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 목사님 칼럼

2023년6월10일

변명섭 2023. 6. 10. 15:40

선교전문가들에 의하면 일본이 아직 미 전도족속 국가라 합니다. 500여 년의 기독교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도 안타깝게도 미 전도족속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 이웃나라인 우리는, 세계 제2위의 선교대국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대입니다. 일본에 숨겨진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음화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뜻이며 소원입니다. 이 뜻을 위해 오늘날, 1천여 명의 한인 선교사들이 일본 복음화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여기에 합세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이러합니다. 북쪽 홋카이도부터 남쪽 오끼나와까지, 전국에 가정교회들을 세우는데 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롬1:7; 고전1:3)와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행1:8). 우리의 노력이나 열심이나 비전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와 우리가 섬기는 일본 사역자들 모두가, 이 은혜와 능력으로 옷 입힘 받아야 합니다.

우리만이 아니고,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일본사역자 분들도, 한 분도 예외 없이 모두, 이 은혜와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일본 복음화가 예수님의 뜻이며 소원이기에, 분명 예수님께서 우리와 이분들에게,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지난 제1회에서 이것이 입증 되었습니다. 귀국하여 이들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8월말에 있을 제2차에 자신만 아니고, 주변 분들을 모시고 온다고 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성령님께서 이들에게 '가정교회' 개척 비전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때에(전3:1), AMI 훈련 받은 일본 사역자들에게 이 비전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이 비전을 가지고 묵묵히 예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로 이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섬기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우며, 예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 AMI team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의의 면류관'(딤후4:8)과 '영광의 면류관'(벧전5:4)을 주실 것입니다. 왜요? 여러분들이 디모데후서 4:7-8과 베드로전서 5:1-4의 가르침에 직접 간접으로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사역자들도 우리처럼, 이런 면류관들을 받는 자 되도록, 우리가 기도와 정성과 물질로 이들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은혜입니다.

우리는 '두라노 서원'을 운영했던 '바울 팀'입니다(행19:9). 바울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누가, 디모데, 디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두기고 등 신실한 동역 자들이 있었듯이, 저에게도 여러분이 있습니다. '두라노 서원'에서, 100여명의 졸업생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이들이 로마제국에 가정교회를 세웠습니다(롬16:5; 고전16:9; 골4:15). 우리가 이 모델을 일본 선교에 적용하려 합니다.

300년 초대교회는 카타콤 교회로 가정교회였습니다. 순수했습니다. 그 후 건물 짓고 제도화 되면서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화 되고, 정치화 되고, 이권화 되고, 세력화 되고, 파벌화 되었습니다. 로마가톨릭 교회, 그리스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애굽 콥틱 정교회 등입니다. 종교개혁(주후1517) 이후, 주류 개신교단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놀랍게도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세계교회에서 '가정교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공산권, 이슬람권, 힌두 권, 불교 권 국가에서 '가정교회' 운동이 있어온 지 오래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이 추세가 더욱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일본도 코로나 이후, 이 추세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편승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순교 1년 전(주후67), 당시 에베소 교회(가정교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유언 적 목회 서신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령했습니다. "내 아들 디모데야, 너는 로마제국 복음화를 하는 '영적 군인'과 '달리기 선수'다. 그러므로 너는 '육적 혼적 영적'으로 강건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나에게서 배운 '바울신학'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이들이 이것을 전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이 제자들이 대를 이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단다"(딤후2:1-2). 바울이 자신부터 시작하여, 적어도 4대까지를 바라보며 이 '선교 도전'을 했습니다.

이 '선교 도전'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사역자 선택 요건' 두(2)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1) 잘 가르치는 자야만 하고, 이에 걸맞게 (2) 충성된 자(faithful)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충성된 자란, 변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며 신의를 지키는 자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디모데에게 도전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군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받아야 한다. '자기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복음 달리기 선수'다. '달리기 규범'(신앙생활 규범)대로 달려야 한다. 아니면 면류관 받지 못한다"(딤후2:3-5).

질문이 있습니다. 이 '달리기 규범'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곧 (1) 수직계명, (2) 수평계명, (3) 지상사명을, 순서에 맞추어 '달리기 하는 것'(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복음 달리기'(신앙생활)하는데 반드시 지켜야 하는 '달리기 규범'입니다(마6:33, 22:37-39, 28:19-20). 반드시 이 순서대로 달려야 합니다. 이 규범에 따라 달려 우승할 때, 면류관이 있습니다. 순서대로 안 하면, 아무리 우승하여도 면류관이 없습니다. 순서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신이 이 규범대로 달려왔다고 가르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단다."(딤후4:7-8). 바울이 디모데에게 도전합니다. "너와 네 제자들도 이 규범대로 달려야 한단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우리가 섬기는 일본 사역자들을 향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이 규범대로 하지 않으면, 일본 사역자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수고가 헛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기억되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이 '달리기 순서 원칙'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순서 원칙'을, 우리가 섬기는 일본 분들에게 모본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들이 따라오도록 말입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왜 순서가 중요한가요? 순서가 잘못되면, 예수님 대신 우리가 영광 받게 됩니다. 일본사역을 하면서, 예수님 대신 저를 포함한 우리가 영광 받게 됩니다. 우리의 욕심이 앞서게 됩니다. 우리의 자랑이 앞서게 됩니다. 우리도 모르게 교만해집니다. 우리가 선교 잘한다는 소문을 내며, 사람들의 칭찬을 기대하며, 이 칭찬을 즐기게 됩니다. 인간의 죄성과 나약성이 노출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창조목적 위반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상기 '달리기 규범'대로 달리는 것(신앙생활 하는 것)뿐입니다. '수직계명'을 최우선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수직계명'(창조목적)에 최우선 할 때, 자연 '수평계명'을 잘하도록 성령님이 능력 주시며 도우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연히 '지상사명'을 잘 하도록 이끄십니다.

이런 분에게 '지상사명'의 열매를 아름답게 맺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기억하시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는 열매입니다. 우리의 일본 선교에 이런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가시적으로 커지고 성공했다고 해도, 바뀐 순서로 사역했다면,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겠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AMI 팀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일본 선교하는데 있어, 우리가 최우선으로 명심해야 할 일이 '수직계명 순종'입니다. 그리고 '수평계명 순종'입니다. 이것 없는 '지상사명'(일본선교)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일본선교에 결단 하였기에, ABA공부와 말씀 공부로 훈련 받고 있기에, 분명 성령님께서 우리가 이 '순서 원칙'에 부합된 자가 되도록, 조금씩 서서히 발전적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일본 선교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의의 면류관'(딤후4:8)과 '영광의 면류관'(벧전5:4)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겸손히 일본을 섬기려 합니다. 황 용 현 목사

'황용현 목사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년6월24일  (0) 2023.06.24
2023년6월17일  (2) 2023.06.17
2023년6월3일  (1) 2023.06.03
2023년5월27일  (1) 2023.05.27
2023년5월20일  (1) 2023.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