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짐승시리즈

2-23강. 창세기6장8절-9절, 히브리서11장7절. 노아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도 받자

변명섭 2025. 12. 23. 14:00

두 짐승시리즈 23강. 노아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도 받자 (창6:8-9; 히11:7) 2025년12월21일 말씀

창세기6장8절9절 말씀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히브리서11장7절 말씀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저희교회는 알다시피 다른 스타일의 교회입니다 
수요예배도 없고 새벽기도도 없고 금요철야도 없는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좋아요? 좋지만 우리교회는 뒤에서 바쁜 교회입니다
성탄절도 마찬가지고 새해를 맞이하는 예배도 하나의 절기를 지키는 우리기독교의 전통인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날만 성탄절이 아니고 그날만 송년예배가 아니고1년365일을 저는 성탄절로 보는 사람입니다 1년365일이 송년 신년예배로 보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도 그랬습니다. 골로새서에서 절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은 구약 때 필요한 하나의 절기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365일이 절기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성탄 절기나 신년 송년절기는 여러분 주변에 있는 다른 교회에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좀 쉬겠습니다. 1년 내내 우리가 너무나 바빴습니다.
그러니까 타 교회에 가셔서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집에서 가족들과 조용히 즐겁게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저는 그렇게 하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예수님이 너희들을 율법에서 자유케 하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자유하시길 바랍니다. 자유 할 때마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절기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보다는 가족끼리 이번에는 정말 오붓한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러한 기회가 되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우리교회 주차 관리하는 장로님과 안수집사님 앞으로 수고해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추울 때 주차관리가 보통 힘들지 않습니다. 

오늘은 두 짐승시리를 계속 할 터인데 노아에게 베푸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도 받아야 되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제가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슈를 가지고 제가 최선을 다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은혜라는 단어입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어떤 분들이 사용하는 단어입니까?
소위 알미니안주의 분들이 사용하는 단어입니까? 
아니면 칼빈주의 분들이 사용하는 단어입니까? 
은혜라는 단어는 칼빈주의 분들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왜냐면 은혜라는 단어는 예수님과 성부하나님과 성령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베푸는 호의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일방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한 행위 때문에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호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적 일방적 차원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알미니안주의 크리스천들은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입니다 70-80%가 알미니안 사상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분들은 우리가 선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내가 노력했기 때문에 또는 내 자유의지를 긍정적으로 발휘했기 때문에 은혜를 베푸신다고 보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칼빈주의는 아니다 
이것은 나의 어떤 행위로 은혜 베푸시는 것이 아니고 이분의 주권적인 일방적 이분의 생각으로 그냥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거라는 겁니다.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도 한 때는 알미니안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초창기에는 그러다가 이분이 로마서를 써실 때 주후57년입니다
이분이35년에 개종했으니까22년 동안 예수님을 열심히 섬기면서 선교도 열심히 하면서 초창기에는 이분도 알미니안 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가 말하는 알미니안 주의적인 사고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 사상을 가지고 주님나라에 가십니다.
천국에 올라가서 이분들이 느끼기를 아하! 이게 인간의 선한행동에 의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구나? 그때 가서 이분들이 깨닫게 됩니다. 
어째든 바울도 이런 사상을 가졌다가 로마서를 쓰시면서 이분이 이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보면 로마서1장부터8장까지는 알미니안 주의사상을 가진 분들에게 쓰신 글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9장부터 나머지를 보면 하나님의 주권이 보탬이 되었다는 걸 설명한 것이9장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주의가 9장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9장에서 유명한 하나님의 주권을 세(3)예화를 듭니다.
알다시피 야곱과 에서의 예화, 모세와 바로 왕의 예화 그리고 토기장이의 예화를 드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일방적으로 은혜 베풀 자에게 내가 은혜 베풀고 자비 베풀 자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겁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너희들이 잘나서가 아니고 못나서가 아니고 그러면서 이분이 출애굽기33장19절을 인용하면서 로마서9장1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마태복음20장15절에는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내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데 왜 말이 많으냐?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또 시편127편1절에는 예수님이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은혜 없이 너희들이 집을 아무리 지어봐야 헛수고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나의 은혜 없이 파수꾼들아 열심히 성을 지켜봐야 헛수고라는 겁니다. 네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하게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마태복음10장29절에 참새 한 마리도 내가 허락하지 않고는 떨어질 수 없다는 겁니다. 참새도 자유의지로 자기가 떨어지는 게 아니고 날다가 예수님의 주권이 뒤에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우리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미니안주의 사고를 가진 분들은 이런 말들을 한쪽귀로 듣고 말아버립니다. 그리고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우리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그것을 예수님이 이런 식으로 말씀하십니까? 그러면서 은혜라는 단어가 예수님의 주권과 연계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은혜이야기를 자세히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에스더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에스더에게 은혜를 줬고 호의를 줬다는 단어를 예수님께서 써셨습니다.
그런데 은혜라는 단어는 성부와 성자를 통해서 베푸시는 일방적인 호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우리가 여쭈어 보는 겁니다.
칼빈주의를 생각하는 사람은 은혜와 호의가 언제 나에게 베풀어졌나? 
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은혜와 호의가 나에게 주어졌는데 언제 이것이 주어졌느냐? 라고 할 때 예정적 칼빈주의적 사고를 가진 분들은 이걸 언제라고 봅니까? 내가 어머니 태에서 형성하기 전이라고 보는 겁니다. 
기가 막힌 개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예레미야1장5절 또는 갈라디아서1장15절에 바울도 내가 어머니 태에 있을 때 이미 이 은혜와 호의를 이미 받았다는 겁니다. 갈라디아서1장15절에 그러면서 로마서8장29절에 뭘 강조하느냐면 예지 미리 아셨고 예정하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예정론 자들은 시각이 무슨 시각입니까?
우리 시각이 창세 전 내가 모태에서 형성되기 전에 이미 이런 사람으로 예지되고 예정되었구나? 라는 사상을 가진 겁니다. 그러니까 독수리시각입니다 
멀리 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만큼 되었구나?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다. 라고 보는 독수리시각의 사상을 가진 분들이 예정 적 시각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런데 알미니안 주의적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소위 두더지, 병아리, 참새시각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런 걸 믿지 않고 내가 지금 내 의지를 발동해서 선한 행동을 하니까 이렇게 해주신다고 보는 겁니다. 내  주변만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기독교인들이지만 중요한 이슈가 있습니다.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예정 적 차원을 아무리 말해도 그것을 수용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초신 자인데도 그 이야기를 해주면 근방 수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아하! 저분은 독수리시각후보자구나? 그렇게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을 신앙생활하고 열심히 해도 이 예정적인차원을 소화를 못합니다. 그걸 인정을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로 다투면 안 됩니다 아하! 이분은 이 정도구나? 
다시 말하면 알미니안주의 크리스천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살다가 주님나라에 가겠구나? 이것을 바울이 로마서12장에서 깨달아서 뭐라고 했습니까?
분량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분량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것을 은혜를 담는 그릇이 다르다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분량이 다르다는 것은 로마서12장3절에서8절에 그런 말을 썼습니다.
담는 그릇이 다르다는 것은 디모데후서2장20절에서21절에 바울이 유언으로 자기영적아들 디모데에게 말씀 하신 겁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는 겁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르게 창조하셨나요?
그러면 우리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늘나라 저곳은 계층사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크리스천인데 사물을 보는 관이 다릅니다. 
같은 크리스천인데 같이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 같은 교회에 다니는데 같은 성경공부를 하는데 사물을 보는 관이 다른 겁니다. 
어떻게 다르냐면 첫째는 세계관이 다릅니다. 가치관도 다릅니다.
물질관도 다르고 성공관도 다르고 믿음관도 다르고 가정관도 다릅니다.
같은 크리스천인데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왜 그럴까요?
한 사람은 알미니안주의 사고로 모든 사물을 보고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정적인 측면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측면에서 보는 사람과 사물을 보는 관이 다른 겁니다. 좋다 나쁘다고 제가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마다 그게 다 다릅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떤 사람이었나?
저는 노아를 보면서 노아에 대해서 설명한 게 그 유명한 믿음장인 히브리서11장입니다 히브리서11장7절에 노아가 어떤 분인가? 설명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노아는 독수리시각 자였습니다. 
이분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호의를 받은 자였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노아는 장차120년 후에 홍수가 일어날 것을 미리 보았던 사람입니다. 
홍수가 뭐냐면 앞으로 일어날7년 환란을 홍수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환란이 있을 것을 우리가 맞이할 환란은 불의 환란입니다
그런데 홍수는 무슨 환란입니까? 물의 환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노아 때와 같다고 그러는 겁니다.
내가 재림해올 때는 노아 때와 같다는 것은 노의 때의 상황이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의 상황과 똑 같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이 부분을 정리해 보려고 그럽니다. 
노아는 뭘 봤습니까? 120년 후에 물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미리 본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노아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앞으로 예수님의 공중 재림이 있고 7년 환란이 있을 것을 노아처럼 미리 봐야 되는 겁니다. 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노아는 뭘 했습니까?
노아는 방주를 짓는 준비를 계속한 겁니다. 
똑같이 우리가7년 환란이 있다는 것을 올 것을 아는 사람은 준비를 해야 됩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잘 견디라 깨어있어라 준비하라 외치라는 겁니다. 
노아와 방주 짓는 것과 똑같은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방주를 똑같이 그렇게 지었잖아요. 
우리가 깨어서 준비하고 외치는 사람이 방주를 짓는 사람과 똑같은 겁니다.
노아는 그 당시에 노아와 그 가족들만 이렇게 준비를 했잖아요. 
그런데 나머지 분들은 사탄의 자녀들입니까? 
나머지 분들 다는 사탄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 안에 소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녀는 소수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가족들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분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소위 지금 말하는 들림 받는 신부 감의 하나의 예표로 보여주었지만 노아시대도 그 안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분들은 방주에 안 들어갔습니다. 이분들은 왜 안 들어갔습니까?
방주 짓는데도 관심이 없었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언제 구원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3일 동안 음부에 내려가서 그게 아브라함의 품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이분들을 구원해서 낙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홍수에 대한 경고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이7년 환란에 불의 심판이 있을 텐데 불의 재앙이 있을 텐데 똑같이 오늘날 7년 환란에 대한 경고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꽤 많을 겁니다. 왜냐면 꽤 많게 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보니까 노아의 여덟 식구만 관심이 있었고 나머지 분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어디로 내려갔습니까?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간 겁니다.
지옥이 아닙니다. 그랬다가 나중에 예수님이 그분들을 살려서 낙원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것은 다 아는 이야기로 우리가 다 공부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시대에 노아와 그 가족은 어떤 시각을 가졌을까요?
그 당시에 분명히 이런 시각을 가졌을 겁니다.
아하! 이 세상이 악하구나? 그리고 아하! 이 세상이 혼혈 결혼하는 세상이구나? 아하! 혼혈 결혼해서 나온 그 자녀들을 네피림(Nephilim이라 그러는구나?
네피림이란 말이 뭐냐면 영어로 폴렌(fallon)으로 뜻은 타락한 자들이구나? 
사탄의 자녀들이구나? 그 말이 네피림(Nephilim)이란 뜻입니다 
그런 존재들의 의미가 네피림(Nephilim)이라 그럽니다. 
그런데 이 네피림(Nephilim)들이 덩치들이 커서 자인언트(giant)라는 것은 그 당시에 용사들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권력도 있고 제물도 있고 명예도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네피림(Nephilim)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노아가 홍수가 온다고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사탄의 자녀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분들은 나중에 홍수에 의해서 멸망당했잖아요. 
이 사람들이 네피림(Nephilim)들이구나? 
그러니까 이걸 우리가 뒤집어서 예수님의 재림 전에도 네피림(Nephilim)같은 존재들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 존재들이 오늘날 누굽니까?
두 짐승인 겁니다. 두 짐승그룹이 네피림(Nephilim)처럼 커고 재력도 있고 정치권력 경제권력 다 가지고 있고 문화권력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명세를 다 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노아에게 그랬습니다. 
이 세력들이 온 세상을 점령하고 창대했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 세계를 이 세력들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똑같이 오늘날 우리가 이런 때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노아를 어떤 사람으로 불렸습니까?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은 분으로 첫 번째는 노아를 보고 뭐라고 불렸냐면 창세기6장9절에 노아는 의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분들은 의인이 아닌가? 제가질문을 한번 던져 봤습니다. 
그랬더니 성경에 보니까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걸 보니까 
에스겔서14장14절입니다. 또는 16절18절20절에 보면 구약 때 예수님이 의인이 세 사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냐면 첫째 노아가 의인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다니엘이 의인이다 
그리고 욥이 의인이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시각에서는 노아와 다니엘과 욥을 의인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창세기6장9절에 노아를 어떤 사람으로 표현하였냐면 완전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퍼펙트 맨(perfect men)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100%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 그러니까 예수님만 인성을 가졌을 때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첫 번째 베드로전서1장19절에 흠 없는 의인입니다 
두 번째는 베드로전서2장22절에 보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입니다
무죄하신 예수님입니다 또 바울이 말하기를 고린도후서5장21절에는 바울이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노아를 보고 창세기6장9절에 완전한 사람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완전한 분이시지 인간은 완전한 분이 없습니다. 
그럼 성경어디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성경에는 완전한 사람이 한분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열왕기상8장46절, 시편14편3절, 전도서7장20절, 마가복음10장18절, 로마서3장23절, 요한1서1장8절에 보면 하나같이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노아를 완전한 사람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까? 여기에 갈등이 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노아를 어떻게 보셨기에 이런 말씀을 하실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다
노아도 예수님처럼100% 완전하지 않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을 비교해볼 때 노아 같은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비교적인 의미에서 그러니까 예수님의 마음에 완전히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예수님이 그는 나와 동행했다
나와 같이 걸었다 항상 예수님과 함께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나 여러분들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한 사람입니다 
제가 볼 때 여러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녹을 보면 압니다. 에녹이 들림 받은 하나의 예표입니다
창세기5장22절에 분명히 그랬습니다. 에녹이 여호와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들림 받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우리가24시간 예수님과 동행해야 되는 겁니다. 
24시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한 사람입니다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은 들림 받은 신부 감들의 예표입니다
우리가 들림 받는 신부 감이 되려면 이분들처럼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표로 보는 겁니다. 그러면 특징들 몇 가지를 제가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특징들 속에 우리가 들어가야 됩니다.
첫 번째 특징이 뭐냐면? 소수라는 겁니다. 다수가 아닌 겁니다.
창세기7장7절에 보면 여덟 명 뿐이었습니다. 이게 첫 번째 특징입니다
두 번째 특징이 뭐냐면? 창세기6장8절에 은혜와 호의를 받은 자들입니다
세 번째 특징이 뭐냐면? 창세기6장9절에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자들입니다 네 번째는 창세기6장9절에 완전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은 자들입니다 
다섯 번째는 창세기6장9절에 하나님과 동행했던 분입니다
여섯 번째는 히브리서11장7절에 장차 홍수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를 받고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다 그랬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이제 멀지 않아7년 환란이 올 터인데 다시 말하면 홍수가 올 터인데 그기에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 말씀에 그 경고에 경외하면서 방주를 준비해야 합니다. 방주를 준비했다는 말은 우리가 깨어나서 준비하며 외쳤다는 말입니다 또 히브리서에서 뭐라고 그러느냐면 일곱 번째로 히브리서11장7절에 노아와 그 가족들이 이 세상을 정죄했다고 그랬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이분들이 그 당시 그 세상이 아주 악하구나?
이렇게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하! 이 세상 임금이 사탄이구나?
이것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아하! 혼혈아인 네피림(Nephilim)들 이놈들이 제물 권력 명예를 다 가지고 있구나? 이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이것을 이 세상을 정죄했다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대분별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표현하시면 되겠습니다.
똑같이 오늘날 우리가 신부 감이 되려면 시대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공부를 하는 겁니다. 
여덟 번째로 히브리서11장7절에 이렇기 때문에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이 의인의 상속자가 되었다 그랬습니다. 요즘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의 신부들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년왕국 때 통치자들이었고 신천신지 때 통치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특징이 하나가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특징인데 아홉 번째로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창세기7장10절에 방주에 들어가서7일이 있은 후에 홍수로 물들이 땅에 가득 찼다 그랬습니다. 이 패턴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방주에 노아가족들이 들어갔습니다. 
이 말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들림 받았다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들림 받은7일후에 홍수의 물들이 땅에 가득 찼다는 겁니다. 
이 말은 뭡니까? 우리가 들림 받고7년 환란이라는 홍수가 일어날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환란 전 들림입니다. 제 말씀 이해되십니까?
그리고12절에 왜 사십 주야 동안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까? 
완전히 다 멸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물이 산위까지 올라간 겁니다.
그러니까7일후에 라는 단어가 참으로 신기한 단어입니다 

제가 노아와 노아의 홍수를 묵상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을 여러분들과 나누는 겁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이슈가 또 하나가 있습니다.
무슨 이슈냐면 여호와예수님이 창세기6장6절에 땅에 사람들을 지었음을 생각하면서 후회하셨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게 심각한 겁니다.
어떤 한분이 댓글로 저에게 질문을 하는 겁니다. 
목사님! 어떻게 여호와예수님이 후회하십니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고 중요한 이슈입니다 이게 성경마다 표현을 달리 했습니다.
킹 제임스는 회개했다는 말을 후회했다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뉴 아메리카 스텐다드 바이블은 뭐라고 섰느냐면 미안하게 생각했다 안 서럽게 생각한다고 써놓았습니다. 그리고 NIB는 슬퍼한다, 
마음 아파한다, 이렇게 표현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걸 다보고는 제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우리한글성경에는 후회한다고 표현을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히브리어 원어를 보니까 낙캄(nakham)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이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까 
(1)to sigh라는 말은 한숨 쉬셨다 또는 깊은 숨을 쉬셨다 이렇게 표현해놓았습니다. (2)to pity라는 말은 가련하게 생각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원어를 읽어보면서 아하! 낙캄(nakham)이라는 이 단어가 정확한 단어라고 제가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홍수가 내려올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겁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예정된 자들도 같이 죽는 겁니다. 
이분들은 죽어서 지옥으로 간 게 아니고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고 나머지 분들은 지옥으로 내려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이 후회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걸 보면서 깊은 한숨을 쉬시면서 가련하게 생각도 하시지만 창조목적학교에 하나의 과정 속에서 이런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후회라는 단어는 예수님은 절대로 후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민수기23장19절, 사무엘상15장29절, 말라기3장6절, 야고보서1장17절에 후회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그러면 노아시대 때 인구가 도대체 몇 명이었을까?
그러면 아담타락부터 홍수까지가1500년입니다 
아담이 주전4천년이고 홍수가 주전2천5백년입니다 
그러니까 아담부부가 아기를 낳아가지고 1500년 동안에 인구가 얼마나 되었을까? 이걸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수학 쪽에 머리가 있는 분들은 왜냐면 이 당시에는 천년씩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뿐 아니라 일부다처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걸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수학을 하는 분들이 인구를 발표하는 것을 제가 여러 문헌에서 봤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봤더니 아주 보수적으로60억에서80억까지 보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80억이라는 인구가 있었다고 본다면 예컨대 노아의 여덟 식구만 살아났고 나머지 분들은 다 죽었는데 그 안에 하나님의 자녀들도5%에서10%는 되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잖아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얼마나 많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을까?
대강 짐작할 수 있는 겁니다. 오늘날도 똑같이 예수님의 공중 재림 전에 세계인구가80억입니다 그런데 의문점이 홍수 이후에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이 창세기10장에 보면 후손들이70명으로 노아의 세 아들들을 통해서 유럽사람 아프리카사람 아시아 사람해서 70부족이라고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때까지 2500년입니다 
2500년 동안 인구가 증가했을 텐데 이때는 인간수명이 천년이 아니고70에서80이었습니다. 또 전쟁도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 인구가 엄청 많이 감소가 되었던 것으로 우리가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예수님 당시에 인구가1억 명이었습니다
그러다가500년 후에3억 정도 되고 20세기에 들어와 가지고20억이었는데  100년 사이에80억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노아의 홍수 때 인구가 꽤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당시는1억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품 이야기를 베드로가 베드로전서3장18절에서20절입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그랬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예정된 자들인데 홍수가 올 것을 준비하지 않았던 자들로 방주 짓는데도 참여하지 않고 예수님이 오래 참으면서 기다렸는데 그래도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이 어디로 내려갔습니까?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오늘날로 대입해 보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갔던 분들을 오늘날 누구를 예표로 할까요?
오늘날7년 환란이 있고 예수님의 공중 재림이 있다는 말을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데도 한쪽 귀로만 듣고 흘려버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눈과 귀가 이 세상 삶에 고정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부 감으로 은혜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러면 오늘날 교회들이 불순종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들이 예수님 재림 설교를 안 하는 겁니다. 
목사들이 불순종합니다. 안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심이 없습니다. 
신학자들이 안 합니다. 선교사들이 장로들이 안 합니다
그러면 목사님! 왜 안합니까? 라고 질문을 던지면 우리가 뭐라고 대답해야 됩니까? 이분들의 은혜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세 번째는 종말론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분들이 불순종하느냐면 첫 번째로 이분들은 예수님의 감람산설교, 일곱 인 설교, 두 짐승설교 이것을 재림메시지와 연관해서 전하지 않는 겁니다. 두 번째는 이 성경구절을 변질시켜가지고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변질시켜서 합니까? 
이런 성경구절을 읽고는 설교할 때 기복신학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힐링(healing)신학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병이 낫느냐 어떻게 하면 인간문제를 해결 받느냐 힐링(healing)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어떤 분들은 눈만 뜨면 예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언에다 갖다 대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 미국사람들 아프리카사람들이 웹 사이트에서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그냥 예언하면 다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는 이런 걸 가지고 행복메시지를 전하고 격려메시지를 전하고 위로메시지를 전하고 성공메시지를 전하고 문제해결메시지를 전하고 교회성장메시지를 전하고 또 어떤 분들은 거기다가 애국메시지를 전하고 나라사랑하자 나라가 망하면 교회도 없어진다. 그러니까 나라를 위해서 우리 기도합시다.  
그렇지만 그 나라는 다 예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이스라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나라가 빨리 로마제국에서 해방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너희들 기다려라 내가 성령세례를 줄 테니 너희들은 나가서 열심히 복음전해라 그럴 때 제자들이 뭐라고 생각했는지 아세요? 사도행전1장6절과7절에 아하! 우리 이스라엘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예수님이 우리보고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그러는구나?
그래서 오순절 날을 기다리라고 그랬구나? 이렇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나라를 독립시켜주려고 그분들도 다 애국자들입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참새시각이나 두더지시각이나 병아리시각 자들은 애국, 애국 애국입니다 
그렇지만 독수리시각 자들은 전 세계를 애국으로 보는 겁니다.
내 민족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애국, 애국하는 그분들에게 주후70년에 나를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참새시각이나 조그만 두더지시각을 가지면 애국메시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면 우리나라가 잘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꼭 우리나라만 잘 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뜻이 계셔서 우리나라를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뜻이 계셔서 두 짐승 세력인 중국 친구들이 우리나라를 잡아먹으려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다 예수님의 장중에서 지금 그런 짓들을 하고 있는 겁니다.
때가 되면 거기에 대한 말씀을 전해드릴 겁니다. 
다시 말해서 시각이 알미니안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거나 시각이 좁은 사람들은 감람산설교나 일곱 인 설교나 두 짐승설교를 가지고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하고 성경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주의교회들이 있습니다.
복음주의교회라고 하는데도 지금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설교하는 교회들이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복음주의라는 말이 뭡니까?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는 교회들인데도 이런 식으로 보는 겁니다.
노아 때도 노아만 큰 그림을 보고서120년 후에 물의 심판이 있을 것을 보고 경고했습니다. 그렇지만 노아의 가족만 이 그림을 봤지 이 메시지를 문자적으로 그대로 믿었지 똑같이 예수님의 재림 때도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노아홍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 지금 홍수이야기를 잔뜩 써놓은 감람산설교나 일곱 인 설교나 두 짐승설교를 가지고는 홍수와 관계없는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없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노아 때는 어디로 내려갔습니까?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간 겁니다. 
아브람의 품으로 내려갔다는 것은7년 환란으로 들어갔다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들림을 받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비 복음주의교회들도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들입니까? 소위 WCC WEA 로마가톨릭 이런 모든 팀들은 비 복음주의교회들인데 이분들은 뭘 가르칩니까?
아까 말한 성경구절 같은 것을 별로 읽지도 않습니다. 
성경구절을 읽어도 그걸 가지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느냐면 종교다원주의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까 말한 감람산설교나 일곱 인 또는 두 짐승 성경구절을 가지고 다원주의 쪽으로 몰고 가고 종교통합 쪽으로 몰고 가고 세계평화주의 쪽으로 몰고 가고 이 세상 유토피아주의로 몰고 가고 또는 신세계질서주의로 몰고 가고 또는 인본주의로 몰고 가고 또는 인권주의 친 공산사회주의로 또는 친 동성애주의로 요즘 와서는 친 AI주의로 이렇게 몰고 가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때 살고 있는 겁니다.
제가 다시 한 번 간단하게 정리하고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이게 은혜가 없기 때문에 다 같은 기독교인인데 이렇게 다른 겁니다.
그래서 은혜차원에서 다시 말하면 은혜의 분량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차원에서 세 종류의 교회들이 있다고 크리스천들이 있다고 한번 봅시다.
은혜차원에서 같은 기독교인데 은혜의 분량의 차이로 세 그룹이 있다는 겁니다. 첫 번째로 어떤 그룹이냐면? 은혜의 분량은 있는 그룹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그룹입니다 복음주의 그룹입니다
그다음에 독수리시각그룹입니다 그리고 들림 받는 그룹입니다
또는 신부 감 그룹들입니다 이분들은 감람산설교, 일곱 인, 두 짐승설교를 문자적 그대로 보는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해서 그대로 보는 그룹입니다. 
이런 그룹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복음주의는 복음주의인데 예수님의 재림을 비 대망하는 그룹으로 무 천년주의사람들로 당장 예수님의 재림이 없다 
한참 있다가 온다고 믿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들림 받고 모두가 다 신부 감들이라고 믿는 그룹들입니다 
복음주의사람들인데 이분들은 독수리시각입니까? 아닙니까?
제가 볼 때 참새시각입니다 이런 분들은 은혜의 분량이 다릅니다.
그런데 세 번째 그룹은 같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이분들은 가짜기독교그룹들입니다 그런데 다수입니다 그러니까 두 짐승선호그룹입니다
이분들은 감람설교나 일곱 인 설교나 두 짐승설교를 나름대로 달리 해석하는 분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 굉장히 많은 겁니다.
그러니까 노아 때와 똑같은 겁니다. 
첫 번째 그룹은 노아가족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두 번째 그룹은 어떤 그룹일까요?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갔던 분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다 지옥으로 내려간 그룹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지금 세 그룹들이 공존해 있는 세대에 살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런 분별력을 고취시켜드리려고 이런 설교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질문이 우리는 어느 그룹에 속하는가?
그러면 분명 첫 번째 그룹에 속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첫 번째 그룹 안에 속하려고 은혜를 간구하는 그룹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첫 번째 그룹에 들어가려고 은혜를 간구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 가야 되는지? 어느 그룹에 들어가야 되는지? 
아는 팀들입니다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발을 거기에 디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을 정죄할 수도 없습니다.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은혜로 이 그룹 속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베푸신 은혜로 그렇게 때문에 우리와 은혜의 분량이 다른 분들을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제가 이런 어려운 노아시대와 관계되는 은혜설교를 할 때 이 설교를 소화하고 수용하는 사람들을 주님이 보내주셔서 이 자리에서 우리가 오늘도 같이 은혜를 나누고 있는 이것이 제가 볼 때 정말 기적 같습니다.
제가 이런 메시지를 어느 교회에 가서 전할 수 있겠습니까? 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교회나 어떤 팀들이 목사님! 강사로 오셔서 저희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해도 저는 될 수 있으면 안 갑니다.
왜 안가겠습니까? 거기 있는 분들이 두 번째 세 번째 분들이 많은데 거기 가서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잘못 말했다가 욕만 먹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제가 그런데 끼지 않게 하십니다. 
여러분들 주님의 은혜로 여기에 오게 하신 것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예수님!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푸셔서 노아시대에 노아와 그 가족들이 은혜 받은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며 소화할 수 있었고 또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그 당시에 홍수에 대비하지 않았던 분들 그분들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가 나중에 다시 낙원으로 올려 보냈던 그러한 모습들 우리가 보게 되면서 이 모든 노아시대에 가르침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그대로 적용되는 가르침임을 깨닫고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 시대를 분별하는 분별력과 또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집중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예수님 이 세상 창조목적학교 학생들에게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교육시키기 위해 노아의 홍수사건을 역사 속에서 보여주시고 이것이 또한 예수님의 공중 재림 전에 일어나야만 하는 하나의 예표로 우리에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중요성과 절대성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많은 사탄의 팀들과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불순종하고 이분들이 고생하는 장면을 우리가 보아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교육과정 속에서 고생하는 사탄의 자녀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모습을 보시면서 하신 말씀을 보니까 낙캄(Na cham)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분들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시면서 깊은 숨을 쉬시고 한숨을 쉬셨습니다. 그리고 가련하게 생각했습니다.
라는 그 표현 우리가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만큼 창조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위해서 이런 과정들을 인간역사 속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창조목적이 얼마나 중요하는가를 깨닫고 그 목적에 충실한 자가 되게 해주시고 성령님이 은혜 베풀어 주셔서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 수직계명을 가장 사랑하는 자들이 되도록 은혜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주시기를 저희들은 믿고 있습니다. 성령님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노아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도 받자
1. 노아에게 베푸신 은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가 언제 이 은혜를 받았습니까?
2. 은혜의 분량이 다양합니다. 그 다양한 특징들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왜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까?
3. 노아는 독수리 시각 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4. 예수님이 노아를 의인과 완전한 사람으로 부르셨는데(창6:9), 이에 대해 나눕시다.
5.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오늘날 들림 받는 신붓감들의 예표입니다. 그 특징들이 무엇입니까?
6. 예수님이 땅 위에 사람들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다. 라고 하셨는데, 이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7. 홍수 당시 세계인구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이와 연관하여 아브라함의 품(눅16:22)과 벧전3:19-20, 4:6의 말씀을 연계하여 나눕시다. 노아홍수 때 아브라함의 품으로 간 자들이, 오늘날 누구를 상징합니까?
8. 오늘날 세 부류의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 어떻게 다릅니까? 구체적으로 나눕시다. 우리가 이렇게 다름을 어떻게 수용해야 합니까?
9. 우리는 어떤 부류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이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본 파일필요하신분이나 목사님 말씀 mp3 메모리카드 필요하신 분은 연락처 남겨 놓으시면 보내 드리겠습니다 

※황용현 목사님 주일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황용현 목사] 노아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도 받자