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 목사님 칼럼

2023년5월27일

변명섭 2023. 5. 27. 17:44

일본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진 사자입니다. 왜 사자라고 했나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고 지배력이 있습니다. 세계인으로부터 존경 받는 선호 국 중 미국, 영국 다음가는 나라입니다. 노벨상 수혜국 중 하나입니다. 인구도 1억 2천만 명으로 대국입니다. 면적도 한반도의 1.7배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잠자고 있습니다. Operation World(2010, Jason Mandryk, pp.488-494)에 의하면, 인구측면에서 가장 큰 '미전도 족속'이라 합니다. 지난 500년간 복음을 받아왔는데도, 아직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진 사자입니다.

일본이 처음 복음 받은 때가 주후1549입니다. 로마가톨릭 예수회 선교사 하비에르(Xavier, 주후1506-1552)의 가고시마 도착을 기원으로 합니다. 그 후 교인이 급증하여 10만 명(주후1580), 45만 명(주후1600년 초)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중 지식인들과 사무라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반면 한국 카톨릭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전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1) 임진왜란(주후1592-1598) 때, 예수회 교인 10만 명이 참석했는데, 이때 예수회 선교사 세스페데스(Cespedes)가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정두언이 명나라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이태리 예수회 신부, 중국 주재, 기독교 변증서 ‘천주실의’ 집필)의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귀국(주후1631)했습니다. 그후 병자호란(주후1636-1637)때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가톨릭 서적을 가지고 귀국(주후1645)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천주교 시초를 역사가들이 주후 1779년으로 봅니다. 이 해에 이벽,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등이 천주교 교리를 체계화 했습니다. 이어서 이승훈(주후1756-1801)이 북경에서 그라몽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으므로(주후1784), 우리나라의 최초 천주교 세례교인이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의 기원이, 임진왜란 때부터라 한다면, 일본과 거의 같은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개신교 역사의 기원도 우리와 비슷한 때입니다. 일본의 개신교 기원을, '미일 화친조약'(주후1854) 이후, 미국인 의료 선교사 Hepburn(주후1815-1911)의 요코하마 도착(주후1859)을 기원으로 합니다. 그가 최초의 상주 선교사였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개신교 기원을, '한미 수호조약'(주후1882) 이후, 우리나라의 최초 상주 선교사로 알렌(Allen, 주후1858-1932, 의사, 주후1884 입국)의 입국부터라 합니다. 그 다음해(주후1885)에 아펜젤러(Appenzeller, 주후1858-1902, 감리교)와 언더우드(Underwood, 주후1859-1916, 장로교)가 상주 선교사로 입국 하였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 개신교 복음이 들어온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입니다. 주후1832년에 비상주 선교사로 1개월 머무르며, 선교하였던 개신교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중국에 상주하였던 독일인 루터교 선교사입니다. 귀츨라프(Gutzlaff, 주후1803-1851)입니다. 황해도 장산곶 부근에 도착 하였습니다(주후1832, 중국어 성경과 기독교 문서들 가지고). 1개월 머물며 전도했습니다. 쇄국정책에 의해 재입국이 거절당했습니다. 일본의 Hepburn보다 27년 전입니다.

그후 중국에서 사역하던 영국인 토마스(Thomas, 주후1839-1866) 회중교회 선교사가 대동강에서 순교했습니다(주후1866). 그가 가지고 왔던 성경 한 권이, 그후 우리나라 복음화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후 1920년에 이미 24만 명의 개신교인이 나왔습니다. 당시 2천만 인구의 1.8%였습니다. 이 추세가 계속 되다가, 1960년도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기독교를 이해하려면 일본 근대사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지난 500년 근대사를 이렇게 나눕니다. (1) 전국 시대(주후1467-1603), (2) 에도 시대(주후1603-1868), (3) 메이지 시대(주후1868-1911), (4) 다이쇼 시대(1911-1926), (5) 쇼와 시대(1926-1989), (6) 아키히토 시대(1989-2019), (7) 나루히토 시대(2019-)입니다.

'에도 시대'에 천주교 핍박이 가장 심했습니다. 일본 천주교회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에도 시대'의 '기독교 금지령'(1613) 이후, '메이지 시대' 기독교 허용(1873) 기간까지 260년 동안, 약 5,500명의 천주교인이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반면 일본 '개신교인 순교자'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개신교인 순교자'가 많았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엄청 많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순교', '북한 공산당에 의한 순교', '남북 전쟁 기간 순교', 지금까지 이어지는 '북한 무신론 공산당에 의한 셀 수 없는 순교자들' 입니다. 세계기독교 연감에 의하면, 북한이 기독교인 핍박 1등 국입니다. 북한 순교자들의 피의 대가가 있기에(요12:24), 우리가 오늘날 세계 제2위의 선교 대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도 '순교자의 피가 뿌려진 땅' 입니다. 그러나 우리만큼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일본이 아직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나요? 여러 요인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하나가 일본에 들어왔던 선교사들의 '좌경화된 신학 사상'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감리교의 '맥클레이'(Maclay, 주후1824-1907) 선교사의 '사회복음주의 사상'이 그 사례 중 하나입니다. 그가 '청산학원'을 설립(1874)하여 많은 '진보사상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이중 우리나라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기독교 장로교'를 설립한 대표적 진보신학자인 김재준 목사를 위시한 송창근 목사 김정준 목사가 이 학교 출신입니다.

두번째 선교사가 세운 학교가 '삿보로 농학교'(1875년 개설)입니다. 미국 마사추셋 주립 농과 대학장 출신 '클라크'(Clark, 주후1826-1886)가 세웠습니다. 그는 진보사상을 가진 회중교회 선교사였습니다. 선진 낙농법을 도입했습니다. 일본에서 최초 학위 수여 기관이 되었습니다. 당대 일본 유명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이중 한 분이 '우찌무라 간조'(주후1861-1930)입니다. 당대 영향력 있는 기독교 사상가였습니다. '무교회 주의자' 였습니다. 이분의 이 '무교회주의' 사상이 온 일본 교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일본 교인들 대부분이 교회 출석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분의 제자들에 의해서 입니다. 김교신, 유달영, 함석헌 등입니다.

또 하나의 학교가 있습니다. '동지사 영어학원'(1875년 개설)입니다. 미국 회중교회 신학교인 '앤도버 신학교'(Andover Seminary) 졸업한 일본인 '니지마조'가 회중교회 선교사로 임명 받고, 귀국하여 이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 학교도 진보신학을 가르쳤습니다. 이 학교 출신 한국인이 고황경, 정지용, 윤동주입니다.

이렇게 당대 일본을 대표하는 개신교 교육기관들이 진보성향 이었습니다. 제2차전쟁 기간, 일본 정부가 모든 개신교 기독교 교단을 통합하였습니다. 그 이름이 '일본 기독 교단'(주후1941) 입니다. 당시 조선에 있는 개신교 교단들도 통합시켰습니다. 그 이름이 '일본 기독교 조선 교단' 이었습니다. '천황 숭배 목적' 이었습니다.

일본 패망(주후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 기독 교단'이 복구 되었습니다. 이 안에 가장 큰 교단이 '그리스도 연합 교단'(United Church of Christ, 20만명, 진보 신학, 종교다원주의)이며, 그 다음으로 '예수의 영 교단'(The Spirit of Jesus Church, 14만명, 보수와 진보 50%씩) 입니다. 나머지 개신교단들은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작습니다.

이렇게 일본교회가 영적으로 잠자고 있습니다. 이들을 깨워주어야 합니다. 일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외침입니다. 한국 교회에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이미 1천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열심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힘은 없지만, 이들 선교사님들과 함께 손잡고, 일본을 섬기려고 합니다. 머지않아 일본이 깨어날 것입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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