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와 복 시리즈

1강. 신명기21장23절, 저주 받으시고 복 주신 예수님(부활절)

변명섭 2021. 5. 19. 17:10

저주와 복시리즈 1강. 저주 받으시고 복 주신 예수님(부활절)(신21:23)
우리기독교는 2대 절기가 있습니다. 성탄절과 부활절입니다.
두 절기는 과거2천년 동안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전통절기로 지켜왔습니다. 
평소에 주일성수를 안 하는 분들도 이 두 절기 때는 교회에 꼭 참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면 습관적으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또는 크리스천으로써 도덕적으로 의무감을 가지고 이렇게 중요한 예배의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들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성탄절과 부활절에는  특별행사도 하고 부활절 때는 이방습성인 계란도 나누어주고 목사님설교도 특별설교를 하고 이런 식으로 우리가 두 절기를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기를 지킬  때뿐이지 지키고는 그 다음날 되면 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절기를 지켰지만 큰 변화가 없는 그냥 연례행사처럼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람쥐 채 바퀴 돌듯 우리가 지금도 이런 생활을 하고 있고 오늘 부활절 예배도 이런 일환으로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교인들 중에도 오늘 말씀 듣고 내일이면 다 잊어버리게 될 겁니다. 
그래서 열심히 적어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또 어떤 분들은 부활절 예배에 참석했으니까 마음에 위로가 있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고민이 하나생기는 겁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식으로 부활절을 맞이해야만 할까요? 
무슨 돌파구가 없을까요? 라는 질문을 한번 던지게 됩니다. 우리가 종교의식에 또는 종교의 전통 탈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답답하기도 하고 이게 율법의 올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런 율법의 올무 예수님당시에도 유대인들이 율법의 올무 속에서 빠져나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2천년 동안 신약의 기독교인들도 율법의 올무에서 돌파구를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것을 미리 다 아시고 요한복음8장32절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예언적으로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데 너희들이 진리를 알게 될 터인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고 우리가 아주 즐겁게 이 말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여기서 사용하신 동사 안다는 단어가 헬라어로 기노스코(ginosko)라는 단어입니다 
기노스코(ginosko)라는 단어는 제가 사전에 찾아보니까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안다, 내가 인식하고 있다, 깨닫다, 또는 경험하다, 
한 단계 나가서 동참하다는 까지 사전에는 의미가 있다고 표현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4장7절에 예수님말씀이 너희들이 예수님을 알게 될 터인데 너희들이 나를 알게 되면 너희들이 그 진리가 예수님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겁니다. 종교의식의 올무에서 너희들이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이냐면 예수님이 실제로 오시겠다고 하셨는데 구약4천년 동안 오실 예수님을 그림자로 보여주었거든요 또는 예표로 로마서5장14절에는 예표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또는 히브리서8장5절에는 그림자 또는 모형 또는 히브리서9장9절에는 상징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모든 제사방법 구약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이 다 오실 예수님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한 비 본질의 모습들이라는 겁니다. 
그림자라는 그렇기 때문에 진짜 본질을 알게 되면 그동안 그림자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에 대해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겁니다. 진짜 예수님을 알게 되면 구약의 모든 모습들은 다 비본질적인 하나의 예표로 모형으로 상징으로 그림자로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본질인 예수님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데 안다는 말이 아까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경험하고 내가 인식하고 또는 나중에 이분과 교제하고 이런 모든 내용이 그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인 예수님이 실제로 이 세상에 오신 겁니다. 
오신 모습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그다음에 오신 그분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날이 부활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실제로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겁니다. 그러데 우리는 아직도 실제로 본질로 내려오신 이분을 종교화시켜서 절기만 그냥 지키는 범주 안에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면 아까 우리가 봤지만 부활절을 지키지 않으면 고난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죄의식도 있고 자유가 없는 겁니다. 자유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성탄절과 부활절을 지키면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본질인 예수님을 가까이 만나면 그 안에 뭐가 있느냐면 진정한 기쁨이 있는 겁니다. 진정한 행복이 그 안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안에 해방감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예수님인 진리를 우리가 보면서 부활절에 이분에 대해서 감사와 인격적인 만남으로 이분을 내가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분에 대해서 내가 잘 알아야지만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진정한 부활절을 진정한 고난절을 우리가 은미할 수 있고 그기에 대한 숨겨진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겁니다. 아니면 그냥 머리로만 알고 있거나 또는 주먹구구식으로 그냥 적당히 예수님을 알고 있거나 예수님에 대하여 정보수집정도로만 머리로만 알고 있으면 이 절기들을 그냥 절기로만 지키게 되어 있는 겁니다. 절기로만 그러니까 부활절에 담겨진 진리가 무엇일까요? 이 시간 이걸 깊이 보려고 그럽니다. 부활절에 담겨진 진리 이것이 무엇일까? 그러면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뭐냐면 부활절이 있기 전에 고난절이 먼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고난절이 전제 조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인데 예수님이 죽으실 때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질문입니다
도대체 죽으시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십자가에서 죽으셔만 되느냐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칼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참수를 당할 수도 있고 화형도 당할 수가 있고 독극물을 마시고 죽을 수도 있고 목매달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방법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도 있는데 하필이면 왜 십자가라는 방법을 예수님이 사용하셨고 이 방법에 의해서 죽으셨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그냥 십자가, 십자가 이렇게 하나의 죽는 방법 중에 하나구나. 이렇게 막연히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가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창세전에 이미 디자인 하신 겁니다. 창세전에 제가 성경구절을 많이 드렸지만 다시 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2장7절, 로마서16장25절26절, 에베소서1장3절에서14절, 골로새서1장26절, 베드로전서1장19절20절, 디모데후서1장9절, 제가 이 성경구절을 마르고 닿도록 여러분들에게 드려야 됩니다. 왜냐면 대단히 중요한 성경구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 삼위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창세전에 이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디자인하신 겁니다.
우리가 공부했지만 왜 이렇게 디자인하였냐면 장차 있을 장차 만들어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창조목적을 제대로 한번 고생시키면서 교육시켜주기 위해서라고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왜냐면 이 목적을 나중에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는가를 주전1500년에 모세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표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 고린도에 있는 지식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왜 메시야인 하나님의 아들이 왜 영광스러운 몸으로 오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왜 죽어야 되느냐?
저주받는 것인데 이렇게 질문을 던지니까 성령님이 바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고린도전서1장24절에 애들아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다 그러는 겁니다. 거기다가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표현을 하는 겁니다.
십자가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숨겨져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는 의미는 뭐냐면 예수님이 장차 이 땅에서 훈련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저주 속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이분들의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뒤집어쓰면서 이분들의 저주를 없애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창세전에 이미 계획하시고는 일을 이루시는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것을 깨닫고는 갈라디아서3장13절에 유명한 말씀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했다는 겁니다. 율법의 저주는 뭐냐면 아담타락으로 받은 저주입니다 아담타락으로 받은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겁니다. 오늘기가 막힌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제가 조금 더 발전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저주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저주(Curse)의 반대말은 복(blessing)입니다 복은 우리가 마태복음5장에서 복 있는 자는 복 있는 자는 우리가 다 배웠잖아요. 그럴 때마다 어떤 신학자들은 복 있는 자는 그게 헬라어로 마카리오스라는 단어입니다. 사전에 보면 해피(happy)한자는 해피(happy)한자는 복을 해피네스(happiness)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복 있는 자라는 것은 해피(happy)한자입니다 행복입니다 
저주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복 있는 자입니다 또는 해피네스(happiness)입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무슨 복을 받았습니까?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분에게 복을 내렸습니다. 창세기2장3절에 보면 복되게 하사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떤 복을 받았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첫 번째 아담은 우리가 보면 육이 있고 혼이 있고 영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23절에 보면 세 부분이 있습니다. 아담의 육이 복을 받은 겁니다. 아담타락 전에 항상 10세 나이수준의 남자모습입니다 그래가지고 나이를 먹지 않았습니다. 늙지도 않고 무병하고 죽음도 없고 썩지 않는 영원한 육의 모습으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아담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냥 벽을 뚫고 마음대로 가고 세 번째는 아담은 광속여행을 합니다. 생각만 하면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갑니다. 
우주를 마음대로 여행하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생각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뚫어보는 그러한 투시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수만 명과 멀티대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IT산업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또 대화도 많은 사람들과 즉시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1장29절에 보면 음식은 열매를 먹었습니다. 열매를 먹었는데 이 열매도 자기가 노력해서 생긴 음식이 아니고 다 무료로 하나님이 주신 무료음식입니다. 그뿐 아니라 창세기1장28절에는 자녀를 많이 낳게끔 허락하시고 번성케 하시고 땅에 많이 퍼지게끔 하셨습니다. 음식만이 아니고 집도 의 식 주 모든 것을 다 무료로 아담에게 육의 복을 주셨습니다.
혼적으로 받은 복은 첫 번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인격입니다 창세기1장26절27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성품 아버지하나님의 성품 성령님의 성품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이런 성품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성화를 한 분입니다 그다음에 창세기1장26절과 28절에 보면 아담에게 창조질서를 피조물들에게 가르치도록 다스리는 파워를 주셨습니다. 피조물을 관리하는 지휘권 관리권을 주었습니다.
인권을 받은 겁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들을 정복하라 말 안 들으면 명령도 내리는 특별한 권한을 주신 겁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님과의 파트너십(partnership)이라 이렇게 정의를 제가 내려 봤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보통 복이 아닙니다. 피조물들을 잘 관리하는데 뭘 관리하느냐면 창조목적을 피조물들이 모기도 그렇고 염소도 그렇고 코끼리도 그렇고 사자도 그렇고 무궁화 꽃 모든 피조물들 우주에 있는 별, 달, 전부다 관리하고 지휘하고 가르치는 이러한 권한을 가진 겁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이렇게 해서 피조물들이 창조목적을 잘 깨닫고 순종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일 격려하는 일 지도하는 일 가르치는 일 이런 책임을 부여받은 분이 아담과 그 후손들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에게는 책임이 따라오는 겁니다. 
무슨 책임이냐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됩니다.
인격적인 관계 또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존경해야 되고 그 뜻을 알아야 되고 그 뜻에 순종해야 되고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행복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행복해지고 기쁘시면 그 기쁨을 우리인간들에게 나누어주니까 인간들이 더 행복해지고 기뻐하는 이것이 창조주와 최소한 피조물 중에서도 인간과의 관계 이런 복을 아담이 타락 전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창세기1장10절과12절에 보면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이렇게 있잖아요. 그럴 때 셋째 날에 보면 육지와 바다와 식물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1장18절 넷째 날에는 해달별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왜냐면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으려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기분이 좋았던 겁니다. 창세기1장21절 다섯째 날에는 물속에 있는 동물들과 하늘의 새들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창세기1장25절 여섯째 날 오전에 땅위에 있는 각종생물들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 오후에 아담을 창조하시고는 모든 이런 권한을 다 주시고는 창세기1장 마지막31절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아담에게 기대가 컸던 겁니다.
그리고 아담이 영적으로 어떤 복을 받았느냐면 아담의 영이 있습니다.
사람의 영으로 로마서8장16절이나 고린도전서2정12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 하트(heart)의 더 깊은 곳에 사람의 영이 있는데 그 영에 성령님이 내려오셔서 내영과 성령님이 만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똑같이 아담의 영에 성령님을 부어 주셨습니다. 창세기2장7절에 그래서 아담이 살아있는 혼이 되고 살아있는 인간이 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복을 하나님의 영을 받았기에 된 겁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받았던 모든 육, 혼, 영의 복이 저도 여러분들도 우리가 낙원에 올라가면 그대로 회복하는 겁니다. 
바울이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빨리 죽는 게 좋다 그런데 너희들 때문에 내가 조금 더 살게끔 주님이 이렇게 하신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이런 복을 받았는데 불순종 때문에 저주를 아담이 받게 된 겁니다. 창세기2장17절에 그랬습니다. 네가 이것을 이렇게 해서 저 열매를 먹으면 너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아담에게 있었는데 아담이 그 말씀대로 불순종해서 죽으리라는 말은 영적으로 죽으리라 그것만이 아니고 육적으로 혼적으로도 죽는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육적으로 어떻게 죽었는가 보세요. 아담이 육적으로 시간세계 속으로 전략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육이 나이를 먹기 시작하고 늙게 되고 병이 들어서 아프고 그래서 창세기5장5절에 930세에 죽게 되었습니다. 
창세기5장에 나오는 노아까지 모든 분들을 보면 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 겁니다. 창세기3장19절에 보면 육이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의 육은 시간 속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게 된 겁니다 우리도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그리고 멀티대화가 불가능한 겁니다. 창세기3장16절에서19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음식도 채소를 먹게 하고 또 땅을 저주하셔서 땅에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자라서 농사를 지으면서 얼굴에 땀을 흘려야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저주를 받은 겁니다. 그리고 여자가 고통이 있어야지만 애기를 낳을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이제는 무료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육이 저주를 받은 겁니다. 우리가 저주받은 이 육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겁니다. 혼이 어떻게 저주를 받았는가 보세요. 
아담이 타락함으로써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던 분이 사탄의 형상을 닮아가면서 사탄의 성품으로 서서히 대체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가인을 보면 근방 알 수가 있습니다. 아벨을 질투심 때문에 죽이는 일 그러다보니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하게 됨으로 이분에게 주었던 모든 권한들 인권과 지휘권 가르치는 권한 관리하는 권한 다스리는 권한 창조목적파트너십의 권한들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아담의 영은 어떻게 되었냐면 하나님의 영의 떠나면서 사탄의 영으로 대체받게 되고 이제 죽는 아담이 된 겁니다. 사탄의 자녀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때부터 사탄의 일을 하는 존재로 창조목적의 위배자로 둔갑되어 버린 겁니다. 이렇게 아담이 복을 받았다가 저주를 받을 것을 신기하게도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알고 계셨던 겁니다. 창세전에 그래서 바울도 이것을 처음에 소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사실을 뭐라고 표현했냐면 그리스도의 신비다 그랬습니다. 에베소서3장4절과 고린도전서2장12절에도 보면 미스터리(mystery)라는 표현을 하고 이 미스터리(mystery)를 숨겨놓았다가 나중에 뚜껑을 열었다 그랬습니다. 로마서16장25절26절에도 미스터리(mystery)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숨겨놓았다가 이제야 뚜껑을 열어서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타락할 것을 미리 아시고 아담이 저주받을 것을 미리 아셨다는 겁니다. 저주받아가지고 아담이 시간 속으로 떨어져서 고통당하면서 어려움 속에 있을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미리 예정하셨다는 겁니다. 이런 개념입니다 그래서 시간 속에 얼마나 왜 있게 하였냐면 우리가 알다시피 7천년입니다 시편90편4절과 베드로후서3장8절에 보면 하루가 천년이라고 성서에 나오잖아요. 7일 동안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 세상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뭐하는 곳이냐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훈련받는 학교다 우리가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창조목적훈련학교가 이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년을 사는 것도 아니고 7천년 사는 것도 아니고 잠깐 살아야 100년 그것도 오래 사는 사람은 대개 7-80년 살다가 우리본향을 가는 이런 모델로 하나님이 예정하신 겁니다. 이렇게 창세전에 예정하시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목적훈련을 받도록 계획을 하셔서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시고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복을 아담에게 주셨던 이 복을 회복을 받아야 되잖아요. 이 복을 회복받기 위해서 창세전에 어떤 계획을 짰느냐면 이 세상에서 이렇게 공부하고 열심히 어려움 속에서 창조목적을 공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느 정도 때가 되면 이 사람들을 회복시켜주어야 되는데 회복시켜주는 일을 누구를 통해서 하느냐면 삼위하나님께서 예수하나님을 통해서 하도록 결정하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하나님 당신이 때가 되면 이제는 인간으로 내려가십시오. 그래서 눈높이 교육으로 이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눈높이 교육으로 가르쳐주십시오. 그리고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이 저주를 당신이 뒤집어쓰십시오. 왜냐면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창세전에 이미 십자가의 모든 사건들을 다 예비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숨겨놓으셨다가 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때가 되면 이것을 뚜껑을 여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을 예수님께서 아시고는 아담이 타락할 때 아담이 사탄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창세기3장15절에 사탄아 여자의 후손이 태어날 텐데 예수님입니다
너 후손과 싸움이 있을 것인데 여자의 후손이 이길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사건을 암암리에 설명하시는 장면이 창세기3장15절 말씀 우리가 이것을 원시복음이라 그랬습니다. 프로토 에반겔리온(proto evangelium)이라는 헬라어입니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어린양을 죽여서 어린양의 피에 의해서 그 어린양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게 되는 형식을 4천년 동안 그대로 가르쳐준 겁니다.
죄 사함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린양이 저주를 받아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주후1500년에 모세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겁니다. 십계명도 주셨지만 모세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인 신명기21장23절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자임을 모세에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십자가를 볼 때 아!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저주를 대신 뒤집어쓰시는 그 모습이 십자가구나 라는 것을 그래서 나에게 아담이 타락 전에 가졌던 복을 다시 회복시켜주시기 위해서 그 저주를 이분이 뒤집어쓰시는 것이 저 십자가구나 그래서 창조목적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이런 방법을 디자인하셨구나. 이렇게 하면서 주전천년이 되었습니다. 다윗이라는 사람 앞에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야훼가 다윗에게 나타나서 다윗이 영의 눈이 뜨지는 겁니다. 다윗이 보니까 웬 분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모습을 다윗이 본 겁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까지도 다 듣는 겁니다. 그게 시편22편입니다 특히 시편22편1절은 그분이 저주를 받는 순간에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다윗이 영의 눈을 뜨고서 본 겁니다
비디오로 보듯이 TV화면을 보듯이 뭐냐면 나의하나님, 나의하나님 그러니까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아버지께서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고백을 쫘악 보는 겁니다. 나를 왜 버렸습니까? 그러면 우리질문이 있는 겁니다.
어떻게 성부하나님이 성자하나님과 같은 레벨이고 같은 권한을 가진 분인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완전히 인간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451년 칼케톤 회의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은 100%신이시고 100%인간이시다 다시 말하면 신성을 33년 동안 완전히 비우신 분입니다 
빌립보서2장7절에 바울이 표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은 당신들과 같이 100%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이분이 저주를 받으시는 이 순간에 이 고백을 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왜냐면 저주라는 이게 어떤 저주냐면 앞으로 태어날 하나님의 자녀들 현재 하나님의 자녀들 또 과거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저주를 이분이 한꺼번에 뒤집어쓰는 장면이 이 장면인 겁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고통 속에서 인간 예수님이 엄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 저주를 뒤집어쓰시면서 그 무거움과 아픔을 고백하는 장면을 주전 천년에 다윗에게 미리 보여주신 겁니다. 시편22편1절에 그리고는 300년 지나서 주전700년에 이사야에게 또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사야서53장4절에서6절에 4절에 그랬습니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다시 말하면 저주를 이분(예수님)에게 다 지우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고통이 엄청난 겁니다. 이 모습을 나중에 세례요한이 30살 되는 예수님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요한복음1장29절에 보라 세상의 하나님의 자녀들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주후30년에 실제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가지고 십자가상의 가상7언 우리다 알잖아요. 우리가 머리로만 다 알고는 예수님의 아픔을 체험을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27장46절에 십자가에 매달려 마지막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구시(오후3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을 미리 누구에게 했습니까? 천 년 전에 다윗에게 하셨던 말씀을 그 순간에 예수님이 똑같이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숨을 거두는 그날이 우리가 고난주일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고난주일에 거룩하게 지내자 고난주일에 예수님의 아픔을 묵상하자 이 수준이 아닌 겁니다. 이런 수준으로만 보지 마세요. 
고난주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창세전에 우리인간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탄의 자녀들을 사용해서 우리를 훈련시켜서 창조목적훈련을 시켜서 창조주가 우리에게 창조의 파트너십을 주어서 장차 영원세계에서 많은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파트너로써 피조물들을 잘 섬기고 창조목적에 잘 순응하기 위한 책임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 훈련을 시키시려고 우리를 이 세상 시간 속으로 집어던져가지고 7천년도 아니고 우리는 고작해야 5-60년 훈련 받다가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저쪽으로 간다는 것은 아하! 이 훈련을 시키시려고 우리를 이렇게 고생을 시키시구나. 나에게 주셨던 이 모든 저주를 이분이 뒤집어쓰셨구나. 
그래서 나는 완전이 복을 회복 받았구나. 이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19장30절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언제 시작했는데 다 이루어신 겁니까? 
이 프로그램이 창세전에 시작하신 이 프로그램을 이제야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숨을 거두신 겁니다. 그러니까 분명한 목적이 계시기에 다 이루었다 그러는 겁니다. 그냥 막연히 아담이 죄를 지어서 이분이 아담 때문에 이렇게 내려오셨다는 이런 수준이 아닌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트레닝 프로그램 속에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난주일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날입니까? 고난주일이라는 의미는 우리의 저주를 이분이 뒤집어쓰시고 아담이 받았던 세 가지 육, 혼, 영의 복을 회복 받는 날이 고난주일입니다 
그러면 부활주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는 예수님이 죽는 그 순간에 어디에 가셨습니까? 음부에 내려갔습니까? 아닙니다.
나중에 잠깐 내려간 것뿐입니다 이분이 강도에게 뭐라고 그랬습니까? 
누가복음23장43절에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분이 다 이루었다 하면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낙원에 올라가신 겁니다.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이분이 잠깐 음부에도 내려가셨습니다. 
우리개념으로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다 이루었다면서 숨을 거두시면서 고난주일로 끝냈습니다.
그리고는 부활입니다 부활주일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사건 때문에 우리에게 지금 저주가 지금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의 저주를 누가 대신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저주받은 인물들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활주일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저주에서 해방되어가지고 우리는 예수님이 이미 낙원에 올라간 것처럼 우리는 이미 낙원에 올라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낙원에 올라간 사람들인데 우리는 아직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육이 회복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육이 회복을 받았는데도 아직 우리의 육이 이 세상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회복 안 받은 사람 모습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이것을 지연된 회복이라 그러는 겁니다. 
지연된 복이라 그러는 겁니다. 뭐냐면 육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아직 저주 속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저주 속에 있지만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이 이미 회복 받은 존재들입니다
왜 그러면 회복 받아 놓고는 이 세상에 사느냐면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사명을 이루 기 위해서 잠깐 지연된 복(Delay Blessing)을 준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겁니다. 
병이 있어도 그까짓 병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겁니다. 조금 어디가 불편해도 그까짓 것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조금 일찍 죽으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저 나라에 가는데 우리는 이미 이 문제 다 해결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빨리 가는 게 낫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돈벌이 때문에 신경 쓰고 자녀 때문에 신경 쓰고 뭐 때문에 신경 쓰고 이것들 예수님께 다 맡겨버리세요. 이미 우리는 저 나라에 간 사람들입니다 왜 이 세상 것 가지고 그렇게 난리를 칩니까? 왜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회복과 저주의 이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혼적으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이미 저쪽나라 분들입니다 혼적으로 저쪽나라로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사탄의 성품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회복된 사람들이니까 날로, 날로 성화되는 겁니다. 성화가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서 저쪽나라에 올라가면 계급이 설정된다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이미 우리는 다 성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얼마만큼 이 세상에서 성화를 우리가 실천해나가느냐 입니다. 부활절은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 우리는 천국백성들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이것은 지연된 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성취된 복입니다. 영적으로는 육적으로는 지연된 육적 복입니다 혼적으로도 지연된 복을 가지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인스탄트(즉시,instant)입니다 즉시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미 천국비자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활절은 천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잠깐 육적인 이 세사에서 지연 된 복 속에서 혼적으로 지연 된 복 속에서 우리는 천국 시민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날로, 날로 성화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성만찬 하잖아요.
성만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고난주일을 생각하는 겁니다. 고난주일은 무엇입니까? 이미 나를 예수님이 피 흘리시고 저주를 뒤집어쓰셨다는 의미로 고난주일 날에 성만찬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저주를 뒤집어쓰셨다 그래서 나는 저주가 없는 존재다 거기에 대한 감사와 이런 것을 묵상하면서 나의 신분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는 그러한 의미로 우리가 성만찬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그러면 아하! 지금 지연된 육과 지연된 혼이지만 나는 이미 천국페스포트를 가진 사람이야 여기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는 그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 나이에 시간 있으면 여러분들을 섬기면서 바깥에 뛰어 다니잖아요. 만방의 주님의 백성들에게 이것을 집어 넣어주면 좋아서 춤을 추면서 난리를 치는 겁니다. 춤을 추는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잖아요. 여러분들도 뒤에서 기도 많이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히브리서11장13절에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것이 타국이다 우리는 순례자다 베드로전서2장11절에 우리는 이 세상에 나그네다 야고보서4장14절에 야고보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랬습니다. 
우리 본향은 저쪽나라다 본향을 바라보면서 살자 그러니까 장례식이 눈물바다가 되면 안 되잖아요. 장례식은 파티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우리크리스천들과 비 크리스천들 사이는  세계관이 다른 겁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주일 날은 무슨 날입니까?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셔서 세 가지 복을 다 주신 말이다 부활절은 무엇입니까? 이미 우리는 천국패스포트와 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잠깐 지연된 육의 복과 혼의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 왜냐면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은 부활절로 제가 제목을 뭐라고 말했습니까? 저주받으시고 복 주신 예수님 제목과 부합됩니까?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교회와가지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살까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까 이것만 만약에 교회서 가르친다면 교인들을 잠자게 만들고 병신 만들어 놓는 겁니다. 
이미 저주는 주님이 다 받으시고 우리는 예수 안에서 행복해져야 되는데 외쳐야 되는데 행복을 나누어주고 행복을 외쳐야 되는 게 우리의 사명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은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이 우리의 고향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며 우리는 타국에 와서 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며 우리는 순례자이며 나그네이며 안개 같은 전제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 저희들에게 영적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우리의 시각을 이 세상에만 집중하지 않게 해주시고 저 세상도 보면서 동시에 이 세상도 집중하면서 살 수 있는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왜 나를 이 세상에 보냈는지를 깨닫는 지혜 자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예수님께서 때가 되어 우리들을 본향으로 불려 가실 때 우리가 기쁨으로 감격으로 감사로 떠날 수 있는 이런 복된 자들이 되게 하시고 우리 가족들이 되게 하시고 우리 주변에 사랑하는 모든 우리형제자매들이 되게 할 수 있도록 특별히 부활절을 맞이해서 이 복을 우리에게 주시고 날로, 날로 이 복이 더욱 구체화되는 그러한 복된 우리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상은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끊임없이 가르쳐주심과 깨닫게 하심과 순종케 하심이 우리에게 항상 있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저주 받으시고 복 주신 예수님(부활절)(신21:23)
1.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의 위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습관적으로 부활절을 맞는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2. “고난절 십자가”에 담겨진 “진리”와 “부활절”에 담겨진 “진리”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창조목적 교육을 위해 다른 방법을 사영하지 않으시고 십자가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4. 아담이 타락 전에 받았던 “육혼영의 복”이 무엇입니까? 
5. 아담이 타락 후에 받았던 육혼영의 저주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하나님이 미리 창세전에 예정하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6. 어떻게 이 “저주”를 “복”으로 회복 받을 수 있습니까?
7. 창3:15; 신21:23; 사53:4-6; 마27:46; 요16:30에 나타난 예수님의 “복” 주시는 과정을 구약에서 그림자로 보여주셨던 내용들과 신약에서 실제 보여주신 내용들이 무엇입니까?
8. 고만절과 “부활절”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9. “지연된 복”과 “성취된 복”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됩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YIsqwQs8g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