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가 히브리인들(나그네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히브리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특이한 것들을 발견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거룩한 자들' 인데(신7:6), 대부분의 히브리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바벨론신과 혼합하여 여호와를 섬겼거나, 전적으로 바벨론신만 섬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방나라들에 의해 혼쭐나는 이야기입니다. 앗수르 제국(주전860-626)에 의해 북이스라엘 왕국(주전930)이 망한 이야기(주전722, 왕하17:1-41), 바벨론 제국(주전626-539)에 의해 남유대 왕국(주전930)이 망한 이야기(주전586, 왕하24:18-25:26)입니다. 구약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목적 위배행위로 이방인들에 의해 혼쭐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수수께끼(riddle)이며 신비(mystery)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여 선택하신 거룩한 백성인데 말입니다(신7:6).
혼돈스럽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됩니다.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우리가 지난 몇 주 동안 히브리인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혼돈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주실 것을 기대하며, 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온전치는 않지만, 조금은 도움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를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풀어갑시다.
우리가 섬기는 위대하고 크신 여호와 하나님(예수님, 사66:1; 엡1:22)은, 자신의 '크신 뜻'과 '마음'(마6:10)을, 한꺼번에 단번에 우리에게 계시해(reveal) 주시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쉽고 편리하게, '자신의 뜻'과 '마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때에 따라(전3:1-8), 받는 분의 '그릇의 분량'(롬12:3-8)과, '그릇의 질과 크기와 용도'(딤후2:20-21)에 맞추어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겸손히 땀 흘리며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쉽게 받으면, '주신 분의 뜻'과 '주신 뜻의 의도와 목적'에 무관심하거나, 그 '뜻과 목적'을 가볍게 여기게 됩니다.
주신 분에 대한 고마움과 경외함도 없게 됩니다.
주신 분을 향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불순종하며, 교만하며 자만해집니다. 피조물의 나약성과 한계성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자신의 '창조목적 동역 자'(창1:28)로 사용하시려는 종들에게는 이 '오래 기다림의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십니다. 이 '창조목적 동역 자들'이 바로 '제자들이며', '남은 자들'(Remnants, 사1:9; 롬11:5)입니다.
절대로 쉽게 주지 않습니다. 온갖 시련과 연단으로 '기다림과 인내 훈련'을 거친 후(벧전1:7; 벧후1:4-8) 주십니다. 이는 이들이 이 '창조목적 동역 자'의 사명에서 변질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우리가 '창조목적 동역자 직분'의 중요성을 절감케 하며, 감사하며, 소중히 여기도록 이끄시며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정체성과 뜻'도 귀하게 여기도록 만드십니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고맙게, 경외하게 만드십니다.
이분의 '계명과 사명'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충실히 순종케 합니다.
이렇게 '남은 자들'을 '기다림과 인내의 훈련'으로 '복된 히브리인(나그네)'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천국에서 큰상을 받는 '8복의 사람'(마5:3-12)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제자'로 인침 받은 '남은 자들'을 향한 훈련방법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히브리인 남은 자들'이 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 20여 구약 선지자들, 예수님의 12제자들, 바울과 그 팀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이 '오래 기다림의 원칙'안에서 훈련 받았습니다.
우리가 만약 '남은자'로 불리움 받았다면, 우리에게도 이 원칙이 반드시 적용됩니다. 우리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북녘의 남은 자들'도, 공산권의 남은 자들'도, '이슬람권의 남은 자들'도, '힌두 권, 불교권의 남은 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종말 산고시대'에 살고 있는 '남은 자들'은 창조목적학교 '대학 졸업반 남은 자들' 입니다. '두 짐승'(계13:1-18)이 세계적으로 강력히 활개 치는 시대에 사역하는 '특수사명을 가진 남은 자들'입니다.
'두 짐승'에 의해 각 나라에서 혹독한 '산고훈련'을 받고 있는 '남은 자들' 입니다.
감사한 것은, 예수님께서 저에게 지난 30여 년간, 세계 각 나라에서, 이런 혹독한 '산고훈련'을 받아오고 있는 많은 분들을 섬기며 교제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들에게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5대 신비'를 집중적으로 나누어왔습니다. 이들 중, 두(2) 가지의 반응이 있습니다. 눈과 귀가 열려 소화하며(마13:11-17), 실제 사역에 적용하며, 놀라운 열매를 맺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로 나누어집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분들을 보며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5대 신비'가 모든 성도들이 소화하는 주제가 아님을, 제가 지난 30년, 국내외 목회와 선교 현장에서, 사역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5대 신비'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신비'(the Mystery of God, 고전2:7; 롬16:25-26; 계10:7), (2) '그리스도의 신비'(the Mystery of Christ, 엡3:4), (3) '히브리인의 신비'(the Mystery of Hebrew, 삼상4:6; 출32:33; 사1:9), (4) '천국의 신비들'(the Mysteries of the Kingdom of Heaven, 마13:11), (5) '산상수훈의 신비'(마5-7) 입니다.
왜 신비라는 표현하셨나요? 예수님이 (4)에서, 바울이 (1)과 (2)에서 사용하셨습니다. (3)과 (5)에는 신비라는 표현이 없지만, 그 내용을 보면 신비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논리로 도저히 소화 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소화 할 수 없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마13:11-17). 특별한 제자들만 소화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공정하지 않습니다.
너무 일방적입니다. 신비스럽습니다. 이 신비들의 가르침 속에는, 앞뒤가 헷갈리는 내용이 허다합니다. 지성과 이성과 감성을 가진, 정상 지식인이 소화하기 힘든 가르침이 허다합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 이성 중심적 차원에서, 기독교 하나님이 공정한 하나님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라도, 예수님에 의해, 영의 눈이 감기고 영의 귀가 둔하게 디자인된 분들(마13:11-17)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들 중에는 종교다원주의자들도 있고, 복음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의문을 가진 기독교인이 무수히 많습니다. 특히 '두 짐승(계13:1-18)이 활개 치는 시대인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자들'(마24:4-5;23-28)은 말할 것 없고, 소위 '복음주의자'라는 분들 가운데에도 이런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아주 혼돈스럽습니다. 기독교의 paradox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파라독스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결 받을 수 있나요?
깨어있어야 합니다(마24:42). '두 짐승'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이 '혹독한 산고시대'에 능력 있는 '추수 꾼'이 되려면 말입니다. “황 목사님, 어떻게 깨어있어야 하나요?”라고 질문하시면, 저의 대답이 이러합니다.
"상기 '5대 신비'를 철저히 공부하여 깨닫는 자"입니다. 단숨에 얻어지는 지식이 아닙니다.
부단한 반복과 복습과 가르침으로 얻는 지식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발휘해야 합니다. 이 '5대 신비'속에 '하나님의 지식과 명철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참 지혜 자', '참 명철 자', '참 지혜 자' 되는 길라잡이가 바로 '5대 신비' 가르침입니다.
이 '5대 신비'를 깨달은 자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아하! 이 세상 7,000년이 창조목적학교구나! 하나님의 자녀란 잠깐 이 세상에 던져져, 창조목적 훈련받는 학생이며, 나그네(히브리인)이구나! 이제 곧 이 학교가 폐교되는구나! 사탄과 그 수하들이 불 못으로 던져지는구나! 이 세상 7,000년이 긴 것 같지만, 영원세계에서는 하나의 점(dot)보다 짧구나! 우리가 이 점 속에서 고작 70-80년(시90:10) 살다가 본향(히11:14-16)으로 귀환하는 나그네(히브리인)이구나! 이 '5대 신비'를 깨닫는 자는, 이렇게 '구나'를 터득하는 '참 지식 자'(잠1:7), '참 지혜 자'(잠9:10)로 변모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fear)하는 자'(시111:10; 호4:6,6:6)로 변모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목적학교의 우수학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는 몸이 쑤셔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재림하실 예수님을 증거하며, 외치는 나팔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쑤셔 견디지 못합니다. 들림 받는 예수님의 신부들의 증상입니다(마25:37-25:46). 그런데 이런 신부가 되려면 은혜가 필요합니다. 내 의지와 결단으로는 안 됩니다 '5대 신비'에 배고파하며 목말라하는(마5:6)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입니다. 바울이 제자들을 향하여 항상 간구했던 기도였습니다(롬1:7; 고전1:3; 엡1:2; 빌1:2). 우리 모두가 이 '5대 신비'에 배고파하며 목말라하는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혹시 이 '5대 신비'를 체계 있게 배우고자 하는 분은, 이 주제들을 자세히 다룬 저의 설교들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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