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 12강. 거침돌이 되지 말자(고전8:1-13) 2009년6월14일 말씀
오늘 주시는 말씀은 고린도전서8장1절에서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아멘.
이 말씀을 이렇게 보시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이 고린도전서 8장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나머지부분들이 또 있습니다. 오늘 8장 말씀은 지금 본문에 읽은 대로 이렇습니다.
그러면 지난시간에 7장 말씀을 잠깐 복습해보겠습니다. 7장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이 결혼에 대한 권고의 말씀을 하셨던 것 기억나시죠.
바울의 부부관이 두 가지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일반크리스천들의 부부 관과 또 헌신된 사명자의 부부관이 따로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어떤 분들은 결혼을 안 했다고 그러지만 바울은 결혼을 했다고 해서 제가 증거를 최소한 네 가지를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결혼 안한 사람처럼 살았다는 겁니다. 왜냐면 아난케(Ananke)라고 이분이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부담들이 있었습니다. 부득불 내가 해야 되는 이방을 향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본인은 결혼 했지만 결혼 안한 사람처럼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부관계는 필요하지 않느냐 필요하다는 말씀을 제가 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가 아담을 지었을 때 창세기1장28절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부부관계는 꼭 필요한데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서 땅을 정복하고 이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책임을 우리가 부여받았기 때문에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겁니다. 또 부부관계가 필요한 것은 아담이 홀로 살기가 힘드니까 여자를 만드셔서 돕는 배필로 했다고 창세기2장2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성서적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이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혼의 조건도 지난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또 이런 관계도 있었습니다. 부부관계인데 서로 종교가 다른 부부간의 관계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대해서도 지난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또 재혼을 해야 되는 경우가 있는데 재혼조건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다음에 독신자에 대한 예수님의 결혼관도 말씀드렸습니다. 독신자들은 웬만하면 결혼해라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결혼을 해야 되지 않아야 되는 독신자가 세 가지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남자들을 예를 들면서 말씀하시기를 남자는 모태로부터 고자가 된 사람도 있고 또 스스로 사회적인 환경 때문에 고자로 당한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이 있느냐면 아예 천국을 위해서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처녀 딸을 가진 사명 자들에게도 이것이 해당되어서 그런 부모들은 기억하라는 겁니다. 처년 딸 중에 사명자의 딸은 결혼해도 좋지만 안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명 자가 독신처럼 살게 되는 이유는 생각이 흩으려지지 않도록 예수님께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말씀하시고는 이런 모든 과정 속에서 과거 약1500년 전부터 로마가톨릭의 신부들의 독신 삶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모든 부분에서 바울의 결혼관을 지난시간에 말씀했는데 오늘은 바울께서 8장에 들어가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8장에서는 기독교인들 중에 소위 헌신되거나 성서를 많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 성서를 잘 모르는 초신 자들이나 또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거침돌 역할을 하게 해서 그분들의 믿음이 떨어지거나 심지어는 구원까지도 무효화되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특히 제사에서 우상제물을 먹는 사건을 가지고 8장에서 다르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소위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특히 성서에 보면 이분들은 성부하나님이 누구고 성자하나님이 누구고 이 두 분이 삼위일체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또 이 두 분 다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알고 있고 창조의 목적도 알고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또 4절에는 우상이 헛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9절에는 이런 가운데서 우리크리스천들은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자들이라는 겁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먹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런 걸 다 깨달은 크리스천들인데 이 사람들이 문제점들이 뭐냐면 이분들이 지적으로 알다 보면 사람들이 겸손해지지 못하는 그러한 약점이 있습니다. 조금 배운 것을 가지고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8장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년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왜냐면 덜 성숙된 사람은 이런 예가 되어서 주변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아는 것 때문에 그래서 제 걱정은 우리가 ABA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저는 항상 주님께 주님 우리 ABA공부를 하는 우리AMI가족들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세요. 조금 안다고 해서 교만해지면 그 교만은 더 무서운 교만이 되어 버립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만큼 살았는데 이만큼 배우고 깨달았는데 아직도 저는 부족함을 느끼고 매일매일 주님 저에게 가르쳐주세요.
제가 배우겠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는 성서를 읽으면서 기도하면서 이런 카드를 항상 제 옆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열심히 적습니다. 비행기를 타도 그렇고 사무실에 앉아도 그렇고 계속 적으면서 외우고 있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다 보면 무슨 문제가 생기냐면 주변을 보지 못하는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나만 안다 나만 깨달았다 이 수준에서 주변에 있는 특히 주변이라는 것은 교회 안에 있는 동료크리스천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기8장에서나 9장에서나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나 다른 교회에 편지를 쓰는 것은 교회에 편지를 쓰는 거지 세상 사람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편지 쓴 것이 아닙니다. 항상 교회 안에 문제입니다 우리가 조금 안다고 그러면 자칫하면 자기중심이 되어가지고 이웃 동료크리스천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다는 사람이 이런 실수를 할 때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특히 믿음이 약한 사람들 성서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 또는 선데이크리스천들 이런 분들이 받는 상처가 크다는 겁니다.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절과12절13절에는 왜 그러느냐 이분들이 지적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지 그 말씀의 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 가서 잘해주고 밥 사주고 칭찬해주고 이런 부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사랑문제는 나중에 고린도전서13장에서도 다루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없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덕을 끼치지 못하게 한다는 겁니다. 덕이라는 말은 영어로 에디파이어(Edifier)라 그래서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자라나지 못하게 거침돌역할을 한다는 그러한 뜻입니다. 그러면 8장에서 고린도교회에 성서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었던 죄가 뭐냐면 거침돌과 관계되는 죄입니다. 뭐냐면 믿음이 있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우상에게 받쳤던 제물을 별 생각 없이 먹었던 겁니다.
이분들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나는 예수 안에서 다 자유롭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10절에 그랬습니다. 제물을 마음대로 먹었습니다.
먹을 수 있습니다. 먹어야 됩니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고 관계없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먹는 그 모습을 믿음이 없었던 소자들 교회 안에서 이런 사람들이 보고는 자기네가 마음에 담력을 가졌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 사람들도 먹는데 나는 못 먹겠어. 나고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상의 제물을 이분들도 생각 없이 먹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과거에 7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과거에 우상의 제물들을 교회에 다니기 전에 먹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습관으로 근방 돌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실족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느냐는 모습이 거침돌의 결과입니다 먼저13절에 보면 이분들이 실족했다는 겁니다.
실족해서 넘어졌다는 소리인데요. 실족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면 그들의 양심이라는 것은 마음이라는 겁니다. 하트(heart)입니다. 마음을 약하게 해서 원어로는 아스데네스(asthenes)이 말은 병들게 했다는 겁니다. 이들의 마음이 더럽게 되었다 그리고 원어로 몰루노(moluno)라 그랬습니다.
이들의 마음이 얼룩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게 7절에 나오는 소리들입니다
그렇게 되므로 해서 이들의 마음이 상함을 받았다 그래서 티포(tipo)라는 원어를 써셨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상처 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12절에 이분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한 단계 더 발전되어가지고 이들이 멸망까지 갔다는 겁니다. 멸망은 원어로 아폴루미(apollumi)라고 이분들이 파괴가 되었다 버리다 잃어버리게 되었다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뜻입니다 11절에 멸망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심하게 되면 여기까지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멸망하다는 것은 이 사건 때문에 이분들이 구원까지도 잃어버리게 되는 이러한 역사들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런 조그만 실수 때문에 우리가 조금 안다고 했다가 실수를 범하면 이렇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렇게 믿음이 작았던 소자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 마음에 갈등을 가지게 된 겁니다. 과거에 자기네가 먹던 것인데 그러면서 마음속에 죄의식을 가지면서 그기에 사탄이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이봐라 이렇게 죄를 졌지 않느냐 이걸 먹으면 안 되잖아 이런 죄의식에서 이분들이 헤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그것이 심하다 보니까 자포자기까지 가게 된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우상을 섬기게 되고 교회출석까지도 포기하고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폴루미(멸망,apollumi)까지 있었다는 겁니다. 이분들이 예수님을 포기해버리고 조그만 우리의 거침 돌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제가 말씀드리지만 거침돌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남을 넘어지게 만드는 크리스천은 대개 보면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안수집사님이나 권사님 수준의 사람들이 4절과6절에서 보면 이들이 성서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ABA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성서에 대한지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만하다는 겁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그러한 사랑이 없다는 겁니다. 결국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데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3절에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거침돌을 일으키는 사람들 문제는 이겁니다. 거침돌이 크리스천이 받는 대가가 우리에게 심각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8장6절에서9절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소자에게 우리가 잘못해서 이 사람을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주욱 이야기하시면서 그런 사람들은 지옥 불에 던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거침돌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심한 형벌을 주시는 가요
여기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성서에서도 분명히 말했지만 여러분들이 성서를 열어서11절을 보시면 그럽니다.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는 겁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믿음이 없는 소자지만 선데이크리스천들이지만 예수님이 그분을 위해서 비싼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시각으로 볼 때 비싼 대가를 지불한 분입니다 그 비싼 분을 멸망까지 끌려 내리게 하는 장본인이 되어서 예수님께서 대가를 요구하는 겁니다. 애들아! 내가 얼마나 비싸게 저 형제를 샀는데 네가 뭔데 구원까지 무효케 하는 역사를 네가 했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겁니다. 얼마나 무서운 죄의 대가를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성서를 많이 아는 사람들 특히 우리 같은 목사님들 선교사님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천국과 지옥 책 얼마 전에 다 읽었습니다. 신00목사님 천국 갔다 온 이야기 지옥 갔다 온 이야기 그기에 뭐가 있습니까?
지옥 가니까 많은 자기가 아는 목사님들이 다 그기에 와있는 분들이 많다는 겁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목사라고 선교라고 장로라고 안수집사라고 얼마만큼 구원대열에 주님의 구원사역에 내가 잘 받 드려 모셨는지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거꾸로 구원사역을 무효화시키는 일들을 하는 지도자급들이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성서에서는 굉장히 심각하게 다룹니다. 특히 바울의 편지에는 바울이13권의 편지를 썼잖아요.
바울의 편지에서 가침돌 이 부분을 상당히 심각하게 바울은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시간에 우리가 9장을 할 텐데 본인자신도 거침돌이 안 되려고 무척 애를 쓰는 부분이 9장에서 나옵니다. 자기가 복음을 열심히 다 전하고는 거침돌이 되어서 혹시나 자기도 문제인물이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황 목사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여러분들에게도 항상 이것이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바울은 지난시간 지지난 시간에 6장에서 교인들이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것도 왜 하지 말라고 그랬습니까?
이게 다 거침돌 때문이라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럽다는 겁니다.
우상제물 먹는 일도 거침돌이슈입니다. 9징에 들어가서 나는 자비량으로 나는 여러분들을 섬긴다고 고린도교회에 말씀하셨거든요 여러분들에게 나는 선교헌금이나 봉급을 받지 않는다. 왜냐면 혹시 한 교인이라도 내가 그렇게 여러분들의 돈을 가지고가는 것을 보고 거침돌이 되어서 믿음이 떨어질까 봐 그것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9장이야기입니다 거침돌사건입니다
바울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조심한 겁니다. 우리가 12장13장14장에 보면 은사 장 사랑장이거든요 14장도 예언과 방언장입니다 이 은사장인 세 장을 다 들여다보면 전부 거침돌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사랑장도 보면 그럽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은사가 많고 방언하고 예언하고 구제해도 너희들이 사랑이 없으면 사랑의 내용을 다 말씀하시는데 보면 다 무슨 이야기냐면 어느 정도 수준의 크리스천이 높은 계급에 있는 크리스천이 책임 있는 크리스천이 동료크리스천들을 배려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 사랑은 모든 것을 참아야 되고 모든 것을 믿어야 되고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어느 지식이 있는 사람이 소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 없는 거라는 겁니다. 인간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12장13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가 많은 사람들 은사가 조금 있다고 다른 은사 있는 사람들 또는 은사 없는 사람들을 얕보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거침돌역할을 하는 부분에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특히14장에서는 예언하는 사람 방언하는 사람가지고 이야기하시면서 특히 방언하는 사람들 보고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방언하는 것은 좋다는 겁니다. 바울이 나도 기도할 마다 대부분의 기도는 방언으로 기도한다.
그런데 방언이 나쁜 게 아니야 그것은 해야 돼 그렇지만 대 중 앞에서 나와서 방언을 막 떠들면 그때 한 사람이라도 그 교회에 방문 왔다가 그 말하는 소리를 듣고는 시험받아가지고 나가면서 저 사람들 꼭 무당 같구나.
왜냐면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하는 행동이 교회가 아닌 거룩하지 않는 곳 같은 그런 느낌이 드니까 그러다보니까 그 한분이 실족을 당했다는 겁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럽니다. 아무리 좋은 거지만 실족 당하게 한 그 사건 때문에 너희들은 방언을 대중 앞에서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만약에 한다면 통역을 세워서 무슨 뜻인지를 알게 하면서 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그분이 나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이것이 우리크리스천들에게 상당히 많은 겁니다. 오늘 8장은 음식과 관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한번 조명해보겠습니다 모든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다 로마서14장14절과20절에 모든 음식은 우리가 다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자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가 이랬습니다. 나는 자유자다 그랬습니다.
고린도전서9장1절에 바울이 로마교회에 하신 말씀입니다.
로마서14장14절에서20절에 내가 주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며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스스로 속된다는 말은 모든 음식은 다 더러운 것이 없으며 다 괜찮다는 겁니다.
스스로 그 자체는 다 깨끗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만 더럽게 여기는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음식이 더럽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그럽니다. 로마서14장6절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은 자도 주을 위해서 먹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요 그다음에 어떤 이유 던지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겁니다.
먹지 않는 다는 것은 거침돌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먹지 말라는 겁니다. 이게 바울신학입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모든 권한이 있고 그다음에 모든 음식은 다 속되지 않다는 겁니다. 로마서14장1절과2절에도 이런 말을 계속합니다. 로마서14장15장은 이런 부분을 다루는 장입니다 바울이 계속해서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연약한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거나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는다는 겁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포도주이야기를 제가 성서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구절을 제가 드릴 테니까 하나하나 잘 적으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길 바랍니다. 첫째 고기나 포도주는 고기라는 것은 구약에서는 돼지고기도 못 먹게 되어있고 몇 몇 고기는 못 먹게 되어 있잖아요, 그것을 신약에 와서 그것을 먹느냐 안 먹느냐 이걸 가지고 서로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바울 때도 마찬가지로 그렇지만 바울이 모든 고기는 다 먹을 수 있다 이런 말씀인데 그러나 고기나 포도주나 형제를 꺼리 끼게 하면 마시지 말라는 겁니다. 로마서14장20절에서2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만약에 이웃의 동료크리스천이 넘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될 때는 먹지 말라는 겁니다. 먹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믿음으로 쫒지 아니한 자는 모든 것이 죄라고 그랬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이걸 먹어도 좋은 데 이것 때문에 저 형제가 혹시 실족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포도주를 그 형제 앞에서 먹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마셨기 때문에 저 형제가 자파지게 생겼어 그러면 벌써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고 이미 죄를 범한 것이라는 겁니다.
제 말의 초점이 주제가 무엇입니까? 거침돌입니다. 그러면 포도주가 얼마나 좋다는 것을 성서에서 말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포도두가 복의 사인인 것을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신명기14장22절에서26절입니다.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너희들 포도주을 먹고 즐거워 해라는 겁니다. 포도주를 먹으면서 아주 즐거워하라는 겁니다.
또 신명기7장12절13절에 이 부분은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갈 터인데 그곳에 들어가서 내가 복을 너희들에게 많이 줄 터인데 그 복 중에 하나가 뭐냐면 내가 너희들에게 포도주를 주어가지고 너희들 기분 좋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광야에서는 포도주가 없었습니다. 그기는 나무가 자라지 않으니까 그래서 만나밖에 없었습니다. 공중에서 내려오는 그런데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너희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내 토지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해주겠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 중에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14장18절19절에 멜기세덱을 만나는 장면에서 떡과 포도주를 멜기세덱에서 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축복을 했습니다. 멜기세덱은 예수님입니다 야곱이 아버지이삭에게 축복을 받았울 때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도 포도주와 고기를 잡수시고는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창세기27장25절에서27절에 또 예수님께서 공생애 하시면서 첫 기적이 우리가 알다시피 가나혼인잔치에서 물가지고 포도주를 만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 잔치가 아주 기분이 좋았고 복 된 잔치였다는 겁니다. 요한복음2장에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성만찬 하실 때도 떡과 포도주를 잡수셨습니다. 그렇게 먹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포도주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며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은 생수라 그랬습니다. 요한복음7장37절38절에 그래서 이 포도주는 영적 의미에서 예수님의 보혈이고 또 내 속에 계신 퓨뉴마성령님이십니다. 생수십니다 상당히 보배스러운 것이 포도주입니다 신명기28장에서 너희들이 창조주 삼위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이런. 이런 복을 주겠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들에게 이런, 이런 저주를 주겠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저주 중에 뭐가 있느냐면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그랬습니다. 신명기28장38절39절에 그러니까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이것은 복의 하나의 사인입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가 나실 인이라고 민수기6장2절에서27절에 여기에 보시면 이스라엘백성 중에 남자나 여자가 스스로 어떤 분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나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스스로 서원하는 겁니다. 나 40일 동안 머리도 안 깎고 목욕도 안하고 정말 예수님께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라고 서원하는 그런 사람들을 나실 인이라고 그럽니다. 나실 인이 되려고 그러면 서원하는 그 기간 동안에는 먹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포도주나 독주를 금하라 그랬습니다. 왜냐면 자칫하면 실수할 까봐 나실 인중에 포도주 독주도 먹지 못하고 식초도 먹지 못하고 포도주스도 먹지 못하고 생 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못하고 머리도 깎지 말고 죽은 시체도 가까이 하지 말고 라는 여러 가지의 규범들이 있습니다.
민수기6장2절에서27절에 그 중에 하나가 포도주를 먹지 말라는 겁니다.
또 두 번째 금지하는 경우가 레위기10장8절9절입니다.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면 정신이 몽롱해가지고 예수님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는 겁니다.
거기서 나오면 먹을 수 있지만 성막 안으로 들어갈 때는 먹지 말라는 겁니다. 특별한 곳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했던 사람들 중에서 포도주를 심하게 먹어가지고 아주 실수를 한 사람들 중에 대표적으로 두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노아입니다 창세기9장21절에 왜냐면 성서에 보면 이 사람이 포도주를 먹고는 술에 취해버렸다는 겁니다. 자기를 컨트롤 못하고 의식불능상태까지 같던 모양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롯입니다 창세기19장33절에서35절입니다. 이분은 술에 아주 취해가지고 자기 딸과 관계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바울이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 되려면 지도자가 되려면 이런,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된다 하면서 디모데전서3장3절에 술 취한 사람은 감독이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신부나 목사가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장로까지도 안수집사도 안 되는 겁니다.
하여튼 술 취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적당히 와인을 한잔 두 잔정도 잡수야지 그렇게 하면 몸에 좋다는 겁니다. 그런데 심하게 먹으면 간에도 나빠지고 또 성서적으로도 맞지 않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것 때문에 거침돌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저도 레드와인을 조금씩 먹습니다. 항상 먹는 것은 아니고 의사들은 매일 조금씩 잡수시오. 하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끔 레드와인이 한 병 생기면 한잔 많아야 두 잔 먹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먹는다고 해서 우리교인들보고 와인 다 드십시오. 또는 제가 설교 끝나자말자 우리교인들보고 와인 가져오세요. 그래서 와인을 제가 먹습니다. 또 설교하는 도중에 물보다는 와인이 좋아서 제가 와인을 이렇게 먹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괜찮지만 우리 교인들 중에서 우리 목사님이 와인이 저렇게 좋은 모양이지 와인 먹으면 은혜 서러운 모양이지 이렇게 오해가 되어가지고 교인들도 우리목사님이 와인을 드시니까 그것도 아무 때나 막 드시니까 우리도 그렇게 먹자 그러다보면 어떻게 됩니까? 스스로 컨트롤을 못하는 사람이 그 안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한두 잔 먹는 것은 좋은 데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그러한 수준까지 내려가면 소자기 때문에 이 소자가 컨트롤을 못하는 그러한 소자면 그것 때문에 황 목사가 교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저는 연자 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내 구원이 상실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교인 중에 형제나 자매가 그것 때문에 알콜 중독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황 목사 때문에 매일 먹는 겁니다.
그것 안 먹으면 잠도 못 잡니다. 그러면서 왜 당신이 이렇게 되었어.
우리목사님이 자꾸 먹어라 해서 먹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교회도 안 나오는 겁니다. 주일날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겁니다. 하도 많이 먹어서 여기 까지 간다면 제가 큰 거침돌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혹시나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봐 모든 것은 다 내가 먹을 수 있지만 모든 음식도 다 먹을 수 있고 와인도 몸에도 좋고 좋지만 그렇게 안 하는 이유가 그기에 있는 겁니다. 거침돌이 되니까 과음하게 되면 모든 사회의 범죄의 요인이 되고 가정불화로 가정이 깨지는 파탄되는 요인이 되고 교통사고의 주범이 되고 이런 부분들로 세상 사람들도 과음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우리크리스천들이 과음을 하다보면 사탄이 우리를 잡아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직장생활이나 또는 사회생활을 하시면서 만약에 그런 기회가 있으면 이분들이 여러분들을 볼 때 저 사람은 교회집사야 권사야 장로야 하면 동창모임이나 직장모임에서 될 수 있으면 안 하는 겁니다. 왜냐면 그기에 있는 한 사람이 실족당할 까봐서 와인을 먹고 싶지만 예수님! 주님 때문에 제가 안 먹습니다. 왜냐면 혹시나 한 사람이라도 나 때문에 실족 당하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잖아요. 저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혹시나 그런 사람이 여기 있을 까봐 저는 나의 자유를 제가 포기합니다.
이런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어야겠습니다. 모든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모든 음식은 다 정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거침돌이 되도록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로마서14장17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기준이 거룩함의 기준이 하나님나라에 어떤 사람은 높은 계급에 있고 어떤 사람은 낮은 계급에 있고 하는 모든 것은 무엇을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이것 가지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와인을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어떤 음식을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본질적으로 그런데 하나님나라는 이런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과 와인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인을 먹음으로 해서 이웃이 거침돌이 되어서 넘어졌다면 내가 그것 때문에 의와 평강과 희락을 빼앗긴다는 겁니다. 우리는 와인을 먹을 수 있지만 거침돌이 되는 사람이 되면 않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잘 조절하는 지혜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장로가 되려면 목사가 되려면 먹으면 안 된다면서 아예 차단을 시켜버린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몰래 몰래 먹다 보니까 그것이 더 마음에 죄가 되어가지고 그것이 본인도 모르게 나중에는 죄의식 때문에 그 죄의식을 사탄이 잡아버린 겁니다.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을 먹느냐 안 먹느냐가 아닌 겁니다.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향해서 나의 형제자매들이 실족되지 않게 하는데 본질이 있는 겁니다. 음식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컨대 거침돌이 된다고 생각하면은 마시거나 먹는 부분에서 우리가 조심하는 겁니다. 그렇게 실족케 하는 일을 했을 때 오는 결과가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내 형제가 마음이 약하게 되고 병들게 되고 어렵게 되어서 마음에 상처를 가지다 보면 그것이 심하면 구원까지도 교회까지도 안 나오는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결론적으로 바울은 8장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장9절에 그런즉 너희 자유 함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겁니다.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조심하라는 겁니다. 이 조심을 가지려면 영적인 감수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영적인 감수성은 어디서 나옵니까? 영적으로 영안이 떠여지고 영의 귀가 열려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영의 피부가 아주 감수성이 있어서 근방, 근방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고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렇게 괴려면 내 속에 쓴 뿌리가 빠져야 됩니다.
성화되어야 됩니다. 쓴 뿌리가 빠지면 이 속에 성령님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영적인 감수성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와인을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럴 때는 먹으면 안 되는구나. 한두 잔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일단 안 되는구나 본인스스로가 아는 겁니다. 그리고 혹시나 한 사람이라도 실족당할 까봐 저 사람 실족당하지 않을 거라고 주님이 말씀해 주시면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중보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영적으로 감수성을 가지고 이런 부분을 조심스럽게 잘 다루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바울에게 주신말씀 중 바울신학에 핵심 되는 말씀이 거침돌신학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지혜와 영적감수성을 가지고 예수님이 보배로운 보혈을 흘려서 자녀로 만드신 그 자녀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와 같지만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서 그 어린 소자가 넘어지지 않게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우를 범치 않도록 우리에게 영적으로 감수성을 주시고 이를 위해서는 말씀 속에서 성령님의 기름부음 속에서 우리의 더러운 모든 쓴 뿌리들이 제거되는 역사가 날로, 날로 일어남으로 해서 우리로 하여금 지혜로운 자 영적감수성을 가진 복 된 자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셀 모임을 통해서 이렇게 서로가 의견을 나눌 때 테이블마다 성령님의 강하게 역사하심이 있게 하시고 천군천사들이 그곳에서 지배하게 하시고 한분 한분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안수해주셔서 이 말씀을 서로 나눌 때 진지한 모습으로 진지한 마음으로 나눔으로 해서 우리 속해 있는 쓴 뿌리들이 말씀 속에서 제거하게 하시고 매일 매일 셀 모임이 끝날 때마다 우리가 더욱 더 주님께 성화되는 그러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주변을 괴롭게 하는 존재가 되고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되고 자녀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되고 이러한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하나님 우리에게 사랑을 계속해서 베풀어 주셔서 이러한 우를 범치 않도록 말씀과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시므로 떠나지 않고 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SVqo-9kRy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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