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인간론

14강,로마서8장28절,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 2(영성훈련

변명섭 2019. 11. 23. 19:11

인간론 14강,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 2 (영성훈련)(롬8:28)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말이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주님이 사랑한다는 말이 첫째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계명이 있습니다. 그 계명이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하는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을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하는 그 말씀은 용서해주고 긍휼을 베풀어주고 또 안아주고 자비를 베풀어주고 친절을 베풀고 이런 것이 다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이것이 나의 삶 속에 연결이 될 때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다. 내가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주님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것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주님과 대화할 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실 때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의 두 번째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지만 보혜사성령님에 관 한 이야기를 다 기억하시겠죠. 보혜사 성령님은 인격자로써 우리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시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뭐냐면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돕는 분입니다. 그래서 헬퍼라 합니다.

우리를 대변해 주시는 분입니다. 대변자. 이분은 우리 옆에 항상 와 계신분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옆에 같이 계시지만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라 그래가지고 내가 초청하여만 내 옆에 오셔가지고 나한테 임하시는 분입니다.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는 성서에서 어떻게 말로 표현하느냐면 나한테 임하신다. 임하신다. 그렇게 이분이 네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이분이 내 머리위에 이렇게 임하십니다.

내 속에 계신 분은 같은 성령님인데 퓨뉴마(Pneuma) 성령님은 내 속에서 그냥 계시고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보혜사 성령님은 나에게 임하십니다. 이 개념을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한테 이렇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임하시기 때문에 이분을 초청해야 됩니다.

크레토스(CLETOS)라는 이름은 수동형이라 하였습니다.

영어로 비 인바이티드 그런 말입니다. 크레이토스(CLETOS)를 항상 초청 하여야만 이분이 나에게 이렇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초청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 중에서 찬양으로써 이분을 초청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분은 지난 시간에 인격자시기 때문에 감정을 가지고 계시고 이분이 감성도 가지고 계십니다. 또 지성도 가지고 계시고 의지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분이 우리를 돕는 자이시기 때문에 항상 어떻게 하냐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는 네게는 모든 것이 합해서 선을 이룬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아무나 도우시는 분이 아니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로마서8장의 사람을 도우십니다.

7장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 예컨대 뭡니까. 서두에 하나님의 사랑은 두 가지라 그랬죠.

특히 우리가 어떻게 표현 한다 구요. 대 계명을 지키는 자입니다.

우선 대 계명을 지키는 자. 이웃과의 관계가 좋고 항상 사랑해주고 친절하고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고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이런 것을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동기가. 동기 내가 이웃에게 잘해주어야 된다. 이웃에게 잘해주고 그러는 겁니다. 주님 옆에 계신 우리 보혜사성령님께서 그러는 겁니다.

성령님과 보혜사성령님이 같이 계시니까. 주님! 기분 좋으시죠. 제가 주님이 하라고 해서 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지만 주님이 하라고 해서 했습니다. 주님과 이렇게 그냥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잘했다. 예쁘다. 그럽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교헌금도 내고 선교지에도 다니고 선교 지를 위해서 기도도 하고 선교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럽니다.

주님! 주님이 이렇게 하라고 그랬으니 제가 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이 잘한다. 그러십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이게 삶에 완전히 배어있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보혜사성령님이 내가 간구를 하지 않아도 나를 위해 내 마음을 탁 읽으시고는 나를 위해서 탄식을 하시면서 나를 위해서 나의 연약함을 보시고는 아버지에게 기도를 해준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대신 중보기도를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로마서8장26절에 있는 말씀 아닙니까. 그래서 8장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뭡니까.

대 계명과 대 사명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모든 족속을 제자를 삼으라는 지상명령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대 계명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대 사명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일어날 터인데 그것이 다 합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선을 이룹니다.

이게 아무나 아무나가 아니란 것입니다. 이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참석한 분들이 특별한 사람이 되셔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뭘 하셔야 합니까. 대 계명과 대 사명을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먼저입니까. 대 계명이 먼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는 용서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지 않고. 선교한다.

전도한다. 그것은 다 가짜입니다. 절대로 열매를 못 맺습니다.

질투만 일어나고 싸움만 일어나고 다툼만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가 우선 분명하셔야 합니다.

보혜사성령님과 내가 가까이 있으면서 이분과 대화하려면 내 마음의 자세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그랬습니까. 지난시간에 내 마음이 우선 성령님이 옆에 계신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요. 내 마음이 어떻게 되느냐면 마음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이 분이 여기 계시구나 하는 것을 인지하시고 이분과 나와 교제를 해야 되겠다는 소원이 우선 있어야 됩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내 마음에 소원이 있어야 되고. 소원을 가지려면 뭐가 전제조건이 있냐면 내 마음이 가난해져야 됩니다.

가난해져야 됩니다. 예컨대 복 있는 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첫째 복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 라는 것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나의 마음(하트)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입니다. 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 그래서 주님! 내가 왜 이런 성품이 없습니까. 그것이 마음이 가난한자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뭐가 가득 차 있다는 겁니까. 마귀의 성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 다음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랬습니다.

뭘 로 애통해야 됩니까. 내 마음에 하나님의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애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기본자세입니다.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가 나한테 임하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은 우선 이 마음을 먼저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매일 매일 가져야 됩니다. 매일매일 먼저 기도를 시작하면은 주님! 하면서 나의 마음(카르디아)속을 들어다 보면서 내가 어제도. 어제도 내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에게 주님의 마음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카르디아)속을 청소 좀 해주십시오.

나의 하트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타날 때 이 성령님이 보혜사성령님이 나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옆에 계시는 것을 내가 영의 눈을 뜨고 보는 것입니다. 관조하는 겁니다.

보는 연습을 계속 하시길 바랍니다. 눈을 감고 내 옆에 계신 예수님을 자꾸 보는 겁니다. 예수님 주변에 보혜사성령님이 운행 하시는 것을 자꾸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뭘 보느냐면 보좌를 올려다보고 환한 보좌를 보시고는 그기에 예수님이 우편에 앉아계시고 이쪽에 보니까 피를 흘리는 어린양의 모습으로도 그곳에 계시고 요한에게 보여 주셨거든요.

인자의 모습으로 세마포를 입은 예수님의 모습도 그곳에 계시고 또 이렇게 보니까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시며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의 모습도 보입니다. 내가 이렇게 보니까 내가 그 밑에 엎드려서 예수님 가시 면류관에서 흘려 내려오는 피를 내 몸에 바르고 있는 모습도 보이시고 얼마나 신납니까. 신나죠. 이것을 보는 겁니다. 이것을 매일 매일 보시는 겁니다.

묵상할 때마다 탁 보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찬양이 이 찬양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총 천연색 씨네마스코포로 매일 매일 그 세계를 보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찬양을 불려도 주님이 바로 옆에 계시니까 이분과 대화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복음성가지만 “주님 여 이손을 붙잡고 가소서” 1절만 같이 부르겠습니다.

주님 여 이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 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지금 나에게 여러 가지 사업의 문제도 있고 인간관계성의 문제도 있고 모든 문제가 있는데 주님! 하면서 내 앞에 계신 주님 내손을 좀 잡아 주세요. 내가 넘어지겠습니다. 할 때 주님이 나의 손을 잡는 모습을 내가 탁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한테 매달려서 주님! 날 좀 이끌어 가세요. 나에게 힘주세요. 이런 찬송 아닙니까.

주님이 옆에 계시니까요.

(2)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 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제가 이렇게 노래할 때 주님이 이렇게 들으시는 모습을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영의 눈을 뜨고 이렇게 보는 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이번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영성이 활짝 열리는 이런 경험을 하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보혜사성령님의 인격 중의 사역중의 하나가 돕는 일을 한다고 그랬잖습니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부분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돕는 분이신데 무엇을 돕느냐면 우리의 약한 부분을 도우십니다.

약한 부분을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꾸 도와 달라 하면은 이것은 고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입니다.

이분이 이제 나를 도와주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내 약한 부분이 뭡니까. 주님! 이렇게 주님을 쳐다보면서 주님! 제가 의지가 약합니다. 주님! 제가 게으릅니다. 제가 스스로 약속을 하고도 주님! 제가 매일매일 기도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며칠 못 갑니다.

주님!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제가 결단력도 아주 약합니다.

오래참지도 못하고 또 성질이 제가 좀 조급합니다.

그래서 이 급한 성질 때문에 제 자신이 본의 아니게 무례하게 실수도 많이 합니다. 주님! 이런 부분이 나의 약점입니다. 그리고는 주님을 쳐다보고는 주님 옆에 계시는 보혜사성령님 분명히 말씀하셨잖습니까.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나를 도우신다고 하셨으니 날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주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보혜사성령님과 매일매일 대화하시는 겁니다. 매일매일 로마서 8장26절 말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를 돕겠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무지합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내가 무엇이 잘못된 상태 속에 있는 나의 무지한 이 상태 속에서 주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간구하시는데 이 간구는 중보 기도하신다.

이 말입니다. 중보기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건 이 말씀을 우리가 항상 상고하면서 아! 우리주님이 나를 위해서 매일 매일 중보기도 하시는구나. 그런데 이것이 전제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대 계명과 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 마당에서 주님이 이렇게 해 주시는구나. 또 어떤 분은 대 사명과 대 계명을 안 하지만 하나님이 해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 사명과 대 계명의 이 일에 주님이 부탁하신 것에 관심을 두고 매일 매일 이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주님 저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 보면 그렇습니다.

내 자신이 영적으로 어느 수준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몇 주 전에 말씀하였지요. 영적으로 우리 크리스천의 믿음의 단계가 여섯 단계가 있다고 하였는데 기억나세요.

첫째가 유아단계. 둘째가 어린아이단계. 셋째가 사춘기단계. 넷째가 청년기단계, 다섯째가 아들단계. 여섯째가 아버지단계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지도자급이 되려면 목사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안수집사 권사라는 말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수한 케이스입니다.

성경에도 없습니다. 이런 지도자라인에 있으려면 어느 나이 정도는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아들단계 정도는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들단계정도는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라는 이름을 어떤 사람에게 붙였습니까.

팔복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으리라. 그러니까 그 단계까지 가려면 화평은 두 가지의 화평이 있거든요. 수직적인 화평이 있습니다. 수직적인 화평은 하나님과 원수 된 자의 중간에서 평화를 만드는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을 전도라 그럽니다.

전도하는 사람.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에게 들어오셔서 여보 당신 하나님 앞에 가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빨리 이리오라 그래서 중간에서 중매 역할을 하는 그분을 전도자라 그러잖아요. 이런 사람이 수직적인 관계에서 원수 된 관계에서 화평하게 하는 일을 하는 분이 전도자며 또 이방사람들에게 하면은 선교하는 사람이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기독교인의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탁 들어와 가지고 그곳에서 화평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화평의 일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니 상당히 높은 이름입니다.

이렇게 화평의 일을 하는 사람이 적어도 안수집사 장로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적어도요. 그런데 만약에 각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영적으로 우유병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교회에 오래 나오고 나이가 조금 많다하여 장로나 안수집사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도사 또는 목사까지도 그걸 뭘 보고 우유병을 먹는 사람을 어떤 상항을 보고 알겠습니까. 어린아이의 특색이 뭡니까.

서로가 보채고 서로 싸움하고. 자기 이웃을 보지 못하고 무례합니다.

모르니까요. 눈이 어두워서 철이 없는 겁니다.

철이 없어서 저 사람이 내가 이러는 것을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 하는지 모르는 것이 어린아이 모습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린 아이는 자기 생각만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의 입장을 생각 안합니다. 나만 좋으면 됩니다.

나만 좋으면 이게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고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걸 무슨 고집이라 합니까. 그게 똥고집 입니다.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를 생각 안 하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런 사람이 집사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된다면 그 공동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린아이 우유병 드는 사람이 지도자 역할을 하면은 우선 말이죠. 우유병 드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서 예를 들어서 안수집사나 권사나 장로가 되었다고 가정을 한번 해보세요. 그러면 중학생이 예를 들어서 청년기 사람들이 그걸 보면 은 압니까. 모릅니까. 알죠.

우리 교회 아무개 누구는 어린애야 그럽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집사도 아닙니다. 예컨대 조금 극단적인 예지만도 이런 경우가 교회 안에 많습니까.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집사 장로를 뽑을 때 또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여 목사가 되는 경우도 있고요. 이것을 조심하여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은 그렇게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저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하는 것을 보는 관점들이 있지만 성서적으로 보면 화평하게 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 수직적인 화평과 수평적인 화평 이 공동체 안에서 이런 부분을 다시 한 번 새롭게 깨닫고 그런 일에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내 옆에 계셔서 나를 도우실텐데요.

도우실텐데 그냥 도와만 주십시오. 급한데 한번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 보다는 그분과 매일 매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 하라는 건 쉬지 말고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자 그래서 하루라도 그러한 관계가 안 맺어지면 우리 입장에서는 어딘가 껄끄러운 것입니다. 그런 걸 느끼십니까. 우리가 볼 때 좀 껄끄러운 겁니다.

내가 주님께서 새로운 매세지도 받지도 못하고 그분이 주시는 그 즙을 먹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과 가까이 되는 연습을 우리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제가 이 부분을 같이 좀 다루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만찬 때 하신 말씀인데요. 그 유명한 포도나무와 가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요한복음15장 말씀 성만찬 때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4장.15장.16장 계속해서 말씀하셨는데 15장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제 그 동안은 나의 제자였지만 이제는 너희들은 나의 친구란다. 그럽니다. 요한복음15장15절에서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제자들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내가 종이라고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시는 것을 알지 못한다. 너희를 친구로 하였으니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면 예수그리스도의 그 제자들이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오순절 이후에 받고는 관계성이 법적으로 제자지만 관계성으로 그는 친구의 관계로 이렇게 맺어지는 것입니다. 제자지만 친구의 관계 이것도 지금 우리가 상당히 필요한 것입니다. 이 제자하면서 종인데 종의 관계는 어떤 관계냐 하면 상하가 뚜렷합니다. 우리가 보통 목사님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종이라는 그 관계는 그렇게 좋은 관계가 아닙니다.

상하가 뚜렷하고. 종속관계가 뚜렷하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입니다. 종은. 시키는 일을 하면 그것만 하면은 그분이 잠도 재워주고 옷도 주고 봉급도 주고 다 줍니다. 노예는 그렇잖아요.

자율성이 전혀 없는 것이 그것이 종입니다.

그저 수직적인 명령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이 종은 그렇기 때문에 자율성이 없으니까 조금 심한 말로 하면은 군사독재정권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희들은 모른다. 그럽니다.

그 관계 그것은 법적인 관계지만 이제부터는 종이지만 특별한 종으로 친구의 관계를 너희와 하겠다. 합니다. 친구의 관계 이제 여러분들도 법적으로 종의 관계는 다 있지만 친구의 관계가 다 되어야 됩니다. 친구관계는 뭡니까. 친구관계는 주인과 깊은 마음을 주고받고 하는 대화를 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그래가지고 주님의 그 뜻을 너 내 뜻을 모르느냐.

대 계명을 모르느냐. 대 사명을 모르느냐. 자꾸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알았습니다! 이분과 대화를 하면서 수직적인 관계지만 수평적인 관계가 또 있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같이 깊은 이야기도 하고 또 나의 의견도 제시하고 이러면 어떻습니까. 하고 그러니까 마음과 마음을 주면서 대화 하는 그 관계가 친구의 관계입니다. 친구의 관계 우리가 이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막연히 가지면 안 됩니다. 내 옆에 계신 예수님 그 다음에 내 옆에 계신 보혜사성령님과 내가 인격적으로 주고받고 대화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분명히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나의 친구다. 그래서 이 친구의 관계를 우리가 맺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가에도 친구와 관계되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를 나의 구주로 고쳐서 부르겠습니다. 막연히 부르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탁 바라보아야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 보혜사성령님이 나의 친구입니다. 하면서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하신 목소리로 들어 시기 바랍니다.

(1)죄짐 맡은 우리(나의)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이러면서 주님에게 던져버리는 겁니다,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시험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 세상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지금 이 시간에는 우리가 계속해서 이제 예수님이 여기 계신 예수님 보혜사성령님과 내가 가까이 하는 그분을 쳐다보는 연습을 하는 시간입니다. 잘 안보이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자꾸 하다 보면 나의 영의 눈이 떠지면서 예수님이 옆에 계시는 것을 내가 느끼게 되고 그 느낌으로 내가 또 만질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윗 같은 분은 이렇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셨거든요. 만나보았기 때문에 시편18편 같은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여호와시여 그 여호와가 예수님이십니다.

이분의 시편은 다 그런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그러면서 여호와는 나의 힘이 됩니다. 이분이 영의 눈을 뜨고 딱 보니까 여호와가 자기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시고 힘이 되심을 이분이 체험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신 말씀이 여호와여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십니다. 그럽니다.

그러면 우리도 여호와는 나의 반석입니다. 하면 반석. 반석 그냥 입으로만 하지만 그것을 관조하는 것입니다. 탁 눈을 떠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반석을 쫘 악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맹수가 달려올 때 또는 저쪽에서 적군이 달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반석에 몸을 숨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려움이 올 때 나에게 어떤 공격이 올 때 그 반석에 숨는 반석이 착 보이면서 거기에 내가 들어가 숨는 모습을 내가 탁 보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십니다. 눈을 감아 보세요. 반석이 보이십니까. 보는 연습을 지금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예수님은 나의 반석이시니 예수님은 나의 반석이시니 내가 그 반석에 숨겠습니다.

탁 숨는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분이 그래요. 다윗이 다 경험한 것이거든요.

여호와여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니 요새라는 것은 서부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이렇게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적군들이 날아올 때 거기서 총을 쏘고 활을 쏘는 요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니 그래서 적군들이 여기저기서 사방에서 막 나한데 날아와도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니 그러니 요새 속에 들어가 있는 내 자신을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안전하구나.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니 다시 한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니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니 여호와는 그러면서 내가 물에 빠질 때 나 불속에 빠질 때나 이렇게 내가 어떤 죄 가운데 들어갔을 때 이럴 때 건지시는 자니 그랬습니다. 나를 건져 주시는 자니 내가 이런 실수를 할 때 내가 이런 어려움에 들어가 있을 때 물에 빠져 있을 때 나를 건져 주시는 자니 그러니까 내가 물에 빠져 있을 때 주여! 여호와여!

여호와는 지금 나를 따라 다니면서 내 옆에 계시면서 보혜사성령님이시여! 두 분이 나의 요새역할을 해주시고 반석 역할을 해주시고 건지시는 자가 되어 주시옵소서.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니 그랬습니다.

방공호를 생각하면 됩니다. 방공호 그냥 방공호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안전 합니다. 그러면서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시편 18편에 그랬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의 뿔이시니 그랬습니다.

구원의 뿔이라는 것은 황소가 뿔이 있는데 저쪽에서 맹수들이 달려올 때 그 뿔 가지고 받아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땅할 때 황소 뿔이 받아치듯이 예수님은 구원의 뿔이시니 하면서 구원의 뿔을 탁 연상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뿔이시니 신나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그러면서 나의 산성이시니 그랬습니다.

이것은 만리장성 같이 큰 성을 산성이시니 안 그러면 산 자체가 요새가 되어 가지고 나를 보호하여 주시는 여호와. 우리 같이 한번 따라서 해봅시다. 처음에는 뭐라 하였습니까. 여호와는 눈을 감고.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니. 자꾸 계속해서 하세요.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다 그러면서 여호와를 이렇게 쳐다보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운행하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다. 내가 그 반석에 숨어 있는 것을 숨겨져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강이 오는 겁니다.

아-편안하다. 여호와는 나의반석이시다. 주변에서 지금 나에게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는데 여호와가 그것을 나를 반석 속에 집어넣어 시구나.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니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니. 입으로 자꾸 말해 보세요.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다.

여호와는 나를 건지는 자시다. 어려움 속에 빠져 있을 때 나를 건지시고 불 속에 들어가 있어도 건져내시고 물에 들어가도 건져내시고 환란에서도 나를 건져 내시고 건져내신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나한테 와서 베드로가 물에 빠졌을 때 건져내듯이 주님이 나를 건져 내는 모습을 탁 주님이 내손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건져낼 때 주님을 따라 나가는 모습을 주님의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겁니다. 믿음의 눈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그랬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믿음이. 여호와는 나의 구원의 뿔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의 뿔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다. 그렇게 때문에 여호와 샬롬, 내가 이속에 들어가니까 여호와께서 어떻게 해 줍니까. 편안하게 해 줍니다.

그러니까 폭풍이 불어와도 우리에게는 평강이. 평강이 있는 겁니다.

평강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뭐가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우리를 따라 다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삼중 보호막이라 이렇게 이름을 붙여 봤습니다. 삼중 보호막이 있습니다.

최소한 첫째 보호막이 뭐냐면 우리에게 우리를 보호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보호 하시고 내 마음도 보호 하십니다.

처음에는 우리에게 천군천사들로 항상 보내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첫째 이 성소도 천군천사들로 보호 지켜주십니다.

여러분 가정도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천군천사들로 보호 지켜주는 것입니다. 천군천사는 보호용이거든요. 천군천사가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천군천사를 탁 들여다보는 겁니다. 그리고는 거기 제일 높은 오야봉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가 명한다. 지금 대구에 있는 내 딸에게 가서 보호해라. 그리고 거기 가서 떠나지 말고 계속 따라 다니라.

이렇게 명령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분들이 가는 것을 보는 겁니다.

안가면 왜 안 가느냐. 그러고 가라니까 예수이름으로 그러니까 가는 것을 쫘악 보는 겁니다. 그리고 딸을 탁 보는 겁니다.

거기에 천군천사들이 진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니 보는 겁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주님! 제가 지금 여기 앉아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족을 지켜 주세요.

우리 아파트를 지켜주십시오. 천군천사들아 너희들은 가서 우리 아파트를 지킬 지어다. 이래놓고는 탁 쳐다보는 겁니다. 지키라. 가라. 왜 안가 알았습니다. 하면서 가는 것을 우리가 보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걸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주변에 천군천사들로 항상 진 치게 하시는 겁니다. 진 치게 천군천사들로 진 치게 하시면 이 천군천사들이 다른데 갈 때라도 항상 보호 천사만은 거기에 남겨두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보호천사를 가디언 엔젤이라 부릅니다. 보호천사들이 항상 우리 자녀들을 따라다니고 내 직장 내 자동차에도 항상 붙어있고 우리 아파트에도 있고 여러분이 원하는 곳에 다 보호천사들이 있도록 명령을 하여야 합니다. 이게 첫째 보호막입니다. 두 번째 보호막이 뭐냐면 성령의 화영 검이라 그럽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24절에 에덴동산을 지켰던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창세기3장24절에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룹들과 두로 도는 불 칼이 하나님의 보호용 무기들입니다.

이게 뭐냐면 성령의 화영 검(불 칼)이라 하였습니다.

이 칼이 장칼인데 거기서 빛이 팍 나가는 겁니다.

우리가 가끔 만화영화에 그런 것이 있잖습니까.

칼에 빛이 막 나가는 이런 칼입니다.

그리고 360도 방향으로 막 도는 그것을 성령의 화영 검(불 칼)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 이 엄청난 무기를 주님께 부탁하는 겁니다.

어떻게 부탁 하냐면 주님!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였든 그 성령의 화영 검을 우리 집 에다가 보내 주세요. 우리 자녀에게 보내주세요.

우리 선교지에 보내주세요. 이렇게만 하면 안 되고 선교 지를 탁 들여다보는 것입니다.거기서 성령의 화영 검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내가 탁 보는 겁니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에게 보내주세요. 이라크에 중국에 네팔에 하나님께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계를 향해서 기도하는 것 어떻게 보면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여기에 딱 앉아가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이게 보통 재미있는 일이겠습니까. 재미있겠죠.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보호천사 천군천사들을 진 치게 하시고 두 번째 성령님의 화영 검으로 지키게 하시고 그렇게 한 다음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3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3중 막은 온전한 막입니다. 그 다음에 뭐로 하냐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감싸 주십시오 그럽니다. 그러니까 주님! 우리가족을 첫째 가까운 분들 아이들 이름을 불러 가면서 이름만 부르지 말고 그 놈을 쳐다보는 겁니다. 주님! 우리 첫째 놈 하고는 첫째 놈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자녀 없는 분은 제일 가까운 분들을 떠올리고 계십시오. 첫째 놈이 보입니까. 첫째 놈에게 천군천사들을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는 첫째 놈 주변에 천군천사들이 진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겁니다.

그리고는 성령님의 화영 검으로 진 쳐 주십시오.

거기에다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뿌려 주십시오.

둘째 놈. 셋째 있는 사람은 셋째 놈 하세요.

그리고는 첫째 놈이 운전을 하면 첫째 놈의 자동차를 착 들어다 보세요. 그 차에다가 명령하시고 우리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우리가 이제는 주님이 주시는 선물을 가지고 우리가 마음껏 주님과 친구 역할을 하면서 그분이 원하시는 대 계명과 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 우리자녀들을 보호하여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우리 사업체도 보호하여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도 보호하여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내 자신도 보호하여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내 자신도 보호하여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대 계명과 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항상 목적이 거기에 가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내 사업체에 주님이 복 주시어 돈 많이 벌어서 선교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돈을 벌어 놓으면 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사업체를 통하여 돈 벌게 해주세요.

그래놓고는 항상 약속을 하여야 합니다.

대 계명과 대 사명을 이루기 위해 그렇습니다.

주님! 나에게 영성을 더 진하게 하여 주시고 더 깊이 해 주시고 넓게 해주시고 높게 해 주시고 길게 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주님이 부탁하신 대 계명과 대 사명을 내가 더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자꾸 주님께! 그러면 주님은 너 가 어떻게 그렇게 내 마음을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여 이렇게 애통하느냐 옜다.

여기 있다. 먹어라 그러는 겁니다. 옜다. 다 가져라 그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