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6강. 너희를 위하여 유익함이라(빌1:19-26)2000년 말씀
오늘 말씀을 같이 봅시다. 빌립보서1장19절부터26절까지입니다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오늘은 빌립보서강해 여섯 번째로 너희를 위하여 유익함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강해 식으로 여러분들과 이 말씀을 나누려고 그럽니다. 이렇게 제자들을 훈련시켜놓고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 안에서 투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서로 물어뜯고 경쟁심을 가지고 사도바울을 피곤하게 하는 겁니다.
은혜와 평강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뭐냐면 빌립보교인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빌립보교인들에게도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사도바울의 편지를 보면 너희들이 하나가 되어라 하는 것을 보면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그러시는 겁니다. 나! 하늘의 비밀을 아는데 나는 그냥 죽고 싶은데 그러면서 주님 절 데려가시고 제 육신이 이 땅에서 살아야 무엇 합니까? 이제 할 일도 어느 정도 했는데 나는 죽는 게 훨씬 나에게 유익하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으면 빌립보교인들아 너희들이 손해를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들의 유익을 위해서 내가 사는 길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불편함의 동기는 어디서 오느냐면 투기와 질투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분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주기를 내가 사역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첫째 동기를 말씀해주는 겁니다. 뭐냐면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 위해서 나는 지금 사역한다는 겁니다.
이 말이 뭐냐면 예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구원주시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감사드리고 경외 드리고 이분 때문에 이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내가 지금 사는 것이고 죽는 것이지 투기와 분쟁으로 사역하다보면 이분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이분의 이름이 더 땅에 떨어진다는 겁니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하려면 내 마음 속에 동기가 뚜렷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투기와 분쟁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투기가 있고 질투심이 있고 할 때는 나를 점검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나를 위해서 주님사역을 하는구나. 그러니까 이것을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여 주님만 존귀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니까 이분은 이것이 자기 제자들에게 없었기 때문에 오는 괴로움이 대단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니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내 속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가 존귀함을 받는 것이 나의 삶에 나의 사역에 목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잖아요.
사도바울도 그러는 겁니다. 주여 나의 주님이시여 오늘 찬송 중에서도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진리시고 나의 길이시고 나의 삶의 전부가 그리스도기 때문에 나의 사역의 목표가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 그리스도의 라이프스타일 이것이 나의 사역에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투기와 분쟁 속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다시 재확인시켜주는 겁니다. 이런 사역의 동기를 가지게 되면 우리주님이 나를 보면 나의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나의 동기가 우선 뚜렷하면 나의 부족한 부분이 있는 속에서 주님의 마음이 나를 보면 편애 하십니다. 왜냐면 제가 동기가 분명하구나. 이 동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내가 지금 주님을 섬기는 동기가 뭐냐면 그런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의 성품을 조금씩, 조금씩 닮아가게 됩니다. 왜냐면 매일 매일 나의 동기를 점검하거든요. 저도 그렸습니다.
주여! 제가 이 사역을 하는데 내 동기를 매일매일 점검시켜주세요.
황 목사가 내 이름을 넓히기 위해서 높이기 위해서 내 명성 때문에 나의 이기주의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지 않았나? 하는 내 자신을 매일 점검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십자가에서 매일 죽는다는 이야기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 내가 이것을 하지 않는가? 특히 여러분들은 이런 부분에 시험이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서 있는 저 같은 사람은 이 시험이 더 큽니다. 황 목사가 자기 이름 때문에 하지 않는가? 자기가 인정받기 위해서 하지 않는가?
교회성장도 그래서 하지 않는가? 우리 모든 사역의성장도 그래서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저는 주님에게 주여 제가 그런 마음이 있으면 제 마음을 조금 바로잡아주세요 주님 앞에 그런 긴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기도를 주님 앞에 하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핵심적인 기도 나를 점검하는 그래서 그 사람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는 어디서 아느냐면 투기하는 마음이 있는가? 분쟁하는가? 안하는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평강이 없고 어떤 부분에서 나와 조금 차이가 있을 때는 투기하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질투하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분쟁으로 까지 이끌어 갑니다. 이분에 제가 중국에 가서도 우리 동역 자들을 보면서 오! 주님 저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저렇게 노력을 하고 하는데 저분들이 하는 짓들을 보니까 어린아이들입니다.
상급 없는 어린아이 짓들을 저렇게 하고 있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세요. 어떤 때는 이런 불쌍한 마음이 들어가다가도 호통을 쳐주어야 되는 겁니다. 이놈의 자식들이 하고 완전히 바보 같은 짓들을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제는 소리를 질렸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겁니다. 황 목사님이 항상 우리에게 젠틀하게 하셨는데 너희들 내가 소리 지르는 것을 봤느냐 2년 동안 같이 하면서 그러니까 못 봤어요. 그러는 겁니다. 내가 왜 이렇게 소리 지르는 것인지 아느냐 너희들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고 중국선교의 동기는 그리스도의 뜻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내 뜻이 펼쳐나가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 혹시 제가 그런 모습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저 앞에 와서 목사님 왜 말씀은 그런 식으로 해놓고 목사님 행동은 이런 식으로 합니까? 하고 말하지 마시고 먼저 위해서 기도하세요.
아! 주님 우리 황 목사님 이중인격자입니다 저 사람이 말해놓고는 알고 보니까 자기영광을 위해서 합니다. 위해서 기도를 먼저 하세요.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먼저 말하지 마세요. 그러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나만 알고 기도하세요. 우리가 중국 선교하는 동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 있는 현지의 한족선교사들도 한족지도자들을 이렇게 보면 우리보다 조금 덜하지만 그 속에 자기네들끼리 그런 게 있습니다. 그 동안 하남 성에 총 지도자였던 형제가 나이가62세 되는 양 선생으로 이번에 가니까 지도자가 바뀌었습니다. 이 사란이 옛날에 공산당 정치훈련소에 높은 간부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주님을 만나서 깨어나서 이것을 하는데 이 사람이 감옥에 가면서 까지 밀어 붙어가지고 이 만큼 크게 이루어 놓은 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자기가 몸이 따라가지 못해서 이번에 핵심지도자 다섯 명을 모아놓고 나는 조금 쉬운 걸 하겠다. 재정 담당을 할 테니 너희들 중에 대표를 하나 골라라 그래가지고 젊은 사람 하나가 지도자가 된 겁니다.
이 사람은 안디 지역이라는 곳에 교회를 천개를 맡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이 사람이 투표를 해가지고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아주 뜨거운 겁니다. 자기가 약20년 전에 간질병이 걸려 가지고 하루에도 간질을 다섯 번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만나가지고 이 간질병이 싹없어지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되니까 예수님은 내 생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와서 찬양을 하고 박수를 치고 춤을 치는데 완전히 미친 사람들처럼 춤을 치는 겁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여러분들도 한번 가서 보셔야 됩니다.
이 사람들에게 제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성숙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그런데 우리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그 부분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질투하는 마음이 우선 없습니다.
자기네들끼리 지도자도 자기네가 봐서 밑으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밑에 앉아있습니다. 그렇게 당당한 지도자가 저 밑에 가서 앉아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분들에게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말씀을 가르쳐주는 그것이 절대적이 아닙니다. 이분들에게 제가 삶을 통해서 가르쳐주어야 되는데 그러니까 우선 제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이분들을 대해야 되겠다.
힘든 부분 중에 하나가 음식이 힘듭니다. 그런데 음식은 우리 입에 맞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음식 만드는 것을 보면 음식을 먹지를 못합니다.
부엌을 보면 부엌에 석탄을 떼는데 창문이 두 개밖에 없습니다. 석탄을 떼니까 들어가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석탄연기 새까맣게 사람얼굴이 안 보이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 칼질하고 모든 음식을 장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기에 선풍기 하나 달아 놓고 석탄연기를 뽑아내는데 그 연기가 공부하는 교실로 들어와서 공부를 하지 못할 지경인겁니다
그럴 때마다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참아야 됩니다. 우리 식으로 저쪽으로 연기를 뽑으면 되지 바보같이 왜 이러나 하면 안 되잖아요. 제 말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참아야 됩니다. 비위생적인 부분도 참아야 됩니다.
말도 못하게 비위생적입니다 그기도 비가 많이 오는데 화장실 바로 옆에 돼지우리인데 닭이고 오리가 왔다. 갔다하고 돼지 냄새가 말도 못합니다.
무더운 여름에 화장실에 들어가면 소변이 온 바닥에 깔려있고 대변이 여기저기에 깔려있고 웬만한 사람은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용변을 보는 겁니다. 이걸 막을 방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서 이 사람들을 야단치면 안 되잖아요. 그냥 같이 살아야 됩니다. 같이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되는 겁니다. 보여주면서 이 사람이 자기네를 인정하고 자기네를 사랑하는구나. 이것을 보여 주어야 됩니다. 이런 조그만 헌신을 통해서 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또 사랑을 베풀어주고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분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내가 이런 것을 여러분들에게 보여 주면서 25절에 내가 이렇게 살아서 너희들에게 나타나서 내가 무엇을 보고싶냐면 너희들의 믿음의 진보된 것과 너희들이 나 때문에 기쁨을 가지고 있는 이것을 내가 보여주고 싶다는 겁니다. 그리고 보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자기가 너희들을 위해서 할 때는 사도바울을 위해서가 아니고 사도바울이 살아서 출옥을 할 때 이분들이 사도바울이 살아서 온 것을 보고 격려를 받고는 믿음이 더 진보되고 모든 것은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교인들이 영적으로 자라나는 모습에 관심이 있었던 겁니다. 이것이 소위 남을 배려해주고 이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저도 이것을 닮으려고 이번에도 중국 사람들의 믿음이 진보되고 이분들이 우리가 감으로써 기쁨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내가 양보해주고 내가 그분들을 위해서 내가 희생해주어야지 하는 그러한 마음 주님 제가 그런 사람들이 되게끔 저를 도와주세요. 나의 어떤 이기주의적인 목적이 아니고 우리의 선교기관이 커지기 위한 명성을 위한 인지도에 칭찬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래서 이것을 제 자신이 매일 다져나가는 겁니다. 그분들과 같이 앉아 있으면서도 다져나가는 겁니다. 이렇게 다져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허물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져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제 자신도 내 스스로가 발을 묽어놓고는 다지지 않으면 넘어지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내가 죽는 것이 나에게는 유익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뭡니까?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죽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너희들이 더 나를 위해서 자라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분은 이런 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기본적인 사역의 동기가 이걸 고급말로 하면 사도바울의 신학의 동기입니다 이렇기 때문이 이분이 20절에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겁니다.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담대함이 있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왜냐면 그리스도를 뿌리로 하는 담대함 입니다 그냥 담대함이 아닙니다.
어떤 오기가 아니고 마음이 아니고 헛된 용기가 아닙니다. 내가 깊이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역의 동기가 예수님 때문이고 사역의 목적도 예수님 때문이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어서 예수를 통해서 뿌리를 깊이 박고 있기 때문에 어떤 태풍이 와도 나는 넘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분이 지금 감옥에서 그러는 겁니다. 이분이 감옥에 있으면서 감옥가기 전에도 그랬고 소위 동료기독교인들인 제자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떤 비판이냐면 고린도교회나 데살로니가교회나 이런 교회에서 저 사람이 전하는 복음이 잘 못되었다 그다음에 또 하시는 말씀이 저 사람이 우리가 보내는 선교헌금을 가지고 이것저것 마음대로 쓰고 자기부인을 데리고 선교여행을 마음대로 한다는 겁니다. 우리헌금을 마음대로 쓴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9장에 그랬습니다. 내가 바나바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고 부인을 데리고 선교여행가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 다들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하는데 너희들이 왜 그러느냐 이런 말로 이분이 반문하는 것이 고린도전서9자입니다 이분은 교계 안에서 정치에 초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두제자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도 사도바울에 대해서 자 사람은 우리와 같은 그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받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핍박들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현장에 나가서 열심히 뛰었던 분입니다 특히 영적지도자들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소위 크리스천정치를 위해서 또는 위치를 위해서 같이 왔다갔다 하다보면 그쪽 그룹이 되고 이름은 높아지고 명성이 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영성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항상 두 가지 그룹들이 있습니다.
안 그러면 아예 그쪽은 생각하지 않고 복음전파에만 신경 쓰는 주님의 종들이 있습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외적인 압박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서 오는 압박 이런 모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분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그저 이름 없는 소위 주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분을 방문 왔지 명성 있는 분들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외로움 속애서 이분이 내가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며 나는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예수를 위해서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빌립보교인들에게 너희들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20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라는 겁니다. 사역에 동기를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재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풀타임전도사님들 또는 파트타입전도사님들 서로 마음이 불편해지면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는 겁니다. 주여 나의 사역의 동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인정받으려고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그것을 점검하세요. 교회마다 가장 어려운 것이 목회자들이 그러는 겁니다. 소위 부 목사님들 또는 전도사님들이 서로가 마음이 하나가 안 되어서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데 소위 그기에 지도자인 담임목사님이 제일 마음이 아프다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에 모든 영적분위기가 복잡해지고 어느 교회나 특히 우리한국교회를 보면 그것이 없는 데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한국교회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질투와 미움과 그 안에 보면 정말로 주님이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이 있습니다. 항상 자기가 양보하고 자기가 더 죽어주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 조직이 살아서 움직이는 겁니다.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이문제가 용해되는 예수 안에서 그러한 성숙성을 보여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 성숙성이 없어질 때는 우리가 아무리 나가서 주님의 일을 해야 본인에게는 큰 손해입니다 우선 나에게 평강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나중에 주님을 만날 때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너는 주위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대가를 받으라. 그래서 상급이 없는 겁니다. 상급이 있는 것처럼 내 것을 주세요. 하니까 너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단다. 그러면서 받을 게 없단다. 그러는 겁니다. 이게 제가 농담하는 게 아닙니다. 진담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의 상급을 빼앗기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으라는 게 이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상을 받으려면 내가 죽어야 됩니다. 이 사상에서 상을 받을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그게 힘듭니다. 힘이 들지만 하나님의 상급의 원칙을 매일매일 조금씩 따라가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다 안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주여 제가 이런 부분에서도 깨닫기 위해서 주님이 나에게 재확인 시키느라고 아무개가 나를 괴롭히는군요. 그래서 서로가 살면서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 때마다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나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내 마음에 불편함을 주시는군요. 이러면서 저 분 때문에 내가 배우는구나. 그러면서 저분을 그 상대방을 더 고맙게 생각되는 겁니다.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저분을 저렇게 하시는구나. 제 말을 이해하십니까? 사도바울에게 우리가 배울 게 뭐냐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철저하게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너희들이 더 잘되라고 내가 좋아하는 주님을 만나서 죽는 것은 안 하겠다는 겁니다. 이분이 표현하는 것은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유익하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너희들이 그러므로써 믿음의 진보를 더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진보라는 말은 지난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군대용어로 어려운 환경을 헤치면서 나가는 겁니다. 숲이 있고 돌이 있고 장애물을 헤치고 나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진보라는 것은 하나의 신작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분이 이렇게 사는 것은 왜냐면 어떤 의미에서 믿음의 진보냐면 바로 우리가 저분을 위해서 저렇게 물질과 기도로 했는데 저분이 만약에 죽었으면 주위에 사람들이 빌립보교회 사람들을 봐라 머리가 빈 사람들이야
저 사람이 저렇게 위하는 저 사람이 죽었잖아 그러니까 용기 툭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야 돼 그래서 너희들 앞에 나타나서 너희들이 나를 위해서 물질을 보내고 나를 위해서 저렇게 고통을 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살므로 사람들에게 봐라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므로써 봐라 좋은 일이 일어나는구나. 그래서 내가 꼭 살아서 너희들에게 믿음의 진보를 내가 한번 보여주고 내가 그렇게 해서 너희들이 더욱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 믿음의 진보입니다 그리고 그랬잖아요.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선사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그랬습니다. 예수 안에서 자랑이 더 풍성해지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뭐냐면 자기네가 기도해왔던 하나님의 종이 이렇게 우리기도응답으로 살아서 이것 봐라 저분이 우리 앞에 오셨잖느냐 그러니까 이분들이 자랑거리가 생겼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나는 죽어야 되고 나는 죽으면 훨씬 더 좋은데 빌립보교인들에게 내가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내가 살아서 저 사람들에게 힘을 더 주어야지 이런 마음이입니다 이 마음을 우리가 가지는 게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빌립보교인들의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을 보면서 그럽니다.
사도바울이 지금이 유명한 인사지만 그 당시는 이름도 없고 약한 자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고 그분 편에 더는 사람은 소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약한 자 편에 서서 그분이 받아왔던 오해들 그분에게 주시는 편견들 이간질 질투심들 교회 안팎에서 그런 소란 속에서도 빌립보교인들은 약하고 불 품 없는 인기 없는 것을 찾아서 관심을 두는 겁니다. 이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조금 괜찮은 사람만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아닙니다. 약한 사람을 찾아서 저분이 정말로 억울하게 오해를 당하는구나. 교회 안에서도 우리가 문제가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런 오해를 당할 때 그분 편에 들어주는 같이 욕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부분에서 볼 때 사도바울의 생각은 말할 것도 없이 남을 배려하고 약한 자를 특히 생각해주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간단하게 드리겠습니다. 사도바울이 다시 말했잖아요. 내가 육신이 강한 것이 너희들을 위하여 유익하다 이 말 자체를 가만히 상고해보세요. 이분이 그 말을 할 때 그 속에 뭐가 들어 있습니까? 빌립보교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분들이 더욱 믿음의 진보가 있어서 더욱 열매를 잘 맺도록 용기를 주는 격려를 주는 그래서 저 사람들이 살아서 더 기쁨을 받아서 선한 일을 더 많이 하고 이방인선교를 더 할 수 있도록 힘을 주기 위해서 이분이 그러시는 겁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도록 이것이 사도바울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관심은 뭐냐면 본인이 출옥을 해서 본인의 출옥을 통해서 이분들이 힘을 받아가지고 그래서 더욱 그리스도의 성품인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서 그 안에서 성장되어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믿음의 진보를 맞보면 그러한 믿음의 진보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그 성품을 전해주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더 구체적으로 다음시간부터 말씀드리지만 빌립보서2장에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그랬습니다.
서로질투하고 투기하지 말고 내가 지금 말한 대로 아무 일에 던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 겸손한마음을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낳게 여기고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그리스도는 너희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분은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가 나중에 부활 하였잖느냐.
그러니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겁니다. 우리주님이 그러한 마음을 가졌잖느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분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나는 역할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배려하는 마음 그래서 예화를 더는 것이 2장전체입니다. 너희들은 나를 봐라 내가 그 중에 하나의 예다 그래서 나를 닮으라. 그것뿐이냐? 내 제자인 디모데를 봐라 똑같이 나처럼 그렇게 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대표인 에바브로디도를 봐라 나를 위해서 너희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헌금을 들고 빌립보에서 산과 물을 건너서 나를 격려해주기위해서 왔다가 쓰려져가지고 다 죽게 생겼잖느냐 주님의 은혜로 지금 살아났지만 다들 봐라 너 네들 주위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은 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란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기독교인들이 왜 존경을 받지 못합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이 내가 잘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가 배워왔던 소위 이기주의사고방식입니다 이게 마귀입니다 마귀, 그래서 주님은 말세의 징조 중에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내 중심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살아 왔습니다. 교육도 그렇게 받아 왔습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그런데 자본주의가 들어오기 전에 서양문화는 소위 기독교윤리사상 속에서 정립된 사회입니다. 그래서 백인들은 아직도 보면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그 속에 잠겨 져 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보면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고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고 항상 잌스큐즈미 명치유신 때 일본사람들을 우리는 왜놈이고 야만인입니다. 이 사람들이 영국에 가가지고 교육시스템을 배워오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배워오면서 이 마음을 배려하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일본이 그래서 신사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일본에 가보세요 그곳이 마귀의 나라지만 이것만은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친절하고 얼마나 남을 배려 많이 합니까? 우리민족이 이걸 빨리 배워 와야 합니다. 열심에다가 이것만 배워오면 일등국가가 될 터인데 우리가 이것이 약합니다. 그러니까 투기와 분쟁이 어느 민족보다 우리민족이 강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어린아이 교육도 투기심 경쟁심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앞으로50년을 있어도 이 속성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지금 유치원부터 그런 식으로 배우니까 유치원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더 심해질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그것을 가르쳐야 되는데 오늘날 교회를 보세요. 서로경쟁하고 교회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예수라는 이름으로 서로 경쟁만 합니다. 물어뜯고 투기와 분쟁 이것이 이기주의의 극치입니다
자기유익만을 취하고 그래서 주님은 우리보고 그러잖아요. 사랑은 오래 참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자비와 긍휼의 마음은 다른 말로 하면 무슨 말입니까?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는 마음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보세요. 자기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남을 격려해주고 그 사람이 단점이 있어도 웬만하면 눈감아주고 주여! 그리고는 격려해주고 이것이 신앙인의 성숙입니다
전도도 왜 합니까? 격려해주기 위해서 전도하는 겁니다. 복음을 주어서 저분이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끔 선교는 왜 합니까? 복음으로 소망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분들이 그런 격려를 받을 때 그 모습을 보며 내가 기쁘고 보람이 있고 우리주님이 기뻐하시고 선교에 깊이 깔려 있는 동기가 그기에 있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마음이 있고 우리주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의 그 사상 그것이 예수님의 사상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이타적인 삶을 사는 마음을 가지는 그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항상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교회에서도 혹시 저분이 나 때문에 상처가 혹시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면 안녕하세요. 하면서 가서 인사하고 그래서 빨리 그분을 격려시키고 내가 먼저인사하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는데 그것이 혹시 저 사람에게 상처가 안 되었는지 왜냐면 내 생활스타일이 그래서 잘 웃지도 않고 그러면 항상 자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혹시 내가 아무개집사님하고 제대로 손도 붙잡지 않고 집에 왔네. 그러면 주님! 그러면 성령님이 빨리 전화하라는 겁니다. 전하해서 아무개집사님 그날 교회에서 인사도 못하고 왔는데 어떻게 잘 지내세요. 전화로 인사하여 그걸 빨리 푸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마귀가 그 사이에 가서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한단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그다음 주에 그 사람을 보면 더 기분이 나쁜 겁니다.
마귀가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적절한 관계가 되도록 항상 영적으로 감수성을 가지고 그걸 주님이 이렇게 보면서 참으로 이쁘구나. 너 참으로 내 마음을 가졌구나. 그러시는 겁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고 자녀들 간에도 마찬가지고 이런 모든 것이 민족에게 가서는 민족들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민족이 그것이 약하기 때문에 같은 말을 쓰는 민족이 둘로 갈라져서 전쟁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다른 민족은 전쟁을 하지만 족속이 다르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겁니다.
말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겁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고 같은 김치를 먹는 나라가 이렇게 악을 쓰고 싸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중국에 가서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중국 사람들에게 너 네 나라가 둘로 갈라졌는데 요즘은 어떠하냐고 이번에 남북대화에서 정상회담을 했다니까 그것을 모르는 겁니다. 복음전한다고 정신이 없으니까 그런데 가끔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남북대화가 이렇게 된 것도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을 지도자들이 가지니까 되잖아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정말 이번에 이 기회를 통해서 조금 더 성숙한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타민족도 배려하는 마음 하나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게 사도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우리가 이런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을 전파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한 마디로 이런 말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뭐냐면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그냥 피상적으로 주여 내 속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시도바울의 마음이 남을 배려해주면 내 속에 계신 예수그리스도가 이렇게 품어서 밖으로 나오는 겁니다. 내 속에 풍겨져서 이렇게 항상 남을 배려해주고 사람마다 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믿음의 높낮이가 다르고 사이즈가 다릅니다. 그것을 한눈으로 그냥 일률적으로 보지 마시고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맞는 그기에 위치에 맞추어서 그대로 나가서 가슴으로 앉아주는 겁니다. 예수님이 하시듯이 있는 그대로 그분을 내가 격려해주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고 그리스도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존귀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의 이름이 격려를 받으며 예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며 예수의 이름이 명성을 달고 날개를 달고 예수의 이름이 온 세상에 퍼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이 존귀케 되는 여러분들과 저가되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PEwhVdeqw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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