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시리즈

A강. 선교사들과 함께한 산상수훈강해 (2012년2월18일)라오스 한인연합교회에서

변명섭 2023. 5. 15. 04:13

일본시리즈 A강. 선교사들과 함께한 산상수훈강해 (2012년2월18일)라오스 한인연합교회에서
주안에서 만나 뵙게 되어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라오스에 오게 된 것은 2년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라오스에 오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동남아시아만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라오스가 인구는 많지 않지만 선교적인 차원에서 라오스가 상당히 중요한 나라로 선교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미전도 족속이 가장 많은 나라 중에 하나고 선교 전문가들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미전도 족속이 가장 많은 나라 중에 한 나라로써 선교 적으로 중요한 나라기 때문에 이 나라에 대한 특별한 관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특히 문제는 이 나라는 정치적으로 기독교에 박해가 있기 때문에 더 우리에게 관심이 있고 이 나라를 우리가 어떻게 복음화를 시키느냐 여러 가지 관심을 전문가들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나라에서 선교를 하시는 우리한국선교사님들은 주님의 시각에서 볼 때는 특별한 분들이라고 믿습니다. 저도 동남아 쪽으로20년을 현지인선교를 해왔는데 라오스는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주변나라들은 열심히 다녔는데 라오스만은 주님이 저를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기회가 되어서 이곳을 섬기는 배동환선교사님을 통해서 제가 라오스에 오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아시겠지만 소위 미전도 족속 이렇게 이야기할 때 그 말은 1974년에 로잔대회가 있을 때 만들어 진 단어입니다 미전도 족속이라는 단어가 그러다가 그 후에 별로 그 단어가 성화되지 않다가 1989년에 마닐라에서 로잔2를 할 때 이 내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며칠 째로 이 일들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 관심 있는 세계지도자들이 우리가 이러지 말고 제대로 한번 해보자 라고 해서 모인 것이 한국에서 있었던 1995년에 지코이(G C O W I)넘버1입니다 
그 일을 할 때 제가 주님의 은혜로 발탁이 되어 가지고 지코이(G C O W I)에 제가 실무총무를 했습니다. 그때에 세계대회에 관련하게 되고 사무국에 저보다 위에 한분이 실행위원장인 김준곤 목사님이었고 그래서 저는 한국교회에 동창도 없는데도 실무총무로 아주 중책을 맡게 되고 정치적으로 제가 상당히 어려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창이니 뭐니 복잡한 연관관계가 있잖아요. 거기에 끼지 않으면 갑자기 한 사람이 뜨면 구설수를 많이 만드는 제가 구설수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제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정치에 안 들어가기로 하고 약20년을 필드에서 뛰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나고 보니까 주님의 크신 은혜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특히 필드에서 뛰시는 분들이니까 이렇게 같이 앉아서 대화 하다가 보면 공통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은 간단히 산상수훈 마태복음5장6장7장의 말씀을 여러분들과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곳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예수님의 제자 되는 사람들은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가르치는 이 내용대로 우리가 주님을 섬기지 않으면 7장의 결론에서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모래위에 지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저는 이 말씀에 상당히 심각하게 귀를 기우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자로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주님이 보실 때는 너희들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들이다
라고 듣는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불행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미 제자들을 불려놓고 하신 말씀이 예언적으로 하신 말씀이 앞으로2천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많은 기독교지도자들이 이런 모래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들이 나올 것을 예수님이 예언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예언은 정확합니다. 그래서 이 예언 속에서 저는 이 예언에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그와 동시에 예수님이 바위위에 반석위에 지은 자는 지혜로운 자다. 
하면서 기독교인들의 소위 지도자급들 사이에서는 이 두 가지 사람들로 구분 될 것을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과거2천년의 기독교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예언이 그대로 다 맞았습니다. 소위 주님이 귀하게 쓰셨던 분들이 그 당시에 별로 인기 있었던 분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만 바라보면 주님의 뜻만을 위하여 살았고 어려움을 당했던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역사가들이 그분들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나 여러분들이나 예수님 때문에 내가 더 유명해지고 예수님 때문에 내가 어떤 이익을 더 챙기게 되고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이 더 잘 되고 이런 것은 평신도들은 가능하지만 예수님을 섬기는 제자들은 그렇게 되면 내가 영광 받게 되고 내 이름이 날리고 내가 인정받고 이렇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면 내가 예수님께 덜 의지하게 되고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변화로 사람을 만들기 위한 책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고방식은 저 나라에 가 있어야지 이 나라에 가 있으면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을 저 나라 사람들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저 나라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 불리 움을 받았는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불리 움을 받았지만 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예언적으로 산상수훈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도바울도 보면 그분도 이 나라사람이었는데 이 나라 것을 다 포기하게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저 나라이야기만 했던 사람 아닙니까? 예수님이야기만 하고 그러다 보니까 종교인들에게서 바울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같은 크리스천들에게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바울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 핍박 받았고 눈만 뜨면 경찰서에 잡혀갔고 눈만 뜨면 예수님이야기 하니까 주변에서 싫어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분은 매도 많이 맞고 엄청난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주님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런 인기가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주변에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 옆에 붙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중에 디모데후서를 쓰실 때 순교당하기 직전에 내가 그렇게 섬겼던 많은 아시아 사람들이 다 나를 떠났단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몇 사람이 없단다. 왜냐면 내가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면서 주님을 섬겼던 것이 그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서 그분들이 나를 따르지 않았단다. 왜냐면 저 사람을 따르다 보면 나에게 이익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바울 같은 사람들이 이 시대에 세계 어느 나라에 가나 다 있습니다.
숨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름 날리고 파워가 있고 이런 사람들을 따르기를 원하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은 숫자가 적다는 겁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에서 이런 사람들이 되기를 서원하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앞으로 제자의 모습을 예언적으로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항상 저에게 떠나지 않는 말씀으로 저를 붙잡고 있고 이렇게 살기를 소원하면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저도 요원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원칙만은 분명히 깨닫고 살 필요가 있지 않느냐 그래서 저도 이아침에 짧게 5,6,7장을 간단하게 우리가 한번 섭력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주님의 제자들인 여러분들은 특별히 복음 전하기가 힘든 라오스라는 이 나라에 주님이 보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나의 인격이 나의 사고방식이 예수님 화 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정보는 줄 수 있지만 그 사름들을 예수 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6,7장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말씀인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마태복음5장6장7장늘 우리가 산상수훈이라고 그러잖아요. 산상수훈을 가지고 신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고 또 심한 경우에는 이 산상수훈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 주신 말씀이 아이다라고 까지 해석을 하고는 산상수훈에 관심을 안 두는 신학자들과 교단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 세대주의자들이라고 있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산상수훈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삶에 기준이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세대주의자들 하면 어떤 분은 이단이 아닌가? 이렇게 까지 한국교회에서는 이야기하는데 절대로 이단은 아닙니다. 저도 세대주의자는 아니지만 우리 전 천년에서 보면 역사적인 전 천년주의자들이 있고 세대주의적인 전 천년주의자들이 있는데 이 세대주의 전 천년주의는 1860-70년대에 아일랜드에 유명한 변호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존 다비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만들어 낸 학설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미국으로 넘어와 가지고 1905년에서1910년 때에 스코필드라는 미국의 변호사가 이것을 받아 가지고 전 미국에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19세기 말에서20세기에 대부분의 선교에 뜨거웠던 분들이 다 세대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도 원더우드니 아펜젤러니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세대주의적인 신학노선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 간 신학자들은 선교사들은 그의 다 지금도 중국의 가정교회나 중국의 크리스천들 대부분이 세대주의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남아도 많은 곳에 있고 그러듯이 세대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뭐냐면 이스라엘중심사상입니다 이스라엘중심사상이 되어 가지고 계시록도 이방사람들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이스라엘사람들의 시각으로 계시록을 해석하다보니까 천년왕국도 이것은 이스라엘사람들을 높이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지배하는 왕국이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왕국이 천년왕국이다 이렇게 보고 산상수훈은 천년왕국 때 이스라엘사람들과 이방사람들이 섬겨야 되는 주님이 섬길 때 가져야 되는 크리스천의 매뉴얼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앞으로 천년왕국 때 가서 우리가 살아야 되는 가이드라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세대는 산상수훈을 우리가 따라갈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해석을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우리한국교회에서 이름이 많이 나 있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유명한 목사들을 보면 세대주의 목사님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어떤 분들은 그럽니다. 
세대주의는 이단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무 천년주의나 후 천년주의사람들이 그래놓고는 우리는 무디선생님을 따라 갑시다 그다음에 영국에 유명한 조지 뮬러 선생 어쩌고 하잖아요.  
이 사람들 다 극단세대주의자들입니다 그것뿐입니까? 무디나 뮬러나 심지어는 빌리그레함까지 지금도 미국의 유명목사님들 이런 분들 중에 TV에 자주 나오는 목사님들 보면 대부분이 세대주의 사상을 가진 목사님들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세대주의의 첨단을 걷는 신학교가 어느 신학교냐면 달라스 세미너리입니다 달라스세미너리 하면 그기에 우리나라장로교 또는 침례교 이름만 되면 아는 몇몇 신학자들도 다 그 학교출신들입니다 
또 LA에 가면 탈봇 신학교라고 있습니다. 여기도 세대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세대주의신학교입니다 또 동부에 가면 여러 학교가 있습니다.
그레이스 세미너리 같은 그런 세미너리도 세대주의 신학교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자칫하면 그냥 내가 주는 이야기와 나의 주변에 선생님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믿고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때가 많은 겁니다.
그걸 보면 우리주님은 크신 분이니까 이렇게도 주님이 쓰시고 저렇게도 주님이 쓰시고 여기도 각 교단이 다르게 앉아 있잖아요. 내 교단 내 교단만 고수하는 것은 성서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이 나이에 이렇게 주욱 신학을 하면서 우리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너무나도 크시구나. 그래서 산상수훈은 세대주의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성서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대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산상수훈에서 가르쳐주는 이 사상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신상수훈을 보면 3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제일 중요한 게 3장 안에 보면 10개의 사상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상이 점진적으로 발전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기본 되는 가르침이 뭐냐면 팔복입니다
그래서 제일먼저 팔복이 나오는 겁니다. 팔복의 말씀을 이렇게 들여다보면 또 둘로 갈라져있습니다. 처음4개와 나머지4개와 이렇게 갈라져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의 4개와 나머지4개도 발전적으로 되어있습니다. 
순서대로 하나하나 이렇게 착착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복 있는 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게 뭐냐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 있는 자라는 개념은 구약적인 개념에서는 뭐냐면 그분들이 들었을 때 이 말씀에 대한 반발이 많았습니다. 왜냐면 이분들은 구약적인 복 있는 자는 주로 물질의 복이나 또는 권력이나 가정의 복이나 이 세상의 복들을 주로 이야기했는데 주님께서는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의 복이 아니고 저 세상의 복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 말로는 복이4가지가 있는 중에서 아쉬레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아쉬레 복 영적인 복입니다 영적인 복의 가장 첫째 조건이 뭐냐면 마음이 가난한 자 그러니까 제자가 되면서 우리가 목사가 디면서 선교사가 되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뭐냐면 마음이 가난해야 된다는 겁니다.
기가 막힌 요구사항입니다 이 한절이 산상수훈전체를 지배하는 절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저는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전체의 내용을 보면 이렇게 해석이 되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하다 그러면 뭐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헬라어로 푸트코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중에 푸트코스단어하고 페네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페네스라는 단어는 수임이 적어가지고 은행 저축은 못하지만 그래도 하루 세 끼는 먹고 사는 사람을 보고 말 할 때 가난이 페네스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푸트코스라는 가난은 뭐냐면 총체적으로 가난하다는 겁니다.
밥 한 끼를 먹을 수 없는 가난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가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푸트코스라는 가난을 썼습니다. 이 말은 뭐냐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내 속에 예수님의 성품이 전혀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영적인 예수님의 캐릭터가 없다고 보는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성품이 내 속에 없습니다. 이것을 항상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뭐로써 부자냐? 내 속에 사탄의 상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이것으로 부자인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내 속에 질투심이 있고 미움이 있고 경쟁심이 있고 나의 욕심이 있고 이런 용서 못하는 마음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는 마음이 있고 분리하는 마음이 있고 내가 영광 받으려는 마음이 있고 창조의 목적은 내가 영광 받으면 안 되거든요. 하나님이 영광 받아야 되는데 이런 마음이 내 속에 있습니다. 
이게 사탄의 성품입니다 이것을 매일 고백하는 사람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일반크리스천은 그러다가 주님나라에 가지만 제자가 되는 사람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 되는 불리 움을 받은 사람은 이것이 제대로 서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서 있지 않으면 나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가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증거는 될 수 있는데 나를 통해서 사람이 변화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격의 변화가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닮은 인격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렇게 말하지만 항상 매일, 매일 주님 저에게는 아직도 나의 욕심이 있고 내가 더 유명해지려하고 나와 관계가 안 된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하고 제 속에 아직 그게 있습니다.
주님 절  조금 도와주세요. 이것을 죽을 때까지 고백을 해야 합니다. 
고백하다가 보면 조금씩, 조금씩 그 모습이 없어집니다. 
우리성직자들도 이 모습이 있으면 당신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추하게 보여 집니다. 겉으로는 성직자들입니다 그런데 평신도들이 그런 사람을 보면 목사가 선교사가 그런 모습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추하게 봅니다. 
저 사람 그저 그런 사람이구나. 가짜구나 그러니까 우리의 생명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지 않으면 우리는 겉으로는 성직자지만 사람들 무섭습니다. 
예리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저 사람이 진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자기가 좋아서 목사가 되었느냐? 자기가 좋아서 선교사가 되었느냐 예리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섭습니다.
왜냐면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지적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성직자들과 앉아서 이야기할 때 그럽니다. 평신도들이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럽니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우리원수입니다 나의 약점을 보면 나중에 나를 잡는 게 평신도들입니다 그러니까 약점을 안 잡히려면 마음이 가난해져서 예수님모양으로 내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사람들에게 존경을 못 받습니다. 
제아무리 박사학위 몇 개가지고 제아무리 유명한 목사고 교수고 제아무리 사역을 크게 하고 대형교회를 가지고 있다 해서 우리가 그런 사람들 존경합니까? 이런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보고 뭐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저 사람 성공했다 성공한 목사야 성공한 교수야 성공한 학자야 그렇지만 예수님의 문으로 볼 때는 예리한 눈으로 보는 사람은 그게 성공이 아닌 겁니다. 주님이 뭐라고 그럽니까? 너는 이 세상에서 너 영광 다 받았다
산상수훈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섬기려면 특히 라오스는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복음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 그냥 이 땅에 와서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를 위해서 중보만 해줘도 땅 밟기 하시면서 엄청난 선교사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거기서 빛이 나오는 이 어두움의 세계가 쫓겨나가는 역사들이 그래서 이 땅을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이렇게 가난한 사람은 주님께서 그다음에 그대로 애통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주님 제가 왜 이렇습니까? 
제가 왜 이렇습니까? 여러분들은 저 보다 젊기 때문에 제 나이가 만으로70살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저는 이 갈등을 합니다. 그러듯이 이 문제를 놓고 평생 갈등을 해야 됩니다. 하는데 애통해야 합니다. 애통하면 주님께서 위로를 해주시고 위로는 뭐냐면 위로의 영은 보혜사성령님입니다
그래서 보혜사를 컴퓨터(Comforter)그러는 겁니다. 나를 주님이 위로해주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해결해주시는 성령님 애통을 할 때 내 속에 성령의 생수가 나에게 있는 더러운 것들을 하나하나 씻어주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7장38절에 보면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은 퓨뉴마성령님은 생수라 그랬습니다. 생수 그래서 리빙워터가 내  속에 있는 더러운 쓴 뿌리 사탄의 성품들을 히브리서12장15절에는 쓴 뿌리라 그랬습니다.
쓴 뿌리들을 이렇게 제거해주는 일들을 내 속에 있는 생수가 씻겨주시고 벌써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면 로마서8장26절의 말씀 성령님이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내가 뭘 기도해줄지도 모르는데 나를 대신해서 간구해주신다 그랬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이 내가 무엇을 빌어야 할지 모르지만 나를 성화시켜주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애통하게 되면 그다음에 오는 단계가 온유한 사람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겁니다. 온유한 사람으로 온유는 우리가 알다시피 가축입니다
집에 있는 복실 강아지처럼 항상 주인을 즐겁게 해주는 그런 강아지입니다
야생동물이 아니고 이런 사람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있는 부동산을 주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에서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계급사회고 그기에 우리가 왕이 되면 왕에게는 다스리는 땅들을 많이 줍니다. 그러니까 왕권을 주시겠다.
이런 말로 우리가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온유한 사람을 주님께 순종하면서 우리 삽살 강아지처럼 하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그다음에 하시는 말씀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의는 예수님입니다 의에 주린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고체음식입니다 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배고파하고 그냥 헝그리한다 그랬습니다. 말씀에 배고파하는 겁니다. 
말씀을 더 듣고 싶고 의의 생수에 목말라한다 헝그리한다 생수는 성령님으로 봅니다. 왜냐면 성령님을 생수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요한복음14장16절부터 보시면 그래서 이렇게 되면 우리는 말씀을 계속 먹게 되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계속 받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있는 쓴 뿌리들이 뽑아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 화되는 겁니다. 
이 네 단계는 우리가 주님 만날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되는 겁니다. 
첫째가 뭐였습니까? 마음이 가난하고 두 번째가 애통하고 그러다 보면 우리가 젠틀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삽살개처럼 온유한 자가 되고 그리고는 말씀에 헝그리하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에 갈급해하는 사람 이런 사람으로 끊임없이 반복하면 그다음 네 단계가 연결됩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조금씩, 조금씩 시각의 변화가 오면서 그다음에 모든 사람을 자비롭게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주님의 자비를 내가 체험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자비가 나타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을 다 불쌍하게 보는 마음 저 사람이 몰라서 저래 저 사람이 아직도 영적으로 어려서 저래 이렇게 이해되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도 나에게서 긍휼을 받을 거다. 
이 수준이 되면 내가 조금 실수하는 것이 있어도 주님이 나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주변에서 사람을 통해서도 나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고도 긍휼로써 이렇게 변화시켜주는 이런 사람이 되게 해주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다음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을 볼 것이다 하나님을 볼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쓴 뿌리가 빠지면 조금씩, 조금씩 빠지면 마음이 순수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성령님의 아홉 가지 열매로써 내가 이렇게 대체가 되면 그때부터 영의 눈이 조금씩, 조금씩 뜨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영계가 보이고 영의 귀가 열리고 영적인 냄새도 맞고 영적인 감수성이 생겨서 촉감도 생기고 영적인 미각도 생기고 그러면서 영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영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고 학문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몇 개를 가졌다 해서 이런 영계를 보는 게 아니잖아요. 이것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이것은 개런티 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학문을 공부하면서 또 교수생활20년 하면서 많은 신학생들을 미국과 캐나다에서 가르치다 보면 그곳이 영어권학교기 때문에 한국의 선교사님들이나 목사님들이 우리클래스에 앉아 있습니다. 백인들과 같이 앉아 있는데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사람은 목사가 되지 않았으면 참 좋을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제 눈에 많이 보이는 겁니다. 왜냐면 저 사람이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킹덤 오브 갓이 많이 복잡해지겠구나. 이런 게 제 눈에 보이는 겁니다.
딴 게 아닙니다. 성품이 예수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욕심이 많고 어떻게 하면 성공하느냐 어떻게 하면 매스컴을 잘 타가지고 내가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라는 것을 보여 주느냐 어떻게 하면 네트워킹을 잘해가지고 내 사역에 도움이 되느냐 이런 것만 따지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우리코리안들 중에 백인들은 그게 약합니다. 그런데 코리안들은 우리끼리 있을 때는 모르는데 다른 나라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우리가 도전하고 이런 게 강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교지에 다니면 제3세계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 꽤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사귀어보면 그런 사람들 있을 겁니다.
현지인 목회자들 중에서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교사들을 보면 다 압니다 제가30년을 선교지를 다닌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선교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 그런 나이입니다 보면 그런데 밝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밝지 않고 순수한 우리한국선교사님들이 뒤에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진짜 괜찮은 선교사들 이 땅에도 분명히 그럴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의 눈이 뜨면 그 다음에 순서가 뭐냐면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로 가나 하나님과 관계에서도 화평케 한다는 말은 뭐냐면 전도하고 선교한다는 복음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을 중간에서 예수님을 알려주는 그게 수직적인 화평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과 수평적인 화평 이런 일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앞에서 나온 조건을 잘 해나갈 때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것 없이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뭐냐면 자기욕심이 깔려 있는 내가 피스메이커다 저 사람 참으로 잘한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자기 욕심과 영광을 찾는 겁니다. 자기를 알아달라고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하면 압니까? 그 사람의 성질을 한번 건드려보면 압니다.
그리고 반응하는 걸 보면 압니다. 자기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우리가 건드려보면 근방 압니다. 그런데 이 수준이 되었을 때 예수님이 제일 마지막 여덟 번째로 뭐라고 그랬냐면 이런 사람 잘 되는 게 아니다 나 때문에 핍박을 받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복 있는 자는 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핍박을 받느냐면 11절에 나오잖아요. 나 때문에 이런 말 듣고 저런 말 듣고 있는 말 없는 말 만들어 내어서 너희들이 나를 잘 섬기려고 그러면 그런 말 들으면서 사람들에게 오해도 받고 여러분들의 자존심까지도 건들린다고 이게 주님이 허락하신 거라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냐면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서 상이 큼이라 누구의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이 거기다가 토씨를 달았는데 토씨가 우리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랬냐면 예수님이 구약 때 선지자들이 이 고난을 겪었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저는 구약 때 선지자들이 어떤 모습이었나요.
이분들은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다 인정받은 사람들인데도 세상 좋아하고 하나님도 섬기면서 우상도 섬기고 그랬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사람들이 똑같이 신약의 크리스천들이 세상도 좋아하고 예수님도 섬기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다 합니다. 그런데 생각이 뭐냐면 우상에 가 있는 겁니다. 이 세상 돈 이 세상명예 이 세상에 모든 좋은 것들에 관심이 가 있는 그럴 때 선지자들을 보내가지고 너희들 우상 섬기지 말라고 한 것이 구약의 선지자들의 job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섬겨라 그럴 때마다 우상을 섬겼던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그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감옥에 집어넣고 때렸습니다. 이와 똑같이 신약 때도 교계에서 정말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교계가 왜 이렇게 썩었느냐 돈 좋아하고 명예 좋아하고 싸움질하고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욕심부리고 이런 것 하지 말라고 말하면 교권의 이름으로 때리는 겁니다. 어떤 때는 이단이다 한국교회는 때리는 게 이단소리를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십니까? 지금 우리나라 보세요.
한기총 싸움하는 것 보세요. 우리나라에 큰 교회들 보세요. 다 여기에 빠져버린 겁니다. 교단들도 이런 문제들이 있고 이게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교계가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산상수훈을 이야기하면서 여러분들 유명해지려고 그러지 마시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그러지 마시고 우리예수님께 인정받으려고 최선을 다하시고 또 사람들에게서 칭찬받으면서 인정받다 보면 핍박이 안 올 수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려면 핍박이 따라온다는 것을 각오하시고 그럴 때마다 상급이 있고 주님이 인정해주신다는 겁니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지만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복 있는 자라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더 멋있게 살고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하고 더 유명해지고 더 행복해지고 우리는 이 세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깨달을 때가 내 가족이나 누가 죽었을 때는 그런 말을 안 합니다. 저 세상이야기 잠깐 하다가 장례식 끝나면 또 이 세상이야기로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가 죽을 준비를 해야 되잖아요. 언젠가는 저 세상에 갈 사람들인데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팔복을 말씀하시고는 그다음에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소금이 되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소금 빛이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소금이 먼저 나옵니다.
왜냐면 십자가에 죽으심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희생이 있어야 됩니다.
핍박이 따라와야 됩니다. 그게 소금입니다 내가 죽어야 됩니다. 
주어야지만 부활이 나옵니다. 그게 빛입니다 팔복의 사람이 되었을 때 소금이 되는데 팔복에서 파워가 나오려면 빛으로 나오는데 그것은 소금이 먼저 되어야지만 빛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잡지들도 빛과 소금입니다 모든 게 빛이고 소금은 나중입니다 이건 비 성서적입니다 
예수님은 소금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의 파워는 소금이 되었을 때 파워가 나옵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소금이 되셨습니다. 그다음에 부활의 파워가 나오는 겁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기독교의 원리는 먼저 죽어야 됩니다. 이렇게 하니까 제자들이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께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뭐냐면 그러면 구약의 율법은 소용없습니까? 선생님 지금 우리에게 구약을 무시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을 예순님이 보시면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율법을 더 증진시키고 온전케 하려 왔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라이프스타일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데 뭐냐면 이 말씀을 하시면서 열 가지의 모습을 5장에서 주욱 설명을 하시는 겁니다. 모슨 모습을 설명하느냐면 애들아! 구약에서는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너희들에게 새로운 율법을 줄게 그 율법은 뭐냐면 이웃에게 라가라 이 말은 뭐냐면 너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말 한 마디만 해도 살인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새 율법을 주시는데 이웃과 화평케 하지 않는 것도 다 살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양심은 구약에 나오는 율법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 보다 훨씬 하나님의 기준은 높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 살인자라는 겁니다.
이웃을 한번만 미워한 것도 살인자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웃에게 기분 나쁜 말 한 마디 한 것도 살인이라는 겁니다.
기가 막힌 율법을 새롭게 제시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다음제시가 뭐냐면 너희들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어도 다 간음이라는 겁니다.
이럼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너희들 만약에 이런 간음을 했으면 눈 뽑아버려야 한다. 손이 그랬으면 손 잘라버려라 그러니까 이 세상에 주님의 기준으로 보면 이 세상에 모든 인구는 눈도 없고 손도 없고 귀도 없고 다 없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5장에서 주욱 설명하시는 겁니다. 하시면서 뭐냐면 예수님이 내가 너희들에게 온 것은 율법을 온전케 하려 왔다 이 말은 뭐냐면 너희들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완전한 죄인들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율법을 일점일획도 지킬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용서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100%은혜고 100%용서입니다 그기에1%도 너희 의가 없다는 겁니다. 너희 의를 이야기하면 전부 살인자들이고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하느냐면 너희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아느냐 너희들은 이렇게 용서와 은혜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너희들 이제는 주변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 용서해주고 은혜를 베풀라는 겁니다. 내가 한 것처럼 사역자들은 선교사들은 이 수준까지 가기를 예수님이 요구하시지만 이게 쉬운 게 아닙니다. 평생 우리가 가야 되는 가이드라인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수준까지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면서5장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내 형제가 속옷을 달라고 그러면 겉옷도 주고 돈 꾸어달라고 그러면 돈도 주고 같이 오리가자면 십리도 가주고 이런 마음을 가지는데 그러면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너희들은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그랬지만 이제는 네 원수를 위해서 네가 기도해주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들 용서해주라는 겁니다. 
이럴 때 너희들은 나의 하나님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결론을 뭐라고 그러느냐면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들도 온전 하라. 그러니까 예수님의 온전을 따라가려면 우리는 이 성화과정으로 계속 가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성화과정을 보면 나의 쓴 뿌리가 뽑아지면서 나의 성품이 예수님 화 되었을 때 그것이 대인 관계에서 나타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영광을 찾지 않는 것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점검할 수 있는 겁니다. 저 사람은 지금 목적이 무엇인가?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인가? 그러니까 현대신학에서 그러는 겁니다.
나의 비전을 이루기위해서 내가 예를 들어서 나 혼자 왔습니다.
내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꿈인 겁니다. 예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서 주님이 저를 사용하십시오.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오늘날은 신학들이 모두 다 서양신학들이 인본주의 화 되어가면서 다 나의 비전 나의 꿈 이렇게 다 내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6장이야기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6장의 말씀은 이런 말씀입니다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러는 겁니다. 앞으로2천년기독교역사 속에서 이런 식으로 외식하는 소위 크리스천리드들이 많이 나올 것을 예수님이 예언하시는 겁니다. 세 분야에서 처음에 뭐냐면 구제할 때 나팔 불면서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내가 이렇게 했다고 이런 식으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서 광고하고 네트워킹 만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내가 뭘 합니다 내가 뭘 합니다
이유는 뭐냐면 이렇게 하다보면 내가 상급 받는 겁니다. 사람들에게서 
창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사야서43장21절에 보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 나를 만들었고 모든 우주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창조주가 영광을 받아야 되는데 종교이름으로 나의 포지션가지고 내가 영광 받는 것은 창조의 목적에 위배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해야 됩니다. 창조목적에 위배될 때는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심하면 이분을 아주 혼을 내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앞으로 크리스천세계 속에서 2천 년 전 예수님시대부터 이때까지 앞으로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이런 행위를 할 것을 예언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너희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 상을 받았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구제를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나타내고 그런데 한국교회들의 문제점들이 무엇입니까?
많지만 대대적으로 알리려고 하는 우리선교 팀들이 와도 우리가 갔다 왔다 그러고 많이 알리고 이러잖아요. 사진 찍어 한국 가서 알리고 우리가 이렇게 했습니다. 주님의 시각에서 보는 너희들 이 짓을 왜 하느냐 네가 좋아서 하느냐 과연 라오스의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냐 네가 라오스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려면 정말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네가 살아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 다음에 나타나서 이야기하는 게 다음종교행위가 기도라는 겁니다. 기도도 사람들 보는데서 종교성이 있다. 라고 그냥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곳에 계신 아버지상대로 기도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통성기도로 소리를 내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겁니다.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이방인들이 하는데 의미가 없는 반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주님 이것 주세요. 이것 주세요. 나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주는 분의 입장에서 보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주님의 입장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듣기를 원하십니까? 너희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것이 주님이 듣고 싶어 하는 기도라는 겁니다. 나의 소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닌 겁니다. 나와 예수님과 열람되는 것이 기도지 그분의 뜻과 열람되는 것이 기도지 네 소원을 달라고 하는 것은 영적어린아이들입니다. 지도자들은 그런 기도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은 불교식의 기도고 이슬람식의 기도고 토속종교 식의 기도인 겁니다. 나의 필요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왜냐면 주님이 그랬습니다. 네가 무엇을 필요한지를 말을 안 해도 주님은 아버지께서 다 아신다는 겁니다. 왜냐면 전지하신 하나님이신데 네가 꼭 말해야만 압니까? 주님에게만 내가 초점만 맞추고 있으면 나머지 필요한 것은 다 아신다는 겁니다. 그래서6장 마지막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므로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