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시리즈

16강. 요한복음1장1절-3절,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

변명섭 2024. 9. 20. 08:22

기도시리즈
16강. 왜 기도해야 하는가?(요1:1-3)
우리가 기도를 해야 된다는 의무감은 누구나 다 있는데 기도를 매일 기분 좋게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느냐면 무거운 짐이 되어가지고 안 하면 하나님이 혼낼 것 같고 안하면 뭔가 문제가 해결되지 안할 것 같고 사무엘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도안하면 죄짓는 거다 이렇게 했잖아요.
이렇게 기도에 관한 압박감이 우리크리스천들에게 있는데 왜 우리가 기도해야 되는지를 알게 되면 기도가 슬슬 풀려나가고 기도가 재미있고 부담감이 없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천천히 하나하나 우리가 집고 넘어가면서 이 문제를 한번 봅시다. 제가 몇 가지 이유를 드리겠습니다.
왜? 하면 이유가 있어야 되잖아요. 첫째 우리가 기도를 왜 해야 되느냐면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화하게 되어 있고 인격을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볼 때 대화 못한다고 보는 다른 피조물들 꽃이나 나무나 또는 동물들은 하나님과 대화를 안 하는 것 같은데 나름대로 대화를 합니다.
그래서 성서에는 특히 시편에는 그런 걸 많이 다루었습니다. 
바다들아 생선들아 나무들아 열매들아 하나님께 찬양 드려라. 그러잖아요. 진짜 찬양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 때 똑같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호산나, 호산나라고 예수님께 외쳤을 때 그것을 말하는 것을 원치 않는 유대인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보고 당신 제자들이 왜 이렇게 호산나, 호산나하면서 떠듭니까? 그것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이 못하게 한다고 하면 이 사람들을 강제로 너희들이 입을 막아 놓으면 내가 돌들이 나에게 호산나, 호산나라고 말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피조물들은 우리가 듣지 못하지만 하나님과 코드가 맞추어져가지고 하나님께 나름대로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피조물과 하나님은 대화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게 창조주의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우리도 우리자녀들과 대화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걸 원천적으로 원치 않습니다. 우리피조물들이 특히 우리인간피조물들이 이유는 뭐냐면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영의 존재시고 우리는 육신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주파수가 다른 겁니다. 주파수가 다르니까 우리가 영의 주파수를 가진 FM과AM주파수가 다르듯이 주파수가 다르니까 우리가 대화할 수가 없는 겁니다. 대화의 필요성도 안 느끼고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우리 옆에 계신 분이지만 계신 것처럼 느끼지도 않고 그러니까 대화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우리입장에서 보면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대화를 안 하는 겁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대화를 안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창조주는 대화를 하자 그러는데 우리는 대화를 할 필요성을 안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걸 미리 다 아시고 대화를 하도록 하나님이 분위기를 만들어 놓습니다. 자기와 대화하도록 어떻게 분위기를 만들었냐면 우리가1층천2층천3층천에서 우리하나님은 3층천에 계신데 2층천 꼭대기에 사탄의 세력들을 마귀의 세력들을 진 치게 해놓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1층천에도 우리공간에도 마귀추종자들 마귀들을 진 치게 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루시퍼가 타락해가지고 그대로 지옥에 집어넣지 않고 루시퍼와 루시퍼의 추종자들을 하나님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위해서 그대로 놓아두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과 피조물과 대화하는 하나의 도구로써 하나님이 그 친구들을 그대로 놓아두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들이1층천이 세계에 꽉차있고 2층천에도 꽉차있고 이 친구들이 그래가지고 우리를 자꾸 괴롭힙니다. 
피조물들을 괴롭힙니다. 괴롭히니까 우리가 견디다 못하니까 하나님을 찾게 되게끔 만들어놓습니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놈들을 허락하셔가지고 공격하도록 하고 우리를 어렵게 만들도록 자꾸 침을 놓고 다리를 걸고 깐죽거리고 그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험을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페이라조(peirazo)̄, 페이라스모스(peirasmos)어려움을 허락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실 때 아하! 이제 어느 정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구나. 할 때 살짝 풀어놓고 우리로 하여금 뭘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까? 인격적인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하는데 다니엘이21일 동안 기도를 했잖아요.
그런데 기도응답이 없는 겁니다. 21일 동안 이렇게 기도하는데 21일째에 미가엘 천사와 가브리엘 천사가 와가지고 그러잖아요. 다니엘아! 네가 기도를 했는데 너 기도를 아버지께서 이미 받으셨단다. 너 기도를 3층천에서 받았는데 그 기도응답을 가지고 가브리엘이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안 되니까 밑에 깔려 있는 군사가 있습니다. 마귀의 진을 뚫고 내려와야 되니까 전쟁의 천사 미가엘 천사를 통해서 미가엘 천사가 전투를 해가지고 지금 여기 까지 내려왔단다. 이렇게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2층천에 방해세력들이 있다는 겁니다. 다니엘도 방해세력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기도해야 됩니까? 기도하는 이유는 첫째가 뭡니까?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우리와 대하를 하고 싶어서 이미 방해세력들을 진 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우리주변에 또는 2층천에 방해세력들을 그러니까 이놈들이 우리를 괴롭힐 때 대화를 해라 그러면 내가 너 문제를 해결해줄게 이겁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해야 되는 겁니다. 이게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는 이유는 마귀를 허락해서 대화를 하도록 하나님이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화 안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인간이 전적으로 혼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기도입니다 이놈들이 마귀세력들이 덤벼들게 해놓고는 아이고 제 혼자 도저히 해결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나타내는 표현이 기도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다리는 겁니다. 그렇게 하도록 세 번째는 이걸 통해서 인간이 자기 나약함을 나의 불능을 표현하고 성서적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을 나타내는 게 기도입니다. 내 힘으로 안 됩니다 하나님 날 좀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피조물이 겸손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기도안하면 우리하나님이 예뻐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많이 하면서 교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붙잡고 마음대로 흔든다고 그럽니다. 이런 것은 잘못 된 겁니다.
피조물이 몰라서 이 원칙을 몰라서 그래서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있느냐면 반대로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청와대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사람처럼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기도를 안 하더라도 항상 소리 지르면서 기도를 안 해도 항상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의 겸손함을 보여주고 이러면 그 자체가 기도니까 기도를 하는 목적이 그런 사람이 되라고 기도시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된 사람은 기도 안 해도 괜찮습니다. 마음을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24시간 살면 그 자체가 기도입니다 꼭 우리가 무릎 꿇고 앉아서 겉으로 나오는 모습가지고 이야기하는데 하트가 항상 의지하는 마음으로 그게 겸손한 사람이라 그러고 그런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 하잖아요. 보이는 것을 섬기는 것이 우상 아닙니까? 그러니까 기도를 왜 합니까?
보이는 것에 의지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창조주를 의지하라는 겁니다.
창조주를 의지하기위해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기도는 창조주를 의지하는 하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그런 측면에서 보지 않고 기도하면 내 요구사항을 다 들어준다. 그러니까 그냥 기도합시다. 기도해서 우리필요를 받아 냅시다. 이런 식으로 기도가 변질되어 버린 겁니다.
그 속에 우리가 원하는 주님을 사랑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조금 있다가 다룰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인정하는 겁니다.
기도하는 것은 그리고 이분을 존경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분에게 의지하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권능 자되심을 인정하는 겁니다. 
존경하는 것이고 의지하는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다음부터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기독교는 삼위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일반 이슬람교나 또는 유대교는 유일신인데 기독교는 어떻게 보면 신이 세분 계신 것처럼 보이잖아요. 한분의 신인데 위가 셋이다 이런 말을 우리가 하잖아요. 그렇다면 삼위하나님 중에 누구에게 기도해야 됩니까? 이게 우리의 문제점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질서정연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할 때 누가 기도하는 걸 보면 대표 기도하는 걸 보면 기도가 그냥 대상이 분명치가 않습니다. 혼돈되어 있습니다. 여기 있는 분들도 기도하는 걸 보면 그래서 이 시간 이 부분을 우리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주기도문에서 하신 말씀 기억납니다. 
기도를 아버지께 해라 그랬잖아요. 성부하나님께 해라 그러면 성자하나님은 기도를 안 들으시나 성령하나님은 기도를 안 들으시나 이것도 의문입니다 
하나님께만 해라 그런데 가끔 성서를 보면 베드로가 그랬고 또는 바울도 그랬고 그분들이 예수님께 기도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주 하나님 이렇게 할 때 주라는 것은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성서에서 예수님께 기도하는 장면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삼위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신데 삼위하나님의 기능이 서로 다릅니다.
우리가 보통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성부하나님은 계획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성자하나님은 계획하신 것을 수행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성령하나님은 수행하는 하나님에게 힘을 넣어주시는 능력을 부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삼위하나님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위원회와 같이 위원회를 여셔서 함께 그룹으로 결정하십니다. 결정하시지만 그기에 위원장이 성부하나님의 모습으로 위원장이 탕 탕 탕 사회봉을 두드립니다. 
성부하나님이 결정을 하는 것처럼 그래서 발표할 때는 성부하나님이 결정한 것처럼 해서 발표해버립니다. 그렇지만 뒤에 깔려 있는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은 동시에 같이 계십니다. 천지를 창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1장1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럴 때 원어를 보면 엘로힘(Elohim)이라 그랬습니다. 엘로(Eloh)하면 단수인데 힘(im)을 붙이면 복수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나중에 우리가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삼위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천지도 삼위하나님이 지으신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삼위하나님이 우리 천지를 짓자 하고 결정을 내리신 것이 삼위하나님께서 결정을 내리신 겁니다. 그런데 천지를 짓는 과정에서 표적을 삼위께서 다르게 행위를 하신 겁니다. 결정을 해서 위원장 되시는 성부하나님이 땅땅 치셨고 그다음에 실제로 만드신 분은 성자하나님이십니다 우주를 별들을 만드시고 나무를 만드시고 동물도 만드시고 전 우주를 실제로 만드신 분은 성자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자하나님은 성령하나님의 능력 부어주심이 있지 않고는 안 하십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삼위하나님이 같이 창조에 참여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피조물의 입장에서 삼위하나님을 보면 실제로 만든 분만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뒤에 깔려 있는 배경은 생각안하고 그래서 요한복음1장3절에 그랬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창조주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뒤에 깔려 있는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도 같이 그기에 계셨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피조물들이 볼 때 실제로 만드신 분은 성자하나님이십니다 거기다가 성부하나님은 우리피조물들의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올라가도 성부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부하나님과 우리피조물과 관계에서 보여주는 분이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성자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자하나님이 우리피조물들에게 오셔서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보여주신 것도 피조물 화 되어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내가 너희들에게 왔다 그러니까 요한복음14장에빌립이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하니까 빌립아! 네가 나를 봤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 피조물들은 아버지를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삼위하나님은 질도 똑같고 양도 같고 모든 부분에서 똑같습니다. 누가 높고 누가 낮 고가 없습니다. 신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삼위하나님은 서로가 서로를 증거 한다고 그랬습니다. 꼭 내가 아버지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러지 않으십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서로서로 증거 해준다고 그랬습니다. 
이런 걸 생각하시면서 삼위하나님이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 삼위하나님의 기능에 맞추어서 기도해주어야 됩니다. 
우리피조물의 입장에서 성부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분의 성품이 있습니다. 
성부하나님의 성품을 우리가 알고 성품에 맞는 기도를 해주어야 됩니다.
무슨 소리냐면 예를 들어서 우리목사님께 사도바울이 가르쳐준 축도입니다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축도인데 축도할 때 뭐라고 그럽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교재하심이 이렇게 말합니다. 성부하나님에 대해서 사랑이시다 그런데 예수님보고는 사랑이시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나오면 항상 공의가 따라 옵니다 공의라는 것은 쉬운 말로 표현하면 법이다 헌법 이런 식으로 법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많으신데 법에다가 갖다 될 때는 무서운 분이십니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가지고 계시다 우리인간의 아버지도 그러잖아요. 자기자녀를 사랑하지만 아버지를 섭섭하게 할 때는 자기자녀지만 때리고 그러잖아요. 어떤 때는 감정을 넣어서 그와 비슷한 겁니다. 제가 다시 말합니다. 아버지를 부를 때는 사랑의 아버지시여 사랑이 많으신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시여 이렇게 형용사를 붙입니다. 그다음에 사랑이 많으시지만 공의로우신 하나님아버지시여 위치를 말하면 하늘에 계신 그래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도 계시지만 땅에도 계시고 예수님은 여기저기에 피조물들과 같이 다니십니다.  
그런데 성부하나님은 보좌 한자리에 고정하고 계십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분명하게 해주어야만 됩니다. 예컨대 성부하나님이 이곳에 안 계신데 이곳에 계신 거룩하신 성부여 아버지여 이러면 기도가 잘못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과 공의 이 부분 우리가 계속 아버지와 관계되는 형용사로 그분의 속성으로 창조주 되시는 그러니까 사랑이 많으시고 공의로우시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되시고 아버지를 형용하는 형용사들을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서 복을 내려주시는 아버지여 이렇게 하면 됩니까? 
실제로 복을 내리시는 분은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직접 우리의 피부에 닺게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 관한 형용사는 아주 단순합니다. 사랑과 공의와 창조주 되시는 이 수준에서 아버지를 표현하면 됩니다. 하늘에 계신 이 형용사와 그런데 예수님에 관한 표현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와 관계를 직접 맺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에 관한 표현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그다음에 우리의 생사호복을 주관하시고 실제로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다음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이십니다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 우리에게 실제로 복 주시는 예수님 그다음에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만이 아니고 관리하시고 지배하시는 예수님 지금도 모든 우주만물을 지배하시고 관리하시잖아요. 그다음에 인간역사를 시작하시고 끝을 맺으시는 분 그걸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분 오메가는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성부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성령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수준으로 내려와서 예수님을 한번 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이 잠깐씩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볼일 보시고 올라가시고 무소부재하시니까 내려오실 때 어떤 때는 사람의 모습으로도 오시고 어떤 때는 천사의 모습으로도 오시고 어떤 때는 무슨 모습입니까? 
모세의40년 광야생활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바위의 모습으로도 오시고 여러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럴 때 모세가 아브라함이나 선지자들 앞에서 뭐라고 말하느냐면 자기 이름을 내가 여호와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다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호와라는 뜻은 제호바 또는 야훼 이런 뜻인데 이름마다 뜻이 있는데 여호와라는 뜻은 계약하시는 분 이런 뜻입니다 계약하시는 분 뭘 계약하느냐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서 우리 죄를 사해주겠다는 그것을 계약하시는 분입니다 창세기3장15절 말씀을 계약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여호와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보혈의 냄새가 납니다. 예수라는 이름도 세이비어(savior)구원자라는 이름입니다. 다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이름은 신약에 와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라는 이름이 신약에 와서 또 뭐로 바꾸었냐면 더 로드(Lord)“주” 구약에서도 여호와를 “주”라는 이름으로 가끔 표현하고 신약에 와서도 “주” 또는 우리말로 “주님” 주인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누굴 이야기합니까? “예수님” 왜 주님이 예수님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노예고 나의 주인이 예수님입니다
직접 나와의 관계 속에서 삶 속에서 그러니까 노예는 그분이 시키는 대로 내가 해야 되고 그분의 손에 달려있고 그렇기 때문에 “주님” 하는데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주님”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삼위하나님의 공동체의 언어에 맞추어서 우리가 대답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 하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구약에서 예수님을 표현할 때 여러 가지로 쓰셨는데 여호와하나님 또는 하나님여호와 그럼 여호와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것을 약속하신 계약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더 로드 갓(the Lord God) 그랬습니다. 
갓(God)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전부다 엘로힘(Elohim)입니다 
엘로힘(Elohim)이라는 뜻이 뭐냐면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갓(God)으로 표현했습니다. 한국말로는 하나님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한국말로 여호와하나님 이렇게 말하잖아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호와는 무슨 뜻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엘로힘(Elohim)히브리말을 한국말로 하나님으로 번역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엘로힘(Elohim)이라는 뜻이 뭡니까?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엘로힘(Elohim)이라는 뜻이 그러니까 영어로는 갓(God)입니다
갓(God)하면 막연한 게 아닙니다. 그 안에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갓(God)하면 창조주 되시는데 그게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위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기독교가 삼위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구약에서 여호와하나님 또는 여호와이레 그럽니다. 여호와 이레 하면 이레라는 뜻이 무슨 뜻입니까?
항상 준비하시는 하나님 그러니까 예수님이 여호와이레인 겁니다. 
내가 뭘 필요한 걸아시고 미리 다 준비해주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부하나님이 하시는 게 아니고 성부하나님이 뒤에 있지만 실제로 내 삶 속에서 준비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성령하나님도 거기서 도와주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와 직접 피부끼리 닿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예수님으로 그래서 여호와 이레라고 형용사를 이렇게 쓰시는 겁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필요를 항상 준비해주시는 예수님이시여 이렇게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여호와 샬롬 하면 뭡니까? 나에게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 여호와 라파 치료의 여호와 치료를 해주시는 예수님 그래서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너희들이 어디 아프나? 병든 자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그러면 낫게 한다. 그랬잖아요. 다 예수님입니다 승리하시는 예수님은 여호와 닛시 승리케 하시는 예수님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오 산성이 뭡니까? 
보호해주시는 산성이시오 나의 피난처 되시고 나의 방패 되시며 나의 반석이 되시고 나의 산성이 되시고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의 방패가 되시는 요새가 되시는 예수님이시여 이렇게 예수님을 형용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관상기도에서 봤지만 그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을 설명하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들으면서 웃으시겠습니까? 안 웃으시겠습니까?
너 어떻게 실력이 이렇게 있느냐 그럴 겁니다. 그리고 보좌에 계신 예수님도 바라보고 선교지에 계신 예수님도 바라보면서 같이 하면 되잖아요.
아직도 예수님의 이름이 많습니다. 말씀과 말씀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나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 그러면 그것만 가지고 묵상하는 겁니다. 
다윗이 묵상한 것처럼 시편23편을 묵상하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는 그러니까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되시니 그리고 나를 푸른 초장으로 누이시고 푸른 초장이 뭡니까? 푸른 초장을 묵상하면서 영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푸른 초장이 뭡니까? 다음에 보면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여기 초장과 물입니다 양에게는 말씀입니다 영의 음식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를 항상 말씀의 잔치로 말씀의 양식을 나에게 항상 주시고 그것도 푸른 초장에서 아주 풀이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항상 주시고 그리고 쉴만한 물가라 그랬는데 과연 아주 잔잔한 물가를 한국말로 쉴만한 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생수의 성령님 그쪽으로 가서 너에게 항상 생수를 공급하시는 그리고는 내 영혼을 소생시켜주시면 영의 음식을 먹고 성령님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내 영혼이 소생되잖아요. 그리고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목적이 자기이름을 위해서 아까 이름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이름을 이루시기 위해서 내 삶 속에서도 나의 사역 속에서도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그러니까 모든 게 예수님중심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이렇게 매일매일 자라는 것도 예수님이름을 위해서 또 예수님이 내가 너의 친구다 요한복음15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친구다 그러니까 창조주수준에서부터 친구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내가 너희들의 신랑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고 부활이고 심판 주되시고 초림 주되시고 재림 주되시고 그래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을 성령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형용사를 붙여서 이 이름만 가지고 주님과 대화해도 엄청난 대화입니다 
그다음에 성령님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타이틀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기능 중에 두 가지 기능이 있잖아요. 나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는 성령님이 나의 하트 카르디아 속에 마음속에 들어가면 내가 생명을 얻잖아요.
그래서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성령님 그다음에 보혜사성령님이 계시잖아요.
우리가 양면의 성령님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기능을 가지고 형용사로 표현해서 이렇게 성령님 하는 겁니다. 보혜사성령님은 뭡니까? 본래 뜻은 파라클레토스(Paracletos), 파라클레토스(Paracletos)가 하는 일이 뭡니까?
우리를 돕는 분 돕는 하나님 헬퍼 그다음에 어떤 성경은 파라클레토스(Paracletos)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컴포트(comfort) 위로해주시는 성령님 또 어떤 성경은 신학자들이 에더보케이트(Adevocator)라 그래서 뜻은 변호사라는 뜻으로 우리를 변호해주시는 분 또 앵카리지(encourage)격려해주시는 분 또 티쳐(teacher)가르쳐 주시 분 또는 힘주시는 분 스트롱 맨(strongman) 그럼 자비를 베푸신 분은 누굽니까? 성자하나님입니다.
하나님아버지의 사랑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과 자비가 너희들에게 넘칠지어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의 대상은 아버지인데 아버지에게 말해야지만 삼위하나님이 동시에 들으시는 겁니다. 동시에 들으시니까 기도할 때 아버지에게 기도하지만 어떤 때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옆에 계신 아들에게도 기도하는 겁니다. 아버지하나님 그러면서 옆에 계신 예수님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주님 하면 아버지가 아닙니다. 나의 주님 되시는 은혜로우신 자비로우신 예수님하면서 예수님과 한참 대화하고 또 옆에 계신성령님에게 한참 대화하고 성령님의 속성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대화하시면서 아버지에게도 하시고 그러다가 나중에 마무리는 아버지에게 대화하시면서 아버지 이 모든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왜냐면 우리가 아버지를 직접 만나서 대화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아버지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밖에 대화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너희들 고해라 그렇다고 예수님께 고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왜냐면 삼위가 위치가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조직이 그렇다는 겁니다. 왜 기도해야 되느냐면 기도가 창조주와 대화하는 건데 피조물인 내가 대화하면서 궁극적으로 기도하는 이유가 뭐냐면 나와 삼위하나님과 열람하는 겁니다. 삼위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가지는 겁니다. 그분들이 생각하는 게 뭔가? 이분들이 나에게 뭘 기대하고 있는가? 그러려고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는 겁니다. 말씀공부해서 이분의 마음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뭔가? 이분이 기뻐하는 게 뭔가? 어떻게 하면 이분과 내가 더 가까이 지낼까? 우리부모자식 간에 대화하는 것도 서로 마음을 줘가지고 마음을 주는 연습을 하는데 이게 안 되잖아요 마음을 주도록 하나님이 도와주는데 보혜사성령님이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8장23절에서26절에 보혜사성령님이 우리마음을 아시고 대신 중보기도해준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잘 안 나오면 보혜사성령님! 나에게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십시오. 영의 귀를 열어주십시오. 내 마음을 정돈시켜주십시오. 그리고는 기도하실 때마다 아버지마음과 내가 열람되도록 하나님과 열람된다면 하나님하면 삼위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열람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의 목적이 열람만 되면 그다음부터 내가 뭘 원하는지 다 아십니다 내가 아! 하기 전에 다 아십니다. 기도하는 목적이 마음이 열람된 다음에 내가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결단하는 겁니다. 약속하는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알았으니 하나님 나에게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하면 제일 크고 일등 되는 계명인 우상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내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고 제가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하나님만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만 경외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예배드리고 존 귀히 하고 영광 드리고 그러겠습니다 제가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필요한 것들은 다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이렇게 해서 그분과 나와 인격적으로 열람되도록 그러니까 기도를 왜 해야 되느냐면 제가 한마디로 간단히 결론짓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예수님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왜 기도를 하셨는가?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이분이 빌립보서2장5절에서8절을 보면 이분이 하나님이신데 인간이 되시면서 하나님의 속성을 다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우셨다 그랬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뭘 비웠냐면 신성을 비워버린 겁니다. 그리고는 완전한 토탈 인간이 되신 겁니다. 그래서 영어로 토탈 후머니티(humanity)그럽니다. 이분이 양면을 가지고 계신 겁니다.
토탈 휴머니티 완전한 하나님에다가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겁니다. 
그런데 예외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이분이 아까 말한 예수그리스도의 모든 속성들을 다 포기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30살이 되어 뭘 하려고 그러니까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항상 옆에 천사들이 따라 다니고 성령님이 항상 무장하고 따라다니는 겁니다. 이분이 실수하지 않게 실수할 수 있잖아요. 완전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40일 금식한 후에 마귀가 와서 덤벼들었잖아요. 이분이 보혜사성령세례를 받으셔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분이3년 공생애 시작할 때 세례요한을 통해서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그분에게 임했잖아요. 그리고 이분이 아버지에게40일 금식기도 했잖아요.
하나님이신데 창조주가 완전히 하나님의 속성을 비워버리니까 이분도 생존하려면 아버지하나님의 도움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하나님도움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생존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겟세마네동산에서 자기가 분명히 창세기3장15절에서 7천 년 전에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와서 이루시려는 말씀을 인간으로는 하기 싫은 겁니다. 십자가의 아픔을 경험해야 되니까 이 잔을 될 수 있으면 안 마시기 해달라고 기도하신 겁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와서 무슨 소리냐면 때렸던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렇게 예수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인간의 약한 부분을 아십니다. 이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하나님아버지께 기도드렸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도 이걸 피하려고 그랬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은 시편 22편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하신 말씀의 성취이다.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창조주가 우주만상이 그분 손에 달려 있는 창조주가 나를 위해서 여러분들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이렇게 포기할 수 있느냐 그래가지고 피조물에게 밟히시고 뺨을 맞으시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는 걸 보면 그분의 은혜가 대단한 겁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겁니다. 어떻게 창조주 되시는 분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습니까?
한줌도 안 되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이렇게까지 하신 이분의 은혜를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예수님의 은혜를 한마디로 하면 뭘까요?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대화하고 싶어서 대화는 무슨 대화냐면 내가 너희들과 대화하고 싶어도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마음대로 대화를 못한다.
그래서 네가 깡패들을 갖다 놓았다 그놈들이 너희들을 건들릴 때마다 나에게 와서 말해라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내가 누군지 알아서 나와 대화할 때 성부하나님은 계획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성자하나님은 계획하신 것을 수행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성령하나님은 수행하는 하나님에게 힘을 넣어주시는 능력을 부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걸 가지고 묵상하면서 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목적은 하나님과 나와 마음을 열람하자는 겁니다. 
열람되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분의 능력을 인정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질지라도 내 마음이 빼앗기지 않을 것을 인정하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평소에 이분과 매일 대화하는 연습을 하여 우리가 숨을 거둘 때 이분과 부담감 없이 대화하는 사람이 얼마나 복 있는 사람입니까? 그러니까 나와 대화하자 이게 기도입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3w8_5QDmyTE&list=PL5ahPVVjtQSRotGxj-5hQNwp0uxYoZdp2&index=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