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과 저세상

1강. 마태복음12장32절, 이세상저세상

변명섭 2022. 8. 11. 23:14

이 세상과 저세상 1강. 이세상과 저세상(마12:32) 2014년12월30일 말씀
오늘부터 제가 주제를 이 세상과 저세상으로 할 터인데 교재를 제가 일부로 제가 안 만들었습니다. 손으로 쓰시라고 손으로 쓰는 공부가 더 잘된다고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해서 여러분들도 손으로 하나하나 쓰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기 마시길 바랍니다. 많은 정보들이 이번2박3일 동안에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적어시면서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이세상저세상, 성서에는 예수님께서 이세상저세상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요한도 베드로도 이세상저세상 그랬습니다. 
이 세상 표현을 이생 저 생 이렇게도 표현하고 그리고 아래세상 위 세상 이렇게도 표현하고 성경에 보면 여러 부분으로 표현을 하는데 이 표현이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대부분의 종교들이 이 사상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기독교인들이 자칫하면 타종교의 이세상저세상과 구별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종교 예컨대 우리주변에 있는 불교는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교입니다
힌두교와 불교는 이세상저세상사상이 우리와 다릅니다. 
힌두교와 불교는 소위 윤회사상이라고 그럽니다. 윤회사상은 이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저세상 극락으로 가는 사람이 아주 소수라는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윤회되기 때문에 죽어서 동물도 되고 또는 나무도 되고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다른 모습의 존재가 된다고 믿는 것이 힌두교나 불교의 사상입니다. 그것을 윤회사상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은밀한 의미에서는 이세상저세상 개념이 아니고 저세상과 알고 보면 또 다른 존재가 되어서 이 세상에 사는 이런 개념이 힌두교와 불교에 있습니다. 아주 착하게 살면 예컨대 절간에 돈을 많이 내거나 또는 시주한다고 그럽니다. 힌두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또는 착한 일을 많이 하거나 요즘은 착한 일보다 돈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내면 또는 아주 고행을 많이 하거나 이런 분들은 극락으로 직통한다고 보는 겁니다.
이런 분들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기독교 개념에서는 이분들이 말하는 극락으로 직통한다고 하는데 또는 윤회사상을 가질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분들이 죽으면 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저세상으로 가는데 저세상지옥으로 가는 겁니다. 그렇죠? 이 개념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우리기독교인들은 이 부분을 정돈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종교도 그렇습니다. 이슬람종교도 이세상저세상개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저세상에 낙원도 있고 지옥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낙원에 가는 사람은 힘들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힘들게 가장 낙원가기가 쉬운 방법이 뭐냐면 성전(聖戰)입니다. 홀리 워(holly war) 성전(聖戰)입니다. 예컨대 알라를 위해서 내 몸에 폭탄을 달고 죽는 겁니다. 타종교사람들 여러 사람들을 죽이면서 죽는 겁니다.
그러면 그 길로 직통으로 낙원에 간다고 믿는 겁니다. 이슬람교에서 그걸 가르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기에 가면 남자들은 72명의 여인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망이 없는 젊은 아랍계통의사람들은 그게 큰 소망인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자들도 그기에 대해서 반발하면서 우리는 뭐냐 그래서 너희들도 72명의 남자들이 기다린다는 법을 만들어서 그래서 여자들도 폭탄을 안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세상개념입니다
다른 종교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세상저세상개념이 있는데 우리기독교가 이야기하는 개념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분들은 우리의 측면에서 보면 저분들은 저세상 어디로 가는 겁니까? 지옥으로 가는 겁니다.
그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의 법칙에 의하면 그분들의 저세상은 저쪽 나쁜 동네라고 정죄를 하고 우리가2박3일을 같이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이 이세상저세상이야기 한 것을 하나하나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성서를 열어 보시면 마태복음12장32절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과 오는 세상 두 세상을 예수님이 구별하였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10장30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은 박해를 겸하여 받고 제자들 보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기에 올라가면 영생까지도 따라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현세와 내세의 개념을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베소서1장21절에 바울이 하신 말씀을 보면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여기서 이 세상 또는 오는 세상 그랬습니다. 또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후64년에 부탁하는 말씀이 디모데전서4장8절에 디모데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훈련을 하면 금생에도 복을 받고 내생에도 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68년에 순교하셨으니까 4년 전에 디모데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이렇게 보면 열심히 훈련도 하고 뜀뛰기도 하지만 그것도 좋지만 경건의 훈련하는 시간을 더 많이 드리라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이 디모데에게 바울을 통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요즘 와서 금생과 내생 하면서 신학적으로 상당히 혼돈이 있는 시대가 지금 이 시대입니다 
예컨대 종말론사상에서 종말론시각에서 종말론공부한 분들은 이해가 되겠지만 역사적전천년주의 또는 세대주의적전천년주의 또는 무 천년주의 이런 종말론 신학사상을 가진 분들은 분면 이 세상과 저세상개념이 뚜렷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가 때가 되면 우리는 저 세상으로 간다는 개념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소위 진보주의사상을 가진 종말론사상이 후 천년주의사상입니다 후 천년주의라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자 그래서 전쟁도 우리가 없애야 되고 평화스럽게 만들자 그래서 이 세상을 낙원 화하자는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저세상이라는 개념이 약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낙원 화시키자는 이런 소위 진보적인 사고가 지금 인권 운동하는 사람들 또는 평화 운동하는 사람들 소위 녹색 운동하는 분들 또는 세계정부를 단일화시키자는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경제도 단일화시키자 그래서 FTA도 그렇고 또 국가를 이제는 한 정부로 만들자 왜냐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이렇게 해야지만 전쟁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전쟁을 없애려면 가장 중요한 단일화가 뭐냐면 종교를 단일화시켜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우리가 낙원 화시킬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종교다원주의로 발전이 되는 겁니다. 모든 종교는 같다 
종교다원주의 이 운동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면 WCC에서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UN도 여기에 동조하고 UN에 있는 모든 회원들 안에 기독교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이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종교를 하나로 만들고 경제도 하나로 만들고 WTO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낙원을 우리가 만들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인간들이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이 WCC와 로마가톨릭까지도 이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는 아니지만 일부는 우리가 죽으면 저세상으로 간다는 개념이 있지만 뚜렷하지 않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죽으면 그냥 죽은 상태로 그대로 있다가 이 세상이 천국화가 되면 우리가 다시 부활한다는 개념도 있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개념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뭐냐면 뚜렷하게 예수님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과 저세상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그런 개념이 점점 흘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때 살고 있습니다. 많은 소위 목사님들도 신부들도 신학자들도 이런 혼돈된 개념 속에서 설교도 하고 강론도 하고 신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이 이세상저세상개념이 뚜렷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사람인데도 물어 봅니다. 
이제 곧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내일모래면 곧 세상을 떠난다는 입장에서 물어보는 겁니다.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신앙생활 잘 하는 분들 중에서 글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저세상낙원에 간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확신이 없는데요. 이런 사람 많습니까? 안 많습니까?
많습니다. 왜냐면 주변에 사회가 그렇게 변화고 있는 겁니다. 사회가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기독교교회와 교단이 이렇게 변화고 있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다원주의사상이 들어가서 그런 겁니다. 
종교다원주의사상이 그러면 이분들이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불교에도 착한 사람들이 많고 이슬람교는 모르겠지만 힌두교나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착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거기에 대한 의문이 있는 사람은 저세상에 당신은 갑니다. 그러면 별로 그렇게 신통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럴 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전제로 깔아놓고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리려고 그럽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분명히 있고 저세상이 분명히 있다는 구별된다는 것을 전제로 해놓고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할 터인데 왜 전제로 합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구절을 몇 개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더 있지만 제가 대표적으로 뽑아서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두 세상신학이라고 그럽니다. 두 세상신학을 성서적인 개념에서 우리가 한번 비교를 해봅시다. 그래서 두 세상신학을 비교를 하겠습니다.
성서에서는 이 세상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면 이 세상은 물질세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형이 화학적 세계다 그리고는 이 세상은 시간세계다 또한 공간의 제약을 받는 세계다 이 세상은 또는 성서에서는 뭐냐면 아래세상이다
요한복음8장23절에 그리고 어두움의 세상이다 요한복음1장5절에 또는 악한 세상이다 요한복음7장7절에 또는 이 세상은 사탄의 왕국이다 요한복음12장31절에 보면 사탄이 이 세상에 왕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세상이다 요한1서2장17절에 그다음에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은 때가 되면 다 없어지는 세상이다 보이는 것은 때가 되면 다 없어지는 그러한 세상이다 고린도전서7장31절에 그다음에 이 세상 것은 다 썩어진다. 
베드로후서1장4절에 그다음에 이 세상은 더러운 세상이다 베드로후서2장20절에 또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다 야고보서4장14절에 또는 이 세상은 그림자다 역대상29장15절에 욥기8장9절에 또는 욥기14장2절에 그다음에 이 세상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나그네 세상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외국 사람이다 히브리서11장13절에 또는 베드로는 뭐라고 그랬냐면 우리기독교인들은 이 세상나그네다 나그네다 똑같은 개념인데 그것을 한국말로 행인이다 베드로전서2장11절에 이렇게 성서에서 보는 이 세상개념입니다 이래저래 한 번씩 다 들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희랍 때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이라는 사람이 유명한 철학자로 그리스사람인데 이분은 신약성경을 읽지 못한 사람입니다 신약 전 사람이니까 이분은 헬라철학을 집대성한 아주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한분인데 이 분이 이 세상개념이 뭐냐면 성서와 비슷합니다. 이분은 이 세상을 가짜세계라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은 비 본질의 세계다 또 이 세상은 그림자세계다 또 이 세상은 진품이 아니고 모조품세계다 또 이 세상은 암혹세계다 또 환상의 세계다 물질세계다 또 시간세계다 변화는 세계다 시간과 공간을 제약받는 세계다 또 생로병사가 일어나는 세계다 또 이분은 이 세상을 악의 세계다
이렇게 플라톤이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구약을 많이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분에게 주님께서 이런 지혜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지혜를 받았던 헬라철학의 지혜를 가졌던 유대인들 바울도 마찬가지고 특히 바울 같은 사람이 이분들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개념을 가르칠 때 바울이 이미 준비가 다 된 겁니다.
헬라철학을 공부하면서 바탕을 깔아 놓았습니다. 이 세상은 이런 세상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철학공부가 꼭 필요합니다. 이것이 절대적은 아니지만 우리의 바탕을 깔아주는 사상체계를 정립해주는 그래서 주님께서 헬라철학자들을 예수님 오시기300년400년500년 전에 주욱 이렇게 준비시켜놓았습니다. 이분들을 그렇다면 우리가 저세상을 성서에는 어떻게 보느냐?
저세상을 보는 시각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세상은 성서에서는 영원세계다 형이상학적세계다 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세계다 
또 빛의 세계다 요한복음1장9절에 빛의 세계다 또는 윗 세상이다 요한복음8장23절에 또 영원한 세계다 요한복음3장16절에 또 하나님의 자녀들의 본향이다 고향이다 히브리서11장14절에 또 생로병사가 없는 세계다 계시록21장4절에 생로병사가 없는 세계다 또는 낙원이다 누가복음23장43절에 또는 3층천이다 고린도후서12장2절에 또는 아버지의 집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요한복음14장2절에 이렇게 저세상과 이 세상이 구분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저세상을 어떻게 이야기했느냐면 저세상은 선한 세계다 빛의 세계다 본질의 세계다 진짜 세계다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세계다
진정한 자아 세계다 또는 영원한 세계다 또는 변함없는 세계다 비물질 세계다 이렇게 플라톤이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두 세계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분명한 겁니다. 이렇게 구분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해놓고 계속해서 우리가2박3일 같이 이야기할 겁니다. 그런데 제목을 바꾸어서 창세전에 삼위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있을 것을 예정하신 겁니다. 창세전이면 저세상입니까? 이 세상입니까? 창세전은 저 세상입니다 그걸 다시 말하면 영원세계입니다
영원세계에 삼위하나님이 이렇게 계시면서 이분들이 우리가 시간세계를 만들자 라고 계획하셨든 것입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그걸 우리가 나중에 보겠지만 창세전에 예수님이 시간세계로 내려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릴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창세전에 삼위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시간세계로 집어던져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창세전에 이 말은 무엇입니까? 
창세전에 삼위하나님께서 시간세계를 만들 것을 이미 준비하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왜 창세전에 이 세상을 만들 것을 예정하셨나? 왜 창세전에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삼위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나? 이것도 우리의 질문입니다 예정한 것을 어떻게 만드셨나?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드셨나? 
그러니까 근방 만드신 게 아닙니다. 만드시기 전에 과정이 있었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하셨나? 이것을 우리가 공부하게 될 겁니다
점점 더 복잡하게 들어갑니다. 그다음에 제목을 바꾸어서 창세전 저세상과 하나님에 관한 내용들을 들어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창세전은 무엇입니까? 창세전은 저세상입니다 그러다가 한참 있다가 창세를 하신 겁니다.
창세는 창세기1장1절입니다. 여기도 저세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창세전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창세하기 훨씬 전입니다 영원세계기 때문에 시간상으로 얼마 전인가 모릅니다. 창세전에 첫째 삼위하나님이 존재했습니다.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존재하셨다는 것을 성서에서 한번 증명을 해야 됩니다. 어떻게 증명할까요? 첫째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가 보면 압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17장5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만찬 때 성만찬을 다 하시고 17장은 제자들이 보는데서 하늘을 우르르 보시면서 아버지에게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기도하시는 장면인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상당히 기가 막힌 말씀을 하십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말인 겁니다. 제자들도 유대인이잖아요 제자들도 지금 이분을 3년을 따라 다녔는데 33살 잡수신 젊은 분이 하시는 말씀이 상당한 쇼킹을 받은 겁니다. 이분들도 왜냐면 제자들은 유대인의 문화 속에서 유대종교를 가졌던 분들입니다. 이분들 앞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예수님의 말씀이 아버지와 나와 
창세전에 같이 있었잖아요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들으면서 기가 막힌 말입니다 자기네가 섬기는 여호와입니다 자기네가 섬기는 구약의 유대인하나님이 33살 잡수신 자기네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창세전에 이 젊은33세 잡수신 이분이 그 성부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이런 말을 할 때 기가차지 않아요. 이분들이 볼 때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유대인들이 나중에 대제사장들이나 유대학자들이 보고는 예수님을 신성 모독하는 분이라고 본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보면 예수님의 존재 그분의 존재가 언제부터나 그러면 우리가 창세전에 존재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요한복음1장1절에서3절을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태초에서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다음에 창세기1장1절에 태초는 다른 태초입니다 
지금 요한복음1장1절 태초는 창세전 태초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존재를 이야기합니다. 태초에 말씀이계셨다. 그랬습니다. 말씀이계셨다. 는 태초는 이 태초가 아닙니다. 창세전태초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 하나님은 삼위하나님입니다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과 함께하셨다 이것은 지금 존재적인 측면에서 그러면서 요한이 지금 말하기를 말씀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게1절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태초에 삼위하나님으로써 다시 말하면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 삼위하나님이 태초에 존재하셨구나. 그런데 그 태초는 창세전에 존재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두 번째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태초에 어디에 존재하셨나? 다시 말하면 창세전에 두 번째 질문인 어디에 존재하셨나?
그러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인데 낙원에 계셨다. 라고 보는 겁니다. 
낙원이라는 말은 3층천입니다 그러니까 1층천이 있고 2층천인 별의 세계가 있고 3층천이 있는데 여기를 고린도후서12장2절에서4절에 보면 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여기를 낙원이라고 그러고 또는 3층천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상하는 겁니다. 아하! 이 삼위하나님이 창세전에 3층천에 다시 말하면 낙원에 존재하셨다. 라고 우리가 가정해보는 겁니다. 
지금 창세전이야기입니다 창세전이 이 세상입니까? 저세상입니까?
저세상입니다 그러면 세 번째 질문이 이분들이 계시니까 누가 이분들을 창조하셨나? 이분들이 어떤 존재니까 삼위하나님이 존재입니다 이 존재를 누가 창조하셨나?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는 게 있습니다. 뭐냐면 출애굽기3장14절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스스로 이 말은 뭐냐면 자존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누가 만들어서 존재하신 분이 아니고 스스로 자존하신 분으로 갓(GOD)이는 엘로힘(Ellohim)은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스스로가 창조주입니다
창조주이시면서 스스로 자존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모세에게 모세가 사람들이 당신 이름을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하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갓(GOD)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또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얼마동안 존재하시는 분인가? 우리피조물들을 보면 우리는 시간의 제한이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언제까지 있다가 우리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개념을 볼 때 하나님 당신께서 자존하신 분이신데 그러면 언제까지 자존하시겠습니까? 라고 우리피조물들이 건방지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면 이분의 대답이 나는 영원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존재는 영원하신 겁니다. 제가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시편90편2절에 또 시편102편26절에 또 아브라함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21장33절입니다. 또 모세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33장27절에 또 이사야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40장28절에 또 이사야서57장15절에 느헤미야에게도 말씀했습니다. 느헤미야9장5절에 바울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16장26절에 요한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15장7절에 이분은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삼위하나님은 그러면서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라면서 이분들은 변화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다가 마음을 바꾸거나 또는 주금 모습이 변하거나 이것도 아니고 한번 존재하시면 변함이 없는 불변하시는 그러니까 영원토록 동일하시는 시편102편27절에 히브리서1장12절에 히브리서13장8절에 다니엘서6장26절에 야고보서1장17절에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은 이름이 무엇인가? 이 하나님은 이름이 뭐냐면 아까 전에 이야기했죠. 이름이 엘로힘(Ellohim)이라는 겁니다. 
그 뜻은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엘로힘(Ellohim)이라는 이름이 복수기 때문에 im이 붙었습니다. 북수기 때문에 삼위하나님이 삼위로 존재하시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존재하는 겁니다. 그래서 파더(father) 선(sun) 홀리스피릿(holy spirit)삼위로 존재하시는데 한 하나님인데 위가 세 위라는 겁니다. 원 갓 쓰리 퍼슨즈(one GOD three persons) 그 퍼슨즈(persons)를 인격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세 퍼슨즈(persons)로 존재하시는 분이신데 이게 우리질문인 겁니다.
세 퍼슨즈(persons)중에 누가 가장 높고 누가 둘째고 누가 셋째입니까?
서열이 어떻게 됩니까? 라고 우리가 질문을 해보는 겁니다. 
삼위하나님의 서열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성서에서는 그러는 겁니다.
이 삼위께서 서열이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서열이 동등하다는 겁니다. 
그뿐 아니고 삼위가 질도 동등하다 또 양도 동등하다 격도 동등하다 권위도 동등하다 성품도 동등하다 인격도 동등하다고 보는 겁니다.
이것이 성서적인 정통신학개념입니다 첫 시간에 심각한 어려운 시간으로 해서 죄송합니다만 너무 많이 하면 힘들 것 같아서 제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p4vEsjTuJ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