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 목사님 칼럼

22년4월23일 칼럼

변명섭 2022. 4. 23. 22:16

4월에 주님께서 개나리꽃과 벚꽃과 함께 우리에게 부활절을 주셨습니다.

지난주일 우리가 대면 비 대면으로, 부활절 메시지와 함께 부활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만 있는 특별한 절기입니다. 타종교에는 이런 류의 절기가 없습니다.

 

왜 기독교에만 부활절이 있나요? 왜 예수님이 부활하셔야만 하나요?

지난주일 설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이 유일한 창조자이시며(요1:3), 유일한 생명의 주인이시며(요14:6), 유일한 만유의 주인이시며(딤전6:15), 만유의 통치자이시기(마28:18)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타종교들에는 부활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금합니다. 이세상 모든 타종교들의 기원이 어떠한지요? 성서적 가르침이 이러합니다. 노아홍수(주전2458) 이후, 함의 손자 니므롯(Nimrod, 창10:8)이 창시한 '바벨론 종교'(창11:1-9)로부터 기원되었다고 복음주의 학자들이 말합니다.

'바벨론 종교'를 세계 종교들의 모체로 생각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의 저서, '여자의 후손', 영어로는 '종교의 기원' 책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타종교의 창시자들은 피조물들입니다. 사탄의 똘마니들(마귀와 귀신)의 '수종드는 자들'(힌두교 창시자, 부처, 공자, 마호멭등 각종 종교창시자들)이라고 성서는 가르칩니다. 타 종교인들에게는 미안하며, 무례한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창시자들에 대한 성서적 가르침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이 창시자들은 예수님의 장중에서(마4:7), '이 세상 왕'으로(요12:31, 교감으로) 잠시 임명받은 사탄과, 그 똘마니들(마귀와 귀신)의 '수종자들'입니다. 이 '수종자들'이 사탄의 똘마니들(마귀와 귀신)을 '신들'(gods)로 추앙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고후4:4). 이 '신들'(마귀와 귀신)이 각 나라와 지역에서, 족속과 문화와 전통의 특성에 따라 토속화되어, 이 '수종자들'에 의해 종교를 만들어 자신을 섬기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이 신들을 바울이 '이 세상 신들'(gods of this world, 고후4:4)이라 했습니다.

 

이들(이 세상 신들과 그 수종자들)은 이 세상 창조목적학교에서 나쁜 교사들로 임명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학생들)을 향한 '역기능적 교사들'입니다. 이들은 장차 '창조목적학교' 폐교와 함께 불 못으로 던져지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계20:10-15). 그러기에 타종교의 창시자들은, 사탄의 똘마니들인 '이 세상 신들'의 '하수인들'이기에, 예수님이 '창조목적학교기간' 이들을 부활하도록 디자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들 종교에는 부활절이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목적학교가 폐교될 때, 이미 죽어 지옥에 있는 이들 창시자들(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토속종교, 샤마니즘, 뉴에이지, 두 짐승 등등)과 함께, 모든 사탄의 자녀들을 지옥에서 부활시켜(요5:29), 백보좌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 못으로 던지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계20:10-15). 다시 말해 이 창시자들과 사탄의 자녀들(요일3:10)도, 폐교 때 심판받기 위해 지옥에서 부활됩니다(요5:29; 계20:13). 이 부활은 '저주의 부활'이며, 반면 예수님과 성도의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요5:29).

 

그러므로 기독교 창시자인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의 부활'입니다.

그는 반드시 죽으셔야 하며, 제3일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고전15:20)가 되셔야 합니다. 이 '부활의 첫 열매' 디자인을, 이미 구약 전체에서, 신약 하나님의 자녀들(학생들) 교육을 위해, 예표(롬5:14)와, 모형(copy, 히8:5)과, 그림자(shadow, 히8:5)와, 거울/본보기(example, 고전10:6)와 심볼(symbol, 히9:9)의 방법으로, 이해를 쉽게 하도록, 현장 역사무대에서 눈높이로 상황 화하여(contextualized), 창세전부터 시작하여 구약 4,000년 기간 신약 하나님 자녀들(학생들)이 소화 할 수 있도록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창조목적학교의 신약시대 학생 교육목적으로, 구약에서 이렇게 디자인 되었습니다. 그 디자인하신 구약의 역사적 사건들을 지난 부활절 주일설교에서 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예수님의 디자인된, 예표로 보여주시는, 구약에서의 부활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우선 (1)창세전 '하나님의 신비'(고전2:7; 롬16:25-26; 엡1:3-14)로부터 시작했습니다. (2)이어서 아담타락과 함께(주전4114) 원시복음(창3:15)에서, (3)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 위에 민력 7월 17일에 멈춤(주전2458, 창8:3-4)으로 해서, (4)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살아남(주전2050, 창22:5)으로 해서, (5)모세에게 초실 절을 1월 17일에 지키게 함(주전1445, 레23:9-14)으로 해서, (5)다윗에게 환상 보여주심(주전1040-970, 시16:10)으로 해서, (6)요나의 표적(주전800, 욘1:17, 2:2; 마12:39-40)으로 해서 입니다.

이렇게 자상하게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상에서 저주받아(신21:23) 대속 자(요1:29)가 되셨다가, 제3일에 부활하실 것을 구약 전체에서 미리 예표로, 모형으로, 그림자로, 본보기로, 심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얼마나 자상하시고 배려심이 깊고 넓고 높고 긴 분이신지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 창세전 디자인대로, 그가 신성을 완전히 비우시고(빌2:7), 100% 인자(the Son of Man, 요3:13)가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마27:50), 제3일에 부활하셨습니다(마28:1-6). 빈 무덤이었습니다(마28:6; 눅24:12). 600여명에게 부활하신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고전15:1-8). 40일 지내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이 세상 7,000년 창조목적학교와 그 구조와 5번의 지상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행1:3). 5번의 지상사명이 순서대로 이러합니다. (1)눅24:47, (2)막16:15, (3)마28:19-20, (4)요20:21, (5)행1:8 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주후30, 행1:9).

 

그후 25년, 바울에게 부활에 관한 새로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실현되었지만, 장차 예수님 재림 때, 신부후보생들도 부활한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7,000년 창조목적학교 폐교 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7,000년 창조목적학교기간 학생으로 살다가 3층천 낙원으로 간 사람들)도 잠자던 육이 부활하여, 낙원에서 내려오는 자신의 혼, 영과 결합하여, 육혼영이 결합된 온전한 영적 인격체로 폐교 식에 참석한다는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이때 바울이 예수님께서 이 창조목적학교를 아버지께 바치는 성대한 환희의 축제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메시지로 받았습니다(주후55, 고전15:23-24; 히12:2). 자세한 내용은 지난주일 부활절 설교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12번 '이스라엘 시리즈'를 공부했습니다. 앞으로 계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부활절을 기해서, 우리가 '부활 신학'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성령님이 저에게 감동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시리즈'는 잠깐 멈추고, 이번 주일부터 몇 주간 '부활 시리즈'를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 후 '이스라엘 시리즈'를 이어서 계속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며 주실 말씀을 기다려 봅시다. 저를 위한 기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국내외적으로 온갖 분야에서, 예수님의 재림 전, '두 짐승'(계13:1-18) 세력들이 일으키고 있는, 각종 '산고들'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 힘든 산고들을 잘 이기며 견디도록(마24:1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와 자비와 평강으로 옷 입혀지고(고전1:3; 딤전1:2),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행1:8), 마지막 때 추수 꾼 사명 다하므로 해서, 들림받는 예수님 신부로(마24:37-25:46),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계19:7-10) 될 뿐만 아니라,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계20:4)하며, 신천신지에서도 왕 노릇(계21:24)하는 복된 자 되시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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