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상저세상 12강. 교회사(1)(롬1:17) 2015년1월1일 말씀
처음400년 동안 기독교계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누룩들을 허락하는 과정 속에서 예수님의 아주 귀한정체성과 또 기독교계의 기본 되는 교리들을 창출해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교리를 만들기 위해서 누룩들을 사용하신 겁니다. 이 원칙은 우리 개인 삶에서도 항상 나타나고 우리가정 삶에서도 나타나고 앞으로 남은 우리여생 속에서도 나타나고 인간역사 속에서도 특히 크리스천 히스토리 안에서도 이것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방법을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깨달으면 사물은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지난시간에 봤지만 주님께서 로마교회를 통해서 또 하나의 누룩을 준비하시는 겁니다. 로마교회가 누룩을 없애는 일에 앞장을 섰다가 또 자체 내에 욕심 교단 내에 욕심을 배경으로 해가지고 누룩을 또 준비시켰습니다. 그것이 마리아학설입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학설 누룩이 1000년 동안 기독교계를 강타했습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말할 것 없고 정교회들 애굽정교회 시리아정교회 그리스정교회 나중에 그리스정교회가 주후1000년 되었을 때 정확하게988년에 러시아정교회로 슬라빅민족들이 그리스정교회를 통해서 가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동유럽 쪽에 정교회들이 가지를 치게 되었는데 이분들이 다 마리아학설을 그냥 안고서 신앙생활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 안에 마리아학설의 누룩이 들어가 있으니까 이 안에 주님의 백성들이 마리아가 아닌데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겁니다. 천년을 그렇게 하다가 이제 주님생각에 이것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가지고 정리운동을 하는데 그기에 보면 역사적인 배경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는데 로마가톨릭 첫 교황이 언제 되었습니까? 590년입니다 첫 교황이 되면서 그때부터 그 후임교황들이 600년도 700년도 800년도 900년도 까지 1000년 가까이 까지 400년 가까이 교황들이 엄청나게 부패했습니다. 교황만 부패한 게 아니고 로마가톨릭교회가 부패했습니다. 그래서 교황들이 어떤 교황은 6개월 교황 하다가 그냥 칼에 맞아 죽고 독극물을 먹고 죽는 일도 있고 또 그 안에 암투가 심해가지고 교황이 보통100년 사이에 20명에서 심하면30명까지도 교체가 되는 겁니다.
이 안에 암투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이렇게 가면서 돈은 많아지고 권한도 많아지고 경쟁교회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로마가톨릭이 부패해지면서 그러다가1100년 가까이 되었을 때 십자군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모든 십자군운동 같은 것은 1년2년 동안 로마가톨릭의 내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로 이런 일을 하는 가운데서 유대인들을 많이 죽이고 로마가톨릭신학이 반유대주의입니다 그리고 이슬람들을 많이 죽이고 이런 일들이 십자군전쟁 때 1100년에서1300년 사이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다시 말하면 서유럽 쪽에서 이러면 안 된다 우리가 새로운 운동을 일으켜야 되겠다. 라는 운동이 움 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르네상스운동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르네상스운동이 한국말로는 문예부흥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 전에는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면 교회 중심으로 로마가톨릭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신본주의입니다 인간의 모든 요소는 배재시키는 겁니다.
다 교황 중심으로 교회 중심으로 하나님중심으로 신본주의인데 그 안이 섞은 겁니다. 그러니까 지식인들이 그 안에서 이게 아니다 우리가 다른 측면으로 사물을 보자고 한 것이 소위 르네상스 문예부흥운동인데 프랑스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어나가지고 우리가 한번 인간을 들여다보자 우리인간이 그저 하나님의 하나의 속물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인간인가 우리도 우리의 의지가 있고 우리의 존엄성이 있는데 하면서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사상으로 가는 시작이 문예부흥운동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을 발전시키고 그러다보니까 서로 문학 철학 모든 부분에서 급진적인 발전이 오고 이랬습니다. 생각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 로마가톨릭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로마가톨릭교회를 들여다보는 겁니다. 문예부흥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사상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이분들이 뭘 들여다보느냐면 로마가톨릭에 전통신학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떤 문제가 있느냐면 로마가톨릭은 소위 중세스칼라(Scholasticism)철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교회입니다
이게 뭐냐면 중세스칼라(Scholasticism)사상은 어디서 왔느냐면 로마가톨릭교회를 만든 어그스틴(Augustine)이중심이 되어서 만들었는데 어그스틴(Augustine)은354년에서 430년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문예부흥이 일어나기 약 800년에서1000년 전 사람입니다 십자군전쟁이 일어나고 그 뒤에 문예부흥이 일어났는데 어그스틴(Augustine)사상을 기초로 해가지고 중세스칼라(Scholasticism)철학의 기조가 뭐냐면 이분들은 형식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제도 형식 이런 것을 나타나는 형식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속에 있는 것보다는 겉으로 나타나는 형식을 중요시하는 그런 철학사상을 스칼라(Scholasticism)철학사상 중에 한 가지인데 로마가톨릭이 이 사상을 가지면서 어떻게 로마가톨릭의 신학이 만들어졌느냐면 전통과 형식에 치중하는 교리가 주종이 되어 버린 겁니다.
예를 들면 예배의식이 메시지보다는 예배의식을 잘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신다고 보는 그다음에 사제들은 거룩한 옷을 입어야 되고 또 성인들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그분들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되고 그리고 교회법도 규례도 거룩하게 만들고 교회건물도 거룩하게 짓고 그리고는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통을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비 본질에 이분들은 그기에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비 본질에 그래서 철학용어로 비 본질을 뭐라고 그러느냐면 아디아포라(adiaphora)라 그럽니다.
아(a)라는 것은 없다는 소리입니다 아디아포라(adiaphora)에 포커스를 맞춘 교회가 로마가톨릭교회인 겁니다. 그러니까 르네상스에 의해서 나타난 교회 안에서 현실주의자들은 뭐냐면 왜 우리교회가 비 본질에 이렇게 목에 힘주고 있느냐 여기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본질은 뭐냐 본질은 디아포라(diaphora)라고 그러니까 본질이 뭐냐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라는 겁니다. 기독론이라는 겁니다.
1000년 전에 네 번의 공의회에서 만들어낸 그 내용들이 본질이라는 겁니다.
창조목적 하나님의정체성 이런 것들이 약해지고 형식에 빠져 있는 로마가톨릭에 모습을 가지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르네상스를 기해서 나타나는 겁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분이 존 위클리프(John Wyclif)라고 그럽니다.
이 사람은 1324년에서1384년에 살았던 영국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로마가톨릭신부입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1517년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약200년 전 사람입니다.
이 사람하고 또 한 사람이 이 사람사상을 이어받은 사람이 존 후스(John Hos) 이 사람은 1369년에서1415년에 살았던 사람으로 보혜미아(Bohmia)출신입니다. 보혜미아(Bohmia)라는 게 지금의 체코입니다
이분들이 로마가톨릭의 신부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제가 말하는 비 본질에 집중하고 있는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200년 전에 그래서 존 위클리프(John Wyclif)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릴 테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변혁을 주도해가는 그런데 우리가 루터가 변혁을 주도해갔잖아요 그러니까 루터 전에 벌써 준비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습니다.
준비하는 사회운동 준비하는 지도자들 루터가 이렇게 앞장서서 아! 그분이 종교개혁 했다고 단순하게 볼 수 있는데 그게 아닙니다. 나중에 제가 루터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릴 때가 올 텐데 우선 존 위클리프(John Wyclif)에 대해서 잠깐 보세요. 존 위클리프(John Wyclif)이분이 그 강한 로마가톨릭의 신부면서 교황을 비난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겁도 없는 사람입니다
교황을 비난하면서 뭐라고 그랬냐면 교황이 죄 사함해줄 권한이 없다
라고 공포를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교황의 무오성입니다.
교황은 실수하는 분이 아니라는 그기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그리고 연옥설도 반대하고 그다음에 성인들을 섬기는 이런 것도 반대하고 그러면서 로마가톨릭이 개혁해야 된다고 외쳤던 사람입니다. 특히 로마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성례전이 있습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꼭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성례전을 화체설이라고 그럽니다.
영어로(Transubstantiation, 化體說)우리개신교사람들도 이 단어를 외우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화체설이라 그럽니다. 지금도 로마가톨릭에서는 이것이 자기네의 생명으로 보는 겁니다. 이 화체설이 뭐냐면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사제들이 서있는 강단이 상당히 넓습니다. 이게 구약의 성전성막시스템입니다 이분들은 무엇을 믿느냐면 강단에서 사제가 서서 미사(mass)를 진행할 때 기도를 하면서 예수님! 저희들이 지금 예수님의 떡과 피를 저희들이 먹기를 원합니다. 그 순간에 강단 뒤에서 예수님이 실제로 뒤에서 오셔가지고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겁니다. 죽으시고는 그분이 흘리는 피와 살이 신부가 들고 있는 떡과 포도주가100%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피로 바뀐다는 겁니다. 그 순간에 그러니까 제사를 드려서 예수님의 십자가갈보리사건이 매주 마다 일어나는 겁니다. 사제가 서서 그 기도를 하면 그러면서 떡과 포도주가 뭐가 되느냐면 예수님의100%진짜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피가 된다는 겁니다. 그걸 화체설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그렇게 예수님 화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트랜(tran)하는 말은 변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옮겨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실제 몸과 피를 성도들이 먹고 마시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미사(mass)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톨릭이분들은 모여서 이 순간이 절정인 순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실제로 먹고 마시는 예배가 미사(mass)인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변해가지고 요즘은 교인들도 떡도 약식 화되고 포도주도 안마시잖아요. 안마시고 그냥 신부만 마시고 말잖아요. 이렇게 약식으로 간편해졌습니다. 이 믿음이 지금도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떡이 조금 남았습니다. 숫자에 맞추어서 하다 보니까 떡이 남은 그 떡은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에 그 떡을 따로 모시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피는 신부님이 다 마셔야 됩니다. 그래서 수건으로 닦아서 자국이 없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심이 온전히 끝났다는 겁니다. 완성되었다는 하나의 의미에서 피와 떡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겁니다. 이걸 화체설이라고 그럽니다. 이것을 하다보니까 소위 사제의 파워가 커지는 겁니다. 사제가 예수님을 불려오는 파워도 있고 예수님의 몸을 직접 나누어주는 파워도 있고 나중에 사제들에게 와서 개인 죄를 고백하는 죄 사함을 주는 그러한 파워도 있고 이런 것들 때문에 존 위클리프(John Wyclif)가 보니까 이분도 사제면서 학자입니다 나중에 이분이 위클리프 바이블(Wycliffe Bible)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경을 번역해서 전 세계로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오리지널성경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뭘 반대했느냐면 로마가톨릭에 대해서 화체설은 틀려먹었다는 용감한 발언을 자꾸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로마가톨릭에서 볼 때는 아주 불편한 사람입니다 저렇게 똑똑한 사람이 우리전통을 무시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답답하니까 성서를 아예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걸 위클리프 바이블(Wycliffe Bible)이라고 그럽니다. 1382년입니다 영국의 왕 킹 제임스성경을 만든 때가 언제냐면 1611년입니다 그러니까 229년 전에 성경을 만든 분이 위클리프(Wyclif)인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분이 성경을 만들어서 성경 안을 들여 다 보니까 로마가톨릭신학이 잘못된 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알아야 되는 겁니다.
실력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분에게 이것을 보여주면서 이분은 하도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이분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죽은 후에 후임자가 나온 분이 존 후스(John Hos) 이 사람이 성직을 매매하는 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다음에 화체설도 반대하고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에 대해서 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하도 담대하니까 로마바티칸에서 이분을 앉혀놓고 재판을 했습니다. 재판해가지고 그기에 있는 배심원들이 이 사람을 사형선고해서 이분이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로마가톨릭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중에 낙원에 올라가면 한번 여쭈어볼 제목 중에 하나가 로마가톨릭에서 이렇게 죽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황들도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은 후에 15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까150년은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그사이에 로마가톨릭교회 안에서 꿈틀거리는 종교개혁을 해야 되겠다는 꿈틀거리는 운동이 그러니까 이런 큰 덩치가 개혁을 하는데 꿈틀 거리임이 150년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현실을 보면 지금부터150년 전이 언제입니까?
지금2022년 빼기150년이면 1872년이면 언더우드(Underwood)가 우리나라에 온 게1885년이니까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입니다
그때부터 운동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하나님은 굉장히 크신 분이십니다 길게 보시고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라이프스타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길게 보시고 일하셔야 합니다. 우리 같으면 성질나는데 로마가톨릭을 단칼로 잘라버리는 이게 아닙니다. 오래 놓아두시는 겁니다.
그 안에서 무르익을 때까지 그러다가 하나님이 한 사람을 택한 게 마틴 루터(Martin Luther)입니다. 루터는 1483년에서1546년으로 독일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34세 되었을 때 1517년에 이분이 학자입니다
이분도 루터라는 바이블도 만든 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런 학자들을 쓰십니다. 학자면서 로마가톨릭의사제고 이분이 그 안에서 고민, 고민하다가 성서의 내용을 주욱 보니까 로마가톨릭이 고칠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겁니다.
그래서95개의 조항을 쫘악 적었습니다. 로마가톨릭이 잘못 된 부분들95개 조항들을 적어가지고 독일의 비텐베르크 교회 문 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분이 어려움을 당했지만 이것이 하나의 불씨가 된 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가지고 있는 신학사상이 뭐냐면 우리가 저세상 가는 방법을 로마가톨릭이 가는 방법보다 다르게 제시했습니다. 저세상 가는 방법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구원론입니다 로마가톨릭은 어떻게 구원론을 만들었냐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만 가지고는 완전치 않다는 겁니다. 로마가톨릭의 제도 속에 들어와야 되고 제도 속에 들어와서 예수님을 믿고 그다음에 로마가톨릭에서 말하는 모든 제도에 순종할 때 구원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전통을 무시하면 구원이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또 이분들이 강조하는 게 그 당시에 면죄부를 사야 되는 이런 모든 복잡한 구원론이 루터 때 있었습니다.
존 후스(John Hos)때도 이미 그런 게 있었고 그래서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성서를 읽어보니까 로마가톨릭의 구원론은 이게 비성서적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만든 자기의 구원론이 이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아는 말입니다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성경 그리고 솔라 피데(Sola Fide)오직 믿음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로마가톨릭이 구원론이 변해야 된다. 오직성경 플러스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그걸 가지고 로마가톨릭신학에 도전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의 신학을 자기가 정립했습니다. 이분이 예정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정되어 있다 이게 루터교리 중에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예지 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자기자녀인 것을 아셨다는 겁니다. 예지 론입니다 그다음에 이분이 삼분 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다음에 이분은 만인제사장 론을 주장했습니다. 꼭 사제들만 저기 서 있는 저분들만 아니고 우리 모든 평신도들도 다 제사장이다 그러니까 대단한 획기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의 100%신성을 강조하고 100%인성을 강조하고 거기다가 이분은 사제들은 결혼을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전에는 결혼안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화체설에 대한 새 학설을 이분이 들고 나왔습니다. 존 후스(John Hos)나 존 위클리프(John Wyclif)도 화체설을 반대하면서 그분들이 가졌던 학설이 뭐냐면 공재설(consubstantiation)이라고 공통적으로 임재 했다는 의미에서 공재설 이게 뭐냐면 똑같이 사제가 성만찬을 하기 위해서 서 있으면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으로 본질이 변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뭐냐면 변하는 게 아니고 그 본질과 함께 계신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공재라 그러는 겁니다. 본질과 함께 계신다. 로마가톨릭과 약간 다른 의미입니다
함께 계시기 때문에 다 마실 필요도 없고 그래서 예배가 끝나면 다시 옛날 빵과 포도주로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큰 변화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루터란 교회들은 또 몇몇 교단들은 공재설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여기저기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한 유명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에라스무스(Erasmus)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1469년에서1536년으로 이 사람은 화란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영국사람 존 위클리프(John Wyclif)를 쓰시고 체코사람 존 후스(John Hos)를 쓰시고 또 마틴 루터(Martin Luther)독일 사람을 쓰시고 이제는 에라스무스(Erasmus)화란사람을 쓰시는 겁니다. 아주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로마가톨릭의 신부며 신학자입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나왔느냐면 펠라기우스(Pelagius)사상 펠라기우스(Pelagius)가354년에서470년대의 영국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사상이 무엇입니까?
자유의지가 부패해서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죄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스스로 자유의지를 다시 회복시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펠라기니즘(Pelagianism)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에라스무스(Erasmus) 이 사람은 여기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실력이 대단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라틴어와 헬라어의 대가였습니다.
그래서 화란사람이지만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라틴어와 헬라어교수생활을 오래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에라스무스원전이라는 말 들어봤습니까? 에라스무스원전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에라스무스의 라틴말과 그리스말로 된 신약성서로 에라스무스가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에라스무스의원전은 나중에 루터도 성경을 쓸 때 이 원전을 항상 참고로 했습니다. 루터원전은 언제 썼느냐면 1532년에 신약을 쓰고 1534년에 구약을 썼는데 또 영국사람 중에 윌리암 틴데일(William Tyndale)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도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1494년에서1536년으로 영국 사람인데 이 사람이 1525년에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틴데일 바이블(Tyndale Bible)이라고 지금도 틴데일(Tyndale)하면 유명합니다.
세계적으로 그 사람이름을 딴 신학교이름이 많습니다. 1525년에 신약을 만들고 1530년에 모세오경을 만든 분입니다 이분도 에라스무스원전을 가지고서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1611년에 킹 제임스성경을 만들 때도 에라스무스원전이 교과서였습니다. 그만큼 에라스무스라는 사람이 아카데믹하게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기발한 생각을 한 게 펠라기우스가 말했던 자유의지론을 약간 수정해가지고 자신의 자유의지론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자유의지론 때문에 오늘날 종교다원주의까지 흘러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대단한 사상가입니다 자유의지론 때문에 알미니안니즘 그다음에 감리교의 웨슬리안니즘 다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을 기조로 해서 신학을 만든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에라스무스가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뭘 이야기하느냐면 우리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협동함으로서 구원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 모든 인간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허락했지만 내가 자유의지를 발동해서 그 기회를 내가 부인할 수도 있고 그 기회를 내가 붙잡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세상 가는 조건을 어디에 갔다 되었습니까? 자유의지에 갔다 된 겁니다 아까 펠라기우스는 어떤 사상입니까? 그 사람은 우리마음에 있는 자유의지만 새롭게 만들면 우리는 원죄가 해결된다고 믿는 아주 단순화된 사상인데 이 사람은 구원론까지 이렇게 펼쳐나갔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분의 자유의지론에 대해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분은 로마가톨릭의 모든 제도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런 부분에서 루터와 서로 짝에 맞아서 하는데 루터가 그러는 겁니다. 당신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로마가톨릭을 떠나라 그런데 이분은 나는 죽어도 안 떠나겠다는 겁니다. 로마가톨릭을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그러면서 이분이 한 말이 내가 있어야지만 로마가톨릭이 변한다는 겁니다.
이분이 그런 생각을 한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분은 그냥 그렇게 해서 종교개혁에 직접 가담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사상이 상당히 영향을 주었습니다. 복잡하지만 이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쯔빙글리(Zwingli)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스위스사람입니다 쯔빙글리(Zwingli)라는 사람은 루터의 멘토였던 사람이었습니다. 루터는 항상 이분에게 자문을 듣고 그랬습니다.
어떤 때는 루터가 성품이 아주 안 좋은 사람으로 역사책에 보면 나오는데 이 사람이 자기마음에 안 들면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는 이런 독불 장군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신학적으로 루터가 이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루터신학이 아까 봤죠.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오직성경 그리고 솔라 피데(Sola Fide)오직 믿음 이걸 이분이 사이드에서 도와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루터와 한바탕 불편한 관계가 있는 중에서 성례전 문제로 불편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루터는 어떤 성례전입니다 공재설입니다
그런데 쯔빙글리(Zwingli)의 성례전을 보니까 누가복음22장19절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떡을 떼시면서 너희들이 나를 기념하라 쯔빙글리(Zwingli)가 보니까 기념하라고 했는데 너는 왜 이렇게 공재 설을 이야기하느냐 기념만 하면 되지 문자적으로 쓰 있는데 여기서 서로 불편해진 겁니다.
그래서 쯔빙글리(Zwingli)는 기념 설을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사이가 불편하니까 중간에 핍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두 사람을 화해시켜보자 그래가지고 기독교역사에 보면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모아서 화해시키려고 모인 장소가 마르부르크 회담이라고 그럽니다. 둘이 앉아서 이야기했을 겁니다. 루터가 자기 멘토 앞에서 잘 나가다가 문헌을 들여다보니까 루터가 화가 나가지고 문을 차고 나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둘이 회담을 하다가 왜 그랬냐면 공재설과 기념설 이게 서로가 안 되는 겁니다. 성경을 펴놓고 봐라 이것은 공재설이 아니다 이것은 기념인데 왜 그러냐며 자기 선생님에게 삿대질하고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걸 보면서 주님이 이 사람을 사용해가지고 종교개혁에 앞장서서 용감하게 준비시켜놓았지만 그 사람의 성품을 보니까 외골수고 배타적이고 비타협적이고 자기선생에게도 덤벼드는 안하무인격적인 부족한 성품 이런 사람들을 주님이 쓰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 사람 그 자체만 보고는 저사람 말하는 것 다 틀려먹었어. 로마가톨릭이 맞아 이렇게 단순하게 볼 수 있잖아요. 아닙니다. 주님이 저나 여러분들을 쓰실 때도 똑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족한부분이 있는데 그 부족한 부분을 주님이 고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있어야지만 자기가 겸손해지는 겁니다.
루터도 이렇게 화를 내면서 나가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앉아서 고민했을 겁니다. 내가 왜 이랬지 하고 그게 상상으로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성격을 죽이지 못하고 또 들어 왔다가 또 차고 나갔을 겁니다. 그리면서 아이구! 오! 마이 갓 이러면서 루터가 이마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종교개혁을 위해서 주님입장에서 보면 이 형제 때문에 이 형제를 사랑해가지고 지금 로마가톨릭아성을 비본질적인 아성을 누룩을 깨버리고 하는 장본인인데도 한쪽에 약한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 약한 부분을 주님이 그대로 놓아둔 겁니다. 너 그게 필요하다 이놈아 하고 그러니까 콧대가 세지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도 다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역사를 공부하면서 뭘 보는 겁니까?
아하! 목사님도 지금 괜찮아 보이지만 어디에 루터 같은 게 있겠구나.
네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을 이렇게 보면서 저분이 괜찮은 사람인데 갑자기 이상하게 보일 때 다 안아주라는 겁니다. 그런 게 다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내가 조금 부족한 겁니다.
내가 외골수가 되면 그 사람을 자기가 기대하는 쪽으로만 보는 겁니다.
그렇게 보지 마시라는 겁니다. 다 장점이 있고 단점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쓰시는 겁니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Pq6ykb_hGho
'이 세상과 저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7강. 신명기15장12절-18절, 3종류의 하나님사람, 성서적 가르침 (0) | 2025.01.27 |
---|---|
13강. 로마서1장17절. 교회사(2) (1) | 2022.09.29 |
11강. 마태복음13장33절, 1-4차 공의회 (1) | 2022.09.23 |
10강. 에베소서5장5절, 1세기-5세기 이단들 (2) | 2022.09.18 |
9강. 마태복음13장10절-51절, 천국의 비밀 (0) | 2022.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