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와 복 시리즈 2강. 창세전에 십자가 예정한 천국의 신비(고전2:7)
저주와 복 시리즈 두 번째로 창세전에 십자가 예정한 천국의 신비라는 본문말씀은 고린도전서2장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천국의 신비를 조금 더 심도 있게 나누어 보려고 그럽니다. 지난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져 본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하는가? 이게 모든 분들의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질문도 되기를 원하고 또 이 질문을 주변사람들에게 설명해줄 책임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고 다른 방법이 없는가?
꼭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도 있습니다.
예컨대 죽으려고 하셨으면 칼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고 돌에 맞거나 또는 화형을 당하시거나 또는 교수형을 당하시거나 또는 독극물을 잡수시거나 기타 등등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일 수가 있고 예수님이 또 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라는 방법을 사용하셨나?
이 부분에 대해서 지난시간에 제가 자세히 설명을 했지만 그기에 부연으로 해서 십자가방법은 전통적으로 유대문화에서 사형수를 사형시키는 가장 혹독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라놓고는 여섯 시간 동안 고통을 받게 하는 것뿐 아니라 매달려 있을 때 주변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힐난을 하고 또는 조롱도 하는 그런 일들이 여섯 시간 동안 있게끔 디자인 하신 것이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일반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경우에는 십자가를 본인이 직접 매고서 가셨습니다.
그때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는데 매고 가실 때 로마 군인들이 때리기도 하고 또 모욕도 하면서 너무 무거워서 시몬이 대신 지게끔 한 상황까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달려서 가기 전에 본인이 직접 매고 가는 이러한 모든 일부터 시작해서 여섯 시간 동안 고통당하는 모든 일들 이런 일들을 끝내고 마지막에 우리지난시간에 봤지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하나님, 나의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어렵게 하십니까? 나를 왜 버리십니까?
라는 고백 우리가 들었잖아요. 우리가 십자가라는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그 속에 두 가지 과정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 과정이 있고 두 번째는 과정을 완료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과정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매고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엘리 엘리 말씀하기 직전까지의 과정 그리고 마지막 목표는 이분이 엘리엘리 말씀하시는 장면이 뭐냐면 하나님이 예정하신 백성들의 모든 죄들을 다시 말하면 과거에 지은 죄들 그리고 현재에 짓고 잇는 죄들 또 미래에 지을 죄들 모두를 한꺼번에 뒤집어쓰시는 그 죄를 우리가 저주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 저주들을 한꺼번에 뒤집어쓰시는 그 순간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쳤던 마지막 십자가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과정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저주받으시는 그 사건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칫하면 십자가이야기를 할 때 과정만 이야기하고 마지막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모욕을 당하면서 이렇게 지신 것이라고 자칫하면 십자가의 본래의 뜻을 희석시키거나 또는 변질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저 괴로워하시는 하나의 모습으로만 그렇다고 해서 과정을 가볍게 여기면 또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과정과 목적을 수행하는 일을 이루시려고 이미 주전천년에 다윗에게 미리 환상으로 비디오로 이 과정을 쫘악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시편22편6절에서8절 내용들을 주욱 보면 다윗이 눈을 떠서 영안으로 보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는데 그분의 모습이 과정들입니다 사람들의 비방거리로 멸시거리로 조롱거리로 비웃음거리로 그러면서 옆에 있는 개들이 그랬습니다. 개들은 로마 군인들을 지칭하는데 개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뽑고 하는 이런 모든 것들의 과정들을 쫘악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엘리 엘리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적어도 여섯 시간은 이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엘리 엘리의 저주받으시는 장면은 시편22편1절에 결과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결과를 먼저 말씀하시고는 과정들을 이렇게 주욱 하시는데 우리가 이런 과정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어떻게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창조하신 만물을 발아래 두시고 지배하시고 예수님이 관리하는 분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나와 여러분들 또는 모든 만유의 생명체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저는 이것을 묵상합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나의 생사화복을 내 사랑하는 가족들의 내 자녀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죠. 항상 묵상합니다. 그래서 저는 거기다가 토씨를 하나 붙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주님 내 사랑하는 내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에게 은혜 베풀어 주세요 이놈들 이런 죄짓고 저런 죄짓고 예수님을 어떤 때는 잘 섬기지도 않을 때도 있을 터인데 세상 좋아하고 주님 은혜 베풀어 주세요. 저는 자식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이 기도합니다. 그러면 제가 목사로써 할아버지모습으로 조금이라고 주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제가 내 손자손녀들에게 이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하기 위해서 제가 지금 이 나이에도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주님 은혜 베풀어 주세요
이게 제 기도입니다 은혜 베풀어달라는 말에 뭐가 거기에 숨겨져 있느냐면 주님 앞에는 제가 부족합니다. 할 말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은혜 베풀어 주십시오. 왜냐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려고 이분이 이런 은혜의 주관자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벌레 모습으로 개 같은 로마 군인들에게 철없는 유대인들에게 비방 받고 멸시받는 항상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는 겁니다. 이분이 이 모습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그런데 어떤 생명이냐면 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를 뒤집어쓰시려고 이렇게 하셨구나.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묵상하면서 내 삶에 적용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다윗에게 주전천년에 주시고는 우리가 지난시간에도 잠깐 봤지만 주전700년에 이사야에게도 똑같은 비디오로 주셨습니다. 과정과 그다음에 결과와 목표를 이사야서53장4절에서6절을 우리가 지난시간에도 봤지만 이분이 4절에서는 목적을 완전히 말했습니다. 예수님 그분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저주를 당하신 분이네 그다음에 6절에 가서 이분이 저주를 받아가지고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분에게 뒤집어씌우셨구나. 그런데 과정을 설명하는 겁니다.
그가 형벌을 받아서 고난당할 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허물을 우리의 죄악을 위해서 그가 채찍을 맞고 이런 과정을 주욱 환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과정에서 머물려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자칫하면 예수님의 죽음의 십자가사건을 과정에서 머물려는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이 과정은 중요하지만 최종목표는 무엇입니까?
저주입니다 이분이 저주를 받으시는 것에 대한 그렇기 때문에 과정만 중요시하다보면 저주에 대한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약하게 되고 변질시키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저주라는 이 저주계획을 제가 이런 표현으로 하나님의 저주 말소계획이라고 제가 단어를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우리인간은 다 저주받은 존재들인데 저주를 말소시켜주겠다는 계획을 언제 짜셨냐? 그러면 오늘 본문에 보면 창세전에 이미 짜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전에 이 말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창세기1장1절 전에 아담창조 전입니다 창세전에 이미 이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바울도 개종을 하고 20년 동안 몰랐습니다. 바울도 주후35년에 개종을 하고는 이분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실 때가 55년입니다 41년에 이분이 3층천까지 올라간 경험을 했거든요 낙원까지 올라간 경험을 했거든요 고린도후서12장1절부터4절까지 보면 이분이 고린도후서를 쓰시면서 고린도교회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14년 전에 내가 낙원과 3층천에 올라가셨단다. 그러면 고린도전서를 55년에 썼잖아요. 그러니까 55년 빼기 14년 하면 41년인 겁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질문하는 겁니다. 도대체 41년에 이분이 어디에 계셨냐? 그러면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공부했습니다. 35년에 개종해가지고 3년 동안 아라비아에 계셨습니다. 아라비아는 시내 산입니다 3년 그기에 계시다가 나머지7년은 자기 고향 다소에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주후41년은 고향 다소에서 외롭게 혼자서 지내던 때입니다 이때 이분이 낙원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시고 하늘의 비밀을 다 배웠는데도 바울에게 창세전에 십자가를 예정하셨다는 것은 가르쳐주지를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러면 어떤 복음만 개종해서 20년 동안 알았나요? 소위 우리가 말하는 원시복음만 알았습니다.
프로토 에반겔리온(proto evangelium)이것은 뭐냐면 창세기3장15절에 관한 복음입니다 예컨대 아담이 죄를 짓자말자 예수님이 사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뭐라고 하시냐면 사탄아 내가 여자의 후손으로 내려올 터인데 네 후손과 싸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의 후손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소위 우리가 원시복음이다 그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최초라는 겁니다. 이것이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적용이 되었고 바울도 이 복음을 알고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단순 복음이다 이렇게 제가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많은 분들 여기 앉아 계신 분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면 그게 성경어디에 나옵니까? 그러면 성경을 조금 아는 사람은 창세기3장15절 그래서 제가 여자의 후손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창세기3장15절에 예언되어 있지 않습니까? 크리스천들 중에서 이 수준만 알아도 상당히 아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4천년 동안에 구원론 공부했습니다.
어린양을 잡는 이야기를 주욱 했습니다. 가죽치마의 어린양, 아벨의 어린양, 노아방주의 어린양, 아브라함 때 모리아 산에 어린양, 나중에 유월절에 어린양 이걸 통해서 창세기3장15절에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시간에 가면서 그림자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이 모든 구약의 어린양사건은 나중에 성막을 지어서 어린양을 잡는 이야기 성전을 지어서 어린양을 잡는 이야기 성전을 지어놓고는 예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이 이 성전은 나라고 말씀하시는 모든 장면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이런 것들은 기초가 어디에 있느냐면 원시복음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원시복음을 가지고서 계속해서 이분은 20년 동안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원시복음만 알고 있으면 많은 질문들이 그 뒤에 따라 붙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천들이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이 날 위해서 죽여셨다 구약의 어린양이 예수님이시다 그분이 오셨다 이 수준으로만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심지어는 목사님들 까지도 그기에 따라오는 많은 질문들에 대해서 소화가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소화가안 되는 체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나라로 가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바울도 20년 동안 그 경험을 해왔던 겁니다. 우리가 바울이 이런 원시복음수준에서 20년을 사셨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면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아는 겁니다. 바울의 첫 서신이 무슨 서신입니까? 주후49년에 쓴 갈라디아서입니다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이 46년에서48년까지입니다 1차 선교여행을 다녀오시고는 처음으로 쓴 서신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은혜에 관한 서신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이분은 단순 복음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원시 복음적으로 갈라디아서1장4절에도 그랬고 1장7절에도 이것은(원시복음)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3장13절에 예수께서 나무에 매달려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는 구속받았다 율법의 자주는 뭐냐면 구약의 율법입니다
구약의 율법의 저주수준이었습니다. 지난시간에는 제가 이것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가지고 설명했지만 지금 여기서는 그냥 문자적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했다 갈라디아서3장13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의인이 되는 길은 유명한 갈라디아서2장16절에서21절에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 라는 대답을 항상 해야 합니다.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내용도 보면 십자가이야기를 하는데 원시복음적인 측면에서 십자가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바울이 갈라디아서4장9절에 율법이라는 것은 초등학문이다 또 율법은 몽학선생이다 다시 말하면 가정교사다 갈라디아서4장24절에 예수님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원시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원시복음을 상당히 강조하시면서 갈라디아서1장8절부터 뭐라고 그러느냐면 갈라디아교회 안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원시복음 외에 다른 복음들 유대교인들이 그 안에 조금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은 유대교의 율법도 지켜야 된다고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1장8절에 다른 복음이라 그랬습니다. 은혜가 있고 믿음도 필요하지만 거기에는 율법이 꼭 따라와야 된다고 믿는 사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니다 하면서 바울은 원시복음을 대단히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원시복음을 집중적으로 설명해주는 서신으로 주후49년에 쓴 책입니다
이걸 보면 우리가 바울이 원시복음의 수준에 계셨구나. 라는 것을 아는 겁니다. 또 우리 대부분의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두 번째 선교여행은 언제 했습니까? 50년부터52년까지입니다 2차 선교여행은 바울에게 굉장히 중요한 여행입니다 왜냐면 2차 선교여행 때 대부분의 터키에 있는 교회들을 개척한 겁니다. 마케도니아에 있는 교회들 아가야지방에 있는 교회들 성서에 나오는 유명교회들을 개척한 때가 2차 여행 때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 골로새까지 하면 여덟 교회입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에 올라가서 빌립보교회 그다음에 데살로니가교회 그다음에 베뢰아교회 밑으로 내려가서 아테네교회 고린도교회 이 모든 교회들을 2차 선교여행 때 50년부터52년 동안에 우리가 이런 시간적인 개념을 꿰뚫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자꾸 우리가 연습하는 겁니다. 이때 바울이 고린도에 내려가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고 계셨을 때 데살로니가사람들이 질문들이 있고 문제들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에 편지 쓴 게 데살로니가전서 후서입니다 예전에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전서 후서가 있는 것은 문제가 심할 때입니다 편지를 한번 보냈는데 아직도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후서를 쓰는 겁니다. 전서 후서가 있는 교회가 데살로니가 전후서, 고린도 전후서 고린도 전후서는 편지길이도 깁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가 문제가 많은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쓰실 때보면 1장5절에 바울이 우리의 복음이라는 말도 하고 2장2절과8절9절에 보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렇지만 다 원시복음을 지칭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창세전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다음에 데살로니가후서도 같은 해에 쓰셨는데 데살로니가후서1장8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2장14절에 우리가 전하는 복음 이렇게 해서 다 원시복음과 관계되는 말씀을 하셨지 창세전에 복음을 예정했다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두 성경말씀을 드렸습니다. 처음에 갈라디아서 두 번째는 데살로니가전후서 이것을 우리가 꿰뚫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고 똑같이 49년에 성서를 쓰신 분이 계십니다. 야고보가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입니다 이분은 예루살렘교회 수장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분에게 은혜를 주신 겁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3년 공생애 때 예수님을 안 믿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다니실 때 아마도 이분이 크리스천이 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분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였을 때 그기에 주축인물이 되지 않았나? 라고 우리가 추측하는 겁니다.
하여튼 이런 분인데 이분이 서신을 쓴 게 야고보서입니다 이분이 야고보서를 쓸 때 예루살렘교인들이 이미 흩어져서 여기저기 터키 지방에 많이 가있었잖아요. 그분들에게 성서 윤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윤리서신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이렇게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2장17절에 나오지만 이분은 원시복음에 대해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원시복음도 다루지 않고 주로 행위적인 윤리적인 부분을 다루었습니다.
왜냐면 교회 안에 윤리적인 복잡한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학문적인 부분에서 조금 약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이분을 통해서 이 말씀을 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50년에서52년 이때 성서를 보면 누가 어느 성경을 저술한 때입니까?
4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입니다 마태복음을 쓴 것이 마태가 50년에서52년으로 4복음서 중에서 첫 번째 복음입니다 마태는 유대인 측면에서 유대인크리스천들에게 예수님의 생애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성령님이 이분을 사용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으심과 승천하심까지 33년의 예수님의 일대기를 기록하게 한 겁니다. 이것은 유대인크리스천들을 이해시켜주기 위해서 마태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를 사용하시는데 주님께서 마태에게 예수님의 탄생부터 그분의 족보부터시작해서 다윗의 아들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쫘악 마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 복음이 마태복음인데 예수님의 일대기인데 이 책이 그 당시에 상당히 기독교인들에게 유용한 책이 된 겁니다
바울을 통해서 교회들이 많이 개척이 되었고 기독교인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에 유대인들도 많았고 이방인들도 조금 있었고 그랬는데 이분들이 궁금한 것은 예수님 주후50년이면 예수님이 30년에 승천하여 올라갔으니까 과거 20년 동안 기독교에 관한 메시지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전달되었는데 예수님에 대한 일대기를 사람들이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33년의 생애를 자세하게 적어놓은 역사책 또는 일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책이 바울에게 필요합니까? 필요 없습니까? 바울도 뒤늦게 주후35년에 예수님을 만난 분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예루살렘출신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계셨던 33년 동안에는 이분은 크리스천들을 핍박했던 또는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고 나중에 기독교인들을 핍박까지 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들은 것은 있지만 조직적으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이분도 잘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다메섹도상에서 만났던 지만 본이 책도 세권까지 썼지만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궁금했던 사람입니다 조직적으로 배우고 싶은 겁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소문에 마태라는 분이 마태복음을 기술했다는 말을 듣고 마태라는 사람은 가버나움지역에서 세리출신인데 제자가 되어서 그 사람이 그래도 지식인이고 정부 관료였는데 책을 썼다니까 궁금해서 마태복음을 분명히 읽었을 겁니다.
마태복음을 쫘악 읽으면서 이분이 딱 걸려드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에는 천국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Kingdom of Heaven이라는 단어를 쓰시면서 마태복음5장1절에 보면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겁니다.
그다음에 10절에 가면 의의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바울이 이걸 읽으면서 천국 바울이 생각하는 천국은 낙원으로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난한자가 낙원에 간다. 그러면 구원론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예수님의 정체성을 믿어야지 어떻게 마음이 가난하면 천국 가느냐? 이게 맞지가 않은 겁니다.
그런데 13장에 와서 이분이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13장을 읽으면서 13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천국의 신비들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13장은 일곱 가지의 천국의 신비들이라는 비유입니다 천국의 비유들을 이야기하시는데 예수님이 이것을 천국의 신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보는데 천국의 신비들 하면서 주욱 설명하는데 35절에 와서 딱 걸리는 겁니다. 마태복음13장35절에 보면 제가 가끔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오늘은 다른 측면에서 설명하는 겁니다. 마태에게 말씀하신 것을 바울이 깨닫고는 말씀하는 겁니다. 뭐냐면 천국의 신비들은 일반사람들은 유대인들이나 일반크리스천들은 일곱 가지의 신비를 소화를 못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마태에게 주신 겁니다. 눈이 뜨여도 보지 못하고 귀가 열려도 듣지 못하게끔 내가 디자인해놓았다는 겁니다. 천국의 신비를 그런데 너희들에게만 제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특수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제자 급 사람들에게는 너희들에게는 이 신비를 깨닫도록 내가 디자인 해놓았다는 겁니다. 바울이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말씀을 본 겁니다
그리고는 35절에 보니까 이 천국의 신비는 다시 말하면 일곱 가지 비유는 창세전에 세상에 기초가 놓인 이래로 감추어진 것들을 이제 들어내는 거라는 표현을 한 겁니다. 이걸 헬라어로 보면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세상) 다시 말하면 세상이라는 말은 저세상과 이 세상입니다 2층천과 1층천을 창조한 것이 창세기1장1절입니다. 3층천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이 1층천과 2층천 이것을 창조하기 전 세상에 기초가 놓인다는 소리는 1층천과 2층천 여기 기초가 놓인 이래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창세 이후로 천국의 신비를 창조해내셨는데 이것을 그동안에 감추어 두었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제야 들어낸다. 그랬습니다. 이제야 라는 게 마태에게 쓰신 주후50년에서52년 이때 마태에게 들어내셨다는 겁니다. 바울이 이걸 깨닫고는 아하! 창세전에 이런 신비한 것을 예정하셨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는 바울이 그때 눈을 반짝 뜨는 겁니다. 바울의 생각의 변화가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때부터 생각을 천천히 바꾸기 시작하는 겁니다. 원시복음 론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바울이 받기 시작하는 겁니다.
특히 바울은 지성인출신이기 때문에 이분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창세전에 인간 만들기 전이고 모든 우주를 만들기 전에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디자인하셨다는 겁니다. 바울머리가 번쩍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것을 주욱 감추어놓았다가 이제야 마태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라고 하면서 말씀하시고는 거기다가 이 신비는 마태복음13장13절에서17절에 그랬습니다. 소수제자들에게만 눈 뜨게 하고 귀를 열게 해서 깨닫게 하지 나머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지 못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2차 선교여행 중에 마태복음을 바울이 읽다가 이런 놀랍고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게 된 겁니다
그때부터 바울의 마음에 갈등이 오기 시작한 겁니다. 원시 복음적 구원론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그동안 많았는데 이성적으로 감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이런 갈등들이 원시 복음적 구원론을 가지고서는 많습니다. 그런데 왜 사탄을 허락하십니까? 원시 복음적 구원론 자들은 항상 가지고 있는 겁니다. 왜 아담이 타락하도록 허락하십니까? 막으시지 왜 타락한 사탄을 즉시로 지옥에다가 던져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왜 이런 것들을 허락했습니까? 하나의 원시적인 사고로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바울이 이런 고민 속에 있으면서 갈등 속에 있으면서 2차 선교여행을 끝내고는 안디옥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머리가 복잡한 겁니다.
우리도 이런 상황에 있으면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겁니다. 바울도 이 고민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빤히 알고 계시잖아요. 이분이 이런 고민을 하도록 성령님이 이끄시는 겁니다.
이런 고민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발전이 됩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지금 아! 이것 안 되겠다. 내가 한 자리에 앉아가지고 이분들의 말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되겠다. 묵상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안디옥교회에서 6개월 만에 급히 3차 선교여행을 떠나면서 에베소에 들려가지고 53년에 두란노서원을 오픈한 겁니다. 3차 선교여행은 53년부터57년입니다 두란노서원을 개설하고는 제자들100여명을 2년 동안 열심히 훈련시킨 다음에 졸업시켜가지고 로마제국에 선교사로 보낸 이야기 우리가 다 공부했습니다. 졸업식이 가까이 왔습니다. 가까이 왔는데 고민하는 바울에게 주님께서 너 저 밑에 고린도가 문제가 있으니까 고린도에 편지를 쓰라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55년에 고린도전서를 쓰기 시작하는 겁니다. 후서는 왜 씁니까? 아까 말했습니다. 말을 안 들으니까 쓰는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고린도전서를 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고린도교회가 4개의 패거리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1장12절에 보면 베드로 파, 바울 파, 아볼로 파, 예수님 파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파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5장에 보면 교회 안에 음행이 있었고 6장에 보면 세상 법정으로 가서 싸움질하는 이야기 7장에 가서는 혼인에 관한 이야기 8장에 가서는 음식과 기독교인들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주 안에서 자유에 관한 이야기 9장에서는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러한 이야기 10장과 11장에는 성만찬이야기 12장은 은사에 관한이야기 13장은 사랑이야기 14장은 방언과 예언이야기 15장은 부활에 관한이야기 우리가 좋아하는 내용들이 그기에 다 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고린도전서1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기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고린도전서1장을 볼 때 바울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뭐냐면 고린도라는 도시는 세계적은 무역도시로 이태리사람들 희랍사람들 애굽사람들 유대인들 비즈니스맨들 또는 학벌이 좋은 사람들 다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기에 지식인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지식인들이 항상 바울을 공격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말하는데 그게 도저히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메시아라는 분은 승리자고 왕으로 오고 이분은 화려한 모습으로 오게끔 되어 있는 분인데 어떻게 가장 악한 범죄자가 받아야 되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되느냐 그러니까 십자가도에 대한 소화를 이분들이 하지 못하는 겁니다. 바울이 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희들 세상지식가지고 십자가를 알려고 하느냐 안 된다는 겁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너희들에게 있어야만 되지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은 이해가 안 되는 도로밖에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받으면 너희들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님의 지혜인 것을 알게 될 거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2장18절부터 24절까지 주욱 하십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이 사상을 가지고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씀을 받은 다음에 오늘 본문의 말씀인 2장7절의 말씀을 성령님이 바울에게 주는 겁니다.
이게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 말씀을 받아가지고 글을 쓰는 겁니다. 뭐냐면 내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지혜는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도는 이런 말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지식인들아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지혜인데 이것은 이 세상 전에(아포 톤 아이오논, befor the eternity)그러니까 이 세상 만들기 전 영원 전에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신비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사건은 이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타락하기 전 영원세계입니다
영원세계 전 우리크리스천들의 영광을 위해서 미리 정하신 감추어진 지혜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사건은 하나님의 지혜인데 이것을 영원 전에 다시 말하면 창세전에(befor the creation) 이미 예정해서 만들어 놓으신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감추어 놓으셨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제야 뚜껑을 열어서 보여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안 그래도 이 문제가 마태복음13장을 읽으면서 고민스러웠는데 지금 55년에 바울에게 적나라하게 이 문제를 쫘악 풀어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것을 자신의 이성과 지혜로는 소화를 못 했습니다. 성령님이 바울에게 임하니까 소화했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뭐라고 하였냐면 이것은 너도 소화 못하니까 이것을 신비라는 단어로 거기다가 집어넣어라 그래가지고 이분이 신비다 그래서 mysteries 복수로 써놓았습니다. 이 미스터리(신비,mysteries)를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알려주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창세전 십자가의 신비라는 겁니다. 원시복음은 신비한 겁니까?
신비하지 않은 겁니까? 이것도 신비한 겁니다. 원시복음도 우리의 이성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다대고 창세전 원시복음을 주셨는데 창세전에 삼위하나님께서 예수하나님이 이 세상으로 내려 올 것을 다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디자인 하셨는데 감추셨다 그랬습니다.
왜 감추었냐? 이게 또 질문인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럴 겁니다.
목사님 왜 또 질문을 던지십니까? 왜냐면 이게 제 질문이고 여러분들의 질문입니다 왜 감추셨는가? 그러면 한번 깊이 고민해보세요 창세전에 이걸 디자인하시고는 감추신 겁니다. 이게 하나님이 피조물을 향한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사랑의 표시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배려 심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피조물들은 이 신비를 소화할 수가 없는 겁니다. 잘못하면 이것 때문에 넘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피조물의 한계성을 아시기 때문에 충분히 훈련을 시킨 후에 충분히 정보를 제공한 후에 뚜껑을 열도록 디자인하신 겁니다. 창세전부터 숨겨놓으셨다가 주욱 해서 아담타락 4천년의 구약의 스토리 나중에 바울이 개종 후 20년 동안 주후55년까지 이걸 감추어 놓으셨다는 겁니다. 그만큼 자상하신 분으로 저는 묵상을 합니다. 배려심이 많으신 분이다 우리의 약한 부분을 아시고 우리의 한계성을 아시고는 이분이 이렇게 숨겨놓으셨다가 때가 되니까 이제 받아야 되는 그릇을 선정하셨는데 그 그릇들도 소수들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이것에 눈 감겨 놓았다 그랬습니다. 과거 2천년 기독교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 감겨 놓고 귀로 듣지도 못하게 해놓은 겁니다.
그런데 소수만 이걸 듣게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만큼 신비스럽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신비로움을 바울이 깨닫고는 그때부터 바울이 그 후에 서신들을 쓰시는데 그 서신마다 바울이 이 신비를 기록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57년에 바울이 로마서를 써셨습니다. 로마서16장25절26절에 이 신비를 또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서는 처음 8장은 기가 막힌 보배스러운 기독교의 교리들입니다 9장부터11장까지는 이방인과 유대인과의 관계성 12장부터 마지막16장까지는 크리스천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것 그러니까 로마서는 성경 중에 성경인 책인데 그걸 쫘악 설명하시고는 마지막 결론으로 창세전 십자가의 신비를 그대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숨겨놓았다가 이제 펼쳐놓는다 그리고 주후60년에서62년에 에베소서를 쓰실 때도 1장3절에서13절에 또 같은 해에 골로새서를 쓰실 때도 1장26절에 그리고 67년에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에게 유언의 말씀을 하실 때도 자기 영적아들인 디모데 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디모데후서1장9절에 그러니까 이 사상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계속 집어넣어 주시는 겁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욱 이 사상에 대해서 원시복음 적으로 알고 계시다가 순교1년 전에 주후64년에 베드로전서1장19절20절에서 창세전십자가사건을 베드로에게 가르쳐주시고는 순교1년 전에 이분이 자기제자들에게 이것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뒤늦게 바울과 베드로에게 가르쳐주신 이유가 뭘까요? 제가 설명했습니다. 배려하시고 왜냐면 소화력이 없기 때문에 실족할지 모르기 때문에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던 그러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복음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완전히 소화는 못하더라도 원시복음은 믿음의 근거가 되는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아담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로 약속하시고는 내려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단순 복음이 원시복음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은 원시복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충분한 겁니다. 성서에서 바울이 누구를 전도할 때 원시복음수준으로만 이야기하지 창세전에 이런 말 안했습니다. 이런 말 했다가는 다 도망 가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원시복음으로도 충분합니다. 여러분들도 저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제자가 되어서 제자가 되었다는 소리는 천국의 이 신비를 주변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제자가 되는 사람은 수직계명에 순종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창조목적에 순응하기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카테고리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제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천국파트너 역할을 할 사람들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상사명을 순종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제자로 보는 겁니다. 예수님도 열두제자들을 처음에는 그런 자격이 없었지만 이분들을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 신비를 가르쳐주면서 이것은 너희들만이 알아야 된다고 이렇게 주욱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복음으로도 구원은 충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머물려있어도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서 혹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가지고 창세전 십자가복음을 알고 싶거나 이것을 묵상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 제가 결론적으로 하는 말을 꼭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자가 되려면 우리가 창세전십자가에 관한 메시지를 저도 이걸 깨달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전십자가사건을 우리가 깨닫게 되면 갑자기 시각의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의정체성 삼위하나님의정체성에 대한 이해하는 모든 볼륨이 달라지고 크기가 달라지고 질이 달라집니다. 그뿐 아니라 초이성적 사고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성과 감성과 지성과 영성이 절대로 필요한데 여기다가 초 영성 초이성 간성 지성적 접근을 하도록 하나님이 눈을 확 뜨게 해주는 그러한 선물로 이것을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계관이 달라지는 겁니다. 과거에 원시적 복음만 가지고 있을 때는 이 세상에 우리가 살다가 그냥 간다. 그런데 초 원시적 복음을 가지게 되니까 이 세상에 대한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세상은 무슨 학교다
창조목적훈련학교라는 시각이 쫘악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 이 세상에 왜 사탄을 존재하게 했느냐 그기에 대한 대답이 나오는 겁니다. 왜 사탄을 지옥에 집어넣지 않았나에 대한 대답이 나오는 겁니다.
왜 이 세상에 사탄의 자녀들이 더 많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숫자가 적은가? 왜 사탄의 자녀들이 파워가 더 있고 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핍박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대답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도대체 이 세상은 무엇인가? 아하! 우리는 이 세상에 나그네들이구나. 이런 대답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시간에 연장해서 이 시각을 가지고 더 발전을 시킬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끊임없이 때를 따라 가르쳐주시는 성령님의 지혜와 명철과 지식으로 항상 넘쳐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2강. 창세전에 십자가 예정한 천국의 신비(고전2:7)
1.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습니까? 다른 죽음의 방법을 택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십자가 죽음의 과정이 왜 중요합니까?
그러나 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은 저주말소계획을 언제 짜셨습니까?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구절들은 무엇입니까? 원시복음(proto evangelium)이란 무엇입니까?
3. 바울이 창세전 십자가 예정하심에 대해 개종 후 20년간 모르고 계셨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4. 야고보와 마태는 어떠했습니까?
5. 바울이 마태복음을 접한 후 그의 신학형성에 어떤 영향을 받았습니까?
6. 바울이 주후55년 두란노서원 교육사역을 마칠 때 즈음 성령님께서 그에게 “십자가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주셨는데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7. 왜 바울이 자신이 받은 계시를 “신비”라고 표현했습니까?
8. 일반 그리스도인에게는 “원시복음”을 이해하고 믿고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제자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0yIQP8-H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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