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시리즈 10강. 창세전 십자가 지시기로 복종하신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빌2:5-11) 2024년4월7일 주일말씀
우리가 빌립보서를 공부하면서 집중하는 부분이 어디냐면 예수님의 모델부분입니다 빌립보서2장5절에서11절 예수님의 모델부분을 바울도 이것을 하루아침에 받은 것이 아니고 35년에 개종하여 빌립보서를 60년에 썼으니까 바울이 적어도 개종하여25년 후에 예수님의 모델을 구체적으로 받으셨다고 우리가 집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델을 쉽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쉽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쉽게 받으면 바울도 소화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개종 후에 25년 동안 정말 열심히 뛰면서 소위 시행착오도 많이 겪으시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많이 귀를 기울이시고 또 많은 인생경험과 사역경험을 하시면서 어느 정도 그릇이 되었을 때 이 말씀을 주셨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어느 정도 그릇이 되어야만 이 말씀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성령님께서 저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은 이제 우리AMI교인들은 어느 정도 이 말씀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도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려고 그럽니다. 마음에 준비가 되었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안에 엄청난 비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절에
그는 예수님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 원어를 보면 모르페라는 단어를 써놓았는데 다시 말하면 하나님자체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냥 하나님이다 그럴 때 그게 무슨 뜻일까요? 바울이 지금 말하는 하나님은 엘로힘(Elohim)입니다. 엘로힘(Elohim)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영어로는 갓(God)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한국말로는 하나님이라고 번역해놓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원어를 보면 엘로힘(Elohim)입니다
다시 말하면 삼위하나님입니다 그냥 우리가 하나님하면 성경에 삼위하나님을 지칭합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 삼위 중에서 어떤 때는 성부하나님을 지칭하기도 하고 문맥을 따라서 어떤 때는 성자하나님을 지칭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성령하나님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문맥을 따라서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은 문맥에 의하면 뭘까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말하면 삼위하나님 중에 한분이시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말은 엘로힘(Elohim)이라는 단어 자체가 중요합니다. 엘로힘(Elohim)이게 단어의미가 무슨 뜻입니까? 영어로는 크레이트(Creator!)입니다
창조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하면 창조자시다 그게 삼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기독론에서 배웠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창조를 계획하신 분이시고 성자하나님은 창조를 직접 행하신 분이시고 성령하나님은 창조를 행하시도록 성자하나님께 능력을 부여하신 하나님이다 이렇게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이것을 항상 머릿속에 두세요. 다시 말하면 창조를 직접 행하신 문은 누구십니까? 예수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부하나님이나 성령하나님도 아닌 게 아닙니다. 이분들도 다 참여했지만 직접 손으로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은 예수하나님이다 이걸 잊지 말아주세요 다시 봅시다.
그는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 그러면 이분은 삼위하나님 중 한 분이시구나. 그런데 삼위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을 여기 아니하시고 동등이라는 이 단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요한복음5장18절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만이 아니고 다른 유대인들 그 사람들의 신관은 뭐냐면 예수하나님, 성령하나님보다도 성부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분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성부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그러니까 삼위하나님을 믿는 분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을 가진 제자들도 또 유대인들도 예수하나님이 요한복음5장18절에 무슨 말씀을 하였냐면 애들아! 나와 너희들이 믿고 있는 성부하나님과 이꼬르(equal)다 그러는 겁니다.
무슨 이꼬르(equal)냐면 위치도 이꼬르(equal)이고 능력도 이꼬르(equal)이고 계급도 이꼬르(equal)이고 아버지와 나와 지금 30세 잡수신 젊은 나사렛청년이 유대인들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가가 막히지 않나요?
이 청년이 뭐라고 그러냐면 너희들이 믿고 있는 아버지와 나와 포지션도 이꼬르(equal)고 권위도 이꼬르(equal)고 파워도 이꼬르(equal)고 능력도 이꼬르(equal)고 다 이꼬르(equal)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러는 겁니다. 왜냐면 신성을 모독했다고 레위기에는 신성모독 자는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고 속에서 바울이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바울이 빌립보사람들에게 빌립보교인들에게 그는 삼위하나님 중에 한분이다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고 다시 말하면 삼위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고 자기를 비워서 비웠다는 이 단어는 언제로 보느냐면 제가 볼 때 창세전으로 보는 겁니다.
창세전에 예수님이 자기의 신성을 다 비워버리는 이 일을 창세전에 이미 결정하시고 그것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창세전십자가사건 알죠?
창세전에 십자가사전을 디자인하셨다는 개념과 같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성육신하셔가지고 그때 비웠지만 이미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디자인하시고 이미 그때부터 예수님이 느끼고 있었다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느끼고 계셨다는 겁니다.
창세전에 십자가사건을 예수님이 실제로 지시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이것을 느끼고 계셨다는 겁니다. 이 개념으로 오늘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잡한 내용을 여러분들과 어떻게 나눌까 제가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쉽게 설명해드리려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이 신성을 다 비워버리는 것 그래서 신성만 비운 게 아니고 완전히 사람 중에서 제일 하층계급으로 종의 형체로 하층계급으로 예수님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래가지고 사람은 되었지만 아주 종의 형체로 하층으로 내려와서는 이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복종했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에게 복종하겠다고 그랬습니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께 복종하신 겁니다. 그래서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공동회의를 하셨다
이렇게 제가 쉽게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떤 공동회의를 하였냐면 장차 우리가 사람을(하나님의 자녀들을) 창조할 터인데 창조할 우리자녀들이 창조목적대로 살지 못할 것을 전지하시기 때문에 미리 아셨습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창조할 자녀들을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파트너로 삼으려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터인데 이 인간들이 창조목적대로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어떻게 알았냐면 전지하신 분이기 때문에 전지하신 분이라는 이 개념을 잊지 마세요 과거도 아시고 현재도 아시고 미래도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미래에 이렇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가지고 이분들이 왜 이렇게 창조목적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라고 할 때 이분들에게 복을 내려 주실 터인데 이 복이 뭐냐면 육의 복, 혼의 복, 영의 복입니다. 이 복을 받은 인간들이 창조목적대로 수행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아시고는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러면 누구든지 피조물은 자기노력이 없이 자기수고가 없이 무료로 이런 복을 받으면 복의 중요성과 절대성을 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 복을 주신 분이 누군지 망각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 복을 왜 주셨나? 여기에 대해서도 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신 겁니다.
그래서 삼위하나님이 서로상의하시기를 창조목적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필요한가에 대해서 우리가 이 피조물에게 훈련시키자 이것이 삼위하나님의 공동 회의에서 결정하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훈련시키느냐?
삼위하나님이 창세전에 대화하시면서 ,어떻게 훈련시키느냐?
이 피조물들을 우리가 창조한 후에 첫째 복을 내려주자 그래가지고 육의 복, 혼의 복, 영의 복 내려주자 그리고는 이 복을 빼앗아버리자 다시 말하면 저주를 내리자 이 세 가지 부분의 복을 내려주고는 저주를 내리자 육이 죽고 혼이 죽고 영이 죽는 그랬다가 이 저주를 다시 회복시켜주자 그러니까 저주 속에 있으면서 창조목적에 절대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저주기간이 몇 년입니까? 7천년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창조목적학교라 그랬습니다. 7천년이 창조목적학교다 그런데 저주를 내리는데 이 저주를 이분들이 회복을 받으려면 저주가 복으로 회복을 받아야 되는데 이것은 자기네 실력으로 안 된다는 겁니다. 인간의 실력으로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저주를 우리가 없애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행동을 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하나님이시여 당신이 이 저주를 해결하시오. 그러니까 예수하나님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복종했다는 겁니다. 네 내가 저주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내가 신성을 다 비우고 내가 언젠가는 사람이 되어가지고 이 저주를 내가 뒤집어쓸게요.
서로가 결정했다고 보는 겁니다. 6절7절8절 이 안에 있는 내용을 제가 쉽게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 성부여! 성령이시여! 제가 이 저주를 뒤집어쓰겠습니다. 그때부터 신기한 게 예수님이 뒤집어쓰신 것은 언제입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가 뒤집어쓰겠습니다. 하셨지만 실제로 뒤집어쓰신 것은 한참 후입니다 그런데 주전700년경에 이사야53장에 보면 이사야야! 너희들의 질고를 내가 담당할 것인데 너희들의 모든 죄악을 내가 담당하고 너희들의 아픔을 내가 담당하고 담당할 텐데 하는 말씀을 들여다보면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한국말로는 분명치가 않는데 이사야서53장3절에 보면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게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무슨 형으로 되어야 됩니까? 미래형을 말해야 됩니다. 이사야야! 내 모습이 이렇다하고 십자가사건을 보여주는데 과거형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십자가사건을 언제 디자인했다는 겁니까? 창세전에 디자인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질고를 짊어지고 멸시를 받고 하는 모든 이런 것들이 예수님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고난을 받고 외로움을 받고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가지고 여러 가지 모든 아픔들 이 모든 예수님의 자존심상한 일들 이것이 과거에 이미 디자인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과거형으로 적은 겁니다. 그 과거가 언제라고 우리가 생각합니까? 창세전으로 보는 겁니다.
우리가 참새 눈으로 보면 아담타락으로 봅니다. 창세기3장16절 원시복음으로 봐도 괜찮습니다. 오늘 공부하는 걸 보니까 창세전입니다
창세전십자가사건은 고린도전서2장17절 로마서16장25절26절 주후55년부터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창세전에 이미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이 모든 질고를 짊어지실 것을 삼위하나님의 회의에서 이분이 복종한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예수님이 창세전부터 이분이 마음의 괴로움과 내가 장차 피조물처럼 사람이 될 터인데 내가 장차 엄청난 수모를 당하면서 피조물처럼 내가 이렇게 지내게 될 터인데 이분이 전지하신 분이기에 다 아는 겁니다. 어떻게 유대인들에게 핍박받고 로마 군인들에게 핍박받고 나중에 조롱받는 이 사건들을 다 아는 겁니다.. 창세전에 다 알고 계시면서 참으신 겁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예수님이 이 고통을 다 아시면서 창세전에 이분이 미리미리 경험하시는 겁니다. 경험하시면서 삼위하나님 중에서 유일하게 성자하나님만 이것을 경험하는 겁니다.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은 개념적으로 알고 계시겠지만 실제로 이 일을 경험한 하나님은 예수하나님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완전히 자기를 비워버린 겁니다.
그리고 사람이 되셨는데 낮은 계층으로 내려가서 종이 되어가지고 이렇게 고난을 받을 것을 모든 피조물들이 지은 저주를 떠맡을 것을 이분이 미리 다 디자인하시고 계획하시고 본인이 실제로 그걸 느끼면서 예수님께서 때가 되어서 창세도 하시고 나중에는 아담도 창조하시고 이럴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저는 짐작하는 겁니다. 창세하시면서 아주 좋았더라.
아주 좋았더라 하시지만 속으로는 내가 이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 예수님의 마음을 저와 여러분들이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셔야만 됩니까?
그러면 뭐라고 해야 됩니까?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우리에게 각인시켜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각인시켜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각인시켜주기 위해서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사건을 디자인 하신 겁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그럼 어떤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장 예뻐할까요? 창조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가장 예뻐하시고 우수학생으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쳐주었냐면 예수님이 창세전에 디자인 하셨지만 예수님이 장차 이렇게 하실 것을 4천년 동안 원시복음 다음에 열 가지 어린양으로 가죽치마의 어린양. 아벨의 어린양, 방주의 어린양, 모리아 산의 어린양, 성전의 어린양 그러다가 예수님이 이 성전이 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어린양사건을 예수님이 이렇게 해서 어린양이 되고 죄를 뒤집어쓰실 것을 4천년 동안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막연히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고 내가 어린양으로 죄를 뒤집어쓰는 어린 양인 겁니다. 구약스토리가 그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게 점진적입니다
점진적인 게 아니고 역사 속에서 눈높이교육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현장교육 역사교육 속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겁니다.
뭘 가르쳐줍니까?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창조목적에 절대성과 중요성을 우리에게 재확인시켜주시기 위해서 창조목적학교를 오픈하시고 우리에게 교장선생님으로 예수님이 오실 터인데 이 학교에서 이것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첫4천년은 이렇게 보여주시다가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그러시고는 우리보고 너희들 나가서 이렇게 다 이룬 것을 외쳐라 그게2천년 교회시대인 겁니다. 우리가 외치는 게 뭡니까?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것을 또 창조목적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런데 예수님이 구약에서 보여 주셨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인 이스라엘사람들을 보면 창조목적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기에 따라서 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구약스토리에서 보면 이스라엘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예표인데 그래서 예수님의 창조목적이 무엇입니까? 십계명이 창조목적입니다
그런데 그 십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소수의 남은 자들만 지켰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은 자들 그리고 안 지킨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방제국을 사용하셔서 혼쭐을 내는 이야기가 구약스토리입니다 앗수르제국. 바벨론제국 뭘 안 지켜서 창조목적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뭐냐면 구약은 교회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겁니다.
예표로 보여주는 겁니다. 또는 상징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구약의 스토리들을 그림자로 또는 예표로 또는 상징으로 또는 모본으로 본보기로 이 말이 뭐냐면 구약스토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목적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니고 소수만 창조목적에 순종하는 이야기가 구약이야기입니다 똑같이 신약시대에도 교회시대도 크리스천들이지만 창조목적에 순종하는 사람은 소수라는 겁니다. 이 소수들을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소수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면 예수님과 앞으로 동행하는 창조목적파트너들인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여주셨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이 교회시대에 다양한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주신 겁니다. 여기를 보면 큰 교회들을 주님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특별히 사용했던 교회가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계시록3장에 빌라델비아교회를 보고 예수님이 내가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다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다 그런 나다 그래서 저는 이걸 보면서 일본을 주님이 열어놓으시니까 일본을 닫을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교회가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작은 교회다 그런데 작은 교회인데 파워는 대단하다 그게 빌라델비아교회로 교회는 커지면 변질되게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보니까 변질되어 버린 겁니다.
교회시대에 교회는 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교회시대의 교회는 작아야 되고 핍박받아야 되는데 그것도 내가 원해서 빌라델비아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 아무리 모여라 해도 몇 천 명 안 모입니다.
공간도 안 되지만 주님이 안 보내십니다. 꼭 필요한 사람만 보내십니다.
항상 이렇게만 모입니다. 신기합니다. 결론입니다
저는 복종이라는 부분에서 예수님이 복종하셨다는 말이 우리에게 뭘 시사해주십니까? 창세전에 복종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복종하셔가지고 예수님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겁니다. 죽음, 부활, 영광입니다.
이걸 예수님이 항상 보시는 겁니다. 이분이 복종하실 때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고 어떨 때는 슬픈 마음도 있고 좌절도 있고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이신데도 예수님이 복종하셨지만 복종함으로 해서 자기가 죽을 터인데 죽음으로 해서 예수님이 예정된 전 세계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날 것을 예수님이 아신 겁니다. 예수님이 복종해야지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삼위하나님의 생명 살리는 모델입니다 이분들이 만들어낸 모델입니다 뭐냐면 생명을 살리려면 누가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여 당신 죽으시오. 그래서 알았어요. 그래서 이분이 죽으신 겁니다. 죽는 과정이 창세전부터 이분이 이미 죽었습니다.
4천년을 오면서 실제로 예수님이 죽으신 게 4천년 후입니다
그러니까 긴 세월을 예수님은 죽으시는 것을 경험하시면서 주욱 이분이 오신 겁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내가 너희들의 모든 저주를 뒤집어쓰는 겁니다. 저주를 뒤집어쓰면 너희들은 이제 자유스럽게 된다. 복을 회복 받는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여기서만 끝난 게 아니고 만민이 이것 때문에 살아난다는 겁니다. 내가 죽으므로 해서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뿐 아니라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의 자녀들이 땅에 살아있는 자녀들과 하늘에 올라온 자녀들이 밤낮없이 예수님! 예수님!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것을 할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예배할 때 찬송할 때 누구에게 고맙다고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 예수님! 하잖아요.
오늘 주일날 전 세계교회들이 다 예수님! 예수님! 고마워요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에 예수님이 그걸 다 아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큰 그림을 보면서 땅에 있는 사람들도 7천년 이 기간 동안 예수님! 예수님! 고마워요
올라간 사람들도 예수님! 예수님! 고마워요 할 것을 아신 겁니다.
이걸 아셨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예수님의 모델을 바울에게 가르쳐준 겁니다. 바울아! 너도 이 모델처럼 너도 살아라. 그리고는 바울아! 교인들에게 가르쳐주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모델대로 살아라. 그런데 이 모델대로 사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까?
안 많습니까? 많지 않게끔 되어 있습니다. 소수만 이 모델대로 사는 겁니다.
특별히 소위 남은 자들 복 있는 사람들 제자 급 사람들 우수학생들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에게 너희들 이 모델대로 살아라. 한 것이 예수님의 지상사명입니다 이 복음을 나가서 전해라 그러면 핍박이 올 거다 미움이 올 거다 너희들 외골수가 되어서 사람들이 너희들을 미워할 거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라 이것을 우리에게 한번 대입해봅시다
예수님이 우리보고 그랬습니다. 애들아 너희들AMI교회교인들아 지금 오늘날이 시간에 너희들에게 내가 요구하는 것이 뭐냐면 너희들이 일본을 향해서 너희들 이 모델대로 한번 해봐라 그러는 겁니다. 일본을 향해서
그러면 우리가 일본형제자매들을 섬기고 있잖아요. 우리디아스포라들을 섬기고 있잖아요. 또 일본 분들 섬기고 있잖아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걸 한번 정리해보세요 결론적이면서 정리합니다. 이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나누어야 될까요? 첫 번째가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 핵심이 뭐냐면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우리가 전해주어야 됩니다. 그냥 예수 믿고 복 받고 당신 축복 받고 하는 이런 게 아닙니다. 창조목적의 중요성과 절대성을 전해주어야 됩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메시지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걸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면 이 사람들이 일본 복음화를 할 사람들입니다
그냥 받아서 소위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복 받고 하는 그런 메시지를 가지고는 일본을 변하시키지 못합니다. 우리가 전해야 될 메시지가 뭐냐면 창조목적에 절대성과 중요성을 우리가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중요한 게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일본징검다리들과 일본 분들이 지식으로 풍성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총명으로 풍성해져야 하고 그러다보니까 시대분별력을 가지게 되고 의의 열매를 맺게 되고 우리가 이 일을 일본 분들을 향해서 해야 되는 겁니다. 이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우리가 죽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습니까?
우리가 지상사명에 복종해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복종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도 복종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교회 다니면서 복종안 하면 우리교인이 아닙니다.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막연한 복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본을 살리는 부활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복종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압니다. 뭘 알아요? 복종하면 일본이 살아난다는 것을 알아요? 예수님이 복종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자녀들이 살아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복종하면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이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이 그렇게 이끄실 겁니다.
우리는 왜 일본을 향해서 복종해야 됩니까? 그러면 저는 딱 한 가지 마태복음24장14절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내가 재림해 오기 전에 만민이 복음화가 될 거다 그런데 이 말씀이 결론이면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실제로 아프리카부터시작해서 중동 아시아의 모든 공산권 힌두권 불교권 다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의 미 전도족속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보다 기독교인 숫자가 열배가 더 많습니다. 이제 중국은 선교사가 필요가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주변 국가들이 어느 정도 다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우리 북한(MK) 그 안에도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가장 기독교인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정말로 주님이 사랑하는 크리스천들 숫자가 없는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일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24장14절 예수님의 복음의 산고를 통해서 복음화가 되어야 되는데 주변나라는 다 복음화가 되었는데 일본만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이미 거기에다가 많은 미국과 캐나다와 호주 한국선교사들이 많은 씨를 뿌려놓았습니다. 그 안에 지금 비료들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기에 약간 가서 잎이 돋아나고 열매가 맺히도록 하는데 우리가 참여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선교는 예수님이 이루시겠습니까?
안 이루시겠습니까? 이루시고 맙니다. 왜냐면 주변나라들이 다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24장14절을 이루시려면 하나 남아 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 옆에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선교는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복종했던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여기에 복종하도록 성령님이 이끄십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저주를 뒤집어쓰신 것처럼 우리도 이 저주를 우리가 일본을 향한 저주가 뭘까요?
기도의 저주. 기도 열심히 해야 됩니다 물질 그것도 우리에게는 저주입니다
시간 내 정성 내 달란트 모든 걸 받치는 일에 우리가 참여해야 되는데 이게 내 뜻대로 안 됩니다 성령님이 은혜 베푸셔야 됩니다.
지금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창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나는 것을 보셨듯이 자금 저는 일본열도가 가정교회들로 여기저기에 우후죽순으로 나타날 것을 저는 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여만 하셔도 여러분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결론 중에 결론입니다 창세전에 예수님이 어떤 심정을 가졌을까요?
라고 본다면 이분이 성부하나님도 이 심정을 가지지 않았을 걸로 봅니다.
예수님만큼 성령하나님도 마찬가지고 그렇지만 예수님은 내가 장차 인간으로 내려가서 내가 엄청난 수모를 겪으며 내가 고생할 터인데 나중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삼위하나님 중에 성부하나님 성령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라고 까지 절교할 때가 올 텐데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나 십자가 안지겠습니다. 라고 오리발 내밀 정도까지 어려움을 이분이 미리 다 아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 되셔가지고 신성을 다 비우시고 여기까지 갈 것을 미리 아시면서 지냈던 예수님의 심정을 저는 오늘 창세전에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심정을 조금이라도 여러분들이 이걸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 이 단에 섰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은 성부하나님보다 성령하나님보다 더 마음고생 하셨겠네요.
이렇게 우리식으로 한번 이야기해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찬송 속에서도 어디서나 예수님! 예수님 고맙습니다. 그러잖아요.
항상 이렇게 예수님! 예수님 고맙습니다.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라고 자꾸 말을 하면 예수님이 나에게 너 이놈아 이렇게 생각하는 내 자녀는 많지 않는데 아프리카에 가도 많지 않고 중동이나 미국 가도 많지 않는데 너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느냐 참으로 예뻐다 그러면서 저를 예뻐하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너가 이런 생각까지 하느냐 내가 창세전부터 괴로움 생각을 한 것을 어떻게 아느냐? 황 목사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면 황 목사 너는 어떻게 아느냐? 나도 모르게 성령님이 이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것 밖에 대답이 없는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일본가정교회가 앞으로 숫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이 나타날 터인데 가정교회들이 많이 나타날수록 우리는 더 죽어야 됨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주여 앞으로 우리가 죽을 일이 너무나 많고 태산 같습니다
주여 저희들을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저희들을 통해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예수님이 인격을 가지시고 감정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예수님이 너희들 나에게 감사하라 나에게 기뻐하라
항상 나를 인정하라 그분이 그러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 차원을 높여서 예수님 창세전부터 이 고생을 하셨군요? 그러면서 예수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창세전부터 이 고생을 하셨군요?
이 말만 자꾸 하세요. 그러면 예수님이 얼마나 흐뭇해하시겠습니까?
너 이놈아 그걸 어디서 배웠느냐 내가 창세전부터 이 고생을 했다
너희들을 위해서 이분과 이런 대화를 계속하시면 나중에 우리가 숨이 끊어질 때 예수님을 만날 때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이 메시지를 우리는 일본열도에 나누어야 되는 겁니다. 모든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 안에 우리와 이 메시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분들에게 나누어야 됩니다. 성령님이 그렇게 이끄실 겁니다.
삼위하나님이 이렇게 이끄시고 홀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창세전 십자가 지시기로 복종하신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빌2:5-11)
1. 창세전 삼위 하나님의 공동회의란 무슨 의미입니까? 왜 공동회의를 하셨습니까?
2. 이 공동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3. 창조목적 학교의 구조가 어떠합니까?
4. 예수님이 무엇을 복종하셨습니까?
5. 전지하신 예수님이 33년간 겪으셔야 할 문제들을 창세전에 미리 아셨습니다. 어떤 문제들입니까?
6. 사53:3에 의하면, 과거형인데, 왜 과거형입니까?
7. 예수님이 창세전에 어떻게 장차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까?
8. 창세전, 예수님 자신의 복종으로, 장차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아셨습니까?
#황용현 목사님 주일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H5W-94o3pZE&t=12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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