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 목사님 칼럼

2026년9월18일

변명섭 2026. 9. 18. 16:48

요즈음 우리가 가룟 유다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동료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초림의 목적('창세전 하나님의 신비'/'원시복음' 성취)을 알리는 '안내자'/'가이드'/'인도자'/'길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실을 오순절에 '보혜사'('성령세례', 요14:16; 행1:5, 2:1-4)를 받고서야 깨달았습니다(행1:16). 그 이전에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안내자' 역할 하는 자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그 임박 성을 알려주는 '안내자'입니다. 이 재림 때의 '안내자'가 바로 '두 짐승들'('국제 카르텔들', 계13:1-18)입니다. 이들이 안내해 주는 대상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추수꾼들', '신붓감들', '남은 자들')입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안내해 주어도 무관심하며 모르며 무반응 합니다. 깨어 있지 않고 잠자고 있습니다(마24:37-44).

다시 말해 초림 때 '가룟 유다'가, 재림 때의 '두 짐승들'의 '예표'(헬. tupos, 영. type, 롬5:14)였습니다. 성경에는 이 예표를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그림자'(헬. skia, 영. shadow, 고전10:6; 히8:5), '모형'(헬. hupodeigma, 영. copy, 히8:5), '비유'(헬. parabole, 영. symbol, 히9:9) 등입니다. 이 모두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배려입니다. 이들이 더 쉽게 분명히 알아듣게 해주기 위한 배려입니다. 눈높이 교육 방법입니다. 이만큼 제자들에게 기대가 크시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비 제자들'은 아무리 상기 예표/그림자/모형/상징으로 보여줘도, 무관심하거나 알아듣지 못하거나 무반응 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해서입니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마7:6). '추수 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일들(건강/재물/가정/직장/사업)과 생각(행복/무병장수)에만 바쁩니다. 크리스천들이지만 시각이 이 세상에만 고정되어 있습니다(두더지/병아리/참새 시각). 그러다가 세상 걱정만 하다가 때가 되어(전3:1-8), 죽어서 낙원에 갑니다(눅23:43; 고후5:1). 이들은 상기 예표에 무관심합니다.

이 사실을 구약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의 역사 스토리가 바로 예수님이 장차 초림 하시어, '창세전 하나님의 신비'와 '원시복음'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눅24:27,44; 요5:39). 이 이야기를 제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예표들을 만들어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해서입니다. '비 제자들'('일반 크리스천들')을 위함이 아닙니다. 이들은 아무리 듣고 보아도 그 소중함과 내용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신비'입니다(마13:11-17).

구약에서 예수님이 최소한 10가지의 예표들('어린양 예표들')을 만드시어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 가르치셨던 방법이 아주 체계적이었습니다. 점진적/단계적/발전적/역사적/4천년 긴 시간적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이 4천년이 영적으로는 4일(시90:4; 벧후3:8)입니다. 숫자 4는 '교육/훈련/준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10가지 '어린양 예표들'이 이러했습니다. (1) '가죽옷의 어린양'(주전4,000, 창3:21), (2) '아벨의 어린양'(주전4,000, 창4:4), (3) '방주의 어린양'(주전2,500, 창6:14), (4) '400년 노예의 삶 어린양'(주전2,000, 창15:13-16), (5) '모리아 산의 어린양'(주전2,000, 창22:2), (6) '유월절의 어린양'(주전1,500, 출12:1-17), (7) '성막의 어린양'(주전1,500, 출25:8), (8) '성전의 어린양'(주전959, 왕상6:14), (9) '제2성전의 어린양'(주전516, 스6:14-16), (10) '헤롯 성전의 어린양'(주전20-주후70, 예수님의 몸 요2:21) 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가르침은 ABA(AMI Bible Academy, AMI 성경공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이 10가지의 '어린양 예표들'을 4천년 역사 속에서 자상히 '구약 때 이스라엘 사람들'('신약의 일반 크리스천들의 예표')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이 이 예표들의 '본체'('창세전 하나님의 신비', '원시복음',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했거나 무지했습니다. 이들의 생각으로 이 '예표들'이 단지 이 세상 복을 주는 하나의 가르침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시각이 이 세상에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이들이 '보혜사'(요14:16,26; 행1:5, 2:1-4)를 받고 나서야, 드디어 이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때가 되어(전3:1-8), 예수님께서 상기의 10가지 예표들을 성취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헬. Tetelestai, 영. It has been finished, 완료형, 과거 행위들이 진행되어 오다가 이제 완료, 요19:30)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시고 '숨'(헬. pneuma, 영. spirit, 요19:30)을 거두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이 '창세전 하나님의 신비'와 '원시복음'의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몸소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도 이 사실을 성경에서 보고 배우고 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로 입니다. 무감각/무감동 합니다. 이 사건을 창세전부터 디자인하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왜 '삼위 하나님'이 이것을 창세전에 디자인하셨나요? 입니다.

이 디자인이 바로 장차 창조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교육시키시려는 '아버지의 뜻'(마6:10)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수님이 인간으로 성육신하시기로 디자인 되었습니다(요3:16). 7천년 '창조목적 학교' 개설 디자인입니다. 예수님을 교장(딤전6:15)으로, 사탄을 교감(요12:31)으로 입니다. 그래서 이 디자인을 성취하시기 위해, 사탄(교감, 요12:31)을 창조하셨습니다(창3:1; 사45:7, 54:16; 사14:12-17; 겔28:11-19; 계12:3-4). 아담도 타락케 하셨습니다(창3:5-6). 이 학교 폐교 때(7천년 마칠 때) 사탄과 새끼 마귀들과 귀신들과 사탄의 자녀들을 불 못에 던지시기로 디자인 하셨습니다(계20:10-15). 그리고 예수님이 이 학교를 아버지께 바치시기로 디자인 하셨습니다(고전15:24). 이로써 더 이상 이 학교의 필요성이 없게 디자인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 '창조목적 학교'를 개교하시고, 4천년 동안 상기의 10가지 '어린양의 예표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혜사'를 주셨습니다(행2:1-4). 이로써 이들이 이 예표들의 '본체'('예수님의 정체성')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표들'을 통해, '본체'를 알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보혜사'를 받고, 이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설교했습니다(행2:14-36). 이 '보혜사'의 도우심 없이는 이 깨달음이 불가능합니다. '가룟 유다'가 '두 짐승들'('국제 카르텔들')의 '예표'라는 사실도 이 '보혜사'의 도움 없이는 수용이 불가능합니다. 초림 때의 '가룟 유다'가 바로, 재림 때의 '두 짐승들'('국제 카르텔들')의 '예표'라는 사실 말입니다. 놀랍고 신기하게도 '가룟 유다'와 '두 짐승들'을 비교해 보면, 서로 유사하며 공통된 점들이 있음을 이들 가운데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두 팀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그 유사점들을 살펴봅시다. 최소한 네(4) 분야에서 발견됩니다. 그 첫 번째가 (1) '배반자'(헬. paradidomi, 영. betrayer)입니다. 이 두 팀 모두가 예수님을 향한 '배반자'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다가 배반했습니다(요18:5). '두 짐승들'('국제 카르텔들')도 본래 하나님을 아는 유대인들이거나, 이방인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를 창안했습니다(마24:23-28; 계6:1-2). 예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계17:3).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자들이 되었습니다(계17:2). 땅의 왕들과/땅의 상인들과/모든 민족들과 더불어 음행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계17:2, 18:3).

신기하게도 이것 모두가 결코 우연히 아닙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디자인 속에서 입니다. 이 디자인된 것을 요한이 미리 보았습니다. 그가 이 본 것을 요한계시록에 기록했습니다(주후95, 계13-18).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오늘날 이 요한이 본 것이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임박 성을 확실히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제자들에게', '신붓감들에게', '추수꾼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 재림의 '안내자' 노릇을 우리를 위해 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해주듯 말입니다. 이렇게 이 두 팀이 '배반자'로, '안내자' 역할을 우리를 위해 해주고 있습니다.

그 두 번째가 이러합니다. 이 두 팀 모두가 (2) '유사 배경 자들'입니다. 가룟 유다가 기득권/고위층/부유층/고학력층 배경을 가진 자였습니다. '두 짐승들' 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큰 부자들이며(계18:17), 기득권/고위층/고학력층으로 AI(짐승의 형상)를 만들어 운영하는 자들입니다(계13:12-18).

세 번째는 이러합니다. 이 두팀이 바로 (3) '유사 족보/태생/소속'입니다. 가룟 유다는 '사탄의 씨 중 하나'로(창3:15), '새끼 똘마니 마귀 중 하나'(요6:70-71)입니다. 그가 성육신(incarnation, 이룰 '成'이지 거룩 '聖'이 아님)된 인간입니다. 그는 '목욕하지 않은 자'(요13:10, '원죄 해결 받지 않은 자')입니다. 그는 '멸망의 아들'(요17:12)입니다. 놀랍게도 '두 짐승들'('국제 카르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성육신한 '새끼 똘마니 마귀들'(계13:2,11)입니다. 이들의 처소들이 귀신의 처소들/더러운 영들의 소굴/더럽고 가증한 새들의 소굴입니다(계18:2). 멸망의 아들들입니다(계19:20). 죽어서 지옥 가거나, 백 보좌 심판(계20:11-12) 받지 않고, 죽어서 불 못으로 직행 받는 자들입니다(계19:20). 아마 '가룟 유다'도 불 못으로 직행했다고 추정됩니다.

네번째 유사성이 이러합니다. (4) 사명이 같습니다. 가룟 유다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초림과 '창세전 하나님의 신비'/'원시복음'을 알려주는 '안내자'/'가이드'/'인도자'/'길잡이' 사명을 가졌던 자였습니다(행1:16). 이것이 '가룟 유다'의 사명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재림 전에 세우신 '두 짐승들'('국제 카르텔들')에게도 같은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재림 전 '제자들'('추수꾼들', '신붓감들', '남은 자들')을 위한, '경고등', '신호탄', '표지판', '촉진제' 사명입니다. 재림의 임박 성을 알리는 '안내자' 사명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예수님이 재림 전 제자들에게 예비해 주신 '경고용 선물들'입니다. '잠자지 말고 깨어나, 재림을 준비하며, 외치라고 주신 선물들'(마24:37-25:46)입니다. 이 '두 짐승들'이 재림 전 산고들을 일으키는 주체들(마24:3-26)입니다. 우리가 이 '경고용 선물들'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해서 없앨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들의 산고 행위가 더욱 심해질 터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끝까지 '견디라'(헬. hupomeno, 영. endure)고 하셨습니다(마24:13).

그런데 그냥 막연히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족속들(헬. panta ta ethne, 영. all the peoples/tribes/nations, 마24:14, 28:19-20)에게 예수님의 정체성('7대 신학 주제들'/'7대 신비들')을 전하며, 가르치고 제자 화하여 순종케 하기" 입니다. 이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아주 어렵습니다. 엄청난 희생이 요구됩니다. 잘 견디지 않으면 중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견디라 하셨습니다. 어떻게 견딜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온갖 어려움과 방해를 이 은혜로 견딜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말입니다(요14:16).

베드로 팀들이 이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의 은혜'를 받았기에, 이들이 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로마제국에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이 로마제국 안에 있었던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복음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들을 가르치며 제자화 하여 순종케 할 수 있었습니다. 최종 목표가 순종이었습니다. 어떤 순종입니까? 제자가 되는 순종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순종하는 제자로 만드는 사명이, 그 유명한 '예수님의 지상사명'(마28:19-20)입니다. 그냥 단순히 복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AMI가 이 '예수님의 지상사명'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 오늘날, AMI에게 이 '예수님의 지상사명'에 참여하여 동역하도록 디자인된 분들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입니다. AMI 교인으로, 40여 개국들의 AMI 선교사들로, ABA 참여자들로, NK-ABA 참여자들로, J-ABA 참여자들로, 칼럼 구독자들로, 영상 구독자들로 등등 입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입니다. 이 '예수님의 지상사명'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의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이들 상기의 AMI 팀들 모두가, '들림 받는 예수님의 신붓감들'이 되는 것입니다. 들림 받지 못하여 7년 환난에 들어가, '울며 이를 가는 자들'(마24:51, 25:30)이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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