계시구나. 그중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게 성령님은 아버지의 영도 되시고 또 아들의 영도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이렇게 성령님을 표현하는데 우리의 이성으로써는 이게 다 이해가 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다 이해하려고 들지 마시고 그냥 본인이 소화할 만큼만 소화하세요. 우리가 다 이해하려고 그러면 우리가 건방진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삼위하나님의 이 신비를 다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삼위가 이렇게 동등성을 가지면서 기능적인 차이가 있는데 이중에 대표성을 가진 분이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성부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렇게 오셔가지고 항상 성부하나님의 대표성을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나를 보냈다. 또 예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3장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독생자를 보냈으니 그러니까 아버지가 나를 보냈다
항상 아버지에 대한 대표성을 인정하십니다. 요한복음6장37절에40절 요한복음3장16절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꼭 아버지를 대표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실 터인데 그때도 꼭 이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성령님을 여러분들에게 보내주시겠다
항상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앞장을 세우십니다. 요한복음14장16절에 그리고는 예수님이 항상 아버지를 이렇게 높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피조물들은 아버지를 볼 수 없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피조물들은 아버지를 볼 수 없다 요한복음1장18절에서 요한복음6장46절에서 또 요한복음14장9절에서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니까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삼위하나님의 관계가 창세전부터 이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겁니다. 창세전부터 그리고는 이 삼위하나님이 창세전에 서로 이렇게 관계성을 가진 것을 몇 가지만 참고로 보시면 존재적으로 또는 기능적 관계성에서 삼위하나님이 어떻게 서로가 역할을 하는가?
우리가 잠깐 보면 삼위하나님은 상호내재 하신다는 겁니다.
상호내재 하신다. 페리코레시스(perichorésis)그리고 또 상호교제 하신다는 겁니다. 코이노니아 펠로우쉽(Koinonia fellowship)그럽니다.
삼위하나님이 상호교제를 하십니다. 그리고는 상호 섬기십니다.
디아코니아(diakonia)헬라말로 섬긴다는 겁니다. 삼위하나님의 이 관계를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우리가 삼위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가면 그것이 창조주가 우리를 만들어 내신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상호내재 해주고 상호교제하고 상호섬기고 거기다가 상호존경을 합니다.
상호간에 높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앞장서서 내가 누구다 말하지 않습니다. 꼭 삼위하나님 중에 한분이 증거 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5장31절에 예수님이 만일 자신이 증거 하면 그 증거는 참되지 않다는 겁니다. 이게 삼위하나님의 관계성이 창세전부터 항상 성부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이 항상 증거 합니다. 또 성자하나님에 대해서는 성부하나님이 항상 증거 합니다. 그리고 성령하나님에 대해서는 성자하나님과 성부하나님이 증거를 합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1장8절 말씀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면 제자들아 너희들이 권능을 받을 터인데 그러면 그 권능을 받으면 성령을 받으면 너희들이 나를 모든 족속에게 나가서 증거 할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이 증거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삼위하나님 중에서도 초점을 어디에다가 맞추어야 되느냐면 예수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기독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삼위하나님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삼위하나님이 결정하셨지만 실제로 우리 역사 속에 와서 죽으신 분은 행동을 하신 분은 예수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하나님께 다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래서 그분을 우리가 주님 그럽니다. 우리가 통상 성부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또 성령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통상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주인 되시는 분 나의마스트(mast)되시는 분 이렇게 예수님을 우리가 지칭하잖아요.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로 되시기 위해서 이분이 시간 속으로 이 세상으로 내려오시겠다는 말씀이 삼위하나님의 회의에서 결정하신 겁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내려오실 터인데 그러면 우리질문이 있는 겁니다. 우리질문이 뭐냐면 왜 창세전에 삼위하나님께서 예수하나님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시기로 결정하셨나? 우리가 또 질문이 성경 어디에 창세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정하셨나? 라고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어디에 그게 나옵니까? 창세전에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개종한지가 언젠지 아십니까?
주후35년입니다 그리고 바울이10년 후에 소위 안디옥교회에 사역자가 된 겁니다. 이렇게 사역자가 되시고는 46년부터48년까지1차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분이49년에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50년부터52년에2차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2차 선교여행을 하는 도중에 51년에 데살로니가전서 후서를 썼습니다. 그리고는 53년부터57년까지 3차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3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55년에 고린도전서 후서를 썼습니다.
이분이 고린도전서를 쓰실 때 고린도에 있는 지식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을 설명을 해주는 게 고린도전서1장에 주욱 나옵니다.
어떤 말씀으로 하느냐면 고린도교회에 있는 지식인들아 너희들은 이 세상에 학문은 초등학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은 하나님의 지혜라는 겁니다.
고린도사람들은 헬라철학에 물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혜라는 단어를 쓰는 겁니다. 그래서 더 위지돔 오브 갓(the wisdom of GOD)그러는 겁니다.
십자가사건은 하나님의 지혜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지혜만이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파워 오브 갓(power of GOD)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그 능력에 의해서 너희들이 새롭게 되었고 그 능력에 의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부활 때문에 너희들도 죽은 몸이 새롭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사건은 그냥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고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그 십자가가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2장에 들어가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이러면서하시는 말씀이 잘 들어라 지식인들아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것은 창세전에 준비된 거라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2장6절과7절에 창세전에 이미 십자가사건을 예정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그랬습니다. 이 비밀(mystery)은 신비는 바울도 이 말을 바울이 직접 썼지만 바울도 쓴 게 아니잖아요.
성령님이 바울에게 조명해서 쓰라고 그러니까 이분이 쓴 것뿐이지 저자는 바울이 아닙니다. 저자는 성령님이 그래서 우리가 알다시피 디모데후서3장16절에 모든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그랬잖아요. 바울이 감동을 받아서 그냥 쓴 겁니다. 그분의 지혜와 지식을 바탕으로 해가지고 한 거지 그분작품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바울도 이걸 쓰면서 성령님이 네가 지금 쓰는 이것이 미스터리(mystery)라는 겁니다. 너 지혜가지고도 너는 소화를 못한다는 겁니다. 뭐가 미스터리(mystery)입니까? 창세전에 십자가사건을 삼위하나님께서 예정한 것은 미스터리(mystery)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똑똑한 사람 아닙니까? 개종해가지고 20년 만에 이 미스터리(mystery)를 바울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개종해서20년 동안 바울도 그냥 가만히 있은 게 아니잖아요. 이분이 얼마나 훈련을 받았습니까? 그리고 성경도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세 권을 썼습니다. 대단하게 영적으로 준비되고 지적으로 준비된 사람인데 이 미스터리(mystery)를 바울에게 성령님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울이 만약에 이 미스터리(mystery)를 미리 알았으면 바울도 뒤로 나가자빠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이해 못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창세전에 어떻게 준비했습니까?
이게 말이 안 됩니다. 라고 바울이 아마도 갈등을 가졌을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삼위하나님은 바울의 마음을 꿰뚫어보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을 때 지금 고린도전서2장7절에서 이 말씀을 하시는데 이 말씀을 하시고는 바울의 신학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때까지는 그렇게 생각 안 헸는데 이때까지 생각은 단순 적으로 뭡니까? 예수님이 왜 오셨나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담을 세이브하려고 오셨다 이렇게 우리가 단순 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단순이해를 그렇게 하잖아요.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그런데 어떻게 아담이 만들어 지기 전에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예수님이 이 계획을 어떻게 하셨을까? 이것은 도저히 우리이성으로는 소화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신학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걸 써놓았지만 본인도 까릿 까릿한 겁니다.
그분도 까릿 까릿해야 합니다. 그분도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이성으로 사물을 보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괜찮다고 그래도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바울이57년에 3차 여행이 끝날 때 로마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로마서를 쓸 때 로마서16장25절26절에 로마의 지식인들에게 또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울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로마기독교인들에게 여기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무엇을 감추어놓았다는 겁니까?
예수님님의 십자가사건을 계획한 것은 창세전에 이미 삼위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것인데 이것을 감추어놓았다가 이제야 뚜껑을 열고 우리에게 계시해주신다는 겁니다. 이 미스터리(mystery)를 그리고는 이분이 60년에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에베소서를 쓰실 때 또는 61년62년에 에베소서1장3절부터14절까지 내용을 보면 이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이 첫 인사말부터 에베소사람들에게 복음에 관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인사말로 하면서 그기에 예수님의 복에 대한 그분의 죽으심에 대한 찬양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되는데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러니까 우리가 택한 것도 창세전에 택함을 받았다는 겁니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이게 미스터리(mystery)입니다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숨겨놓았던 것이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게 3장으로 연결이 됩니다. 3장1절부터 보면 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9절에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영원 전부터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이야기하고 영원 전부터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을 받을 것을 그러니까 사람을 만들기 전이고 만물을 만들기 전에 이미 이것을 예정하셨다는 겁니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이게 믿음으로 은혜로 이해가 되지 이게 생머리로는 안 됩니다. 도저히 생머리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사건을 디모데에게 순교직전에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67년에 디모데후서1장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라는 겁니다. 영원 전부터 이렇게 바울이 자기신학을 정리를 하면서 베드로도 베드로는 65년에 순교했거든요. 순교1년 전에 베드로 전 후서를 썼습니다. 베드로전서1장19절에서20절에 베드로도 이것을 순교1년 전에 이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창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예비 된 사람들인데 그분들에게 창세전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예수님을 준비시켰다는 겁니다. 19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다는 겁니다.
그분과 그분의 죽음의 사건은 창세전에 미리 알리신바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에게 분명히 이 사건은 하나님이 이렇게 창세전에 준비하신 걸로 우리가 짐작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질문이 있습니다. 왜 창세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예정하셨는가?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저는 오랫동안 묵상하며 질문을 던지며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오랫동안에 이 문제가 풀리지가 않는 겁니다. 왜 이렇게 하셨는가?
그런데 제가 찾은 대답은 이렇습니다. 제 대답이 온존치 않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오늘까지 제가 느끼고 받은 대담은 이것입니다
우리삼위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신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삼위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로마서8장28절29절에 바울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예지하셨다 예지라는 것은 영어로 포오놀닐지(foreknowledge) 다시 말하면 만들기 전에 창조하기 전에 알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자녀들을 그리고 그걸 아셨고 나중에 아신 다음에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그분을 예정하셨다는 겁니다. 예지하시고 예정하셨다
예정은 프리데터네이션(predetermination) 그리고는 때가 되어서 불렸다는 겁니다. 콜링(calling) 바울도 콜링(calling)을 35년에 받는 겁니다.
그렇지만 바울의 어머니 태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이 이방선교사로 이미 예정하셨다고 갈라디아서1장15절에 보면 나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때가 되어서 불려서 그다음에 하나님이 의인으로 만들어서 나중에 영광스럽게까지도 만든다는 이런 내용들이 있는데 이런 내용과 관계해서 사람을 만들기 전에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우리삼위하나님이 예지하셨다는 겁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예지하셨는데 무엇을 예지하였냐면 피조물들을 이제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창조하신 후에 자녀들이 어떤 행동을 할 것까지도 예지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예지하신 겁니다.
뭘 예지하였냐면 이 피조물들은 창조주와 비교했을 때 창조주의 창조목적을 100%만족시키지 못할 것을 예지하신 겁니다. 창조주가 조금 있다가 창조를 하실 터인데 창조를 해 놓으면 이 피조물들이 창조목적이 무엇입니까?
창조주를 기쁘게 하고 창조주에게 찬양을 드리고 창조주만 의지하고 창조주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그래서 창조주가 기쁨을 받고 영광을 받을 때 창조주가 기분 좋으니까 자기의 행복을 피조물들에게 막 나누어주는데 그게 창조의 목적입니다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놈들이 창조목적대로 행동을 안 합니다. 그러면 누가 괴롭습니까? 창조주가 괴로운 겁니다.
그러니까 창조주가 피조물을 만들어 놓으면 이 피조물들이 이런 짓을 할 것을 미리 아신 겁니다. 이게 피조물의 한계성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완전하게 피조물을 만들면 되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짓을 하지 않도록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만들면 되잖아요. 그런데 창조주는 그러는 겁니다. 피조물이 나하고 똑같게 만들어 놓으면 그러면 피조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이놈이 할아버지 수염을 당기듯이 이 피조물들이 까불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창조주가 머리가 좋으십니다. 다 아시고는 피조물을 자기와 똑 같은 존재로 만들기를 원치 않으신 겁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능력을 부여해주지 않고 만들었기 때문에 창조주가 가지고 있는 창조주의 딜레마라는 말은 어색한 말입니다 창조주가 딜레마를 가질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만들어 놓으면 분명히 피조물들이 창조주의 수준에서 한 단계 밑이기 때문에 창조주의100%요구사항에 응하지를 못할 것을 아신 겁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창조목적대로 행동을 안 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 때문에 삼위하나님이 아마도 회의를 하셨겠지요. 이걸 어떻게 할까 그래 이놈들을 우리가 나중에 만들 터인데 생고생을 조금 시키자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이 피조물들을 만들어 놓으면 피조물들은 창조주에 대한 고마움을 창조주가 기대하는 수준만큼 가지지를 않을 거라는 겁니다. 피조물의 문제점이 왜 그러느냐면 이 피조물들은 의식주를 무료로 제공받게 됩니다. 그것뿐입니까 무료라는 것은 옷도 영광스러운 옷을 생각만 하면 탁탁 갖다 줍니다 밥걱정 없습니다.
매일 생명열매를 마음대로 먹고 그리고는 추위걱정 없고 히터 걱정 없고 에어컨 걱정 없고 날씨도 기가 막힌 좋은 날씨고 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모든 걸 다 무료로 받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들은 장례식도 필요 없습니다. 병원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영원히 사는데 무병장수가 영원한 겁니다. 그러니까 삼위하나님이 아시는 겁니다. 이 피조물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을 텐데 그러면 분명히 고마움도 모르고 무료로 다 받으면 피조물의 한계성이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한 목적을 잃어버릴 수 있는 그기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피조물들에게 있는 것을 미리 다 예지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삼위하나님께서 특별미팅을 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피조물을 만들 텐데 피조물들을 창조목적에 잘 부합하는 존재로 만들려면 이렇게 할 때 분명히 성부하나님이 우리가 한번 애들 영생을 빼앗아버리자 그리고 시간 속으로 집어넣어버리자 그래가지고 생고생을 시키자 마음대로 밥 먹지 못하게 땀을 흘려 농사지어서 밥을 먹게 하고 애기 낳을 때도 고통당하게 하고 그래서 생고생을 시간 속에 집어넣어가지고 고생을 한번 시켜보자 그리고는 아들예수님시여 성자께서 인간으로 내려가 가지고 이 고생하는 놈들에게 야! 이제 고생 그만해 내가왔다 이렇게 한번 하고는 다시 데리고 갑시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시간세계로 우리 한번 만들어 봅시다. 이렇게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랬다가 이 세상에서 훈련이 어느 정도 되면 다시 저세상으로 데리고 갑시다 이것을 창세전에 예비하셨다는 겁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창조목적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 세상은 이 시간세상은 창조목적 훈련학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아담타락부터 시작해서 심판까지7000년을 잡으신 겁니다. 창조목적훈련학교를 7000년을 잡으셔가지고 7000년을 이 세상이라고 명칭을 붙인 겁니다.
이 세상을 그리고는 이 세상을 창조목적학교로 훈련시키기 위해서 나중에 사탄이 이 세상 학교에 학장이 된 겁니다. 학장위에는 총장님이 계십니다.
총장님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총장님 밑에 학장님이 사탄이 되어가지고 학장이 저기 밑에 똘만이들을 교수로 다 만들었습니다.
소위 이 세상을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 훈련을 많아야 70-80년 많아야100년 받고는 저세상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7000년 동안 사는 게 아닙니다. 7000년 동안 이 기간 동안에 우리는 고작해야 짧은 기간을 사는데 짧은 기간에 이 훈련을 받다가 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애야 내가 너에게 수직계명을 줄게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수직계명은 가장 첫째 되고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겁니다. 이게 뭡니까 이 세상 창조목적훈련학교의 주제가 뭐냐면 수직계명이라는 겁니다. 수직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만 창조주만 섬겨라 피조물을 섬기지 마라 이게 수직계명입니다 이게 창조목적학교의 모토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예표로 보여주는 겁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이 수직계명을 지킨 사람들은 소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그리고는 다수는 이것을 안 지키고 우상을 섬겼다는 겁니다. 똑같이 신약 때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꼭 이 짓을 할 거라는 겁니다.
소수만 수직계명에 순종하고 다수는 안 할 것을 거울로 보여주신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러느냐면 저쪽 동네는 계급사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지만 이꼬르로 창조목적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고 수준이 다른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게 미스터리(mystery)입니다 왜냐면 저쪽 동네는 올라가면 우리가 다시 저세상에 가면 이 세상에서 우상을 얼마나 덜 섬겼느냐에 따라서 나의 포지션이 결정되는 겁니다. 내가 얼마나 창조목적대로 살다가 왔느냐에 따라서 내 포지션이 결정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가르치려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겁니다. 그 고생을 하시면서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저나 여러분들이나 은혜가 따라와야 합니다. 저 동네에서 높은 계급에 있는 것도 은혜가 따라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돈 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권력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내 가족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는 제자가 되려면 너 자신을 미워해야 되고 가족을 미워해야 되고 아버지 어머니를 나보다도 더 사랑하면 너는 내 제자가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무엇입니까? 창조목적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이런 사람들은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선순위가 그러므로 너희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제자가 되고 싶은데 가족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주님이 나를 먼저 생각해봐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6장33절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간단하게 정리하면 뭡니까?
왜 창세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예정했나요? 라고 질문을 던지면 대답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렇게 대답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한번 고민해보면서 이것을 내 것으로 소화를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AkDT1fIw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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