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기독론

7강, 마태복음1장21절-23절, 예수님의 이름

변명섭 2019. 12. 31. 09:24

기독론 7강, 예수님의 이름(마1:21-23)   2007년4월29일 말씀
오늘은 제가 중요한 예수님의 이름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정말로 중요하니까 항상 중요하지만 특별히 중요하니까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름에 관한 말씀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1장21절에서 23절입니다,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리가 지난시간에 예수님의 선재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구약에도 계셨고 구약 훨씬 전에도 예수님이 계셨다, 
라는 말씀 기억나시죠, 예수님이 계실 때 마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신 게 아니고 다른 이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많은 다른 이름이 상당히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래서 예수님의 다양한 이름들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창세기1장1절이 성경에 제일먼저 시작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하나님 그 이름을 원어를 보면 엘로힘(Elohim)이라고 그럽니다,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엘로(Eloh)라는 단어는 단수인데 im이 붙으면 복수입니다, 
그러니까 단어 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들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동사는 단수동사입니다 복수명사인데 그러니까 삼위일체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삼위하나님이 창조를 하신 겁니다, 
다 알다시피 삼위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계획하시는 하나님은 성부하나님이고 또 직접수행하시는 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이시고 힘을 집어넣었던 하나님은 성령하나님이라고 우리 다 들었잖아요, 
그러다가 하나님이 이제부터 자기 이름을 다양하게 우리 인간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이름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이름은 저도 내 이름이 있고 여러분들도 이름이 있잖아요, 이름은 그분의 정체성을 알려주기 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이라는 것은 이름을 딱 부르면 그분의 정체성이 거기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왜 이름을 가지고 우리하고 관계를 맺습니까, 
우리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의 이름을 마음대로 부릅니까, 
우리가 우리 부모님 우리아버지 이름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아버지 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 네들 내 이름 부르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별난 이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창조주가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피조물들이 이해하도록 피조물스타일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이분이 평소에 쓰는 이름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이분이 우리와 대화하고 싶고 그분의 사랑을 얼마나 우리에게 주고 싶으면 이렇게 사람의 이름을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름 때문에 어떻게 우리가 감히 창조주의 이름을 부르느냐 그래가지고 이분들이 이름을 안 부르기로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래서 창조주를 GOD, 엘로힘(Elohim) 이러한 이름으로 유대인들이 바꾸었습니다, 바꾸어서 하나님이 엘로힘 하면서 또 하나 주신 이름이 내 이름은 야훼다 여호와다 그랬습니다, 
여호와라는 뜻은 조금 있다가 설명하겠지만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여호와라는 야훼라는 이름을 감히 부르지를 못해가지고 야훼라는 이름에 모음을 다 뽑아가지고 그냥 이름을 안 부르고 그냥 그분의 이름이 성서에 나오면 입을 다물고 절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성서를 읽을 때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다고 할 때 하나님이 하면 인사 하고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다음 또 하나님이 너를 사랑했다고 할 때 하나님이 나오면 말을 안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지금도 통곡의 벽에서 기도할 때 벽에 이마를 대고 인사를 하는 모습은 여호와, 야훼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하였는데 그만큼 이 사람들은 여호와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나 그 밖의 기독교는 부릅니다, 
그 이름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입니다, 이름 속에 그분의 정체성이 들어있다고 그랬습니다, 이름 속에 그분의 모든 성품이 들어있고 그분의 가치관이 들어있고 그분의 인격이 들어있고 그분의 삶의 스타일이 들어있고 이름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작명소에 가잖아요, 
그래서 어떤 여자분 이름이 말순이라는 이름이 있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말순이 하는 것은 하도 딸을 많이 낳으니까 딸을 그만 낳으라고 말순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름에 여러 가지 뜻이 있듯이 이름만 잘 지어면 복 받는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중간에 이름을 작명소에 가서 바꾸고 그런 일들이 있듯이 우리나라 이름은 용 용(龍)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복 복(福)가 많고 이름을 보면 그 사람의 모습을 알듯이 이름 속에 그분의 모든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하시는 말씀이 창세기2장4절에 아담아 내가 너에게 새 이름을 줄게 그러면서 처음으로 여호와하나님이라 그럽니다, 여호와라는 뜻은 야훼 나중에 여호와가 아도나이(Adonai)라는 이름으로 변했습니다, 아도나이라는 것은 뭐냐면 주라는 소리입니다 
그것이 신약에 들어와서 주님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헬라말로 꾸리오스라 그럽니다, 
이렇게 주님. 주님 하는 것이 아도나이 그것이 나중에 여호와라는 이름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주님이라는 게 그래서 영어성경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신약에 와서 전부 주님으로 번역을 해 버렸습니다, 주님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이 무슨 뜻이냐면 계약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제호바라 그럽니다, 계약하시는 무엇을 계약하느냐면 법적인 계약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셔가지고 죄인 된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십자가의 보혈의 그 계약을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 여호와라는 언약하시는 계약하시는 그러니까 우리가 구약에서 여호와하나님하시면 거기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냄새를 우리가 맡을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거기에 다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무엇입니까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엘로힘이라는 것은 그래서 두 이름이 붙어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황용현 그러면 우리할아버지가 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뒤에다가 목사라 붙이면 내가 누굽니까 황용현 인데 내가 하는 일이 목사입니다 그러면 나도 이름이 많잖아요, 우리아이들은 날 보고 아버지라 부르잖아요, 또 제가 학교에 가서 가르치면 황용현 교수님 이렇게 부르고 이런 식으로 내 이름에 여러 가지 타이틀이 달라붙습니다, 하나님도 똑 같습니다, 
우리예수님도 이름에 타이틀이 많습니다, 
여호와하나님 그러면 무엇을 상상하셔야 됩니까, 예수의 보혈과 창조주시구나 이것을 딱 머릿속에 떠올려야 됩니다, 묵상을 하실 때도 여호와하나님 이 여호와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구약에서 엄청나게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창세기12장부터 주욱 아브라함이야기거든요 거기 보면 끝없이 나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벧엘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여호와이름을 불렸더라, 그랬습니다, 창세기12장8절에 보면 그러다가 또 나중에 가서 아브라함에게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느냐면 창세기14장에 가면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의의 왕 이렇게도 나타나시고 또는 천사의 모습으로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시고 어떤 때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이삭을 바친 후에는 이삭의 사건을 통해서는 여호와이레다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레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준비하시는 겁니다, 
여호와 그러면 무엇입니까 예스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구속주지만 내가 나의 어떤 매일 매일의 필요를 내가 제공해주는 여호와이레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모세에게도 출애굽기3장부터 여호와의 사자가 모세에게 나타났다 알고 보니까 예수님 이였습니다, 여호와가 나타났다 예수님입니다 나중에 3장6절에 모세에게 그러는 겁니다, 내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이삭의 하나님이다 야곱의 하나님이다 이게 뭐냐면 예수님이 자기 이름을 이런 식으로 그때 가서 상항에 맞게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여호수아가 나중에 아말렉하고 싸움을 할 때 출애굽기17장15절에 보면 내가여호와 이시다 그럽니다, 
승리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승리를 베풀어주는 여호와라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에서 이런 모든 모습으로 나타난 겁니다, 
그러시다가 나중에 이분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출애굽기20장에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그러시는 겁니다, 
갑자기 질투라는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좋은 이름이 아니잖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질투를 하십니까, 
이런 이름들이 나중에 기드온에게 사사기6장24절에 나는 여호와 살롬이다 이렇게도 말씀하시고 나중에 다윗 때 가서는 이분이 다윗 때 보면 시편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 이렇게도 말씀 하셨잖아요, 
시편91편에 보면 여러 가지 이름들이 나옵니다, 
나의 지존자라는 것은 영어로 더 모스트 하이(the Most High)저 위에 계시는 여호와시여 전능자 되시는 여호와시여 그리고 이 밑으로 내려와서 그러는 겁니다, 나의 관계 속에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시고 요새가 되시고 나의 은혜 하는 하나님이 되시고 나의 방패가 되시고 나의 손 방패가 되시고 이 말씀 전부다 다윗의 시편91편에 다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또 시편95편1절부터 주욱 보면 다윗에게 또 그러는 겁니다, 
뭐냐면 나의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이시여 여러모로 나옵니다, 다윗에게는 시편118편2절에 보면 아주 묘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예수님 당신은 건축자의 버린 돌입니다 그러는 겁니다, 버렸다는 말은 배척을 당했다는 소리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배척을 하는 그러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건축자의 버린 돌이고 그다음에 우리 이방인에게는 모퉁이 돌의 머릿돌입니다 그러는 겁니다, 코너스톤(Cornerstone)이런 다양한 말씀을 하시다가 나중에 바울에게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는 말이 나옵니다, 
다윗은 시편144편1절에 그랬습니다, 
나의 반석이 되시고 나의 여호와가 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런 식으로 주욱 나오다가 다윗의 아들 되는 솔로몬은 아주 묘한 표현을 하였습니다, 
아가서2장1절에 보면 예수님은 샤론의 수선화요 그랬습니다, 
샤론의 수선화라는 말은 장미라는 뜻입니다 장미꽃 같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샤론의 수선화요 또는 골짜기의 백합화입니다 우리가 지금 음침한 골짜기 속에 들어가 있을 때 백합화로써 나타나시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가쁨을 주는 그러한 예수님을 표현하는 겁니다, 
우리 찬송에도 있잖아요, 우리가 나중에 그 찬송을 부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라는 겁니다, 창조주가 엄청난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우리에게 스스로 누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엄청나게 예수이름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많은 여호와이름 중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이런 이름이 나옵니다, 
만군이라는 말은 군이라는 말은 천사 군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여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예수님이 계신데 거기에 수만 수천의 천사들이 예수님 뒤에서 진을 치고 있구나, 
이것을 연상하셔야 됩니다, 이사야가 항상 그것을 본 겁니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여 하는 것은 천사들로 진을 치고 있을 때 보혈을 흘리는 예수 구속 주 예수님이시구나, 라는 것을 연상케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여 하면 이것을 우리가 그림을 그려야 되는 겁니다, 
이사야가 그러는 겁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전능자여 그러면 이분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예수님이 만군의 여호와여 그다음에 뭐였습니까, 전지전능하신 자여 이 예수님이 표현됩니다, 나중에 이사야7장4절에 처녀를 통해서 임마누엘이 나온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임마누엘로 표시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그 임마누엘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에게 나오는 말씀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전능하신 이스라엘의 빛이 되시는 분이시여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의 빛이 되시는 분이시여 이사야서10장17절에 보면 영원한 반석이시여 의로 통치할 왕이시여 이사야에게 말하기를 이분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서44장6절입니다, 
나중에 알파와 오메가를 예수님이 요한에게 말했습니다, 
밧모 섬에서 내가 알파와 오메가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600년 전에 이미 이사야에게 내가 알파와 오매가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십니다 예레미야에게도 하신 말씀이 굉장히 많습니다, 
에스겔에게도 하신 말씀을 다 보면 여호와하나님. 여호와하나님 계속 나오다가 호세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호세아에게 주신말씀 중에 기가 막힌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호세아서14장5절6절에 보면 나는 이슬이다 백향목이다 감람나무다 이런 표현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또 아모스에게 뭐라고 말씀하였냐면 나는 만군의 여호와다 요엘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주시고 요나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주시고 미가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미가서5장2절에서4절에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텐데 그 예수는 여호와의 능력이다 그랬습니다, 
또는 하나님여호와의 이름이 그분이름이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훔에게는 내가 투기하는 하나님이다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그랬습니다, 
또는 하나님여호와의 이름이 그분이름이다, 라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에게도 똑같습니다, 여호와는 반석이시다 스바냐에게도 똑같이 우리 스바냐3장17절에 너희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실 때 그럴 때 스바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다 그러니까 구속주다 구원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다양한 이름을 스가랴에게도 똑같이 이렇게 구약에서 하시다가 신약에 들어와 가지고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내 이름은 예수다 그러는 겁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하는 자다 그리고 그분이 임마누엘이다 그러는 겁니다, 구약의 다양한 이름들을 하나로 묽어가지고 나는 예수다 그러는 겁니다, 그때부터시작해서 마태에게 보여주시는 장면을 보면 이분이 큰 빛이다 그리고 사복음서에서도 보면 제자들에게 성부하나님이 예수님을 뭐라고 그러냐면 이분은 내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기뻐하는 아들이다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구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다 이분이 이스라엘의 위로자다 이분이 이방인을 비추는 빛이다 이분이 이스라엘의 영광이다 이분이 죄 사함을 하는 권세자다 이분이 유대인의 왕이다 이렇게 계속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처음부터 이분이 말씀이다 이분이 참 빛이다 이분이 독생자다 독 생하신 하나님이다 그리고는 또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이분이 메시아다 그리스도다 그냥 예수이름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나중에 예수님 본인이 또 그러는 겁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산 떡이다 그러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떡이다 생명의 떡이다 요한복음6장에 나오는 말들입니다, 
내가 참 양식이다 참 음료다 요한복음10장에 가서는 내가 양의 문이다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내가 선한 목자다 15장에 가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다 그래놓고는 하시는 말씀이 내가 참으로 너 친구다 그러는 겁니다, 
창조주부터시작해서 거침돌이다 뭐다, 뭐다 내가 너 친구다 세상에서 이런 다양성을 가진 예수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그러는 겁니다, 
이분이 언약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의 씨다 이런 모든 것을 가지고 바울의 신학 속에서 그러는 겁니다, 로마서3장25절에 예수가 화목제물이다 고린도전서에 와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반석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예수에 관한 엄청난 이야기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다 그다음에 골로새서3장11절에는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시고 만유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만유라는 것은 우주 삼라만상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모든 이것이 다 그리스도의 손아귀에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이 만유 구석구석에 다 계시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소부재하신 분이다, 라는 겁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는 이분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이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이다 요긴한 모퉁이 돌이다 이분이 목자장이다이분이 맏아들이다 이분이 대제사장이다 히브리서에서 계속해서 그러는 겁니다, 이 사람은 멜기세덱의 반차로 가진 대제사장이다 영원히 더 좋은 언약을 가진 중보자이다 더 좋은 재물이다 이분은 믿음의 주다 새 언약의 중보자도 예수님이 그러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뭐라고 그럽니까, 이분은 알파와 오메가고 아시아 일곱 교회를 상대로 해서 편지 보내실 때 예수님이 직접 요한에게 하시는 말씀이 에베소교회에 그러는 겁니다, 내가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다니는 그러한 자가 나다 그러는 겁니다, 서머나 교회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직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 하나님이다 또 이분이 말씀하시기를 버가모 교회에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하나님이다 두아디라교회에는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데 교회에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자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러한 하나님이시다 라오디아교회에는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이러한 엄청난 많은 이름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계시록5장5절에 요한이 그러는 겁니다,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어린 양이다 일곱인 을 떼시는 어린 양이다 하나님의 혼인잔치에서는 신랑이다 만왕의 왕이다 만유의 주다 다윗의 뿔이요 전능한 새벽별이다 너무나 이름이 많은 예수님 여러분들 그냥 예수라는 그 이름 속에 이 엄청난 하나님의 그 속성이 들어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냥 예수 믿자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이게 얼마나 시시한 말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만유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개미로 볼 때 개미들이 자기네끼리 싸움을 할 때 그냥 발로 밟아버리면 끝나지만 하나님이 가만히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너희들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해라해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나중에 엄청나게 두들겨 맞을 겁니다, 이분이 엄청나신 하나님의 크심과 그분의 사랑을 내가 체험을 해야 되잖아요 왜 예수님이 우리 피조물들에게 우리가 왜 개미에게 개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개미의 사회 모든 단어를 다 창조해가지고 내가 누구다 내가 누구다 하고 알려주는 것과 똑 같습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이 엄청난 사랑을 우리가 왜 이해를 못하는가, 
이겁니다, 못합니다, 그러니까 피조물입니다 저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천지를 지으시고 천지를 지배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한손에 쥐고 계시는 분이 왜 이런 잡다한 이름을 갖다가 우리에게 갖다 바치시고는 어떤 이름들은 보세요, 주석적인 이름들도 있습니다, 
나는 거침돌이다 나는 이슬이다 백향목이다 백합화다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 이름을 막 만드십니까, 그러면 주님이 세미한 음성으로 나에게 너희들에게 내가 누구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시시한 너 네들 단어를 내가 쓰는 거다 우리 거룩하신 예수님이 거룩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피조물과 구별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이 피조물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신데 이 예수님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피조물들보다도 더 하찮은 피조물들 그런 이름들로 막 쓰십니까 내가 바위다 내가 어린 양이다 내가 참 포도나무다 이게 뭡니까 내가 새벽별이다 여러분들에게 새벽별이다 백향목이다 그러면 좋습니까, 거룩 성이 보이잖아요, 
세속적인 이름으로까지 이분이 낮아져가지고 내가 그렇다 내가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것을 문자적으로 받아주니까 예수님을 심각하게 생각안하는 겁니다,  그냥 할렐루야, 할렐루야 백향목입니까,
장미입니까 할렐루야 아멘 이 정도입니다 왜 이분이 이런 이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는가, 우리가 그 깊이를 보지를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를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왜냐면 내가 이런 이름을 잘 보지 못하면 우리가 어떤 때는 혼돈하기도하고 우리 믿음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이름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어느 종교가 그 종교의 선지자나 또는 신이라고 하는 그러한 존재들이 자기 자신을 적나라하게 이렇게 표시하는 종교가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슬람 같은 종교는 이렇게 했다가는 큰 일 납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랑을 우리 피조물들에게 이렇게 보여주시면서 우리 인간을 배려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무례히 행치 않는 다는 것은 저쪽 이웃을 배려해주는 겁니다, 
저분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수준으로 내려가서 배려해주는 그렇기 때문에 항상 무례히 하면 안 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이런 사랑을 무례히 행하지 않고 항상 이웃을 배려해주는 내가 이렇게 하면 저분이 상처받을 텐데 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비슷한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이 이렇게 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낮아 주어야지 내가 성육신해야지 그래서 이렇게 주욱 낮아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그 융통성이 이분이 우리 수준으로 내려와서 눈높이로 내려와서 본인을 포기하는 그래서 저분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아주 핵심의 정신 중에 하나입니다 성육신정신 눈높이로 내려가는 정신 그러다 보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가 백 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예배를 이렇게 들렸으니까 그냥 지금 우리도 이렇게 보자 안 그러면 잘못됐고 이단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변화를 안 하려는 사람들이 왜냐면 사회는 자꾸 변화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의 본질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메시지를 전할 때는 받는 분들의 수준으로 내려가 주어서 우리가 자꾸 변화가 되어야 됩니다, 본질은 그대로 가지고 있고 그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고 가족생활에도 부부생활에도 똑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저쪽 사랑의 대상을 내가 자꾸 그분의 입장에서서 내가 자꾸 양보해주고 변화시켜주고 이해하여주고 그분이 내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겁니다, 내가 과거에는 이랬으니까 이것이 진짜다 이 외에는 안 된다 고집부리는 사람은 이것은 아닙니다, 
본질을 가지고 계시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나의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서 내가 변해주어야 합니다, 그분이 소화할 수 있도록 예배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부분에서 우리 자녀를 이해하는 것도 그런 수준에서 자녀들을 그 수준으로 우리가 이해해주고 교회생활도 마찬가지고 선교하는 사람들은 다른 문화 사람들을 다루기 때문에 그 문화를 이해하여 주고 그 문화 속에서 내가 양보해주고 그 문화 스타일로 내가 듣고 변화시켜주고 이렇게 해주어야 됩니다, 우리문화를 가지고 한국에서 이렇게 했으니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러면 안 됩니다,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맘대로 융통성을 가지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은 그릇이 크시기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다, 
우리 골로새서3장11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만유이시고 만유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답니다, 이분은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만유를 다 쥐고 계시기 때문에 그 안에서 찌지고 볶고 하는 것 그래 찌지고 볶으라, 찌지고 볶으라, 
본질만 변화지 않고 안에서 찌지고 볶던 주님이 이렇게 놓아두시는 겁니다, 통이 크시니까 어떤 가정에 아이들 세 명이 있는데 공부 잘하고 못하는 아이들 그대로 놓아두세요, 그러면 그 안에서 빙빙 돌아서 나중에 공부제일 못하는 아이가 효자노릇 합니다, 크게 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크게 보았잖아요, 
예수님을 닮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커져야 됩니다, 
이 울타리 속에서 모든 사람들을 안아주는 연습 이것을 나도 못했는데 이것을 내가 깨닫고 난 다음에 그걸 못하는 사람들 보면 답답한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려주어야 됩니까, 성령님이 알려주어야 됩니다, 
성령님 외에는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꽉 막힌 사람은 항상 심각합니다, 
그릇이 조그만 사람은 예수의 그릇으로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다양 속에서 본질이 변화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보면 우리가 알 수 있잖아요 다양 속에서 예수님의 그 본질 예수라는 이름 본질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이 세상에 와서 내가 나의 택한 백성들을 내가 살기 위한 생명을 주기 위한 그 본질 예수의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면 우리가 이제 예수하면 그 이름 속에 이 다양한 모든 것이 다 한 묶음 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라, 하면 쫓아내고 예수이름으로, 예수이름으로 예수이름 안에 하나의 묶음으로 들어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고마운 이름입니까, 예수라는 이름이 성부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숨겨져 있는 그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우리가 경배 드리고 찬양 드리고 그래야 되겠습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PMZ9Eo7f1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