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 목사님 칼럼

2023년3월18일

변명섭 2023. 3. 18. 20:09

이번 주 설교 주제가 "가짜 독수리를 무력케 하는 진짜 독수리 되자"(계13:1-18)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시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은혜와 은사와 믿음의 분량을 다르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깨달음이었습니다(주후57, 롬12:3-8). 그가 개종(주후35, 행9:1-16) 후, 22년만입니다. 바울에게 22년간, 온갖 영성 훈련을 거치게 한 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크리스천이 수용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시각이 다른가요? 제가 편의상 우리의 눈높이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두더지 시각, (2) 병아리 시각, (3) 참새 시각, (4) 애기 독수리 시각, (5) 사춘기 독수리 시각, (6) 어른 독수리 시각 입니다. 이것을 다시 두(2) 부류로 대별합니다. (1) '독수리 과'와, (2) '비독수리 과' 입니다. 제가 지난 설교에서 예수님이, 안드레를 '독수리 과'로, 3인방(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비독수리 과'로 디자인하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안드레는 불리움 받은 순간부터, '애기 독수리 시각' 소유자였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안드레에 관한 제반 정황들을 살펴볼 때, 우리의 이 추측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공부했습니다. 반면 3인방은 달랐습니다. 이들이 불리 움 받았을 때, '두더지 시각 자'였지만, 서서히 점차적으로 발전되어(chronos), 때가 되어(kairos) '독수리 과'로 입문했다는 사실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황 목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대하12:6), 사랑의 하나님이신데(요일4:9,16), 왜 인간을 차별하여 디자인하십니까? 인권을 무시하십니까?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 인간 자유의지 우선주의, 인간 책임 우선주의) 선호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바울도 개종해서 22년간,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롬9:3).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ty of God)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소화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인간 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신다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말1:1-5; 롬9:13). "내가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일방적으로 모세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바로를 완악하게 하였노라"(롬9:14-19). "내가 토기장이란다. 귀히 쓸 그릇, 긍휼의 그릇, 천하게 쓸 그릇, 진노의 그릇을 내 마음대로 만든단다."(롬9:21-23). 그리고 바울을 꾸짖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롬9:20). "내가 내 것 가지고 내 뜻에 따라 하는데 왜 말이 많으냐?"(마20:15) 입니다.

이 꾸짖음을 바울이 수용했습니다. 이 말씀 듣고 그의 시각이 '어른 독수리'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바울의 '시각 여정'을 살펴봅시다. 저의 생각입니다. 편의상 세(3) 단계로 나눕니다. (1) '애기 독수리 시각'(회심, 주후35에서 안디옥교회 사역자로 부임까지, 주후45), (2) '사춘기 독수리 시각'(1차 선교여행, 주후46에서 로마서 집필과 3차 선교여행 마침까지, 주후57), (3) '어른 독수리 시각'(로마서 집필과 3차 선교여행 마침, 주후57에서 순교까지, 주후68) 입니다. 바울이 이 '하나님의 주권' 가르침 받고, 이때부터 (3) '어른 독수리 시각자'로 업그레이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에 바울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신학노선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사춘기 독수리 시각 자' 기간에, 자신의 학벌과 종교적 선행과 의와 열심을 은근히 자랑했습니다(알미니안 사상, 빌3:4-6). 그러던 그가 이 '하나님의 주권'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선교사로, 교사로 해주신, '그리스도의 주권'과 '일방적 은혜 베푸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신의 이런 자랑거리들을 한낮 '배설물'(dung, 빌3:8)로 여기는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어른 독수리 시각 자'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일어났던 변화라 생각됩니다.

'독수리 과(애기, 사춘기, 어른) 시각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전천후 시각 자' 입니다. 원거리, 넓은 거리, 중거리, 단거리, 근거리, 아메바 현미경 거리를 한눈으로 봅니다. '저 세상, 이 세상(7천년, 창조목적학교), 저 세상'으로 되어있는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한눈으로 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삼상16:13; 사61:1; 요일2:20,27) 받으므로, 조리개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요14:16)으로 성령세례(행1:5)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예리한, 민첩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지혜의 영, 명철의 영, 계획의 영, 능력의 영, 지식의 영, 주를 경외하는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사11:2). 이 '하나님의 주권' 계시를 받은 이후, 바울이 그 동안 희미하게 보았던 '하나님 나라'를 더욱 선명하게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영적 조리개에 기름 부음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수제자가 안드레입니다. 이 안드레가, 예수님의 주권적 은혜로, 이 '독수리 과' 인물로 디자인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애기 독수리'로 시작하여, '사춘기', '어른 독수리'로 단계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숨기시고, 따로 특별 개인 멘토링 하셨습니다. 그를 주류 제자 그룹에 넣지 않고 혼자 외롭게, 세례 요한처럼, 광야(스라브족 지역)에서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유명세 타지 않고, 대중성 없이, 인기 영합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듣던 안 듣던, 오직 초림하신 예수님의 정체성만 외쳤습니다. 그를 kairos 때가 되어, 그리스 남쪽 '아가야 지방'에서 순교케 했습니다(주후69).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케 했습니다(계6:9-11).

제가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두(2) 부류의 독수리 시각 자'를 디자인하신 것 같습니다. (1) '태생적 독수리 시각 자'(아브라함, 다윗, 모세, 안드레, 바울등 극소수)와 (2) '비 태생적 독수리 시각 자'(구약의 유명 인사들, 3인방, 나머지 예수님의 제자들, 베드로와 바울의 제자들등 소수) 입니다. 이 두(2) 구룹이 태생부터 다르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1)번째 구룹은 '애기 독수리'로 출생합니다. 반면 (2)번째 구룹은 '독수리 과'에 속해 있지만, 출생 시 '비독수리 과'로 시작하여(두더지, 병아리, 참새의 chronos를 거치게 한 후), kairos 때가 찰 때, '독수리 과'로 입문시킵니다.

나머지 크리스천들은 '비독수리 시각 자'로 출생시킵니다. (1) '두더지 시각 자'(최다수), (2) '병아리 시각 자'(다수), (3) '참새 시각 자'(소수)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소정의 훈련을 거쳐 단계적으로 업그레이드되거나, 아니면 현상 유지만 하다가, 낙원으로 가게 하십니다. 이들이 지금은 '비독수리 과'에 있지만, 이중 일부는 장차 '독수리 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온갖 시행착오 훈련(현장, 눈높이 상황 화 교육 방법)을 받은 후입니다. 독자들 중 이런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영성을 업그레이드 시켜주시기 위해, 그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4-7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오래 기다리며 참으셨습니다. 무례히 강권적으로 다루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성내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실수와 잘못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변함없이 신실하셨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장차 '어른 독수리 시각 자'로 업그레이드되어, 초대교회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 될 것을 믿고, 바라며, 견디며 참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저를 포함한 독자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이런 사랑으로, 우리를 다루고 계십니다. 우리를 '독수리 시각 자'로 업그레이드 시켜주시기를 바라시며, 견디시며, 오래 참으십니다. 이미 업그레이드 된 자에게는, 더 업그레이드되라고 재촉하십니다. 베드로가 순교자의 반열까지 올라간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우리가 이런 사람 되도록 재촉하십니다. '독수리 시각 자'로 '큰 그림'(하나님 나라, 저 세상, 이 세상, 저 세상) 보도록 재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영의 양식)에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도록 인도하십니다(마5:6).

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음 일곱(7) 분야의 말씀입니다. (1) 7대 신학주제들로 옷입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론(엡6:11-17), (2) 창조목적론(사43:7,21), (3) 창조목적 학교론, (4) 하나님의 신비론(고전2:7,4:1), (5) 그리스도의 신비론(엡3:4), (6) 천국의 신비론(마13:11), (7) 불법의 신비론(살후2:7) 입니다. 이 일곱(7) 분야 말씀에 어느 정도 식욕을 채우게 되면, 자연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아하! ........구나!" 입니다. 이런 분은 자연 사마리아 여인처럼 물동이를 버리고 외치게 되어 있습니다(요4:28). 몸이 쑤시고 가려워 견디지 못합니다.

이들은 주변의 '시각이 짧은 크리스천 분들'을 보면 안타까워합니다. 세3) 부류의 시각 짧은 자들입니다. (1) 영적 '두더지 시각 자들'(의식주를 위해, 눈앞의 땅만 보며 기어 다니는), (2) '병아리 시각 자들'(의식주를 위해, 가까운 주변만 보는 자들), (3) '참새 시각 자들'(의식주를 위해, 멀리 주변까지 보는 자들) 입니다. 이들에게 더 큰 시각을 가지라고 도전합니다. 이들이 듣던 안 듣던 말입니다. 간혹 이들로부터 오해와 미움도 받습니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비난도 받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주변에 나와 같은 시각 자가 많지 않구나? 발견하게 됩니다. '독수리 시각 자'나, 그 '후보 되는 분'은 이런 경험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특히 '산고 시대'인 오늘날이 더욱 그렇습니다. '가짜 독수리'(두 짐승, 계13:1-18)가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이들이 겉으로는 '독수리 시각 자'처럼 보이지만, 가짜입니다. '진짜 독수리 과'에 속해 있거나, '진짜 독수리 과 후보생'은 이 '가짜'에 대한 분별력을 가집니다. 황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왜 이 '두 짐승'이 '가짜 독수리' 입니까? 이는 이들이 '이 세상'을 독수리 시각으로 보며, '적그리스도' 행위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 세상'을 자신들이 통치하는 '영원한 낙원'으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시도를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라 합니다.

이를 위해,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도입하여, 모든 종교를 통합하려 합니다. 인권과 성차별 반대와 가짜 세계평화를 외칩니다. 이미 로마 카톨릭교회는 물론, WCC에 속해있는 정교회와 성공회와 개신교 기독교 교단들이 대거 참여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심지어 놀랍게도 오늘날 일부 오순절 교회들과 WEA의 일부 지도자들이 동조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혼돈스럽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홀딱 속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수없는 '비독수리 과' 크리스천들이 속임 받아 이미 넘어졌고, 계속 매일 넘어지고 있습니다. 실족(stumbling block) 되고 있습니다.

이 실족 사건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디자인입니다. 이 디자인을 예수님이 '감람산 설교'에서 예언하셨고(주후30, 마24:23-28), 그 후 요한에게도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주후95, 계13:1-18).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전 크리스천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1) 끝까지 잘 견디라(ensure to the end, 마24:13), (2) 깨어 있으라(keep watch, 마24:42), (3) 준비하고 있으라(must be ready, 마24:44), (4) 외쳐라(cry out, preach, teach, 마24:37-25:46) 입니다. 경고의 명령입니다.

왜 이 경고의 명령을 하셨나요? 많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두 짐승'에 의해 실족되어 구원상실 받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마24:23). 이들이 구원상실 받고, 죽은 시체가 되어 독수리의 먹이가 된다고 하셨습니다(마24:28). '산고'의 징조 중 하나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디자인하시고, '실족 당할 가능성 있는 자들'이 실족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어라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들림 받는 신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마24:37-25:46). 들림 받는 신부의 자격을 이 디자인을 통해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실족 당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비 그리스도인들' 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 입니까? 전체 그리스도인 중에 70-80% 차지하는 '두더지 시각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평신도만이 아닙니다. 신학생, 전도사, 강도사, 선교사, 목사, 신학자 등 소위 성직자들 중에도 많습니다. 한국만이 아닙니다. 유럽은 말할 것 없고,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중남미국들, 아프리카, 중동 등 기독계의 최다수가 이 '두더지 시각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놀랍습니다. 이들이 선호하는 주제들이 무엇입니까? '번영 신학', '치유 신학', '성공 신학', '예언 신학', '축귀 신학', '행복 신학', '카운슬링', '가정 사역' 등 입니다. 이것으로 받은 복들은 잠시 있다가, 죽으면 사라집니다. 이들이 안타깝게도 '이 세상'이 영원한 곳으로 착각하고, 여기에만 코를 대고 기어 다니는 '두더지' 입니다. 머리를 하늘에 향하지 않고 땅만 쳐다봅니다. 면역력이 없습니다.

이들이 '가짜 독수리'의 '먹이 감'이라고 예수님이 예언적 경고를 하셨습니다. 누가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나요? '비독수리 과 크리스천' 인가요? 아닙니다. 이 '비독수리 과'에 속해 있는 '두더지', '병아리', '참새'는 이 '가짜 독수리'의 정체성을 잘 모르며, 분별력도 희미하며, 싸울 수도 없습니다. 이놈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싸우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전투력도 없지만, 전투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함께 공존하며,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영적 감수성과 지혜가 없습니다.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도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독수리 과' 크리스천들입니다. '대항 독수리들'(counter eagles) 입니다. '독수리의 싸움 상대는 독수리' 뿐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이 '대항 독수리들'에게 기대가 크시며, 이들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이 '가짜 독수리들'이, 이 '영적 어린 크리스천들'을 낚아채어가지 못하도록 '대항 독수리들'을 세우십니다. 이 '가짜 독수리들'이 '대항 독수리들'을 두려워합니다. 맥을 쓰지 못하고 피하거나 도망갑니다.

저의 사명이 독자들을 이런 '대항 독수리'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유튜브 사역과 문서 사역의 초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불어, 스페인어, 아랍어, 힌두어, 벤갈어, 네팔어, 미얀마어, 라오스어,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다깔로그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등 30여개의 부족어로 영상과 문서 사역하는 목적과 초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민족들 중 '대항 독수리들'을 세우는 사역입니다.

재림 전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역입니다. 독자들 모두가 이 '대항 독수리' 세우는 사역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이 사역을 위해 현장에서 신실히 사역하는 본부 사역자들과 각 언어권 AMI 사역자들의 개인과 가족과 사역을 위해, 잊지 마시고 매일 기도로 동역해 주시길 바랍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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