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강. 빌립보서1장6절-11절, 의의 열매로 가득할 지어다

변명섭 2022. 1. 29. 16:05

빌립보서 4강. 의의 열매로 가득할 지어다(빌1:6-11) 2000년 말씀
오늘 본문말씀은 빌립보서1장6절부터11절까지입니다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하나님! 2천 년 전에 사도바울을 통해서 빌립보교인들에게 편지하신 그 말씀을 이 시간 상고합니다. 지난 세 번을 통해서 사도바울에게 주셨던 말씀을 저희들이 상고했습니다. 오늘도 의의열매가 가득할 지어다. 라는 제목으로 빌립보서강해 네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성령님이시여 저희들에게 오셔서 저희들의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악의 영들이 우리마음을 조금도 지배하지 못하게 성령님께서 직접 우리머리부터 발끝까지 운행하시며 우리가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도록 하시고 내 속에 있는 모든 의심하는 것이나 더러운 것들을 다 제거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옥토가 되어서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인간은 심리학자들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자기중심적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사람은 잘했다고 칭찬을 받으면 사람이 그 속에서 에너지를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정을 해주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겁니다. 어린아이들도 똑같습니다.
심리학자들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잘 못하는 아이도 너 참으로 잘한다.
재는 괜찮아 이런 말만 계속해주면 그분들의 실험에 의하면 아이큐가 20점 정도는 올라간다는 겁니다. 그만큼 내속에 있는 에너지가 이렇게 발산 되어가지고 새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이 씨가 되는 겁니다. 
이 부분이 우리가 상당히 약합니다. 우리는 유교 문화 속에 있기 때문에 유교는 마귀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율법이라는 자기의 법속에 집어넣어서 법테두리에서 벗어날 때는 그 사람을 아주 깎아내리고 욕을 하고 제한시키고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적으로 이렇게 봐도 훈련을 시키는 방법 중에서도 전문가들은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는데 하나는 뭐냐면 가점주의라고 그럽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감점주의라는 말을 씁니다. 감점이라는 게 뭐냐면 그 사람이 특별한 의도적인 실수가 없는 한 항상 잘못해도 칭찬해주는 겁니다. 
격려해주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라납니다. 요즘 경영학에서도 선진국은 이 방법을 벌써 도입한지가 상당히 오래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못하는 사람들을 못한다, 못한다 하지 않고 너 할 수 있어 그리고는 자꾸 이렇게 격려해주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라난 사람들은 잘한다고 칭찬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됩니까? 칭찬받고 자란 사라들은 남을 칭찬해주고 사랑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감점주의의 훈련방법은 뭐냐면 우리가 계속 받아왔던 겁니다. 
잘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이 없고 조금 뿌득한 부분에 대한 것은 들어 내어가지고 이렇게 비판을 하고 야단을 치는 겁니다. 우리자녀들에게 이렇게 하잖아요. 정말로 회개하세요. 절대로 공부잘하라고 소리 질러가지고 자녀들이 공부 잘 하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더 못합니다. 그리고 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왜냐면 그 속에 있는 에너지가 발산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자라나면 불평이 많은 사람이 되고 남을 긁는 사람이 되고 이렇게 성품이 왜곡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겁니다. 
우리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형상대로 지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감정주의를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지만 우리피조물들을 통해서 그분은 칭찬받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너희들 나를 찬양하라고 그럽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기 전30분 동안 뭘 하십니까? 그분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 드리고 고맙다 그러고 예수님이 나의 주라는 고백을 자꾸 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분이 기분이 좋아가지고 자기가 주고 싶은 것을 부어주십니다. 그러니까 그걸 꼭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개인기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을 드리면서 주님 앞에 주님이 위대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영광 받으십시오. 그냥 그분에게 따리를 붙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따리를 붙이는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십니다.
우리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가 확 죽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절대로 남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마귀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에너지가 죽게끔 만들어 놓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학문에서 나오는 이야기나 경영학이나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소리입니다 그분들의 그 지혜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온 겁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부분이 가장 큰 겁니다.
사도바울은 본래 율법주의자인데 이분이 이 사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편지들을 보면 어떤 교회에다가 편지를 썼을 때 성령님은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그 교회에 대한 칭찬을 먼저 합니다. 본론 말씀을 하시기 전에 칭찬을 먼저 하게 합니다. 그래서 감사하다 너희들 정말 특별한 아이들이구나. 이렇게 해서 계속 올려 줍니다. 그래놓고는 하고 싶은 말을 하십니다. 지난시간에도 제가 잠깐 비추었잖아요. 그래서 지난시간까지 우리가 사도바울의 칭찬의 말씀들 처음에 감사의 말씀들이 주욱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간구하며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 안에서 너희들이 나와 교제하는 파트너가 되었단다. 하면서 이분들을 추겨 올려줍니다. 
위로해주는 겁니다. 이방을 우리가 잊지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어디나 다 대입이 됩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어머니들 이제 집에 가서 자녀들에게 한 마디라도 매일 한 번씩 칭찬해주세요 
오늘 본문말씀6절부터 하시는 말씀도 계속해서 칭찬하시는 장면입니다
첫째 칭찬이 뭐냐면 6절에 보면 애들아 빌립보교인들아 너희들 나를 위해서 착한 일을 너무나 많이 했단다. 그러는 겁니다. 이분들이 무엇을 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착한 일을 많이 했단다.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착한 일의 내용을 어떻게 했는지를 제가 잠깐 말씀을 드릴께요. 어떤 착한 일을 했길래 이렇게 말씀하시느냐 이겁니다. 어떻게 하느냐면 첫째 바울이 감옥에서 또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도 복음을 전하면서 고독했습니다. 핍박이 있었습니다. 
소외감이 있었습니다. 궁핍이 있었습니다. 가난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이분들은 바울을 위로하는 겁니다. 이것이 첫째 착한 일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이분들은 신실했습니다. 바울에 대해서 마음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헌금이 필요할 때 헌금을 주면서 나중에 자기네가 바울에 대한 이상한 소리를 들어도 변하지 않고 그분들은 계속해서 뒤에서 도왔습니다. 그런데 신실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교회나 고린도교회는 헌금을 하고도 나중에 바울을 씹었습니다. 왜냐면 이분들은 변하는 사람들인 겁니다. 환경을 보고 그래서 사도바울이 볼 때 성령님은 너희들이 착하다는 겁니다. 변하지 않는 그러한 일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바울에게 좋은 사역의 동역 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게 뭐냐면 사도바울이 7절에 보면 나옵니다. 나의 메임과 내가 지금 감옥에 들어 있는 것과 그다음에 나의 변명함과 확증함에 나의 동역자라는 겁니다. 제가 조금 있으면 설명해드리겠지만 감옥에 들어간 것도 사람들에게 가서 그분이 왜 감옥에 들어갔는지 아느냐하고 이야기하면서 그다음에 그분이 전한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다니고 복음에 대한 모든 것이 확신하면서 바깥에 말하고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사도바울이 어려울 때 모든 사람에게서 소위 오해를 받고 있을 때도 끝없이 변하지 않고 동역 자 역할을 했다는 이런 의미에서 착한 일입니다 그렇게 했다고 칭찬해주는 겁니다. 
특히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역 자 역할을 했느냐 여러분들 한번 보세요.
제가 다시 아까 7절을 봤지만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하고 확증함이라 그랬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매임이라는 말은 영어로 인 프리전먼트 (in
prisonment)라고 그럽니다. 소위 감옥에 들어가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분명히 이렇게 사도바울이 편지 한 것을 보면 뭐가 있냐면 주위에 많은 분들이 저분이 뭐가 잘 못 했길래 감옥에 들어갔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을 비평하고 또 그분에 대해서 비협조적이었습니다. 그런 그룹들이 주위에 많았다는 겁니다. 교인들 중에도 많았고 교계에도 있었고 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유대인들 사이에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 보면 그런 식입니다 첫째 교회 밖에 그룹들이 그런 그룹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매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그래서 그 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변명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변명이라는 말은 헬라말로 아포로기아(ajpologiva)라는 말인데 이 말은 뭐냐면 법정용어입니다 교회 바깥에서 바깥그룹에서 어떤 핍박이 올 때 변명하는 것을 법정에서 변호하는 것을 아포로기아(ajpologiva)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다른 그룹 속에서 오는 것 그래서 원어를 보면 깊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빌립보교회가 변명을 해주었냐면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이 감옥에 들어간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분들이 뒤에서 또 놓는 일을 했잖아요. 게다가 소위 이방인 로마정권을 가진 분들이 그분들이 이렇게 집어넣은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이렇게 감옥에 들어 있는 것을 빌립보교인들이 변명을 해주면서 동역 자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있는 그룹들이 이분을 또 비난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말은 복음을 확정지었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데바이오시서라는 말로 확정이라는 말인데 그게 뭐냐면 안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을 이해시켜서 저 분들이 영적으로 더 성장되게 하는 그러한 의미입니다. 예컨대 교회 안에 있는 분들이 아! 저사람 이상한 율법보다는 은혜를 더 전하는 사람이다 우리와 심하게 다르다 그러니까 감옥에 들어간 것이 잘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 단어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다음에 아! 저분이 우리보다 똑똑한 사람인데 저분의 파워가 점점 이방인사역에서 넓어지니까 질투가 나가지고 또 이분의 사역을 이분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뒤에 와서는 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저 사람은 저사람 되로 나와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의식이 없는 겁니다.
저 사람이 우리주님을 섬기다가 저렇게 들어갔구나. 라는 그러한 아쉬워하는 마음이 없었던 겁니다. 이것이 오늘날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바울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예루살렘에 있는 열두제자들이 그분들에게 기도로 돕고 물질로 돕고 격려해주고 하는 말이 성경에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오늘날도 그랬지만 과거2천년 동안에 사도바울과 같이 정말 이방을 위해서 복음이 안 들어간 곳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교계의 매인그룹들에서 이런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교계라는 것은 파워가 생기면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성경말씀과 떨어져버립니다.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어 버립니다. 사람에게 정치성이 들어가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누군가 볼 수 있는 능력을 분별력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외로웠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감사하는 겁니다. 여기에 아주 소수의 조그만 교회 빌립보교회 이 사람들이 사도바울의 편이 되어가지고 예들아 너희들 착한 일을 하는구나. 고맙다 그래서 예수의 심장으로 내가 너희들을 보기를 사모한다. 얼마나 편안하지 모릅니다. 주님은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에서 하시는 말씀이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다툼이나 허영으로 주님을 섬기지 말고 자기중심으로 섬기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면 이분은 지금 바깥에 교계 안에 있는 딴 분을 보니까 왜 이분을 돕지 않느냐면 다툼이라는 게 있습니다. 내 교회 내 교단 어떤 나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그것이 다툼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협조를 안 하는 겁니다. 공동체의식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종이 이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가서 어려움을 당하는데도 여기에 대한 위로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로 말하면 잘 되었다 이렇게 까지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때만이 아닙니다. 이게 사람의 본성입니다
오늘날도 있고 과거2천년에도 계속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겁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부탁하시냐면 빌립보교인들아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한 그분이 누구냐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지만 어떻게 빌립보교인들아 너희들이 그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는 겁니다. 자기중심이 아니고 이타적인중심 남을 배려하는 마음 내 유익을 찾지 않는 마음 이런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있느냐면 저는 이 빌립보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사람들이 되었구나. 이게 은혜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이해하고 아! 주여 나는 빌립보교인들처럼 되어야지 또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지 이게 내가 잘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지가 않습니다. 제가 주님을 섬겨보니까 이런 은혜를 깊이 체험하지 않으면 주님을 섬기면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면 다툰다는 말이 뭐냐면 자기이기주의 때문에 다투는 겁니다. 남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그분과 내가 한 마디하고 내 이익을 찾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나 또는 주님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 다툴 때는 그 속에는 깊이 깔려 있는 것이 뭐냐면 이기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에 예수님 중심이 아니고 예수님이 어떻게 보실까 그것이 아니고 나의 이익 때문에 다투는 겁니다. 다툴 때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투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보실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그럽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님이 그분을 통하여 말하는 겁니다. 너희들의 이 영적인 유산이 이 착한 일이 주님의 재림 까지 계속되기를 간구하노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빌립보교회는 7세기 때 교회가 없어져버렸습니다. 무슬림이 그 지역을 다 점령하고는 빌립보교회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어떻게 됩니까? 분명히 주님이 오실 때까지라고 그랬는데 교회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교회건물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영적유산이 이것은 주님 재림 때까지 계속해서 스며들며 전수되기를 사도바울이 요구했던 겁니다.
그 영적유산을 저희들도 받기를 소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깨달음 속에서 그분들에게 내가 예수의 심장으로 너희들을 무척 사모한다. 그랬습니다. 
참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겁니다. 왜냐면 사도바울이 사방을 둘려보아도 이런 이타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만 깔려 있지 정말 주님이 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겁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계셨을 때 주위에 많은 제자들이 바깥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로마교회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럴 때도 보니까 그 안에서 전도를 하는데 두 가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냐면 정말 주님을 위해서 전도하는 분이 있느냐면 자기의 이기주의적인 욕망을 위해서 서로가 다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그리스도만 전파되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즘 교회들이 이것 봐라 싸움해서 전해도 예수님이 전파되니까 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상급이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분들에게 이 착한 일을 하는 너희들아 고맙다. 너희들 보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렇지만 주님은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여기에서 끝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이것은 성숙된 그리스도의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하나의 단계의 시작입니다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것이 이기주의적인 태도가 아니고 이타주의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정말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첫째 단계가 이런 마음씨를 가져야 됩니다. 예수중심으로 그다음 단계가 무엇이냐면 착한 일 다음에 9절에 나옵니다. 너희 상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더 풍성하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이게 두 번째 단계입니다 
여기 보면 첫째 단계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냥 예수님을 믿는 단계입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서로 싸움하며 그 안에서 서로 자기이익을 위해서 지내는 단계입니다 그 단계에서 한 단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순진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하는 단계가 빌립보교회교인들처럼 이게 두 번째 단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이 두 번째 단계에서 또 한 단계 넘어가는 것이 뭐냐면 우리가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풍성해지라는 겁니다. 
이것이 그 다음단계입니다 지식이라는 말은 보통 성경에서 그노시스(gnoosis)라는 말로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 빌립보에서 말하는 지식은 그노시스(gnoosis)라고 쓰지를 않았습니다. 뭐냐면 에피그노시스(Epignosis)에피라는 말을 앞에 붙었습니다. 이게 뭐냐면 예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렇지만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툼이 있고 서로 그런 것이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더 깊이 생활에 적용되는 지식입니다 지식을 풍성하게 가지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모든 총명을 가져라 그랬습니다. 이 총명은 우리가 쉬운 말로 하면 통찰력입니다 영적분별력 통찰력 이 단계까지 올라와야 된다는 겁니다. 첫째는 그냥 일반그리스도인입니다 두 번째는 빌립보교인들처럼 하나님의 종들과 이방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종들과 동역 자가 되어서 기도해주고 물질 바치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단계가 두 번째 단계라 그랬습니다. 이 단계에서 더 올라가면 무슨 단계입니까? 지금 제가 말하는 에피그노시스(Epignosis)하나님의 깊은 지식을 생활에 적용하는 지혜입니다
이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통찰력 총명을 달라고 모든 부분에서 세상을 보는 통찰력 사회조직을 보는 통찰력 꼭 하나님의 말씀만이 아닙니다. 모든 부분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달라고 그러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됩니까? 영적으로 더 깊어지고 깊어지기만 하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사람이 아주 좁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큰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지고 길어져야합니다. 큰 그릇이 되려면 베일 처음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지고 길어져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것을 에베소서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겁니다. 이게 큰 그릇입니다 그 중에 하나 만 부족하면 사람이 좁아집니다. 자칫하면 애꾸눈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영적으로 많이 안다고 그러고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보면 깊이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높이와 넓이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길이가 없는 겁니다. 높이와 넓이는 있는데 알고 보니까 길이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이라는 것은 역사성입니다 오늘부터시작해서 앞을 볼 줄 알아야 되고 그다음에 지금부터 시작해서 과거를 다 볼 줄 알아야 되는 겁니다.
과거에 모든 역사들을 한 눈으로 보면서 그것이 오늘에 어떻게 적용이 되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을 보는 역사관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처럼 신학을 하다 보면 이런 부분이 부족한 겁니다. 그래서 이런 큰 그릇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래서 나이30대가 되어가지고 신학대학에 가서 PHD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욕을 합니다. 세상에 가서 더 일반학문을 공부하고 신학교4년만 다니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사업하다가 망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다 해보고 사람들에게 핍박도 받아보고 배반도 받아보고 망해가지고 빈털터리가 되어보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한 다음에 말씀을 보면 그 말씀에 깊이가 보이고 높이가 보이고 넓이가 보이고 길이가 보이고 그러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적어도 나이50이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50이 안되면 그런 말 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되어도 아직도 멀었습니다. 젊은 사람들 조금 안다고 까불지 마세요. 그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사도바울이 10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가져라 분별이라는 말을 이 사람들이 도키마제인(dokimazein)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도키마제인(dokimazein)라는 말은 뭐냐면 귀금속을 불에다가 집어넣어가지고 진짜와 가짜와 분별할 때 그런 의미에서의 말입니다 시험하고 조사하고 그래가지고 동전도 가짜와 진짜를 이렇게 분별해서 골라내는 그런 말이 분별하는 이 말입니다 연단이라는 게 훈련이라는 게 지혜가 이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뭘 하려고 그러냐면 지극히 선한 것이라 그랬습니다. 지극히 선한 것이라는 말은 디아페레인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 말은 다르다. 라는 뜻입니다. 
다른데 어떤 의미에서 다르냐면 귀한 것과 천한 것을 구별하는 그런 의미에서 다른 것을 표현할 때 이런 말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귀한 것을 볼 줄 아는 분별력 이걸 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대단히 깊은 말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지식으로 그노시스(gnoosis)가 아닌 에피그노시스(Epignosis)를 가지고 총명을 가지고 있는 다음에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는 게 그리스도의 깊은 비밀을 분별하는 겁니다. 그 비밀과 그 비밀이 아닌 것들과 분별하는 분별력을 가지라는 겁니다. 대단히 깊은 단계입니다 
말씀을 딱 봐도 이 속에서 깊은 그리스도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그러한 분이 되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이 단계까지 가지지 않고 첫 단계 두 번째 단계에서 하나님말씀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레벨이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해주면 이해가 됩니다. 이 과정을 격지 않고는 여기까지 오지를 못합니다.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삶에서 항상 과정이 있습니다. 그다음 단계가 뭐냐면 9절10절에서 제가 설명하면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그랬습니다. 진실이라는 말은 에일리크리네이스 (eilikrines)라는 말로 에일리(eili)라는 말과 크리네이스(krines)라는 두 개의 말이 복합된 말입니다 에일리(eili)라는 말은 에일레라는 말에서 이말이 뭐냐면 태양의 온기와 태양의 빛이 막 비추어주는 그런 의미입니다 
크리레라는 말은 판단한다.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면 햇볕이 쫘악 조명을 해가지고 그냥 티가 없이 보이도록 아주 밝게 들여다보는 그 말을 진실이라 그랬습니다. 여기 보면 진실에 진실하여 이 말은 다름 말로 표현하면 아주 순결해지는 겁니다. 순수해지는 겁니다. 이 단계에 오면 분별력을 가지니까 하나님의 뜻을 다 가지니까 이제는 세상에 욕심이 없어지고 예수그리스도로만 욕심으로 꽉 차있고 잡다한 것이 없어지는 그 단계입니다 딴 욕심이 없어지는 순수한 단계 이 단계까지 가는 겁니다. 이 단계는 젊은 사람은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제가 지금 논리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젊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순수해지면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허물없는 자가 되어라 그랬습니다. 거침돌이 되지 않는다. 순수해지고 깨끗해지고 허물없는 자가 되면 저 사람을 보면 내가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아 그래서 주님께 자동적으로 이끌러오는 사람입니다 소위 빛의 자녀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실은 빌립보교인들보고 성령님이 사도바울을 통해서 이렇게 까지 가라는 겁니다. 너희들 착한 일을 하는 그 레벨에서 머물지 말고 사도바울이 너희들 나한데 얼마나 착한 일을 많이 하였느냐 거기서 머물지 말라 그저 기도해주고 물질 내고 격려해주고 거기서 머물지 말고 영적으로 더 성숙해져서 갈 수 있는 그릇이 된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결론적으로 그러는 겁니다.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여기 까지 갈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들이 맺어진다는 겁니다. 
이게 쉽게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렇게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면 그다음에 결론으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분의 기도가 이것입니다 너희들 이렇게 되었을 때 너 네들이야 말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자들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고 그분을 찬양 드리는 일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아닙니까? 
이렇게 까지 되려면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계를 어떤 분들은 영적으로 1학년 때 이 다섯 단계를 주욱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초등학교6학년 될 때 또 같은 다섯 단계를 또 다른 내용으로 다시 한 번 가는 겁니다. 그러면 성숙되는 겁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 단계를 가면서 대학생정도 되고 영적으로 나이20-30되어서 장가가고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영적으로 장가가고 시집가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자녀를 많이 낳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주님을 신랑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단계에 갔을 때는 우리가 많이 자녀를 낳는데 어떤 분들은 소녀 소년기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숙하지 않았는데 전도해서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성숙한 아이로 자라나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싸움질 잘하고 뭘 잘하고 질투도 많고 말도 잘하고 교회에서 말썽부리고 나가서 전도하면 사람을 잘 끌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양육하면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사람을 만들어 놓습니다. 왜냐면 성숙하지 않는 사람이 아이를 낳아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이 그룹 속에서 성숙한 사람이 많아지면 그런 사람들이 들어와 가지고 성숙해질 수가 있습니다. 
제가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빌립보교인들에게 이런 단계적으로, 단계적으로 성숙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우리 AMI교회 교인들도 빌립보교회교인들 처럼 이렇게 되어야 되겠지요. 그래야지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복이라는 개념이 이런 측면에서 복입니다. 
제가 서론적인 측면에서 지금 네 번을 설교하는 겁니다. 다음시간에는 그렇지 않는 빌립보교회문제점들을 설명해주는 게 있습니다. 2장에 들어가서 보면 쫘악 나오는데 그래서 제가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첫째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착한 일 하기 전에 구원의 단계고 그냥 광야의 크리스천입니다
그냥 명목상크리스천들입니다 교회에 그냥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이 레벨에서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 착한 일을 하는 겁니다. 빌립보교회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실은 많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방사역을 하는 이 사역 속에 동참해서 기도와 물질과 격려와 감사로 모든 부분에서 동참하는 자들이 이 레벨에서도 많지가 않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단계가 무엇입니까?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풍성해지는 때를 따라서 점점 발전하는 풍성해지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주여 나에게 지식을 구약에서는 적용력을 명철이라는 말로 썼습니다. 영어로는 언드스탠드(understand) 거기서 하나 더 나가서 적용으로 지혜까지 들어가는 겁니다. 위지돔(wisdom)입니다
적용력입니다. 이것 달라고 기도하면서 매일 매일 내가 이런 부분에서 성장되는 겁니다. 그다음 단계가 무엇입니까? 분별하는 단계입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변별력 그다음 단계가 아주 순수해지는 겁니다. 
다른 욕심이 없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의의 열매 의의라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성령님입니다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열매가 나에게 주렁주렁 맺히게 되고 그렇게 맺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고 찬송을 받으시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복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기도고 바람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에게 특히 사랑하는 자기 교인들에게 이렇게 간구하고 밤낮없이 기도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들의 목회자로써 우리교인 모두가 이런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제가 기도해드리기를 원하는 겁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5QIkMfyTC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